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1:28~32절 두 아들 비유에서요,,,(공동,바른,표준. 쉬운,킹제임스등등)
첫째------가지않겠나이다하고 돌이켜 갔고,
둘째------가겠나이다하고 가지않았고
누가아버지 뜻을 행하였느냐하시며 첫째아들이라 하셨잖아요,,,
근데 첫째와 둘째가 딴성경들엔 바껴있어요,,(개역,개정)
첫째------가겠나이다하고 가지않고
둘째------가지않겠나이다하고 돌이켜갔고
누가아버지뜻을 행하였느냐하시며 둘째아들이라 이렇게요,,,
항상 둘째에게 관심많다는 정동수목사님말씀도 생각나고, 번역본들도 다르고해서 궁금증이 생겼어요,,,
킹제임스가 옳다 믿지만 옳다면 첫째 둘째가 차이나는이유는뭔지 참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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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18:39:18 | 최복립
아! 성령이 소멸된다는 말이 개역성경에서 나온말이었군요! 귀한답변 감사드립니다^^
2011-08-31 12:08:56 | 최홍진
개역: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흠정역: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
KJV: Quench not the Spirit.
개역은 성령이 소멸된다고 하지만, 성령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소멸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그 분은 믿는 자 안에 들어와 영원토록 거하시는 분이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떠나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이런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구약 시대 다윗의 시편에 나오는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하여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라는 노래를 부르며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주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하나님의 은혜로 바른 진리의 말씀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합니다.
2011-08-30 22:09:05 | 김문수
(요 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
사람은 몸과 영과 혼으로 이루어져있는데(살전5:23)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이 영과 혼을 포함해서 해서 "영적인 것"을 말씀하신것인지, 아니면 정말 구별해서 혼이 아닌 "영"만 말씀하신것인지
솔직하게 저도 잘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저는 전자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글을 썻습니다.
어느 목사님설교에서는 성령님이 소멸될수도 있다는 말씀도 하시던데요..
교회시대에는 성령님이 떠나시지 않는다고 알고있는데,
소멸된다는 개념은 ...글쌔요..그럴까요? 목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하여튼, 전 잘모르겠네요..^^;
확실한것은 이미 구원받은사람은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것만 확실하게 믿고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지옥갈까봐 두려움 가운데 눌려살때-
히브리서를 읽고 율법과 은혜가 서로 다른 체계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진리 가운데 참 자유를 누리게됬습니다.
2011-08-30 00:54:18 | 최홍진
죽은 영에 대한 말씀이지요?
오늘날 영은 살았다(성령으로 거듭났다)하여도
그의 생각이 육에 머물러 있어서
아직 눈이 열리지 못하였고,
성령이 내 안에 있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011-08-29 14:28:40 | 오창민
성경을 묵상하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를 나누고자합니다. 문장력은 좋지 못하지만 진솔하게 글을 적어봤습니다.
성경적으로 옳지못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지적을 해주시고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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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 이야기는 교회를 조금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들어본적이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예수님께 책망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사람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 당시 구약시대의 사고방식으로 그 심오한 진리를 바로 깨달을수 있는것이 가능할까? 하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런것이 성경을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복음을 듣고 이제 갖 구원받은 사람에게
"너 다시태어났니?" 하고 질문한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이해를 할 수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성경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그 말씀을 깨닫지못해서 책망받은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시고나서 내가 한말에 놀라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3:7)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무엇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을까요?
다시 성경을 살펴보니 니고데모가 책망받은 원인을 제공했던 직접적인 대답이 있었습니다.
(요 3:9) 『니고데모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어찌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하매』
그렇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런 것들이 있다는것을 알지 못했고 자신은 이제까지 이런 것들이
없는줄알았는데 있다는 사실에 놀란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이런 것들은 앞구절에 "성령에게 난 사람" 이라는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말이 단순히 육적인 출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았을것이며, 또 다시 태어냐야할 영적인 것들, 바로 그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니고데모는 사람은 육체 안에 영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영을 믿지않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행 23:8) 『이는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나 영도 없다고 말하되 바리새인들은 둘 다를 시인하기 때문이라.』
아시다시피,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의 교리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지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책망을 받을만 했었지요.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고, 게다가 바리새인이면서 그런것도 알지못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요 3: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가 영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데로만 믿었던 사람이었기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을 믿을수가 없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것들중에 "바람"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의 소리를 들을수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만큼 적절한 비유는 없기때문입니다.
(요 3:8)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진화론을 믿는 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당신은 부모로부터 육적으로는 태어났지만,
당신의 육체 안에 있는 영인 사람도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답변을 하겠지요.
