오므리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작은 산 위에 세웠는데 이 산은 전에 세멜의 소유였다(왕상16:24).
2009-07-16 03:00:12 | 관리자
세금 거두는 사람.
로마 정부에는 두 부류의 세금 거두는 사람이 있었다. 한 부류는 자기 밑에 부관들을 두고 제국의 세금을 거두어들여 황제에게 보고하는 사람들로 정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세력이 막강하였다. 그러나 그 밑에서 일하는 부관들 즉 유대인들이 경멸한 세리들은 말 그대로 강도와 소매치기 수준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광야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은 곰과 사자이지만 도시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은 세리와 기생충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극도로 미워하였고 특별히 갈릴리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로마의 세리들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였으며 세금 바치는 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했고(신17:15) 자기 민족 중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교도로 취급하였다(마18:17). 그래서 세리들은 성전이나 회당에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공중 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도 거부되었다. 우리 주 예수님 당시에 유대에는 세리가 많이 있었다. 삭개오는 세리들의 우두머리로 불리므로 아마도 부관들을 거느린 주요 세금 징수자였을 것이다(눅19:2). 그러나 마태는 부관 노릇을 하는 세리였다(눅5:27). 유대인들은 우리 주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친구이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였지만(눅7:34) 우리 주님은 그들의 불신과 위선을 아시고 세리들과 창녀들이 그들보다 먼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21:31). 눅18:10-14에 나오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2009-07-16 02:59:35 | 관리자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때에 하만의 사악한 계략에서 유대인들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념하기 위해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만든 명절. 이 이름은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한 날을 결정하기 위해 하만의 앞에서 제비를 뽑은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하만이 제비를 신뢰한 것은 결국 유대인들에게 시간을 주어 그의 계략을 틀어 하만 자신을 대적하게 만들었다(잠16:33; 에3:7; 9:20-32). 이 명절에는 먼저 하루 동안 금식하고 회당에서 에스더기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선물을 하고 구제나 기도를 하였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3월경에 이 명절을 지킨다.
2009-07-16 02:58:15 | 관리자
I.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개개인을 구원으로 부르시는 것(롬8:28-30; 살전2:12).
구원의 부르심에는 구원받은 성도가 다른 이를 섬기며 사는 것도 포함된다(고전7:20).
II. 기도를 통해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것(창4:26).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간구를 들어 주시는 긍휼 많으신 분이다.
III. 이름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창17:5; 눅1:13).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이름을 부를 권리가 있다.
IV. 하나님의 일을 위해 특별히 부르시는 것.
아브라함(창12:1-13), 모세(출3:4), 이사야(사6:1-13), 예레미야(렘1:1-12), 열두 제자(마4:18-22, 10:1-4), 바울(행9:1-19) 등이 이 같은 소명을 받았다.
2009-07-16 02:57:27 | 관리자
이것은 주로 가죽으로 만든 부대를 의미했다. 고대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잘 다듬은 뒤 다리가 있던 부분을 꿰매서 부대로 사용했으며 여기서 목 부분은 부대에 액체를 넣거나 빼는 데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이런 부대를 메고 다녔다(창21:14, 수9:4, 13; 시119:83; 렘13:12 비교). 가죽 참조.
과일 즙을 가죽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크게 불어났으며 특히 포도즙의 경우에는 익으면서 발효가 되므로 크게 부풀어 올랐으므로 가끔씩 자루를 열고 공기를 빼지 않으면 자루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루에 흠이 있으면 그런 곳이 터지면서 포도즙이 새어 나갔다. 그러므로 새 포도즙을 새 부대에 넣은 것은 포도즙을 보관하는 일에 매우 필요했다. 왜냐하면 새 부대라야 강해서 이같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포도즙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낡은 부대는 이미 발효가 된 오래된 포도주를 넣는 데 적합했다(마9:17; 눅5:38; 욥32:19). 지금도 이런 가죽부대는 동방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포도즙 창고에 보관하기 위해 소나 낙타의 가죽으로 만든다. 한편 고대 사람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있어서 여러 형태의 작은 그릇이나 통을 만들었고 또 돌이나 유리, 진흙, 설화석고 등을 이용해서 통이나 그릇들도 만들었다(렘19:1, 10-11). 포도즙, 눈물 참조.
2009-07-16 02:56:48 | 관리자
허모게네 참조.
2009-07-16 02:56:22 | 관리자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에 거하던 크리스천 여인.
그녀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전달하였으며 거기서 바울은 그녀를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그녀는 교회의 종으로서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과 또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녀가 자기와 여러 사람의 후원자가 되었다고 기록한다(롬16:1-2).
어떤 이들은 그녀가 여자 집사였다고 주장하지만 여자는 결코 교회의 집사나 목사(혹은 장로)가 될 수 없다(딤전3:2; 12).
