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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2612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레위 사람. 그는 모세의 사촌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아버지 이스할과 아므람이 형제이기 때문이다(출6:16-21). 그는 자기가 단순히 레위 사람인데 비해 자기의 사촌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권위와 제사장 직분을 누리므로 그들에 대해 시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그런 권위를 행사하기 위하여 백성 가운데서 분열을 일으켰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교만과 야망의 영이 들어 있었다. 그는 250명의 레위 사람들을 부추겨서 소동을 피웠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땅이 열리면서 그 안에 삼켜지는 동안 이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불에 의해 타버렸다(민26:10). 한편 살아남은 고라의 자손들은 다윗의 시대에 유명한 가족으로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되었고(대상9:19; 26:1) 몇 편의 시편이 그들을 위하여 즉 그들이 노래하도록 기록되었다(시42, 44, 49, 84, 85, 87, 88).    
2009-07-16 01:52:32 | 관리자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에 머물던 로마의 백부장. 그는 로마에서 유명한 가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방인 중에서 처음으로 회심한 사람이며 그가 복음을 받아들인 과정은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무신 것을 잘 보여 준다. 그는 행10:1에 처음 나오며 그때까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참되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타락한 세상 속에서 경건한 삶을 살았다. 비록 그가 그때까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행11:14) 이에 하나님은 그를 위해 지체 없이 구원의 일을 수행하셨다. 그는 기적적으로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베드로 역시 그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약 56킬로미터를 여행해서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 위에 성령님의 기적적인 일들이 부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베드로는 환상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고 유대인의 편견을 버리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수용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아들였다.    
2009-07-16 01:51:15 | 관리자
  고통과 아픔을 만드는 상황 혹은 문제. 사람이 육을 입고 사는 한 고난은 늘 있게 마련이며 성경은 고난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특히 욥기는 의로운 사람의 고난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글이다. 성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임하는 고난과(사53:4; 마24:29; 롬2:9)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이야기한다(롬5:3-5; 살후1:4-7). 전자는 악행하는 자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여 하나님의 왕국에서 더 잘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적극 수용하고 짊어져야 할 것이다(벧전4:15-16).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일을 통해 부활 때에 더 큰 영광에 참여하기 때문이다(롬8:17; 고후1:5; 빌3:10-11). 성도들은 사도 바울처럼 현재의 가벼운 고난이 후에 있을 무거운 영광과 비교될 수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롬8:18).    
2009-07-16 01:50:49 | 관리자
  계수나무의 얇은 껍질. 이것은 주님을 위한 거룩한 기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성분 중 하나로 쓰였다(출30:24; 시45:8; 겔27:19).    
2009-07-16 01:49:35 | 관리자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밧모 섬으로 유배되어 가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담은 책. 에게해 지도 참조(41). 이 책은 영어로 Apocalypse라고도 하는 예언서이며 그래서 구약성경의 예언 특히 후대의 대언자들인 에스겔, 스가랴, 그리고 다니엘의 예언과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런 책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상징들로 인해 해석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책 자체가 앞뒤 문맥을 통해 구절들을 해석해 주므로 어느 면에서 이해하기 쉬운 면도 있다. 계시록은 창조의 시작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즉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확장해서 잘 보여 주고 있다(창3:15). 계시록의 상징들과 형상들은 아주 인상적이며 예언의 웅장함을 보여 준다. 계시록은 사도 요한 이전의 일(1장)과 당시의 일(2-3장)과 앞으로 있을 일(4-22장)을 요약하여 보여 준다(계1:19). 특별히 4장 이후에는 교회의 휴거가 있은 뒤에 이 땅에 임할 7년 환난기와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환난기에 유대인들이 엄청난 핍박을 당하는 모습이 12장에 잘 기록되어 있고 최종적으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완전히 멸망당하는 일이 19-20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글을 읽고 듣고 그 안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을 받는다(계1:3). 계시록에는 특히 곳곳에서 그리스도가 나오며 구속자, 치리자로서의 그분의 영광이 표출되고 창세로부터 죽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존경과 명예를 받는 아름다운 모습이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큰 소망을 가진 채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외칠 수 있다.    
