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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일어나는것이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곳에 오신 많은 분들이 거의 자매님과 같은 현상들(?) 을 경험하셨다면 조금 위안이 되실려는지요 바른길 좁은길로 오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시33:4 주의 말씀은 옳으며 그분의 모든 일은 진리안에서 이루어지는도다.)
2010-11-01 08:49:10 | 송재근
자매님!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 없는 가운데도 생수를 찾는 영적인 갈등이 주님의 은혜네요. 좋은 책을 통하여 기왕에 습관적인 종교인의 생활을 알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잘못된 것을 알았고 참된 것을 알았으면 이전것은 다 배설물로 버리고 오직 참된 것을 따르는 것만이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길이에요. 남편과 함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인지 자매님 자신이 아실거에요. 그것을 어린아이같이 주님께 다 말씀드리고 주님의 평안의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흠정역 성경을 선입견 없이 초심으로 읽어나가세요. 혹 바쁘시겠지만 시간이 허락되시면 사랑침례교회에 방문하시면 매주 목요일 11시에 자매모임도 있어요. 작은 소모임이지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2010-11-01 01:04:44 | 이정순
저는 아들만 셋둔 32살의 주부랍니다. 신앙생활은 모태신앙(못된신앙??)이고 정말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했지요~ 작년까지요~(셋째 임신상태)   헌데 울 신랑(당시 신학생)이 읽어보라고 던져주었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고 그동안의 모든 신비주의며 은사주의 잘못된 신앙관들을 다시금 집어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곳 사이트를 통해 여러 설교와 글들을 통해 잘못된 것들은 단호히 버렸답니다.   많은 우여곡절속에 울 신랑이 흠정역 성경을 읽어보라고 사주었는데.......갈등이 시작되었네요.......   제 마음속에........갈등..........신앙생활 전부.....작은것부터 제가 옳다고 여겼던것까지....뭐가 정답이고 진리인지... 가슴에 뭔가 답답함이 있고...바로 알아야 할것만 같고...헌데 지금까지 해왔던것들이 그냥 버려지지도 않네요 교회의 전통들을 일일이 토를 달아 비판할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될것 같고..(죄 짖는것 같아서...) 그렇다고 잘못된 것들을 알고난후 무작정 받아들여지지도 따르고 싶지도 않구요. 주위에 전도할 아줌마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은데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교회로 그냥 다 데려 가면 되는건지...........도대체 신앙생활이 뭔지........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네요.....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치고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노라 했던 옛 나의 모습을 보면 신비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고.....그냥 말씀없이 진짜 진리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로 끝나버릴것만 같고 다른 신앙의 동역자분들(목사님, 사모님)도 옛 제 모습과 똑같거나 오히려 비이성적인 조언으로 믿음생활할 의지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신랑은 지금 흠정역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며 차근차근 뭔가를 쌓아가고 방향을 잡은 것 같은데.... 전 그것에 함께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에 머무를수도 없는 붕~ 떠있는 상태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으로 바르게 가르치기 원했던 저였건만 지금 제 상태가 이렇기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제 불안감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만 가니...........어찌해야할지..... 그냥 답답해서요...........아이들 키우면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그거보다 더 힘든건 영적으로 목말라 방황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더 힘드네요.......   아....예수님의 목마르지 않는 그 생수.........마시고 싶은데.......그냥 기도하면서 말씀 읽으면 해결 되는걸까요? 매일 하루하루가 갈등이 아닌 진리와 구원의 기쁨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p.s 속 터놓고 얘기 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남겼는데.....괜찮나 모르겠네요....도움 받고 싶어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3:58: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1 00:24:48 | 주경선
이 글은 제가 구원을 받은지 20년 쯤 되었을 때에, 믿음을 정리하고 날로 혼탁해져가는 한국의 기독교 현실에서 성도들에게 전해주고싶은 마음에 약 1년 동안 작성했던 산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   우리가 성경을 믿는 이유   세상에는 성경 말씀만큼 단호하고도 부드럽고 마음을 찢으면서 치유하는 말씀은 없다.   보편적 진리 :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위로가 되는 진리 : 그분은 환란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압도하는 책임 : 그분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시간의 지도地圖 : 창조에서 구원의 길까지. 이정표 : 새 하늘과 새 땅.(영원한 안식) 그리고 그토록 황송한 선물 :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선물을 받은 결과 : 회개와 죄 사함과 거듭남. 그토록 장엄한 사실 :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그토록 담대한 기준 : 네가 거룩하게 되리라. 그토록 과감한 명령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경은 인류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다른 어떤 책도 그토록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며 존중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비참함과 희망에 대하여 그보다 고결하게 부르는 노래가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필요를 성경보다 예리하게 지적한 것은 없다. 범죄한 영혼을 자극하는 말씀과 멸망할 자들을 끌어올리는 약속이 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의 가장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기도하고자 하는 자는 그에 적절한 언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역사 속에서 나타났지만 역사의 상황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은밀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그것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환경, 모든 시대에 살고 있는 만인의 이야기다. 그것은 세계다. 그것은 모든 개인과 나라들에도 길을 보여준다. 