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 안에서 함께 나누어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많은 분들이 생각하기를, 창세기 1장의 "하루"는 현재의 하루와 다를 것이다 하고 지레 짐작으로 확증하시더군요. 더욱이 창조의 기록을 살펴보면 태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제 4 일째이니 우리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는 태양 없는 하루란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지기에 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루"가 한 시대 - 수 억년이나 되는 아주 긴 시대라고도 하고 - 이것은 역시나 우리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보면 참 그럴 듯 합니다 - 또 다른 사람들은 우주가 한번 멸망했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창세기 1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지요... 바로 식물은 제 3 일째에 창조되었다는 점입니다. 태양 없이 식물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바로 여기에 "하루"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힌트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먼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학적 사고에 따르면(?) "하루"는 한 시대라고 하는 것이 참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시는 데 있어서 뭐 하나 만드시고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1, 2년 정도도 아니고 수 억년이나 기다려야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서 말씀만으로 창조하시는 분이신데 하나씩 구별해서 창조하시기에 하루면 충분하고도 남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제 식물과 태양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루를 한 시대라고 하기엔 불가능하지요. 과학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식물이 태양없이 수 억년을 생존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나님께서 식물들을 태양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생존하도록 하셨다고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온 우주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이 더 타당하겠지요.
하나님께서 맨처음에 온 우주의 시공간을 창조하시고 지구를 딱 하나 만드신 후에 곧바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 빛에 의해서 "하루"는 정해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하루와 같은 하루로 정해진 것이지요. 그것을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것이고요. 그리고 바로 이 빛 때문에 식물이 태양없이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것이고요. 만일 태양만을 유일한 식물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면, 식물이 태양이 없어서 광합성을 하지 않고 하루를 버틸 수는 있겠지만 너무 추워서 다 얼어 죽었겠지요. 처음부터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빛이 계시록 21, 22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봅니다.
처음에 어둠이 있었으나 빛을 만드셨고, 이것을 저녁과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미 어둠과 빛의 경과를 따라 하루가 지났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맨 첫날부터 이미 "하루"는 현재의 하루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입니다. 사실 그 "하루"를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태양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2.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이미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셔야 했습니다 (계 13:8).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이루시기 위해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리셔야 했고 (갈 4:4), 마침내 다 이루셨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다른 가정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가능성은 이미 0 % 였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셨다가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다니엘의 70 이레 중에서 마지막 1 이레만은 왜 따로 떨어져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다니엘서 9:24~27 말씀을 자세히 하나씩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70 이레를 정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즉, 70 이레가 지난 후에는 "범법이 그치고 ~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메시아가 끊어지는 것, 즉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69 이레 이후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70 이레가 69 이레 후에 연속해서 이루어졌다면 24절에 기록된 70 이레를 정하신 이유들이 다 이루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다 이루어졌나요?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마지막 1 이레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일이지요. 따라서 마지막 1 이레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로 미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2011-10-19 10:38:13 | 이재연
1. 모세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과 같이 하루가 24시간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알아듣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6일은 모세가 생각하는 6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시는 분과 듣는 사람이 사용하는 용어가 서로 다르다면 의사소통이 안되겠지요.
2. 위에 자세히 설명해 주셨네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순종도 미리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분의 구원계획에는 그것조차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그들이 불순종하도록 만든 것이 아닙니다.
3. 단9:26에 의하면 "that shall come shall destroy the city" 마지막 한 이레는 62 이레 직후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shall)을 말합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야 시작됩니다.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단9:27).
질문보다는 성경과 여기 있는 자료들을 통해 먼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11-10-19 03:09:34 | 김문수
허 광무형제님! 이 동영상 자료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혹시 알고 계십니까?
해상도와 용량이 큰 상태의 동영상 자료를 얻고 싶어서요!
2011-10-18 18:53:50 | 노영기
반갑습니다. 계속 같은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데 끈질기게 질문이 올라오는군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짧은 답변이 불가능합니다. 질문하는 분이 계속해서 추가 질문을 할 텐데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궁금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 자료들을 찾아 폭넓게 알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단편적인 지식들은 계속 모순에 부딪혀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끝이 나기 때문이지요.
