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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지나가고 있지만, 자매님의 열정은 변함없이 식지 않는 뜨거움을 유지하고 계시네요. 이번 모임도 성경지킴이 회원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은혜가 충만한 시간 되시길 소망합니다.
2013-12-07 10:07:25 | 김대용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최문선 자매입니다.^^       이제 12월이라 성탄절이라고 한국은 캐롤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으로 분위기가 들썩들썩 하겠네요.   이곳은 한여름인데 아직도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어색하고 적응이 안되네요.^^   한국은 요즘 스모그 현상으로 공기가 탁해서, 호흡기가 약하신 분들은 더욱 건강에 유의하셔야 되겠더군요. 우리 모두 건강관리를 잘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감당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4차 모임도 은혜가운데 함께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번 모임은 12월 12일 목요일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주로 토요일에 모이는데, 맴버 들에게 사정이 생겨서 요일이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그 동안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이지 못했던 분들이 함께 모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상황과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시길 기도 부탁 드립니다.    우리의 모임을 성장시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번 모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   래 >   일자와 시간 :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저녁 7시   장       소 : ****번지  Pah  Road.  Empsom.  Auckland.   내       용 : ‘요한계시록 바로 알기’(김** 형제님 저)   3. 공중강림과 휴거(216쪽~229쪽)   연  락  처 : 휴대폰 027-663-9777 (최문선)       아는 분 중에 뉴질랜드에 거하는 분이 있으면, 이 내용을 알려주시고 함께 연락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거주하는 곳 Auckland는 뉴질랜드 북섬입니다. 혹시 뉴질랜드 남섬에  거주하는 분이 계시면,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연락해서 격려하고 위로하길 소망합니다.    Keep Bible 회원들께서 이 모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샬롬!           A. Q & A로 알아보는 '성탄절'의 오해와 진실   http://woogy68.blog.me/140063736968?Redirect=Log&from=postView       B. 예전에 밥 피어스 선교사님께서 크리스마스에 즈음하여 올려놓으신 글이 있어 링크 해놓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984       요한복음 1장 1절, 2절, 14절,    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2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3장 16절, 36절    16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2013-12-06 18:20:46 | 최문선
안녕하세요? 저도 전에 이 주제의 글을 쓴 적이 있네요. http://woogy68.blog.me/140178085895 저는 이런 일은 그냥 미신적 습성이라고 생각하고요, 점쟁이가 새를 시켜 점괘가 적힌 종이를 뽑게 하는 것이 떠오릅니다. 너무 비난할 필요는 없겠지만 빨리 없어져야 할 일이겠지요. 이런 일에 활용되는 것이 모두 개역성경이기 때문에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2013-12-04 22:23:33 | 김재욱
성악 예술을 보더라도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를 벗어나 타국에서 세계적인 성악가가 나오는 평준화 시대를 맞이한 지 이미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스포츠 경기 종목을 보더라도 최대 몇십 년 안에 종주국은 대부분 평준화의 물결 속에서 그 위상을 잃고 맙니다. 위 김재근 목사님의 글처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기록된 말씀이니 적어도 구약 성경만큼이라도 가장 잘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절대다수인 영적 맹인들이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고 봅니다. 심지어 성경 사본학계를 보더라도 유대인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은 별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균형 잡힌 바른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열정적인 사역의 본을 보여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강건하십시요~!
