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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깬 상태에서 혹은 잠자는 상태에서 어떤 일이 초자연적으로 계시되는 현상(사6:1-13; 겔1:1-28; 단8:1-27; 행26:13). 꿈 참조.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에 하나님은 더 이상 꿈이나 환상 등으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는다.    
2009-07-10 02:11:25 | 관리자
  다니엘의 70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 칠십 이레 선도 참조(7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유대인들의 회복을 보여 주기 위한 이정표로 다니엘에게 칠십 이레 즉 490년을 말씀하셨으며 이 중 앞부분의 483년은 이미 예수님의 초림으로 성취되었고 나머지 한 이레 즉 7년은 앞으로 적그리스도의 때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며 이 기간을 보통 7년 환난기라 부른다. 칠십 이레 참조. 이 기간 중 일어날 일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단9:27). 이 예언에 따라 유다 민족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앞으로 나타날 그 통치자 즉 적그리스도와 언약을 맺고 이 언약에 의거하여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의 신성한 장소에 자기들의 성전을 세우며 자기들이 예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희생 예물을 드릴 것이다. 이 조약은 처음에 7년으로 정해질 것이나 그 기간의 중간에 이스라엘과 협약을 맺었던 그 통치자는 느닷없이 이스라엘에게 희생물과 봉헌물 드리는 것을 그만두라고 강요함으로써 그 조약을 파기할 것이다. 그 통치자가 이런 희생 제사 의식을 그만두도록 강요한다는 것은 이미 그런 희생 제사 의식이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며 사실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른 희생 제사 의식의 회복이 그들이 적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의 핵심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 사실은 또한 이때에 유대인들이 유랑 생활에서 돌아와서 조약을 맺을 수 있는 정식 정부를 수립했음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기 전에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였다.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맺은 협약을 깨뜨리는 이유는 가증한 것을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다. ‘가증함’이라는 말은 우상숭배를 나타낼 때 사용되며 ‘널리 퍼뜨린다’는 말은 ‘끝까지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경건치 못한 통치자는 유대인들의 성전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를 가장 극도의 우상숭배로 대체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때쯤 그는 서방 국가들의 연합체를 확고히 지배할 수 있게 되어 사람들이 참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절대 복종하고 따를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는 복구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자기 자신의 거대한 신상 - 아마도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신상 - 을 세울 것이며 이 후에 모든 숭배가 이 신상에게 돌려지도록 요구할 것이다(살후2:3-4). 이를 거절한 자들은 - 특히 그가 더럽힌 성전에서 예배하던 유대인들은 - 사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가증스러우며 무서운 행동은 환난기에 들어간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서글프게 할 것이다. 이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에 의해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으며 그는 또한 앞으로 올 이 통치자의 정체가 누구인가도 보여 주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살후2:3-4).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엄중한 경고를 주시면서 다니엘의 예언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고히 보여 주셨다(마24:15-21; 참조 단12:1). 이런 구절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전혀 문맥에 맞지 않으며 이 말씀은 다니엘의 백성 즉 유대인들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이것은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불린다(렘30:7). 이런 대환난기는 다니엘의 마지막 한 이레 즉 7년의 후반부 3년 반 동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예수님께서도 “그 날들이 짧아지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짧아지리라.”