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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고난당할 때의 노래 조회수 : 1060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7시 29분 44초
  • 고난당할 때의 노래
     

    성경말씀: 그들이 찬송 하나를 부른 뒤 올리브 산으로 가니라(마26:30).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한 호화 여객선에서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연회장에는 수준 높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객 중 한 명이 무대로 나와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유행가 같은 인기 있는 노래를 들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찰스 웨슬리가 작사한  441장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 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아름다운 바리톤 목소리가 극장을 채우자 사람들은 다 마술에 걸린 듯 조용해졌습니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참으로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찬송가는 정말로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듣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어디서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나자 그는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선생님, 혹시 선생님은 전쟁에 나간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상대방은 그렇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은 몇몇 연대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노래를 부른 사람은 깜짝 놀라며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테이블에 가서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은 한 때 독일군 병사였습니다. “그 날 밤 저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적군의 위치를 파악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특별히 저의 임무는 보초병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 속을 기어가 드디어 보초병이 있는 곳까지 다가갔습니다. 분명히 그 날의 보초병은 선생님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보초병은 오늘 선생님이 부른 찬송가를 부드럽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크리스천인 것을 알고는 되돌아가서 장교에게 영국군의 전력이 강화되었으므로 지금 공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른 전략을 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노래를 부른 사람은 잠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저도 그 날 밤을 기억합니다. 보초병으로 위험한 곳에 있게 되자 저는 크게 걱정하게 되었고 오늘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 속에서 나의 구원자 예수님만이 내게 도움을 주실 수 있으므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독일군 병사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그 찬송가가 선생님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노래는 우리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별히 고난당하는 가운데 노래하는 사람은 자기 혼의 절박함을 잘 드러내 보여 줍니다. 이런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 내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 주 예수님께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성경을 보니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고 그것을 주의 만찬으로 바꾸어 주신 뒤 제자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상 사역의 기간 중에 분명히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 시편에 맞추어 종종 노래를 부르시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4복음서에는 그런 일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십자가 고난을 당하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려고 하는 아주 극도의 어려움 속에서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정말로 기뻐해야만 할 시간이 긴장과 공포와 의심의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감사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쓴 나물을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자기들을 이집트라는 속박의 땅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죽음의 천사가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을 넘어간 사실을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할렐’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 ‘할렐’은 보통 시편 115-118편과 시편 136편을 말합니다. 그들은 기쁘게 이 시편들을 노래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명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앉아 있는 다락방에는 그런 기쁨이 없었고 대신 주님의 죽음이라는 것과 그로 인한 엄숙함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주님을 배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정말로 이상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비록 다락방 주인이 음식을 많이 준비했지만 거기에는 유월절 어린양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주시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모든 것이 짝이 맞지 않고 혼란스럽게 보였습니다.

    이제 유월절 행사가 끝나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심한 이 제자들이 어떻게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앞날이 어두운 가운데 어떻게 과거의 유월절 사건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할렐’의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그분의 노래 소리를 듣고 제자들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가 감도는 시간에 예수님께서 친히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추측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 주님은 자신이 그 날 밤 배반당할 것을 확실히 아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것도 아셨습니다. 대언자 이사야는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그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사542:14). 겟세마네에서는 땀방울이 마치 핏방울 같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간단한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할렐’의 시편들을 부르려면 적어도 20분이 걸립니다. 도대체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평정을 유지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할렐’의 노래가 주님의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시편들을 외웁니다. 이것들을 암송하면서 우리 주님께서는 고통당하는 유대인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수천 년 동안 신실하게 보호해 주신 사실을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자기 앞에 다가오는 고통을 이길 수 있다는 것과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그분께서는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손에 내 영을 맡기나이다”(눅23:46)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한 예수님의 믿음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롬6:4에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워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위로를 얻습니다. 승리를 얻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찰스 웨슬리는 미국에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고는 간신히 미국에 도착해서 1736년 12월 3일에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이런 어려움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렸다.” 그는 아주 맹렬한 폭풍우 속에서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공포에 질려 승객들이 머무는 곳에 들어오더니 갑자기 자기의 코트 주머니로 들어와 앉아서 평안을 누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웨슬리는 이 작은 새가 자기 가슴속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은 것같이 자기 역시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이 찬송가를 작사했습니다.

    할렐의 시편에 나오는 구절 중 가장 중요한 구절은 시편 115편 12절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깊이 생각하셨나이다” 영어로는 “mindful of us"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을 깊이 존중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죄인들을 깊이 생각하고 존중해 준다는 사실이 여러분과 저에게 위안이 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위로를 생각할 때 비로소 시편 116편 12, 17절 같은 찬송이 우리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택으로 인하여 내가 그분께 무엇으로 보답하리요?(12절)

    내가 주께 감사의 희생물을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17절).

    이런 감사를 드린 뒤에 그들은 시편 136편을 불렀습니다. 26절로 구성된 이 시편에는 구절마다 “그분의 긍휼이 영원하기 때문이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 시편 기자는 26절 모두에서 “그분의 긍휼이 영원하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136편은 크게 하나님의 위엄과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사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 시편 기자는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의 정사와 권세를 장악하고 계시며 온 우주 만물의 통치자가 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인류 역사를 주관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다고 기록합니다(시136:23). 우리 예수님만큼 이 시편의 메시지를 잘 이해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5-8).

    마지막으로 136편 23-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구속하시고 새 힘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시편을 노래하시면서 바로 이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갈보리의 십자가로 가시기 바로 전에 이 시편을 노래하시면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영원함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 자기 옆에 달린 강도와 다소의 사울이라는 바리새인과 모든 제자들과 이들의 복음 선포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과 매장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향하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시며 우리 주님은 고난의 순간에 ‘할렐’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 가운데 마음에 고통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의심하는 분이 있습니까? 다가오는 미래가 걱정되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할렐의 시편 136편을 노래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긍휼이 영원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저주가 아니라 영원한 복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지금의 가벼운 고난이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룬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이 한 주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기쁨의 노래를 부르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애통하는 심령을 우리 하나님께서 멸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할렐’의 시편인 115-118편과 136편을 한 번 읽어 보십시다. 우리 주님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는 노래를 부른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모든 짐을 예수님의 발 앞으로 가져다 둡시다. 우리 주님이 처리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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