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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람의 구원과 관련해서 우리는 먼저 사람의 구조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역시 영, 혼, 몸으로 구성된 삼중적 존재triune being)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사람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인데 기존 성경들은 여기에서도 전 세계 모든 성경과 달리 특이하게 번역을 하여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킹제임스 흠정역: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 몸(흙)과 영(생명의 숨)이 합쳐진 혼이라는 것인데 기존 성경은 이것을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성경을 쓰다 보니 영이 없는 사람(창세기 1장)이 있고 영이 있는 사람(창세기 2장)이 있다는 ‘이중 아담론’이라는 이단 교리도 나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 영’(living spirit)이면 결코 죽지 않는데 그러면 도대체 무슨 부활이 필요하며 ‘살려 주는 영’(quickening spirit)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개역/개정: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혹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KJB: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고전15:45에서 개역/개정에서 ‘산 영’(생령)으로 번역된 그리스말 ‘푸스케’(yuchv0, psuche {psoo-khay'})는 그리스어를 조금만 공부해도 누구나 ‘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성경은 이미 창세기 2장 7절에서 ‘살아 있는 혼’을 ‘산 영’(생령)이라고 번역하였으므로 틀린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전15:45를 ‘산 영’(생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후에 나온 개정성경도 과거 개역성경을 쓰던 성도들의 반발이 두려워서인지 이 실수를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NIV, ASV, NASB, 바른 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도 바르게 번역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NIV: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ASV: And Jehovah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바른: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현대인: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NIV: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ASV: So al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바른: "첫 사람 아담은 생명체가 되었다." 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 현대인: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존재가 되었다.' 라고 쓰여 있으나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성경에는 혼이라는 단어가 535회 나오는데 대부분의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서 4장 12절 같이 꼭 혼이 나와야만 말이 되는 구절에서만 혼을 혼으로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그리고 이런 곳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혼을 영혼이나 자(者) 등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개역/개정/공동: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12:15) 바른: 누구든지 첫날부터 칠일까지 누룩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다. 킹제임스 흠정역: 누구든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개역/개정: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욥7:11)   킹제임스 흠정역: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이 번민 중에 말하며 내 혼이 고통 중에 불평하리이다.   바른: 그러므로 내가 내 입을 다물지 않고 내 영의 고통 때문에 말하며, 내 혼의 쓰라림 때문에 탄식합니다(바른 성경은 바르게 번역함).   위의 욥기를 보면 영과 혼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지만 개역/개정성경은 이것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영혼’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정확성이 떨어지므로 이런 성경으로는 바른 교리를 정립하기가 어려우며 영어로 쓰인 기독교 관련 서적을 번역할 때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자기 교회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전도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진짜 전도입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혼을 구원한다’는 뜻을 가진 ‘soul winning’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나가서 사람의 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혼을 구원한 사실을 잘 보여 주지만 기존성경은 이런 것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자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행2:41). 개역/개정: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바른/현대인/공동번역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혼은 사람 자체를 말합니다. 흙으로 빚은 몸에 영이 들어가니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혼이라는 단어는 거의 다 사람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런 차원에서 NIV, 바른 성경, 현대인의 성경은 등은 의역을 하여 혼이라 쓰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 ‘생명체’, ‘산 존재’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다음에는 혼의 용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의 모든 단어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믿을 수 있는 성경’입니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9 10:35:2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저는 빌립보서 2장 12절의 번역 문제를 두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워크아웃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http://blog.naver.com/pastor-jung/220888080687   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빌2:12).   KJB: Wherefore, my beloved, as ye have always obeyed, not as in my presence only,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그런데 구원받은 성도로서 구원에 합당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그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고 그 이후의 성화는 본인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기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 이후의 선한 행위에 대한 보상은 전적으로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데 잠시라도 이렇게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성경은 이런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빌2;13).   KJB: For it is God which worketh in you both to will and to do of [his] good pleasure.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구원 이후에 선한 행위를 하려는 마음을 주시고 그렇게 하도록 그들을 이끄시는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즉 이 일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영어를 보시면 ‘work in’ 즉 워크인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워크아웃하려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워크인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워크인을 성도가 좋아하고 순종하면 선한 행위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됩니다.   이리 되면 엡2:8-9의 순서가 성경적으로 이루어집니다.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8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9 Not of works, lest any man should boast. 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unto good works, which God hath before ordaine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한번 위에서 살펴본 모든 구절들을 영어로 보시기 바랍니다. ‘일로 드러내다’, ‘안에서 일하다’, ‘행위’, ‘선한 행위’ 등이 모두 work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이 단어를 일, 행위 등으로 나누어 번역하다 보니 work의 개념을 잡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품으로 번역된 workmanship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일해서 만든 것'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일을 해야 합니다.   여하튼 구원받은 뒤에 구원을 워크아웃하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워크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므로 워크인이 가능하며 우리가 순종하며 나아가면 구원의 워크아웃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구절에 의문이 생기면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워크인으로 우리의 구원을 워크아웃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9 09:38:1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빌립보서 2장 12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며 설명을 요청해서 잠시 글을 씁니다.   개역/개정/공동/바른성경 등: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흠정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KJB: Wherefore, my beloved, as ye have always obeyed, not as in my presence only,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NIV: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기존 성경대로 읽으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은 평생 과정이 됩니다. 이분의 의문은 과연 구원이 평생 과정인지 아니면 구원받은 뒤 성장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후자가 맞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교회에서 이 구절을 설명할 때는 죽을 때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구원이 이루어지는 뉘앙스로 말하므로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구절에 베드로전서 2장 2절이 합세하면 구원은 필경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는 평생 과정이 되고 맙니다. 