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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말에 한 포털 회사에서 해킹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회사에 가입했던 사람들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와 암호화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이 되었습니다. 이 암호화된 것이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는데요. 저 역시 회원이었던지라 제 정보 역시 노략질 당했습니다.   오늘은 이 컴퓨터 보안과 성경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1.   컴퓨터 공학에는 여러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 컴퓨터 그래픽, 음성 인식, 패턴 인식, 컴퓨터 비전 등등...   이 중에 한 분야가 보안입니다. 다른 분야와 이 보안이라는 분야가 다른 점은 "보안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생겨난 분야"라는 것입니다. 위에 적은 여러 분야들은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없으면 안 되는 분야이지만, 보안은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이 지구 상에 한 명도 없으려면, 마귀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보안은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몇 안 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그 나쁜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들을 지키려다 보니 보안에 시간을 쏟아야합니다.     2.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이 뚫리지 않게 하였으리라. (마 24 : 43)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니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말씀을 "도둑이 자기 집 어디로 뚫고 올 지 모르니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훔치러 오는 도둑들도 언제 올 지 모르니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도 우리의 상급을 못 받게 방해하러 언제 올 지 모르니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벧전 5 : 7-8)     3.   마귀는 가장 약한 곳을 뚫고 옵니다. 마귀가 인류를 처음 넘어뜨릴 적에도 아담의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왔습니다.   이브는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아담을 통해 들었습니다. 3장에서 뱀과 대화할 적에 '만지지도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확실히 알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귀는 약한 믿음을 가진 이브를 먼저 공략했고, 그 약한 부분을 통해서 강한 아담까지 넘어뜨렸습니다.   보안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하다."   둥근 고리 10개를 묶어 놓았습니다. 9개는 무척 강하지만, 하나는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진다고 합시다. 결과적으로 그 열 개 고리의 강도는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만큼 강하다가 됩니다. 다른 고리가 아무리 강해도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합니다.   마귀가 뚫고 올 곳이 없는지 자기 자신을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의 모든 모양을 삼가라.(살전 5 : 22)   그런데 이 모든 부분을 막는다는 것이 심하게 어렵습니다.   분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영을 다스리는 자는 도시를 취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 : 32)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 이 보안 문제는 만드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못 만들었기 때문에 생길까요? 프로그램은 아래 보시는 것처럼 글로 작성이 됩니다.     이런 글에서 몇 줄이 잘못되어야 이런 큰 문제가 생길까요?   차이야 많지만, 한 두 줄인 경우도 많습니다. 3000만 줄 정도 잘 작성해 놓고, 두 줄 정도 이상하게 작성하면, 해커들은 그 이상한 두 줄을 통해서 헤집고 들어 옵니다.   개역 성경을 보다 보면 이런 한 두 줄이 조금씩 보입니다. 이런 한 두 줄을 이용해서 마귀는 계속 침투를 하고, 많은 기독교도들이 계속 당하고 있는 세태가 참 안타깝습니다.     5.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 : 23)   뭔가를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는 창이 매우 유리합니다. 창에게는 작은 구멍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방패에게는 작은 구멍 하나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는 우리 각각에게서 작은 구멍 하나만 찾아서 공격하면 되지만, 우리 각각은 죄가 될 모든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곧 포도나무를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붙잡으라. 우리의 포도나무에 연한 포도들이 있느니라.(아 2 : 15)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큰 여우가 아닙니다. 작은 여우입니다.   이렇게 약한 우리이지만, 우리에게 이런 보안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싸울 날에 대비하여 말을 예비해도 안전은 {주}로부터 오느니라.(잠 21:31)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 : 57)[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01 13:03:29 | 허국현
펌 요즘 세태를 풍자하는 재미있는 유머 입니다.       웃기지만 슬픈 유머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 군대에 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를 가면 사돈이 된다.   아들을 낳으면 1촌, 대학가면 4촌,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를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딸 둘에 아들 하나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나면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 도둑, 딸은 예쁜 도둑, 사위는 강도.   남편과의 사랑은 운명적인 사랑, 아들과의 사랑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손자와의 사랑은 짝사랑, 며느리와의 사랑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랑, 딸과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남편을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 수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내 아들,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고,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다.   미친 여자,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여기는 여자.   아들에게, 재물을 안 주면 맞아죽고, 반만 주면 쫄려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30 13:55:25 | 허광무
드디어 말세가 가까워지고 있군요!!! 참고로, 미국이 망하고 있다고 하면 대부분 말도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겠지만, 현재 미국정부는 엄청난 빚더미 위에 앉아있고 미국의 부채한도 상황과 경제전문가, 주식전문가 등 심지어 주지사들 까지도 단지 시기상의 문제일뿐 국가파산은 예정되어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비추고 있습니다.
