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6827개
민수기 22장 20절 질문(민22:20)   항상 이 사이트를 통하여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자유게시판에 수준높은 글이 항상 올라와서  이렇게 질적으로 떨어지는 질문의 글로 공간을 채우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알고자하여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민수기 22:20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하시니      21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얹고 모압의 통지자들과 함께 가니라      민수기 22절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는데 왜 22절을 보면 그가 간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랐을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과 가지말라는 말씀을 12절에 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지니 이는 그들이 복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왜 20절에 다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분노가 타올랐을까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50:08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1-09-28 00:33:10 | 이탁재
건전한 정신과 양심을 가진 대부분의 크리스찬이라면 다들 아시는 내용이지만, 기사 내용이 한국 교회의 상당수가 교회 건물을 세우고자 하는 행태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잘 지적한 부분들이 있어서 글을 그대로 링크하여 올립니다.   지금 이 시대의 참 성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신약 교회에 걸맞는 모임 장소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0 21:50:53 | 신대준
저는 짜장면과 맨날이 마음에 와닿네요. 만날은 서울말이고 맨날은 지방어이니 표준어는 서울말로 써야 한다고 해서 만날이 맞고 맨날은 틀리다는 거 들었을 때,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한글을 잘 아시는 분들 중에서 '왜 서울말만이 표준어여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맨날이 표준어가 아닌 것이 불만스러웠습니다. 짜장면은 진짜 인정해줘야죠. 뜻 자체가 다른 것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 그렇게 쓰니... ^^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2011-09-19 12:28:18 | 조두현
경인선 중간쯤에 송내역이 있지 않나요... 이벤트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입니다. 하드커버와 박사성경까지 나와 400주년 기념판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으니 하나님께 크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정 목사님과 많은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요... 흠정역이 한국 크리스천의 표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1-09-18 23:09:16 | 김재욱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는 읽는 내내 책 내용의 90% 이상을 빨간색으로 줄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명저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강단은 우주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목사님의 귀한 글처럼 세상의 서고 쓰러짐은 교회에 달려 있고 교회의 서고 쓰러짐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목자(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부실한 설교를 매주 즐겨(?) 들으며 영적 식중독에 신음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회복시키는 참된 목사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보내주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2011-09-18 21:22:17 | 김대용
철도의 날과 우리 교회 이벤트가 마주쳤네요..ㅋㅋ 지난 명절에 못 느꼈던 즐거움이 음식준비를 하며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알게 된 형제 자매들을 만나는 이 주일에 특별한 음식으로 대접할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분주하고 설레는 것은 우리 자매님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지요. 올해는 이 기분을 연장해서 우리도 추수감사절에 먹곤하는 칠면조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는데 김문수형제님...많이 잡숫고 오세요..메뉴와 요리법도 익혀 오시고요...^^ 다소 흥미없는 철도에 관한 글이었는데 댓글로 마음은 들뜨게 하였네요...ㅎ.ㅎ
2011-09-18 08:29:08 | 정혜미
열차 이야기가 나오면 꼭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처음 교회 가서 멋모르고 따라 불렀던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라는 노래였고, 다른 하나는 "은하철도 999"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고 은하철도 999를 타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었는데 거의 마지막에 가서 그 영원한 생명이라는게 인간의 장기를 죄다 기계 부속으로 바꾼 인조 육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그걸 만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영원한 생명 하면 떠오르는게 인조 인간이나 뱀파이어밖에 없나 봅니다. 다들 추석 명절 잘 보내셨지요? 여긴 추석은 그냥 넘어갔고, 다가올 추수감사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1-09-18 01:22:54 | 김문수
