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성경에 담배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있느냐고 물어 와서 간단히 답변하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담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6장 12절은 술, 담배, 마약, 식욕 등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뒷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I will not be brought under the power of any.
여기서 권능이라는 말은 파워 즉 힘을 뜻합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식욕, 심지어 성욕 등에는 사람을 미친 듯이 몰아가는 파워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런 파워 밑으로 끌려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적법하지만 그런 것들의 파워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담배나 술을 하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도 담배나 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우리가 그런 것들의 파워 밑으로 굴복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 끊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 글은 결코 술 담배 하는 분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고 권면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식욕 등에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식욕의 파워도 이겨야 합니다.
너무 몸이 비대해서 남 보기에 민망할 정도가 되고 건강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고 거기에 굴복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노력합시다.
샬롬.
2011-12-10 11:23:21 | 관리자
성경의 단어나 구절은 항상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살전 5:1-8의 문맥이 평범한 진노가 아니라 주의 날의(혹은 환난기의) 진노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의 진노는 환난기의 진노입니다.
또한 9절의 구원 역시 그 진노에서 구원받는 것을 뜻합니다.
save라는 단어는 from과 연결되어 어디에서 구원받는지를 보여 줍니다.
신약 성경에서 save는 대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from이 없으므로 문맥상 그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샬롬.
2011-12-10 11:10:0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KJV 흠정역을 읽는 학생입니다.
그동안 친척분으로부터 이 싸이트를 소개받고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KeepBible과 싸이트에 들어오시는 분들을 계속해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천년설을 믿습니다. 그래서 무천년설을 믿는 선배와 가끔 충돌합니다다.
최근에도 함께 성경을 보며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해답을 찾지 못해서, 부끄럽지만 잘 몰라서
이곳에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살전5:9)에 wrath 와 salvation이 나오는데,
(1) 이 wrath는 대환란을 의미하는가요? 아니면 지옥형벌을 의미하는가요?
(2) 이 salvation은 어떤 구원을 말하는가요? 영의 구원인가요? 몸의 구원인가요?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0절에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도 두가지로 해석되더군요.
A. 육신적인 상태(죽은 성도 or 살아있는 성도), B. 성도의 영적인 상태(성숙한 성도, 성숙하지 않은 성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 혼란스러워서 질문드립니다.
혹시 이전에 이미 다루어진 내용이면 어디를 찾아가야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2-10 11:32: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10 08:02:32 | 임현빈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설명하신 글과 형제님 말씀하신대로 전체 장을 천천히 읽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1-12-07 15:59:02 | 이한휘
저도 무척혼란스러웠는데 김문수님 설명으로 이해가됩니다.
정말감사합니다.
2011-12-07 07:05:22 | 그레이스김
출애굽기 34장 7절을 읽을 때에는 수고스럽지만 1절부터 읽으면서 그 말씀이 어떤 배경 하에서 나왔는지 먼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18장 역시 앞부분부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34:7과 제가 쓴 글의 내용이 충돌하는 듯하다고 하셨는데,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은 "출34:7과 겔18:4,20"이지, "출34:7과 제 글"이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않고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은 성경 말씀을 인용한 것이지 제가 독창적으로 지어낸 글이 아닙니다. 저는 두 말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기 34:7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자신의 거룩한 성품을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 자녀들에게 벌하셨습니다. 아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으로 그의 아들딸들과 가축들까지 죽었으며(수7:24-25),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범죄로 땅이 입을 벌려 그 아내와 아이들까지 산 채로 삼켰습니다(민16:27-33). 또한 아버지들의 불법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 당장 직접적으로 그 자손에게 임하지는 않더라도 아버지의 잘못된 본, 그릇된 결정으로 인한 영향력이 그 후손들에게까지 미친 사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34:7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배경이나 맥락을 무시한 채 무분별하게 우리에게 적용하여 조상이 큰 공덕을 쌓으면 후손이 복을 받고, 조상이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후손이 저주를 받는다라고 해석하여 복과 저주의 원인을 조상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 제가 쓴 글의 요지입니다. 제가 쓴 글은 출34:7 말씀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성도들에게 분별없이 적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가계저주론"이나 "조상의 공덕으로 그 자손이 복 받는다"라는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 교회 안에 가져와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구약시대의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와 정죄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출34:7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에스겔 대언자가 대언한 내용을 인용하며 설명한 것입니다.