2011-09-30 00:49:17 | 최홍진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는 결국 악한 인간의 손아귀에서 변질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양극화 현상 속에 자기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불만과 자신의 빈곤을 사회와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악함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탐욕스런 정치가들의 야망이 어울려 세계는 점점 참혹한 정점을 향해 가고 있네요. 오직 다시 오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가족과 이웃을 챙겨야 할 지금은 바로 역사의 끝자락. 종말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2011-09-29 19:03:15 | 김대용
그렇게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장 비싼 공짜인 구원은 마다하지요. 공짜가 무한하신 능력의 근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면 아무 문제 없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궁극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회주의적인 개념의 좋은 부분도 강제적인 적용이 가능한 신권정치 하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죄악된 인간의 성품으로는 지배층의 배만 불리는 악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다만 인간 사회의 최선인 자본주의 사회에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긍휼이 필요하겠지요.
2011-09-29 11:21:49 | 김재욱
지금 전 세계가 무상 파동에 휩싸이고 있습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공짜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특히 오바마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펴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미국인들에 의해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는 심각한 양극화와 사회주의의 무상 체제의 급부상입니다.양극화 현상 속에서 빈곤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결국 적그리스도의 '문제 해결' 구호에 넘어가미끼를 따먹을 것입니다. 성경은 무자비한 자본주의는 반대합니다.하지만 성경은 신약시대에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지지합니다.이 원칙 하에서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다음은 미국의 어느 분이 보내 주신 글입니다.남윤수 자매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특히 다섯 째 문장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던 유럽의 복지 국가들의 대부분이 결국 이 정책으로 인해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말세의 징조이므로 사람이 못 바꿉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징조가 말세의 징조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여 글을 올립니다.     ------------------------------------------- 여기 다섯 개의 문장들은 사실입니다.워싱턴의 관료들(오바마 행정부)은 그런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당신은 그것들을 믿습니까?그렇다면 다른 분들께 보냅시다. 이것들은 아마 당신이 이제까지 읽을 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문장들일 것입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1. 당신은 부자들을 부유함 속에서 빼내려는 것을 입법화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부유함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입법화 할 수는 없습니다. 2. 한 사람이 일하지 않고 받은 것, 그것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은 대가도 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3. 정부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먼저 얻어내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4. 당신은 부유함을 나누어서 부를 증대시킬 수는 없습니다. 5. 인구의 절반이, 인구의 다른 절반이 자기들을 돌보아 줄 것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그리고 그 다른 절반이 누군가가 자기들이 일한 것을 취할 거라는 생각에 일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그것은 곧 그 국가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조입니다. These Important 5 Sentences Are True.Washington Bureaucrats Do Not Believe Them.Do YOU Believe Them?If So, Pass Them On. These are possibly the 5 best sentences you'll ever read: Unfortunately, most voters don't know this.  1. You cannot legislate the poor into prosperity, by legislating the wealthy out of prosperity. 2. What one person receives without working for, another person must work for without receiving. 3. The government cannot give to anybody anything that the government does not first take from somebody else. 4. You cannot multiply wealth by dividing it. 5. When half of the people get the idea that they do not have to work because the other half is going to take care of them; and when the other half gets the idea that it does no good to work, because somebody else is going to get what they work for, that is the beginning of the end of any nation.[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9 09:56:04 | 관리자
성경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항상 기본적인 것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은,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시고서는 왜 그에게 분노를 나타내시고, 그를 대적하시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의문(question)같지만 이런 질문은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나 공의로우심에 대한 의심(doubt)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누구나가 인정할만한 전제조건을 확실히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2.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므로 서로 모순되는 구절이 없다. 3.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따라서 죄에 대해서는 공의로 심판하신다. 4. 하나님은 까닭없이 진노하시거나 변덕을 부리시는 분이 아니다. 우선 이와 같은 전제들에 대해 동의하고, 이 전제들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을 이에 맞추어서 이해하면 됩니다. 민수기 20:12-22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 받은 자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13절: 그래서 발람은 처음에는 그들과 같이 가기를 거절했습니다. 15-17절: 모압 왕 발락이 더 존귀한 자들을 보내어 존귀하게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18절: 발람은 자기가 난색을 표하고 거절할수록 자기 몸값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한 밑천 잡을 생각을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발락에게서 "은금으로 가득 찬 집"을 받고 싶지만(이것은 발락이 제안한 것이 아니라 발람의 마음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서 ~할 수 없노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불의의 삯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며 길을 잃었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벧후2:15) 19절: "주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 여기서 "더(more)"에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12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혹시라도 예외 조항이 있다거나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 외에 뭔가 "더해서" 하나님이 기존 말씀을 취소하거나 번복해주신다면 하고 바라는 겁니다. 