개역/개정/공동/바른성경 등: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NIV:  Like newborn babies, crave pure spiritual milk, so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 your salvation,   NIV는 ‘구원 안에서’ 성장하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깨끗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완전히 다릅니다.   흠정역: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KJB:  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   킹제임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은 아기들로서 즉 새롭게 다시 탄생한 자들로서 말씀을 먹어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을 때까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두 구절이 합세하면 구원은 일생 동안 끊임없는 전투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과정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에베소서 2장 8-10절 말씀과 완전히 상반됩니다.   흠정역: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의 구원과 성화는 간단합니다. 태어난 뒤 말씀을 먹으며 자라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구원이고 말씀을 먹으며 자라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성화입니다.   성화의 최종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엡4:13)   그러면 빌립보서 2장 12절의 work out(워크아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을 잘 번역하지 않으면 구원이 평생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종종 워크아웃 기업 이야기를 듣습니다. 기업이 상태가 부실하면 여러 가지 구제책을 써서 제 기능을 하는 바른 기업으로 만드는 과정이 워크아웃입니다. 워크아웃을 하려면 먼저 그 기업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없는 기업은 워크아웃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빌2:12를 이해하면 됩니다.   여기의 ‘너희’는 이미 구원받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갓 태어나서 아직 모든 것이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말씀을 먹으면서 성장하여 워크아웃을 해야 합니다. 즉 본인들의 구원을 일로/행위로 성화 과정을 통해 밖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work out: to bring about by work, effort, or action.   다시 말씀 드립니다. 워크아웃은 이미 있는 것을 제 궤도로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자들만 구원을 일로/행위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평생을 벌벌 떨면서 일로/행위로 두려움 속에서 순종하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천주교의 구원 방식입니다.   이러한 워크아웃의 결과가  14-16절에 나옵니다. 14 모든 일을 불평이나 시비가 없이 할지니 15 이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무해한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세상에서 빛들로 빛나며 16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나니 이로써 나는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지 아니하고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날에 기뻐하리라(빌2:14-16).   이렇게 될 때 베드로전서 2장 2절, 에베소서 2장 8-10절과 동일한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빌2:12의 워크아웃은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기존 성경처럼 ‘구원을 이루라’고 하면 안 됩니다. 너희가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그것을 너희 삶으로 나타내 보이라고 해야 말이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출생과 성장과 동일합니다.일단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출생입니다. 이것은 구원입니다.그 뒤에 젖을 먹고 자라며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장입니다. 이것은  성화입니다. 즉 사람은 먼저 태어난 뒤 출생을 워크아웃해서 출생의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출생이 안 된 사람은 워크아웃을 못합니다. 평생토록 어머니 뱃속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출생을 이루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의 의미를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성경 번역의 대본인 본문이 달라 생긴 문제이므로 천주교 소수 본문을 번역 대본으로 사용하는 한 어느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바른 본문인지는 현명한 독자께서 이미 간파하셨으리라 믿습니다.이런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려고 하면 아주 쉬운 일입니다.   흠정역: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7 10:05:27 | 관리자
<하나님은 한 분이신가?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안녕하세요?   삼위일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특이한 것이며 사실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삼위일체를 가르쳐야 할 성경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을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개역/개정/바른/현대인/공동: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역번역: God is one person. 딤전2:5) 킹제임스 흠정역: 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영어 KJV: There is one God).   이런 번역 문제는 본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며 번역자들이 원어나 영어 자체를 또는 성경 교리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보통 기독교는 유일신교(Monotheism)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대개 이 말이 한 분의 신(one person God)을 믿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유일신교는 여러 신(many gods)이 아니라 한 하나님(one God)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God is one). 한 분이 아니라 하나이십니다(신6:4-5; 사45:5-6; 엡4:4-6, 딤전2:5,).      킹제임스 흠정역: 4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신6:4)KJB: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개역/개정: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바른 성경(공동, 현대인 등): 들어라. 이스라엘아,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여호와는 한분이시니    개역/개정은 한 하나님, 한 주에 가깝게 ‘하나이신 여호와’라고 번역하였으나 다른 성경들은 모두 한 분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NIV는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으로 하여 한 분은 피하였습니다.   한 하나님, 한 주의 ‘한’은 복합적 단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장 24절에는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2:24).    즉 남자와 여자가 둘이지만 복합적 의미의 한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절대적 하나를 나타내는 ‘야케드’(Yachead)라는 말은 총 12번 나오지만(창22:2; 슥12:10의 only) 이 단어는 단 한 번도 ‘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구약성경에서 복합적 하나를 나타내는 ‘에카드’(Echad)는 ‘무리가 하나로 모인 것’ 등을 나타내며 한 주, 한 하나님의 ‘한’은 이것을 표현합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1:26)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창3:22)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a.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벧전1:2; 롬1:7 등) b. 아들은 하나님이시다(요1:1; 요20:28; 요일5:20) c.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행5:3-4)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처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대로 하나님은 한 분 즉 아버지 하나님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한 분이 아니며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뚜렷한 세 분으로 존재하시되 이 세 분이 하나이십니다.    기존 성경들은 야고보서 2장 19절 역시 번역을 잘못하였습니다.   개역성경 등: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귀신들이 떨까요?이상하지 않습니까?   실상은 그러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KJB: Thou believest that there is one God; thou doest well: the devils also believe, and tremble.   마귀들은 한 하나님인 존재하시며 그분이 심판하실 줄 알기에 떠는 것입니다.   심지어 NIV도 이 점을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NIV: You believe that there is one God. Good! Even the demons believe that--and shudder.   그러므로 이런 번역은 영어나 원어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지 본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야말로 너무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의 근간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흠정역: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그런데 기존 성경들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을 따라 요한일서 5장 7절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6 09:49: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기독교는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습니다.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므로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런 속성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삼위일체(Trinity)입니다.   삼위일체는 참으로 중요한 교리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예로부터 이로 인해 여러 이단들이 생겼고 한국에서도 많은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며 심지어 복음적인 교단의 목사들이나 지도자들도 이런 이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태론이 이단인 이유는 무엇인가'는 양태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졌으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한분 하나님께서 모양만 성부, 성자, 성령의 다른 형식(forms)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령의 인격은 사라지고 단일한 신격만 남게 되어 이단 사상이 되어 버린다. 