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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마태복음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라는 질문을 주셔서 답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가 맞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대상 성경 구절을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마1:1).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이 세상 성경 중에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신약 성경 서두에 “세대에 대한 책이라”(The book of the generation)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역본들은 개역성경처럼 ‘책’을 삭제한 경우가 많고 또한 ‘세대’를 ‘계보’(genealogies) 혹은 개역성경처럼 ‘세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역 성경인 NIV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예수그리스도의 족보 기록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의 ‘책’은 엄연히 그리스어 본문에 있으며 이 말은 그리스 말로 ‘비블로스’이고 영어로는 이 단어가 곧 ‘바이블’ 즉 ‘성경’이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단어를 삭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1장 1절에서 이렇게 ‘세대에 대한 책’이라고 선언한 뒤 2절부터 16절까지 단 15절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마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혹은 계보에 대한 책이라면 당연히 책 전체가 족보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태복음은 첫 장에서 단지 15절만 족보를 다룹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복음이 족보(계보)를 기록한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 킹제임스 성경대로 마태복음이 세대에 대한 책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먼저 ‘세대’(generation)라는 단어를 이해하려면 시편 22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시편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30, 3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씨가 그분을 섬기리니 [주]께서 그것을 한 세대로 여기시리라. 그들이 와서 앞으로 태어날 한 백성에게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되 그분께서 이것을 행하셨음을 드러내리로다(시22:30-31).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널리 알리는 씨는 곧 그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믿으면 주님께서 그 씨를 단 한 세대로 여기십니다. 따라서 ‘세대에 대한 책’이라는 말씀은 신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며 바로 거듭난 성도들이 이 책을 들고 주 예수님의 의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께는 자식들(children)은 있어도 손자들(grandchildren)은 없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도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형제입니다. 손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한 세대입니다.   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한 세대로서 모두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쉽게 풀립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마24:34).   예수님은 33절에서 분명히 제자들(너희)에게 말씀하셨으며 35-42절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 뒤 문맥으로 보아 여기의 세대 역시 그분을 섬기는 씨의 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마12:45에서 ‘사악한 세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세대에 대해 동일한 정의를 적용하면 이 사악한 세대는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어찌 되었든지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단지 한 세대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단지 시편 22편만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14:5; 24:6; 73:15; 78:6, 8; 102:18; 112:2; 사53:8; 렘7:29; 마23:36; 24:34; 막13:30; 눅21:32; 행8:33; 벧전2:9 등.   거기서 그들이 큰 두려움 가운데 있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의 세대(generation) 안에 계시기 때문이로다(시14:5).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generation)를 밝히 드러내리요?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으며 내 백성의 범법으로 인하여 매를 맞았도다(사53:8).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generation)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 구절들은 다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것이야말로 성경 공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용어색인 즉 ‘Concordance’가 필수적입니다.   스트롱 코드 혹은 스트롱 번호는 무엇인가요?(용어 색인)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0   끝으로 신약 성경은 맨 처음에 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맨 마지막에도 책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계시록 22장 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신약성경에서 저주가 기록된 곳은 단지 여기뿐입니다. 이 저주는 ‘이 책의 말씀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는 자들을 향한 저주’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이 1차적으로는 계시록이라고 믿으며 또 신약 성경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이 저주는 온갖 종류의 성경 비평가들 곧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 성령님께서 성경을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성경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마귀 들렸다” 혹은 “무식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세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첫 아담의 세대를 도입하면서 역시 창세기 5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에 대한 책이라(창5:1).   5장 1절 이후에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즉 첫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은 다 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의 세대(generation)에 속하면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마태복음 1장 1절은 오역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세대를 이해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5 10:43:56 | 관리자
비유가 아니면’인가, ‘비유가 없이는’인가?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인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입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친절한 기장(부기장?)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는 목사냐고 묻고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분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친절한 분으로 알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의 성경 해석 방법이 기묘했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하였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분은 이 구절을 대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비유이며 심지어 창세기 이후의 모든 것이 다 비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유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에게 성경을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알고 보니 이분은 '신0지' 신도였습니다.   그분의 주장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분의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그분의 성경이 말하니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성경 전체가 비유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 일은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룡산 도사들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바른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흠정역: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되 창세로부터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KJB: All these things spake Jesus unto the multitude in parables; and without a parable spake he not unto them: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요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쉬운 비유(예)를 들어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존 성경에서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된 구는 영어로 ‘without a parable’이며 이것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비유가 없이는’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의 어떤 그리스도인이 과연 이것을 ‘비유가 아니면’으로 해석할까요?   