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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아래서 하는 일은 바람을 잡는 일인가? (전 1:14)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 1:14)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KJV: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전도서 1:14의 바람(개역), 영(흠정역)은 모두 히브리어 "루아흐"를 번역한 것입니다. 루아흐라는 단어에는 바람, 숨, 영 등과 같이 여러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어느 번역이 옳은지를 가리기 위해 원어 성경을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해 아래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 바람을 잡는 일인지,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표현은 전도서 1:14을 포함하여 전도서에 모두 9번 등장합니다.   (1) 전도서 1:14   이 구절의 바로 앞에 나오는 13절을 살펴보면,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쓰라린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일들이 고통, 괴로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둡시다.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에 관하여 찾아보고 탐구하려고 내 마음을 쏟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이 쓰라린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것으로 단련 받게 하셨느니라(전 1:13).   (2) 전도서 1:17   전도서 1:17에도 지혜를 찾는 일,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을 알기 위해 마음을 쓴 일이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18절에서는 그렇게 지혜와 지식을 늘리는 것이 슬픔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전 1:18). 즉, 영을 괴롭게 하는 것(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고통, 괴로움 뿐만 아니라 슬픈 일이라고 합니다.   또 내가 지혜를 알기 위해, 미친 것과 어리석은 것도 알기 위해 내 마음을 주었으나 이것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나니 지식을 늘리는 자는 슬픔을 늘리느니라(전 1:17-18).   (3) 전도서 2:11,17,26   전도서 2장 11절, 17절, 26절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2장 17절에서도 해 아래서 이룩한 일이 "내게 몹시 괴롭기 때문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달아놓았습니다. 이것은 그런 수고가 바람을 잡는 노력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1] 그때에 내가 내 손이 이룩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하여 행한 모든 수고를 바라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요, 해 아래에는 아무 유익이 없었도다. [17]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므로 해 아래에서 이룩한 일이 내게 몹시 괴롭기 때문이라(전 2:11,17).   전도서 2:26은 그 앞에 나오는 22절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22절에는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the vexation of his heart)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을 vexation of spirit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로 보아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마음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며 행한 자신의 모든 수고와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리요? [26]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앞에서 선한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거니와 죄인에게는 모으고 쌓는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2:22,26).   (4) 전도서 4:4,6,16   전도서 4장 4절, 6절, 16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4절과 6절에서는 "해산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어 있어 이것이 고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내가 모든 해산의 고통과 모든 옳은 일을 다시 깊이 살펴보니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도다.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6] 한 손에 가득하고 평온한 것이 두 손에 가득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16] 모든 백성의 끝이 없으며 심지어 그들 전에 있던 모든 자들의 끝도 없도다. 뒤에 오는 자들도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분명히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4:4,6,16).   (5) 전도서 6:9   전도서 6:9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낫기는 하지만, 결국 이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욕망으로 헤매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조금 낫긴 하지만 결국은 별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욕망으로 인해 방황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곧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의미가 통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 6:9). 전도서에는 이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개역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으로 번역함)이라는 표현이 아홉 번이나 나오는데, 그 구절들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말씀은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일들이 "뜬구름 잡는 것과 같다"(우리말성경)라고 하며,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전후 구절들을 살펴본 결과, 사람이 하나님 없이 자기를 위해 수고하며 행하는 모든 일들은 인생에게 참다운 만족을 주지 못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사람을 몹시 괴롭게 하고,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며, 욕망으로 인해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그런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영을 괴롭게 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원어로는 이 구절이 바람으로도, 영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겠지만,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런 전도서 전체의 흐름을 읽고, 또한 그런 표현이 등장하는 각 구절들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고려하여 이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옮겼는데, 이는 문맥의 흐름과 일치하는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5-11 20:28:17 | 관리자
계시는 점진적으로 임했다.   1타: 2003-05-31 오후 6:30:00 서울-대전 새마을호2타: 2003-06-26 오후 6:30:00 서울-경주 새마을호3타: 2003-08-11 오전 10:38:00 대전-서울 새마을호   2003년 중반, 본인은 100일 남짓한 시간 동안 평소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시종착역에서 새마을호를 이용해 보면서, 어떤 미지의 음악에 의한 임팩트를 꾸준히 받기 시작했다.   1타: 어? 뭔가 음악이 나오네?2타: 음 전에도 새마을호 타면 출발 전에 뭔가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인상이 웬지 좋다. 무궁화호엔 그런 게 없었는데.3타: 아 맞아 바로 이거야!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중독성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불명의 새마을호 음악에 슬슬 중독되어 간 것이다. 멜로디는 전혀 기억 안 나고 그냥 느낌만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뭔가 <엉뚱한 상상>(지누) 같기도 하고, 당시 히트 치던 거북이의 <Come on>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나름 했었다.   그러다 2004년 초엔 철도 동호회를 통해 이 곡의 음원과 작곡자 정보까지 입수하게 됐다. 일본의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연주한 Looking for you 라는 곡. “그래 바로 이거였어!” 이미 2004년엔 작정하고 이 음악 들을 준비를 하고 새마을호 탑승을 시작했다. Finish blow는 바로 4타였다.   4타: 2004-01-31 오전 10:38:00 대전-서울 새마을호   게다가 이 열차는 KTX 개통 직전에 마지막으로 운행하던... 무려 대전-서울 무정차 열차였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2분.드디어 종착역에서, 새마을호 객실에서 실제로 들은 감격의 Looking for you!!!가슴이 터질 것 같은 리듬과 박진감 넘치는 박자. 심장을 녹여버릴 것 같은 당김음과 현란한 불협화음!   http://www.youtube.com/watch?v=T0EWzcQY280http://www.youtube.com/watch?v=8elu7pv1W6M(2006년경, 본인이 현장에서 직접 녹화. 우리나라 어느 철도 동호인도 이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다)   그 Looking for you에 압도되어 나는 열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편안한 인테리어, 기내지, 영상 서비스에 덧붙여 흘러나온 이 음악! Oh my goodness!!! 이건 정말 일종의 oracle이었다. 황홀경에 빠졌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 “나는 네가 사랑하는 철도이니라. 학생 신분으로 비싼 새마을호 골라 타기가 네게 고생이라.”“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행 9:5-6)   그날을 계기로 나는 철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 철도를 만난 간증이 생겼다.본인은 평생 TV, 연예, 스포츠, 드라마, 영화 따위와는 가히 극단에 가까운 수준으로 담을 쌓고 살았다. 2002년 우리나라 월드컵조차 전혀 관심이 없어서 신경 끄고 지낼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 오던 차에 나의 육신의 모든 광기가 철도로 한데 폭발한 것이다.   정말 세상이 확 달라져 보였다. 뇌 구조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를 보는 눈이 철도를 중심으로 확 바뀌었다. 새마을호가 한국 철도 전체에 대한 색안경을 씌워 놓은 것이다.그렇다. 영국에서 킹 제임스 성경이 출간되고 표준시가 제정되었다면, 영국에서 응당 철도도 세계 최초로 발명되었으며 오늘날 전세계가 채택해서 쓰고 있는 1435mm 표준궤도 영국에서 제정된 것이다!   민물과 바닷물을 모두 왕래하는 ‘연어’ 하면 이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운행하는 직류/교류 겸용 전동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엘리야가 상대했던 바알 대언자 450명과 작은 숲 대언자 400명, 총 850명이라는 인원은 객차가 18칸이나 있는 KTX 한 편성을 거의 다 꽉 채울 수 있는 인원이다. (KTX 설계 정원은 935명) 이런 식이다.   