성경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되울리며 인간의 오만 방자함이라는 갑옷을 찢어버린다. 위대한 시인이 등장할 때, 그는 자기가 시인임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시가 스스로 말한다.  천재는 스스로 입증된다. 성경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독자성을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성경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혼을 사로잡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거나 '교리'라는 깔때기로 인간의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빛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성경은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보다 뛰어난가? 어째서 성경과 비교할 만한 인간의 생산품은 없는가? 어째서 성경과 바꿔치기 할만한 것이 어디에도 없으며 성경이 빚어낸 역사에 상대할 것이 없는가? 어째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으려는 자는 성경을 열어야 하는가? 인간의 천재들이 지어낸 위대한 책들을 성경 옆에 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는지 보라. 성경은 형식, 미사여구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갈피마다 장엄함이 배어있다. 성경의 구절들은 저마다 너무나 늠름하고 동시에 너무나도 단순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평가를 내려야 될 지를 가늠 할 수 없는 작품이다. 학문의 다림줄로 그 깊이를 잴 수 없으며 비판적 분석으로 그 핵심을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격찬할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의 통찰은 우리의 기준을 넘어선다.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과거는 물론 미래도 무의미하고 어두우며 견뎌낼 수 없는 것이 될 그런 책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책들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성경을 평가 하려다가는 우스꽝스럽게 되기가 십상이다. 어떤 정신력도 성경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성경의 가치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인간의 지성은 어디 있는가?   성경은 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상에서 정신의 한계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과 연결된 유일한 것이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책! 이 세상에서, 이 영겁의 세월 속에서, 성경은 영靈을 담고 있는 영구적인 그릇이다. 이 납득될 수 없는 사실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언제나 지각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전능한 힘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깨끗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일그러지고 잘못 이용되는 수가 간혹 있다. 그러나 아주 못된 공격을 물리치는 성경의 능력은 무한하다. 2천년이 넘도록 계속된 논쟁과 교리의 동록(銅綠)에 묻혀서도 성경의 생명력과 진실성은 여전하다. 신학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용과 남용으로 붕괴되지도 않는다.   성경은 끝없는 영(靈)의 운동이요, 그 파도가 인간의 단점의 가파른 벼랑을 때리는 대해(大海)며, 절망과 싸우는 인간의 막다른 골목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메아리이다. 성경에 대한 무감각보다 더 큰 인간의 우둔함은 있을 수 없다. 그 무엇에 설득 당하지도 않고 깨어지지도 않고 세월과 함께 낡아지지도 않으면서 성경은 이 땅의 모든 언어로, 모든 시대에 말한다.   3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경은 하루도 나이 먹지 않았다. 그것은 죽지 못하는 책이다. 망각은 성경을 피해 도망간다. 2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읽고 조사했지만 인류는 그 완전한 의미를 밝히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에도 여전히 성경은 우리에게 낯설고 여전히 다 파악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읽기를 시작조차 못한 듯이....   성경은 어느 한 세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 언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가운데 몇 줄을 읽어 그 구절의 뜻에 우리의 영이 맞아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소리가 이르되, 외치라, 하매 그가 이르기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 이사야 40 : 6-8 )     이런 표현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누가 이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의 지혜, 가르침, 권고 등은 인류가 도달한 학식과 결코 상치(相値)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훨씬 앞지른다. 예컨대 인간의 평등이라는 관념은 우리의 입술에서는 이미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과연 그것은 거역할 수 없고 근절할 수 없는 확신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성경은 시대에 뒤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을 오히려 앞지른다.   성경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었고 인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은 인간이 이룬 가장 훌륭한 도덕의 원천이다. 고귀하고 정의로운 것의 대부분이 성경에서 나왔다.   성경의 목적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다. 성경이 주는 지혜, 아름다움도 좋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며 그것을 얻게 하는 그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구역질나는 것임을 선포한다. 또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이며, 한편 인간이 하나님의 문제임을 선포한다.   성경은 말로 나타난 성스러움이다. 이 시대의 사람에게 언어만큼 익숙하면서도 진부한 것은 없다. 그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값싸고 가장 잘 남용되며 가장 덜 존중된다. 언어는 끊임없이 저속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언어 속에서 살며 언어로 느끼며 생각하지만 언어의 독립된 존엄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며 그 힘과 무게를 존중할 줄 모른다. 언어는 이제 입안에 가득한 먼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의 빛이 언어라는 틀로서 인간에게 주어졌는가? 도대체 자음과 모음이라는 부서지기 쉬운 그릇에 신성이 담겨져 있음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지상의 모든 것들 가운데 언어만은 소멸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을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뜻을 전달하는데 인간의 언어 말고 누구의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하나님이 이 언어에 당신의 힘을 불어넣으시어 그 언어가 그분의 영으로 충전되어 있는 전깃줄과 같다.