2013-12-04 22:09:11 | 김대용
박천호 형제님 평안하신지요? 아마도 모든 교회들이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과거 제가 다녔던 여러 유형의 교회들도 그런 비슷한 일을 했던 교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었습니다. 이야기하신 대로 그런 일들은 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성경 구절이 뽑혔다는 기쁨과 각별한 감정을 느끼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된 일이라 짐작합니다. 제가 과거에 출석했던 한 교회에서는 청년부 선배 자매님이었는데 자신이 각 지체들에게 필요한 성경 구절을 기도하면서 임의대로 직접 뽑아 와 나누어 주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뽑아 준 성경 구절이 그 형제(자매)에게 딱 맞는 말씀이라고 본인이 어찌나 감동하던지....... 그 말을 듣고 나도 은혜받았지 뭐야~!”라며 뭔가 자신의 신령한 능력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분별력 없던 그때에는 그것이 그리 나쁜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수고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행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 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성경 66권은 모두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말씀으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부분도, 불필요한 부분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특정한 말씀을 그것도 복권 추첨하듯이 뽑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주장한다면 66권의 계시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뽑은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다른 말씀을 뽑고 다시 또 다른 말씀을 뽑는다면 과연 그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에게 주신 말씀이 되는 것일까요? 일명 ‘말씀 뽑기’ 등과 유사한 행위들은 일종의 요행수, 우연, 복불복 등과 연관되어 있을 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위 아닐까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많은 경건한 사람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간증을 종합한다면 전혀 의도하지 않게 평소대로 성경을 순차적으로 읽어 나아가다 유독 그날 자신의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키고 깊이 와 닿으며, 전과 다른 독특한 깨달음을 일으킬 때, 바로 그 성경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자연스럽고 바른 신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를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신 계시의 말씀으로 여기고 부지런히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마음과 지각을 열어 주셔서 내면에 부딪힘을 주시는 특정한 구절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말씀 뽑기를 통한 허탄한 방법보다 훨씬 깊고 강력하게 말씀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킵바이블에 관심을 두시고 참여해 주심에 감사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도 복된 일이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12-04 21:47:11 | 김대용
 킹 제임스 성경을 비난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그 구절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그렇게 실행하지 않는다... 유대인성경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구약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는 유대인들이 최고의 권위자인 듯이 주장합니다. 매우 타당한 논리로 보입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에게 맡겨졌기 때문에 구약성경만큼은 유대인의 관점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정통 유대인들이 어떻게 종교의식을 행하는지 궁금해 하며 예루살렘과 그 주변을 관광하는 성지순례가 권위 있는 성경해석의 필수코스처럼 오해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날 유대인들은 영적으로는 눈먼 상태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신약성경을 거부하고 있으며 구약성경은 읽어도 모릅니다. 유대인의 해석과 관습과 실행은 참조사항일 뿐 절대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 고린도후서 3장 14-16절 :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가려졌으니 이는 이날까지도 옛 상속 언약의 말씀(the old testament)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아니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라. 그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으나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현 시대의 유대인들은 복음의 진리에 관해서 눈멀었고 귀가 막혔습니다. 믿지 아니함으로 꺾였고 넘어졌습니다. 현 시대의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읽어도 분명한 진리를 알 수 없고 심지어 모세오경을 읽더라도 마음은 어둡습니다. 유대인들은 과학, 언어, 예술, 수학, 정치, 금융, 처세에 있어서는 똑똑하고 현명하고 지혜롭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구원자를 알고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는 어두움 가운데 있을 뿐입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가 필요한 죄인일 뿐입니다. 각자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현 시대의 유대교는 불교, 이슬람교, 도교, 카톨릭교와 나란히 놓일 뿐입니다. 유대인이면서 구원받은 사람은 유대인의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고 한국인 신자, 중국인 신자, 미국인 신자, 독일인 신자.... 들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구원받은 신자이지 구원받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영적으로 특별한 위치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민족의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거처로 세워져가는 일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도 동일합니다.   유대인 종족 전체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가치를 되찾는 길은 오직 주님께 돌아설 때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여야만 가능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 기록되었듯이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게 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현 시대의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읽어도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를 더 잘 알고자 유대인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의 어느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행하는지 살펴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참조사항일 뿐입니다.   모세오경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유대인을 인용하여 누군가 킹제임스성경을 헐뜯으려한다면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유대인의 주장은 절대 권위가 될 수 없음을 당당히 선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서 봤더니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던데 하면서 누군가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뒤흔들려고 한다면 현 시대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만큼만 인정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누군가 유대인이 보는 성경을 가지고 와서 킹제임스성경이 틀렸다고 지적하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킹제임스성경과 다른 구절이 있다면 틀린 것은 그들의 것이지 킹제임스성경이 아닙니다.   “선포된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4장 2절]  
