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탁형제님, 그분의 글을 대단히, 잘, 정말, 썩, 정확히, 잘못 이해하셨습니다.
2011-03-21 11:46:40 | 이청원
참 좋은 질문을 하셨네요. 느부갓네살은 영어로는 "Nebuchadnezzar"인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구약에서만 총 57 단어가 사용되었네요. "Nebuchadnezzar"은 인칭 명사로서 바빌론 왕의 이름인데 그 뜻의 의미는 독자 스스로 히브리어 사전에서 찾아보면서 공부해야겠지요. 하지만 "Nebuchadnezzar"은 영어로 쓰인 인명이기에 번역이 아닌 음역을 하여 한글로 소리를 내어야 하는데 '느부갓네살'도 정확한 영어단어의 소리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와서 26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의 한국 이름이 "최 우탁"인데 한국여권에 영어로 표기 하면서 "Choi, Woo Tack"이라고 하여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저의 성인 "최"를 "초이"라고 소리냅니다. 저에게 20살된 딸이 한 명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 딸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어(Language)를 할줄 몰랐습니다. 이유는 한국어(tounge)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말을 아주 잘합니다. 하지만 저의 딸은 미국적 사고를 지니고 있지 한국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않습니다. 그만큼 언어의 표현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글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훌륭히 한글로 번역된 책입니다. 저의 뜻은 훌륭히 번역된 책이지, 한글로만 온전히 성경적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없는 책이란 뜻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히 하나님 말씀이 보존된 책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영어의 원 뜻, 즉 영어적 사고로 번역되어야지 한국적 사고에 맟출려고 번역하면 오류가 있을 수있습니다. 예를 들어 keepbible의 홈페이지에 자주 게시글을 올리는 어느 분께서 "See you later"란 문장을 "두고 보자"라고 해석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한국의 명문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셨고 대학에서 교수로 계신다는데, "See you later"를 "두고 보자"라고 해석하면 "See you later"란 문장이 나쁜 감정이 썩인 표현으로 "두고 보자"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뜻인데 잘못된 해석입니다. 즉 한국적 사고로 해석한 것입니다. 영미인들은 "See you later"를 "잘 가!, 나중에 또 봐!"란 의미로만 사용하지 나쁜 감정의 표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자"를 영어로 옮긴다면 "Just wait and see!"라고 표현합니다.
2011-03-21 01:54:03 | 최우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으로 인간은 모든 재앙 앞에 자기 힘으로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경계의 글이었습니다.
2011-03-19 19:10:56 | 소범준
창조과학 홈에서 퍼온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데 왜 지진과 쓰나미가 있는가?
김홍석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지진과 쓰나미로 고통 받는 분들에게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하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통 중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시고, 도와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는 왜 지진과 쓰나미가 있는가? 이러한 끊임없는 현상들이 오늘 나에게 무슨 의미를 주고 있는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마 10:29), 많은 참새보다 귀한 우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0:30-31)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대량의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이 과정을 통하여 나는 어떤 의미를 발견해 내야하는 걸까?
2000년대에 들어서서만 해도 나의 기억 속에는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쓰나미가 23만여 명의 희생자를 냈고, 2005년 파키스탄의 지진, 2008년 중국의 스촨성 지진에서도 각각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2011.3.11, 일본의 쓰나미 참사를 실시간(real time)방송으로 보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파괴적 현상들은 지진과 이로 인한 쓰나미만이 아니었으며, 아주 근래에만 있었던 일도 아니었으며, 지진만이 대재앙도 아니었다. 주후 79년경에도 폼페이의 화산폭발로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1340년대 몰아친 흑사병으로 인해 1억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유럽인구의 반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1918년에 시작된 스페인독감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003년에는 사스(SARS)가, 그리고 조금 전까지 조류독감과 신종플루가 우리를 위협했고, 지금도 구제역이 우리의 가축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크게 두 가지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의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세상에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망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망가진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노아홍수라는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면서 남긴 해령과 지판의 격변적 이동의 여력이 아직도 증거로 남아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키면서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해준다. 무지개와 함께, 지층과 화석들과 함께 그 날을 기억하게 해준다. 우리가 누리는 평안이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나게 해준다. 지구의 평안이 그저 있는 것이 아니며, 만유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통치 아래 있음을 생각나게 하며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며, 우리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게 한다. 우리의 분수를 각성하게 된다. 일순간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생각나게 한다.