의역 성경으로 유명한 NIV는 다음과 같이 의역하였습니다.   Jesus spoke all these things to the crowd in parables; he did not say anything to them without using a parable.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는(without using a parable) 어떤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런 간단한 말씀이 기존 성경처럼 잘못 번역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무지 속에 빠뜨립니다.  사이비 종파에 속아 넘어가 궁극적으로 생명을 잃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들(words, 단어들)을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우리말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멋있기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이 도구를 사용해야 함을 느낍니다.   샬롬   패스터
2016-12-15 10:15:2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국의 대부분 성도들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 셈이 맏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셈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셈이 가장 먼저 나오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셈은 첫째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형)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셈이 셈보다 ‘나이 많은 자’(the elder) 즉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기존성경은 다음과 셈이 형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역개정 등 :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한국 성도들의 장자 축복 개념은 대개 셈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은 김경래 교수님이 쓴 <창세기 1-11장의 난해 구절 성경의 미스테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제가 쓰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제시하려 합니다.   참고로 김경래 교수님은 총신대와 이스라엘 Institute of Holy Land Studies(M.A.)를 졸업하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본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전주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 노아 세 아들의 연령별 순서   일반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은 셈, 함, 야벳의 순으로 일컬어진다(창 5:32, 6:10, 7:13, 9:18, 10:1, 대상 1:4).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이러한 배열로 인하여 그들의 나이 역시 같은 순서대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노아에게 셈, 함, 야벳의 순서로 아들들이 태어난 것인가?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어 번역본들에 나타나는 성경 오역이 바로 그것이다.   개역성경은 창세기 5장 32절을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 조그만 글자로 인쇄된 '된 후에'는 원문에 없으므로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문에 삽입한 것이다. 표준새번역 역시 이를 같은 뜻의 "노아는 오백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5장 32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노아가 오백 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이다.   이 문장을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에 세쌍둥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들 세 아들이 노아가 오백 세 되기까지 차례대로 태어났다. 셋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 첫 아들이 태어났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다른 두 아들도 태어났다. 히브리어 어법 상 앞의 두 가지보다는 세 번째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역과 표준새번역 둘 다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고찰해야 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 21절이다. 우선 우리말 번역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개역은 이를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야벳의 형인 셈에게서도 아들딸이 태어났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둘 다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들 번역문은 과연 히브리어 원문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여기서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된 문제의 구절을 원문 및 고대 번역문인 칠십인역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 두 가지로도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충분하다고 본다.   창세기 10장 21절의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본문은 ('악히 예펫 하가돌')이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와 모음 부호를 무시할 경우 이 히브리어 구절은 두 가지의 직역이 가능하다. 첫째, '야벳의 큰 형제', 둘째, '큰 야벳의 형제'이다. 다시 말해서 '크다'('하가돌')라고 하는 형용사가 '야벳'과 '형제' 중 어느 것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이 문구의 해석이 달라진다. '야벳'을 수식할 경우 야벳이 형이 되고, '형제'를 수식하면 셈이 형이 된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 부호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구두점 역할일 것이다. 마소라 성경의 엑센트는 여기서 '크다'가 '야벳'을 수식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소라 학자들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칠십인역 역시 마소라 학자들의 견해를 지지해준다. 이 구절에 대한 칠십인역의 번역문에 있어서 명사 '야벳'과 형용사 '크다'는 동일한 2격(소유격)을 취하고, '형제'는 3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큰 자'는 셈이 아니라 야벳인 것이다.   셈이 야벳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은 창세기 11장 10절을 통하여서도 찾아볼 수 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는 아르박삿을 낳았고"라는 이 기술에 의하면, 셈이 일백 세가 된 것은 홍수 후 이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이레 후 곧 2월 17일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40일을 내렸으며(창 7:9∼12), 노아 홍수는 햇수로 볼 때 2년이나 지속된 장기간의 대사건이었다.   '홍수 후 이년'(슈나타임 악하르 하마불')이란 히브리어 문구는 분명히 홍수 사건이 완전히 끝난 후 또 두 해가 흐른 뒤의 일임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노아 나이 육백 세와 육백일 세의 두 해는 홍수가 일어난 해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그 후 두 해(노아 나이 육백이 세와 육백삼 세)가 지나 노아의 나이가 대략 육백사 세(혹은 603)가 되던 해에 셈은 나이 백 세가 되어 아르박삿을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셈은 노아가 오백사(혹은 503세)세가 되던 해에 태어난 셈이 된다. 이상 고찰한 바를 창세기 5장 32절("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과 묶어서 볼 때 셈은 결코 노아의 맏아들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노아는 분명히 500세에 맏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504(혹은 503)세일 때 태어난 셈은 그의 맏아들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맞는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   이상으로 우리는 야벳이 셈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을 고찰해보았다.   그러면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왜 셈이 가장 먼저 나올까요?   성경은 많은 경우 나이가 아니라 중요도 순으로 사람들을 배열합니다.   대상1:28,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니라.   사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이나 많습니다.   또한 성경은 둘째 사람들의 책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사울과 다윗, 첫때 아담과 둘째 아담, 구약과 신약   하나님은 두 번째 사람 혹은 사건 등을 통해 중요한 일을 수행하십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고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입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4 09:19: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신대 교수를 역임한 나채운 박사님의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성경 번역과 관련해서 많은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좋은 글입니다.   