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참조.
2009-06-14 00:43:57 | 관리자
자세히 살피려고 눈을 모아서 봄.
2009-06-14 00:43:35 | 관리자
공기 중에서 잘 변하지 않으므로 철, 강철, 구리 등의 표면을 도금하는 데 쓰이는 금속.
이것은 초기부터 알려진 금속이며(민31:22) 두로와 다시스 사람들이 이것을 가져왔다(겔27:12). 사1:25에서 이 말은 은을 제련할 때 생기는 납 합금 등을 의미하였다.
2009-06-14 00:43:10 | 관리자
아비 사람 참조.
2009-06-14 00:41:52 | 관리자
므낫세의 증손자(민26:29-30).
그는 재판관 기드온이 속한 가족의 창시자이다(수17:2; 삿6:34; 8:2). 삿8:2에서 ‘아비에셀의 포도 수확’이라는 말은 아비에셀 사람들이 주축이 된 300명이 미디안 사람들을 처음에 멸절시킨 것을 의미하며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 줍기’는 에브라임 사람들이 오렙과 스엡을 잡고 크게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2009-06-14 00:41:29 | 관리자
신약의 Abia(어바야).
I. 아론의 후손 중 한 가족의 창시자(눅1:5).
다윗은 성전에서의 섬김을 위해 제사장들을 24계열로 나누었고 그 중 여덟 번째 계열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라 아비야 계열이라 불렸다(대상24:10). 물론 침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이 계열에 속했다. 제사장 참조.
II. 북 왕국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의 아들.
주님을 향한 선한 마음이 있었으므로 젊어서 죽었을 때에 그는 많은 사람의 사랑과 애도를 받았다(왕상14:1-18).
III. 남 왕국 유다의 첫 번째 왕 르호보암의 아들.
그는 아비얌이라 불리기도 했으며(왕상15:1-8) 주전 958년경에 왕좌에 올라 3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여로보암과 전쟁을 해서 큰 승리를 얻었지만(대하13:1-22) 자기 아버지의 악한 본보기를 따르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 마아가 혹은 미가야는 압살롬의 손녀였을 것이다(왕상15:2; 대하11:20; 13:2).
IV. 히스기야 왕의 어머니(대하29:1).
2009-06-14 00:40:46 | 관리자
사무엘의 둘째 아들.
사무엘은 그와 그의 형을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임명했으나 그들의 부패와 부정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요구하게 되었다(삼상8:1-5).
2009-06-14 00:39:57 | 관리자
아히멜렉의 아들이며 유대인들의 열 번째 대제사장.
사울이 자신의 군사들을 놉에 보내어 모든 제사장을 멸하려 했을 때 청년 아비아달은 광야의 다윗에게로 피신하였으며(삼상22:11-23) 그와 함께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였다(삼상23:9; 30:7). 그 뒤 다윗이 왕좌에 오르자 그는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올려오는 일을 도왔으며(대상15:11-12)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의 편에 있었으나(삼하15:35) 그 뒤에 아도니야를 추종하면서 나이가 들어 자기의 친구 다윗을 배신했다.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은 그의 제사장 직분을 박탈하고 그를 아나돗으로 쫓아냈으며(왕상2:26-27) 이로써 150년 전에 엘리에게 주어진 예언을 성취하였다(삼상2:27-36). 사울은 사독에게 대제사장 직분을 수여함으로써 엘리가 속한 이다말 계열로부터 엘르아살의 계열로 대제사장 직분을 옮긴 듯하며 이로써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대제사장이 둘 즉 다윗과 함께한 아비아달과 사울과 함께한 사독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같은 대제사장 체계는 아히멜렉의 죽음 이후부터 솔로몬의 통치 때까지 이어졌으며 그 이후에는 사독과 그의 후손들만이 대제사장 직분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아비아달과 관련해서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아비아달이 솔로몬에 의해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했다고 기록된 반면(왕상2:27) 다른 곳에서는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 사독과 함께 대제사장이라고 기록된 것이다(삼하8:17; 대상18:16; 24:3, 6, 31). 아마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히멜렉과 아비아달이라는 두 이름을 지닌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 이런 관습은 유대인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아비가일 참조. 이렇게 하면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보여 주는 빵을 주었다는 말씀과(막2:26) 아히멜렉이 주었다는 말씀(삼상21:1-6)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2009-06-14 00:39:25 | 관리자
비느하스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네 번째 대제사장(대상6:50).
그는 사사기에 나오는 에글론과 에훗과 동시대 인물이었을 것이다(삿3:1-31).