아기가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엄마 젖을 빨려고 애쓰듯, 갓 거듭난 영적 아기는 본능적으로 나를 구원한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고 성경을 찾아 읽고 싶어지는 게 정상인 법이다. 그래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는 베드로전서 2:2 같은 구절도 있으며 이는 KJV 이외의 성경에서 변개된 걸로도 유명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도 성령이 임한 직후, 그야말로 한국 철도의 모든 분야 지식을 빨아들이려고 혈안이 되고 전국 모든 철도역과 노선을 답사하고 싶어서 안달 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선, 역사, 시설, 차량, 건설 공법, 각 도시의 지하철 구조, 우리나라 지형, 도시 계획 이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찾아보고 외웠다. 아가서 내용이 그럭저럭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새마을호의 모든 것이 그저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뒤부터이다.   철도는 신앙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열차 운행에 비유한 성경 통독 요령>, <철도 성경 침례 교회>라는 글을 쓰고 전철 노선도에 빗댄 <성경 노선도>를 만들었다. <구원 열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찬양이 됐다. “나는 새마을호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빵빵”   (경부선 밀양 철교를 통과하는 새마을호 PP 열차. 본인 컴퓨터의 배경 그림. 본인이 찍은 사진은 아님.)   성경 지도를 꺼내서 광역전철 노선도를 구상한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이런 식. 훗날 천년왕국 때 전세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경배하러 올 건데 지하철을 타고 빠르고 편하게 성전으로 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ㅋㅋㅋㅋㅋ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동기, 회사 동료, 교회 사람 등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새마을호의 추억에 대해 늘어놓고 철도 얘기만 잔뜩 하여 숫제 철도 에반젤리스트가 됐다. 본인은 영어로 다른 건 몰라도 복음 전하는 것과 우리나라 철도/지하철에 대해 떠벌리는 건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철도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누구에게든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행전 4:20이 이런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 외국인 선교사가 오셨을 때, 교회 인근의 경부선 선로의 구조에 대해서 강의(?)를 한번 해 드린 적이 있다. 내 속에 있는 철도의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했다. (벧전 3:15)   Looking for you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본인의 음반 차트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주찬양 선교단까지 밀어내고 지금까지도 수천 번 이상 듣는 곡이 됐다. (내가 한때 주찬양 선교단에도 각 앨범의 곡 순서와 가사, 멜로디를 다 줄줄 외울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나라에서 들을 멜로디이며, 어쩌면 이제 Looking for you가 내가 죽을 때까지 1위를 고수하는 곡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히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도대체 음악이란 게 어떤 존재여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당김음과 불협화음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음정이란 게 뭔지, 왜 음악이 지금과 같은 음계로 만들어졌는지, 이 전동차의 구동음 첫음은 D인지 D#인지... 왜 교회에서 세상적인 음악을 수용해서는 안 되는지.. 이런 것까지 다 주파수 파동 만들어 들어보면서 연구를 했다. 정말 그땐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짓 정말 많이 했다. =_=;;   십수 년 째 안 쳐서 까먹고 있던 피아노도 덕분에 감각이 얼추 되살아났다.게다가 Looking for you는 수십, 수백 번 들으면서 아예 청음해서 악보/미디를 만들어 버렸다! 다른 철도 동호인들마저 경악했다. 지금은 그 좋던 새마을호의 각종 서비스들이 거의 전부 다 KTX에 밀려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건 마치 초대 교회 시절의 각종 표적과 은사들이 오늘날엔 유효하지 않은 것쯤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달관의 경지에 올랐다. 교회에서는 친구들이 장난삼아 “형제님 철도냐 주님이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 앞으로 하나님에게서 호되게 징계 받고 나서 제가 철도를 주님보다 더 사랑했다고 자백하고 회개할 날 온다구요”라고 가정이 잘못된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서 본인은 “형제님이 철도도, 철도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준다.   나는 단순히 철도를 그냥 좀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다. 완전 뼛속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덕후이다. 그러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철도 신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 대립하고 제로썸 게임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보완하면서 상대방을 세워 주고 발전시키는 선순환-_-을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8 23:53:40 | 김용묵
  내 양들을 먹이라.  (요21:15-17) 사역자에 있어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네 것,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주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역을 하다보면 주님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적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형제분이 있는데 그 형제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내가 저지른 잘 못됨에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 형제님은 제가 거듭나기 전에 저희 교회에서 집사로 있었는데 후에 큰 시내로 돈벌이 나가서 한 십년동안 소식이 없던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십년이 넘은 어느 날 저를 찾아왔고 또한 그 형제와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 형제가 그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형제님은 제가 사는 곳이 길림성인데 길림성 성소재지인 장춘시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종교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너무 기뻐했고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음으로 인하여 형제님 아내도 구원을 받았고 또한 장춘시에 여러 사람이 연결이 되어서 약 열 명 정도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작은 모임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제가 자주 장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했는데 정말 그곳에 갈 적마다 복음을 전할 혼들이 연결이 되었고 또한 교제가 참 잘 되어 주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물질 면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이 번마다 채워주는 경험을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장춘시에 형제님이 구원을 받고 여러 형제자매님이 구원을 받으면서 자연적으로 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장춘시는 제가 사는 곳에서 약 3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고 제가 자가용도 없기에 매주 다니며 말씀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못가는 주일 모임 때는 그 형제님에게 들을 말씀 씨디를 주어서 듣게 했고, 또한 제가 설교한 것을 타자로 해서 모임 때마다 형제님이 그것을 놓고 모임을 가지군 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제가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었고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들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님도 킹 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함께 킹 제임스 성경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형제님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형제님이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갔나 봅니다. 후에 장춘에 어떤 자매님을 통해서 그 형제님이 저 아닌 한국에서 구원파라고 하는 그쪽 목사님들을 모시고 말씀을 들었고 또한 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형제님에게 인차 전화를 했더니 그 형제님이 절대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후부터 그 형제님과의 교제를 끊게 되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장춘에 형제자매님들과 교제가 끊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일을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나도 잘못 했단 마음이 듭니다. 저는 내 편을 만들려고 했지 주님의 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가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서 돈을 받고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형제의 잘 못됨을 용서해주고 인내로 기다리면서 말씀을 계속 전해주었다면 아마 그 형제님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일로 그 형제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지를 미리 알았고 베드로가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까지도 미리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제자들을 향하여 또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결국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복음의 일을 하게 하는 훌륭한 능력의 일군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와서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참된 목자는 양을 헤치는 사나운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싸워 양을 지키는 목자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양은 주님의 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제자매님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온전한 양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양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형제자매님을 맡겨주었다면 우린 끝까지 그 형제자매님들을 돌봐줘야 합니다. [내 양들을 먹이라]는 것은 섬겨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족함이 있지만 그 부족함을 끌어안고 내가 섬김으로 주님의 편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 참된 사역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다시 묵상이 되면서 제가 전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제가 맡겨준 형제자매님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섬겨주는 것이 참된 사역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고 또한 그 형제님과 그곳에 형제자매님들을 버린 제 잘 못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7 21:03:15 | 시님사람
