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위를 잘못 표기한 오류가 있지 않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몇 개월 전에 어떤 분이 한 형제를 만나 킹제임스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누가복음 19장 13절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흠정역: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십 므나를 건네주며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올 때까지 관리하라, 하니라.
KJB: And he called his ten servants, and delivered them ten pounds, and said unto them, Occupy till I come.
그분의 질문 요지는 “왜 KJB는 여기에서 므나를 파운드(pound)로 표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복음서에서 KJB는 달란트, 드라크마 등을 영국 단위로 표기했으니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므로 오류가 있는 성경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제게 보내면서 그 형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기에, 저도 참는 데 지쳐서 그런 쓸데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니 이제는 단위를 가지고 오류 시비를 거는 분들이 있네요.
이런 쓸데없는 질문에 매번 답변을 해야 하나 싶지만, 한편으로 목사는 오래 참고 가르쳐야 하기에 결국 간단히 답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것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습니다.
영어 위키 백과에 가서 pound를 치면 무게 단위인 파운드의 유래가 나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ound_(mass)
영어 단어 파운드는 로마 단어 즉 라틴어 ‘libra’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파운드를 표기할 때는 ‘lb’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 사람들의 단위는 그리스 사람들의 단위에서 나왔습니다. 다음 기사의 첫째 줄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Roman_units_of_measurement
그러면 영어 파운드와 라틴어 리브라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므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단위를 보여 주는 다음 기사에서 무게(weight) 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Greek_units_of_measurement
므나는 100드라크마이고 표준에 따라 431-630그램입니다.영국에서 1파운드는 약 450그램입니다.
그러므로 1611년 당시의 영어 성경 번역자들은 므나에서 리브라로, 그리고 리브라에서 파운드로 무게, 혹은 화폐 단위의 이름이 바뀌었기에 보통의 영국 사람들을 위해 므나를 그대로 파운드로 번역하였습니다. 즉 영국의 문화는 많은 면에서 그리스, 로마(라틴) 문화의 연장선에 있어서 심지어 화폐/무게도 이름만 바뀌었지 내용은 같습니다. 사실 파운드 자체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단위를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역을 할 때 원어를 그대로 살려서 화폐 파운드의 경우 므나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교사가 므나의 무게 혹은 가치를 가르쳐 주면 됩니다.
한편 요한복음 19장 39절의 경우 같은 파운드라 해도 무게를 나타내는 경우는 '근'이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 원어는 리트라(litra)이고 파운드 무게와 같습니다.
흠정역: 또 처음에 예수님께 밤에 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오니라.
KJB: And there came also Nicodemus, which at the first came to Jesus by night, and brought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n hundred pound [weight].
NIV 등을 포함한 모든 메이저 영어 성경이 100 파운드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은 채소의 경우 375그램, 고기의 경우 600그램이므로 영어 파운드를 이와 비슷한 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단위는 성경의 오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름 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Jesus’를 예수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영어를 조금 안다고 하는 분은 꼭 ‘예수스’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다 님 자를 붙이면 ‘예수스님’(잘못 읽으면 예수 스님)이 되지요.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런 분들은 성령님도 성숨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Paris’를 우리는 파리 혹은 빠리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패리스라고 합니다.
‘Thomas’를 우리는 도마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토머스라고 합니다. 토머스 에디슨 아시지요?
그러면 ‘스’를 붙이고 안 붙이고가 오류의 유무를 결정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갈렙(Calep)은 여분네(Jephunneh)의 아들입니다.그런데 이름이 틀렸다고 ‘칼렙’, ‘예푼네’로 쓴 성경도 있습니다(표지에는 킹제임스라는 단어가 붙어 있음).
‘예푼네’가 ‘여편네’로 들리지 않습니까?
‘예푼네’가 정말로 맞나요? 끝의 h는 어디로 갔나요? Jesus의 s는 어디로 갔나요?
누구보다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에도 미달입니다.
단위나 이름 같은 문제로 양심이 연약한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면 안 됩니다.
파운드라고 하든 므나라고 하든 근이라고 하든,우리나라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하든 미국 사람이 지이저스라고 하든 하나님은 다 같은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분은 각 나라 문화와 언어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 단위나 이름 표기 문제로 성경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성경 안의 단어들이 있는 그대로 가능한 일대일 대응이 되게, 정직하게 수용 언어로 번역되면 그 성경을 인정하십니다.
흠정역 성경은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쓴 것은 이런 무익한 질문을 통해 성경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사람을 설득하려 함이 아닙니다. 이런 분은 이미 믿지 않기로 마음에 굳게 작정하였으므로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을 가져옵니다. 마치 여호와의 증인들과 비슷합니다. 이런 불신의 악순환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접하고 고민하는 그 형제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큰 평강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6:24:37 | 관리자
흠정역 성경은 복수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비방하면 안 됩니다.
몇 달 전에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의 한 목사님이 흠정역 성경이 복수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요한복음 1장 12절이었습니다.
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KJV: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영어로 보면 ‘the sons of God’이 복수인데 왜 흠정역은 ‘하나님의 아들’로 단수 처리했느냐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자가 이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번역할까요?
우리말은 특별히 접미사 '-들' 등을 사용해 복수를 부각하지 않아도 의미상 복수가 되면 복수로 쓰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교양 있는 표현이 될 때가 많습니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입니까? 아니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들’입니까?
이 경우 영어식 문법에 맞게 복수를 써야 한다고 ‘여러분들’이라 하면 자연스럽지 못한 번역 투의 문장이 되며 연설이 조잡해집니다.
우리말은 특히 ‘모든’, ‘여러’ 등과 같이 수 개념의 형용사가 앞에 붙으면 뒤에 오는 명사는 복수라도 대개 단수로 표현합니다.
모든 국민, 모든 사람, 여러 사람, 꽃 세 송이, 네 마리 개 등
물론 이런 데서 영어처럼 하려고 ‘들’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 모든 사람들, 여러 사람들, 꽃 세 송이들, 네 마리 개들 등
그리해도 ‘모든 국민들’, ‘모든 사람들’, ‘여러 사람들’처럼 어떤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 ‘꽃 세 송이들, 네 마리 개들’처럼 전혀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과 특히 읽힘성을 보고 판단하여 복수의 경우 ‘-들’을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번역한 뒤 많이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대화를 봅시다.
아들: “아버지, 저기 있는 꽃들은 다 뭐예요?”아버지: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They are all roses).
아버지의 대답이 “그것들은 다 장미들이란다.”로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가 훨씬 더 우리말처럼 느껴집니다. 즉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 굳이 '-들'을 넣으면 번역 투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됩니다.
이전에는 이런 것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영어가 보편화하다 보니 복수 등에 신경 쓰는 사례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로 하는 경우 장미는 물론 단수이고 영어로는 복수인 ‘roses’이므로 단편적으로 비교하면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라고 말하거나 써도 장미가 복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즉, '-들'을 생략하는 것이 우리말로서는 더 자연스럽고 교양 있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장미를 단수로 표현해도 앞에 ‘그것들’과 ‘다’가 모두 여러 개를 표현하므로 그 말을 복수로 듣거나 읽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분 중에 그래도 '-들'을 붙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여러 번역자가 번역 작업에서 우리말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하게 '-들'을 사용한 책과 글이 이미 세상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은 1장 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우리 주님은 성도들에게 다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경우 ‘아들들’이라 해도 문제가 없지만 단수 아들로 하는 것이 우리말에서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부분을 영어와 비교하고는 기계적으로 복수 처리하려 하면 교양 있는 우리말 번역이 아닌 번역 투의 조악한 번역이 됩니다.
영어에는 ‘children of Israel’이 640여 회 나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성경들은 이것을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대로 하자면 ‘이스라엘의 자손들’ 혹은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즉 야곱의 후손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일단 ‘의’를 빼도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자손’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집합 명사로 복수로 이해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매번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면 오히려 성경의 자연스러운 읽힘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혀 독자가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는 겁니다.
분명하게 야곱의 자손들이 아니라 그의 12 아들을 표현할 때는 '이스라엘의 아이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말로는 ‘이스라엘 자손’이라 해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는 좋은 짐승입니다.”의 경우에 어떤 특정한 개, 즉 개를 단수로 본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Dogs are good animal.”로 해야 합니다. 우리말이 단수라고 ‘A dog'이라고 하면 촌스러운 번역이 됩니다.