2009-07-16 02:55:46 | 관리자
사람이나 물건 혹은 지역을 거룩한 목적으로 쓰기 위해 아주 바치는 것.
그래서 성막과 첫째 및 둘째 성전은 하나님께 봉헌되었다(출40:1-38; 왕상8:1-66; 스6:1-22). 유대인들은 또한 성벽이나 벽 혹은 집을 봉헌하기도 했다(신20:5; 느12:27). 성전 봉헌절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파괴시킨 성전을 다시 복구하고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연례 절기이다(요10:22). 성전, 마카비 참조.
2009-07-16 02:55:14 | 관리자
성경에는 봉인과 관련된 구절이 많다. 봉인은 쉽게 말해 도장을 뜻하며 도장을 포함하는 인장 반지는 인류 역사 초기부터 쓰였고 여러 종류가 있었다. 어떤 것은 서명하는 사람 혹은 소유주의 이름을 적는 것 대신으로 쓰였으며 또 문서의 경우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이것들이 사용되었다. 개인의 봉인은 주로 손가락의 반지나 손목의 팔찌 등이었다(렘32:10; 눅15:22; 약2:2). 반지 참조. 총독은 아주 안전하게 봉인을 가지고 다녔고 왕은 사적인 용도로 또 공적인 용도로 봉인을 사용하였는데 전자는 가지고 다녔으며 후자는 국가의 관리가 보관하였다(삼하1:10). 왕의 봉인이 찍힌 문서는 정부의 인가를 뜻하였다(왕상21:8). 또한 잠정적으로 봉인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권위의 부여를 뜻하였다(에3:10, 12; 8:2). 열기로 인하여 밀랍 대신 진흙에 도장을 각인하기도 하였다(욥38:14).
한편 봉인은 소유와 보존의 상징이었다(신32:34; 욥9:7; 14:17). 문을 열거나 혹은 그릇을 비밀리에 여는 것을 막기 위해 봉인을 하기도 하였고(아4:12; 단6:17; 마27:66) 또 책이나 상자나 두루마리 끈에도 진흙에 봉인을 찍어 붙여서 그것이 남용되는 것을 막았다(사8:16; 계5:1). 성령님도 그리스도인을 봉인하는데 이는 곧 그들이 자기 것임을 보여 주는 증표로서 그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각인하는 것을 말하며 이로써 모든 악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엡1:13-14; 4:30).
2009-07-16 02:54:48 | 관리자
사람의 본 고향.
2009-07-16 02:54:20 | 관리자
이 말은 양식 혹은 모방을 뜻하며 우리말 성경에서는 많은 경우 본보기 혹은 본으로 번역되었다(요13:15; 고전10:6, 11; 히8:5; 딤전4:12). Ensample과 example은 같은 뜻이지만 전자는 대개 좋은 본보기를 지칭한다.
2009-07-16 02:53:59 | 관리자
소아시아의 북동부 지방.
이곳에는 왕과 자치 정부가 있었으나 로마의 폼페이에 의해 정복되어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였고 그들은 종종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행2:9). 아굴라는 본도 출신이었고(행18:2) 초기부터 복음이 이곳에 선포되었다(벧전1:1).
2009-07-16 02:53:31 | 관리자
글이나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
초기에는 지금의 선교사들과 비슷하게 한 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아무데나 가서 복음을 선포한 복음 전도자들이 있었으며 빌립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행21:8; 엡4:11).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권하는데(딤후4:5) 그 이유는 그 일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9-07-16 02:52:59 | 관리자
복된 소식.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요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신 계시요 경륜이다. 성경은 ‘왕국의 복음’(마24:14),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20:24), ‘그리스도의 복음’, ‘화평의 복음’(롬1:16; 10:15) 등을 제시한다. 한편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광스런 복음이기도 한데(딤전1:11) 우리 주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이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되었다. 우리 주님의 삶과 기적과 죽음과 부활과 교리 등을 자세히 보여 주는 책들을 보통 복음서라고 하며 여기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복음서가 있다. 모든 사람이 이것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복음의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것들이 예수님의 교리와 행적을 담은 표준 책으로 받아들였다. 정경 참조.
성경에는 몇 가지 복음이 나와 있다.
I. 왕국의 복음.
마24:14에 나오는 이 복음은 눅1:32-33에 예언된 것으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통치하실 지상 왕국(王國)을 하나님께서 건설하려 하신다는 것을 알리는 좋은 소식이다. 성경에서 이 복음은 두 번 선포되었다. 처음에 침례자 요한의 사역과 함께 왕국의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고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이 복음을 선포했지만 유대인들이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회가 공중으로 들려진 이후에 이 왕국의 복음은 다시 선포될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마24:14에 있는 예언 즉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세상의 끝)이 오리라.”는 말씀의 성취이다. 이 말씀은 현재 각 민족에게 전파되고 있는 은혜의 복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 전파되고 있는 것은 구원의 복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지 하늘의 왕국의 복음이 아니다. 하늘의 왕국의 복음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것으로 왕국을 건설할 때가 임박했음을 통보하는 것이다. 하늘의 왕국의 복음은 7년 환난기에 선두주자 엘리야와(말4:5-6)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전할 것을 위임받은 다른 사람들 - 계시록 7장과 14장의 십사만 사천 명 - 이 선포할 것이며 그것의 목적 중 하나는 온 땅에 흩어진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모으는 것이다.