요즘은 조금 인지도가 있는 기업이나 단체들은 전속 서체를 만드는 게 유행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06년 말부터 윈도우 비스타+오피스 2007+IE 7과 동시에 맑은 고딕을 뿌리기 시작했으며, 한겨레나 조선일보 같은 신문사들도 자기네 전속 서체를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그 후 네이버 역시 나눔명조/고딕 시리즈를 공개한 것으로 유명하고, 최근엔 한컴도 아래아한글 2010과 함께 함초롬 바탕/돋움 시리즈를 공개하여 그 뒤를 따랐다. 대기업인 삼성도 전용 서체가 있고, 코레일도 역명판에 사용하는 전속 서체가 있다. 인천 공항은 각종 표지판에 미공개 전속 서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하청을 받은 산돌이나 윤디자인 같은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엄청 고생했다.   개개의 서체를 만들어 파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서체 회사들은 확실한 과금 체계가 존재하는 포털 사이트(싸이)나 모바일 쪽으로 사업 대상을 바꾸거나, 저렇게 전속 서체 외주를 수행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웹브라우저나 MP3 플레이어 소프트웨어를 개인이 따로 돈 주고 쓰는 경우가 없듯이, 서체 역시 그 자체가 수익이 아니라 마케팅 수단처럼 되어 가는 게 현실이다.   전속 서체는 이미지가 중요한 사기업만 만드는 게 아니다. 가끔은 지방 정부 내지 국가가 세금을 투입하여 만들기도 한다. 월드컵 때엔 경기장 내부 표지판용으로 나라에서 각종 표지판용 전속 서체를 제작해서 썼는데 이 글꼴은 요즘 WOW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도 애용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최근엔 서울시에서 시 브랜드 재고를 위해 서울 남산체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고 이 서체는 지하철 인테리어에서 적극 쓰이는 중이다. (특히 9호선)   그런데.. 이렇게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이 중요하게 부각되기 전에, 무려 1990년대... 그때는 어지간한 PC 환경에서는 윤곽선 글꼴 자체를 구경할 수 없던 시절에, 지방 정부도 아니고 우리나라 중앙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국고를 투입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전속 서체 세트'를 개발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특정 단체나 브랜드를 위한 톡톡 튀는 서체가 아니라, 본문용 네모꼴 한글 서체의 디자인 표준을 제시하는 가장 원천적이고 교과서적인 서체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 작품은 바로 문화바탕체이다. 여기서 '문화'란, 당시 이 서체 개발하라고 연구비를 대 준 정부 부처인 '문화부'(훗날 문화관광, 문화체육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바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짜잔~ (맨 아래의 검은 글자)     명조체와 비슷하나 우리가 흔히 보는 그런 명조류가 아니다. 명조라고 보기에는 좀 붓글씨 내지 펜글씨 같기도 하지만 흘리거나 날린 흔적은 없다. 특히 명조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ㅈ이 명조가 아닌 고딕처럼 ㅡ+ㅅ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ㅠ에서 왼쪽 ㅣ가 왼쪽으로 삐쳐져 있다. 문화바탕 말고 ㅈ이 그렇게 그려져 있는 본문용 명조는 아마 신문명조 부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바탕은 1991년엔가 그때 개발되었으며, 1992년에 발매된 아래아한글 2.0 전문용이 지원하는 윤곽선 글꼴로 공개되어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문화돋움도 나왔으며, 아래아한글 3.0 시기인 1994~1995년에는 문화바탕제목, 문화돋움제목 같은 진한 제목용 서체와, 문화쓰기흘림, 문화쓰기정자, 문화쓰기필기 같은 진짜 펜글씨· 붓글씨 서체가 후속작으로 잇달아 개발되었다. 이 문화* 서체들은 아날로그 서체이다. 마치 만화 그리듯이 사람 손으로 원도를 그린 후, 그걸 스캔하여 윤곽선을 추출하고 따로 보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사실, 수많은 서체들이 그런 방식으로 새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부터 쓰여 온 서체들도 그런 방식으로 디지털화했다.   문화바탕의 원도를 그린 사람은 최정순 씨이나, 서체 컨셉은 개발 위원회 멤버들의 합의를 거친 것이지 전적으로 그 사람 개인 작품인 것은 아니다. 원도의 디지털화는 한글 타이포그래피과 출판 기술 쪽으로 국내 최고의 권위자이며 왕년에 <컴퓨터는 깡통이다> 시리즈로 매스컴도 여럿 탄 유명한 이기성 교수가 작업했다. 세리프가 많은 아날로그 글꼴을 디지털화했다는 특성상 문화바탕은 덩치가 크고, 과거 도스 시절에도 래스터라이즈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글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화바탕은 나름대로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개발되었다. 앞으로 이런 문화바탕 특유의 냄새가 나는 서체는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ㅈ이라든가 ㅠ의 모양 같은 것도 본문용 한글 서체라면 앞으로 이렇게 문화바탕처럼 만드는 게 맞다는 식으로 나름대로 원칙과 표준을 정한 것이다. 그리 캐주얼하거나 가벼운 느낌을 주는 서체는 아니기 때문에, 분위기의 특성상 교과서나 성경, 법전 같은 경전류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 서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꼴이 만들어진 지 20년 뒤, 윤명조가 대세가 된 오늘날까지도 문화바탕의 가이드라인대로 만들어지는 본문 글꼴(특히 ㅠ 모양)이 거의 없다시피한 것이 현실이다. 그 대신 오늘날까지 문화바탕을 출판물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아는가?   여호와의 증인-_-이다. 본인이 몇 달 전에 우연히 간행물 파수대를 봤을 때에도 본문이 문화바탕체인 걸 봤다. 그런데 그들 간행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정교한 유채화(oil painting) 스타일의 삽화와 더불어 문화바탕체는 내가 보기에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도 내면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본문은 딱 보면 문화바탕, 굵은 글씨는 문화바탕제목임을 알 수 있다. 이걸 알면 용자. 그리고 저 본문 내용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이단 교리라는 걸 아는 독자라면 더 용자. ㅋㅋ 여호와의 증인들이 쓰는 용어는 야훼 대신 여호와를 쓰는 것만 빼면 천주교 공동번역 스타일과 굉장히 비슷하다.)이러다가 문화바탕체가 여호와의 증인들 전속 서체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본인이 21세기 이래로 문화바탕체를 본 곳은 이기성 교수가 관여한 출판물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 딱 두 곳뿐이다! ㅜㅜ   아울러, 문화* 글꼴들은 한글에 어울리는 영문/숫자 글꼴이 전혀 개발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연구비 삭감-_- 때문이라고 하며, 이 교수 역시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 점에 대해서는 몹시 아쉬워하는 것을 강연에서 들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5 23:53:36 | 김용묵
오랜만에 아름다운 홈스쿨에 글을 올린다. 최근들어 우리 가족에게 참 많은 일들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우리가 3년간 섬기던 소주(중국)의 행복한 교회를 나오게 된일이다. 때로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이번 경우가 가장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인 것 같다. 아무런 인간적인 갈등이 없이 나온것으로 보아서도, 우리는 이것이 진정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는다.   최근 우리는 새로운 목자를 만나서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있다. 새로운 목자를 만나게 된데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매일 인터넷을 통해서 keepbible.com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있다. 방금전에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 keepbible을 만나게 된것 같아!  말씀을 이토록 공부하게 되어서 무척 행복해."  아내가 행복하다니 나두 안심이 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의 실존의 문제이다. "내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주변의 형제 자매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내가 남편으로 아버지로 형으로 .....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할려고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데, 이래도 되는건가? 왜 안될까?" 기타 등등.... 수많은 실존의 질문들 속에서 답답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이 사이트를 알게 되어 그 안에 있는 동영상강의를 거의 매일 듣고(가정예배대체로) 공부하면서, 희안하게도, 그 답답함들이 조금씩 풀리는, 성도로서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용중에서도 일부분들은 나의 이기적인 자아가 판단하기에 용납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인 부분이 옳다면, 비 본질적인 부분을 조금 다르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는 생각을 갖게 해 주셔서 지금은 아주 유익하게 듣고 있다. 약2개월간을 열심히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가슴이 뼝 뚤리는 듯한 느낌이고, 성령님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의지하는 자유의지를 강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말로 옮기기도 힘들다. 이 글을 읽는분 중에서 내가 왜 이런말을 쓰는지 궁금한 분이 있다면, keepbible.com에 들어가서 자료실에서 동영상 강의중에서 "구원"부분을 들어보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내가 겪는 이런 실존의 문제를 진원이가 많이 겪으면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뭔가 성경의 말씀(한 문장으로 된 단편적이 이해가 아닌 성경 전체의 이해를 통한 성경의 말씀) 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여기서 많은 정보를 받아서, 열심히 아내가 전해 주고 있어서 안심이 된다. 뿐만아니라, 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문화들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성경적인 기준을 또한 명쾌하게 내려 주어서 더욱 감사하다. 최소한 진원이 주원이가 보고 듣고 경험하게될 문화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주게 되어서 또한 기쁘다. 처음에는 나두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다가, 볼수록 깨닫게 된 것이라. 참 귀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들을 더 늦기전에 들어야 하는데.... 라는 소망이다. 그래서 이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번 주님께 기도한다. "내안의 성령님!!! 이거요!!!"   <아름다운홈스쿨 카페지기님 글 발췌>[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5: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5 08:13:20 | 정재훈
