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2011-11-12 23:41:23 | 소범준
나창주 님, 반갑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선물을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시는지요..(롬4:3a)
...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롬6:23)
맞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된 구원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어 성경 해당 구절만 살펴보면, 영어 문장 내의 대명사는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대명사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명사들 중 가장 문맥에 맞는 명사를 대입하면 실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장 평범한 원칙을 따르시면 됩니다. 우선 이 엡2장의 문맥은 그 전 구절인 3~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2:3~5)
이렇게 보시면 가장 쉽게 답을 얻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아는 데까지 알려드렸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1-11-12 23:00:04 | 소범준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For by grace are ya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이 구절의 그것은 구원을 가리키는 것인지 믿음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해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11: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2 22:17:11 | 나창주
반가운 책, 저자, 출판사에 투표 완료했습니다.
2011-11-10 00:36:05 | 류인선
어이쿠 사모님ㅎ
저는 알면 알수록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혹시라도 교회의 누룩이 되지는 않으려고 조심조심 한주한주 보내고 있습니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제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나 찔리고 부끄럽습니다만,
끝까지 남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1-09 20:32:37 | 유준호
지정의가 겸비된 유형제님의 활약을 기대합니다!이렇게 또 적극적인 글도 올려주셨는데 다시한번 회원님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우리 흠정역은 현재 올해의 출판사 3위에 있고 김** 형제는 올해의 저자와 책에 3위 , 5위에 있습니다.조금만 더 더해주시면 1위의 영광을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순위가 아득하다면 이렇게 미련을 두지 않을텐데요...너무 티나지 않게 투표 부탁드려요 ....^^
2011-11-08 20:31:08 | 정혜미
아래 게시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8388
2011-11-08 05:10:20 | 김문수
안녕하세요?
너무 막연해서 뭘 도와달라고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구절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부분이 없고요, 다른 번역본들은 가톨릭 학자들이 본문에 수정을 가해서 생긴 일이거나 각 역본이 다르게 해석, 또는 이해 부재로 생긴 일인데 당연히 킹제임스 흠정역이 제대로 된 것이고요, 그 과정 등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들을 통해 공부하시면 되겠습니다.
2011-11-07 18:31:04 | 김재욱
안녕하십니까?
다른버전에서는 :" 자기를 아는 지식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엡 1:17)
라고 되어있고
흠정역에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라고 되어있습니다.
두 버젼의 번역차이가 현저함을 느낍니다.
이해해보려고 여러가지로 노력했으나 저의 어학실력의 부재로 난관에 처해있습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9: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7 18:17:49 | 김형렬
네, 좋은 지적입니다. 오늘날 철도가 고속화하고 전철화 구간이 늘면서 전통적인 심야 열차는 점점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새벽 일찍이나 자정 무렵에라도 열차 운행은 가능한 한 당일에 끝내는 걸 선호하죠. 그래야 역무원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고, 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시간대엔 전차선을 단전할 수도 있어서 경영면에서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열차 안에서는 잠을 그리 편하게 자기는 못하겠더군요. 새마을호 같은 열차가 조명을 상당 부분 소등한 상태로 다닌다면 모를까, 숙면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2011-11-06 18:55:18 | 김용묵
어릴 때에는 새마을, 무궁화, 통일, 비둘기 중에서 비둘기가 제일 빠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부전역에서 해운대까지 갈 때에는 비둘기나 통일호 탄 적이 있는데 지금은 다들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요.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강의 다니던 시절에는 심야열차가 딱 좋았는데, 요즘은 심야 열차도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비용 대비 수송능력이라는 효율 면에서는 자동차보다 기차가 훨씬 우월하지요.