(마24:22)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때의 이 짧은 기간에 세상의 통치권을 획득할 큰 짐승에 대하여 다니엘에게 이미 말을 전한 그 천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를 대적하려고 엄청난 말들을 하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지치게 하고 또 때와 법을 바꾸려고 생각할 것이며 그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까지 그의 손에 주어지리라”(단7:25). 이 3년 반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기간은 단12:7에도 언급되어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은 6장부터 19장에 걸쳐서 다니엘서의 마지막 한 이레 즉 마지막 7년에 이루어질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계시록에 1260일이라고 기록된 기간은 성경의 예언의 햇수로 정확히 3년 반이며 두 증인이 사역하는 기간이다(계11:3). 그래서 환난기는 전반부 3년 반과 후반부의 대환난기 3년 반을 합쳐서 정확히 7년이 되며 이 기간 전체를 보통 ‘7년 환난기’라 부른다. 이러한 엄청난 공포의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 즉 예수님의 피 값으로 대속된 자들은 영적으로 어린 자든 장성한 자든 모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 만찬에 참여한다(살전4:13-17). 휴거 참조. 물론 환난기에 엄청난 수의 성도가 구원을 받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교회가 아니다(계7:9-17). 아마도 그들은 두 증인과 144,000명의 유대인 증인들의 전도와 그리고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읽음으로써 구원받게 될 것이다(계14:6-7). 이 시대의 마지막 7년 동안 발생할 구체적인 사건들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계시록은 신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기간에 대한 모든 예언들을 취합하여 그 의미를 완전히 전하고 있다. 환난기의 전반부 3년 반은 계시록 6-9장에 묘사되어 있고 후반부 3년 반은 16-19장에 묘사되어 있다. 계시록의 중심 장인 10장부터 15장은 마지막 7년 기간의 중간에서 지나간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처음 창조 때부터 앞으로 다가오는 영원한 미래를 조감하며 보여 주는 삽입부이다. 비록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반인 후반부 3년 반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큰 환난’(마24:21)과 예레미야 대언자가 언급한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가 될 것이지만 그 이레의 전반부 3년 반 동안에도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이 땅 위에 있게 될 것이다. 계시록의 두 증인은 땅 위에 전쟁, 기근, 역병, 지진, 해일, 불, 운석 폭발, 짙은 암흑, 심지어 지옥의 구덩이에서 무서운 마귀 형상의 떼들을 불러내는 큰 재앙을 내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2009-07-10 02:09:49 | 관리자
  큰 근심과 재난. 성도들도 이 세상을 살면서 환난을 당하지만 이런 환난은 말세에 이 땅에 임할 큰 환난과는 다른 것이다.    
2009-07-10 02:08:56 | 관리자
  성경에서 이 말은 사람 혹은 민족의 생각이나 행위 등을 검사하여 거기에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을 뜻한다. 긍정적으로 쓰일 때 이 말은 돌보심을 뜻한다(욥10:12).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징벌을 뜻한다(사10:3; 렘8:12; 호9:7; 미7:4). “모든 사람이 받는 징벌로 징벌을 받는다.”(민16:29)는 것은 자연히 죽는 것을 말한다. 눅19:44에서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    
2009-07-10 02:07:47 | 관리자
  집사를 가리키는 그리스말은 본래 종을 뜻하며 여러 곳에서 사역자, 종 등으로 번역되었다(마20:26; 고후6:4; 엡3:7). 행6:1-15에는 비록 집사라고 명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대개 집사로 생각하는 일곱 사람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들은 구제물을 거두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과부와 고아와 박해받는 자를 방문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일을 하였다. 이 일곱 사람 중에서 특별히 스데반과 빌립은 전도자가 되었다. 집사들의 자격에 대해서는 딤전3:8-12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목사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집사는 반드시 남자여야 한다(딤전3:12).    
2009-07-10 02:06:43 | 관리자