나채운 박사님은 1932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고(문학석사),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과 벨더빌트대학교 및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신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노스웨스트기독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분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수,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대한성서공회에서 성서 번역, 개정 위원으로, 한국찬송가공회에서 가사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우리말 주기도 사도신경 개정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최현배의 우리말본에 심취하여 후에 대한성서공회와 한국찬송가공회에서 성경의 번역·개정과 새 찬송가 개발에 다년간 참여하여 공적을 남겼고, 개정된 주기도문, 사도신경은 혼자서 개정을 하여 전 한국 교회가 사용하도록 그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700쪽이 넘는 <우리말 성경연구>(기독교문사, 1994, 절판)는 우리말 성경의 역사와 오류 등을 다루고 있는 심히 귀한 책입니다.   원글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jkkhh2232&logNo=50072478206   0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 영과 진리로 예배 (요 4:24) 개역--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개정--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개역 본문의 "신령과 진정"이 개정판에서 "영과 진리"로 바뀐 것이다. 이 원문은 en pneumati kai aletheiai 로서, 우리말의 "신령과 진정" (神靈과 眞情)은 합당하지 않고 "영과 진리" (靈과 眞理)가 바른 번역이다(영어성경에서는 예외 없이 in spirit and truth).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의 잘못된 예배관을 시정해 주는 말씀으로서,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의문적(儀文的)이고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부정 경계하는 것이며,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뜻은 아니다(그러므로, 영어로 쓰면 대문자 S로 쓰지 않는다).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이방인들 (사마리아인 같은)의 거짓 신에 대립되는 참 신에 대한 예배를 뜻하는 것이다. 즉 예배할 장소와 예배할 때와 예배할 대상을 바로 알아서 참된, 진정(眞正)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0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마 6:34) 개역성경에서의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가 개정판에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개역으로는, 내일 일을 염려하되 오늘 하지 말고 내일에 하라는 말, 즉 염려하는 시간(날)에 관한 언급으로 이해되는데, 원문의 뜻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 자체가 염려할 것이니, 너는 도무지, 내일에도 염려하지 말라는 뜻, 즉 염려하는 주체(네가 아닌 내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3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도 “...그 날로 족하니라”로서 더 정확한 표현으로 바꾸었다.*3) 영어성경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89)에서는 for tomorrow will bring worries of its own 으로, 우리말 표준새번역에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로 되어 있다.   여기 '진정'은 한자어 (국한문 성경에서)로 '眞正'이 아니고 '眞情'이니 더더구나 안 된다. 이 본문은 목회자들이 많이 인용하고, 또 설교의 본문으로 삼는 중요한 구절인데도, 대다수의 설교자들이 개역성경 본문의 번역이 잘못되어 있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설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주석서에서도 성경 본문의 번역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 이제 설교자는 더 이상 지금까지의 개역성경을 쓰지 말고, 개정판을 씀으로써 우선 본문에서부터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0 증거→증언 (요 1:7) “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 에 대하여 증언하고”개역성경에서 ‘증거하다’가 동사로 쓰인 경우는 수다하다. 그러나 ‘증거하다’는 결코 사전에도 없는 틀린 말이다. 즉, ‘증거’는 명사로만 쓰이는 것이며, 거기에 동사 어미 ‘--하다’를 붙여서 동사가 될 수 없다. 원어 Martureo 에 대한 바른 번역은 ‘증언하다’이며, 이것은 이번 개정판에서 모두 고쳐졌다.
2016-12-13 17:19:08 | 관리자
누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는가?   솔로몬 사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성이 부담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결국 왕국의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북쪽의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왕국을 건설하자, 그는 자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주님을 구하면서 첫 3년 동안은 바르게 행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신 일이 역대기하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유다에 수비하는 도시들을 건축하였습니다(5-12).2. 그는 이스라엘에서 도망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함들과 함께 왕국을 바르게 세웠습니다(13-17).   그 뒤에 르호보암의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솔로몬 비슷하게 아내를 많이 두었습니다. 그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취하여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더라(21).   그는 총 78명의 여인들로부터 88명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우두머리로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행하였습니다.   그가 지혜롭게 행하여 자기의 모든 아이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지방 곧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에 두루 흩어지게 하고 그들에게 양식을 후히 주었더라. 그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더라(23).   그런데 23절 끝에는 매우 재미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더라(23).   78명의 아내를 구하였으니 이 말씀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해를 준비하다가 기존 성경을 보았더니 마지막이 이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개역 및 개역개정: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기존 성경은 르호보암이 많은 아내를 탐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아들들을 위해 여러 아내를 구해 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른 성경,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해서 영어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NIV, ASV, NKJV 등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맨 끝에 ‘for them’ 즉 ‘그 아들들을 위하여’를 첨가하였습니다.   2 Chron 11:23   And he desired many wives. KJVHe also sought many wives for them. NKJVAnd he sought many wives for them. NASBHe gave them abundant provisions and took many wives for them. NIVHe gave them abundant supplies, and he sought many wives for them. AMPAnd he sought (for them) many wives.   첨가한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for them’이 없습니다.   NKJV, NASB는 for them을 이탤릭으로 처리하여 첨가하였음을 시인하였고 ASV는 괄호로 처리하여 동일하게 시인하였으며 NIV, Amplified Bible은 이탤릭체가 아니 정체로 기록하여 진실을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영어 KJV는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하여 르호보암이 많은 아내를 탐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르호보암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들을 위해서 여러 아내들을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현명한 독자께서는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6-12-12 12:04: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또한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도 이겼습니다.이것은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그 의미를 잠시 나누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저는 다음 글을 썼습니다.   o 왜 미국의 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1068   결국 이번 트럼프의 승리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오바마/클린턴의 인본주의, 동성애 합법화, 친이슬람 정책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브렉시트를 염원한 영국민들의 정서와 비슷합니다.   