2011-11-06 02:25:00 | 김문수
--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한국 철도의 역사와 체계를 어디에 비유할까? 혹은 그것을 무엇과 비교할까? (막 4:30 패러디)
1. 영동선 인클라인의 구배
철도는 쇠로 된 궤도 위를 쇠바퀴가 구른다는 특성상 마찰이 작다. 그래서 수송 효율이 우수하여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더 길고 무거운 대형 차량이 연료를 적게 들이고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그러나 이런 특성 때문에 철도는 자동차보다 가감속이 더디고, 경사를 오르는 데도 훨씬 더 취약하다.
자동차의 성능을 나타내는 스펙 중엔 등판능력이라는 게 있다. 교통수단의 최대 등판능력은 x축으로 1만큼 진행하는 동안 y축인 위로 얼마만치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다. 기울기, 즉 탄젠트값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성능 제원을 보면 등판능력이 0.3~0.4대가 보통인데, 이것을 각도로 환산하면 18도에서 22도 사이가 된다.
그 정도 구배는 1단 기어가 아니면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평지에서 너무 가파른 언덕을 갑자기 오르면, 엔진의 힘이 받치기 전에 일단 차 바닥부터가 긁힐 것이다.
군용차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일부 사륜구동 차량만이 30도가 넘는 경사를 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차량은 정말 기름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는 그렇고, 그럼 철도 차량은 어떨까?1940년에 개통한 강원도 영동선의 통리-심포리역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간이 있었다. 아래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사진임.
이 정도 경사의 탄젠트가 약 0.27 정도였다고 한다. 각도로 환산하면 15도 정도.이건 자동차로나 간신히 오르지, 철도 차량의 등판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울기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관차+객차형 열차가 무리 없이 버티는 오르막의 기울기는 고작 0.035. 1km당 35m를 오르는 구배를 각도로 환산하면 겨우 2도밖에 되지 않는다!그래서 사실 철도 업계에서는 구배를 나타낼 때 탄젠트값에다 1000을 곱한 퍼밀, 즉 천분율 단위를 즐겨 쓴다. 다루는 값의 범위가 자동차 도로보다 훨씬 더 작기 때문이다.
철도를 요 모양으로 만든 덕분에, 당시 영동선은 결국 이 언덕 앞뒤로 쪼개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로 통과할 수 없는 철도 구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과 자원으로는 길을 이렇게밖에 낼 수 없었나 보다.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열차를 모두 쪼개고, 기관차와 각 객차를 하나씩 케이블로 연결하여 별도의 크레인 시설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 동안 승객은 내려서 1km 남짓한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통과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느리고 불편하고...
이 방식을 인클라인이라고 부르는데, 인클라인은 1963년에 진작에 없어졌으며, 1km 거리를 7~8km의 완만한 경사로 빙빙 돌며 우회하는 경로로 바뀌었다. 상식적으로 35퍼밀로 270 퍼밀치 높이를 오르려면 7.7배의 우회가 필요하다는 걸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영동선 인클라인의 평균 구배인 270퍼밀은 사해의 소금 농도와 비슷한 값이고,35퍼밀은 전세계 바닷물의 평균 소금 농도와 거의 같은 값이라는 것.세계 지리 상식과 철도 기록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 내는 데 성공했다.
2.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종류의 비둘기
과거에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여행비둘기(Passenger Pigeon)라는 새가 살고 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개체수가 수십억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한때 새 가운데 개체수가 가장 많은 녀석으로, 아니 당대의 인구 수보다도 더 많은 날짐승으로 여겨졌다.
어느 탐험가의 1838년도 일기에 따르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채 머리 위를 통과하는 여행비둘기 떼가 다 지나가는 데 꼬박 사흘 밤낮이 걸렸으며, 그 동안 주변은 햇볕이 가려져서 낮에도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무는 하얀 새똥으로 온통 뒤덮였고, 잎사귀와 열매는 남아나질 못하고 흔적도 안 남고 사라지곤 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을 향해 아무 데나 엽총을 쏴도, 우수수 떨어지는 여행비둘기들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새조차도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씨가 말라 버렸다. 고기와 깃털의 품질이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이 새는 절대 멸종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굳이 식용이 아니라도 포수 한 명이 취미로 여행비둘기를 몇백 마리씩 잡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19세기 말부터 미국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행비둘기를 보호하려 애썼으으나, 개체수가 줄어든 이 새는 설상가상으로 작은 집단에서는 번식도 잘 되지 않았다. 야생에서 이게 발견되고 잡혔다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전해진 건 1906년.