2009-06-14 00:38:49 | 관리자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며 다윗의 용사인 요압과 아사헬의 형제(대상2:16).
그는 자기 삼촌 다윗에게 늘 충성을 보였고 그와 함께 사울의 장막에 갔으며(삼상26:7-1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의 전쟁에서 앞장을 섰고(삼하2:18, 24) 에돔 사람들과의 전쟁과(대상18:12-13) 시리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의 전쟁에서도 선두에 나섰다(삼하10:10). 또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는 다윗을 구출하고 이스비브놉이라는 거인을 죽였다(삼하21:15-17). 그는 창을 들어 300명을 대적하고 죽였으며(삼하23:18) 시므이와 압살롬과 세바의 사건에서 항상 다윗의 편에 섰다(삼하16:9; 18:2; 20:6-7).
2009-06-14 00:38:24 | 관리자
잇사갈 지파에게 속한 수넴 출신의 아름다운 처녀.
그녀는 다윗의 노년에 그를 품어 주기 위해 그와 결혼하였다. 다윗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아도니야는 그녀를 자기 아내로 달라고 하다가 솔로몬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왕상1:1-53; 2:1-46).
2009-06-14 00:37:52 | 관리자
가나안의 후손.
그들은 가자에서 이집트 강에 이르는 연안의 한 지역을 차지하였으나 모세 이전에 그곳을 침범해 들어온 블레셋 혹은 갑돌 족속에 의해 추방당하고 거의 멸절되었으며(신2:23) 단지 일부만 여호수아 시대에도 살아남았다(수13:3). 한편 어떤 이들은 그들이 히위 족속이라고 생각한다(창10:17; 34:2; 수9:7; 11:3 등).
2009-06-14 00:37:16 | 관리자
I. 팔레스타인의 그랄 지방의 왕.
그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 하다가 꿈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주고 사라를 위한 눈가리개로 은 1,000개를 주었는데 이것은 곧 속죄하는 선물로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가 무죄임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이 일 후에 그는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었다(창20:1-18).
II. 그랄 지방의 또 다른 왕.
아마도 그는 전자의 아들일 것이다. 그는 이삭과 동시대 인물이며 이삭이 리브가에 관해 속인 것으로 말미암아 이삭을 책망하고 후에 브엘세바에서 그와 함께 새로운 동맹을 맺었다(창26:1-35).
III. 기드온의 첩이 낳은 아들.
그는 기드온이 죽은 뒤에 스스로 세겜의 왕이 되어 자기의 형제 70명을 한 돌 위에서 죽였는데 막내인 요담만 이 참사를 모면했다. 이때 요담은 유명한 ‘나무들의 비유’를 들어 세겜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꾸짖었다. 3년이 지난 뒤에 그들이 아비멜렉을 대적했으나 그는 그들을 멸하고 데베스를 공격하다가 한 여인이 망대에서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자 자기의 병거를 드는 자를 불러 자기를 죽이게 했다(삿9:1-57).
2009-06-14 00:36:47 | 관리자
르우벤 지파의 통치자.
그는 고라와 다단 등과 함께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전복시키려고 음모를 꾸몄다가 심판을 당했다(민16:1-50).
2009-06-14 00:36:07 | 관리자
아미나답과 동일 인물. 히브리어에서는 b와 m이 종종 섞여서 쓰였다.
I. 이새의 아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을 따라 나간 세 아들 중 하나(삼상16:8; 17:13).
II. 사울의 아들. 그는 길보아 전투에서 사망하였다(삼상31:2).
III. 기럇여아림의 레위 사람.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되찾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의 집에서 70년 동안 머물렀다(삼상7:1; 대상13:7).
2009-06-14 00:35:34 | 관리자
I.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다가 후에 다윗의 아내가 된 여인.
나발이 다윗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는 음식을 준비해서 나귀에 싣고 종들과 함께 다윗을 맞으러 나아갔다(삼상25:14). 겸손한 태도와 대화 등으로 인해 그녀는 다윗의 호의를 입게 되었고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은 곧바로 그녀를 자기 아내로 취하였다. 그들의 결혼으로 인해 길르압과 다니엘이라는 두 아들이 생겼다는 주장이 있으나(삼하3:3; 대상3:1) 한 사람이 두 이름을 지녔다고 보는 견해가 더 맞는 것으로 보인다.
II. 다윗의 누이, 아마사의 어머니(대상2:16-17).
2009-06-14 00:34:53 | 관리자
아브라함의 이전 이름.