  집은 보통 거주하는 곳을 가리키며 그래서 성전과 성막도 하나님의 집이라 불린다. 임시로 거하는 장막과 오래 거주하는 집의 차이는 이미 창4:17, 20에서부터 드러난다. 집을 짓는 건축 기술은 노아의 방주와 바벨탑을 짓기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창6:14-16; 11:3-5). 아브라함과 그의 초기 후손들은 장막에 거하였으나(히11:9) 이집트 탈출 때에 히브리 사람들은 집을 가지고 있었고(출12:7) 팔레스타인의 가나안 족속들 역시 집을 소유하였다(신6:10-11). 동방에서 집을 짓는 방식은 고대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은 진흙 등을 말려서 만든 1층짜리 집에 살았는데 거기에는 방이 하나만 있었고 어떤 때는 짐승도 같이 자야 했다(삼상28:24). 창문은 작고 높은 데 있었으며 밖에 사다리를 두고 지붕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지붕은 평평했으며 가지 등으로 잠을 자거나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곤 하였다. 집에 관한 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였다. 이런 집에 살면 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암5:19) 도둑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욥24:16; 겔12:5-7; 마6:19-20). 이런 집들은 비가 올 때에 그대로 버려두면 없어져 버렸는데(욥15:28) 이것은 사람의 수명이나(욥4:19) 거짓 가르침 혹은 근거 없는 소망(겔13:10-16) 등을 나타낸다(마7:24-27 참조). 또한 집을 짓는 재료가 흙이었으므로 에스겔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벽에 구멍을 낼 수 있었으며(겔12:5) 이런 실례는 보는 사람들에게 아주 생생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겔13:10-16도 이런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동방에서는 잘 사는 사람의 경우 대개 집의 한 가운데에 뜰을 두고 네모나게 벽을 둘러서 집을 지었고 집의 창문들을 모두 이 뜰을 향해 만들었다. 큰 집에는 여러 뜰이 있어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돌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나무 등을 심은 경우도 있었고(시84:2; 128:3) 또 뜰에는 샘이 있기도 했다(삼하17:18). 대부분의 집에는 여름철에 뜰에 천막을 쳤고 집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뜰에 거하면서 사람들을 접대했다. 각 집의 앞 중앙에는 뜰로 연결된 통로가 있었고 이 통로의 바깥문에는 큰 집의 경우 문지기가 있었다(행12:13). 또한 큰 집에서는 뜰에서 나무로 불을 지피기도 하였고(눅22:55)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휴대용 숯불 난로 등을 예비하기도 하였으며(렘36:22) 굴뚝이 없어서 연기는 벽의 구멍으로 나갔다(호13:3). 또한 큰 집에는 여름과 겨울을 위한 특별한 방이 있었다(렘36:22; 암3:15). 예루살렘에는 대부분의 집이 석회암을 깎아서 만든, 네 개 이상의 물 저장고를 가지고 있었으며 좋은 집을 지을 때는 깊이 파서 바위가 나오는 곳에 기초를 두었고(왕상5:17; 눅6:48) 새로 지은 집은 집주인이 봉헌하였다(신20:5). 부자의 방들에는 벨벳이나 연분홍의 커튼이 걸려 있었으며(에1:6) 위에는 번개무늬 장식이 있고 천정은 징두리 널판으로 대거나 모자이크로 되어 있으며 진하게 색을 칠한 경우도 있었다(렘22:14). 바닥은 대개 나무마루나 대리석 혹은 카펫을 깔았다. 방의 주변에는 의자 대신 낮은 소파가 있었고 침상은 방의 한 구석에 조금 높은 발코니 같은 곳에 있었으며(왕하1:4, 16) 계단들은 뜰의 구석에 있었다(마24:17). 침상 참조. 집의 꼭대기는 평평하게 되어 있고 두 개의 벽이 있었는데 바깥벽은 집의 외곽에 붙여 거리에 지었으며 높이가 높지 않으므로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다른 벽은 난간 벽으로 뜰의 바로 위에 가슴 높이로 지었다(신22:8). 어떤 경우에는 이런 난간 벽 대신 격자 구조물을 두었으며 왕하1:2의 아하시야는 이런 것에 기대었다가 뜰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테라스에서는 옷이나 아마를 말리기도 하고(수2:6) 무화과와 건포도를 준비하기도 하며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대화하기도 하고(삼상9:25; 삼하11:2) 경건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왕하23:12; 렘19:13; 행10:9). 이스라엘 백성은 또한 지붕에서 우상을 숭배하고(왕하23:12; 렘19:13; 32:29; 습1:5) 재난에 대해 애곡하며(사15:3; 렘48:38) 공적인 것을 선포하기도 하고(마10:27) 위험한 때에 관찰을 하기도 하였다(삼하18:24; 사22:1). 또한 장막절에는 여기에다 초막을 지었으며(느8:16) 도시가 평지에 지어진 경우 지붕 꼭대기로 걸어서 전체 도시를 다닐 수도 있었다. 한편 여러 층의 높은 집의 경우 주랑 위에 조그만 방을 지을 수도 있었고 여기에 손님이 거하게 하거나 집안사람들이 쉴 수 있게 하였다(마6:6).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위해 만든 방(왕하4:10), 에글론의 여름 거실(삿3:20), 다윗이 울기 위해 들어간 방(삼하18:33), 다비다를 둔 다락방(행9:37) 등이 이런 방이었을 것이다. 평평한 지붕은 안식과 묵상을 위한 좋은 장소였으며 사무엘은 여기서 사울과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기도 한 것 같다(삼상9:25-26). 지붕에서는 쉽게 밖을 볼 수 있으므로 위험한 때에 사람들은 여기로 달려갔다(사15:3; 22:1). 또한 지붕은 대개 흙으로 덮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구멍이 나서 물이 떨어지곤 하였고(잠27:15) 그대로 두면 비가 온 후에 풀이 자라기도 하였다(시129:6-7; 사37:27). 장막 참조. 성경에서 집은 종종 가족을 뜻하기도 하며(창12:17; 출1:21), 재산(왕상13:8), 땅의 몸과 영의 몸(전12:3; 고후5:1), 무덤(욥30:23; 사14:18), 성막(출23:19), 교회(딤전3:15), 하늘(요14:2)을 뜻하기도 한다. 끝으로 하나님의 집(삿20:18; 26; 21:2)은 얼마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가 머문 벧엘을 가리킨다. 벧엘 참조.    