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줄은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다.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데 어떤 다른 것을 이용할 수가 있었겠는가? 달의 표면에 있는 얼룩? 거대한 바위들?   인간의 언어가 성경을 이루는 데는 아무 잘못된 점이 없다. 이 세상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듯이, 성경 없이는 그분의 관심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성경은 그분의 음성이다. 다른 그 어느 것도 그분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김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 글자수 제한으로 전문을 다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전문을 다 보시고자 하는 분은 첨부파일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2010-10-29 13:13:35 | 류인선
다음 간증도 기대할게요. 주님을 만나시기까지 형제님께서 거쳐온 과정들이 특별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UFO, 한때는 저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들을 신봉하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서였지요. '천사와 UFO 바로 알기' 라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의 책을 읽게 된 지금에서야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요.^^ 생명의 길로 형제님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0-10-29 01:26:55 | 이은희
샬롬!! 저는 형제님의 이름만 보고 학술연구부장에, 역사에도 관심이 많으신 참 똑똑한 여자분이 다 있구나 했는데 [군대를 먼저 갔다오려고] 부분에서 풋~ㅎㅎㅎ. 성함이 낯설지 않네요. 결혼하기전까지 어려서부터 저는 청주에서 살았습니다. 청북교회 다니고 언니를 따라 상당교회를 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구원을 받았는데 그때 그렇게 교회를 잘 다니던 언니가 UFO를 신봉한다고 전해왔습니다. 언니는 청주에 살고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성도님처럼 진리를 아는분이 계시다니 그냥...그냥 저에게 큰힘이 되어 이렇게 덧글 남깁니다. 반갑습니다 형제님!! ^^
2010-10-28 22:44:13 | 이청원
샬롬! 이 세상 어디에서나,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빌며 제가 구원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간증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많이 다른 경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다가가게 됩니다.   제가 먼발치에서나마 하나님을 향한 길에 들어선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 무렵 호기심 충족과 취미생활을 겸하여 한국UFO(미확인비행물체)연구회에 가입하였고 나이에 비해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가진 식견을 인정받아 고2때 학술연구부장이 되었습니다. UFO와 하나님이 무슨 관계냐고 생뚱맞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조금만 더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감투를 쓰자 연구 아닌 연구에 더 매진하게 되었는데 약 1년 만에 “UFO는 사기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당시에 사기의 증거를 잡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학문이나 관심분야에 더 이상 찾아볼 것이 없을 정도로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했는데 알면 알수록 윤곽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그 학문이나 현상이 사이비과학 또는 조작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예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습니다. 알면 알수록 알기 어려운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이 전자제품을 하나 샀는데 고장이 나서 서비스를 받으려고 제조회사를 찾으니 찾을 수가 없으면 그 회사는 망했거나 유령회사일 것입니다.   UFO는 아무리 공부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그 현상을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둥 이용하는 세력(오컬트 단체 등)도 있고, 어설픈 지식으로 사탄이니 어쩌니 하는 주장도 있는데(일부 기독교계에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헛다리를 짚는 경우입니다), 그 조작세력에 관하여는 수년 후에 감을 잡게 됩니다.    어쨌건 이건 누군가 조작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관심분야를 ‘바꿉니다.  인간이 온 곳은 어디냐? 나는 어디서부터 온 존재인가?’를 알아보자고 방향을 설정하고 역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세계사를 섭렵하고, 고대사, 상고사를 더듬어 올라가니 신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 199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 옆자리에 누워있는 방통대 역사학과에 다니던 환자의 졸업을 도와주기위해 하룻밤 동안에 레포트를 대필해 준 일이 있습니다. [중국상고사 연구에 관한 고찰]이란 제목으로 기억됩니다. 나중에 들으니 방통대 역사학과 사상 3번째의 A+ 였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공부가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신화를 공부하자니 종교에 대하여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3대종교를 간단하게 개론 수준에서 공부를 하고 전 세계의 소수민족 종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하여 100개를 채웠습니다. 대부분의 신들이 잔인하거나, 이기적이고 성격이상자 수준이더군요. 토템부터 시작해서 섭렵한 그 수많은 종교들이지금은 다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래도 묘한 결론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 많고 다양한 종교들에 유일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세상의 모든 신화와 종교가 기독교와 대립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성경과 대립한다는 것이 맞다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제는 성경을 공부해야 할 필성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변에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몇 번 가 보았던 교회들은 미덥지가 못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친구 부탁으로 동방박사 그림을 그려주러 간 교회나 몇 교회들에서 설교를 들어봤는데, 내용은 잘 몰라도 교회 목사님 음성만 들어도 사기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습니다. 