2009-07-16 01:48:31 | 관리자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크게 창조를 통한 일반 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 계시가 있다. 일반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도달하는 계시로 사람 속의 양심과 하늘의 해, 달, 별 등을 다 포함하고 신학상 자연성을 띄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가감하지 않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사람 자체가 곧 일반 계시이기 때문이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시19:1), 하나님의 권능(시19:1), 하나님의 뛰어나심(롬1:20), 하나님의 본성(시19:1), 하나님의 선하심(마5:45), 하나님의 지성(행17:29), 하나님의 존재(행17:28) 등을 보여 준다. 다만 일반 계시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 곧 사람의 죄성과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 매장, 부활의 복음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을 보여 주고 일반 계시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을 정당화시켜 주며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준다. 한편 특별 계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객관적인 형태로 사람들에게 친밀히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의미에서 특별한 계시이다. 다른 종류의 특별 계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없이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성경은 특별하고도 특별한 계시이다. 성경 이외의 다른 계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요1:14), 여러 사건(출애굽 사건, 발람의 사건, 민22, 미6:4-5), 우림과 둠밈(출28:30), 하나님의 현현, 꿈과 환상들(창20:3, 사1:1), 제비 뽑는 것(잠16:33), 대언자들(슥1:1), 천사들(눅2:10-11)이 있다. 성경의 보존 선도 참조(91). 계시의 특징으로는 객관성과 명제성을 들 수 있다. 먼저 객관성이란 창조의 일반 계시든지 기록된 말씀의 특별 계시든지 항상 계시가 사람 속에 있지 않고 객관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둘째로 명제성이란 단어와 말을 사용한 진리 진술문이 문서로 기록되었으므로 사람들이 이것을 읽고 또 정확하게 연구하고 다음 세대로 넘겨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는 개인적으로 인식되어 이해될 수 있으며 사람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세상의 철학자들은 객관적으로 기록된 계시를 통하지 않고 생각이나 느낌 혹은 경험에 의해 하나님 혹은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경, 영감, 보존 참조.    
2009-07-16 01:48:03 | 관리자
  한 사람의 조상들 명단을 기록한 책. 이런 계보는 혈통에 따른 자손이나 법적으로 상속인이 된 자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히브리 사람들만큼 계보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지파들의 구별과 땅의 소유자, 대제사장 같은 직무의 권리 등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대상5:1, 17; 9:1; 대하12:15; 스2:62). 그래서 그들의 공적 계보는 안전한 곳에 위치했다. 성경에는 3500년 이상의 계보 기록이 나오며(대상1:1-54; 3:1-24; 6:1-81) 이것은 예언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로 또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의 상속자로 오실 것을 분명히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눅1:32; 딤후2:8; 히7:14). 복음서에는 4000년 동안의 그리스도의 계보가 담겨 있다. 마1:1-25와 눅3:1-38은 조금 다른데 전자는 그리스도의 양아버지 요셉의 계보를 그리고 후자는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의 계보를 보여 준다. 이 두 계통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나단에게서 시작되었고 살라디엘과 그리스도에게서 연합한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법적 아버지이고 마리아와 같은 조상 즉 다윗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법적으로 그리고 육체에 따라 다윗의 자손이다. 지금은 유대인들의 계보가 모두 없어져서 그들이 어느 지파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 멜기세덱이 혈통(혹은 가계)도 없었다는 것은 유대 민족이 그에게서 나지 않음을 가리키는 것이다(히7:3). 그의 제사장 직분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직분과 완전히 달랐다. 세대 참조.    
2009-07-16 01:47:31 | 관리자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을 기념하고 젊은이들을 훈련해서 전쟁에서 잘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경기를 만들었다. 이런 경기들은 지정된 곳에서 정한 시간에 큰 나팔소리와 함께 열렸으며 왕과 유명 인사들이 참가하였다.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월계관을 수여하였다. 여기에 참가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으며 선수들은 모든 것을 절제하여야 했다. 이 중에서도 고린도에서의 경주는 아주 유명하였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신서에서 그런 것을 말한다(고전9:24-27). 달리기 외에도 여러 경기가 있었지만 달리기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달리기는 그리스도인의 싸움과 희생과 계속해서 몸을 복종시키는 것과 모든 무거운 짐을 치우는 것 그리고 경주를 관람하는 수많은 관중을 잘 보여 준다. 이런 관중들 가운데는 이전의 승리자들이 있으며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의 상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빌3:13; 딤후4:7-8; 히12:1).      
2009-07-16 01:47:00 | 관리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또 보이게, 개인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가족끼리, 공동으로 경배하는 일은 너무나 명백한 의무이고 성경은 이것을 명령으로 주고 있다. 기도 참조.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이 연합해서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것은 성전에서 경배 드리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고 우리 주님도 친히 이 땅에서 그 일을 행하셨다. 따라서 신약시대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시간을 정해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라는 이름도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뜻한다. 또한 복음 선포와 기독교를 알리는 일은 모두 모이는 것을 필요로 하며 그래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지 말고 모이기에 힘쓰고(히10:24-25) 모든 교회에서 자신의 서신들을 읽고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노래하라는 사도 바울의 명령과 또 함께 교회에 모여서 서로를 영적으로 세워 주라는 그의 권면은 기독교의 기본 법칙이요 원리이다.   성경에서 Worship이라는 말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께 쓰였으나 가끔 신하들이 왕에게 존경을 표시할 때에도 쓰였다(단2:46; 눅14:10). 동방에서는 경배할 때 몸을 앞으로 굽히고 이마를 땅에 대곤 한다(창33:3; 마18:26). 골2:23의 ‘의지대로 경배 드리는 것’(will worship)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경배 드리는 것을 뜻하며 천주교의 미사나 고백성사 등이 이런 예이다.          