그러므로 sons, children 등의 복수는 앞뒤 문맥을 보고 아들들이나 아들, 자손들이나 아이들이나 자손 등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 그리고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와 반대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차이를 잘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셨습니까?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아들들’로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하면 결국 성도들의 성경 신뢰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말 등 명백하고 단순한 것에 대한 교양이 부족해 설익은 주장이나 가르침을 양산하거나 그것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말 용법을 잘 이해하면서 이런 주장을 지속해서 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의 의도가 순수한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말에서는 복수를 쓰면 자연스럽지 않지만 교리적으로 꼭 써야만 하는 경우 저희는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포기하고 모두 복수 처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들’(heavens)과 ‘죄들’(sins)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단어들은 교리적으로 반드시 단복수 구분이 되어야 하므로 자연스럽지 않아도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고민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나, 혹은 한국어의 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성도들 앞에서 자기자랑을 하기 위해 흠정역 성경이 단수와 복수도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의 위상이 약화되며, 자신의 목회와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목사나 교사는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부디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5:15:45 | 관리자
흠정역 성경은 시제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문제를 제기하려거든 먼저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는 흠정역 성경을 비판하면 그것은 성경 신자들을 특히 연약한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흠정역 성경을 보는 분들 가운데 시제를 문제로 삼아 혼란을 일으키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4절을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이런 분들은 1절의 ‘창조하시니라’, 2절의 ‘움직이시니라’, 그리고 5절의 ‘부르시니라’가 영어로는 ‘created’, ‘moved’, ‘called’로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는데 왜 흠정역은 이것들을 현재로 번역했느냐고 꼬투리를 잡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으로 흠정역 성경의 번역을 비난하는 분들은 한국말을 쓰는 성경 신자 중에 자기만 독보적으로 영어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설익은 주장에 미혹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 번역의 의도와 사실을 잘 알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위의 세 단어를 현재로 표현하려면 각각 ‘창조하시느니라’, ‘움직이시느니라’, ‘부르시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흠정역은 각각 ‘창조하시니라’, ‘움직이시니라’, ‘부르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흠정역 성경은 ‘하느니라’체라는 고어체의 예스러운 표현을 수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문체를 웅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면으로만 보자면 개역성경은 뛰어난 번역입니다. 우리말의 웅장한 표현을 성경에 잘 녹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을 현대인에게 익숙한 문체로 바꾸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얼마나 조잡하고 가볍게 읽힐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물론 시중에는 이미 이런 식의 번역으로 출간된 성경이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이 당장 읽기에는 친숙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심과 장중한 경륜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바로 그 놀라운 성경 기록의 격이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더불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 불가한 최고의 경전이라는 성경의 독보적 위상과 가치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번역은 일단 현대인에게 친숙하고 또 어법상 틀린 번역은 아니겠지만, 성경 번역으로는 합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읽는 창작 동화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이제 독자 스스로 두 번역을 비교하며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시제를 잘 살려야겠다고 다음과 같이 번역하면 어떨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더라.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더라.
이렇게 모든 구절을 ‘하셨더라’로 해 놓으면 웅장하게 선언하는 분위기가 전혀 살아나지 않고 그 표현이 조잡해집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독자께서 스스로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예스러운 표현인 ‘하느니라’체를 도입하여 웅장하게 선언하는 표현기법을 써야 합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잘 표현하였고 개역개정을 내면서도 이런 부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음은 개역개정 위원회의 번역 원칙입니다.
개역 성경의 옛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하다’체를 사용하여 현대화하지 않고, ‘하느니라’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고어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4절에서 보듯이 ‘하시니라’ ‘좋았더라’ 등의 표현을 ‘하셨다’ ‘좋았다’ 등으로 고치지 않았다. http://www.bskorea.or.kr/kbs_gae/change/change2.htmlhttp://pcouncil.net/jboard/?code=ilban-aa002&id=1781&p=detail&page=48(번역의 원칙만 참조하기 바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의 뜻은 현재 평균적인 교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현시대에 쓰고 있는 말이 아닌 지금 실생활에서 쓰고 있지 않은 예스러운 고어체의 글에서 경전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흠정역 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과거를 현재로 오역한 것이 아니라 ‘하느니라’체로 과거의 사건을 웅장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고어체로 유려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굳이 이 부분을 집요하게 따지는 이유는 1장 1절은 오래전에 마친 일이고, 2절부터는 재창조임이 나타나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도 흠정역 성경은 3, 4, 5절 끝에는 ‘빛이 있었고’, ‘좋았더라’, ‘첫째 날이더라.’라는 말로 과거 시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조합을 거쳐서 성경이 웅장한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입다의 이야기를 하나 더 예로 들겠습니다.
사사기 11장 34-40절을 읽으시면서 각 절의 어미 처리를 유심히 보시면 ‘하느니라’와 ‘하였더라’가 조합으로 나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9절의 ‘돌아오니라’와 ‘아니하니라’는 현재 시제가 아니라 고어체로 과거 시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로 표현하려면 ‘돌아오느니라’와 ‘아니하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지적한 뒤 줄을 긋고는 흠정역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자가 번역 과정에서 시제도 못 맞추었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시제를 고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저는 흠정역 성경에서 제가 알면서 고의적으로 시제 등을 고친 곳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채 시제 등이 잘못 표기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데를 발견하시면 언제라도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마치 제가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으로 개인 블로그 등에 발표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 자체의 위상이 약화됩니다. 특히 목사나 교사가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에게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려면 한국어와 영어 중에 어느 언어를 우선해서 잘 이해하고 구사해야 할까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어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성경 교사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아직도 많은 자료와 좋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못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한국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고 품위 있게 구사할 줄 알아야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신장이 크지 않은, 즉 다리가 길지 않아 큰 보폭으로 움직일 수 없는 육상 선수와 한쪽 다리만 비정상적으로 긴 육상 선수가 있다면 실제 경기에서 누가 더 유리할까요? 물어볼 것도 없이 비록 짧지만, 정상적인 다리를 지니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처럼 영어에 관해서는 비교적 정통하지만 정작 한국어에 대한 교양과 이해가 부족하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설익은 문제를 제기하고 어설픈 주장을 하게도 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영어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면 우리말로 된 흠정역 성경과 기타 자료들만 충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한 그리스도인보다 어느 부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독자 여러분!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거든 아직 양심이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이메일 등을 통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한 이러한 배려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잘 헤아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4:26: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사도 바울의 서신서 뒷부분에 있는 추신이 성경 말씀이냐고 물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6장 18절 뒤에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로마에서 써서 보내다.”라는 추신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추신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앞에 있는 제목 즉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도 마찬가지로 성경이 아닙니다.
흠정역 성경에는 성경 66권 각 책의 설명이 간단히 들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경우 기록 시기가 주후 55년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모든 것들도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1장 1절부터 6장 18절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부록으로 사람들(번역자들)이 첨가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따라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제목과 추신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분의 의문점은 갈라디아서의 기록 시기가 주후 55년경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추신에 따라서 그 이전에 바울이 이미 로마에 간 적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록 시기와 추신은 사람들의 첨가물이므로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분은 다만 참조용으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기록 시기의 경우 초기, 중기, 후기 기록설이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시 아무도 정확한 시기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추신, 제목 등은 1611년 판 영어 성경 그대로를 번역한 것이고 66권 각 책 앞의 요약 설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치 지도 등을 넣은 것처럼 저희가 정리해 넣은 것입니다.
이 점에 유의해서 흠정역 성경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0 14:25: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한 분이 창세기 1장 1절을 왜 "태초"로 번역하지 않고 "처음"으로 번역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철학에 대한 것으로 중요한 이슈이기에 잠시 설명하려 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번역은 해석과는 다릅니다.번역은 가능한 한 개인의 편견과 사견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자세로 성경 본문의 단어들(예를 들어 beginning)을 수용 언어의 중립적인 단어들(예를 들어 처음)로 옮겨야 합니다.또한 가능하면 성경 본문의 다른 구절에 기록된 같은 단어는 번역되는 언어에서도 모두 같은 단어로 옮기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그래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beginning이라는 단어가 총 106회 나옵니다.중고등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중립적인 우리말로 beginning을 번역하면 ‘처음’과 ‘시작’ 이 될 수 있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거의 다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앞뒤 문맥상 시간이 처음 시작된 때를 나타내므로 사실 태초(太初)라는 단어를 써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같은 문구인 ‘In the beginning’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앞뒤 문맥상 절대 태초로 번역될 수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개역성경처럼 이런 구절을 태초라고 번역하면 하늘과 땅이 창조되기 전, 즉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 역시 "처음"이라는 중립적인 말로 옮겨야 독자가 성경의 앞뒤 문맥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처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르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번역자는 해석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번역자는 가능한 한 자기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도록 착실하게 번역하여야 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바로 이런 철학을 가지고 가능한 한 축자 번역이 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같은 말은 가능한 한 우리말에서도 같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개역성경은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과 땅을 천지로 번역하였습니다.이것은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성경을 성경으로 공부하기에는 심히 부족합니다.
heaven, earth 등의 단어가 성경의 각 구절마다 천, 지, 하늘, 땅 등으로 달리 번역되면 이 단어들의 성경적 용례를 살펴볼 수 없게 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일관성이 있게 heaven은 하늘로, earth는 땅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누가 하늘의 위치, 개수 등을 알고 싶으면 성경 단어 찾기로 가서 "하늘"이라고 치면 됩니다.
그러면 하늘과 관련된 모든 구절이 나오므로 독자 스스로 하늘의 개수, 위치, 그 안의 존재들 등을 타인의 도움 없이 즉 신학적 편견 없이 성경이 알려주는 그대로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고 기록된 그대로를 믿는 자들을 우리는 보통 성경 신자라고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성경 신자가 계속해서 배출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단어들을 중립적인 단어로 가능한 한 초지일관 동일하게 번역한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또한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kingdom, king은 다 왕국, 왕으로 일관성있게 번역하였습니다.반면에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등은 나라, 왕, 임금 등으로 다채롭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kingdom of heaven을 하늘의 왕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등은 천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kingdom of God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등은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하였습니다.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식으로 중요한 단어인 kingdom을 마음대로 번역하면 땅에 이루어지는 왕국(하늘의 왕국)이 천국이 되어 성경의 본래 의미를 가리게 됩니다. 더구나 이 경우에는 아예 반대가 되고 맙니다.
kingdom of heaven은 단2:44에 예언된 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이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개역성경 등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는 Son of man을 인자로 번역하였습니다.반면에 신성을 나타내는 Son of God은 하나님의 아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 둘을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로 일관되게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예수님의 신성이 나타나듯이, 사람이라는 누구나 쉽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들어가야 예수님의 인성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렇게 해야 적어도 중고등학교 학생 이상의 교양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성경 번역에 관한 확고한 철학 없이 번역된 성경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이런 철학을 살려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바른 교리를 세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갈수록 악해져만 가고 미혹이 판치는 세상에서 바로 이런 성경을 손에 쥐어야 비로소 성경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2-25 16:16:1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미국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관련 참고 문헌 목록을 여러 목사님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공개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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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목사님들께,
성경론에서 총체적 축자영감과 섭리보존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입장과 믿음도 있습니다.