1. 먼저 창세기의 한 날이 지금과 다르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그때의 하루도 지금의 하루와 똑같은 하루입니다. 혹시 이 글에 나오는 내용에 대한 질문인가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3&page=&cate_name=&sfl=&stx=&sst=&sod=&spt=&page=
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더 이상의 인간 역사는 없었다고 볼 수 있으나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는 유대인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것까지 미리 아심에 의해 예정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사 6:10)
예수님의 인용 :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사 언제라도 그들이 회심하여 자기 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막 4:12)
바울의 추가설명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지게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그들의 넘어짐을 통해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것은 그들이 질투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1:11)
이는 물론 이스라엘이 고질적인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지 자유의지를 조정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어차피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역사가 이어지고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순차적 구원 프로그램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롬 11:25)
3. 그렇게 구약의 대언자들이 모르던 교회시대가 시작되고 남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봉우리 그림이 아닌 것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왜 70이레가 중간에 끊겨야 했느냐는 이야기 같은데요... 70이레가 쉼없이 이어진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또한 교회시대는 2천년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마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한 세대'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달리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유대인의 완악함을 역이용해 이방인을 살리고 그 이후에 유대인이 돌아오게 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물론 그 모두가 인간의 의지를 조종하는 방법이 아님은 다시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설명이 충분치 않겠지만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이 정도 적어 보고요... 다른 분들이 또 알려주실 겁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모두 이 사이트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찾아서 어느 것을 듣고 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다 달려나오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계시록, 마태복음, 창세기 등 강해를 들어보시고 다양한 검색어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2011-10-18 14:34:16 | 김재욱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진정 이런 모습이 아닐진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실천할 때가 지금이겠죠! 아니 항상이겠죠!
2011-10-18 13:58:35 | 양희석
본 싸이트를 통해 많은 성경적 진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기가 질의응답코너가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달리 질문할 데가 없어서 글을 올립니다.
미련하다 엉뚱하다 생각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 토를 달거나 참고 할 만한 글이나 싸이트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려니 그저 믿으라고만 할 수가 없어서요...!
첫째는 창세기에 나오는 한 날이 현재의 하루와는 다른데, 저녘과 아침이 됨(한 날)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둘째는 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음에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아 돌아가시게
하여 왕국이 잠정적으로 연기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메시아 왕국을 받아들였다면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어떻게 되는거예요. 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셋째는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1이레가 69이레와 연속되지 않고 교회시대 후 마지막 7년 환난기에 도래한다는 간격을 봉우리나 계곡 이런것 말고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SOU500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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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1:35:05 | 김인수
국민일보에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이 광고되어 참 기쁜데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올리려니 마음 좀 그렇네요!
한편으로는 이런 소망없는 세상에 한줄기 빛이이라도 비출수 있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알리고 읽도록 권하는 것은 바른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들의 소망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글을 올립니다.
중국에서 10월 13일(지난주 목요일)에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기사 입니다.
시장 안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던 트럭이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도 귀찮은 듯 그냥 치고 천천히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뒤이어 사람들이 지나지만 치여서 쓰러진 아이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다른 트럭이 다가온다. 이 트럭도 쓰러진 아이를 바퀴로 깔고는 그냥 지난다. 사람들은 쓰러진 아이를 힐끔 볼 뿐 그냥 피해간다.이런 상황은 7분간 계속됐다. 그동안 아이를 지나친 사람만 18명이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 발견돼 병원에 긴급 후송될 때까지 7분 동안 차에 치이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15일 중국 HITVS가 당시 현장(광둥성 포산시)에 있던 폐쇄회로 TV(CCTV) 화면을 입수해 보도했다.13일 찍힌 이 CCTV 영상에는 시장 내 골목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부모를 찾는 듯 혼자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때 정면에서 시속 20㎞정도로 달려오던 흰색 승합차가 아이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치었다. 운전자는 잠시 멈칫하는 듯 했으나 이내 서서히 차를 전진시켰다. 그리곤 그대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충격적인 장면은 계속된다.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졌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고는 지나치는 것이다. 사고 이후 무려 18명의 보행자가 쓰러져있는 아이의 곁을 지나갔지만 그저 쳐다만 보고 아이를 피해갈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트럭은 오히려 아이를 다시 한번 밟고 지나갔다.한 여성이 다가와 아이를 쳐다보더니 길가로 옮겼다. 옮기는 도중 아이는 축 늘어진 채 미동 조차 없었다. 후속 조치는 없었다. 잠시 후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달려와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현재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병원측은 이미 뇌사판정을 내렸다. 아이의 아버지인 왕모씨는 눈물을 쏟으며 무책임한 시민들의 반응에 울분을 토했다. 이 아이는 겨우 두살배기였다.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왕양을 치고 달아났던 운전기사 2명은 공안에 자수를 했다.실제로 중국인들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다 자칫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놓일까 두려워한다.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비에관센스(別管閑事)`가 중국에선 일반적인 풍조로 통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1.10.17 09:27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분노와 슬플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위의 두살베기 여자아이와 같은 두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이 기사를 읽는데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이런 사건들은 참으로 슬프고 비통한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에서도 굶주림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본능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동영상들이 떠올라 참 슬펐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 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건들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패륜과 참담한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를 슬픔과 분노에 치를 떨게 하지만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게 이런 억울한 일들이 생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것으로 선을 그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님은 전 세게에서 일어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과 이런 악한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소망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을 독생자로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위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신뢰가 무너졌을때 오는 배신감과 모욕을 죽는 순간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까지 어린양의 속재물로써 감당해야 했으니 주님의 마음을 정말 헤아리기가 어려울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겠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 주셨는데 사람들의 모양은 여전히 소망없는 모습들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고 위로하는 믿음의 실천이 우리에게 있어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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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4:23:59 | 노영기
노아 홍수 이야기를 조화롭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추 합니다.