그 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겨우 보존 중이던 마지막으로 여행비둘기도 번식에 실패한 채 수컷이 먼저 죽었다. 그리고 1914년 9월 1일 오후 1시 무렵, 최후의 여행비둘기이던 암컷 마사(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영부인의 이름에서 땀)가 죽음으로써... 여행비둘기는 완전히 멸종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짐승의 종류(kind) 중 하나가 이렇게 지구상에서 없어진 것이다.이제 이 새는 박제된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
어째, 대약진 운동 시절 마오쩌둥의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해프닝이 떠오르는데,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므로 더 언급은 하지 않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링크를 따라가 보시라.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9684
한글이 이례적으로 창제자와 창제 목적· 시기가 알려져 있는 유일한 문자인 것만큼이나, 여행비둘기는 인류 역사상 멸종의 정확한 시기와 장소가 딱 알려져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한때 대한민국의 최하위 열차 운행 등급이던 비둘기호는 강원도 정선선에 마지막 유일한 노선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하였고, 이로써 비둘기호라는 열차 자체가 없어졌다.
똑같이 비둘기라는 단어가 있다니, 게다가 그냥 비둘기도 아니고 여행비둘기!! 영어로는 아예 '승객'이라는 뜻이니까 교통수단과도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비둘기호가 사라진 날은 공교롭게도 2001년도 수능 시험 바로 전날(수능일은 2000년 11월 15일, 14일에 마지막 운행)이었다. 본인은 그때는 아직 철도 덕후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수능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생 철덕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나라 최후의 협궤 열차이던 수인선 디젤 동차도 운행 등급은 응당 비둘기호였다. 1995년 12월 31일에 퇴역했다. 철도 덕후는 열차의 퇴역에 대해 특정 동물의 멸종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오늘날 비둘기호 객차는 의왕의 철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비둘기가 사라진 지 4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음 최하위 등급이던 통일호도 2004년의 KTX의 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정화조도 없이 승객의 대소변이 선로로 바로 배출될(비산식) 정도의 구닥다리 열차를 21세기가 되기까지 굴리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면모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했다. 특히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가 마지막 운행을 한 2004년 3월 31일엔 전국 각지에서 철도 덕후들이 모여서 마지막 통일호 열차를 시승하였고, 열차의 퇴역을 아쉬워했다.
Conclusions
- 이 글은 철도의 날 특집으로 올리기엔, 내년 철도의 날까지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지금 올립니다.
- 성경도 이런 식으로 광산에서 금을 캐듯 fact를 발견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따지고 예표와 패턴을 발견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크리스천들 중에 철도를 사랑하는 분도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5 15:51:42 | 김용묵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에서 올해의 책과 올해의 저자, 올해의 출판사를 선정하는 투표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킹제임스 흠정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수고로운 일이 아니니 가능하신 분들은 참여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많이 읽힌 좋은 책들과 저자 분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저자 부문에는 반가운 이름도 보이네요^^
올해 여러분의 책장을 빛낸 한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http://www.lifebook.co.kr/final/book/2011book4.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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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18:26:35 | 유준호
형제님자신의 상태를 공적으로 시인하는 것 자체가 겸허한 자세에서 나온다 생각합니다.
이런 고백을 통해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교회의 신실한 참여를 통해 서로 자라가길 기대합니다.