음성 자료에 있는 성경목록가에 악보를 추가하였습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ccm&write_id=38[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5: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1 13:03:57 | 관리자
늘 형제/자매님들의 은혜로운 말씀만 읽다가 시간이 나서 두서없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24 : 27)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마다 예수님의 지상재림을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아는 권사님이 예수님이 오시면 CNN등에서 중계를 하여 모든 사람이 볼 수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강림하실때가 낮이라면 지구 반대쪽 사람들은 실컷 자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예수님이 오신것을 알게 될까요 바다속 100m 핵잠수함에 근무하는 수병들은 물위로 부상한 다음에야 알게 될까요 탄광 300m 지하에서 일하던 광부는 교대근무 시간이 되어서야 알게 될까요 앞을 못보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로 부터 예수님 오심을 전해듣고 알게 될까요?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Km이고 지구둘레는 4만 Km이므로 빛이 1초에 지구를 7바퀴반을 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빛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는 약 0.13초 정도 걸리겠지요. 그야말로 눈깜빡하는 시간일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빛의 속도와 지구둘레를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고 위와 같은 표현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님 지상재림 하시는 것은 지상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 아마 수십억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동시에 볼 것입니다.(너무도 당연한 것을 왜 쓰느냐고 하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너무 기뻐서요!)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가 사막에 있다 해도 나가지 말고, 보라. 그가 은밀한 방에 있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마24:26)   저는 이 말씀이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나 또는 어떤 매체(TV, 인터넷 등등)를 통해 예수님이 미국에 서울에 아니 설사 예루살렘에 강림하셨다 해도 그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누구로 부터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우리 모두의 눈으로 동시에 보아야 하는 것이어야 함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주님의 지상재림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휴거되어 지상재림때 땅에서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내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목사님 설교시 우리 살아 생전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은 후 예수님 오실때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은 "이미 따논 당상이니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혹 제 글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말씀만 의지하시기 바라며,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의의 관"만큼은 따논 당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다시 오심을 너무너무 기다리고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 주님만은 꼭 오실 테니까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9 23:44:50 | 장인교
  믿음으로 .......... 저희 교회는 주일날 한번만 말씀을 전하고 수요일 모임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목사님들 말씀을 다같이 모여서 듣군 합니다. 오늘 수요일 모임 날이라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은 히12:1-3 에 말씀 주제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중에서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병이 다 낫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무조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을 전하시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으로 아멘이 되었고 또한 그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메여있던 것이 확 풀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제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주일날에 형제자매님들이 다 모인다 해야 9명이 모이고 수요일 모임에는 5명이 모입니다. 시골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어렵다 하기보다 사실 정신적으로 더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원인이 형제자매가 적다는 것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역이나 믿음으로 산 사람의 기준을 전도를 해서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이고 있느냐? 아니면 적게 모이느냐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질보다 양을 더 많이 봅니다. 그리고 시골 사역을 하다 보니 그간 많은 분들의 물질 지원을 받고 살았는데 돈을 믿음으로 지원해준다고 하면서도 꼭 돈만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간섭을 하려하고, 돈을 받는 사람을 많이 무시하군 합니다. 그것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이전에 미국에 어떤 목사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을 전혀 몰랐는데 한국에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그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그 목사님이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백불을 보내주었고 후에는 삼백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이렇게 저를 채워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의 모든 것을 간섭을 하였고, 늘 교인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주면서 돈을 어떻게 썼는지,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늘 보고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피곤할 정도로 간섭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 교회가 형제자매님이 많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에게 물질을 보내던 것도 끊고 아예 교제도 끊어버렸습니다. 후에 제가 전도해서 현제 교제를 하고 있는 연길에 형제를 가로채서 그 형제를 물질로 사서 일을 하더니 결국 그 형제님이 전도를 잘 못한다고 그 형제도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기가 찼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나도 발전성이 있는 그런 곳에서,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사역을 하고 싶은 생각이 숨어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평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서 저도 잘 몰랐는데 무슨 일에 부딪히면 그런 마음이 순간 올라 오군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오랫동안 연결이 끊겼던 목사님하고 대화가 되면서 그 목사님이 어떤 큰 도시교회에 소개를 해주시면서 저보고 그곳에 가서 사역을 해줄 수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소개해주는 곳은 큰 도시일 뿐만 아니라 발전성이 있는 곳이고 또한 이미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에 모든 것이 잘 준비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알게 되면서 저는 정말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제 사역을 하고 있던 시골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이유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사역지를 옮겨야 하는 이유를 많이 생각해 냈고, 목사님들께도 그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서 꺼림직 한 것이 있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이 난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뜻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다가 내 욕망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것인데 지금 저는 말씀을 끌어다가 내게 결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시골교회를 버리고 그 큰 시내 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잘 못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정리를 했지만 그런데 자꾸 제 마음에서 왜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몇 명 안되는 시골에 있게 할까 하는 마음이 들군 했습니다. 오늘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라합은, 믿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서 삼손에 대해서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에서 아멘이 되었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제 마음속에 [믿음으로 홍승현이는 시골에서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겼으며........]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이 감사가 되고 찬양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렵더라도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믿음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에 메여있던 부분이 해방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비록 부족하지만 이 시골에서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겨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책에 믿음으로 살았다고 기록해 주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홍승현이는 시골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끝까지 단 한명  남을 때까지 형제자매님을 섬겼더라.]라고 생각이 되니깐 정말 마음에서 힘이 나고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날 실패한 사역자라 생각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날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은 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은 날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교제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붙들어 주신 김재근 목사님, 정동수 목사님, 홍두엄 목사님, 김영균 목사님, 박참하 목사님 .....등 여러 목사님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가 되었습니다. 김재근 목사님은 제가 시골을 떠나려고 할 적마다 저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가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8 19:53:38 | 홍승현