전형적인 양태론은 같은 하나님이 창조 시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구속에는 성자 하나님으로, 성화 때는 성령 하나님으로 활동한다고 본다. 즉 양태론은 교회의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58123/20120913/조덕영-칼럼-양태론-이-이단인-이유는-무엇인가.htm   예를 들어 누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성도들에게는 목사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이 곧 양태론입니다. 또는 “물은 얼음도 되고 액체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는 주장 역시 양태론에 근접한 진술입니다.    이렇듯 양태론의 핵심은 한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고 성령님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분명하게 이단 교리라고 말합니다.   한국에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이고 성령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며 그래서 침례를 줄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으로 준다.”고 합니다. 이런 이론이 생기게 된 것은 전적으로 기존 성경의 번역 때문입니다. 이들은 요한복음 17장 11절을 근거로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합니다.   개역: 나[예수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개역성경뿐만 아니라 개역개정, 바른 성경,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에 분명하게 예수라는 이름이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에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그들이 성경대로 그렇게 믿는다고 주장해도 도저히 반박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대로 믿는다고 주장하므로 본심은 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교리는 결코 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한편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흠정역: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KJB: And now I am no more in the world, but these are in the world, and I come to thee. Holy Father, keep through thine own name those whom thou hast given me,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개역성경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자들 즉 믿는 자들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다르면 교리가 변할 수밖에 없고 순진하게 성경대로 믿으려 하다가 오히려 이단이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것은 번역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 본문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과 목사들이 알고 있듯이 성경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개역성경 등의 모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에서 나온 소수본문(Minority text) 혹은 비평 본문(Critical text)입니다. 그래서 같은 본문에서 나온 NIV, NASB 등도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임을 보여 주며 그 결과 예수 유일주의 같은 이단 교리가 발붙일 틈을 주고 있습니다.   NIV: I will remain in the world no longer, bu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the name you gave me--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이제 성경적 삼위일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 인격체 중 하나가 없으면 한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시간은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각각이 다 시간이고 이 셋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시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반드시 길이(x), 너비(y), 높이(z)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물체가 아닙니다. 아무리 얇은 것도, 작은 것도 반드시 x, y, z 세 방향의 크기를 가지며 이로써 그 물질이(혹은 공간이) 구성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증거들을 우주에 많이 만들어 두셨습니다.   확실한 삼위일체 하나님 –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 을 우리의 유일한 주님으로 삼고 굳건히 세상을 이기며 나갑시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6 09:00:41 | 관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마태복음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라는 질문을 주셔서 답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가 맞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대상 성경 구절을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마1:1).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이 세상 성경 중에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신약 성경 서두에 “세대에 대한 책이라”(The book of the generation)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역본들은 개역성경처럼 ‘책’을 삭제한 경우가 많고 또한 ‘세대’를 ‘계보’(genealogies) 혹은 개역성경처럼 ‘세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역 성경인 NIV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예수그리스도의 족보 기록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의 ‘책’은 엄연히 그리스어 본문에 있으며 이 말은 그리스 말로 ‘비블로스’이고 영어로는 이 단어가 곧 ‘바이블’ 즉 ‘성경’이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단어를 삭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1장 1절에서 이렇게 ‘세대에 대한 책’이라고 선언한 뒤 2절부터 16절까지 단 15절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마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혹은 계보에 대한 책이라면 당연히 책 전체가 족보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태복음은 첫 장에서 단지 15절만 족보를 다룹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복음이 족보(계보)를 기록한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 킹제임스 성경대로 마태복음이 세대에 대한 책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먼저 ‘세대’(generation)라는 단어를 이해하려면 시편 22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시편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30, 3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씨가 그분을 섬기리니 [주]께서 그것을 한 세대로 여기시리라. 그들이 와서 앞으로 태어날 한 백성에게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되 그분께서 이것을 행하셨음을 드러내리로다(시22:30-31).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널리 알리는 씨는 곧 그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믿으면 주님께서 그 씨를 단 한 세대로 여기십니다. 따라서 ‘세대에 대한 책’이라는 말씀은 신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며 바로 거듭난 성도들이 이 책을 들고 주 예수님의 의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께는 자식들(children)은 있어도 손자들(grandchildren)은 없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도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형제입니다. 손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한 세대입니다.   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한 세대로서 모두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쉽게 풀립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마24:34).   예수님은 33절에서 분명히 제자들(너희)에게 말씀하셨으며 35-42절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 뒤 문맥으로 보아 여기의 세대 역시 그분을 섬기는 씨의 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마12:45에서 ‘사악한 세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세대에 대해 동일한 정의를 적용하면 이 사악한 세대는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어찌 되었든지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단지 한 세대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단지 시편 22편만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14:5; 24:6; 73:15; 78:6, 8; 102:18; 112:2; 사53:8; 렘7:29; 마23:36; 24:34; 막13:30; 눅21:32; 행8:33; 벧전2:9 등.   거기서 그들이 큰 두려움 가운데 있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의 세대(generation) 안에 계시기 때문이로다(시14:5).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generation)를 밝히 드러내리요?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으며 내 백성의 범법으로 인하여 매를 맞았도다(사53:8).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generation)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 구절들은 다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것이야말로 성경 공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용어색인 즉 ‘Concordance’가 필수적입니다.   스트롱 코드 혹은 스트롱 번호는 무엇인가요?(용어 색인)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0   끝으로 신약 성경은 맨 처음에 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맨 마지막에도 책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계시록 22장 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신약성경에서 저주가 기록된 곳은 단지 여기뿐입니다. 이 저주는 ‘이 책의 말씀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는 자들을 향한 저주’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이 1차적으로는 계시록이라고 믿으며 또 신약 성경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이 저주는 온갖 종류의 성경 비평가들 곧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 성령님께서 성경을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성경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마귀 들렸다” 혹은 “무식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세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첫 아담의 세대를 도입하면서 역시 창세기 5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에 대한 책이라(창5:1).   5장 1절 이후에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즉 첫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은 다 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의 세대(generation)에 속하면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마태복음 1장 1절은 오역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세대를 이해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5 10:43:56 | 관리자