2013-12-04 18:48:05 | 김재근
    안녕하세요?   공지해 드린 대로 성경 신자를 위한 <필수 설교/강해 40선> MP3 CD를 제작 중에 있고 이번 주말에 나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709   이 CD가 필요한 분들은 다음으로 주문하시면 10일 이내에 무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이메일 주문만 받습니다.   order@cbck.org   주문은 반드시 10매 단위로 하셔서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셔야 합니다(최소 10매).   주문 이메일에 성함, 주소, 전화번호, 우편번호 순으로 기재해 주세요. (*) 반드시 우편번호를 넣으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3-12-04 14:19:28 | 관리자
어느덧 2013년 한해도 마지막 달력을 남기고 있습니다. 모든 형제님들께 주님의 평안이 함께 있길 바랍니다.   연말이 되면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교회들마다 일명 “말씀 뽑기”를 해서 성경구절이 적힌 책갈피를 고르곤 합니다. 심지어 한 개로는 성에 차지 않아 몇 개씩 집어가서 그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이 적힌 것으로 정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그 말씀이 새해에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복된 말씀이라고 기대들을 합니다.   표현이 다소 불경할지는 모르나 이런 일들이 제게는 말씀을 점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네요. 하나님말씀이니 그냥 별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몇 번 해왔지만 요즘 들어 제 마음에 자꾸 불편함이 생깁니다. 더욱이 말씀을 뽑는 순간엔 복권을 맞출 때와 비슷한 긴장감(?)마저 드는 게 참 이상한 기분 이었습니다. 어릴 때 야시장에서 일명 “돈 놓고 돈 먹기”같은 도박을 경험 하는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마 4:4).   물론, 그 말씀 뽑기 통 안에 있는 책갈피 중에 읽어서 듣기 싫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말씀이 다 유용한 말씀이겠죠.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말씀을 사모한다는 취지로 하는 것이라도 어린 자녀들과 배우는 청소년들을 생각 한다면 교회 내에서 오해와 그릇됨의 씨앗이 될 만한 잘못된 관행 같은 것은 과감히 배척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형제님들의 생각들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박천호 올림
2013-12-04 14:02:45 | 박천호
샬롬! 위에 김대용 형제님께서 전체적인 내용을 잘 설명해 주셨네요. 제가 조금만 덧붙여 보자면.. 1.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은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임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특권이지요. 우리의 기도소리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딤전2:1 보면..."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의 유형(?)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문제되는 건 중보라는 말의 정확한 성경적 정의입니다. 2. 중보(Intercession)- 렘7:16에서는 중재라고 번역됨. (1)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재(렘36:25) (2)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중재(롬11:2, 딤전2:1, 렘27:18) (3) 사람을 대신한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중보(사53:12, 히7:25) (4)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신한 성령님의 중보(롬8:26-27,34) 3.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기도의 측면에서의 중보는 항상 혼의 구원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사람의 구원 이외의 다른 문제들로 소위 중보기도 한 사례는 못 찾겠더라구요.- 이건 제 의견 입니다.) 창18:20-33 아브라함이 소돔에 사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 사례 출32:30-33, 신9:18-29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한 사례 4. 소위 한국 기독교의 전통과 문화로 이어져 내려온 모습들 가운데, 인간적인 측면으로 보면 무조건 나쁘다 비 성경적이다 라고 매도할 것은 많지 않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나온 서원기도책(?) 같은 것도 그런 인간적인 측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목회자나 다른 성도들이 기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기도의 내용과 마음가짐과 열매들을 성경의 원리에 비춰 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의 부모님도 기도 생활을 정말 철저히(?) 하시는데, 그 열정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매일 교회에서 주무시면서 기도하시니까요) 그런데 인간이지라 올바른 진리안에 거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저도 인생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저희 어머니께 기도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끼는 건 매일 기도하시니까 기도 응답이 더 빠르겠지...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을 발견되었습니다. 5. 그런데 어느날 바로 그 점이 옳지 못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기도 영발이 쎈 누군가의 기도를 의지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것들을 깨달은 뒤로는 저 자신을 더욱 조심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 정리하자면, 성도들이 어떤 급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다만 그 기도 내용이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시겠지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연약한 내 입술로 기도한 것보다 기도 영발이 쎈 누군가를 의지해서 응답을 받으려 하는 기복적인 마음과 태도입니다. 인간적으로 좋아 보인다 하여 하나님 앞에도 좋을 것이라는 착각은 늘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2-03 00:20:57 | 오광일
예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일부 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지인들에게 킵바이블 소식을 들려줘 봤지만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요. 교회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고요. 매우 안타깝지만...