여러분! 행복하세요?   비도오고 날은 지궂은데 여러 형제 자매님들은 행복하십니까?   저는 최근 백수가 되어 열심히 집에서 방콕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는 왜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오늘은 문득 행복한 생각이 들어 몇자 적습니다.   제가 행복해 하는 이유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때문입니다   사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흠정역 성경을 이미 접하고 생활속에서 묵상하리라 생각됩니다.   최근들어 성경을 많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밥먹는 시간과 딸과 놀아주는 시간 빼고는 계속 흠정역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어쩌다 제가 이제야 흠정역 성경을 보게되었는지! 지금에라도 흠정역 성경을 대할 수 있는것이 너무도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만나게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같은자를 긍율이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다니 주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감계무량할 따름입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마치 묘수 풀이 해놓은 것처럼 희미하던 것들이, 무감각 했던 것들이 살아 춤을 추듯 다가 옮니다.   이러니, 아니 기쁠수가 있가 있으며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데도 즐겁기만 합니다. ㅎㅎㅎ   주안에서 한 지체된 형제, 자매님들도 축축한 날이지만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8 17:29:33 | 노영기
오늘날 전 세계 일부 대도서관에서 가장 오래된 꾸란 사본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들이 완전히 진본과 다르지 아니하고 완전히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에 의심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그는 발견된 가장 오래된 꾸란과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꾸란들을 비교하여 보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알제리아 서점에서 구입한 꾸란과 아세아 극동에 위치한 한국 서점에서 구입한 꾸란과 가장 오랜된 꾸란을 서로 비교하여 보아도 그것들은 우스만 시절에 만들어진 꾸란 사본들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도 의심이 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 구입한 꾸란을 가지고 꾸란을 암송한 하피즈가 암송하는 꾸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하여 보아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읽혀지고 있는 꾸란은 최초에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하여 세상에 전해진 바로 그것이다. 꾸란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되었는가에 대해 일혹의 의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오늘날의 꾸란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계시되었던 그 당시의 꾸란과 일점일획도 차이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거나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메디나 소재 파하드 국왕 성 꾸란 출판청에서 출간한 한국어 꾸란 서문에서]     * 이슬람이 꾸란 믿는 것보다는 성도가 킹제임스성경을 잘 믿어야죠.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5: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7 22:00:57 | 김재근
노아당시 불순종하던 자들이 감옥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잘 이해가 안되서요. 이구절을 카토릭에서 로사리오기도나 다른 행위를 열심히 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근거로 설명하던데요.   이 구절은 사도신경과 함께 설명하면 좋을 것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2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습니다. -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천당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祖 - 예컨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 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고성소(古聖所)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의 영혼은 고성소에 가시어 그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다녀오셨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 -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과 림보 -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변방: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백치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네이버 영어 사전) -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교회의 교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와 같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중심부)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하며 “주께서 내 혼을 [예수님의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 - 엄밀하게는 그분의 혼 - 이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이런 부분의 지옥을 모두 불교 용어인 ‘음부’라고 번역해서 바른 뜻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을 천주교회에서 굳이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천주교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례가 있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과 벧전3:18-20을 묶고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18…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20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과연 사람이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벧전3:19는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감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영들은 분명히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 부류의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된 천사들입니다. 벧후2:4와 유6은 이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죄를 지어 지옥에서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속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노아 당시에 죄를 지어 대홍수로 멸망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천사들과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입니다(창6:4). 물론 이들도 대홍수에 휩쓸려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 세 부류가 벧전3:19에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영이라 불린 적이 없으므로 여기의 영들은 천사들과 그들이 낳은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셨다는 의미의 ‘케륏소’입니다. 그러므로 벧전3:19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힘입어 그들에게 가셔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정죄’를 선언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 외에 다른 것이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는 결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또 다시 선포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개신교회 안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보면서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2010-04-27 09:30:06 | 이정순