물론 발람은 "하나님은 한번 하신 말씀을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나 성품에 대해서 그 정도도 모른다면 대언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에 나오는 23장 19절에서 그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민23:19)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이미 확실하게 선포되었지만, 발람은 재물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기존에 하신 말씀에 뭔가 "더해서" 다시 말씀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혹시라도 기존에 주신 성경 말씀에 뭔가를 "더해서"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변개된 성경 말씀이 없을까 하고 찾는 중입니다. 20절: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너는 오직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발람은 하나님의 장난감 로봇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느 쪽에 순종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라"는 하나님께서 발람이 그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직접적으로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과 같이 가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발람은 재물 때문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택권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이 져야 합니다. 로마서 1:20-28도 같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창조물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시해 주셨으나(20절),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고, 그분께서 보여주신 진리를 거부했습니다(21-23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어버려두셨습니다(24,26,28절 참고). 오 청년이여, 네 젊은 때를 기뻐하라. 네 젊은 시절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로 걸으며 네 눈이 보는 대로 걸으라. 그러나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데려가실 줄 너는 알라(전11:9) 전도서 11장 9절 말씀은 청년들에게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대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살아봐라.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험 답안을 백지로 내거나 엉망으로 쓰는 것은 학생의 자유지만, 그것을 평가하고 채점하는 것은 선생님의 재량입니다. 22절: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어기고 길을 떠나는 발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주의 천사가 그를 대적합니다. 이것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시며 공의에 따라 죄인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12절)과 재물에 대한 욕심(18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는 발람의 자유지만, 그에 대해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요, 하나님의 자유입니다. 32절: 발람의 길은 주 앞에서 비뚤어진 것입니다. 주의 천사는 그를 죽여서 그가 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귀가 세 번이나 피하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35절: 그는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면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주의 사자는 그가 가도록 합니다. 그가 가는 것은 허락하되 주께서 그에게 주시는 말만 하도록 했습니다. 주께서는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는 것을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신23:4-5, 수24:9-10, 느13:2)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을 따라가라고 시켜놓고서는 막상 발람이 그들을 따라 가니까 하나님이 변덕을 부려서 그에게 분노하시며 그를 죽이려고 하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말씀(12절)과 그 말씀에 대한 발람의 반응(18절-탐욕, 19절-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달라질수 있다면 하는 기대)을 잘 살펴보고 전후 문맥을 파악한 다음에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011-09-28 12:22:30 | 김문수
한가지 가능한 설명은 20절 말씀과 21절 말씀의 차이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발람을 부르러 오거든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부르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이 부르면 그때에야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21절에 보면 발람이 그들이 부르러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분노의 원인입니다. 발람의 마음은 이미 그들에게 가 있었기에 발람이 먼저 움직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려고 - 드러내시려고 - 발람에게 명령하시기를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이고요. 그래서 35절로 가면, 발람이 그들과 가는 것 자체는 여전히 허락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2011-09-28 11:45:10 | 이재연
민수기 22장 20절 질문(민22:20)   항상 이 사이트를 통하여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자유게시판에 수준높은 글이 항상 올라와서  이렇게 질적으로 떨어지는 질문의 글로 공간을 채우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알고자하여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민수기 22:20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하시니      21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얹고 모압의 통지자들과 함께 가니라      민수기 22절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는데 왜 22절을 보면 그가 간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랐을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과 가지말라는 말씀을 12절에 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지니 이는 그들이 복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왜 20절에 다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분노가 타올랐을까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50:08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1-09-28 00:33:10 | 이탁재
건전한 정신과 양심을 가진 대부분의 크리스찬이라면 다들 아시는 내용이지만, 기사 내용이 한국 교회의 상당수가 교회 건물을 세우고자 하는 행태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잘 지적한 부분들이 있어서 글을 그대로 링크하여 올립니다.   지금 이 시대의 참 성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신약 교회에 걸맞는 모임 장소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0 21:50:53 | 신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