2009-07-10 02:06:10 | 관리자
  이 말은 사람과 함께 쓰일 때 모든 종류의 짐승을 의미했으며(시36:6) 또 어떤 때에는 기는 것을 제외한 네발달린 짐승을 뜻했고(레11:2-7) 야생 동물과 대조되어 가축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들은 다 아담 앞을 지나가며 이름을 받았다. 성경에는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 지역에 있던 짐승들의 이름만 나온다. 짐승들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함께 고난을 받았으나(창3:14; 출9:6; 13:15; 겔38:20; 호4:3)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이것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규정한 법규들이 있었다(출20:10; 23:11-12; 레22:28; 25:7). 짐승들은 특별히 희생 제도와 관련해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되었다(창7:2; 레11:1-47). 한편 짐승이라는 말은 여러 왕과 민족을 상징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고(겔29:3; 단7:1-28) 또 잔인한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시22:12, 16; 고전15:32; 벧후2:12). 짐승으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보통 ‘살아 있는 창조물’을 뜻했으며 에스겔의 환상 속에는 사람이나 혹은 사람의 상징으로 적용되기도 하였다(겔1:1-28). 짐승은 다른 창조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신음하며 그리스도의 왕국이 임하는 때에 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구속받을 것이다(사11:6-9; 롬8:19-22). 영 참조.    
2009-07-10 02:05:19 | 관리자
  몸이나 혼에 놓인 무거운 짐. 이것은 종종 상징적인 표현으로 고통, 실패, 죄(시38:4; 55:22; 갈6:2), 율법 하에서 섬기는 일(마23:4), 공적인 책임(출18:22; 신1:12) 등을 뜻했다. 한편 많은 대언자들이 자기들의 메시지를 ‘짐’으로 표현했으며 킹제임스 성경은 이를 ‘엄중한 부담’으로 번역했다(사19:1 등). 이 같은 메시지는 부담이 되는 메시지였으나 모든 것이 경고나 위협을 말하지는 않았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대언 등으로 번역되었다(잠31:1).    
2009-07-10 02:04:51 | 관리자
  이 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 가리킨다. 하나님과 관련되어 이 말은 좋은 의미로 쓰인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신부인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자기에게만 관심을 둘 것을 원하며 그렇지 않고 그들이 다른 신을 따르면 질투하신다(신32:16; 왕상14:22; 시78:58; 겔8:3). 한편 사람의 경우 이 말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를 가지고 있다. 좋은 용례로 쓰일 때 이 말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뜻한다(민25:11; 고후11:2). 나쁜 의미는 행7:9; 롬13:13; 고전3:3; 고후12:20 등에 있다. 질투의 법은 민5:11-31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아내의 부정한 행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2009-07-10 02:04:25 | 관리자
  질병은 죄에 의해 이 세상에 도입되었고 특히 부패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사치하는 관습에 의해 크게 증가해 왔다.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도 질병이 생기고 악한 영들이 질병을 일으키기도 했다(욥2:7; 막9:17; 눅13:16; 고후12:7).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질병이 생기는 것을 인정했다(시39:9-11; 90:3-12). 아비멜렉, 게하시, 여호람, 웃시야, 미리암의 경우처럼 특정한 죄로 인해 특별한 질병이 생기기도 했고 주의 만찬을 합당하게 대하지 않음으로 질병이 생기기도 했다(고전11:29-3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종류의 질병을 고치심으로 자신의 선하심과 권능을 드러내어 보여 주셨다. 이런 사례와 아사 왕의 사례(대하16:12)에서처럼 하나님의 복이 없으면 의원들의 기술이나 노력이 소용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유행하던 병에는 악성 열병, 마비 병, 이질 설사, 눈병 등이 있다. 육체의 질병은 사람의 혼에도 병을 가져다준다. 선물, 병 고침 참조.    
2009-07-10 02:03:57 | 관리자
  깨진 질그릇의 조각(욥2:8; 사30:14). 이것은 사람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보여 준다(시22:15; 잠26:23; 사45:9). 가난한 사람들은 그릇이 완전히 조각나지 않으면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사30:14).    
2009-07-10 02:03:30 | 관리자
  발로 밟아 토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 흙(사41:25). 고대 사람들은 보통 진흙을 바퀴 위에서 주물러서 원하는 형상을 만들고 가마에 구워 토기를 만들었다(렘18:3; 43:9). 성경에서 토기장이 비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정하심과 계획 하에 있음을 보여 준다(사64:8; 롬9:21). 토기장이 참조. 한편 고대에는 진흙을 사용해서 새는 것을 막기도 했다(욥38:14).    