  마태복음 6장을 읽다가 ....... 저는 최근에 주일모임에서 마태복음을 차례대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마태복음 5장을 끝마치고 다음 주 나눌 말씀이 마태복음 6장이라 오늘 아침에 6장 말씀을 읽게 되었는데 마태복음 6장에는 외식에 관한 것을 주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예전에 다니던 그 교회들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일들이 믿음이 아니라 정말 외식된 것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런 외식적인 교단을 떠나 이제 바른 교회들을 만나서 참된 신앙생활과 바른 성경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감사가 됩니다. 저는 89년도부터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고 노력하다가 계속해서 짖는 죄 때문에 갈등하다가 95년도 1월달에 어떤 교단 교회들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머리로만 알던 십자가 사건이 그때 마음으로 믿어졌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5월달부터 제 1기 선교학생으로 뽑혀서 저는 저의 아내를 데리고 선교학교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선교학교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훈련을 시켜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우는 곳이라는 것만 들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다들 저를 부를 적에 [집사님]하고 불렀는데 오늘 선교학교라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똥집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래도 거듭나지 못했을 적에 집사는 하나님이 세운 집사가 아니기에 똥집사라는 것도 맞다 싶어서 그 말이 이해가 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선교학교 개학 첫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을 일전한푼 남기지 말고 다 바치라 해서 저는 일전도 남기지 않고 다 바쳤습니다. 이유는 이제부터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이제 태어 난지가 얼마 안되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의 주머니에 돈이 한 푼 없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는 하지만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믿음을 배우는 길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믿음생활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새벽 4시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새벽 5시부터는 새벽예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5시부터 5시반까지 약 반시간 가량 기도하고 성경 읽다가 5시반부터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6시반에 새벽 예배를 끝마칩니다. 그리고 형제님들은 부지런히 방을 치우고 세수를 하고 자매님들은 밥을 지어야 합니다. 아침 식사는 7시반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침 8시반부터 모여 각자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가 8시반부터 오전 11시까지 목사님이 오셔서 아침 성경강의를 하십니다. 그리고 12시에 밥 먹고 오후 1시부터 각자 짝을 지어서 시내에 나가서 전도를 하러 갑니다. 각자 전도를 하다가 오후 5시가 되면 무조건 학교에 들어와야 합니다. 오후 6시에 저녁 식사가 있고 좀 쉬었다가 저녁 7시부터 저녁 모임이 시작됩니다. 약 반시간 가량 각자 기도를 하고 성경 읽다가 7시반부터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 보면 10시에 성경 공부가 끝납니다. 그리고 잠간 쉬었다가 선교학교 학생들이 둘러앉아 기도모임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모임 시간까지 다 끝마치면 밤 11시가 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엎고 저희 부부가 자는 숙소에 돌아와서 빨래도 좀 하고 이런 저런 일을 좀 하다 보면 12시에 자기가 보통입니다. 정말 고단한 훈련이었습니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저의 아내 문제었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훈련을 시킨다고 밥을 배불리 주지 않습니다. 작은 공기로 살짝 한 공기 주는데 저희도 배가 부르지 않는데 아이이게 젖을 먹이는 저의 아내로서는 너무나도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더 먹으려 해도 더 먹을 밥이 없었습니다. 반찬도 조금 해놓기 때문에 조금만 늦게 밥을 씹는 사람은 나중에 먹을 반찬이 없었습니다. 저녁 모임을 끝마치고 숙소에 와 잠을 자려하면 아내가 너무 배가 고파 힘들어 합니다. 잘 먹지 못할지라도 배는 부르게 먹어야 하는데 배까지 곯다보니 아내가 젖까지 얼마 나오지 않아서 딸 아이가 자지 않고 웁니다. 아내는 밤새 나오지 않는 젖을 아이에게 물리면서 아이를 달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제 시간이 선교학교에 달려가야 합니다. 때론 아내가 아이 때문에 선교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습니다. 때론 일분 이분 차이로 늦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도 봐주지 않고 그날 아침 늦었다는 이유로 선교학교에서 아내에게 아침 금식을 시킵니다. 그것을 보는 저는 정말 눈물이 나왔고 목구멍이 밥이 안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믿음생활인가 싶어서, 또한 훈련과정이라 싶어서 참고 참았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모임시간이 결정되어 있고 밥을 먹는 시간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시간을 일분이라도 어기면 그날 금식을 해야 합니다. 혹 누구라도 말 대구를 한다면 한끼 더, 또 한끼 더 ......이렇게 금식을 시킵니다. 그곳에서 사랑이란 조금치도 없습니다. 모두들 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지켰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남을 나누어 주려고 하기보다 자기 입에 들어가기 바빴습니다. 모임시간이 아이가 울면 때려서 다른 외딴방에 가두어 놓습니다. 젖먹는 어린 애기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는 중에서도 달마다 선교학교 생활비를 바쳐야 합니다. 손에 있는 돈을 다 털어버리고 선교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생활비를 벌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해서 바치라고 하는데 사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전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얻어낼까 연구를 합니다. 자주 무전전도 여행을 나가기도 합니다. 사실 선교학교에 돈이 있지만 전도를 나갈 적에는 한쪽 차표만 사주고 올 차비는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전전도 여행을 나가려면 두려움에 싸입니다. 무전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간증을 하는 것을 보면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목사님이 어느곳에 가려고 차표를 샀는데 표값이 90원이어서 자기가 백원짜리 인민페 한 장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판매원이 10원을 돌려줘야 하는데 판매원이 자신에게 90원을 돌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준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 기쁨으로 그 돈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 간증을 들으면서 제 속으로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주었느냐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목사님이 하는 간증이라 이해가 안 되지만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 교회들에서 늘 말씀을 하는 것이 우린 [종]의 말을 들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고 [종]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우린 정월초하루 설명 절이 되면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교학교에 모여서 정월초하루 아침에 금식을 합니다. 정월 초하루 아침에 밥을 먹으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날 육신을 쳐서 영에 복종하는 훈련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는 부모형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몇몇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말을 해주기 때문에 아니라 생각이 되면서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후에 이  교회들에서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말들이 맞아보였습니다. 늘 깨어져야 한다, 부서져야 한다고 가르쳤고 종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교회들에서 가르쳤던 것들이 너무나도 외식적인 것이었고 우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말씀을 바로 모르면 이런 엉터리 교리에도 반박할 말씀을 찾지 못하고 넘어갑니다. 박옥수 목사나 북한에 김정일이나 똑 같은 그 쪽에서는 만민의 태양입니다. 그들을 섬기고 따르는 것만이 믿음생활이라 가르칩니다. 오늘 마태복음 6장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외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이전에 선교학교에 있었던 일과 그쪽 교단들에서 있었던 끔직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배워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바른 성경이 있어야 바른 교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얼마전에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에 대한 정동수 목사님이 전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쪽 킹제임스 성경 교회들에 와서 많은 목사님들 말씀을 들으면서 바른 믿음의 생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믿음은 누가 강박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 오늘 마태복음 6장을 읽다가 이전에 선교학교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좀 적어보았는데 성경적인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주안에서 복된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면서 ........... 안녕히 계십시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09: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6 12:00:28 | 홍승현
  큰 형님을 찾아갔다가... 저는 사남일녀 중 막내입니다. 위에 두 형님이 있고 위에 누님 한분이 있습니다. 저의 형제들 중 둘째 형님이나 누님이나 저는 다 고중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큰 형님만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만나서 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저의 큰 형님은 많이 배운 덕에 우리 형제들 중 제일 똑똑한 사람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큰 형님이 저를 보았을 적에 늘 저는 막둥이 어리광이이고 늘 자기보다 못한 [자신에게 은혜 입을 자]인 것입니다. 저도 세상지식으로는 큰 형님과 비하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형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구원을 받고 그 다음 아버지 어머님, 그리고 둘째 형님과 누님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유독 큰 형님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큰 형님이 보았을 적에 저희는 무식해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은 똑똑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고 난 후에 큰 형님을 보니 세상 적으로 똑똑한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똑똑한 자가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바로 제일 똑똑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2000년도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 가시기전 저보고 녹음테이프로 아버지 말씀을 녹음하라고 해서 아버지가 큰 형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니 꼭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유언을 녹음을 해서 남겨놓았는데 그 녹음테이프를 큰 형님에게 들려드렸더니 큰 형님이 아버지 미쳤다고 콧방귀를 뀝니다. 