여러 목사님들과 교제하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참고문헌을 부탁하시곤 하였습니다.
더 많은 책들과 자료들이 있지만 여기 보내드리는 것은 단지 제가 소유하고 있는 자료들입니다. 더 좋은 책들, 또 반대입장에 있는 책들도 물론 있으니, 그 판단과 선택은 각자 목사님들께서 하시고 시간 절약을 위해서 몇 가지 서적과 웹사이트를 찾아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목사님께서 아시는 좋은 책자들과 정보들도 소개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은 명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명품이 아닌데 짝퉁 가방을 가지고 있으면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슈는 이제 단지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목회자 각자 시간과 마음을 내어서 그 반대 입장에 분명히 서든가 아니면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한 가지로 기록하게 하시고, 오늘날까지도 보존하셨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여튼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보내드립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사역에 두루 열매가 맺히는 귀한 목사님들이 되시도록 기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 Sunday Service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 Evening Serviceswww.centralkbc.com
2015-02-12 12:48: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몇 달 동안 종종 주변의 몇몇 형제/자매님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이상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혹시 제가 그것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의 제목은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비방 글들의 링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메일을 무차별 살포하는 분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특히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적어 놓은 비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세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막상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그 글을 적은 분인지 아니면 그분의 추종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동일한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렸기에 관리자 형제가 즉시 삭제하였습니다. 관리자들이 신경을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짧은 순간 게재되었던 글임에도 그 글을 읽고 놀란 마음에 어찌 된 일이냐고 질문의 메일을 보낸 형제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수천 군데 심각한 오류가 있어서 많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현대 역본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에 오늘은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들이 차라리 현대/자유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예 틀렸고 인간 저자들이 임의대로 쓴 기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어로 성경을 보존해 주셨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데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메일과 카톡 등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들의 헛된 주장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거나 잃어버리는 연약한 지체들이 있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간단히 글을 씁니다.
이들은 한동안 원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와 대소문자를 가지고 성도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개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 여러 개 뜻 가운데서 가장 합당한 하나를 정해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원래 대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위클리프 이후 킹제임스 성경에 이르기까지 약 230년 동안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에서 같은 영(그리스어의 경우 프뉴마)이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확실히 판단되는 데는 대문자 Spirit으로, 하나님의 영이나 혹은 다른 영으로 두어도 문제가 없는 데는 소문자 spirit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문맥에 따라 독자가 판단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난외주와 대소문자 비방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 합니다.
1. 난외주
과거에 영어 성경이 나올 때에는 번역하면서 특정 단어나 절에 대해 번역자들 간에 만장일치로 깔끔하게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 난외주에 소수의 의견을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난외주가 가장 많았던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전에 나온 제네바 성경이었습니다. 제네바 성경 안에는 칼빈의 개혁주의(장로교) 사상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에 제임스 왕은 성경을 새로 번역하라고 명령하면서 특별히 난외주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평균 한 페이지에 5-6개 정도의 난외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해서 알아야 할 것은 난외주란 소수의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정황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 난외주 자체가 본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 학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F. 힐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번역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첨가한 난외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섭리[돌보심]로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스크리브너(1884)는 외경이 포함된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 8,422개의 난외주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크리브너는 구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4,111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 원문에 좀 더 문자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며 2,156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67개는 이문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112개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번역을 제공해 주며 582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37개는 이문들이다. 이러한 난외주들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번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킹제임스 성경 변호 213쪽>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5
이분은 곧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살펴보았음을 난외주에 표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섭리 즉 돌보심으로 그들이 본문의 단어들 - 난외주가 아니라 - 을 선택하는 것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겸손함에 대해 힐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외주들이 보여 주듯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인 그 성경을 완전한 것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다만 그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신뢰할 만하게 재현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그렇게 추천했다. (214쪽)
그리고 힐즈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서문의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온유한 독자인 당신에게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에게 당신을 맡기는 일만 남았다. 그분은 우리의 눈에서 비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베일을 벗기신다. 또 우리가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며 참으로 우리의 성정을 고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금과 은보다 더 그것[말씀]을 사랑할 수 있으며 참으로 끝까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분께서 우리 앞에 자신의 말씀을 놓으실 때에 그것을 읽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뻗으시고 부르실 때에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바로] 그것은 복된 일이며 우리를 결국 영존하는 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돌보심과 내적 의식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구한다.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과 더불어 그분께 모든 찬양과 감사가 있기를 원한다. 아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난외주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611년 초판 발행 이후에 킹제임스 성경이 정착되면서 난외주들은 성경 자체에서 곧 사라졌다는 겁니다.
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역사서로 부록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가장 크게 미워하던 사람들이 만든 제네바 성경에도 외경이 들어 있었지만 후에는 난외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외경이나 난외주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것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이지 난외주나 외경이 아닙니다.
바로 그 성경 본문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거기 담긴 복음을 듣고 확신하는 사람을 구원시키고 성화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고 사용하시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준 글’이나 ‘제임스 왕에게 바친 헌정문’이나 난외주나 외경이나 금박 표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본문!
하나님은 바로 이 성경 본문을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순수한 이 본문을 정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존하였습니다.
바로 그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사용해서 지난 400여 년 동안 복음이 선포되고 성경의 모든 교리가 확립되었습니다. 난외주나 외경 심지어 원본이 아닙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 반포된 지 400년이 이미 지난 이 시점에서 난외주가 본문보다 옳다고 주장하며 교묘하게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또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분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6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 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7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 8 그런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나니 이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리니 이는 저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것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딤후3:6-9).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터인데 그때 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들은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복사본(팩시밀리)을 하나 구한 뒤 거기에 기록된 난외주만 열심히 찾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며 이슈를 만들 만한 단어가 나오면 손뼉을 치면서 킹제임스 성경이 틀리고 난외주가 맞는다고 소리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의 본문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성경 신자일까요?
이런 예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이사야서 14장 12절의 루시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분명히 에스겔서 28장의 ‘타락한 그룹’이 루시퍼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난외주에는 ‘daystar’ 즉 샛별(계명성)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할 때는 “과거에 이 단어를 샛별로 본 사람들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봐라, 루시퍼가 아니라 샛별이 맞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샛별’을 본문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산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100억 권 정도 인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 100억 권에 무어라 되어 있습니까? 루시퍼지요.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1611년 이후의 모든 신학교가 세워지고 신학 서적들이 저술되었습니다. 즉 교리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와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기록된 루시퍼가 아니라 난외주의 샛별이 맞는다고 주장하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과연 성경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호하게 일하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신약 성경 사본들은 공개적으로 여러 대륙의 거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보급되었습니다. 반면에 모든 현대 역본들의 모체가 되는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바티칸 도서관과 동방 정교회 수도원에 고이 간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수님 승천 후 1850년이 지난 시점에 이 둘이 공개되면서 이것들이 참으로 진실한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의 1850년 동안 성도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믿음 생활을 했단 말인가요?
성경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시12:6-7) 부인하는 현대 역본 역자들의 이런 주장과 난외주를 가지고 본문을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순수한 본문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급되고 유통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 외경 그리고 천주교 소수 사본 등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 대문자/소문자 spirit/Spirit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몇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이 여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1:12(ACTS 11:12). “And the spirit bade me go with them, nothing doubting. Moreover these six brethren accompanied me, and we entered into the man’s house.”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과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8(ACTS 11:28). “And there stood up one of them named Agabus, and signified by the spirit that there should be great dearth throughout all the world: which came to pass in the days of Claudius Caesar.” 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 1638년 그리고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요일 5:8(1 JOHN 5: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1611년 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1638년과 1769년 판에는 이것이 소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spiri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spirit/Spirit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 존재(a spirit being), 사람의 영, 성령님, 정신 등
2. 성경에서는 소문자 spirit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사례들이 있다(출31:3; 욥27:3; 고전2:12).
3. 소문자 spirit은 성령님의 일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동일한 말씀이 요엘서 2장 28에는 소문자로(pour out my spirit), 사도행전 2장 17절에는 대문자로(pour out of my Spirit)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판에서 행11:12, 행11:28,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이 쓰인 것은 앞뒤 문맥으로 살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누군가가 대문자 Spirit이 쓰여야 합당하다고 주장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이 하는 일은 다시 태어난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공동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런 구절들에서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 단어 프뉴마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프뉴마를 있는 그대로 ‘스피릿’(대문자든 소문자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의 영감/보존에도 문제가 없으며 번역되면서도 보존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영어 성경의 역자들은 영어 단어 스피릿에 그리스 단어에 없는 대소문자의 구별이 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대소문자 spirit/Spirit을 구분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인쇄술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성경 전체를 보면 수십만 개 혹은 수백만 개)을 찾아서 조판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 조판공들은 대소문자 spirit/Spirit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조판공의 이런 실수 예는 여럿 있습니다.