더욱 근원적으로, 만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나게 한다. 우주 공간에 지구가 떠 있고 지구를 감싸고 있는 우주의 온도는 영하 270도씨 정도, 수 없이 많은 혜성들이나 거대한 운석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어디로부터 언제 지구를 향해 날아올지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지각 아래에는 바위가 녹아서 끓고 있다. 우리는 그 위에 떠있는 지각 판에 살고 있다. 지각판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에 인류는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한 예측하고 피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인류의 현실은 불안하기가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는 자기장이 장치되어 있어서 태양풍을 비롯한 우주의 유해한 영향들을 막아주고 차가운 우주의 온도와 뜨거운 지각 아래의 온도와 태양으로부터의 적당한 거리와 빛으로 오늘도 우리는 적절한 온도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을 낳았지만 그들의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누구이신가? 우리는 만유와 그 현상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제공되는 장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인류의 문제와 답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것에나 또는 스스로를 의지하며 추구하고 높아지려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사건(”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노아홍수의 심판(”하나님의 아들들과의 결혼”), 바벨탑사건(”하늘에 닿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모두 사람이 분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그릇된 욕망으로부터 초래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늘 기억하면서 사람과 만유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임을 끊임없이 명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되도록 세상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하여 욥기를 통해 들려주시는 위로와 지혜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욥은 왜 의인에게 혹독한 고통이 있게 되었는지를 하나님께 호소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께 항변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이상하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신다(욥 38:4). 때가 되면 아침이 오는 것도(욥 38:12), 흙덩이에 점성이 있어서 서로 붙는 것도(욥 38:38), 산 염소가 새끼 낳는 때를 아는 것도(욥 39:1)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욥은 더 이상하다. 대답 같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욥은 답을 얻고 크게 깨달았으며 앞으로 다시는 하나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욥이 무엇을 깨닫고 답을 얻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완전하신 분이심을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분의 피조세계 가운데 피조물로 살아가며 완전하신 하나님의 경륜(economy)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불만스럽게 느낄 뿐, 사실은 모든 것은 완전하고 공의롭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욥 40:8)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이러한 현상들은 마지막 날의 징조인가? 우리에게 이런 일들은 어떻게 의미 있는가? 마태복음 24장, 25장은 마지막 날에 이르는 재난의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다(마 24:3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다(마 24:36).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리라고 약속하셨다(계 22:7). 그리고 거듭 진실로(반드시, surely) 속히 오시리라고 약속하셨다(계 22:20). 그리고 또 사도바울을 통하여 아울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롬 2:40)과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롬 9:22)을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이며(마 24:37),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마 24:42),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한다(마 25:13).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바는 주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일이다.
성경의 연대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1,656년이 지난 후에 노아홍수 심판이 있었고 그로부터 약 200년 후에 바벨탑사건이 있었으며(바벨탑사건이 일어났을 때 벨렉이 50세였다면 노아홍수 후 겨우 152년이 지난 후였다), 그로부터 2,300여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약 33년 후에 십자가에 죽임당하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반드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제 2,000여년이 흘렀다.
마지막 때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우려할 바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창조주로 믿으며, 예수님을 유일하신 그리스도로 믿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는 우리에게 그날은 소망의 날이다. 세상이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게 되었으며(벧후 2:5),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로 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벧후 2:7).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보게 되면 선악과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지개를 보게 되면 노아홍수의 심판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판이 아직도 움직이면서 섭입(subduction)이 일어나고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노아의 때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가 지각판이 밀리고 충돌하면서 밀려올라와 다시 뭍이 드러나고 거대한 산맥들이 형성되고 물이 물러가면서 만들어낸 계곡들과 산줄기를 바라볼 때 노아의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퇴적지층과 그 속에 땅과 함께 멸하여진 화석생물들을 바라볼 때도 우리는 노아의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어 공부가 힘들다고 느낄 때면 바벨탑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는 ”상속받을 너희”에 속한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긴장하며, 깨어 기다리자. 내일 당장 종말이 오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깨어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마 24:33, 36 ; 계 22:7, 2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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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흠)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 3:18, 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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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9 11:08:46 | 허광무
답변 감사 드립니다.