우리 가족식구들은 늘 저의 큰 형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에 형님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신체검사에서 형님의 간에 암이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암을 고치기 위해서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병원에 다니면서 수많은 의원을 만나 치료를 해보았지만 병은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중해갔습니다. 이제는 암 말기라 간에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전이가 되었고 심지어 뼈에 까지도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저는 형님을 보면서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열 두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많은 의사에게 많은 일들로 고통을 받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니 조금도 좋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 심해지던 차에](막5:25-26) 형님은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고 많은 의원을 만나서 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병만 더 키웠고 있던 돈도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나오는 여자는 다행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큰 형님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자주 형님집에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어데 있느냐고 펄펄 뛰더니 이제는 병이 점점 중해지면서 마음이 점점 낮아지면서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데 그것도 단번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조금 조금 받아들입니다. 어제는 이즈음이면 마음을 낮추고 복음을 받아들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데 자신이 죄가 많아서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복음을 듣겠지 해서 복음을 전해주려 했는데 도저히 지금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참 여전히 교만에 꽉 차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어데 있습니까? 죄가 많아서 천국 못간 다고 하면서 복음을 듣지 않겠다고 하니 이것 또한 지극히 교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님을 볼 적에 참 불쌍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큰 형님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세상적으로 많이 공부를 시키고 출세를 시키려 하기보다 많은 공부를 시키지 못하고 세상적인 출세를 시켜주지 못했지만 자녀들에게 진짜 가르쳐 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신앙을 배워주는 것이 진정 자녀를 복되게 하는 것이란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저는 큰 형님처럼 배운 것도 적고 아는 것도 적지만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저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똑똑한 자고 내가 정말 복된 자라는 것을 저는 형님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됩니다. 몇 일 있다 또 형님에게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려 합니다. 오늘 형님을 찾아갔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들어지는 마음을 이렇게 순서없이 적어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4 22:13:10 | 홍승현
          한 몇 년 전에 만든 발표 자료의 일부입니다. 그림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전달이 다 됐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논리와 체계가 있다는 깨달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는데, 요즘은 숫제 "성경의 우상화, 문자 맹신주의" 그러면서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게 오히려 이단으로 몰리고 있는가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3 00:40:15 | 김용묵
김학준 형제님의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이란 글을 읽고 댓글을 달려다가 내용일 길어질것 같아서 위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전체를 다 말하 수는 없으나 몇가지를 언급하겠습니다. 전에 몸담고 있던 교회는 장로교회 였습니다. 유년부, 소년부, 중등부 부서에서 약 10년정도 봉사했습니다. 주로 기독교문화를 만들고 눈에 띄느 아이들은 리더로 키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힘들었던 것은 목사님의 목회마인드와 교회 장로님들의 인식이 청년소들의 열정과 인식과는 상당한 갭이 있어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있었다는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대표적인것이 문학의 밤, 혹은 찬양의 밤이었지요 연습이나, 리어설, 행사 조사도 본당 사용을 꺼려 하셨죠!  그렇다고 각 교육부서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 학생들을 초대하는 행사로 본당 사용은 꼭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본당 사용을 꺼려하는 이유로는 본당이 더러워지는 것과 강대상부터 교회 물품들이 훼손되는 것, 그리고 하나는 부분적으로 나마 성전의 개념을 갖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저는 이런한 측면에서 납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본당은 성전 개념이 아니라 예배당이다. 둘째는청소년들이 마음껏 주안에서 즐거워하며 찬양하며 교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마음 중심이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그런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것이 교사의 바람이지 않겠습니까? 청소년들에게 찬양의 비중은 가장 큰 것이었으며 그 다음이 다양한 기독교적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쥐어 짜면서 만들며 교사들이 씨름하던 기억들도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만 맘에 안들때는 마음의 문을 쉽게 닫아버리는 특성들을 보이기 때문이었죠!   최근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성가대, 찬양단, 열린예배라고 가스페 찬양형식의 예배도 다 익숙해 있고 보편화된 패턴들입니다 그러면, 정말 헤아릴수 없이 많은 교회들이 이런 예배와 찬양의 패턴과 기독교적 프로그램(문화)를 역사가 흘러가듯 만들어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나요? 있다면 형제,자매님들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깊이 생각해 보면 참 심각하죠? 저는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가징 뿌리깊은 큰 문제들로 얽히고 설킨 중대한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랑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통해서도 많은 인식과 가치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고 배우고 있는것 중 지금 현대교회들과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첫번째로는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가르치는 자와 전하는 자 입에서 살이 있는 말씀이 나와야 문제들을 해결해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 4장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 안으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둘째는 바른 찬양에 대한 이해와 찬양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살아있는 말씀이 부족(?)하거나 없는(?) 가운데 찬양만 활성화 되다보니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마음 중심의 찬양이 아닌 사람의 감성이 중심이 되는 신전의 신께 제사하는 찬양과 기독교 문화속 찬양이라는 자아만족형 찬양으로 많이 변질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기독교 문화는 이 세상의 인본주의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에 어쩔수 없이 엮여 가는 그런 생존을 위한 기독교의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당화 될 수는 없겠죠! 셋째는 위 문제들을 고치고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의 원인에 영향을 주는 또다른 이유들을 발견하게 되고 근본적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그 또다른 이유와 원인을 만들어 내는 상위의 이유와 원인들에 접근하게 되고 결국은 성경에 대한 옳바른 이해가 부족해서 인간들이 파생시킨 수 많은 것들과 사탄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개역성경 및 개정개역판 성경과 비교해 보면서 확실히 발견한 것은 대한민국에 거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모든 성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와 많은 그릇된 견해들을 만들게 하고 변질된 것들을 유발케 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는 거시적 근본적 치료와 회복은 옳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가급적이면 빠르게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보급되어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으로 보입니다. 막힌 담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네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통해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며 성경의 번역의 차이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을 가르치는 것도 분별력을 키우는 좋은 교육이라 생각이 됩니다. 장성한 자의 노력으로는 청소년들이 현재의 세계문화와 사회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어떠한 것들을 교육하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계속적으로 연구하는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딸아이에게는 놀이터가 중요합니다. 청소년들도 말씀가운데 그들의 영역을 갖고 싶어 할 것이라는것이죠! 뭐라고 할까요 그들만의 정체성이라고 할까요?  말에 요점이 사실 왔다갔다 했네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2 14:28:23 | 노영기