o 브렉시트, 트럼프, 그리고 세계화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1012   o 브렉시트와 국경 지키기   https://youtu.be/JAbV_ojfV4s   대선 레이스 내내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극도로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았고 투표 전날까지도 CNN, New York Times, Washington Post 등은 클린턴의 승리 확률이 80%(CNN은 91%)라고 보도해 미국민을 기만하였습니다.   o 트럼프와 힐러리의 유세현장 비교 - 언론의 속임수   https://www.youtube.com/watch?v=aeheJMOTrJo   현재 CNN 등에는 왜 여론 조사가 이렇게 틀리냐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언론들의 이런 좌편향 현상은 브렉시트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브렉시트가 되리라고 예상한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언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기존에 보수 언론으로 여겨지던 신문사들은 종편을 운영하는 것을 계기로 자신들이 기존에 고수하던 보수적인 가치에서 뚜렷하게 벗어나 좌편향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종합 포털들의 중요 기사 노출도 객관적이라고 보기 대단히 어렵고 심지어 인터넷 서점들도 좌편향적인 책들을 첫 페이지 맨 위에 올려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어떤 언론을 믿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도 세상일을 바로 알아야 바르게 설교할 수 있는데 언론이 한결같이 죄편향되어 있기에 근래에 친하게 지내는 의사 형제님에게 물었더니 ‘미래한국’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가서 보니 조그만 언론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세상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투표 바로 전 날, 미래한국은 이번 미국 대선의 이슈가 정확히 무엇인가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o 보수냐 진보냐 연방대법원 방향 가를 미국 대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33   이것은 미국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한 글입니다. 이러한 분석을 보여 주는 국내 언론은 거의 없습니다.   현 시점에서 이 나라와 세계에 일어나는 일을 가장 정확하게 보도하는 언론은 '미래한국'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에 기사를 쓰는 분들은 대개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물론 100% 좋은 것은 없으므로 무엇이든 늘 조심해서 보기 바랍니다.   지금 미국의 상황은 심히 어렵습니다. 영적 붕괴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o 오바마, 백악관을 사탄의 집으로 꾸미다   http://blog.naver.com/esedae/220853966704   위 기사를 보면 현 시대 미국의 영적 상황이 심히 나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 크게 위기를 느낀 미국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번 결과는 트럼프의 인격과 평소 행실이 좋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라 좌편향된 인본주의자들의 영적/도적덕/정신적 타락의 정도가 도를 넘었기에 보수적인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트럼프가 이것을 바꾸어 주기를 희망하며 그를 찍은 것입니다. 트럼프는 약속한 대로 임기 내에 보수 성향의 대법관 서너 명을 임명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1. 동성 결혼 합법화 되돌리기2. 기독교 믿음의 자유 인정3.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4. 이란 핵 협상 되돌리기5. 이슬람 적대 정책6. 불법 이민 막기   특히 트럼프는 서민들의 지지를 얻었기에 그들이 행복해 하는 국가를 만들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바마를 비롯해서 부쉬, 클린턴 등 과거 40-50년 동안 부자들과 기득권 세력 그리고 여기에 편승한 언론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워싱턴의 정치 행정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의 캐치 프레이즈가 말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Let Us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저는 이런 표어를 우리 성경 신자들에게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Let Us Make Bible Believers Great Again in Korea!”“이 땅에서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이런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한국의 온 교회가 매진하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 목사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이번 트럼프 승리 역시 경천동지의 사건으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어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o 목사와 정치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1072   마지막으로 존 맥아더 목사님은 투표 전날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설교를 했습니다.   o 미국 대선을 앞두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맥아더 목사의 조언   https://youtu.be/3iec8Lhgjx4   한 마디로 맥아더는 기독교 세계관을 피력하였고 성도들이 이런 정신에 따라 투표해야 함을 말하였습니다. 한국의 유명 목사가 이런 설교를 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이것이 바로 미국의 힘입니다.   주 예수님의 평안이 굳건한 기독교를 통해 우리나라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2016-11-09 14:34:40 | 관리자
시편 116편 개요    ∎ 시편의 주제   1 {주}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도다.    2 그분께서 자신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사는 동안 그분을 부르리로다.   ∎ 1-2절의 결과를 가져온 원인   3 사망의 고통이 나를 에워싸고 지옥의 아픔이 나를 붙들었으므로 내가 고난과 슬픔을 만났도다.    4 그때에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이르기를, 오 {주}여, 주께 간청하오니 내 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 기도와 간구의 근거: 하나님의 성품   5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고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주}께서는 단순한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되었을 때에 그분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 기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해 스스로를 격려함   7 오 내 혼아, 네 안식으로 돌아갈지어다. {주}께서 너를 후대하셨도다.    8 주께서 내 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 미래에 대한 믿음은 항상 과거에 근거를 둔다(7-8절 참조)   9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주} 앞에서 걸으리이다.(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무엇에 근거해서?)   10 내가 믿었으므로(믿음의 내용: 하나님은 과거에 내개 선을 베푼 그 하나님이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선하게 행하셨으므로 앞으로도 그리하실 것이다.) 말하였거니와(원수들에게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말하였다) 내가 심히 고난을 당하여(시71:10-11)    11 황급히 이르기를(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므로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말하였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말하는 너희는 다 거짓말쟁이다.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9절이 이루어질 터이므로 원수들이 나를 죽일 수 없다).   ∎ 이제 이 어려움이 끝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12 {주}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택으로 인하여 내가 그분께 무엇으로 보답하리요?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14 그분의 온 백성 앞에서 이제 나의 서원들을(어려움을 당할 때 약속한 것들) {주}께 이행하리로다.   ∎ 다시 주님을 생각하며 또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본다.   15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의 눈앞에서 귀중하도다(내가 바로 이 성도들 중 하나이다.(17절 참조).    16 오 {주}여, 진실로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종 곧 주의 여종의 아들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늘 그러하듯이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나를 구출하셨다).    17 (이런 고통이 지나갔으므로 이제 나는 세 가지를 행하겠다) (1) 내가 주께 감사의 희생물을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2) 이제 내가 나의 서원들을 {주}께 이행하되(어디서 이행하는가?) 그분의 온 백성 앞에서와    19 {주}의 집의 뜰에서와, 오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하리로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설교: 성도들의 죽음은 주님 앞에서 귀중하다. https://youtu.be/ZX9sUICJirs