2013-12-02 19:48:59 | 함치선
목사가 교인들의 기도제목을 취합해서 수시로 기도한다는 이야기는 일반 교회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일입니다. 물론 목사도 성도의 한 사람으로서 성도들의 필요와 소원하는 바를 알고 함께 기도한다는 의미라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깊이 들여다보자면 대부분이 무언가 목사의 기도가 다른 성도들의 기도보다 특별히 더 효력이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요? 목사가 기도해 주면 무언가 좀 더 특별하고 응답이 잘 될 것 같고 또한, 목사에게 가서 삶의 자질구레한 문제까지도 상담하고 싶은 마음 등은 신약 시대의 성도에게 결코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대신 속죄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원받은 후 영적으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유대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이 있었지만 신약 시대는 더는 그런 체계가 아닙니다. 바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되는 만인 제사장 체계(보편적 제사장 체계)가 세워졌습니다. 구약 시대에 성막 안에 위치한 지성소는 대제상장만이 일 년에 한 번 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신 속죄의 죽으심으로 그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마27:51, 막15:38) 그리하여 신약 시대의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제사장으로서 새롭고 살아있는 길로 영적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스스로 자신의 소원하는 기도를 아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히10:19~20). 그래서 바른 신약 교회에서는 목사에게만 특별히 기도를 부탁하는 일보다는 성도의 간절하고 때로 시급한 기도제목을 모든 성도들이 나누어 함께 기도하는 정도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글도 참조해 주십시오. *축복 기도는 목사님만의 특권일까? (고후13:14)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607&sfl=write_subject%7C%7Cwrite_content&stx=&sst=write_datetime&sod=asc&sop=and&page=13 물론 지혜롭게 잘하시겠지만, 혹여 킵바이블에서 배운 지식으로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 가셔서 다른 교인이나 목사님에게 무작정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거의 대부분 이렇게 되면 영적으로 아무 유익이 없고 논쟁과 분란만 일어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형제님과 가정이 더욱 구별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정진하시면 족하다 생각됩니다. 부디 잘 헤아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3-12-02 10:16:16 | 김대용
자주 들어와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일예배를 마치고 서원록 양식을 받아 왔습니다. 오래 전에는 서원록을 써서 교회에 제출을 했지만 몇년 전부터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제 아내와 어머니께서는 왜 작성을 하지 않느냐고 여러차례 얘기를 했지만 제 임의로 작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가톨릭에서 하고 있는 고해성사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하고 전 교인의 기도제목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목회자가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에 합당할까? 라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서원록에 대한 합당한 구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013-12-01 21:30:03 | 함치선
참으로 도전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단순한 진리 하나만으로 충분해야 하는데, 화려한 쇼와 이벤트에 길들여져버린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볼때 참...답 없다..하는 답답함도 들지만.. 형제님의 말씀처럼 돌아가야지요... 단순한 진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 세대가 하나님 앞에 증명해 보였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샬롬!!