에스겔 18:4 앞에 나오는 3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ye shall not have occasion any more to use this proverb in Israel". 하나님께서 앞으로 2절에 나오는 속담은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 말씀과 같이 각 사람은 조상 탓을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지 조상의 공덕이 아니며, 복을 받는 길은 각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린 것이지 조상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상이 불법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그 자손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그는 조상 탓에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담의 죄로 인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망이 임했으나, 아담의 후손 중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생명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므로 마땅히 그 삼 사대 자손들은 저주를 받아야 하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그 저주와 형벌로부터 벗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2011-12-07 06:52:46 | 김문수
김문수님 설명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변 주신 말씀 중 마지막 구절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겠지만 조금만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출34:7절에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에게 벌한다" 라고 하셨는데 '바르게 읽는 성경' p54 중에 "아버지가 불법을 행했다고 해서 그 죄값을 아들이 담당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과 충돌하는 듯해서 이해가 잘 안됩니다.
별로 중요치 않은 내용으로 성가시게 해드리나 싶어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2: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6 21:24:59 | 이한휘
에스겔 18장의 내용은 각 사람은 각기 자기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개인적인 죄(individual sin)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34장의 내용은 아버지의 죄로 인한 결과가 그 당사자에게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 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알콜중독이거나 심각한 질병을 앓을 경우, 그 영향력은 자손들에게도 미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에서 구속받았습니다(벧전1:18-19).
2011-12-06 02:01:44 | 김문수
안녕하세요..본 사이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궁금한 내용이 있어 도움 부탁드립니다.
바르게 읽는 성경을 읽는 중에 조상의 은덕 관련해서 이해가 잘 안되어서요.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겔 18:4절) 라는 말씀과
"내가 아버지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출34:7절)라는 말씀이
서로 충돌하는 듯 한데 왜 그런지 이해가 안되어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2: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5 17:04:25 | 이한휘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2011-12-05 15:50:33 | 소범준
각 사람의 선한 양심에 따라 걸어야지요.
그리고 믿은 이후에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공의의 잣대로 그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낱낱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선한 양심에 따라 악기 문제를 비롯한 모든 일을 결정해서 실행하면 됩니다.
2011-12-03 14:35:45 | 관리자
논리를 펴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지만
너무 얽매이다 보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겠지요.
개인적으로는... 기타는 공예배와 친교 모임, 혼자 부를 때 등을 구분하고,
가능하면 클래식 기타(나일론 줄)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주법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커트를 많이 해서 비트를 주는 방법보다는
아르페지오와 적당한 스트로크로 연주하는 것이 좋겠지요.
궁극적으로는 (이분법을 쓸 수는 없으나) 교회나 성도가 성가와 고전 찬송을 많이 하느냐
크리스천 컨템포러리 음악(CCM 대중음악)을 지향하느냐가 악기와 연주 형태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음악이 무색무취한 중립적 도구라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기의 중립성을 아주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왈츠곡이 퇴폐적인 춤곡이었지만 현대에는 동요와 얌전한 음악에 많이 쓰이는 것처럼
학습된 문화의 흐름을 무시해서도 곤란하다고 봅니다.
창세기 4장 21절에 나오는 가인의 후예 유발이라는 사람을 대중음악의 시조로 보기도 하는데,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하프와 오르간은 찬송에 쓸 수 없다는 식으로 흐르게 되지요.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개역성경은 현대역본을 따라 오르간을 퉁소로 바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음악과 대중문화 이야기는 끝도 없지만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하면 좋을 듯합니다.
어떤 것이 좀 이상하고 안 되는 것인지는 성령님을 모신 우리 성도들이 더욱 잘 알지 않을까요?
2011-12-03 11:29:37 | 김재욱
귀한 마음으로 정성껏 도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빼놓지 않고 공부하겠습니다.
2011-12-03 01:14:23 | 이성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5:9)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신을 순결하게 하느니라.(요일3:3)
2011-12-02 10:28:23 | 소범준
저도 음악에 대해 잘 모릅니다만,
개인적으로 어쿠스틱 기타로 반주하며 찬송가를 부르는게 안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예배시간에 기타로 연주를 하다보면 얼마 후엔 뒤에 앉은 사람들이 잘 안들린다는 이유로
기타에 엠프를 연결하게 되고 나중에는 베이스기타도 옆에 서고 결국 드럼도 놓게 되는게 아닐까요.
게시글들을 검색해보니 좋은 글들이 몇 개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부흥과 개혁사에서 나온 옥성호 형제님의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라는 책도 추천해 드립니다.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열린 예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54#c_
찬양에 대한 고민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19
음악에 부쳐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18
문화선교와 문화명령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885#c_
마술로 선교하는 교회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984#c_
오, 세상 없인 살 수 없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839#c_
2011-12-02 09:59:27 | 유준호
저는 음악에 대해 잘모릅니다. 찬양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다만 영어를 배울때 기억은 이렇습니다. 악기 앞에는 the (정관사)를 붙인다고 합니다. I play the guitar 이렇게 말입니다. 정관사를 붙이는 이유는 God을 찬양(제사를 지낼때 등)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엔 a 라는 부정관사를 붙이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단 한가지 Drum에는 정관사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play가 아닌 Beat a drum이라고 하지요. 즉 북을 연주하다가 아닌 북을 치다가 되지요. 그 이유는 "북"은 전쟁에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게 주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드럼을 치고 무당 춤 추듯이 뛰어다니는 시끄러운 음악이 과연 찬양인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본인들 스트레스 해소하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제가 어설프게 배운 지식이라 꼭 맞다고 할수는 없지만....