2016-10-07 16:11:03 | 관리자
위로 올라가는 노래(Song of Degrees)   시편 120편부터 134편은 ‘15개 시편으로 구성된 하나의 노래’입니다. 영어로 이  시편들의 제목을 보면 ‘Song of degrees’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degree’는 각도를 뜻합니다. 원의 경우 360도(degree)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1년에 세 차례(무교절, 오순절, 장막절)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께 경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집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여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을 원으로 생각하고 이 원이 15개 각도(degrees)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Song of degrees’의 뜻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는 전 여정에 이 노래(총 15편의 시편)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우리말로는 ‘위로 올라가는 노래’라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의 위는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120편 떠나기 전에 악한 원수들로부터 구출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   121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생각하며 시편 기자는 주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고백함   122편 다윗의 시: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기쁨을 회상하며 예루살렘의 평안을 간구함   123편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면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긍휼로 물리쳐 주실 것을 구함   124편 시편 기자는 주님의 보호를 시인함   125편 의로운 자들은 주님 안에서 안전하고 불신자는 쫓겨남을 선언함   126편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땅에 회복되는 것과 수고의 열매를 기뻐함   127편 이것은 솔로몬을 위한 시로서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복을 기술함   128편 의로운 자들의 복을 다시 기술함   129편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구출해 주시는 것을 선포함   130편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시. 참회의 형식으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자기 민족을 구속해 주실 것을 확신함 131편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중히 여기심을 표현함   132편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그의 백성을 지켜주실 것을 간구함   133편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감으로써 하나가 된 것을 찬양함   134편 시편 기자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구함   이것을 생각하며 이 시편들을 한번 낭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6-10-06 06:15:11 | 관리자
세상인가요, 영원인가요? 과거에 개역성경으로 전도서 3장 11절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인용하며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르게 번역되어 있고 그대로 따르면 개역성경의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고 또 그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정하여 두셨으므로 아무도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 낼 수 없도다(킹제임스).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세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늘 거기에 신경을 쓰며 살기에 하나님의 일들을 탐구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즉 세상일에 바쁜 나머지 하나님의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매튜 헨리 주석에도 이런 식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두 번역은 해석상 반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것에 대한 글을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이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kjvtoday.com/home/world-or-eternity-or-ignorance-in-ecclesiastes-311   --------- 전도서 3장 11절의 단어는 “세상”인가,  “영원”인가, 혹은 “무지”인가?    “그분께서 자신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고 또 그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정하여 두셨으므로 아무도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 낼 수 없도다.” (전도서 3:11 KJV)   He hath made every [thing] beautiful in his time: also he hath set the world in their heart, so that no man can find out the work that God maketh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70인역 성서와 라틴 벌게이트(불가타)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은 “עֹלָם”를 “세상 (αἰῶνα, mundum)”으로 번역합니다. 반면에 NIV, NASB, 그리고 ESV는 같은 단어를 “영원”으로 번역하고 비숍성경과 NET, BBE 그리고 메시지 성경은 이 단어를 “무지” 혹은 그와 비슷한 단어로 번역합니다. 이처럼 이  단어의 뜻에 대한 학구적 견해는 매우 다양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세상”이라는 번역은 히브리어 성경이 주어진 이후에 사용되던 히브리어에 부합됩니다(NET 성경 각주). 게다가 전도서 3장 11절의 문맥은 “עֹלָם”가 무한한 것이 아닌 무언가 한정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을 의미함을 보여 줍니다. 문맥을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עֹלָם”를 사람의 마음속에 두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처음 (ראשׁ)”부터 “끝 (סוף)"까지 하시는 일을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은 비록 오랜 시간이라 할지라도 유한한 시간을 뜻합니다. “עֹלָם”는 시편 73편 12절에도 나오며 여기서도 킹제임스 성경과 기존 성경은 다릅니다.   “보라, 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로되 세상에서 형통하며 재물을 불리는도다.”(킹제임스)   이 말씀처럼 “עֹלָם”는 세상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은 이 구절을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always)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라고 번역하여 악인들이 항상 즉 영원히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경건치 아니한 자들 즉 악인들이 영원한 시간 동안 평안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처음”과 “끝” 사이인 현시대 내에서만 평안합니다.   혹시라도 킹제임스 성경에서 쓰인 “세상”이라는 단어가 시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이라는 단어는 공간과 시간적인 측면을 모두 의미한다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자주 “세상”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은 상태인 시간적인 관점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9/11 테러사건 이후 세상에서….” (.in this post 9-11 world....)   여기서 “9/11 테러사건 이후 세상”과 같은 표현들은 9/11 테러 사건 이후의 공간보다는 시대를 뜻합니다. 지구라는 장소는 2001년 9월 11일 이전이나 이후나 여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고대 독일어인 “늑대인간”(werewolf)에서와 같이 “사람”을 뜻하는 “wer”와 “시대”를 뜻하는 “alt”가 결합된 “weralt”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사람의 나이” 혹은 “사람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위에 설명된 대로 이 단어는 구어체로 사용될 때에도 시간적 측면과 엮여 있음을 여전히 나타냅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자신의 때”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시간적 측면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몇몇 역본 역자들은 “עֹלָם”를 “영원”으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고”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이라는 말씀에서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공간적 측면 또한 나타냅니다.   “세상”이라는 단어는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측면을 모두 나타내기 때문에 “영원”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번역이 “עֹלָם”가 의미할 수 있는 범위를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래서 앞뒤 문맥상 정확한 번역입니다. -------   전3:11, 시73:12 등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세상”으로 번역되어야만 앞뒤 문맥이 바르게 이해됩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8-30 14:13:5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참혹한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이스라엘을 돕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음 기록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 실재 영상입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실재 영상https://youtu.be/GfFXtFF2Qco   영상에 나오는 에스겔서 37장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 이제 국가를 이루고 곧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이때가 바로 주님의 재림의 때라고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합니다. 