이유인즉, 제가 성경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프로파일을 조금 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관상학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중3 때부터 프로이트로 시작해서 심리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영화를 좋아해서 명배우들이 출연한 명작들을 많이 보며 나름대로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고, 촬영과 감독술에 대한 책들을 조금 보다 보니 제 주제에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사람이 말할 때의 음성과 표정이나 손의 움직임, 자세 등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을 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과장이나 거짓말 하는 사람은 잘 알아봅니다.^^   각설하고, 성경박사를 수소문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고(대학은 40세가 되어서 갔습니다), 군대를 먼저 갔다 오려고 비디오 촬영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중에 제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모가 소개한, “성경 잘 아는 사람”이 한다는 모 교회의 전도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됩니다. 성경 전반에 대한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복음이 아니라 고대문명과 신화 등과 성경의 관련성이었기 때문에 복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약간 겁이 났습니다. 성경은 사실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마는, 저를 위해 전도하시는 고모님 속이 타고 계신 것은 모르고 6개월간 그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3번이나 참석하는 동안에도 저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참석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틀 후, 정확히 1981년 8월 28일 오전 9시경 고모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맛있는 것 많이 해놨으니 놀러 와라”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놀러오라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꼬치꼬치 물어보시려고 부르는 것이구나, 이걸 어쩌나’ 하고 난감하던 차에, 어린 마음에 기특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른이 1주일간 매일 택시 태워주며 , 3번이나 데리고 다니셨는데 뭔가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니 답답해서 부르시는데, 찾아가서 이러저러한 것을 잘 배웠노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랫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곧 의관을 단정히 하고 도보로 약 20분 거리인 고모님 댁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가면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며 머리속에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10분쯤 경과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고, 참으로 의로운 재판장이시라는 사실, 나는 죄인이며 이대로는 하나님 앞에 결코 나설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더럽고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인지됨과 동시에 그 맑던 하늘과 앞길이 깜깜해졌습니다. 참 답답하더군요. 그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는 등 뒤로 던지셨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중에 그 구절들을 찾아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였습니다. 제 입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어둡던 하늘이 마치영화의 한 장면처럼 밝아졌습니다(실제 하늘이 아니라 모두 제 마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고, 제 마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가 충만했습니다. 일종의 득도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충만함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후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의 아니었으며, 특이한 것은 제 안에 있던 물욕(物慾)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글은 길게 썼지만 이 사건 1981년 8월 28일 오전 10시 10~20분 사이 불과 몇 10초 만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의 구원의 기쁨은 약 3개월 정도 지속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것이 구원인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나는 이제 모든 죄를 용서 받았고 예수님 덕분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짐작이 되시겠지요? 저보다 더 기뻐하신 분이 누구였는지. 간증이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를 인도하시고 구원의 은혜에 이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ps. 제가 살고, 신앙생활을 하는 곳은 충북 청주시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27 21:59:27 | 류인선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식용이 아닌 약용으로 포도즙이 아니라 포도주를 약간씩 쓰라고 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고 아내된 자매의 만성장염에 하루에 소주잔 한 잔 정도를 1주일 정도 사용해서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제가 포도주를 사용한 이유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포도주를 권했나를 궁금하게 여겨 디모데가 살던 지역의 포도주가 어떤 병에 치료효과가 있는지를 연구한 유럽의 한 의사의 연구결과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성경은 사실이라고 믿었기에 시작한 연구였다고 합니다. 오래 되어서 제가 접한 자료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적어도 그 시기가 적어도 킹제임스 성경이 만들어지기 전이고 당사자가 고등교육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니까 그 사람이 성경의 와인이 포도즙인지 포도주인지는 구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을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좌우간 그 의사의 연구결과는 장염균으로 인한 배탈, 설사병에 포도주가 살균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음주옹호론자가 아니며, 포도주라 할지라도 절대 함부로 마시지 않습니다만 와인을 일괄적으로 포도즙이라고만 번역을 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번역은 역시나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흠정역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다행이도 여기는 번역의 절대무오성을 강변하는 곳이 아니므로 마음 편하게 의견을 꺼내보았습니다.