2011-11-01 11:28:27 | 정혜미
구원받은 이후 가장 중요한것은 복음전파가 아니라 성화이다. 정말 중요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수십년간 다녀도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분들이 너무 많은 이시대에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1-10-31 08:43:40 | 송재근
유준호 형제님, 반갑습니다.^^
참으로 저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기 귀 간지러운 데를 긁어줄 선생들만을 찾으려다 저런 데에 안착한 겁니다.(딤후4:3)
저도 청지기 카페에서 이런 일을 좀 당해봤는데, 위에 송재근 형제님 말씀처럼 언제나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혼자서 저런 사람들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었지만, 이 말씀이 언제나 제 발길을 잡더군요.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거든 알지 못하게 둘지니라.(고전14:38)
차라리 저런 '증인'들도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인 것 같습니다. 서로 싸워 봤자 어느 뾰족한 결과도 안 나오고, 바로 잡으려다가도 어느 한쪽의 피해만 가중될 뿐이니깐요.
2011-10-30 21:43:56 | 소범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성화"라는 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화란 거룩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흠정역 성경에서는 이를 "성화"라고 번역하지 않았고, "거룩히 구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sanctification 혹은 sanctify 라는 단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화(sanctification)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set apart from the world), 하나님께로 구별된 자(set apart unto God)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가는 것(레11:44,45, 벧전1:16, 벧후1:3,4),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롬8:29). 이것은 한 순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지속적인 과정이기도 하고, 미래에 완성될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사이트의 성경 사전에서 성화 항목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화는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스스로 율법의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God works in)을, 곧 그분께서 주신 바른 지식, 선한 동기력과 열정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열매로 드러냄으로써(we work out) 이루어집니다(빌2:12-13). 성화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4:3). 구원은 선한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면 구원의 결과로 선한 행위가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엡2:10).
마샬 맥루한의 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어느 비평가의 말에 의하면, 맥루한의 글은 처음에 한 번 읽으면 당황스럽고, 두 번째 읽으면 약간 이해가 될 듯 하다가, 세 번째 읽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Understanding Media 이외에 기회가 되면, Gutenberg Galaxy, Mechanical Bride 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용어도 이 사람에게서 나왔고, "hot media와 cool media", "media는 message이며, massage"라는 기상천외한 개념도 그로부터 나왔습니다. 맥루한에 대해서는 이 게시판에 올린 글 중 "영상 문화 시대에 필요한 청각 교육"이라는 글에 부분적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11-10-29 11:54:55 | 김문수
이번 주 목사님의 설교(11.10.23, 생각하는 교회)를 듣고 혹시 성화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올까 찾아봤습니다. 직접적으로 그 단어가 나오지는 않더군요. 이 개념이 왜 나에게 중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원이 우선일까요, 성화가 우선일까요. 물론 구원이 우선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구원과 성화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구원과 성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세상의 모든 종교라 불리는 것들과 대부분의 이단들 속에는 이런 개념이 아예 뒤죽박죽 혼재해 있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A와 B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나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게 거기서 거긴데 왜 말장난을 하느냐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믿는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다음에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지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구원의 길은 하나이며, 오직 예수님 뿐이다.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그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은 여러가지다.
이 정도까지 얘기해주면 사람들도 그 차이를 확실히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등을 돌립니다. 이때 당신은 죄인이라는 얘기까지 해주면 더욱 분위기가 훈훈해지지요.
세상에 그런 말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초적 진리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며 진심으로 죄들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다 이루어놓으신 공로의 선물을 그저 공짜로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서론이 길어졌네요, 제가 생각해 본 것은 이다음부터인데요,,
믿고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히 구별된 다른 종류의 사람입니다.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비해주신 사람들이며,다른 하나는 사탄과 함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확실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요.
그렇다면 성화는 어떨까요. 이는 인격함양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통한 과정 중에 평소 생각과 마음가짐이 언행을 통하여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알고 지내다 보면 다른 주변 사람들의 눈으로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성화의 과정은 구원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고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새 사람과 육체 안의 옛사람의 본성과의 싸움이고, 평생을 걸어야 하는 머나먼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높이에서 보시기에 성화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이거야말로 정말 거기서 거기가 아닐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며, 한낱 인간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 보았자 그 역시 더러운 죄인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람의 의로움도 하나님의 눈높이에서는 모두 형편없는 누더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성화를 위한 험한 길을 걸어야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 일주일간 곰곰이 생각해보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 개개인 하나하나의 인격과 평판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의 인격과 평판이 되고, 결국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의 겉모습을 보고 미루어 판단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절대 옳다 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 몸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사람들의 눈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교회시대의 막바지인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이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달하는 게 아닌가요.
