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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2481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기가 하는 일, 자기 생각은 모두 옳다고 인정해주고 육신의 성격에 딱 맞는 교회가 있다면 비로소 완전한 교회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2013-08-06 13:31:37 | 류인선
무더위에 수고하십니다. 저는 피디에프로 올려 주시는 자료들을 유익하게 보고있는 컴맹 형제입니다. 화면으로 보면 눈부심도 심하고 하여 복사를 하여 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읽게 할 요량으로..... 지금은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를 보고 있는데 어제 주일 부터 복사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따를 수 밖에 없지만 어쩐일인지 궁금해서요. 궁금증을 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요.
2013-08-05 09:26:35 | 박수복
제법 긴 시간을 홀로 신앙생활 하다가 근래에 지역 교회에 출석을 시작한 저에게 매우 각별하게 다가오는 묵상입니다. 글을 읽으며 나는 왜 지금 이 지역 교회에 출석하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골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홀로 예배하며 고독하지만, 양심의 자유를 만끽하던 소중한 시간의 교훈을 잊어버릴 때 존재의 의미와 역할을 상실한 녹슨 나사 하나로 전락하겠지요. 제아무리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지역 교회라 해도 끊임없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을 때 누구라도 팀킬을 벌이는 내부의 적 곧, 돌연변이 세포로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귀한 묵상의 글에 감사합니다.
2013-08-04 23:53:19 | 김대용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기독교 교리를 딱 함축적으로 요약해 놓음과 동시에, 요즘 같은 인본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거론하기가 정말 과격하고 거북하고 구호이다.또한 이것은 논리적으로 굉장히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명제이기도 하다.책임이라는 게, 굳이 크리스천이 세상을 상대로 꼭 좋은 행실을 보여야 하고 모범생, 일류, 능력자, 리더 행세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선행이 아니다. 그보더 더 원론적으로... 예수쟁이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전에 자기네끼리부터라도 잘 지내야 한다!자기 깡으로 아무리 착하고 의롭게 살아도 예수 안 믿으면 죽어서 자기 죄 가운데 죽고 지옥 간다고 경고했는데.. 그럼 역으로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서로 어떻게 지내야겠는가?좋은 간증 지키는 방법이 다른 먼 곳에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가시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불신자 부부는 조금만 틀어지고 자기 이익이 침해받는다 싶으면 싸우고 이혼할지라도, 크리스천 부부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믿을 수 없으니 툭하면 법이나 시스템의 힘으로 분쟁을 해결한다 해도 크리스천 내부의 문제는 가능한 한 더 선하고 훈훈한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그런데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교회엔 공통된 신앙 빼고는 지역색이 다르고 정치 성향이 다르고 취미와 성격과 성장 배경과 가치관이 다 도무지 같은 게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그래도 성도들간에는 교리 문제나 반역 문제가 아닌 이상은 이해와 사랑, 희생과 헌신, 섬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만치 거짓 교리, 악의적인 불순분자에 대한 분리와 에러 복구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람의 구원 여부를 기계적인 방법으로 판별할 수 없는 이상, 이 능력은 교회 성도에게 필수이다.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신앙과 관계가 없는 세상적인 소재를 두고 끼리끼리 갈라지고 친목질에 심지어 팀킬을 벌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비슷한 논리를 다루는 바알세붑 팀킬 가설은 복음서에서 마 12:24-26, 막 3:22-26, 눅 11:14-19에 무려 3콤보로 기록되어 있다.그 대신 교회에서는 성도들 공통의 목표와 공통의 믿음을 대외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건 거리 설교의 큰 유익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기독교 정부, 기독교 국가, 기독교 기업, 기독교 학교를 만드신 게 아니라 그냥 간단히 지역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미 변개되지 않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문자적인 이스라엘의 회복과 문자적인 환난 전 휴거+천년왕국을 가르칠 정도로 건전한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복받은 처지에 있는 줄 알고 그 교회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도록 하자.성경은 그리 호락호락 만만한 책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가르치지만 그걸로 끝이 절대 로 아니며 그 뒤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아주 판타스틱한 일생 여정을 가르치고 있다.