2010-10-26 23:44:10 | 유인선
안녕하세요? 제가 심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알고있는 점만 조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해부학적으로, 심장에는 심장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한 완충제로서 물을 포함하고 있는 외막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심장을 찌르면 물부터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단 피와 섞여 배출되면 색이 구분이 안되므로 외견상 구분이 안될 뿐입니다. 만약 심장의 피가 완전히 응고되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응고된 상태에서 심장을 찌른다면 물과 피가 구분되어 보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 경우에 당연히 물이 약간 먼저 배출되겠지요? 성경은 사실입니다.^^
2010-10-26 23:30:05 | 유인선
어린 현빈이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참 의젓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동생을 보아서인지 더욱 그렇구요. 기도하는 현빈이 이야기를 들으니, 저희 혜지가 4살 때 하나님께 동생을 구하는 기도를 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육신이 연약한 엄마가 이기적인 생각에 아이를 더 낳지 않으려 했는데, 혜지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서 한나가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이미 동생을 본 현빈이의 간절한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2010-10-25 14:52:15 | 진숙희
참으로 예쁜 모습이었겠군요. 하나님도 기뻐하셨을 겁니다. 주님 안에서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크면 생각처럼 말을 잘 안 듣긴 하지만 아기 때 모습이 늘 겹쳐지고, 여전히 사랑스럽지요.ㅎㅎ
2010-10-23 10:25:33 | 김재욱
어제는 교회의 한 형제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늦게 집에 들어 왔다. 아내와 딸 그리고 3개월 된 은탁이가 곤히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바로 잠자리에 들어갔다.   아침에 부지런히 준비하여 회사로 출근했다. 1호선 전철을 탄다. 동묘역을 지나면 다음 정거장이 신설동역이다. 동묘역을 막 출발하는 전철 안에서 다음에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문득 생각에 잠겨 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전철이 신설동역에서 정차해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도 생각에 젖어서 결국 내리지 못하고 닫힌 문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뿔싸!!!!   황당함!!!!   제기동역에서 다시 계단을 오르고 또 내리고 해서 전철로  한 정거장을 되돌아 왔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내는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고 나는 열심히 들었다.   딸, 현빈이 이야기다.   우리 집은 방이 3개 인데 하나는 딸, 현빈이의 공부방이고 하나는 컴퓨터가 있는 나의 서재이고 하나는 딸과 엄마가 주로 잠을 자는 침실 방이다. 나는 거실에서 3개월 된 은탁이와 같이 자기도 하고 서재에서 이불을 펴고 자기도 한다.   잠 잘 시간이 되어 먼저 3개월 된 은탁이를 재우고 아내가 딸아이를 재우려 하는데 아이가 잠시 일어나더니 서재에 가기에 잠시 후에 뭐하나 하고 서재를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들여다보니 서재 방바닥에 7살 딸아이가  인어공주의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처럼 비스듬히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맞잡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도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문득 문득 7살 딸아이의 기도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더니 순간순간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 북 받쳐 올라왔다.   ....,   나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딸아이의 기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으면 좋겠다고....,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22 22:56:16 | 노영기
그들 가운데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에 빠지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까?    민수기 11:4     예전 금요기도회 시간에 민수기 11장 12장을 읽었습니다. 읽었던 내용중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후  모세에게 늘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불만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6장  물,음식,고기 등등 -_-;   조금만 삶이 불편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이 됩니다. -_-;     민수기 11장에는 조금더 자세히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위에 구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출애굽 할 때는 순수 이스라엘 민족들만 나온것이 아니라     섞인 무리와  양 떼와 소 떼와 심히 많은 가축도 그들과 함께 나왔더라.  출애굽기 12:38     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초반에 언급된 섞인무리들이     주동 이 되서 문제   를 일으키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나 우리홈페이지 안에도 이 섞인무리들을 조심해야 할것이며   혹시 긴가민가 하시는 분들이나   우리홈페이지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혹시 내가 섞인무리가 아닌가?     자문하는 시간을 가짐도 좋을듯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느낀점을 짤막하게 나눠 봤습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19 16:32:24 | 송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