2009-06-14 00:34:18 | 관리자
구약시대의 아브라함이 즐거움을 누리던 낙원 즉 축복의 장소.
예수님은 구약시대의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졌다고 친히 말씀하셨다(눅16:22). 고대 동방에서는 어떤 사람의 품에 기대는 것이 곧 먹는 자리에서 그에게 몸을 기대는 것을 의미하였다(요13:23). 낙원 참조.
2009-06-14 00:33:48 | 관리자
많은 사람들의 조상(창17:4-5)이며 특별히 유대 민족의 창시자.
그는 셈의 후손인 데라의 아들로 주전 1996년경에 갈대아의 우르에서 태어났으며(창11:27-28) 거기서 70년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의 고향과 친척들을 뒤로 한 채 아버지와 아내 사래와 형제 나홀과 조카 롯과 함께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으로 들어갔으며(행7:2-4) 그 뒤에 유랑하는 목자로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다. 아브라함의 이동 지도 참조(13).
세겜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늘 하던 대로 주님께 제단을 쌓았고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그 땅 즉 팔레스타인을 그의 씨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했다. 물과 초장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는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들어갔으며 거기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창12:1-20). 양과 재물이 풍부한 상태로 가나안에 되돌아온 그는 롯을 요르단 하부의 비옥한 땅으로 보내고 자기는 마므레에 장막을 쳤다(창13:1-18). 그 뒤 몇 년이 지나 그는 포로로 잡혀간 롯과 그의 친구들을 구출하고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창14:1-24). 다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그의 씨가 하늘의 별같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고 그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학대를 받고 그 뒤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창15:1-21). 그러나 아들에 관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사래는 그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주었고 그녀는 이스마엘을 낳았다(창16:1-16).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뒤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나타나서 약속의 상속자가 그의 아내 사래를 통해 나올 것을 확증해 주시고 그녀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셨고 또 할례의 언약을 세우셨다(창17:1-27). 또한 여기에서 세 천사가 방문하는 일이 있었고 소돔의 거주민들을 위해 그가 하나님께 중보하는 일이 생겼다(창18:1-33). 그 뒤에 그는 다시 남쪽의 그랄 지방으로 내려가 다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에서 이삭이 출생하였으며 하갈과 이스마엘은 새로운 곳으로 추방을 당했다(창21:1-34). 그 뒤 약 2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희생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창22:1-24). 12년 뒤에 사라가 죽자 그는 막벨라 굴을 소유 매장지로 구입하고(창23:1-20) 자기의 청지기를 불러 메소포타미아에서 자기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구해 오라고 하였다(창24:1-67). 그 뒤 그는 그두라와 결혼하고 여섯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다 아라비아에서 특정 부족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175세에 연로한 상태로 명예롭게 죽어서 자기 백성에게로 합쳐졌고 그의 아들들이 그를 사라가 있는 같은 무덤에 장사지냈다(창25:1-34).
성경이 보여 주는 아브라함의 특징은 참으로 놀랄 만하다. 그는 참으로 동방의 족장이요 통치자였으며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그네요 순례자로 살았으며 그가 묻힌 땅이 그가 소유한 유일한 땅이었다. 성실함과 관대함과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한 것을 통해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동하지 않는 단순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의 이 믿음은 주저하거나 연기하는 일 없이 즉각적인 순종으로 이어졌고 그에게 임한 극심한 단련 속에서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믿음, 순종 참조. 그래서 그는 결국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유대인, 이슬람교도, 기독교인들이 다 그를 흠모하며 이런 점에서 그는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존경을 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또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을 주실 그리스도의 조상이요 또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이 그에게 충만하게 성취되었다. 그의 육적인 씨 이스라엘은 하늘의 별들 같이 되어 영원토록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을 차지할 것이다.
2009-06-14 00:33:20 | 관리자
사울의 삼촌 넬의 아들로서 사울의 군대 장관(삼상14:50).
사울이 죽은 뒤 7년 동안 그는 이스보셋을 지원했으나 사울의 첩 리스바의 일로 인해 그에게 책망을 받은 후에 사울의 왕국을 다윗의 왕국과 연합시키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요압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는데 아마도 요압은 질투심 때문에 혹은 그가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였기 때문에 그를 죽인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요압의 악한 일을 미워했으며 그래서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고(삼하2:8; 3:33) 솔로몬에게 요압을 그대로 두지 말고 잘 처리할 것을 부탁했다(왕상2:5-6).
2009-06-14 00:32:3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