비유가 아니면’인가, ‘비유가 없이는’인가?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인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입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친절한 기장(부기장?)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는 목사냐고 묻고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분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친절한 분으로 알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의 성경 해석 방법이 기묘했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하였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분은 이 구절을 대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비유이며 심지어 창세기 이후의 모든 것이 다 비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유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에게 성경을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알고 보니 이분은 '신0지' 신도였습니다.   그분의 주장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분의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그분의 성경이 말하니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성경 전체가 비유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 일은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룡산 도사들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바른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흠정역: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되 창세로부터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KJB: All these things spake Jesus unto the multitude in parables; and without a parable spake he not unto them: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요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쉬운 비유(예)를 들어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존 성경에서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된 구는 영어로 ‘without a parable’이며 이것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비유가 없이는’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의 어떤 그리스도인이 과연 이것을 ‘비유가 아니면’으로 해석할까요?   의역 성경으로 유명한 NIV는 다음과 같이 의역하였습니다.   Jesus spoke all these things to the crowd in parables; he did not say anything to them without using a parable.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는(without using a parable) 어떤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런 간단한 말씀이 기존 성경처럼 잘못 번역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무지 속에 빠뜨립니다.  사이비 종파에 속아 넘어가 궁극적으로 생명을 잃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들(words, 단어들)을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우리말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멋있기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이 도구를 사용해야 함을 느낍니다.   샬롬   패스터
2016-12-15 10:15:2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국의 대부분 성도들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 셈이 맏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셈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셈이 가장 먼저 나오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셈은 첫째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형)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셈이 셈보다 ‘나이 많은 자’(the elder) 즉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기존성경은 다음과 셈이 형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역개정 등 :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한국 성도들의 장자 축복 개념은 대개 셈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은 김경래 교수님이 쓴 <창세기 1-11장의 난해 구절 성경의 미스테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제가 쓰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제시하려 합니다.   참고로 김경래 교수님은 총신대와 이스라엘 Institute of Holy Land Studies(M.A.)를 졸업하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본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전주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 노아 세 아들의 연령별 순서   일반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은 셈, 함, 야벳의 순으로 일컬어진다(창 5:32, 6:10, 7:13, 9:18, 10:1, 대상 1:4).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이러한 배열로 인하여 그들의 나이 역시 같은 순서대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노아에게 셈, 함, 야벳의 순서로 아들들이 태어난 것인가?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어 번역본들에 나타나는 성경 오역이 바로 그것이다.   개역성경은 창세기 5장 32절을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 조그만 글자로 인쇄된 '된 후에'는 원문에 없으므로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문에 삽입한 것이다. 표준새번역 역시 이를 같은 뜻의 "노아는 오백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5장 32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노아가 오백 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이다.   이 문장을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에 세쌍둥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들 세 아들이 노아가 오백 세 되기까지 차례대로 태어났다. 셋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 첫 아들이 태어났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다른 두 아들도 태어났다. 히브리어 어법 상 앞의 두 가지보다는 세 번째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역과 표준새번역 둘 다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고찰해야 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 21절이다. 우선 우리말 번역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개역은 이를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야벳의 형인 셈에게서도 아들딸이 태어났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둘 다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들 번역문은 과연 히브리어 원문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여기서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된 문제의 구절을 원문 및 고대 번역문인 칠십인역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 두 가지로도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충분하다고 본다.   창세기 10장 21절의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본문은 ('악히 예펫 하가돌')이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와 모음 부호를 무시할 경우 이 히브리어 구절은 두 가지의 직역이 가능하다. 첫째, '야벳의 큰 형제', 둘째, '큰 야벳의 형제'이다. 다시 말해서 '크다'('하가돌')라고 하는 형용사가 '야벳'과 '형제' 중 어느 것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이 문구의 해석이 달라진다. '야벳'을 수식할 경우 야벳이 형이 되고, '형제'를 수식하면 셈이 형이 된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 부호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구두점 역할일 것이다. 마소라 성경의 엑센트는 여기서 '크다'가 '야벳'을 수식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소라 학자들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칠십인역 역시 마소라 학자들의 견해를 지지해준다. 이 구절에 대한 칠십인역의 번역문에 있어서 명사 '야벳'과 형용사 '크다'는 동일한 2격(소유격)을 취하고, '형제'는 3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큰 자'는 셈이 아니라 야벳인 것이다.   셈이 야벳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은 창세기 11장 10절을 통하여서도 찾아볼 수 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는 아르박삿을 낳았고"라는 이 기술에 의하면, 셈이 일백 세가 된 것은 홍수 후 이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이레 후 곧 2월 17일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40일을 내렸으며(창 7:9∼12), 노아 홍수는 햇수로 볼 때 2년이나 지속된 장기간의 대사건이었다.   '홍수 후 이년'(슈나타임 악하르 하마불')이란 히브리어 문구는 분명히 홍수 사건이 완전히 끝난 후 또 두 해가 흐른 뒤의 일임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노아 나이 육백 세와 육백일 세의 두 해는 홍수가 일어난 해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그 후 두 해(노아 나이 육백이 세와 육백삼 세)가 지나 노아의 나이가 대략 육백사 세(혹은 603)가 되던 해에 셈은 나이 백 세가 되어 아르박삿을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셈은 노아가 오백사(혹은 503세)세가 되던 해에 태어난 셈이 된다. 