저도 어린 머슴아이 둘을 둔 입장이라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키워야 하는가 ? 고민을 간혹합니다.아래글은 청교도/개혁주의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 글입니다.  많이 참고할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올립니다.   제목 : 청소년들의 신앙교육   인간의 삶의 단계중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가? 청소년시기라고 할때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청소년 시기는 특히 지적, 성품, 습관, 인격형성, 생의 진로의 형성, 등 인간의 생애 속에서 삶의 기초를 다지는 대단히 중요하고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시기다 교회는 과연 청소년들을 어떻게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수 있도록 준비를 시킬가?물론 신앙의 부모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과 그렇지 않은 경우 서로 약간이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교회의 잘못된 특성상,,,   교회를 다니는 부모들은 자기들의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어리석은 환상을 쫓는 자들이 대부분이며,. 자녀의 신앙은 애초부터 관심도 없고 있다 해도 타락하고, 변질된 거짓 신앙이나 물려줄 것이 뻔하다   여름철이나, 겨울철에 기도원에 보내 이상한 방언 체험, 은사체험, 울고짜고 하면 자식들이 마치 성자나 된 듯이 입이 찟어져라 자랑스러워 하고, 대견해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따릅니다,   어느 기도원, 어느 목사에게 가서 말씀을 들으면 마치 자식들의 신앙과 인생이 만사형통하고, 변화되어 축복을 덩어리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빠져있다   그런식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님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교회가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신앙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다   1. 아이들에게 성경과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라  (성경과 기도를 하는 신앙이어야 한다)2. 아이들에게 신앙교리문답을 배우게 하라,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대요리 문답)3.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가르쳐라 (설교, 대화, 소그룹)4. 아이들의 인격과 삶에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쳐라(모든 사물과 세상을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보고 이해하게 하라 )5.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예배와 찬양을 절대 멀리하도록 하라 (찬양예배,는 절대 하지 못하게 하라)6. 기도원에 절대 보내지 말라(어떤 종류의 기도원이든 가지 못하게 하라 )7. 아이들에게 지적인 신앙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라  (1. 2. 3번은 바로 그런 뜻이다)8.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알려주라(올바로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라 )9. 거짓된 종교와 신앙에 대해 가르쳐라 (로마천주교, 이방종교등)10. 예배가 보다 성숙하고, 지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습관을 들려야 한다 (찬양예배,. 연극, 등 잘못된 예배에 물들지 않도록 주의하라)   한국교회는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을 성경적으로 하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신앙을 다루려고 한다 그래서 철마다 기도원, 부흥회, 경배와 찬양집회들으로 자녀들의 영혼을 망치고, 해롭게 하는 것이다,그런식으로 거짓 회개, 거짓 체험에 물덜어 평생을 망친다,   청소년시기에 자녀들에게 신앙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쓰며 자신의 신앙에 대해 정체성을 가지도록 해주어야 하는데여기저기 몰려다니면서, 헛된 신앙활동에 분주하게 하는 그런 사이비 신앙교육을 교회가 하는 것이다   청소년시기에는 가장 좋은 성경교리문답을 배우게 하고성경을 체계적으로 읽도록 지도하면서온전한 기도생활을 할수 있도록  세심하게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의 기초를 든든하게 형성해주어서 평생에 걸쳐 참된 신앙생활을 할수 있도록 준비시며 주어야  한다 그런데 보면 교회가 오히려 청소년시기의 아이들의 영혼을 더럽히고, 잘못된 신앙을 주입시켜서 일평생 거짓환상의 신앙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방언이나, 이상한 체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그런 형태의 교회 교육은 청소년들의 영혼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다,   청소년시기에 청교도 책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청소년 담당사역자들은 신앙의 지적인 준비를 충실하게 해주는 것이 첫번째 임무다 청소년들이 성경적인 사고와 지적인 체계를 가지도록 ,그런  방식을 형성하도록 하라 칼빈과 루터의 책을 읽게 하고위대한  스펄젼와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읽도록 지도하라   쓰레기같은 대부분의 청소년 사역자들이라는 자들의 허망하고 거짓 선동에 놀아나지 못하게 해야한다 오늘날 교회 청소년신앙 교육을 보면앞으로 교회의 상황이 암담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타락한 영혼들이며 심판의 대상들이다,하나님앞에 서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 중대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교회교역자들을 보면 답답하고 한심스러울 뿐이다 자녀들이 삶과 죽음, 영혼, 거룩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세상을 주관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에 대해 충분히 알도록 가르치고, 배우게 하라,   장차 영원한 주의 나라에서 주님을 영광스럽게 영원히 섬기는 삶을 청소년시기부터 가르쳐주여야 하는 것이다,   오인용 목사 BAND OF PURITANS [출처] 청소년들의 신앙교육 (The Band of Puritans) |작성자 퓨리탄[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2 08:59:06 | 김학준
홍승대님께서 보여주신 표 보고 다시 정리했어요 이전꺼는 완전 엉텅리네요 ㅎㅎ 정말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도움으로 궁금하던거 완전 해결되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12일 주의 만찬 부분은 해석을 대충 해봤는데 니산 13일밤이네요 12일부터 시작된 저녁식사에 이어서 진행된 걸로 이해하면 될듯해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1 15:44:22 | 변경진
잘 알다시피, “사람은 아메바·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가“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로 바뀔 때,덩달아 바뀌는 세계관, 인생관, 사회관 같은 관념은 정말로 엄청납니다.   저는 그것만큼이나 아래 명제도 정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뭐 환생, 소멸 포함)”가“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결코 돌아오지 않으며, 하늘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로 바뀌는 것.   이렇게 생각이 바뀜으로써 얼마나 많은 쓰잘데기없는 미신--조상신의 저주 따위--들이 없어지고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이 올라가는지 모릅니다!쉽게 말해 시작과 끝이 다 중요한 것이죠.마치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선포를 했으면 부활도 선포를 해야 하듯,거리 설교를 할 때도 인간의 바른 기원에 대해서 선포를 했다면 내세에 대해서도 당연히 제대로 진리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전자처럼 믿는 사람과 후자처럼 믿는 사람은 정신 건강이라든가 인생 행로가 장기적으로 뭐가 달라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렇잖아도 자살 얘기가 나왔는데, 바른 내세관을 지닌 사람이 과연 자살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저것만 생각하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죽은 사람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속이는 정말 나쁜놈인 더러운 영과 마귀 졸개들이 있을지언정, 인간 자체는 결코 겨우 더러운 귀신 내지 원귀 따위가 되어 구천을 떠돌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존귀하게 창조하셨으며 인간에게 자유 의지와 더불어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넣어 주셨는데.. 죽어서 겨우 귀신이 된다거나 동물로 환생한다는 게 정말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요? 저런 꾸며낸 이야기들도 진화론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볼 게 하나 있습니다.호러물 같은 거 보면 전부 창백한 차림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계 9:8을 연상시키는) 여자 귀신이며, 그 이유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고괴담> 같은 영화도 있었죠? 하나님께서 그런 추한 상상이나 하라고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겠는지를 생각하면 통탄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잘 알다시피 하나님, 예수님, 마귀, 천사 등 영적 존재들은 남성이며, 그쪽 바닥엔 여성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이 세상의 신인 마귀라는 녀석은 얼마나 변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율법 시절부터 부리는 영(귀신)과 성 문란을 어쩜 그렇게도 미워하고 왜 한 치의 예외 없이 사형으로 다스리게 하셨는지, 영적 음행과 육신의 음행은 왜 결국 본질적으로 하나인지도 백 번 수긍이 갑니다.   진리 안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한 그 말씀, 우리에게 대상이 잘못 설정된 막연한 두려움(딤후 1:7, 계 21:8)이 아니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신 그 말씀을 저는 사랑합니다.아울러 귀신 대신 마귀라고, 유령 대신 영이라고 바르게 번역된 성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1 11:10:27 | 김용묵
바로 붙여넣기 했더니만 표가 한쪽으로 몰려서 나오네요 파일첨부했는데 봐주세요 틀린곳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유대력니산월   주의만찬 십자가 무덤   향료기름예비   부활   마리아새벽무덤감     유월절(예비일) 무교절(큰안식일) 무교절2일째 평소안식일 주의첫날   13 14 넷째날 15 다섯째날 16 여섯째날 17 일곱째날 18 첫째날 19 시간 낮 밤  낮 밤 낮 밤 낮 밤 낮 밤 낮 밤 태양력 화 수 목 금 토 일 월 6  2 18 24 6  12   18   24   6  12 18 24  6  12   18   24  6 12 18  24  6 12 18 24     오후6시경         오후6시경       제가 여러님들의 도움으로 정리해봤는데요 맞나 봐주세요 유월절과 무교절은 신약시대에는 특별이 구분하여 사용하지는 않는것으로 보여지네요 성경을 보면 그래서 유월절이 두번인가하고 오해를 햇다는 ㅎㅎ 그냥 총 8일의 기간을 유월절로 부르기도 하고 무교절로 부르기도 한다는걸 알았어요 니산월 14일은 유월절이면서 예비일이 되는거죠 그리고 15일은 무교절이면서 첫날과 7일째는 안식하라고 하신 안식일이고 신약시대 사람들은 이날도 유월절로 부르면 지켰졌다라고 성경낱말사전 검색해보니까 나오네요 아 그리고 저 자매아니에요 자꾸 자매라 하시네요 ㅎㅎ 주안에 승리하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5: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1 10:49:53 | 변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