거룩하고 합당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에스겔서 37장  1 {주}의 손이 내 위에 임하사 {주}의 영 안에서 나를 데려다가 뼈가 가득한 골짜기 한가운데 두시고 2 또 나로 하여금 사방에 있는 그 뼈들 곁으로 지나가게 하시니라. 보라, 그 열린 골짜기에 뼈들이 심히 많으며, 보라, 그 뼈들이 심히 말랐더라. 3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되,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4 그분께서 다시 내게 이르시되, 이 뼈들 위에 대언하고 그것들에게 이르기를, 오 너희 마른 뼈들아, {주}의 말씀을 들으라. 5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숨을 너희 속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너희 위에 살이 생기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덮고 너희 속에 숨을 넣으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 받은 대로 대언하니 내가 대언할 때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며, 보라, 흔들림이 있고 그 뼈들이 함께 와서 뼈마다 자기 뼈에 이르더라. 8 내가 또 보니, 보라, 힘줄과 살이 그 뼈들 위에 생기고 살갗이 그것들을 덮었으나 그것들 속에 숨은 없더라. 9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바람에게 대언하라. 바람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숨아,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이 살게 하라, 하라. 10 이에 내가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대언하였더니 숨이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서 자기 발로 서는데 심히 큰 군대더라. 11 ¶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니라. 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없어졌으며 우리로 말하건대 우리 몸의 부분들은 끊어졌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리라. 13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에서 데리고 올라올 때에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4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게 하고 너희를 너희 땅에 두리니 나 {주}가 그것을 말하고 그것을 이행한 줄을 그때에 너희가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라.  
2016-08-27 17:22: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최근에 들어온 뉴스를 전하고자 합니다.   http://www.chick.com/bc/2016/catholicism_and_islam.asp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번역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카톨릭과 이슬람 – 두 개의 비슷한 (거짓) 복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의 원수가 되었느냐?” 갈라디아서 4장 16절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슬림들을 세계 교회 주의의 로마 교황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계속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 카톨릭 신문사 La Croix와 진행한 “다방면에 걸친 인터뷰”에서 교황은 이슬람의 “정복 개념”을 마태복음 28장에 있는 복음 전파 지상 명령에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복 개념이 이슬람의 혼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모든 민족으로 보내는 마태복음의 목적도 이슬람과 같은 정복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로마 카톨릭의 복음이 성경적인 복음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예수회와 도미니크 수도회는 구원받기 위해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왕들과 대통령들에게 정부의 권력을 사용하여 천주교를 전파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종교 재판에서부터 멕시코 치아 파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대적인 박해까지 성경 신자들은 로마 카톨릭 “정복”의 고통(그리고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교황이 옳습니다. 이슬람과 로마 카톨릭 모두 피 묻은 정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는 이라크와 리비아를 침략하여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하고자 시도한 서양 국가들을 비난합니다. 이는 교황이 국가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기 위한 미국의 시도보다 사담 후세인과 카다피의 억압적인 정권을 선호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냅니다. 바티칸은 항상 이러한 자유를 우려해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서구의 성경 신자들은 참된 복음과 함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급진적 이슬람 세력이 그 권력의 공백을 메웠습니다. 자유가 없는 의는 오직 더한 악으로만 이끌 뿐입니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 위기”에 대해 교황은 인터뷰에서 이민자들의 “통합”을 찬성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과연 그가 이를 통해 난민들을 성경 속의 그리스도께로 이끌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그가 믿고 있는 화체설의 가짜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기회로 엿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이 행하는 정복의 복음이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롭고 기쁜 참된 복음이 아닌 이슬람의 “복음”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예수회 출신 교황은 이러한 “복음”을 전파하도록 복음주의자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복음이 성경적인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지금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교도들에게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한다고 믿는 웨이퍼(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제병) 빵조각을 그들의 혀에 살짝 올려놓는 행동일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왕국의 복음”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의 가짜 “왕국”은 가짜 “교회”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인데 카톨릭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고 거짓으로 주장되는 “그 교회”를 통해 카톨릭 사제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거짓 은혜로 탈바꿈하고 말았습니다.   로마 카톨릭이라는 전체 기관은 예수님과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에서 반석에 관해 나눈 대화의 잘못된 해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만듦으로써 바티칸의 모든 기관이 부실한 모래 위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교황에 의해 영적인 능력이 선포되자, 다른 성경구절들도 이러한 이교도 교리를 맞추기 위해 왜곡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거짓 세부사항의 아귀를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을 “살아있는 빵”이라고 하신 말씀을 왜곡시킴으로 웨이퍼를 “육체, 피, 혼 그리고 예수의 신성”이라고 부르며 화체설을 지지하는 말씀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빵과 포도즙에 대해 하신 말씀을 사용해 자신들의 교리를 확실시했습니다. 그러므로 카톨릭교도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회에 가서 혀 위에 올려진 웨이퍼 빵조각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요한에게 “네 어머니를 보라!”고 말씀하신 단순한 구절을 확대하여 마리아를 예수님을 대신해 온 인류를 위해 중보하는 하나님의 어머니, 그리고 성모마리아 여신으로 까지 만들었습니다.   Chick 출판사는 타락한 로마카톨릭 교회의 영을 속박하는 이교도 구조를 세세히 설명하는 다양한 책들과 소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6-07-11 18:18: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사무엘기상 10장에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 다른 대언자들과 함께 대언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0 그들이 저쪽에 있는 산에 이를 때에, 보라, 대언자들의 무리가 그를 맞이하고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시매 그가 그들 가운데서 대언을 하니라. 11 예전에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보니, 보라, 그가 대언자들 가운데서 대언을 하므로 이에 백성이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임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 하고 12 같은 장소의 한 사람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런데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니라. 