2013-08-03 06:12:19 | 김용묵
내가 생각하는 3대 크리스천 바보   1. 유대인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2. 예수님은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교회는 싫어하는 사람3. 성경 맹신주의, 성경의 우상화.. 이런 말을 쓰는 사람 애초에 불신자야 저런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 없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종교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다음은 아이템별 간단한 해설이다. 내가 괜히 ‘바보’라는 말까지 쓰는 게 아니다. 1. 반유대주의   우리도 그들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죄인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아니 그럼 예수님이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안 죽으셨으면, 우리가 직접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됐을 것이다. 도대체 유대인을 특별히 미워해야 할 명분이 어디 있는가?   성경의 기독교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절대로 반유대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정작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고 기독교를 매우 싫어하지만 그래도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문자적인 회복을 예언하며, 이 교리가 사실 화체설, 마리아, 연옥 이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 사이의 매우 큰 교리 차이이기도 하다.   (화체설, 마리아 무염시태, 연옥은 그나마 개신교에서도 부인하는 천주교 교리이지만,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번에 나온 요한계시록 바로 보기 책에서도 잘 다루고 있다.)   물론 유대인들도 죄악에 빠졌을 때는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여타 민족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벌하고 심판하셨다. 많은 불신자들이 간과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많은 만큼, 계약 위반시 뱉어야 할 것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쟤들이 뭔가 죽이고 학살한 게 더 많았나, 아니면 반대로 자기들이 당한 게 더 많았던가?   그 ‘여타 민족’에 크리스천이 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였던 사람들이 최후가 좋았던 적은 없다.2. 교회 무용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당신이 싫어하는 교회의 머리이기까지 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싶고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떳떳하게 회계 보고를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주변에 도저히 마땅한 교회가 없다거나),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어차피 완벽한 교회란 없고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만 이뤄진 교회도 없다. 한 치의 허물도 없는 완벽한 교회가 있다면 당신이 거기에 가입하는 순간 그 무결성은 깨진다.대형 교회는 부패하고 돈만 밝힌다고 싫고, 작은 근본주의 교회는 교조주의적이고 ‘가오’가 안 난다고 싫다면 그건 뭐 무슨 상황이든 어차피 싫다는 변명일 뿐이다(마 11:18-19). 3. 성경(말씀) 무용론   이건 도대체 기독교의 믿음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극심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대해서 어떤 지위를 부여하시는지를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이 들어가야 할 곳에 성경이 들어가는가 하면(요 7:38,42; 롬 9:17, 11:2; 갈 3:8,22 등) 시 138:2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이름보다 크게 높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이름도 이미 얼마나 높은 존재인지는 빌 2:9 같은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 높은 성경을 안 믿으면 무엇을 믿겠으며, 아무리 굳건히 믿어도 시원찮을 성경이 어찌하여 ‘맹신과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행실이 바르지 못한 크리스천, 육신적인 신자를 빌미로 성경을 폄하하고 특히 킹 제임스 성경 탓을 하는 주장을 매우 싫어하고 경계한다.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짚은 발상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증은 윤 성목 목사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바보 크리스천 말고, 바보 불신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성경에서 시 14:1이나 눅 12:20에서 다루고 있다. 이 역시 누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다.