요즘은 철도 '철'자만 들어도 형제님 모습이 떠오릅니다.ㅎㅎㅎ 내일이 철도의 날이군요. 맞춰 런칭이벤트까지....저도 무척 기쁩니다. 지난 추석이 명절같지않아 좀 아쉬웠는데 제 마음에 어느덧 주일이 명절이요, 내일은 정말 잔치날로 다가옵니다. 마음이 참 떨리네요. 샬롬 ^^
2011-09-17 23:38:51 | 이청원
철도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산업화의 주역이던 증기 기관차이다.우리말의 경우 기차(汽車)라는 한자어부터가 증기라는 뉘앙스를 잔뜩 담고 있는 단어이며, 칙칙폭폭 역시 증기 기관차에서 유래된 의성어이다.철도 건널목 표지판은 연기를 모락모락 내는 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증기 기관차가 달리면서 연기를 온 천지에다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 “기차 화통 삶아먹었나?”란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 중에 저렇게 연기를 뿜으면서 칙칙폭폭 하면서 달리는 녀석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각인된 철도의 첫 구현체인 증기 기관차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뿌리 깊다. 마치,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3.5인치 디스켓 아이콘은 ‘저장’ 아이콘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리학에는 열역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열역학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열로 바뀐다.하지만 반대로 열을 에너지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모든 열을 에너지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 일을 하는 물건을 통상 기관 내지 엔진이라고 부른다.   그 기관 중 증기 기관은 외연 기관이라고 불린다.증기 기관은 연료를 태워서 물 같은 다른 매개체를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나 터빈을 움직인다. 연소가 동력을 만드는 곳과는 별개의 장소인 보일러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외’(external)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밥솥 내지 냄비에서나 나오는 그 연약한 수증기가 평소보다 10수 배로 압축만 하면 집채만 한 무거운 열차를 움직이게도 한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요즘이야 기관차형 열차에는 기관차 뒤에 발전차가 편성되어 있다. 객실 내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발전차가 아니라 석탄을 실은 별도의 화차가 한 량 필요했다. ^^;; 기관사 밑에서 일하는 조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삽으로 석탄을 아궁이에다 열심히 퍼 넣어야 했다. ㅎㄷㄷㄷ;;그리고 증기 기관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역에는 급수탑이 필요했다. 수원, 영천 등 몇몇 역에 있던 급수탑이 지금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당시 증기 기관차의 특징 중 하나는 바퀴 크기가 큼직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앞바퀴가 유난히도 큼직한 자전거가 존재하기도 했던 것과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증기 기관차는 꼭 둥근 원통형이고 색깔은 새까맸다. 어차피 매연 묻어서 시꺼멓게 되는 걸 가리려고 검은색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듯.또한 증기 기관차는 20세기 중반에 세상에 컬러 사진이 보편화할 무렵엔 모두 은퇴했기 때문에, 최소한 연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보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다. 특히 정지 사진이 아닌 컬러 동영상은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증기 기관은 오늘날의 내연 기관에 비해서야 구조가 간단해서 만들기 쉽고, 저속에서도 비교적(언제까지나 '비교적!') 토크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차보다야 월등히 더 뛰어난 수송력으로 물류 혁명을 달성한 건 사실임. 그리고 무슨 방법을 써서든 물을 끓게만 만들면 됐으니 옥탄가가 크지 않은 저가의 저질 연료를 써도 괜찮은 점 역시 장점이었다.   그때 증기 기관차에는 별도의 변속기라는 게 없었다. 외연 기관은 태생적으로 연소 따로, 구동 따로인데 어차피 바퀴의 부하가 엔진에 바로 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석탄 열나게 많이 때면 빨리 가고, 적게 때면 느려졌다. 수증기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유체/유압 변속기 역할을 자연스럽게 했다.변속기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기관차의 바퀴 크기 자체가 동력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으며, 바퀴마다 크기가 들쑥날쑥이기도 했다. 여객용 기관차는 속도를 중요시해서 바퀴가 유난히 크고, 화물용 기관차는 견인력을 중요시해서 작은 바퀴 여러 개였던 식.   나름 증기 기관도 발전을 거듭하여 처음 발명되었을 때보다 더욱 출력이 향상되고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동력을 쓰는 열차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았다.증기 기관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볼 때 태생적으로 미치도록 열효율이 저조하고 열차를 굴리기에는 출력이 부족했다. 가감속이 쥐약이고 고속화 역시 곤란했다.   또한 증기 기관은 보일러가 필요하고 물탱크에 석탄까지 있어야 하다 보니, 구조는 단순하지만 덩치가 커지는 게 불가피했고 소형화하기가 곤란했다. 증기 기관이 자동차의 동력원으로는 프랑스의 퀴뇨 이후로 일찌감치 실패하고 그나마 철길이라든가 증기선으로 살 길을 찾은 게 바로 이 때문이다.그러나 비열이 큰 물이 끓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석탄 같은 고체 연료는 취급하기가 번거로워서 여전히 큰 골칫거리였다. 