이상 고찰한 바를 창세기 5장 32절("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과 묶어서 볼 때 셈은 결코 노아의 맏아들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노아는 분명히 500세에 맏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504(혹은 503)세일 때 태어난 셈은 그의 맏아들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맞는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   이상으로 우리는 야벳이 셈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을 고찰해보았다.   그러면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왜 셈이 가장 먼저 나올까요?   성경은 많은 경우 나이가 아니라 중요도 순으로 사람들을 배열합니다.   대상1:28,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니라.   사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이나 많습니다.   또한 성경은 둘째 사람들의 책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사울과 다윗, 첫때 아담과 둘째 아담, 구약과 신약   하나님은 두 번째 사람 혹은 사건 등을 통해 중요한 일을 수행하십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고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입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4 09:19: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신대 교수를 역임한 나채운 박사님의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성경 번역과 관련해서 많은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좋은 글입니다.   나채운 박사님은 1932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고(문학석사),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과 벨더빌트대학교 및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신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노스웨스트기독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분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수,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대한성서공회에서 성서 번역, 개정 위원으로, 한국찬송가공회에서 가사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우리말 주기도 사도신경 개정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최현배의 우리말본에 심취하여 후에 대한성서공회와 한국찬송가공회에서 성경의 번역·개정과 새 찬송가 개발에 다년간 참여하여 공적을 남겼고, 개정된 주기도문, 사도신경은 혼자서 개정을 하여 전 한국 교회가 사용하도록 그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700쪽이 넘는 <우리말 성경연구>(기독교문사, 1994, 절판)는 우리말 성경의 역사와 오류 등을 다루고 있는 심히 귀한 책입니다.   원글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jkkhh2232&logNo=50072478206   0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 영과 진리로 예배 (요 4:24) 개역--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개정--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개역 본문의 "신령과 진정"이 개정판에서 "영과 진리"로 바뀐 것이다. 이 원문은 en pneumati kai aletheiai 로서, 우리말의 "신령과 진정" (神靈과 眞情)은 합당하지 않고 "영과 진리" (靈과 眞理)가 바른 번역이다(영어성경에서는 예외 없이 in spirit and truth).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의 잘못된 예배관을 시정해 주는 말씀으로서,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의문적(儀文的)이고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부정 경계하는 것이며,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뜻은 아니다(그러므로, 영어로 쓰면 대문자 S로 쓰지 않는다).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이방인들 (사마리아인 같은)의 거짓 신에 대립되는 참 신에 대한 예배를 뜻하는 것이다. 즉 예배할 장소와 예배할 때와 예배할 대상을 바로 알아서 참된, 진정(眞正)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0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마 6:34) 개역성경에서의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가 개정판에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개역으로는, 내일 일을 염려하되 오늘 하지 말고 내일에 하라는 말, 즉 염려하는 시간(날)에 관한 언급으로 이해되는데, 원문의 뜻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 자체가 염려할 것이니, 너는 도무지, 내일에도 염려하지 말라는 뜻, 즉 염려하는 주체(네가 아닌 내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3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도 “...그 날로 족하니라”로서 더 정확한 표현으로 바꾸었다.*3) 영어성경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89)에서는 for tomorrow will bring worries of its own 으로, 우리말 표준새번역에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로 되어 있다.   여기 '진정'은 한자어 (국한문 성경에서)로 '眞正'이 아니고 '眞情'이니 더더구나 안 된다. 이 본문은 목회자들이 많이 인용하고, 또 설교의 본문으로 삼는 중요한 구절인데도, 대다수의 설교자들이 개역성경 본문의 번역이 잘못되어 있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설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주석서에서도 성경 본문의 번역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 이제 설교자는 더 이상 지금까지의 개역성경을 쓰지 말고, 개정판을 씀으로써 우선 본문에서부터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0 증거→증언 (요 1:7) “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 에 대하여 증언하고”개역성경에서 ‘증거하다’가 동사로 쓰인 경우는 수다하다. 그러나 ‘증거하다’는 결코 사전에도 없는 틀린 말이다. 즉, ‘증거’는 명사로만 쓰이는 것이며, 거기에 동사 어미 ‘--하다’를 붙여서 동사가 될 수 없다. 원어 Martureo 에 대한 바른 번역은 ‘증언하다’이며, 이것은 이번 개정판에서 모두 고쳐졌다.
2016-12-13 17:19:08 | 관리자
누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는가?   솔로몬 사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성이 부담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결국 왕국의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북쪽의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왕국을 건설하자, 그는 자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주님을 구하면서 첫 3년 동안은 바르게 행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신 일이 역대기하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유다에 수비하는 도시들을 건축하였습니다(5-12).2. 그는 이스라엘에서 도망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함들과 함께 왕국을 바르게 세웠습니다(13-17).   그 뒤에 르호보암의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솔로몬 비슷하게 아내를 많이 두었습니다. 그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취하여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더라(21).   그는 총 78명의 여인들로부터 88명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우두머리로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행하였습니다.   그가 지혜롭게 행하여 자기의 모든 아이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지방 곧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에 두루 흩어지게 하고 그들에게 양식을 후히 주었더라. 그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더라(23).   그런데 23절 끝에는 매우 재미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더라(23).   78명의 아내를 구하였으니 이 말씀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해를 준비하다가 기존 성경을 보았더니 마지막이 이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개역 및 개역개정: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기존 성경은 르호보암이 많은 아내를 탐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아들들을 위해 여러 아내를 구해 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른 성경,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해서 영어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NIV, ASV, NKJV 등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맨 끝에 ‘for them’ 즉 ‘그 아들들을 위하여’를 첨가하였습니다.   2 Chron 11:23   And he desired many wives. KJVHe also sought many wives for them. NKJVAnd he sought many wives for them. NASBHe gave them abundant provisions and took many wives for them. NIVHe gave them abundant supplies, and he sought many wives for them. AMPAnd he sought (for them) many wives.   첨가한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for them’이 없습니다.   NKJV, NASB는 for them을 이탤릭으로 처리하여 첨가하였음을 시인하였고 ASV는 괄호로 처리하여 동일하게 시인하였으며 NIV, Amplified Bible은 이탤릭체가 아니 정체로 기록하여 진실을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영어 KJV는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하여 르호보암이 많은 아내를 탐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르호보암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들을 위해서 여러 아내들을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현명한 독자께서는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6-12-12 12:04:25 | 관리자