2013-08-03 06:08:30 | 김용묵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것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히 11:1~3}" 하나님께서 구원을 믿음의 영역 안에 묶어 두신 것이 참으로 합당하다는 것을 세상을 더 알고 사람을 더 알고 삶을 더 살아가면 갈수록 더욱더 깊이 절감하게 됩니다. 요즘은 세상은 물론이고 교회 안 구석구석까지 보이는 것들을 숭배하는 일이 가득하며 목사와 장로 등 교회를 치리 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감각적이고 가시적인 것을 쫓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제 막 바른 기상을 키우고 신앙을 올곧게 성장시켜 가야 할 청년들이 십자가 아래에서조차 변종인간으로 성장하길 강요받고 있는 현실이지요. 돌이켜보면 이런 일은 그 지독한 욕망의 사탕을 교묘히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란 허울 좋은 거짓으로 포장해 청년들에게 안길 때부터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상식조차 포기하고 자신을 보이는 것에 굴복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바른 진리가 더 널리 전파되기만 소망할 뿐입니다. 성경지킴이의(저는 특히 이 한글이름을 좋아합니다.) 윤활유라 할 수 있는 형제님의 글을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되시는 대로 종종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2013-08-01 23:00:31 | 김대용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신 내지 절대자에 대해서 여러가지 크고 작은 불만· 불평을 품고 있다.그 근거 중에는 어떻게 해 주든 어차피 트집잡으며 불평하는 비논리적이고 질 나쁜 불평이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마 11:18-19가 아주 대표적인 예이다.그런 것들을 다 제끼고 나면 그래도 좀 합리적이고 한번쯤 생각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의문사항이 소수 존재한다. 신이 정말 있기나 한지 모를 세상의 온갖 죄악과 범죄와 비리와 불공평 말이다. 나쁜놈들은 잘 살면서 착한 사람만 손해 보는 사회 시스템 등.특히 사회 구조 매사에 불만이 많은 진보 성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공 우익 성향이 강한 분들도 이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나빠서 그 최악의 지상지옥 김씨 왕조 독재 체제를 몇십 년씩이나 아직까지 멀쩡히 놔 두고 계신 걸까? 진보를 해도 성경보다 더 앞서 가서는 안 되듯, 반공을 해도 하나님보다 더 심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악인의 번영에 대한 고찰은 성경에서도 하박국서나 시편 73편에 몇 차례 언급되어 있다.허나, 내가 보기엔 겨우 악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이유를 따지는 건 그렇게 수준 높은(?) 불평이 아니다.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사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신에 대해서 이의 제기를 할 거면 최소한 이런 걸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을 왜 도무지 정량적으로 측정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는가? (그래서 인간 사회를 이런 헬게이트로 빠뜨렸나?)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교육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누구나 황금 만능주의의 폐단을 외쳐도 현실에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 맨날 인성 교육 윤리 교육을 외쳐도 공염불에 그치는 이유가 전부 저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돈밖에, 시험 점수밖에 제일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게 없으니까 말이다.더 나아가면, 구원의 길을 좀 확실하게 과학과 수학의 힘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에다 안 놔두고, 왜 두리뭉실 어정쩡한 믿음의 영역에다 놔 뒀는지, 왜 그런 경륜을 만들어 놨는지 그 자체가 신에 대한 트집거리가 될 수 있다.그런데 그걸 밀고 공략하려다 보면 결국 자가당착에 빠진다. 하나님은 다른 물질적인 여건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마다 제각각 놔뒀지만, 구원 같은 진짜 인간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아무 스펙 없이도 접근 가능하게, 정말 공평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돈의 힘으로 스펙 쳐바른 배우자와 결혼하고 열쇠 세 개는 장만할 수 있어도, 돈으로 이혼 없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구입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진짜 행복을 선사하는 진리는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고 감사할 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기독교 변증이라는 게 별 거 아니다. 없어졌으면 진작에 없어졌을 정도로 일면 황당하게 들리는 복음이 그렇게 호락호락 허술한 논리로 이뤄진 게 아니다. 괜히 소멸하지 않고 2천 년 가까이를 버틴 게 아니다.