시동 시간이 굉장히 길고, 차를 세우거나 움직이게 하는 게 고역이었다는 뜻. 연탄재 치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찮은데 다량의 석탄재 처리는 어떻게?   요즘 일부 국가에서는 관광용으로 일부러 증기 기관차를 굴리는 곳이 있는데, 걔네들은 석탄 대신 더 깨끗하고 취급하기 더 쉬운 연료인 석유나 가스로 물을 끓인다. 200년 전의 증기 기관차를 100% 그대로 재연한 건 아니라는 뜻. 사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실용화한 시기 자체가 영국의 산업 혁명과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처럼 대량의 석유를 값싸게 전세계에 공급하는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이었다.   18세기에 제임스 와트 같은 선구자에 의해 발명되어 인류의 동력원으로 활동한 증기 기관은, 19세기 중후반이 되어서야 내연 기관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최소한 교통수단에서는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오늘날 증기 기관은 발전소의 증기 터빈 같은 곳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은 내연 기관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전기 철도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결론:   - 내일은 9월 18일, 철도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날짜(1899년 9월 18일)에서 유래됐습니다. - 철도의 날에 딱 맞춰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 런칭 이벤트가 열리는 것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17 21:24:48 | 김용묵
한번 읽고는 버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평생토록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후자의 책들은 스캔 회사에 보내 스캔해서 컴퓨터에 두고 또 패드에 넣고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읽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 '설교와 설교자'는 후자의 책입니다. 목회와 설교에 무기력감을 느낄 때 읽으면 힘을 주는 책입니다. 그분의 열정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듣는 이들을 시원하게 해 주는 설교자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성도일 때는 설교가 지루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예배당에 앉아 설교를 들어보니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설교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매일 구원만 설교합니다. 어떤 구절이든 읽으면 다 구원으로 끌고갑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또 종종 성경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교회 목사들은 성경 한 구절 읽고 다른 이야기 하다 끝냅니다. 어느 목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구절만 인용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로 착각합니다. 어느 교회는 설교와 성경 공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설교 시간에 성경을 가르칩니다. Preaching(설교)과 Teaching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100명이 앉아 있다고 할 때 헛된 설교로 1시간을 보내면 100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처럼 한번에 2-3만 명이 앉으면 2-3만 시간이 허비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경우 한번 예배당으로 내려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거나 집에서 차에서 자기의 설교를 들어보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서고 쓰러짐은 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특히 목사의 설교에 달려 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의 1장(설교라야만 한다)을 올립니다.   성도들도 그냥 읽으면 힘이 솟아날 것입니다.   참고로 복있는 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낸 책을 추천합니다. 많이 구매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에 소망을 둡시다. 좋은 목사들을 이 나라에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샬롬.
2011-09-17 11:48:31 | 관리자
유다 왕  여호야긴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언제부터 통치하기 시작했습니까?   열왕기하 24장 8절에는 그가 18세때 부터 통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역대기하 36장 9절에는 그가 8세때 부터 통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답: 여호야긴은 자기 아버지가 쫓겨난 뒤에 여덟 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대하36:9).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왕비로서 그를 대신해서 그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통치했습니다(왕하24:8). 그리고 세 달 뒤에 왕인 그와 그의 어머니 역시 추방을 당했습니다(왕하24:12). 이런 연대기 문제는 다음을 참조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69&page=&cate_name=%EC%97%B4%EC%99%95%EA%B8%B0%ED%95%98&sfl=&stx=&sst=&sod=&spt=&page=    
2011-09-13 12:06:2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