그러므로 그것이 속담이 되어,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 하였더라(삼상10:10-12).   그런데 여기서 12절은 조금 이상합니다. 갑자기 “그들의 아버지는 누구냐?”라는 말이 튀어옵니다.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구약 성경 변개의 장본인인 70인역의 저자는 “그의 아버지는 누구냐?”라고 독자들을 위해 말씀을 살짝 바꾸어 줍니다. 그러면 사울이 신기하게 대언을 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누구이기에 그가 그렇게 하느냐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그 저자는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척 하면서 그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뜯어고친 것입니다.   <70인역이란 무엇입니까?>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5   이해가 안 되면 문맥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말씀 자체를 뜯어 고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뜯어고치고 나면 이상하게 12절의 후반부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12절 후반부는 어떤 사람이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고 물었으므로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라는 속담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누구냐?”라고 물어서는 그런 속담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고 물어야 이것이 가능합니다.   여기의 그들은 (아마도 사울을 포함한) 대언자들입니다. 그 사람은 “이들에게 대언을 하도록 만든 분이 누구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히브리말에서 아버지는 어떤 일을 일으키는 원천을 뜻합니다. 그 모든 대언자들로 하여금 대언을 하게 하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므로 사울 역시 그 아버지가 원하면 대언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라는 속담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경 신자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70인역 같이 ‘우리를 도와주는 체하면서 누군가가 뜯어고친 말씀’에 신뢰를 두면 성경이 바른 해석을 주지 않습니다. 모르면 이해하려고 하고 또 이해가 안 된다 해도 본문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는 것이 있음에도 그것에 만족하고 성화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3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롬3:3-4).   샬롬   패스터
2016-07-07 13:12: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사무엘기상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잠시 적습니다.   사무엘기상 4-6장에는 이스라엘이 주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찾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 궤로 인해 심히 큰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그 궤를 벳세메스로 보냅니다.   궤가 벳세메스로 온 뒤 삼상6:19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주}의 궤를 들여다보았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을 치시되 곧 그분께서 백성 중에서 오만 칠십(50,070) 명을 치시니라. {주}께서 백성 중에서 많은 사람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성경 불신자들은 이때 죽은 사람이 50,070명이 아니라 70명이라고 주장하면서 50,000은 실수로 잘못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벳세메스가 큰 도시가 아닌 촌락이므로 50,070명이 한 번에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NKJV, NIV, 개역, 바른 성경 등은 (오만)을 괄호를 쳐서 빼거나 – 이 경우 “어떤 사본에는 50,000이 없음”이라는 각주가 달려 있음 - 그냥 70명이라고 적은 뒤 “히브리 사본에는 50,070명임”이라고 각주를 달아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읽고 일 점 일 획도 틀림이 없다고 인정하신 히브리 마소라 사본이 50,070명이라고 하면 그대로 번역하고 믿는 것이 성도의 도리가 아닐까요?   벳세메스는 예루살렘에서 2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유다의 산지에서 북서쪽 경사지에 있습니다. 유다 지파 사람들이 가까이 살고 있었고 또 궤가 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궤를 보려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죽은 50,070명은 벳세메스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궤를 보려고 갔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벳세메스는 유다와 블레셋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궤가 돌아오기까지 7개월이 걸렸습니다(삼상6:1). 그런데 7개월 전에 궤를 빼앗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은 34,00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삼상4;10). 그러므로 적군을 앞에 둔 그 경계에는 많은 수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모두 합하면 50,070명이 죽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한 삼상6:19는 이때의 죽음에 대해 큰 살육이라고 말합니다. 큰 살육은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경우에만 쓰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경 신자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7-07 12:47:00 | 관리자
주님의 일과 삼손의 일     안녕하세요?   한 분이 삼손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셔서 이에 대해 간단히 글을 씁니다.   ------   저는 성경을 읽으면 삼손의 행동이 자신의 정욕에 이끌린 것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방 블레셋 여인을 탐한 것이죠.  특별히 포도즙과 독주도 마시지 않고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 바쳐진 나사르 사람인 삼손이 이방여인과 통혼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고 이것이 주에게서 나온 행동인지요? 목사님들을 하나님이 묵인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자의 이 표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주에게서 나왔다고" 표현하는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그러나 삼손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가 맞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 3 그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가운데나 혹은 내 온 백성 가운데에 결코 여자가 없어서 네가 가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하매 삼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그녀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 하였더라. 4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즉 주님의 주권과 사람의 의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는 것은 분명히 그의 욕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의 여러 여인들 사건을 보면 그는 욕정의 사람으로 결국 욕정으로 인해 목숨을 잃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부모는 이것을 말리지만 결국 그에게 지고 맙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다"라는 말은 그 결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계획은 삼손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의지를 꺾지 않고 다만 그 일이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도록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분의 뜻은 블레셋에게 압제받는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그들을 칠 기회가 있어야 했고 주님은 삼손의 욕정을 그대로 두시면서 그 기회를 찾으셨습니다. 아시다시피 결국 삼손의 장인인 블레셋 사람은 삼손과 결혼한 자기 딸을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고 기회를 찾던 주님의 뜻은 삼손의 행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일 즉 삼손의 욕정을 그대로 허용하면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는 일이 주님에게서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가인이든, 가룟 유다든 그 누구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뜻을 꺾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이 매우 많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의지를 생각하면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삼손보고 그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가 그렇게 하려 하자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로 삼으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셨을 뿐입니다.   샬롬   패스터   (*) 참고로 주권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하시는 권리를 주권이라 부른 것입니다. 