이 중에 유명한 것은 사악한 성경(Wicked Bible)으로 알려진 1631년 판입니다. 이 판에서는 출20:14 말씀 즉 “너는 간음하지 말라”가 “너는 간음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Wicked_Bible
즉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라고 조판해야 하는데 꼼꼼함을 요하는 작업 때문에 몸이 매우 피곤했던 식자공은 그만 여기서 중간의 ‘not’을 넣지 못했고 결국 그 성경은 “너는 간음하라”라고 명령하는 ‘사악한 성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성경의 대부분은 즉시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몇 개만 희귀본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초판의 이런 실수 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KJB2/View/2Vl
그래도 spirit/Spirit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분들은 리플링거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에서 선택의 자유를 독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앞뒤 문맥을 보고 독자가 결정하면 될 일이지 성경의 보존이나 최종권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끝으로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성경에서 스펠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1611년의 초판을 참고하려 합니다.
그러나 1611년 초판에는 식자공의 이런 실수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므로 1611년 초판이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요일5:8의 경우 1611년 초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고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Water와 Blood도 신성을 가진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체가 쓰이지 않았고 고딕체가 쓰였습니다. 고딕체의 경우 이런 사례에서는 종종 같은 구절에서 몇 단어를 연거푸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어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요일5:8에서 반드시 대문자 Spirit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다음의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결론을 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서너 군데는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감/보존/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역자들은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번역하였으나 식자공의 실수로 이런 데가 있습니다. 이런 식자 문제들은 역자들이 살아 있던 시대에 대부분 곧바로 교정되었으나 역자들이 죽은 이후에도 처리되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서너 군데의 spirit/Spirit이 이 경우입니다.
그래서 철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스퍼드 판과 케임브리지 판이 나왔고 지금 존재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둘 중의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토마스 넬슨 출판사 판은 자기들 마음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단어를 임의로 수정하였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판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리플링거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 참고로 리플링거의 글은 매우 훌륭하지만 100% 옳지는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안내해 드린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초판을 낼 때에는 영어 성경 파일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탤릭체를 살린 파일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이 주신 영어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여러 소스를 알게 되었고 2011년에 400주년 기념판을 출간할 때에는 Pure Cambridge Text로 알려진 영어 본문을 사용하였습니다.
www.bibleprotector.com
물론 앞으로도 저희는 영어 본문의 경우 Pure Cambridge Text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번역의 초기 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짐입니다. “왜 처음부터 pure text를 쓰지 않았느냐?”고 질책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만 불거지게 됩니다.
영어 성경도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까지 약 230년의 담금질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문, 번역 등에 의문이 있으면 대안과 함께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메일의 내용은 제안이어야지 독단적인 주장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본문 난외주, 대소문자, 외경, 이역 등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을 조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강한 확신 속에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자기들이 보기에)을 깨뜨리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을 쓰는 분들은 부디 앞으로는 그 귀중한 시간을 올바른 데 투자해서 ‘개역(개정판)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써서 수백만 성도들을 살리는 데 매진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값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눈을 열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오류로 인해 고생하며 종교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있는 신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거의 다 완성된 시점에 뒷북을 치며 나타나 이미 킹제임스 성경의 한국어 번역사(史)가 증명한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일입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펴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입니까?
세상에는 다 때와 순서가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고속도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니 내가 바로 옆에 새롭게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에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모아 보수하고 다듬어 더 완성도 높은 도로가 되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미 놓인 고속도로를 마음껏 이용해 상품을 나르고 이동하며 사업을 일구는 사람이 굳이 바로 옆에 길을 다시 만들겠다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킹제임스 성경을 새로 번역할 때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아 이미 나와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잘 다듬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해서 죽어가는 혼들을 구원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2015년에도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에서 저자인 리건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http://keepbible.com/KJB2/View/2Vl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로 혹세무민하는 동일한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다음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1.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2.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4
3. 딱정벌레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85
4.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5.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2015-01-07 18:08:1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몇 달 동안 종종 주변의 몇몇 형제/자매님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이상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혹시 제가 그것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의 제목은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비방 글들의 링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메일을 무차별 살포하는 분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특히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적어 놓은 비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세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막상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그 글을 적은 분인지 아니면 그분의 추종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동일한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렸기에 관리자 형제가 즉시 삭제하였습니다. 관리자들이 신경을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짧은 순간 게재되었던 글임에도 그 글을 읽고 놀란 마음에 어찌 된 일이냐고 질문의 메일을 보낸 형제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수천 군데 심각한 오류가 있어서 많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개역(개정판)성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에 오늘은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들이 차라리 현대/자유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예 틀렸고 인간 저자들이 임의대로 쓴 기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어로 성경을 보존해 주셨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데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메일과 카톡 등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들의 헛된 주장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거나 잃어버리는 연약한 지체들이 있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간단히 글을 씁니다.
이들은 한동안 원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와 대소문자를 가지고 성도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개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 여러 개 뜻 가운데서 가장 합당한 하나를 정해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원래 대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위클리프 이후 킹제임스 성경에 이르기까지 약 230년 동안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에서 같은 영(그리스어의 경우 프뉴마)이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확실히 판단되는 데는 대문자 Spirit으로, 하나님의 영이나 혹은 다른 영으로 두어도 문제가 없는 데는 소문자 spirit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문맥에 따라 독자가 판단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난외주와 대소문자 비방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 합니다.
1. 난외주
과거에 영어 성경이 나올 때에는 번역하면서 특정 단어나 절에 대해 번역자들 간에 만장일치로 깔끔하게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 난외주에 소수의 의견을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난외주가 가장 많았던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전에 나온 제네바 성경이었습니다. 제네바 성경 안에는 칼빈의 개혁주의(장로교) 사상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에 제임스 왕은 성경을 새로 번역하라고 명령하면서 특별히 난외주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평균 한 페이지에 5-6개 정도의 난외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해서 알아야 할 것은 난외주란 소수의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정황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 난외주 자체가 본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 학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F. 힐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번역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첨가한 난외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섭리[돌보심]로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스크리브너(1884)는 외경이 포함된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 8,422개의 난외주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크리브너는 구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4,111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 원문에 좀 더 문자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며 2,156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67개는 이문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112개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번역을 제공해 주며 582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37개는 이문들이다. 이러한 난외주들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번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킹제임스 성경 변호 213쪽>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5
이분은 곧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살펴보았음을 난외주에 표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섭리 즉 돌보심으로 그들이 본문의 단어들 - 난외주가 아니라 - 을 선택하는 것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겸손함에 대해 힐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외주들이 보여 주듯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인 그 성경을 완전한 것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다만 그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신뢰할 만하게 재현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그렇게 추천했다. (214쪽)
그리고 힐즈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서문의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온유한 독자인 당신에게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에게 당신을 맡기는 일만 남았다. 그분은 우리의 눈에서 비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베일을 벗기신다. 또 우리가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며 참으로 우리의 성정을 고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금과 은보다 더 그것[말씀]을 사랑할 수 있으며 참으로 끝까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분께서 우리 앞에 자신의 말씀을 놓으실 때에 그것을 읽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뻗으시고 부르실 때에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바로] 그것은 복된 일이며 우리를 결국 영존하는 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돌보심과 내적 의식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구한다.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과 더불어 그분께 모든 찬양과 감사가 있기를 원한다. 아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난외주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611년 초판 발행 이후에 킹제임스 성경이 정착되면서 난외주들은 성경 자체에서 곧 사라졌다는 겁니다.
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역사서로 부록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가장 크게 미워하던 사람들이 만든 제네바 성경에도 외경이 들어 있었지만 후에는 난외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외경이나 난외주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것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이지 난외주나 외경이 아닙니다.
바로 그 성경 본문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거기 담긴 복음을 듣고 확신하는 사람을 구원시키고 성화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고 사용하시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준 글’이나 ‘제임스 왕에게 바친 헌정문’이나 난외주나 외경이나 금박 표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본문!
하나님은 바로 이 성경 본문을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순수한 이 본문을 정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존하였습니다.
바로 그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사용해서 지난 400여 년 동안 복음이 선포되고 성경의 모든 교리가 확립되었습니다. 난외주나 외경 심지어 원본이 아닙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 반포된 지 400년이 이미 지난 이 시점에서 난외주가 본문보다 옳다고 주장하며 교묘하게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또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분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6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 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7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 8 그런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나니 이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리니 이는 저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것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딤후3:6-9).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터인데 그때 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들은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복사본(팩시밀리)을 하나 구한 뒤 거기에 기록된 난외주만 열심히 찾습니다.
http://www.honortheson.com/1611_King_James-Bible_Version-Scanned.pdf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며 이슈를 만들 만한 단어가 나오면 손뼉을 치면서 킹제임스 성경이 틀리고 난외주가 맞는다고 소리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의 본문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성경 신자일까요?
이런 예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이사야서 14장 12절의 루시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분명히 에스겔서 28장의 ‘타락한 그룹’이 루시퍼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난외주에는 ‘daystar’ 즉 샛별(계명성)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할 때는 “과거에 이 단어를 샛별로 본 사람들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봐라, 루시퍼가 아니라 샛별이 맞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샛별’을 본문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산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100억 권 정도 인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 100억 권에 무어라 되어 있습니까? 루시퍼지요.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1611년 이후의 모든 신학교가 세워지고 신학 서적들이 저술되었습니다. 즉 교리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와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기록된 루시퍼가 아니라 난외주의 샛별이 맞는다고 주장하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과연 성경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호하게 일하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신약 성경 사본들은 공개적으로 여러 대륙의 거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보급되었습니다. 반면에 모든 현대 역본들의 모체가 되는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바티칸 도서관과 동방 정교회 수도원에 고이 간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수님 승천 후 1850년이 지난 시점에 이 둘이 공개되면서 이것들이 참으로 진실한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의 1850년 동안 성도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믿음 생활을 했단 말인가요?