2013-11-29 20:41:01 | 오광일
 킹 제임스 영어 성경,   셰익스피어보다 더 막강한 힘으로 영어를 전파했으며, 17세기 청교도 혁명(제임스 왕의 아들인 찰스 1세가 이 때 처형됨)에서 정치적 논쟁을 가능하게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문장들은 미국에서 권리와 정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의 주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언젠가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은 킹 제임스 성경의 이사야 40:4-5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미국 최초의 로마 카톨릭 신자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조차도 취임 연설에서 “험한 땅은 평탄해질 것이고, 굽은 길은 곧게 펴질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 만물이 그 모습을 함께 보리라.”라고 이사야 58:6절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77년에 킹 제임스 성경의 우월성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새로 번역하게 해 주십시오. 폐하.” 청교도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존 레이놀즈의 한 마디는 성경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제임스 왕(제임스 1세)의 전임 왕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시로 1568년에 비숍(Bishop: 주교, 감독) 성경이 이미 번역되어 있었지만, 청교도들은 이 성경을 신교황주의를 옹호하는 영국 왕실 감독파(성공회) 세력의 도구로 생각했고 제임스 왕 본인조차도 이 성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존 레이놀즈와 같은 청교도(요즘의 장로교인들)들은 1560년에 제네바의 칼뱅 치하에서 번역되었던 제네바 성경을 선호했습니다. 이 성경의 특징은 주석이 많았으며, 특히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폭군(tyrant)이라는 단어가 이 성경에는 400번도 넘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폭군은 누구를 얘기하는 것일까요?   제임스 왕은 ‘감히 영국 교회의 머리인 왕에게 멋(?)대로 덤비는’ 제네바 성경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비숍 성경을 바탕으로 번역하라고 왕이 요구했음에도 킹 제임스 성경 중에서 비숍 성경과 일치하는 부분이 8%도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왕에게 충성을 했다기보다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을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주는 일절 달지 말라. 제네바 성경에 실린 주해를 살펴보니 ... 몇몇 내용은 지극히 불공평하고 거짓되고 선동적이며, 위험스러운 반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그 외 제임스 왕의 지시사항은 충실히 지켜졌습니다.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 중 란셀롯 앤드루스는 왕실 감독파의 대표자였고, 존 레이놀즈는 제네바 성경을 선호하며 왕에 반항적인 청교도 무리들의 대표자였습니다. 또한 탁월하며 믿음이 충만한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파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요? 본인들의 정치적인 입장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믿습니다.   제네바 성경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 무리들(장로교의 ‘노회’라는 말을 왕 앞에 써서 왕을 화나게 했던 사람들)은 그 땅에 정착하면서 호전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청교도의 특징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이들은 개척으로 영토가 커지고 힘이 강해지자 ‘국가’의 권력과 지원으로 성경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애덤 니콜슨에 의하면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이단, 주술, 신성모독, 우상 숭배, 안식일 파괴 같은 온갖 범죄를 처리하느라 민사 법원이 항상 북새통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죄악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상황에 맞는 성경이 필요했고, 분리주의적 성격이 강한(감히 왕에게 덤비는) 제네바 성경은 내려오고 이 때부터 미국은 킹 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신대륙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언어로 거듭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왕 대신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통치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선포하게 된 것이 역설적이게도 킹 제임스 성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자, 윌리엄 틴데일이 선보인 수많은 단어와 구절들이 오늘날의 영어에 녹아 있습니다. 정확한 번역은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Let there be light(빛이 있으라) 창 1:3 not my brother’s keeper(내 알 바 아니다) 창 4:9 filthy lucre(더러운 돈) 딤후 3:3,8 lu- : Lucifer(마귀, 사탄), luxury(화려함) - 탐욕,교만과 연관되어 있는 단어들입니다.   fight the good fight(싸우려면 의롭게 싸우라) 딤전 6:12, 딤후 4:7 flowing with milk and honey(젖과 꿀이 흐르는) 출 3:8,17 the apple of his eye(눈동자) 신 32:10, 시 17:8 a man after his own heart(죽이 맞는 사람) 삼상 13:14 the spirit is willing but flesh is weak(마음은 굴뚝 같은데 몸이 안 따른다) 마 26:41 signs of the times(시대의 징후) 마 16:3 ye of little faith(믿음이 부족한 자) 마 6:30, 8:26, 16:8, 눅 12:28 eat, drink and be merry(먹고 마시고 즐겨라) 전 8:15, 눅 12:19 broken-hearted(상처받은 마음) 사 61:1, 눅 4:18(킹 제임스 성경에는 dash가 없습니다.)   사랑침례교회 사이트에 접속하실 때 창으로 뜨는 “영화 : 세상을 바꾼 책(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를 함께 보시면 감동이 더욱 넘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도서 :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멜번 브래그 저/이원경 역/랜덤하우스, 2007
2013-11-29 18:45:30 | 송호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 주셨네요. 지당합니다. 사전적인 의미의 '겸손'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 가능한 것이고 창조물인 인간에게 해당하는 겸손은 먼지와 같은 창조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뿐이고 그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발견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겸손 즉,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를 보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한 은혜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그제야 우주를 가르는 이 위대한 진리 속에서 사람은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미처 글로 담지 못한 내용을 보충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2013-11-29 16:39:04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