"창세기 대홍수로 세상은 이렇게 달라졌다!"지구의 역사와 대홍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지질학의 성지 그랜드캐니언을 탐사하는 영화배우 엄지원.지층과 화석을 통해 드러나는 엄청난 진실!진화론의 패러다임에서 단지 신화로 여겨졌던 노아 홍수의 기록은 단 한 줄도 빠짐없이 정확한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는데창조와 심판의 흔적 그랜드캐니언을 통해진리로 자유를 누리고 신앙을 한층 업그레이드하세요!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pid=3031&vno=22[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15 20:45:13 | 허광무
6쪽에 글자가 잘못된 데가 있어서 고쳤습니다.
새 PDF 파일을 올리니 다시 다운받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0-13 12:00:02 | 관리자
목사님이나 장로님, 또는 교회에 헌신하시는 많은분들이 하나님말씀에 어긋난다니요?
자기헌신(행위)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가르치는것이 잘못이지(마20장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사람의 행위와 무관한 은혜)-, 구원받은후의 믿음생활,즉 헌신하는 생활자체는 아름답고 존경스러운것입니다. 지금 하고 계신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선물로 받은 형제,자매님들 교회를 통해 그믿음이 드러날수있도록 죽기까지 신실합시다(계2:10절).
아울러 딤전2장15절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구절을 깊이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13~14절에 전후설명이 있습니다. 여자가 속아 범죄가운데 있었기때문이지만 해산은 창세기부터 여자들에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이셨음을 생각하시면 궁금증이 다소 풀리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정한 하나님말씀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영감을 주신분밖에는 알수없습니다. 우린인간이니까 당연궁금합니다. 이런 계기로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함께 공부할수있기에 전성실님의 용기가 너무 멋지십니다.
2011-10-13 09:25:27 | 최제식
예리하십니다.^^ 지적하셨듯이 이 숫자는 대충 어림잡은 숫자는 아닌 것으로 보이구요, 관점의 차이도 존재한다고 사료됩니다.
두 곳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은 지적하신 대로 노획한 범위에서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팀]으로 이해하는 해석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전쟁사를 예로 보더라도 병거(전투용 수레) 한 대에는 전투병 2명을 필두로 무기관리자, 취사병, 말 먹이고 관리하는 자, 수레 고치는 자, 보급품 담당자, 심지어 병사들 빨래 해주는 자까지를 포함하여 한 수레에 딸린 인원이 최소 10명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수레가 1만대면 정예기병 2만에, 노무자 8만, 합이 10만이죠.
이와는 별도로 보병은 평균적으로 기병의 5배쯤 되니까 기병과 보병을 합하면 60만 대군이 됩니다.
수나라가 만승국(1만대의 수레를 보유한 나라)이었고 고구려가 천승국이었으니까 군사력의 차이가 엄청났죠.
구약시대의 중동에서도 동양과 편제의 차이가 있었겟지만, 재래식 전쟁에서 기병(수레)을 보조하는 노무자 및 병사(창병, 궁병, 장검병 등)들이 많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동-서양이 별 차이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여기서도 문맥상 병거와 말의 연관성이 깊은데, 사무엘하 8장에서 말씀하는 기병이 단독으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이라기 보다는 병거를 모는 기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직접 전투하는 기병만을 세느냐, 부속인원을 포함하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병거 천대에 기병 칠백은 전투병만 계수했고, 기병 칠천은 전투병과 딸린 인원을 모두 포함했다고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거 1,000대에 기병 칠백이면 병사가 많이 모자란 수이지만 전사자가 발생했을 것을 감안하면 맞는 수입니다.
2011-10-13 02:40:19 | 류인선
1년 전까지는 이런 것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kjv성경을 보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저의 모든것을 돌아보게 되고 주의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멍해질때도 있고 머리가 많이 아프기도 합니다. 제가 존경했던 여전도사님이 지금은 목사님으로 헌신하고 있고 이모님은 교회 장로님이고 또 저희 어머님은 권사님인데...존경하고 존중한 분들이 다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다고 하니....또 열심히하고자해서 나섰던 지난날의 저의 행동들도...그럼 지금은 어찌행해야 되나 ...고민되고... 사실 많이 위축이 됩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바꿀수는 없는것이겠지요...다시 반성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성경말씀 열심히 봐야 할것같습니다. 여러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2011-10-12 18:04:05 | 전성실
성경을 읽다보면 궁금한 것이 어디 한 두가지겠습니까? 이것은 계속 질문을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고 나면 또 다른 것들을 질문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마 스스로 깨닫거나 공부하려고 하기보다 한없이 질문만 하게 될 겁니다.