성경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시12:6-7) 부인하는 현대 역본 역자들의 이런 주장과 난외주를 가지고 본문을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순수한 본문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급되고 유통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 외경 그리고 천주교 소수 사본 등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 대문자/소문자 spirit/Spirit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몇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이 여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1:12(ACTS 11:12). “And the spirit bade me go with them, nothing doubting. Moreover these six brethren accompanied me, and we entered into the man’s house.”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과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8(ACTS 11:28). “And there stood up one of them named Agabus, and signified by the spirit that there should be great dearth throughout all the world: which came to pass in the days of Claudius Caesar.” 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 1638년 그리고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요일 5:8(1 JOHN 5: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1611년 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1638년과 1769년 판에는 이것이 소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spiri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spirit/Spirit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 존재(a spirit being), 사람의 영, 성령님, 정신 등
2. 성경에서는 소문자 spirit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사례들이 있다(출31:3; 욥27:3; 고전2:12).
3. 소문자 spirit은 성령님의 일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동일한 말씀이 요엘서 2장 28에는 소문자로(pour out my spirit), 사도행전 2장 17절에는 대문자로(pour out of my Spirit)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판에서 행11:12, 행11:28,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이 쓰인 것은 앞뒤 문맥으로 살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누군가가 대문자 Spirit이 쓰여야 합당하다고 주장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이 하는 일은 다시 태어난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공동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런 구절들에서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 단어 프뉴마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프뉴마를 있는 그대로 ‘스피릿’(대문자든 소문자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의 영감/보존에도 문제가 없으며 번역되면서도 보존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영어 성경의 역자들은 영어 단어 스피릿에 그리스 단어에 없는 대소문자의 구별이 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대소문자 spirit/Spirit을 구분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인쇄술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성경 전체를 보면 수십만 개 혹은 수백만 개)을 찾아서 조판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 조판공들은 대소문자 spirit/Spirit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조판공의 이런 실수 예는 여럿 있습니다.
이 중에 유명한 것은 사악한 성경(Wicked Bible)으로 알려진 1631년 판입니다. 이 판에서는 출20:14 말씀 즉 “너는 간음하지 말라”가 “너는 간음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Wicked_Bible
즉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라고 조판해야 하는데 꼼꼼함을 요하는 작업 때문에 몸이 매우 피곤했던 식자공은 그만 여기서 중간의 ‘not’을 넣지 못했고 결국 그 성경은 “너는 간음하라”라고 명령하는 ‘사악한 성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성경의 대부분은 즉시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몇 개만 희귀본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초판의 이런 실수 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그래도 spirit/Spirit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분들은 리플링거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에서 선택의 자유를 독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앞뒤 문맥을 보고 독자가 결정하면 될 일이지 성경의 보존이나 최종권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끝으로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성경에서 스펠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1611년의 초판을 참고하려 합니다.
그러나 1611년 초판에는 식자공의 이런 실수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므로 1611년 초판이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요일5:8의 경우 1611년 초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고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Water와 Blood도 신성을 가진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체가 쓰이지 않았고 고딕체가 쓰였습니다. 고딕체의 경우 이런 사례에서는 종종 같은 구절에서 몇 단어를 연거푸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어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요일5:8에서 반드시 대문자 Spirit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다음의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결론을 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서너 군데는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감/보존/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역자들은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번역하였으나 식자공의 실수로 이런 데가 있습니다. 이런 식자 문제들은 역자들이 살아 있던 시대에 대부분 곧바로 교정되었으나 역자들이 죽은 이후에도 처리되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서너 군데의 spirit/Spirit이 이 경우입니다.
그래서 철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스퍼드 판과 케임브리지 판이 나왔고 지금 존재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둘 중의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토마스 넬슨 출판사 판은 자기들 마음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단어를 임의로 수정하였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판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리플링거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 참고로 리플링거의 글은 매우 훌륭하지만 100% 옳지는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안내해 드린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초판을 낼 때에는 영어 성경 파일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탤릭체를 살린 파일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이 주신 영어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여러 소스를 알게 되었고 2011년에 400주년 기념판을 출간할 때에는 Pure Cambridge Text로 알려진 영어 본문을 사용하였습니다.
www.bibleprotector.com
물론 앞으로도 저희는 영어 본문의 경우 Pure Cambridge Text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번역의 초기 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짐입니다. “왜 처음부터 pure text를 쓰지 않았느냐?”고 질책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만 불거지게 됩니다.
영어 성경도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까지 약 230년의 담금질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문, 번역 등에 의문이 있으면 대안과 함께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메일의 내용은 제안이어야지 독단적인 주장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본문 난외주, 대소문자, 외경, 이역 등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을 조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강한 확신 속에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자기들이 보기에)을 깨뜨리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을 쓰는 분들은 부디 앞으로는 그 귀중한 시간을 올바른 데 투자해서 ‘개역(개정판)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써서 수백만 성도들을 살리는 데 매진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값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눈을 열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오류로 인해 고생하며 종교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있는 신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거의 다 완성된 시점에 뒷북을 치며 나타나 이미 킹제임스 성경의 한국어 번역사(史)가 증명한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일입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펴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입니까?
세상에는 다 때와 순서가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고속도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니 내가 바로 옆에 새롭게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에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모아 보수하고 다듬어 더 완성도 높은 도로가 되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미 놓인 고속도로를 마음껏 이용해 상품을 나르고 이동하며 사업을 일구는 사람이 굳이 바로 옆에 길을 다시 만들겠다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킹제임스 성경을 새로 번역할 때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아 이미 나와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잘 다듬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해서 죽어가는 혼들을 구원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2015년에도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에서 저자인 리건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로 혹세무민하는 동일한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다음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1. 원어로 너스레떠는 목사들 격퇴하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2.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4
3. 딱정벌레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85
4.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5.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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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7 18:08:1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가 흰돌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호주의 Keith Piper 목사님이 지은 <NIV & Its Omissions>를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1
아마 NIV에 대해서는 가장 잘 평가한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황로 목사님의 글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동역자 여러분께,
섬기시는 교회와 사역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최근에 키이쓰 파이퍼의 "NIV & Its Omissions"의 번역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좋은 책들과 자료 사이트들이 있어서 또 새로운 책을 소개할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를 연구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고 확신을 하려면, 적어도 5년 내지는 7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적어도 20-30권의 책을 읽어야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에 대한 견해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전체 이슈를 간략히 요약하여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인용된 책들을 더 공부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쁘신 목회생활 하다보면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목사님들과 사역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이나 입장을 변호하고 더 나아가 강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신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들, 신학교에서도 보고 들은 것들, 자존심과 무지, 교만 등으로 흠정역 또는 한글개역(개정)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목회/사역자로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든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이슈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을 주장하면 무리라는 것이 제 소견일 뿐입니다. 저도 양쪽 진영의 신학교들을 다 졸업했고, 아직도 양쪽 진영에 훌륭하시고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이슈는 이제는 더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제 견해와 믿음은 이렇습니다.
1. 성경의 총체적인 축자영감, 섭리 보존.2.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완전한 말씀이 존재한다. (98%의 신학교가 이렇게 믿지 않음)3. 개역성경(개정개역)의 복음 구절로도 구원받는다. (심지어 천주교, 여호와의 증인, 구약구절만으로도).4. 개역성경(개정개역)의 85%는 흠정역과 차이가 없고 그 부분은 진실한 하나님 말씀이다.5. 개역성경(개정개역)의 7%는 사본 자체의 문제가 있으므로 불완전하며 오류이다.6. 개역성경(개정개역)의 그 나머지는 번역자체의 오류들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도 인정).7. 개역성경(개정개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주요 교리들을 약화시킨다.8. 한글 흠정역은 어떤 단어나 문체가 독자의 기호에 맞지 않을 수 있고 Keepbible.com의 어떤 특정한 믿음이 독자와 다를 수 있지만 정확성 면에서는 한글 성경으로 최고이다.9. 개역성경(개정개역)을 쓰는 교회들의 믿음은 예정론, 교회론, 세대주의, 종말론, 성령론 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10. 세례나 침례 문제, 여집사 문제, 은사주의, 성경적 분리 등은 성경 문제와 비교해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11. 교리에 못지않게 우리의 믿음과 인격과 언행, 교회질서, 목회자의 성경적 권위도 매우 중요하다.12. 오래 전에 성서침례교회들이 한국에서 구원 복음으로 도전하고 바로 잡아 준 것처럼, 이제는 성서/독립침례교회들이 "바른 성경"이 무엇인지 개신교회들에게 소개하고 섬겨야 한다.
------------------------
최근에 저의 졸역인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라는 책이 흰돌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일일히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며 책을 소개하여 드리면 좋겠는데, 한국에서 나온지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번역 판권은 이기석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가지고 계시고, 원저자 Keith Piper라는 분은 호주에서 사역하시는 독립침례교회 복음전도자이며 다른 좋은 책들을 쓰신 분이기도 합니다. 출판은 독립침례교회 계통에서 하고자 했지만, 판권을 가지신 분께서 일반 개신교회들 목회자, 신학자들이 봐야 된다고 하는 비젼과 부담을 우선으로 가지셔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이 방대해서 마지막 교정을 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 나중에 그 오자, 탈자, 개신교적 용어 등은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추천을 하신 분은 정성구 박사이시며, 총신과 대신의 총장을 지내신 분이고 TR을 믿는 장로교 학자이십니다. 감수/출판을 하신 분 중의 한 분은 장로교회에 많이 알려진 이광복 목사님이시고, 설교학과 종말론에 모두 20만 명 이상에게 세미나를 하신 분이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입니다. 종말론은 우리하고는 달리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 분입니다. 장로교 목사님으로서는 모험과 압박을 감수하시고 이번 일을 추진하셨습니다. 다른 감수자이신 위의 이기석 선교사님과 이광복 목사님은 서로 친구이십니다.