2016-06-15 10:52:06 | 관리자
정동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목사님의 장문을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신교 장로교(고신)에 다니고 있는 통상적으로 부르는 서리집사 입니다. 3년 동안 개역 개정 성경을 32독을 하면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성경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인터넷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고 나서 목사님의 설교는 지금도 시간 나는 대로 계속해서 경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제대로 이해 하기 위해서는 목사님이 인용 하시는 킹제임스성경책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부산의 사직 기독서점에 성경을 사러 갔는데 당시 흠정역은 없었고 킹제임스성경만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왕이면 싶어서 럭크만 주석성경을 구입하여 개정개역본과 대조하며 지금 까지 민수기 10장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주석에 비행접시가 나오고 이스라엘의 정찰 척후병이 나오고 날아가는 언약궤가 나와서 말씀보존학회에 전화를 걸어서 도서담당의 한 분에게 질문을 하는 중 럭크만 주석 성경을 구입한 동기가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 영향을 받아서라고 했더니 바로 정동수 목사님의 흠정역은 이세상에 하나뿐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면서 잘못된 성경이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좀 어지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질문한 비행접시에 대한 답변은 UFO 관련 서적을 구입해서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 몹시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 중 답답해서 이곳을 방문하면 무엇인가 해결이 날 것 같아서 들어왔는데 목사님의 글을 보게 된 것 입니다. 목사님 부디 여기서 더 이상 시험받지 않도록 명쾌하고 진실한 목사님의 답변을 구합니다. 도와 주십시요.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님이 좋아 하실는지요?
2016-04-08 12:37:26 | 김재준
안녕하세요?   말세를 당하면서 이슬람 문제가 여러 국가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려 15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8분짜리 동영상입니다.     원제목은 “무슬림들이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삭제하기 원하는 이유”(Why Palestinians Want This Video Removed)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9CauJP4Pg&feature=youtu.be   이 안에는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주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자기들의 사원마저도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슬람은 문화/문명인의 종교가 아니라 칼로 세상을 정복하는 무서운/야만스러운 종교입니다. 특히 말세에는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회개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멸망은 확고하게 예고되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확히 그들의 정체를 알고 백성들을 계몽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 형제님께서 이것에 우리말 자막을 넣어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 성지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dBuX43uvOU0&feature=youtu.be   장면 내용: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 산을 향하여 기도합니다.무슬림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를 향하여 기도합니다.그들이 예루살렘에서 기도할 때에는 엉덩이가 반석 돔과 성전 산을 향하게 합니다.”   이 영상과 함께 다음의 자료들을 참조하시고 널리 알리기 바랍니다.   이슬람의 멸망과 하나님의 영광https://www.youtube.com/watch?v=Lupyf-fsEBw   시대의 표적 이슬람https://www.youtube.com/watch?v=4FFCtmQwQtU   시리아 난민 사태와 이슬람의 유럽 및 미국 정복 https://www.youtube.com/watch?v=rf72p-rTe1s   이슬람 바로 알기! (이혜훈 간증): 대부분의 목사들보다 이분이 훌륭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MFSKL3mpZwI   이슬람교 바로 알기 책(1주 후에 나옴)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716   이슬람교 바로 알기, 죽음의 공포 책 CD 등 국내 무료 배송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1857   샬롬   패스터
2016-03-01 15:52:14 | 관리자
목사의 임무 중 하나는 세상일을 살펴보고 성도들에게 경고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들이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 목사님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댈러스 제일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 Dallas)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쓰지 않고 현대 역본을 쓰는 것 외에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저와 동일합니다. 설교와 인격 등을 본받고 싶은 훌륭한 목사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Jeffress   이 교회는 George Truett과 Dr. W.A. Criswell이라는 걸출한 복음주의 목사들이 시무하던 교회입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이 교회 출신의 제프리스 목사가 담임하면서 미국에서 (아마) 가장 큰 침례교회(현재 11,000명의 성도 출석)로 발전시켰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Baptist_Church_(Dallas)   이분의 설교를 들어보면 너무 좋습니다. 발음도 좋고요. 목사가 이 정도의 파워로 성도들과 세상을 이끌어야겠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서 이런 훌륭한 목사들이 줄줄이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2-01 11:01:0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