I play the guitar라고 하는것은 "통기타"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악기가 아닐런지요.
2011-12-02 09:30:52 | 김형욱
안녕하세요, 찬송가를 부를때 어쿠스틱 기타(일명 통기타)로 반주하며 부르면 안 되는 것인지요?
많이 답답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2 08:06:55 | 이성길
김문수 형제님의 글을 보고 댓글을 달다가 글이 길어져서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매번 나누어 주던 전국 초등학생들의 공통 방학숙제였던 탐구생활이란 책이 있었습니다.저는 매년마다 방학식을 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계획을 잘 세워서 보람찬 방학을 보내고 방학숙제도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냥 늘어지는 생활을 계속하다가 슬슬 개학날짜가 가까이 오면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밀린 숙제들을 뒤적거리면서 대충해가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학교에 가기에는 선생님의 숙제검사 시간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로마시대에 살던 성도들이야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당장 콜로세움에서 사자밥이 될 처지를 걱정해야 했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러한 핍박 대신에 주변 세상의 달콤하고 즐거운 유혹들이 널려 있습니다.구원을 받은 순간 우리는 혼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만, 초심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성품이 되고자 매일 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평생의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섞여서 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생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과 주변의 유혹과 조롱을 견디는 게 이 시대 성도들에게 주어진 환난의 길이겠지요.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통제가 없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숙제입니다. 저도 노력을 하려 하지만 아직 매번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저도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의 환난과 마지막 날의 대환난을 구별하지 못해 생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구원의 확신만 있었고 성화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던 몇 년 전 일들 입니다. 제 자신의 모습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말세의 징조만 찾고자 했었습니다. 환난의 때가 오고 내가 휴거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알아야 준비를 할게 아닙니까?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데 순교당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굶어서 죽으면 억울하잖아요.^^ 언젠가 바코드던 베리칩이던 하여간 그런 비슷한걸 받으라 하면 그것만 받지 않으면 되겠구나,그래도 최대 3년 반은 버텨야 하니까 통조림이나 쌀을 미리 사 놓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것들도 조금씩 살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돈을 금으로 좀 바꿔 놓아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 있는 절반의 유대인들은 도대체 언제 본토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성전은 언제부터 세우게 될까,적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지 오바마일까 푸틴일까 아니면 2012년에 30세가 되는 윌리엄왕자일까...등등제 자신의 모습은 잊은 채로 본질적으로 나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걱정들에 빠져서 지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원래 겁이 많고 엄살이 심하니 혹시 나중에 순교되더라도 고문의 고통없이 빨리 죽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그러던 저는 그 후에 목사님의 휴거와 재림과 계시록 관련 설교를 듣고 정신을 차리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런 고민들에 휩싸여사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교회 밖에는 이런 환난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형제님의 글을 읽고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지난날의 저처럼
당장 이 세상에서 날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불편한 다짐과 태도는 마음 한쪽 구석으로 접어 두고, 비록 지금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없이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나중에 본격적으로 온 세상이 다같이 어려운 마지막 진노의 때가 오면 어떻게든 그 동안 밀린 숙제처럼 나의 선한 행위들을 벼락치기로 갚아서 떼우려는 안일하고 육신적인 각오와 바램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교묘하게 고안된 속임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에 한 말들을 기억하라.그들이 너희에게 마지막 때에는 자기들의 경건치 아니한 정욕대로 걷는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일러 주었는데이들은 자기를 분리시키는 자들이며 육체적 감각대로 살고 성령이 없는 자들이니라.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너희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1:16-21)
이제 저는 예수님의 진노를 기다리지 아니하며 긍휼을 기다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1 19:06:19 | 유준호
이따금 침체되거나 무덤덤한 상테에 빠져있을때 이러한 글들과 생기있는 믿음의 지체들을 만나면
덩달아 생기가 생기네요.. 게시판도 지속적으로 감격과 감동의 글들로 서로를 위로하며
주님의 날이 올때까지 더욱 그러했으면 합니다..
2011-11-30 08:45:21 | 오혜미
정말 반가운 이야기네요. 표현하지 않지만 많은 분들에게 이런 간증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전에 반가운 지체들이 많이 계시지요. 좋은 교제와 만남의 결실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2011-11-29 22:15:39 | 김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