시편 116편 개요    ∎ 시편의 주제   1 {주}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도다.    2 그분께서 자신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사는 동안 그분을 부르리로다.   ∎ 1-2절의 결과를 가져온 원인   3 사망의 고통이 나를 에워싸고 지옥의 아픔이 나를 붙들었으므로 내가 고난과 슬픔을 만났도다.    4 그때에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이르기를, 오 {주}여, 주께 간청하오니 내 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 기도와 간구의 근거: 하나님의 성품   5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고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주}께서는 단순한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되었을 때에 그분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 기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해 스스로를 격려함   7 오 내 혼아, 네 안식으로 돌아갈지어다. {주}께서 너를 후대하셨도다.    8 주께서 내 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 미래에 대한 믿음은 항상 과거에 근거를 둔다(7-8절 참조)   9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주} 앞에서 걸으리이다.(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무엇에 근거해서?)   10 내가 믿었으므로(믿음의 내용: 하나님은 과거에 내개 선을 베푼 그 하나님이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선하게 행하셨으므로 앞으로도 그리하실 것이다.) 말하였거니와(원수들에게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말하였다) 내가 심히 고난을 당하여(시71:10-11)    11 황급히 이르기를(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므로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말하였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말하는 너희는 다 거짓말쟁이다.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9절이 이루어질 터이므로 원수들이 나를 죽일 수 없다).   ∎ 이제 이 어려움이 끝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12 {주}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택으로 인하여 내가 그분께 무엇으로 보답하리요?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14 그분의 온 백성 앞에서 이제 나의 서원들을(어려움을 당할 때 약속한 것들) {주}께 이행하리로다.   ∎ 다시 주님을 생각하며 또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본다.   15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의 눈앞에서 귀중하도다(내가 바로 이 성도들 중 하나이다.(17절 참조).    16 오 {주}여,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종 곧 주의 여종의 아들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늘 그러하듯이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나를 구출하셨다).    17 (이런 고통이 지나갔으므로 이제 나는 세 가지를 행하겠다) (1) 내가 주께 감사의 희생물을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2) 이제 내가 나의 서원들을 {주}께 이행하되(어디서 이행하는가?) 그분의 온 백성 앞에서와    19 {주}의 집의 뜰에서와, 오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하리로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설교: 성도들의 죽음은 주님 앞에서 귀중하다. https://youtu.be/ZX9sUICJirs
2016-10-07 16:11:03 | 관리자
위로 올라가는 노래(Song of Degrees)   시편 120편부터 134편은 ‘15개 시편으로 구성된 하나의 노래’입니다. 영어로 이  시편들의 제목을 보면 ‘Song of degrees’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degree’는 각도를 뜻합니다. 원의 경우 360도(degree)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1년에 세 차례(무교절, 오순절, 장막절)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께 경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집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여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을 원으로 생각하고 이 원이 15개 각도(degrees)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Song of degrees’의 뜻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는 전 여정에 이 노래(총 15편의 시편)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우리말로는 ‘위로 올라가는 노래’라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의 위는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120편 떠나기 전에 악한 원수들로부터 구출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   121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생각하며 시편 기자는 주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고백함   122편 다윗의 시: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기쁨을 회상하며 예루살렘의 평안을 간구함   123편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면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긍휼로 물리쳐 주실 것을 구함   124편 시편 기자는 주님의 보호를 시인함   125편 의로운 자들은 주님 안에서 안전하고 불신자는 쫓겨남을 선언함   126편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땅에 회복되는 것과 수고의 열매를 기뻐함   127편 이것은 솔로몬을 위한 시로서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복을 기술함   128편 의로운 자들의 복을 다시 기술함   129편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구출해 주시는 것을 선포함   130편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시. 참회의 형식으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자기 민족을 구속해 주실 것을 확신함 131편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중히 여기심을 표현함   132편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그의 백성을 지켜주실 것을 간구함   133편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감으로써 하나가 된 것을 찬양함   134편 시편 기자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구함   이것을 생각하며 이 시편들을 한번 낭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6-10-06 06:15:11 | 관리자
세상인가요, 영원인가요? 과거에 개역성경으로 전도서 3장 11절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인용하며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르게 번역되어 있고 그대로 따르면 개역성경의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고 또 그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정하여 두셨으므로 아무도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 낼 수 없도다(킹제임스).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세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늘 거기에 신경을 쓰며 살기에 하나님의 일들을 탐구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즉 세상일에 바쁜 나머지 하나님의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매튜 헨리 주석에도 이런 식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두 번역은 해석상 반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것에 대한 글을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이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kjvtoday.com/home/world-or-eternity-or-ignorance-in-ecclesiastes-311   --------- 전도서 3장 11절의 단어는 “세상”인가,  “영원”인가, 혹은 “무지”인가?    “그분께서 자신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고 또 그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정하여 두셨으므로 아무도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 낼 수 없도다.” (전도서 3:11 KJV)   He hath made every [thing] beautiful in his time: also he hath set the world in their heart, so that no man can find out the work that God maketh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70인역 성서와 라틴 벌게이트(불가타)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은 “עֹלָם”를 “세상 (αἰῶνα, mundum)”으로 번역합니다. 반면에 NIV, NASB, 그리고 ESV는 같은 단어를 “영원”으로 번역하고 비숍성경과 NET, BBE 그리고 메시지 성경은 이 단어를 “무지” 혹은 그와 비슷한 단어로 번역합니다. 이처럼 이  단어의 뜻에 대한 학구적 견해는 매우 다양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세상”이라는 번역은 히브리어 성경이 주어진 이후에 사용되던 히브리어에 부합됩니다(NET 성경 각주). 게다가 전도서 3장 11절의 문맥은 “עֹלָם”가 무한한 것이 아닌 무언가 한정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을 의미함을 보여 줍니다. 문맥을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עֹלָם”를 사람의 마음속에 두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처음 (ראשׁ)”부터 “끝 (סוף)"까지 하시는 일을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은 비록 오랜 시간이라 할지라도 유한한 시간을 뜻합니다. “עֹלָם”는 시편 73편 12절에도 나오며 여기서도 킹제임스 성경과 기존 성경은 다릅니다.   “보라, 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로되 세상에서 형통하며 재물을 불리는도다.”(킹제임스)   이 말씀처럼 “עֹלָם”는 세상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은 이 구절을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always)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라고 번역하여 악인들이 항상 즉 영원히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경건치 아니한 자들 즉 악인들이 영원한 시간 동안 평안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처음”과 “끝” 사이인 현시대 내에서만 평안합니다.   혹시라도 킹제임스 성경에서 쓰인 “세상”이라는 단어가 시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이라는 단어는 공간과 시간적인 측면을 모두 의미한다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자주 “세상”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은 상태인 시간적인 관점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9/11 테러사건 이후 세상에서….” (.in this post 9-11 world....)   여기서 “9/11 테러사건 이후 세상”과 같은 표현들은 9/11 테러 사건 이후의 공간보다는 시대를 뜻합니다. 지구라는 장소는 2001년 9월 11일 이전이나 이후나 여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고대 독일어인 “늑대인간”(werewolf)에서와 같이 “사람”을 뜻하는 “wer”와 “시대”를 뜻하는 “alt”가 결합된 “weralt”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사람의 나이” 혹은 “사람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위에 설명된 대로 이 단어는 구어체로 사용될 때에도 시간적 측면과 엮여 있음을 여전히 나타냅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자신의 때”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간적 측면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몇몇 역본 역자들은 “עֹלָם”를 “영원”으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고”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이라는 말씀에서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공간적 측면 또한 나타냅니다.   “세상”이라는 단어는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측면을 모두 나타내기 때문에 “영원”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번역이 “עֹלָם”가 의미할 수 있는 범위를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래서 앞뒤 문맥상 정확한 번역입니다. -------   전3:11, 시73:12 등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세상”으로 번역되어야만 앞뒤 문맥이 바르게 이해됩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8-30 14:13:5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사무엘기상 10장에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 다른 대언자들과 함께 대언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그들이 저쪽에 있는 산에 이를 때에, 보라, 대언자들의 무리가 그를 맞이하고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시매 그가 그들 가운데서 대언을 하니라. 11 예전에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보니, 보라, 그가 대언자들 가운데서 대언을 하므로 이에 백성이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임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 하고 12 같은 장소의 한 사람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런데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니라. 그러므로 그것이 속담이 되어,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 하였더라(삼상10:10-12).   그런데 여기서 12절은 조금 이상합니다. 갑자기 “그들의 아버지는 누구냐?”라는 말이 튀어옵니다.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구약 성경 변개의 장본인인 70인역의 저자는 “그의 아버지는 누구냐?”라고 독자들을 위해 말씀을 살짝 바꾸어 줍니다. 그러면 사울이 신기하게 대언을 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누구이기에 그가 그렇게 하느냐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그 저자는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척 하면서 그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뜯어고친 것입니다.   <70인역이란 무엇입니까?>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5   이해가 안 되면 문맥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말씀 자체를 뜯어 고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뜯어고치고 나면 이상하게 12절의 후반부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12절 후반부는 어떤 사람이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고 물었으므로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라는 속담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누구냐?”라고 물어서는 그런 속담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고 물어야 이것이 가능합니다.   여기의 그들은 (아마도 사울을 포함한) 대언자들입니다. 그 사람은 “이들에게 대언을 하도록 만든 분이 누구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히브리말에서 아버지는 어떤 일을 일으키는 원천을 뜻합니다. 그 모든 대언자들로 하여금 대언을 하게 하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므로 사울 역시 그 아버지가 원하면 대언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라는 속담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경 신자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70인역 같이 ‘우리를 도와주는 체하면서 누군가가 뜯어고친 말씀’에 신뢰를 두면 성경이 바른 해석을 주지 않습니다. 모르면 이해하려고 하고 또 이해가 안 된다 해도 본문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는 것이 있음에도 그것에 만족하고 성화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3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롬3:3-4).   샬롬   패스터
2016-07-07 13:12: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사무엘기상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잠시 적습니다.   사무엘기상 4-6장에는 이스라엘이 주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찾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 궤로 인해 심히 큰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그 궤를 벳세메스로 보냅니다.   궤가 벳세메스로 온 뒤 삼상6:19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주}의 궤를 들여다보았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을 치시되 곧 그분께서 백성 중에서 오만 칠십(50,070) 명을 치시니라. {주}께서 백성 중에서 많은 사람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성경 불신자들은 이때 죽은 사람이 50,070명이 아니라 70명이라고 주장하면서 50,000은 실수로 잘못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벳세메스가 큰 도시가 아닌 촌락이므로 50,070명이 한 번에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NKJV, NIV, 개역, 바른 성경 등은 (오만)을 괄호를 쳐서 빼거나 – 이 경우 “어떤 사본에는 50,000이 없음”이라는 각주가 달려 있음 - 그냥 70명이라고 적은 뒤 “히브리 사본에는 50,070명임”이라고 각주를 달아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읽고 일 점 일 획도 틀림이 없다고 인정하신 히브리 마소라 사본이 50,070명이라고 하면 그대로 번역하고 믿는 것이 성도의 도리가 아닐까요?   벳세메스는 예루살렘에서 2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유다의 산지에서 북서쪽 경사지에 있습니다. 유다 지파 사람들이 가까이 살고 있었고 또 궤가 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궤를 보려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죽은 50,070명은 벳세메스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궤를 보려고 갔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벳세메스는 유다와 블레셋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궤가 돌아오기까지 7개월이 걸렸습니다(삼상6:1). 그런데 7개월 전에 궤를 빼앗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은 34,00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삼상4;10). 그러므로 적군을 앞에 둔 그 경계에는 많은 수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모두 합하면 50,070명이 죽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한 삼상6:19는 이때의 죽음에 대해 큰 살육이라고 말합니다. 큰 살육은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경우에만 쓰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경 신자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7-07 12:47:00 | 관리자
주님의 일과 삼손의 일     안녕하세요?   한 분이 삼손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셔서 이에 대해 간단히 글을 씁니다.   ------   저는 성경을 읽으면 삼손의 행동이 자신의 정욕에 이끌린 것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방 블레셋 여인을 탐한 것이죠.  특별히 포도즙과 독주도 마시지 않고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 바쳐진 나사르 사람인 삼손이 이방여인과 통혼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고 이것이 주에게서 나온 행동인지요? 목사님들을 하나님이 묵인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자의 이 표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주에게서 나왔다고" 표현하는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그러나 삼손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가 맞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 3 그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가운데나 혹은 내 온 백성 가운데에 결코 여자가 없어서 네가 가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하매 삼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그녀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 하였더라. 4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즉 주님의 주권과 사람의 의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는 것은 분명히 그의 욕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의 여러 여인들 사건을 보면 그는 욕정의 사람으로 결국 욕정으로 인해 목숨을 잃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부모는 이것을 말리지만 결국 그에게 지고 맙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다"라는 말은 그 결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계획은 삼손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의지를 꺾지 않고 다만 그 일이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도록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분의 뜻은 블레셋에게 압제받는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그들을 칠 기회가 있어야 했고 주님은 삼손의 욕정을 그대로 두시면서 그 기회를 찾으셨습니다. 아시다시피 결국 삼손의 장인인 블레셋 사람은 삼손과 결혼한 자기 딸을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고 기회를 찾던 주님의 뜻은 삼손의 행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일 즉 삼손의 욕정을 그대로 허용하면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는 일이 주님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가인이든, 가룟 유다든 그 누구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뜻을 꺾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이 매우 많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의지를 생각하면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삼손보고 그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가 그렇게 하려 하자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로 삼으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셨을 뿐입니다.   샬롬   패스터   (*) 참고로 주권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하시는 권리를 주권이라 부른 것입니다. 