"영? 그런게 어딧어?? 그저 인간은 동물과 다를바없는 고기덩어리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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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8 19:58:37 | 최홍진
우리가 진화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서 인정하지 않는 맹목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이 없듯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 진화론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조금도 아니고 초, 중, 고, 대학까지 생물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일반에 걸쳐, 심지어 사회과학 까지 진화론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진화론이 잘못되었고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학문을 표방한 미신이 인류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진화론도 알고 성경도 압니다.
나동민님은 진화론은 아는데 성경은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해 안되는 몇 구절 거론하시며 성경이 문제가 많은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기록한 말씀들입니다. 학문에도 순서가 있듯이 성경을 공부하는데도 순서가 있습니다. 무작정 나댄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치원 어린이가 대학원 강의가 이해 안되면, 자기 수준에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경우에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애들은 가라" 혹은 "더 큰 다음에 오세요"
그리고 시간 여유가 된다면 부설 유치원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습니다.
나동민님이 시간이 된다면 유치원에 데려다 드리고 싶습니다.
2011-08-25 17:23:41 | 류인선
도자기만드는 사람이 잘 못 만든 도자기를 부수고 잘 만든 도자기는 보존하듯,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릴 자를 살리시고 죽일 자를 죽이시는데 누가 감히 잘못을 따집니까?
(사 29:16) 『참으로 너희가 일들을 뒤집는 것이 토기장이의 진흙같이 여겨지리로다. 지어진 물건이 자기를 지은 자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또 빚어진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지각이 없다, 하겠느냐?』
(렘 18:6) 『주가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내가 이 토기장이같이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보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그리고 그것은 그 민족(이스라엘)에게, 그 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법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적 없습니다.
2011-08-25 17:05:13 | 류인선
PDF 파일이 다운되지 않을 때: PDF 다운로드 문제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173
공지사항93번글에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2011-08-22 23:52:32 | 이청원
다운로드가 안됩니다.
2011-08-22 18:50:37 | 유정현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2011-08-21 22:40:53 | 소범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의 성도들이 믿음을 통해 그 말씀처럼 해야 된다면 정말 문자 그대로 안 틀리고 그렇게 해야 할겁니다. 물론 약2:10 말씀을 이에 '직접적'으로 끌어오면 조금 아닌 감도 있지만요.
2011-08-21 22:34:49 | 소범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까요?
쉬운 일 같지만 때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으므로 어떻게 옷을 입든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신명기를 인용하며 극단적인 어조로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하나님께 가증한 자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을까요?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이 글을 보면서 옷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떻게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성경 해석의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단정한 사람이 되면서도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는 길을 터득할 것입니다.
바르게 성경을 보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많은 경우 문제는 성경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책자가 성화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파일을 공개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08-19 17:27:42 | 관리자
김용묵 형제님은 모든 이야기에 철도가 들어가는군요.^^
아무튼 KJB의 비포 & 애프터는 天地 차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2011-08-18 10:31:11 | 김재욱
안녕하세요!
본문에 나와 있듯이, 제 신앙 내력에서는 둘(KJV, 침례)을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님께서 댓글에서 지적하신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가톨릭은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를, 정통에서 떨어져 나간 아류 정도로 간주하고 있고,
종교 개혁 이전에 명맥을 유지하던 소수의 기독교회들의 역사를 모조리 말소하고 부정하고 그저 듣보잡 이단으로 매도하려 애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서 침례 교리도 완전히 왜곡된 거겠죠?
2011-08-18 09:19:39 | 김용묵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침례에 관한 얘기를 하시다 갑자기 킹제임스 성경를 만나게 된 것도 얘기하시네요(다소 헷갈림~).
침례와 세례의 의미는 정말 다릅니다. 기독교가 카톨릭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나왔지만, 그 잔재를 아직 청산하지 못한 채 성경으로 제대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 참 많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근거로 인정되는 두가지 중요한 의식이 있는데, 첫째는 주의만찬, 둘째는 침례라고 합니다.
샬롬.