한국에서 원하시는 분들은 흰돌 출판 www.hindol.com 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하실 수 있고, 아마 22,500원이며 무료배송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book.hindol.com/prd/detail_cate.php?main_cat_seq=101&ctg_seq=102&prod_seq=489
킹제임스 성경 이슈를 한 책으로 통달 할 수 있고,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마 반박을 하려든지 찬성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제일 빨리 결론에 도달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원저자가 비교한 것들을 일일이 개역성경과도 비교해서 다 찾아 넣고 역주를 달고, 사전까지 다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반책의 5배 이상 고충).
우리 하나님께서, 교제하는 목사님들과 가정과 사역 위에 은혜와 긍휼하심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소종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e-mail: hwangrolee@yahoo.comwww.centralkbc.com
2014-12-03 16:53: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가 흰돌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호주의 Keith Piper 목사님이 지은 <NIV & Its Omissions>를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1
아마 NIV에 대해서는 가장 잘 평가한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황로 목사님의 글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동역자 여러분께,
섬기시는 교회와 사역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최근에 키이쓰 파이퍼의 "NIV & Its Omissions"의 번역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좋은 책들과 자료 사이트들이 있어서 또 새로운 책을 소개할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를 연구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고 확신을 하려면, 적어도 5년 내지는 7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적어도 20-30권의 책을 읽어야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에 대한 견해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전체 이슈를 간략히 요약하여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인용된 책들을 더 공부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쁘신 목회생활 하다보면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목사님들과 사역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이나 입장을 변호하고 더 나아가 강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신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들, 신학교에서도 보고 들은 것들, 자존심과 무지, 교만 등으로 흠정역 또는 한글개역(개정)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목회/사역자로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든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이슈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을 주장하면 무리라는 것이 제 소견일 뿐입니다. 저도 양쪽 진영의 신학교들을 다 졸업했고, 아직도 양쪽 진영에 훌륭하시고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이슈는 이제는 더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제 견해와 믿음은 이렇습니다.
1. 성경의 총체적인 축자영감, 섭리 보존.2.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완전한 말씀이 존재한다. (98%의 신학교가 이렇게 믿지 않음)3. 개역성경(개정개역)의 복음 구절로도 구원받는다. (심지어 천주교, 여호와의 증인, 구약구절만으로도).4. 개역성경(개정개역)의 85%는 흠정역과 차이가 없고 그 부분은 진실한 하나님 말씀이다.5. 개역성경(개정개역)의 7%는 사본 자체의 문제가 있으므로 불완전하며 오류이다.6. 개역성경(개정개역)의 그 나머지는 번역자체의 오류들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도 인정).7. 개역성경(개정개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주요 교리들을 약화시킨다.8. 한글 흠정역은 어떤 단어나 문체가 독자의 기호에 맞지 않을 수 있고 Keepbible.com의 어떤 특정한 믿음이 독자와 다를 수 있지만 정확성 면에서는 한글 성경으로 최고이다.9. 개역성경(개정개역)을 쓰는 교회들의 믿음은 예정론, 교회론, 세대주의, 종말론, 성령론 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10. 세례나 침례 문제, 여집사 문제, 은사주의, 성경적 분리 등은 성경 문제와 비교해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11. 교리에 못지않게 우리의 믿음과 인격과 언행, 교회질서, 목회자의 성경적 권위도 매우 중요하다.12. 오래 전에 성서침례교회들이 한국에서 구원 복음으로 도전하고 바로 잡아 준 것처럼, 이제는 성서/독립침례교회들이 "바른 성경"이 무엇인지 개신교회들에게 소개하고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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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의 졸역인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라는 책이 흰돌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일일히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며 책을 소개하여 드리면 좋겠는데, 한국에서 나온지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번역 판권은 이기석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가지고 계시고, 원저자 Keith Piper라는 분은 호주에서 사역하시는 독립침례교회 복음전도자이며 다른 좋은 책들을 쓰신 분이기도 합니다. 출판은 독립침례교회 계통에서 하고자 했지만, 판권을 가지신 분께서 일반 개신교회들 목회자, 신학자들이 봐야 된다고 하는 비젼과 부담을 우선으로 가지셔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이 방대해서 마지막 교정을 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 나중에 그 오자, 탈자, 개신교적 용어 등은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추천을 하신 분은 정성구 박사이시며, 총신과 대신의 총장을 지내신 분이고 TR을 믿는 장로교 학자이십니다. 감수/출판을 하신 분 중의 한 분은 장로교회에 많이 알려진 이광복 목사님이시고, 설교학과 종말론에 모두 20만 명 이상에게 세미나를 하신 분이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입니다. 종말론은 우리하고는 달리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 분입니다. 장로교 목사님으로서는 모험과 압박을 감수하시고 이번 일을 추진하셨습니다. 다른 감수자이신 위의 이기석 선교사님과 이광복 목사님은 서로 친구이십니다.
한국에서 원하시는 분들은 흰돌 출판 www.hindol.com 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하실 수 있고, 아마 22,500원이며 무료배송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book.hindol.com/prd/detail_cate.php?main_cat_seq=101&ctg_seq=102&prod_seq=489
킹제임스 성경 이슈를 한 책으로 통달 할 수 있고,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마 반박을 하려든지 찬성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제일 빨리 결론에 도달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원저자가 비교한 것들을 일일이 개역성경과도 비교해서 다 찾아 넣고 역주를 달고, 사전까지 다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반책의 5배 이상 고충).
우리 하나님께서, 교제하는 목사님들과 가정과 사역 위에 은혜와 긍휼하심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소종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e-mail: hwangrolee@yahoo.comwww.centralkbc.com
2014-12-03 16:53:12 | 관리자
질문: 최고의 사본들이 요즘 나오는 새 역본들을 뒷받침한다고 하는데요?
답변: 아닙니다. 최고의 사본들은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을 뒷받침해 줍니다.
요즘 나오는 새 역본들은 5,000개가 넘는 신약성경 필사본 중 단지 다섯 개 정도에 의해서만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 비평 학자들은 이 필사본들이 「흠정역 성경」 역자들이 사용한 필사본들보다 낫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들 중 가장 유명한 두 가지 즉 전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자산인 ‘바티칸 사본’(Vaticanus)과 ‘시내 사본’(Sinaiticus)은 실수투성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내 사본’은 10명이나 되는 다른 작가들에 의해 정정되고 변경되었습니다. ‘바티칸 사본’에서는 매우 조잡한 솜씨의 증거가 발견됩니다. 단어들(Words)과 절(Phrase) 전체가 연달아 두 번 반복되거나 완전히 삭제되어 있습니다. ‘바티칸 사본’ 전체는 펜을 들고 글자마다 수정을 가한 어떤 인물 혹은 인물들에 의해 훼손되었고 또한 그런 인물들의 정체를 규명하기조차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두 사본 모두 성경에서는 볼 수 없는 책들 즉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주시지 않은 비성경적인 책들인 외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수들을 잔뜩 갖고 있지만 이 신뢰할 수 없는 필사본들의 재질은 매우 우수합니다. 그 사본들은 질 좋은 동물 가죽 즉 벨럼으로 만들어졌으며 훌륭하게 제본되어 있습니다. 그 사본들의 본문은 전혀 가치가 없지만 그 외양은 실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표지로 그 책을 판단할 수 없다.”라는 속담을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표지들은 매우 아름다우나 그 본문들은 비난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같이 잘 알려진 개악(改惡)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신미국표준역」(NASB)이나 「신국제역」(NIV) 같은 많은 새 역본들의 기반이 되었고 그 결과 이런 역본들은 오류투성이로 신뢰할 수 없는 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에 의해 대표되는 필사본들은 최고의 질을 가진 본문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의 사본들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사용한 사본들임을 알게 됩니다.
2014-12-02 13:31:02 | 관리자
질문: 1611년 이래로 「킹제임스 성경」도 줄곧 개정되어 오지 않았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5>
대답: 그렇지 않습니다. 개정이 아니라 몇 차례의 교정이 있어 왔을 뿐입니다.