일단 궁금한 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은 성경 본문 문맥 가운데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2011-10-12 15:13:48 | 김문수
고린도전서 14장에 이미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대언을 하는 도중에 자기도 은사를 받았다는 여자들(36,37절 참고)이 끼어들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해서 대언이나 설교의 흐름을 다 깨어 놓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경고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배 시간에 그렇게 방해하지 말고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리더쉽인 남편에게 가르침을 받으라는 겁니다.
2011-10-12 15:09:42 | 김문수
누구든지 남자는 이성적인 면이, 여자는 감성적인 면이 강함을 인정합니다.
여자분들이 어떤 면에서 먼저 깨닫고 남자들에게도 권면하거나 이야기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깊이 들어가보면 일정부분 감성적인 면에서 접근을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 예를 들어볼까 싶은데요.
어떤 교회 권사님이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교회 분들을 돕는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모든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던 교회분들도 나중에는 성경과 대조하여 볼 때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면, 남자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보고 받아들이는 반면, 여자분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왜 내가 틀렸냐? 내가 받은 은사가 있기에 당신이 틀렸다! 라며 나오는 경우도 있지요. 대놓고 그러지는 못해도 기분상해 하면서 꽁 하니 감정을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때 분별은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는 것이 성경적이겠지요. 남편은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있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그런 경우를 보면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옳고 그름의 분별을 위해 이성적인 면이 강한 남자인 남편에게 묻는 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권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종적인 분별에 있어서는 남자, 특히 남편의 판단을 따라야 된다는 말씀 같구요...
다른 양육, 유,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측면에서는 여자분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여자 목사(?)나 여자 장로에 대해서는 성경 말씀과는 다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권사라는 직분(?)도 성경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데...
2011-10-12 13:28:45 | 김태현
예 감사 합니다. 참고 자료 다 검색해 보았습니다 .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교회에서의 질서에서 여자들은 대언이나 방언이나 지도자의 위치로 권위를 행사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해합니다. 저의 고민은 예를들면 교회에서 교제중에 남녀 혼성으로 어떤 주제를 말하다가 남자분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만약 저의 주장이 맞을때(예를들면구원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가르치는 위치에 있을때가 종종있습니다...잠잠해야 하는지 ....
이말씀도 잘이해가 안가요 만일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남편에게 물을지니....
여러분 정말 저의 질문이 답답하시죠..까깝하시죠
저는 미치겠습니다.
그리고요 딤 2장 15절 -아시는분 간곡히 답변부탁드립니다.
2011-10-12 12:48:20 | 전성실
앞뒤 문맥 모두 무시하고,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면 성경이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에서 지켜야 할 질서에 대한 것입니다. 고전 14장 전체의 문맥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타언어로 말하는 것(통역 포함)과 대언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여자는 교회에서 타언어(성령의 은사 중 하나를 말하는 것임)로 말하거나 대언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자들이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라고 할 때, 말하는 것은 talking이 아니라 speak 입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본문 문맥에서는 여자가 교리를 가르치거나 형제들 위에 권위를 행사하거나 공적 연설(설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2011-10-12 11:21:17 | 김문수
여기를 보면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68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54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2
질문 하시기 전에 검색을 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1-10-12 11:00:55 | 허광무
고린도 전서 14장34절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35절-만일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니라
디모데전서 2장 11절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12절-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요즘 이말씀이 어느 범위까지 해야되고 어느것은 하지 말아야 되는지 무척 고심이 됩니다. 성경말씀에 헷갈리는 것이 많고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해도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을 행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걸 목사님들에게 물어보는거 자체가 문제가 되는것인지.... 집에서는 남편이 잘못해도 잘못을 지적하는것도 안되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제자신을 일치시키며 살아야 됨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여자들에 대한 위치나 행동들이 참 난감합니다.(제가 해야 될것과 하지말아야 될것들)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서는 자매님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가지 더요
디모데 전서 2장 15절-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가운데 거하면 그녀가 해산함으로 구원를 받으리라 - (----애를 낳은 여자들은 어떤 속박으로 부터 벗어난다는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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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2 10:08:09 | 전성실
궁금한 것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께 의지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이 있다는 것에도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더욱 더 바로 알기위해 저부터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2011-10-11 19:44:39 | 박상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