2011-08-18 01:59:43 | 신대준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샬롬
2011-08-17 11:04:46 | 관리자
막 16:17을 잘못 적용하는 은사주의자들은
그래도 막 16:9-20을 아예 삭제해 버린 성경 변개자들보다는 낫다고 쳐 줘야 할까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1-08-17 10:13:45 | 김용묵
우리말로 예배, 집회라고 할 것을 영어로는 service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경배와 섬김의 개념 차이에 대해서 딱히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글 감사합니다. ^^
2011-08-17 10:06:48 | 김용묵
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한 뒤, 나는 침례를 받았다. 우선 허리까지 차는 깊이까지 바다로 들어갔다. 침례자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나를 얼굴까지 바닷물 속으로 뒤로 제꼈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오호~ 이런 게 침례로구나. 정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2002년 8월 11일자 본인의 일기 중에서)
본인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미지의 시기에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내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KJV)을 접했다. 그 전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막연하게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어서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킹 제임스 성경은 단순히 읽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교리 노선까지 바꿨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바르게 알게 된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침례이다.침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 예수님의 죽으심과 매장· 부활에 내가 동참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식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침례와 더불어 주의 만찬이라는 단 두 종류의 의식만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침례는 그 성격상 온몸이 물에 잠기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을 가져와서 행하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하게 된다. 마치 플룻이나 기타는 악기를 가져와서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악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치듯이 말이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큼이나 침례도 구원의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서 그 증표로서 침례를 받는다.그리고 침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수준... 보다는 덜 엄격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이다. 더구나 유아세례는 더욱 잘못된 관행이다. 쉽게 말해서 아래 그림에서 (1)이 맞고 (2)는 틀리다는 것.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침례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한 온갖 성화· 성경 만화들 중에, 고증상 오류가 있는 게 정말 허다하다.
(그림이 조잡한 것에 양해를.. ㄲㄲ)
침례를 기름부음(anointing)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또한 침례는 할례하고도 아무 연결 고리가 없다.성령 baptism은 성령님이 이마에만 찔끔 임하는 게 아니며, 불 baptism은 이마에만 불이 붙어 활활 타는 게 아니다.세례든 침례든 뭐가 대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_-;;이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할 차원이지, 성경 자체를 세례 에디션, 침례 에디션으로 따로 내는 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2002년! 킹 제임스 성경을 갓 알게 된 후, 본인은 인터넷으로 관련 분야 지식을 탐독하면서 본인과 함께할 믿음의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침례를 줄 곳이 주변에 없는지도 찾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한글· 세벌식 진영에서 알게 된 어느 지인이 KJV 쪽으로도 안면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그분이 나가는 교회 모임에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거기는 가정 교회? 지방 교회? 비스무리한.. 그런 모임이었다. 66권 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이유로 흠정역을 쓰긴 하지만, 안티오크의 권위역(당시 신약만 존재하던)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히 9:15-17을 근거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일체의 기성 개신교회의 관행을 다 부정하고, 목사도 싫어하고(그래도 자기네 모임에도 결국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속세를 떠나 아미쉬나 워치만 니처럼 사는 걸 좋아하고,자매는 예배 때 머리에다 너울을 씌우고,매주 모일 때마다 만찬을 하고, 포도즙 잔을 돌려가면서 입 닦으면서 마시고,제비뽑기로 예배 인도자를 뽑고는 성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강론하고...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KJV를 알기 전에 겨우 20대 초반이던 본인의 영적 수준은,“나중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어느 유명한 대형 교회에 등록할까? 그런 곳에 다니면 최신 기독교 문화를 최전방에서 바로 접하면서 살 수 있겠지?”“NIV 다음으로는 표준새번역, NASV, NLT 등 중에서 무슨 성경 역본부터 읽을까?”이랬었다. 진짜로.
그랬으니, 갓 KJV를 알게 된 직후, 본인은 아직 그쪽 지식이 충분치 못했으며, KJV를 옹호하고 기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나의 아군으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보는 저런 작은 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 모임에 수 개월 나간 후, 여름 MT 행사에서 드디어 침례를 받게 되었다.
뭐, 그분들은 침례를 밥티스마라고 불렀다. -_-;; 그리고 너 정말 구원받은 거 확실하냐고 내게 거듭 확인을 하곤 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면서 침례를 다시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을 거쳐 본인은 침례탕도, 수영장도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때의 신앙 고백을 갱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본인에게 침례를 준 교회 진영과는 교제를 중단하게 된 것이 아쉽긴 하다. 나도 지식이 늘면서 점점 벌어지는 교리 차이와 분위기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기를 탈퇴했다. 비록 교리는 정당한 교제 중단 사유이긴 하지만, 좀 곱게 나오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점이긴 하다.
그리고 2003년, 본인은 흠정역을 사용하는 다른 교회를 대전에서 다니게 되었고, 그 계열의 교회를 서울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출석하는 중이다.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남짓 뒤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대부흥 + 철도 성령 강림이 있었고. ㄲㄲㄲㄲㄲ
지금으로부터 벌써 8~9년 전인 2002~2003년이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시절이긴 했다. 내 전공에 이어서 나의 신앙, 사상, 가치관 같은 정신 세계가 형성되어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7 09:59:58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