마셜 맥루언이라는 사람이 쓴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 첫 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는 이 책이 너무 어려워 첫 챕터도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만큼 읽고 이해하기 쉬운 책도 없습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의 성격이 메시지의 내용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미디어(매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미디어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먼저 작용한다는 말입니다.같은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에 나오는 것, 그리고 TV로 방송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며 결국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의 가사라 하더라도 록 음악을 예배에서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코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지요.)
기록된 구원의 진리는 분명한 사실이며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계시하시지 않으시며 천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지도 않으십니다.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신 게 아니라 단지 현재 교회시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이 시대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보존하셔서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달하도록 맡기신 것입니다.먼저 믿은 사람들이 나중에 믿을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게 선택받은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화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골키퍼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이 성화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 돌아오는 대부분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성화를 게을리하면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 또는 더 못한 모습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몫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제 말은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충실히 말씀만 전달하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그럼에도 성화가 중요한 건 말하는 이도 사람이요, 듣는 이도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람들의 귀를 닫아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끝으로 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란 사람의 특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교만함과 허영심, 음욕입니다.이것들은 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고 제 혼이 거듭난 이후에 새 본성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누르고 억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몸속에 그대로 남아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려 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하는 옛 본성입니다.
교만함은 내가 남보다 높아지려는 마음 - 사탄의 대표적인 본성입니다.허영심은 내 본질보다 더 나를 포장하고 부풀려서 꾸미는 마음 - 허세.음욕이야 뭐...가끔 제 눈을 뽑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제가 평생 싸워야 할 저 자신의 모습이자 저의 적들입니다.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제가 이 가증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갈5:22-23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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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9 11:00:33 | 유준호
고등학교 1학년 때 상고생들이 배우는 타자가 궁금해서 타자학원을 2달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세벌식으로 배운 것 같은데, 나중에 PC를 쓰려니 두벌식이라 한참 해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돈내고 배운게 도로묵이 되었지요. 연구에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011-10-28 17:20:50 | 류인선
재미있네요~ 이렇게 다양한 영역의 전문분야를 공부하시는 분들을 여기 한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요~
날개셋.
발표당시인지 그 이후인지 이름은 들어보았습니다만...
저는 1990년인지 부터 세벌식을 시작했던 차라 그렇게 관심은 못가졌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이야 누구나 두벌식으로 시작하지만, 분당 150타 넘어가면서 부터는 손이 꼬이고 너무 왼손에 무리가 가면서, 세벌식으로 바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그 당시만해도 세벌식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어느순간부터는 조용히, 그냥 쓰는 사람들만 찾아 쓰게되는 마이너의 길로 접어들었지요.
논의가 사라지니 일부러 찾아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벌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도 본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안타깝습니다.
생각해보니 전두환 정권이었던 당시 표준한글 코드와 표준 자판을 정한다면서 논란이 있었던 것 때문에 시끄러워 그랬군요... 결국 KS 5601 인가? 완성형 한글코드로 결론났지만, 조합형 한글에 대한 아쉬움은 두고두고 이어져오고 있지요... 벌써 2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군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게...
그때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조합형 한글코드와 세벌식 자판이 국가표준으로 선택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불합리한 시대가 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합리한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마지막 때가 점진적으로 다가오도록 되지않았을까도 생각됩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이곳에서도 세벌식 자판을 사용하는 분이 몇분이나 될까? 궁금은 합니다만... 거의 없을거라 미리 짐작해봅니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수고 부탁드려요~
2011-10-28 11:30:18 | 김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