1611년에 탄생된 「흠정역 성경」의 권위를 심하게 흔들려는 비평가들의 최후 배수진 가운데 하나는 소위 개정(改正)이라는 것으로 시비를 삼아 장난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 곧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사본학적 증거와 성령님께서 이루신 명백한 증거들을 들이대며 자기들의 빈약한 주장을 뒤엎어 버리자 궁극적인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고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요새로 도피합니다. 일단 이 요새 안에 들어서면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에 대해 자신 만만해 하고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십니까? 1611년 판입니까, 1629년 판입니까? 아니면 1769년 판입니까?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충격을 받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면 그들은 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쳐 버립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들의 성안에 들어가 성문을 걸어 닫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라는 사람에 의해 이미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완전히 허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리건 박사는 미국 테네시 주 낙스빌에 있는 트리니티 침례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는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했습니다. 다시 말해 리건 박사는 「흠정역 성경」 비평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를 파괴시키는 일을 훌륭히 수행해 냈습니다. 이에 필자는 그가 발견한 것을 보다 개선시키려 애써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으므로 그의 허가를 얻어 그의 소책자 전편을 여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리건)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2014-12-02 13:24:56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성경의 사도행전 12장 4절에 나오는 ‘이스터’ 즉 ‘부활절’은 ‘파스카’라는 단어를 오역한 것이므로 다른 역본들과 같이 ‘유월절’로 번역해야 옳지 않을까요?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2>
대답: 그렇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사도행전 12장 4절의 ‘파스카’를 ‘부활절’로 번역한 것은 정확한 것입니다. 다음의 글이 그것을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4절에서 ‘이스터’(Easter) 즉 ‘부활절’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파스카’(Pascha)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29번 나옵니다. 그중 28번은 주 하나님께서 이집트(애굽)를 지나시며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시고(출 12:12) 이스라엘 민족을 400년 간의 종살이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날 밤과 연관되어 ‘유월절’(Passover)로 번역되었습니다.
“완전한 성경이 있다.”라는 생각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도 ‘Pascha’를 이렇게 번역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하신 「흠정역 성경」에서 ‘이스터’라 번역된 단어를 발견하고는 「흠정역 성경」도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를 포착했노라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을 위해 참으로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이 문제에서도 그들이 또 틀렸다는 사실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스터’는 고대 이교도들의 ‘아스타르테’(Astarte) 축제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쉬타르’(Ishtar)로도 알려져 있고 ‘이스터’(Easter)로도 발음됩니다. 이 축제는 항상 4월 하순경에 개최되었는데 사실 초기의 ‘이스터’ 축제는 겨울철이 지난 뒤 땅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축제에는 다산과 번식을 기념하는 의식도 수반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음란 잡지인 「플레이보이」의 상징인 토끼와 달걀 등이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물로 쓰였는데 그것은 이것들이 번식력 즉 다산으로 매우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스터’ 축제의 주인공은 여신 ‘아스타르테’였습니다. 이 여신은 성경에서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25)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담무스(Tammuz, 겔 8:14)의 어미이자 또한 그의 아내였습니다! 이 가증한 축제 의식은 ‘이스터’ 아침에 동틀 녘에 행해지곤 했습니다(겔 8:13-16).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의 기록에서 우리는 이교도들의 ‘이스터’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도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 제기
유대인들의 유월절은 4월 중순(14일)에 개최되었고 이교도들의 축제였던 ‘이스터’는 같은 달에 좀 더 늦게 개최되었는데 그렇다면 사도행전 12장 4절에서 헤롯이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아닌 이교도들의 ‘이스터’를 언급하고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일 헤롯이 구체적으로 유월절을 언급했다면 ‘Pascha’를 ‘이스터’ 즉 ‘이교도들의 부활절’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은 틀렸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정말로 이교도들의 축제 절기인 ‘이스터’를 언급했다면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은 오늘날 인쇄되고 있는 성경 중에서 이 부분을 가장 정확히 번역한 유일한 성경이기에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4절에 있는 ‘이스터’(Easter)에 관한 혼란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우리의 최종 권위가 되는 성경으로부터 조언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이 수수께끼의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열쇠는 4절에서 발견되지 않고 3절에서 발견됩니다.
또 그가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더 나아가 베드로도 잡으려 하였는데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
우리가 찾고자 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교절과 유월절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베드로가 ‘무교절 기간’(days of unleavened bread)에 붙잡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행 12:3).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첫째 유월절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절기는 주님께서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을 치셨던 밤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밤 이스라엘 민족은 양을 죽여서 좌우 문기둥과 인방에 그 피를 바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출 12:4-5). 자, 이제 성경이 첫 유월절과 무교절 즉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기간의 날들’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지 살펴봅시다(출 12:13-18).
13 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가 되게 할지니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이 날은 너희에게 기념일이 될지니 너희가 이 날을 너희 대대로 주를 위한 명절로 지키고 규례에 따라 그것을 영원토록 명절로 지킬지니라.
15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첫째 날에 너희 집에서 누룩을 제거할지니 누구든지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16 첫째 날에 거룩한 집회가 있으며 일곱째 날에도 너희에게 거룩한 집회가 있으리니 이 두 날에는 각 사람이 먹는 일 외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너희 중에서 오직 그 일만 할지니라.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킬지니 이는 바로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대대로 이 날을 지키되 규례에 따라 영원토록 지킬지니라.
18 첫째 달 곧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그 달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출애굽기 12장 13절에서 우리는 유월절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양의 피가 문에 표시되어 있는 모든 집을 ‘넘어가시리라’(pass over)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기에 나오는 ‘Passover’는 ‘넘어감’을 의미하며 따라서 ‘유월절’은 ‘넘어간 날’입니다. 우리는 유월절 이후에(출 12:13-14) 유대인들이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함을 보게 됩니다. 이 기간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이며 그래서 무교절이라 부릅니다! 18절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무교절을 준수해야 하는 기간이 4월 14일부터 21일까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1)
이 종교적인 절기들은 민수기 28장 16-18절에 더욱더 명백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첫째 달 십사일은 주의 유월절이며 또 이 달 십오일은 명절이니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며 첫째 날에는 거룩한 집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는 그 날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16절에서 우리는 유월절이 그 달의 14일만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즉 15일부터는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 즉 무교절이 시작됩니다(신 16:1-8).
1 아빕 월을 준수하여 주 네 하나님께 유월절을 지키라. 아빕 월에 주 네 하나님께서 밤에 너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느니라.
2 그러므로 너는 양과 염소 떼나 소 떼에서 취하여 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주 네 하나님께 유월절 희생물을 드리되
3 그것과 아울러 누룩 있는 빵을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누룩 없는 빵 곧 고난의 빵을 그것과 아울러 먹을지니라. 이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 급히 나왔기 때문이니 이로써 네 평생 동안 네가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4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내에서 누룩 있는 빵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첫째 날 저녁때에 네가 희생물로 드린 고기 중 조금이라도 온 밤이 지나도록 남겨 두어 아침까지 이르게 하지 말며
5 또 유월절 희생물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모든 성문 안에서 드리지 말고
6 오직 주 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가 이집트에서 나오던 때 곧 저녁에 해 질 때에 거기서 드리며
7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그것을 구워 먹고 아침에 돌이켜서 네 장막으로 갈 것이니라.
8 너는 엿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주 네 하나님께 엄숙한 집회로 모이며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라.
1절의 아빕 월은 지금의 태양력으로 4월인데 원래는 히브리 민간력으로 7월이었지만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기 위해 종교력의 1월로 삼은 달입니다(출 12:2). 위의 신명기 구절에서 우리는 유월절 양이 그 첫날밤에 희생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신 16:1). 동틀 녘(겔 8:13-16)이 아니고 해질 때(신 16:6)에 유월절을 기념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실입니다. 역대기하 8장 13절에서 우리는 무교절이 연중 유대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3대 절기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명령에 따라 날마다 정한 비율로 안식일과 월삭과 한 해에 세 번 지키는 엄숙한 명절들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드렸더라.
유월절은 항상 무교절 전에 있었습니다. 역대기하 30장에서 보면 정월에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이월에 지키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날짜는 항상 같았습니다.
그때에 둘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으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번제 헌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이르러 … 예루살렘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주를 찬양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로 주께 노래하였고 (대하 30:15, 21)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켰으니 … 이레 동안 기쁘게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기쁘게 하시고 또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리사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의 공사를 할 때에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이더라. (스 6:19, 22)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조사한 결과 사건의 순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첫째, 4월 14일에 양을 잡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14일 이후에 행하는 그 어떤 사건도 유월절이라 불리지 않습니다.
둘째, 4월 15일 아침부터 무교절로 알려진 기간 즉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이 시작됩니다.따라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유월절이 언급될 때마다 이 명절이 4월 14일 저녁에 ― 결코 한 주간 내내가 아님 ― 먹어야 하는 음식 즉 유월절 어린양과 관련된 명절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 즉 무교절 ‘기간’(days)이 유월절(day)로 언급된 적은 결코 없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의 천사가 하룻밤 동안에 이집트를 넘어갔지 결코 잇따라서 7일 밤 동안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 이제 사도행전 12장 3-4절을 봅시다.
또 그가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더 나아가 베드로도 잡으려 하였는데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 그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로 끌어내려 함이더라.
3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무교절 기간(4월 15-21일 사이)에 체포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때는 이미 유월절(4월 14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헤롯이 이 구절에서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을 언급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번 유월절은 일 년 후에야 오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1년 동안 베드로를 감옥에 넣어 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며칠 있으면 이교도들의 축제 성일인 ‘이스터’가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헤롯은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던 이교도 로마인이었습니다. 그는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킬 까닭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유대인들을 화나게 할까 봐 유월절이 끝나길 기다렸을 것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두 가지 큰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더 이상 유대인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교와 절교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헤롯의 행동에 화를 낼 까닭이 없었습니다.