2009-07-10 02:27:47 | 관리자
  가로 세로 25센티미터 정도의 수놓아 만든 물품(출28:15-30). 대제사장은 이것을 자기의 가슴에 걸쳤는데 이것은 에봇을 만들 때 사용한 물품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만들었으며 앞에 조그만 주머니 같은 것이 있어서 우림과 둠밈을 거기에 넣었다고 랍비들은 주장한다. 한편 흉패의 앞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열두 개의 보석이 네 줄로 달려 있었고 네 귀퉁이에는 고리가 달려 있어 에봇의 고리들과 연결되었다. 또 청색 끈들을 사용해서 에봇과 흉패의 고리들을 묶어 흉패를 에봇의 정면에 부착시켰다.      
2009-07-10 02:26:11 | 관리자
  예수님의 재림은 초림과 마찬가지로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비밀리에 지구의 대기권 내로 들어오시는데 이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려져서 그분을 만나며 이것을 보통 휴거라 한다. 재림 참조.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살전4:16-17).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러 오셨을 때 그의 누이 마르다에게 휴거의 두 가지 특성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선도 참조(64). 사도 바울은 불멸의 부활 장에서 휴거의 급박함에 대해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전15:51).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휴거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일어난다. 그분은 마치 집에 도둑이 드는 것처럼 갑자기 오신다. 도둑은 자신이 오는 시각을 미리 알리지 않으며 특별한 목적을 갖고 들이닥친다. 도둑은 집안에 있는 것을 다 털어 가지 않으며 금은과 같은 보석과 귀중품만 훔쳐간다. 그는 결코 그 집에 머무르려고 오지 않으며 귀중한 물건만 챙기면 즉시 떠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공중 강림 하실 때에 즉 휴거 시에 자신의 보배인 성도들만 데려가신다. 믿음이 많은 자든 적은 자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받은 자는 다 휴거된다. 휴거가 일어난 뒤에 온 땅에는 7년 동안 무서운 환난이 있으며 특히 후반부 3년 반은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게 된다. 환난기 참조. 이때는 마귀가 자신의 모든 악을 퍼붓는 때며 창세 이래로 가장 두려운 때이다. 우리 주님은 믿는 신자들이 이런 환난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10). 우리 주님은 여기서 ‘keep from’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환난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을 환난에서 떼어내어 아예 거기 들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keep과 전치사 from이 쓰일 때는 언제나 이런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모두 7년 환난기 전에 휴거를 받으며 이를 보통 ‘환난 전 휴거’라 부른다. 이렇게 부활한 성도들과 휴거 받은 성도들은 어린양의 신부로 하늘에서 혼인 만찬에 들어간다. 우리 주님은 결혼을 위해 신부를 데리러 환난 전에 공중 강림하시고 혼인 만찬이 끝나면 신부와 함께 땅으로 내려오신다. 이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 ”(눅12:36). 우리 주님은 하늘의 결혼식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오신다. 또한 7년 환난기는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향한 심판의 기간이며 이방인들이 주축인 교회와 상관이 없다. 칠십 이레, 환난기 참조. 그러므로 계시록 4장부터 19장까지 교회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교회의 성도들은 휴거되어 이 땅에 없기 때문이다. 이 환난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원받지만(계7:9) 그들은 교회가 아니라 환난 성도들이다. 교회의 성도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분리시킬 휴거는 이 시대에서 가장 놀랄 만한 사건이 될 것이며 그래서 믿는 신자들은 이 사건을 고대하고 사모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 신자들의 소망이 있다.    
2009-07-10 02:24:51 | 관리자
  요시야 왕 당시의 여대언자. 요시야 왕은 그녀에게 사람들을 보내 새로 발견한 율법서에 기록된 심판에 대하여 여쭙게 하였다(왕하22:14-20; 대하34:22-28).    
2009-07-10 02:24:09 | 관리자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유명 인사. 그는 르비딤에서 아론과 함께 모세의 손을 들어 올려 여호수아와 군사들이 아말렉을 물리치게 하였고 또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갈 때에 아론과 함께 백성을 다스렸다(출17:10; 24:14).    
2009-07-10 02:23:42 | 관리자
  고전4:15; 갈3:24-25에 나오는 이 말은 어린 아이를 맡아서 세상의 초등 원리를 가르치며 적당한 나이가 되면 학교에 보내는 일을 맡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의 유년기를 담당한 훈육 선생으로 그 안의 예표와 예언으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런데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지식을 갖게 되면 율법의 역할은 끝난다. 유대인들의 학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신6:7-9; 11:18-20). 아마도 그들의 초등 교육은 종교 교사나 혹은 나이가 든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스도 당시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글을 읽고 쓴 것으로 판단된다.    
2009-07-10 02:23:1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