참 놀라운 의미에 맞게 영어와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었네요.
핸슨 교수(James N. Hanson)가 느부갓네살은 ‘고귀한 보호자’를,
느부갓레살은 ‘고귀한 종’을 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느부갓레살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일 때 사용되었고
느부갓네갈은 단순히 그의 역사적 행보를 기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2011-03-18 06:28:18 | 황경수
게시물:"느부갓레살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일 때 사용되었고 느부갓네갈은 단순히 그의 역사적 행보를 기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차이가!! 있을줄이야.. 저도 오늘 처음 알아요!
2011-03-17 10:37:00 | 신진성
질문하기 전에 먼저 이 사이트 우측 상단의 검색창을 통해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게시물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71
2011-03-17 06:34:35 | 김문수
사소한 것입니다만,
흠정역 한글로 표시한 위 명칭이
예레미야와 에스겔서에서는 "느부갓레살"로 되어 있고,
다른 곳에서는 "느부갓네살"로 되어 있네요.
특별한 구별 이유가 없다라면, 다음 개정 작업이 있을때에는 한가지로 하시는 것이...
혹시라도 다른 의미가 있다라면, 알게 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00: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3-17 06:31:06 | 황경수
성경에는 고린도 장로교인은 없습니다.
성경에는 갈라디아 감리교인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에베소서 침례교인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빌립보서 형제교인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골로새서 가정교인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데살로니가 독립침례교인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오직 하나 그리스도인만 있습니다. (행11:26)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고전1:13)
2011-03-16 13:41:07 | 김태균
독일 베를린에 있는 대학 훔볼트신학은 어떤 계통인지 알 수 있을가요?
2011-03-12 21:53:50 | 안옥영
메신져가 죽어야 비로소 메세지가 사는법인데-
요즘은 메신져는 기름지고 유명해지는 대신 메세지가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속에 살고있는것같아 가슴이 매우 아픕니다.
이와중에 마음에 위로가 되는 좋은 찬양을 추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2011-03-12 18:15:43 | 최홍진
박주옥교수라면 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얼마전에 초청해서 찬양집회를 했던 분 같습니다.
어느대학교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테너가수에 음대 교수이면서 목사님이시라고 합니다.
2011-03-12 16:15:04 | 유해용
감사합니다. 곡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의미인지 알겠군요. 샬롬^^
2011-03-12 14:11:09 | 소범준
요즘 세상에서 하나님이 심한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하나님만을 생각하게 하는 찬양을 듣게 해 주었습니다.
너무 감동이 되어서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이 노래가 있는 블로그는 제가 본 적도 없고 그래서 그 안의 내용을 알지도 못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그 블로그를 소개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만 이 찬양을 소개하고자 하니 다른 것은 신경쓰지 말고 가사와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찬양하는 분이 누구인지, 어떤 CD인지 알면 좋겠습니다.
하나님만이(God and God Alone)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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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2 14:06:14 | 관리자
참... 사탄의 전략은 극도로 치밀합니다. 세상 어느 교회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찬양의 이름으로 가장한 마귀의 영혼 교란 작전은 세상 그 어느 테러전보다도 더더욱 치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믿음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재미있는 형제님의 글 감사합니다.
2011-03-11 19:47:06 | 소범준
우리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를 것은 거르고 좋은 부분만 봐야지요.
90% 이상 동의가 되면 좋은 책입니다.
2011-03-11 12:57:00 | 관리자
한 영혼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의 영혼을 팔아먹는 것이겠지요.
2011-03-11 12:34:51 | 소범준
추천해주신 덕분에 잘 읽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성경 구절 인용은 별로 없고, 에세이(수필)같은 글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신비주의적인 성령빙자 운동에 깊은 유감을 갖고 계시고,
성경에 대한 깊은 신뢰,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중요시 하시는데...
문제는 1장부터
유진 피터슨, 릭 워렌등의 말들을 저자의 동감인양 인용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네요...
더 읽어봐야 겠습니다 ^^
2011-03-11 00:42:02 | 곽연우
목사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세상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진리를 간략하게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2011-03-10 22:45:36 | 소범준
다행입니다. 쓰러지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남아있군요. 이 책이라도 보고 정신들 차리면 좋겠습니다.
2011-03-10 21:49:22 | 류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