둘째, 헤롯이 유대인들이 종교적 축제일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므로 유월절이 지나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유월절 기간 중에 예수님을 죽인 바 있습니다(마 26:17-19, 47). 그들은 또한 헤롯이 야고보를 죽인 것을 보고 흥분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중들은 종교적 축제 기간 중에 ― 축제 이후에가 아니라 ― 얼마든지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로마인으로서 헤롯의 위치를 생각해 보아야만 하며 또한 헤롯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날을 기념하는 일로 매우 유명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마 14:6-11). 사실 마태복음 14장에서 우리는 헤롯이 자기의 생일 축하 기간 중에 하나님의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이 유월절이 이미 지난 뒤인 무교절 기간에 베드로를 체포했음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들’ 즉 무교절 기간은 4월 21일에 끝났을 것이고 그 즉시 이교도 헤롯이 지키던 이교도들의 축제 즉 ‘이스터’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이스터’까지 기다리기 원했기 때문에 베드로를 무교절 기간 중에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마 26:17-47)이나 로마인(마 14:6-11)이나 다 종교적 축제 기간 중에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므로, 헤롯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축제 기간 중에 ‘베드로를 죽이는 즐거움’을 갖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대신에 그는 자기 자신이 지키던 이교도의 축제일인 ‘이스터’까지 기다려서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베드로가 죽는 것을 보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성령 충만한 우리의 성경 즉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파스카’를 ‘이스터’ 즉 ‘이교도들의 부활절’로 바르게 번역한 것이 하나님의 큰 섭리였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확실하게 유대인들의 유월절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경에서 사도행전 12장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바꾼 것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며 동시에 그 당시 상황의 진실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2014-12-02 13:08:43 | 관리자
개역성경, NIV, 공동 번역, 새 번역,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의 증인 성경, NASB 등은 한결같이 ‘9-20절은 없음’이라고 각주 표시를 했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이 구절을 온전히 담고 있다.
과연 16장의 마지막 12구절(9-20절)은 원래 성경에 없는 것인가?신학자들의 주장대로 후대에 누가 이 부분을 첨가한 것인가?
마가복음 16장 1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품을 사 두었더라. 2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3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4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5 그들이 돌무덤에 들어가 긴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매 6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분은 일어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그분을 두었던 곳을 보라. 7 그러나 너희 길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그분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그분을 볼 것이라고 고하라, 하니라. 8 그들이 떨며 놀라서 급히 나와 돌무덤에서 도망하고 두려워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 이제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일찍 일어나신 뒤에 전에 친히 몸속에서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시니라. 10 그녀가 가서 그분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애곡하며 슬피 울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고하였는데 11 그들은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녀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 그 뒤에 그들 중의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그분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 13 그들이 가서 남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하되 그들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았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 이렇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20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문맥을 살펴보자.
1-8절: 1절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을 찾으러 갔다가 그분을 발견하지 못함, 천사의 말을 듣고 두려워서 말도 못함(8).9-11절: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함12-13절: 역시 부활 소식14-18절: 믿지 아니함을 책망하시고 복음 선포 사명을 주심19절: 승천20절: 제자들의 행적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기쁜 소식, 복된 소식: 그러므로 1장부터 16장까지는 복된 소식을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의 행적유대인들의 예수님 거부, 십자가 처형, 죽어서 무덤에 들어감
만일 8절이 끝이면 결코 복된 소식이 아니다.부활과 승천과 복음의 위임과 실행이 있어야 복음이다.
9절 전에 무슨 일이 있는가? 여인들이 무서워서 떨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복음인가?
9-20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복음의 핵심인 부활과 승천과 복음의 위임과 실행이 있다.이것이 빠지면 복음이 아니다.
그런데 유명 신학교, 목사 모두 9-20은 원래 없어야 한다고 한다.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지식인에 끼지 못한다.
사본들의 증거
마가복음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500개, 그중 2개만 없고 다 12구절을 포함한다.
사본들의 99.9%가 12구절을 포함한다.
삭제한 대표 사본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위의 사진은 클라우드 선교사가 대영 박물관에서 시내 사본을 찍은 것이다.시내 사본은 12구절이 들어갈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지운 흔적이 있다.
즉 원래 12구절이 있는데 누군가가 임의로 지운 것이다. 우리의 랜드마크인 성경을 변개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과 학자, 목사들
하나님은 한 책을 쓰셨으나 마귀의 술수로 인해 거짓이 첨가된 성경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랜드마크(지계표)인 킹제임스 성경을 지켜야 한다.
네 조상들이 세워 놓은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잠22:28).
끝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를 알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2014-11-15 14:40:35 | 관리자
개역성경, NIV, 공동 번역, 새 번역,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의 증인 성경, NASB 등은 한결같이 ‘9-20절은 없음’이라고 각주 표시를 했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이 구절을 온전히 담고 있다.
과연 16장의 마지막 12구절(9-20절)은 원래 성경에 없는 것인가?신학자들의 주장대로 후대에 누가 이 부분을 첨가한 것인가?
마가복음 16장 1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품을 사 두었더라. 2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3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4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5 그들이 돌무덤에 들어가 긴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매 6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분은 일어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그분을 두었던 곳을 보라. 7 그러나 너희 길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그분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그분을 볼 것이라고 고하라, 하니라. 8 그들이 떨며 놀라서 급히 나와 돌무덤에서 도망하고 두려워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 이제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일찍 일어나신 뒤에 전에 친히 몸속에서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시니라. 10 그녀가 가서 그분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애곡하며 슬피 울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고하였는데 11 그들은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녀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 그 뒤에 그들 중의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그분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 13 그들이 가서 남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하되 그들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았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 이렇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20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문맥을 살펴보자.
1-8절: 1절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을 찾으러 갔다가 그분을 발견하지 못함, 천사의 말을 듣고 두려워서 말도 못함(8).9-11절: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함12-13절: 역시 부활 소식14-18절: 믿지 아니함을 책망하시고 복음 선포 사명을 주심19절: 승천20절: 제자들의 행적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기쁜 소식, 복된 소식: 그러므로 1장부터 16장까지는 복된 소식을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의 행적유대인들의 예수님 거부, 십자가 처형, 죽어서 무덤에 들어감
만일 8절이 끝이면 결코 복된 소식이 아니다.부활과 승천과 복음의 위임과 실행이 있어야 복음이다.
9절 전에 무슨 일이 있는가? 여인들이 무서워서 떨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복음인가?
9-20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복음의 핵심인 부활과 승천과 복음의 위임과 실행이 있다.이것이 빠지면 복음이 아니다.
그런데 유명 신학교, 목사 모두 9-20은 원래 없어야 한다고 한다.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지식인에 끼지 못한다.
사본들의 증거
마가복음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500개, 그중 2개만 없고 다 12구절을 포함한다.
사본들의 99.9%가 12구절을 포함한다.
삭제한 대표 사본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위의 사진은 클라우드 선교사가 대영 박물관에서 시내 사본을 찍은 것이다.시내 사본은 12구절이 들어갈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지운 흔적이 있다.
즉 원래 12구절이 있는데 누군가가 임의로 지운 것이다. 우리의 랜드마크인 성경을 변개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과 학자, 목사들
하나님은 한 책을 쓰셨으나 마귀의 술수로 인해 거짓이 첨가된 성경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랜드마크(지계표)인 킹제임스 성경을 지켜야 한다.
네 조상들이 세워 놓은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잠22:28).
끝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를 알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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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5 14:40: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오디오 CD를 원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간단한 것을 공지합니다.
아시는 대로 저희는 2011년의 400주년 기념 판의 이전 판인 4판을 녹음한 신약 성경과 잠언 오디오가 있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본 사이트 상단의 웹하드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시면
성경오디오 Zip 파일이 있으니 그것을 다운로드 하시기 바랍니다.
신구약 성경을 언제 녹음할 것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잡힌 것이 없습니다(한 5년 내로 해 보려고 함).
그 동안은 지금의 오디오 파일을 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4-08-12 18:25:45 | 관리자
안녕하세요?
70인역 비평 자료를 올립니다.
http://keepbible.com/KJB2/View/2Rt?stype=snc&keyword=70%EC%9D%B8%EC%97%AD
영어로 되어 있지만 필요한 분들이 있을 줄 알아 올립니다.
샬롬
2014-04-12 21:54: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아침에 재미있는 소식이 들어와서 알립니다.
충남 서천군은 11일 국내 최초의 성경(킹제임스 성경임) 전래지인 서면 마량진 일대를 해양 문화관광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644120
http://www.nocutnews.co.kr/news/845639
http://blog.naver.com/kjyoun24?Redirect=Log&logNo=60070343558
다 조성되면 한번 가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 성경도 한 권 같이 전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샬롬
2014-04-10 12:05:5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공지한 대로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5
이 소책자는 김재근 목사님과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홍보 위원회를 결성하여
매달 모으는 돈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보 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역성경분석> 책자(10,000부 이상)와 <킹제임스 성경 팸플릿>(20,000장 이상)을 만들어 주셔서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홍보와 광고용으로 잘 사용해 왔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0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30
이번에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소책자를 내면서
홍보 위원회의 김재근 목사님과 여러 형제/자매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소책자가 필요한 분들은 order@KeepBible.com으로 주문해 주시면 보내겠습니다.
이메일 주문만 받습니다.
10부 이상 받아서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실 분들만
성함, 주소, 핸드폰 번호를 명기하여 이메일로 신청하기 바랍니다.
<개역성경분석> 소책자나 성경 팸플릿이 필요하면 같이 주문하셔도 됩니다.
(국내 주문만 배송하며 배송비는 무료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3-14 15:42:1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공지한 대로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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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책자는 김재근 목사님과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홍보 위원회를 결성하여
매달 모으는 돈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보 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역성경분석> 책자(10,000부 이상)와 <킹제임스 성경 팸플릿>(20,000장 이상)을 만들어 주셔서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홍보와 광고용으로 잘 사용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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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위원회의 김재근 목사님과 여러 형제/자매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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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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