2016-06-15 10:52:06 | 관리자
별빛과 우주의 창조 연대     많은 크리스천들과 불신자들은 수십억 광년의 별빛 문제로 인해 성경의 실제 6일 창조를 의심하면서 창세기 기록은 긴 연대를 상징적으로 축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합니다.   이런 의심의 핵심은 우주 맨 끝의 별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려면 100억 광년이 걸리는데 어떻게 우주와 별과 지구가 6,000년 전에 동시에 형성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1광년(光年)은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진행한 거리로 천체 사이의 거리를 나타낼 때 쓰이는 단위입니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 동안에 약 30만km를 진행하므로, 1년 동안 도달하는 거리는 약 9.46×10의 12승 km이며, 이 거리를 1광년이라 합니다.   우리가 늘 보는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오는 데 약 8분 정도가 걸리니(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는 약 1억 4400만 km임) 우주 맨 끝까지의 거리는 말 그대로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10의 13승 km = 10,000,000,000,000km).   물론 이러한 측정 자체가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므로 그런 수치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먼 거리의 별빛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여기에 대해서는 이 기사의 맨 끝에 소개한 호빈드의 강의를 보기 바랍니다).   이 문제에는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성년 창조   하나님은 우주를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주를 이전의 물질로부터가 아니라 무에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일곱째 날 끝내셨고 오늘날에는 창조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주를 유지하십니다.   별들이 창조의 첫 주에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지구에 빛을 비추시기 위해서 그것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방법은 당연히 초자연적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창조의 처음 3일 동안의 빛’에 관한 다음의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해와 달 창조 이전의 빛에 대하여: 창세기 1장의 빛 문제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150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성숙한 우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성숙한 창조’(Mature creation)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성숙한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새, 짐승, 바다, 강, 물고기 등도 모두 성숙한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즉 창조의 한 주 이후에 아담과 이브 때의 나무를 보면 그것이 씨앗부터 자라나 최소한 몇 년은 성장한 나무로 보일 것이고, 바위도 며칠 전 것이라 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바위에 이끼가 끼어 있고 산과 절벽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도 외모는 20-30대로 보였을 테지만 실제 나이는 1주일, 즉 0살입니다. 비록 창조된 지 하루 이틀 되었을 뿐이지만 그 상태에서 그들은 아이도 낳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주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3일 동안 온 우주 공간을 빛으로 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흘째 되는 날 별들을 만드시면 우주 맨 끝의 별들이 내는 빛도 이미 지구에 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즉 하나님은 우주 공간도 성숙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29&keyword=별 빛&isSearch=1     2. 시간의 속도가 변하기에 가능하다는 해석   많은 창조과학자들은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변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성숙한 창조를 믿으면서도 멀리 있는 별빛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간의 흐름은 운동과 중력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다음의 기사들은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http://www.gotquestions.org/star-light.html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28&keyword=별 빛&isSearch=1   여기서 저는 위의 기사 등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어떤 물체가 빛의 속도에 근접하여 매우 빠르게 움직일 때 시간의 흐름은 느려지며 이것은 보통 ‘시간 팽창’(time-dilation)이라 불립니다. 따라서 어떤 시계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면, 그 시계는 매우 천천히 갈 것이고 빛의 속도에 다다르면 완전히 멈출 것입니다. 이것은 시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효과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느려지기 때문에 시계의 독특한 구조와 무관하게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중력 역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합니다.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는 시계는 해수면에 있는 시계에 비해 중력의 근원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갈 것이고 실제 측정하면 그렇게 나타납니다. 또한 지구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에서의 시간은 중력으로 인해 더 빨리 가고 실제 측정하면 그렇게 나타납니다.   같은 원리로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들에서의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갑니다. 따라서 지구에 도달하는 데 수십억 광년이 걸린(우주 깊은 곳에 있는 시계로 측정된) 빛은 지구에 있는 시계로 측정될 경우 단지 수천 년 만에 지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구에서는 중력으로 인해 우주의 다른 곳들에서보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심히 천천히 흘러갑니다.   물론 이것은 창조 당시에 이미 수천 년이 흘러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간으로 빛을 측정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며, 진화론자들의 균일론, 즉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해석 체계가 틀리고,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다른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m.youtube.com/watch?v=XAsu4JeFNOE   특별히 이 영상을 제공하신 형제님은 성경 변증을 담은 기사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사이트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fingerofthomas.org/   또한 다음의 책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80706   다음은 유명한 켄트 호빈드의 동영상 강의입니다.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WnMKeyKixI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의 신비를 유한한 인간이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확실한 말씀을 꼭 붙들고 하나님의 신비를 목도할 때까지 잠시 기다립시다.   로마서 11:33-36 33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느냐?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느냐? 35 누가 그분께 먼저 드려서 다시 보답을 받겠느냐? 36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3:22-23 22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샬롬   패스터
2015-11-25 13:03:4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