2013-08-01 21:26:17 | 김용묵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품꾼 비유는 논조가 다소 이질적이며,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만큼이나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고, 마감 한 시간 전에 와서 1시간만 달랑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에다 이런 불공평한 이야기를 왜 써 놓으신 걸까?나도 하나님의 심정을 다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이나 인류 역사에서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짐작해 보건대, 하나님께서 그런 정책을 취하시는 것이 충분히 가능은 하다는 걸 느낀다.저 비유는 ‘하나님의 주권’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똑같은 예수님의 사도 중에서도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곧장 순교한 반면 베드로는 천사가 와서 몇 번이고 구해 줬다. 이것은 하나님이 근본 성품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쟁이 기분파여서라거나, 야고보가 베드로보다 영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또한, 세상에서 꼭 실력 좋은 사람만 1등을 하는 게 아니라는 자조적인 차원(전 9:11)의 이야기도 아니다.욥은 현대인 같았으면 몇 번이고 멘붕을 거듭하다가 자살했을 정도의 최악의 고난과 시련을 경험했다. 이를 체험하고 욥이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은 것은 바로,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분께서 자신에게 그 어떤 일을 허락하시든지 그분은 선하고 전지전능하신 면모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욥을 죽을 때까지 그 상태로 내버려 두시든,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 불에서 보호하지 않고 순교하게 내버려 두시든지 말이다(단 3:17-18).그 정도인데 그런 하나님이 하물며 비유에서처럼 일꾼을 고용하고 품삯을 주는 정책 하나조차 마음대로 결정을 못 하시겠는가?애초에 하루 일당을 1데나리온으로 계약했으니, 그 주인은 나중에 말을 바꾸지도, 임금을 떼먹지도 않고 품꾼에게 그 약속을 정확하고 성실하게 이행했다. 이게 바로 포인트다.나중에 다른 일꾼이 추가 투입될 수도 있고 그들은 일당을 얼마만치 받을지에 대해서는 애당초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건 주인 사정이고 추가 일꾼의 사정이지,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인 것이다.그런데 그런 걸 자꾸 부각시킴으로써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신뢰를 틀어지게 만들고, 자기 처지를 불평하게 만들고 남을 탐내고 원망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역사이다. 공산주의도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생겨났다.주인의 이런 반응에 삐쳐서 “흥, 그럼 다음부터는 나도 문 닫을 때 다 돼서 일하러 가야지” 같은 잔머리를 굴리는 건 별 의미나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솔로몬의 재판을 보고는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이 무슨 이런 허접한 재판이 다 있냐? 그럼 나도 아기를 납치한 다음엔 상대방에게 아이를 주라고 생색 내면 되겠네.” 이러는 것과 똑같다.성경을 읽고도 그 집필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숲을 보지 못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인간의 잔머리에 결코 조롱· 농락을 당하지 않는다는 힌트까지 알려 놓으셨다(갈 6:7).이런 비논리적인 하나님 무조건 킹왕짱 정신승리법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기본 원칙이며, 크리스천과 불신자의 사고방식의 큰 차이 중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고 엎드리고 바보 되는 것 말이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셨고 킹왕짱 사랑을 베푸셨으니까!요컨대 마태복음 20장의 품꾼 비유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1데나리온 일당을 지급한 눈에 띄는 정책 자체보다도,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주권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은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분야에는 정말 칼날같이 공평하며, 정말로 논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완전 철두철미한 논리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물론, 그냥 영적으로 적용해서 모태신앙으로 나태하게 산 사람보다 뒤늦게 구원받고도, 알찬 인생을 살고 주님으로부터 상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될 것이다”란 교훈이 뒤에 등장하니까 말이다.
2013-08-01 21:06:04 | 김용묵
  저희 대구지역에 드디어 이번 금요일부터( 8월2일) 바른 말씀을 사모하는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금요일 오후 7시 30분 각자 저녁 해결 후 모이기로 했습니다. 교재 :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말씀을 가르쳐주실분 : 최근 포항에서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신 김 문수 목사님 장소 : 수성구 황금동 근처 어학원  이번에 시작되는 이 작은 모임을 통해 바른 말씀에 기초한 바른 교리로 세워지는 교회들이 대구 지역 곳곳에 일어나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성경공부 모임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 바랍니다.   임정휘 010-4655-0980
2013-07-31 14:10:30 | 임정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