2009-07-10 02:03:06 | 관리자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특별 창조를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는데 이것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지금부터 100-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우주 폭발이 일어나 우주 만물이 생성되었다; (2) 지금부터 50억 년 전에 지구가 형성되었다; (3) 지금부터 5000만 년 전에 사람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이 생겼다; (4) 지금부터 100만 년 전에 사람이 생겼다; (5) 모든 생명은 무생명에서 나왔다; (6)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등 생명에서 고등 생명으로 종이 변화한다. 그러나 빅뱅 이론은 물질 보존의 법칙으로 알려진 열역학 제1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빅뱅 때에 콩 알만 한 크기의 물체 안에 온 우주가 들어 있었다는 주장이 성립되려면 그 물질의 출처가 있어야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그 출처를 밝히지 못한다. 사람은 유에서 유는 만들 수 있어도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다.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 물질과 에너지가 처음에 창조되지 않으면 물질 보존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진화론자들은 시간이 0일 때 물질과 에너지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또한 무생명에서 생명으로, 저등 생명에서 고등 생명으로 질서가 증가하는 일은 계의 질서가 항상 점점 더 무질서한 방향으로만 진행됨을 보여 주는 열역학 제2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것은 마치 뜨거운 물을 대기 중에 놓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온도가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불가능하다. 또 사람이 지금부터 100만 년 전에 나왔고 평균 매해 0.5% 인구가 증가했다고 가정하면 지금 이 시간 온 우주 공간을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결론적으로 생명체의 우연한 발생을 주장하는 진화론은 열역학 제1, 2법칙에 의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연주의자들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믿는 인본주의 종교 체계이다(롬1:18-32). 창조 참조.    
2009-07-10 02:02:38 | 관리자
  고대 사람들은 진주를 가장 귀한 보석 중 하나로 평가하였다(계17:4). 하늘의 왕국은 좋은 진주로 비교되었으며 그래서 진주 상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13:45-46). 하늘의 문들은 진주로 되어 있다(계21:21). 우리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마7:6) 이는 복음의 귀한 진리를 거부하며 조롱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줄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2009-07-10 02:01:28 | 관리자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레위 체계의 율법에는 일이 ‘진영 밖에서’ 혹은 ‘진영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표현이 있다. 이집트를 떠난 무리는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장정만 60만 명이었으며(출12:37; 민1:46) 그들은 사방에서 궤를 둘러싸기 위해 네 개의 부대로 나뉘어 각각 한 깃발 아래 모였다(민2:2).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질서정연하게 모이고 움직이는 것은 정말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압의 높은 지역에서 이 광경을 본 발람 대언자는 “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얼마나 좋은가! 오 이스라엘이여, 네 장막들이 얼마나 좋은가!”(민24:5)라고 탄성을 질렀다(민23:1-30; 24:1-25). 이스라엘 군대가 한 군데서 진을 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인 것에 대해서는 민9:1-23; 10:1-36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그들이 진을 친 마흔 한 곳의 이름은 민33:1-56에 있다. 그들은 주전 1491년경에 라암셋에서 처음으로 진을 치고 그 뒤 40년이 지나 요르단 강의 둑에 마지막으로 진을 쳤다. 이집트 탈출 참조.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침입자의 공격을 막기 위해 낙타와 짐을 주변에 놓고 중심에 장막을 쳤으며 군대나 대상들도 이런 식으로 진을 쳤다(삼상26:5).    
2009-07-10 02:01:00 | 관리자
  진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윤리의 중요한 특성이다. 하나님은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분이시다(출34:6; 신32:4). 그분의 모든 길은 긍휼과 진리이다(시25:10). 종종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가 같이 나온다(시57:3; 89:14; 115:1). 하나님의 일과 교훈과 심판은 의와 진리 안에서 이루어진다(시96:13; 111:8). 하나님이 진실하시므로 그분의 말과 행동은 모두 진리 안에서 이루어진다(삼상15:29; 히6:18; 약1:17-18).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풍성한 분이시므로(요1:14) 그분의 말은 모두 진리이다(요8:40). 그래서 그분은 스스로를 가리켜 진리라 했다(요14:6). 성령님 역시 진리의 영으로(요14:17; 15:26; 16:13)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진리를 증언하신다(요15:26).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2009-07-10 01:59:4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