하늘의 왕국 참조.
II.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행20:24에 나오는 이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사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좋은 소식이다. 이 복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롬1:1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복음의 원천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요3:16). 이 복음의 성격은 은혜이고(행20:24)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롬1:16; 고후10:14)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또 이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우리 혼에 화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엡6:15). 한편 이것은 영광스런 복음이라고도 하는데(고후4:4; 딤전1:11) 이 복음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서 특별히 영광 중에 계시고 영화롭게 되셨으며 많은 아들들에게 영광을 가져다주실 주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는 복음이다(히2:10). 이 복음은 그분의 재림과 관계가 있으며 특별히 그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종교와 복음 선도 참조(86).
III. 영존하는 복음.
계14:6에 나오는 이 복음은 계시록에서 일곱 대접의 심판이 있기 바로 전에 한 천사가 선포하는 복음이다. 이것은 천사에게 맡겨진 유일한 복음으로 하늘의 왕국의 복음도, 은혜의 복음도 아니다. 이 복음의 목적은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다(계14:7). 이 복음은 7년 환난기의 심판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 신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터인데 그 까닭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의 심판과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고통이 곧 끝날 것을 이 복음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사람들에게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께 경배할 것을 요구한다. 족장들과 대언자들이 에덴동산 이후로부터 계속해서 이 복음을 선포해 왔다. 이 복음은 영생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모두 구원한다는 의미에서의 영원한 복음이 아니다. 또한 이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라.” 혹은 “이것을 하라.” 또는 “저것을 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단지 이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각이 이르렀으니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라는 것이다.
IV. 다른 복음.
갈1:6-12; 고후11:4는 위의 복음들 이외의 다른 형태의 복음이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참된 복음을 왜곡시킨 것으로 여러 가지 미혹하는 형태를 취하며 주로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하고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복음이다(골2:18-23; 히6:2). 그러나 이 가르침은 비성경적인 것으로 사도 바울은 갈1:8-9에서 이것을 가르치는 설교자들과 교사들을 강하게 저주하였다.
2009-07-16 02:52:25 | 관리자
혹은 피의 복수자는 유대인들의 정치 체제 하에서 자기 친족을 죽인 사람을 쫓아가서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살인한 사람이 고의로 살인하지 않았으면 도피 도시로 피신할 수 있었다. 도피 도시 참조.
2009-07-16 02:51:22 | 관리자
복을 빌거나 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에는 자신의 복을 효과 있게 만드는 효력을 부여하신다. 그분의 복에는 잠정적인 것, 영적인 것, 육신적인 것, 정신적인 것 등이 있으며 이 복에는 항상 그분의 선하심이 함께한다(민6:23-27).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비는 경우에는 신1:1-29; 33:1과 같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대언의 말씀이 아닌 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람의 축복은 만물의 창조주께서 그렇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바라는 것뿐이다. 한편 사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비는 것은 우리말 성경에서 대개 ‘찬송하다’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 경우에는 그분의 긍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드린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시103:1). 의식주를 주시는 그분의 긍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시103-104) 또 주님의 만찬에 드러난 그분의 특별한 긍휼로 인해서도 감사를 드린다(고전10:16).
문안 참조.
2009-07-16 02:50:48 | 관리자
르우벤 지파에 속한 사람. 보한의 돌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 표시가 되었다(수18:17).
2009-07-16 02:50:22 | 관리자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약정물이나 빚을 다 갚겠다는 확증서 혹은 어떤 것을 사겠다고 약속하며 처음에 주는 보증금 혹은 종을 고용할 때 처음에 주는 임금. 신약성경에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복을 확신시키기 위해 또 그 복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주시는 선물이다(고후1:22; 5:5; 엡1:13-14).
2009-07-16 02:49:58 | 관리자
이것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영감을 주신 성경 기록을 하나님의 섭리로 안전히 보존하여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세대를 통해 치밀하게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셨으므로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들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사40:8).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성경의 보존 선도 참조(91).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5:18; 24:35). 그러므로 불완전한 사람들을 사용해서 완전한 성경 기록을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께서 역시 불완전한 사람들을 사용해서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완전한 보존’이 없는 ‘완전한 영감’은 의미가 없다. 이 점에서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성경, 계시, 영감 참조.
2009-07-16 02:49:32 | 관리자
착한 일은 착한 대로, 악한 일은 악한 대로 선악이 대갚음되는 것.
2009-07-16 02:49:0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