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어제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성찬식'이 있었습니다. 공동 기도를 읽고 성찬 떡, 즉 납작한 뻥과자에 열 십자(+)가 새겨진 것.. 이교도 여신에게 바치던 '납작한 빵'과 비슷한 것을 한 개씩 나누지만 저는 그것을 집어서 먹지는 않고 늘 자료로 보관합니다. 그 다음에 마시는 포도주는 약간 쓴맛이 나긴 하지만 알콜은 거의 없는 것 같더군요. 예전 직장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함께 만찬을 할 때는 한 빵과 한 포도주스를 다같이 조금씩 나눠 먹기도 했었는데, 한국 개신교에서는 포도주를 사다 쓰지 않고 직접 담근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교회도 있을 정도로, 성만찬은 신선한(?) 포도주(술)로 한다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한편, 생활 속에서 술 마시는 것은 대개 금하고 있는 것이 많은 교회들의 모습이지요. 그렇다 보니 술에 관한 성도들의 의문에 답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언젠가 알코올중독자 재활 사역을 하는 분이 책을 냈습니다. 그의 치료 사례담 중에 지독한 중독에서 벗어나 몇 개월을 잘 버티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 사람은 자기도 나름대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주일 성찬식 때 마신 그 작은 포도주 한 잔에 입맛(?)이 다시 돌아와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다시 술에 손을 대고, 다음날 만취 상태에서 아침 재활인들의 숙소 담을 넘다가 그만 담 사이에 끼어 죽고 말았답니다. 이 웃지 못할 이야기가 너무도 슬픈 것은,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도 여전히 술로 주님을 기념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포도즙으로 만찬을 하면 알코올중독자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무튼 포도주의 모순과 문제점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주고 '와인'에 대해 설명해도, 머리에 박힌 "포도주"가 떠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만찬에 주스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만찬의 작은 술 한 잔에 알코올중독자의 연약함이 드러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드문 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엄청나게 잘못된 교리와 무관심을 반영한 단면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다려진 목회자의 화려한 가운과 촛불에 반짝이는 은빛 성찬기와 성찬 떡이라고 불리는 납작한 뻥과자는 천주교와의 교집합이 되어 성도들을 가톨릭에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술'에 관한 성경적 정의입니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 정리하여 교회 소식지에 실었던 내용이므로 이 사이트의 몇몇 자료들과 중복된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일부 공감하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글입니다. 꼬투리 잡을 틀린 말은 없는데 받아들이기는 골치아픈 이야기였겠지요. 소식지에 어느 장로님 이름 한 번 잘못 나가면 크게 송구한 일이 되고 벌벌 떠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논할 때 날짜나 창립자 수가 틀리면 난리 납니다. 그런 자세로 말씀을 대한다면 한국 교회도 금방 뒤집힐 텐데, 매우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술, 성경에도 많이 나오잖아~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개신교에서는 대개 술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음주를 정당화하곤 하는데, 그들이 성경을 인용해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술도 그 재료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 아닌가." "술은 조금씩 마시면 건강에 도움을 주는 약이 된다. 바울도 디모데의 위장병에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지 않았나."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랬지, 술 마시지 말라고 했나. 취하지 않으면 괜찮다." "예수님도 만찬 때와 십자가상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가나 혼인잔치 때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도 보이셨다."
이 변명들은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하나씩 짚어 보자.
술/ 알코올/ 포도주/ 포도즙? 안 그래도 요즘 와인 열풍으로 포도주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는데, 포도주란 포도당이 껍질에 붙어 있는 효모 박테리아에 의해 발효, 즉 부패되는 과정을 통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탕 분자들은 단순한 알코올 분자들로 분해되는데, 설탕의 당분은 신체활동 에너지의 첫째 근원이 되지만 알코올은 신체 부패의 원인이 되어 소화되지 않은 채 혈류로 들어가 신경계와 신체조직을 공격하고 손상을 준다.
구약에서는 히브리 단어 '티로쉬'와 '야인'이 쓰였는데, 티로쉬는 신선한 포도즙이며 야인은 발효된 포도즙, 즉 포도주를 뜻한다. 그런데 헬라어(그리스어)로 씌어진 신약성경에서는 구분이 없이 '오이노스'라는 한 단어만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문맥상의 뜻을 잘 파악하여 번역하고 해석해야 한다. 사이다(cider)라는 말도 원래 사과즙이라는 뜻과 발효된 알코올성 사과주를 동시에 이르는 말인 것처럼 말이다(우리나라의 사이다는 탄산수라는 뜻으로 전혀 다르게 쓰임).
술은 하나님의 창조물? 그렇다면 술은 하나님의 창조물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에서 많은 악한 것을 만들어 냈는데, 마치 원자폭탄이나 핵무기처럼 술도 2차 제조물이자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도나 과일즙이 무조건 오래된다고 술이 되지는 않기 때문. 물과 온도·설탕 등의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술이 된다. 그러므로 술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취하는 것은 어느 시점부터? 바울이 디모데의 위장병을 위해 포도주를 권했다고 하는데(딤전 5:23), 이것은 헬라어 '오이노스', 즉 영어의 와인(wine)을 모두 '포도주'로만 번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취하다'로 쓰인 '메쑤스코'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그저 '취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취하기 시작하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거짓말쟁이? 포도주에 대한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내가 이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새롭게 마시는 그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물론 포도주와 포도즙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의 복음서를 계속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에게 해융(스펀지 같은 것)에 적신 '신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고 나온다. 어떤 해설성경에서는 이것을 신 포도주와 계란과 물을 섞은 로마병정의 음료라고도 했고,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값싼 포도주'로도 번역하고 있는데, NIV(신국제역)에서는 wine vinegar, 즉 '포도 식초'나 '신 포도주'로 번역할 수 있는 말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어기고 돌아가시기 전에 포도주 종류를 마셨다는 말씀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신구약 합본 영어성경인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신 것을 그냥 '식초(vinegar)'로 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흠없이 완전한 희생양이 되셨다. 민수기 9장 12절에서는"그것(어린양)을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것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고 유월절의 모든 규례에 따라 그것을 지킬 것이니라."라고 했다. 원래 십자가형이 끝나면 다리뼈를 꺾어 확실히 죽음을 확인하고 마무리한다고 하는데,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옆구리를 찔러 심장에 남은 물과 피를 흐르게만 했다. 요한은 "이 일들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라."고 했다(요 19:36).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이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음이라." (고전 5:7)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책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두루뭉술하게 믿거나 마음대로 해석하여 술을 마시는 일에 악용할 수 없다.
예수님이 술을 만들어 제공하셨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것도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에 어울리지 않는다. 항아리에 담긴 '물'은 그 잔치에 쓸모 없는 존재를 뜻한다. 혼인잔치에 필요한 포도음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성도들은 그 예복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구원이 없이는 우리가 예복을 준비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의 '오이노스'도 포도즙이 되어야 한다. 이미 취한 잔치의 손님들을 더욱 인사불성으로 만들 포도주를 예수님이 기적을 통해 공급하셨다는 것은 율법과 구약의 말씀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으신 예수님께서 하실 수 없는 일이다(요 2:10). 영어로도 '와인'은 포도주와 포도즙을 동시에 뜻한다. 현대에 와서 '와인'은 주로 포도주에만 쓰이는 말이 되었는데, 오래전에 쓰여진 이 단어를 모두 현대의 용례로 '포도주'로 번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이 술을 금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문맥별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바울이 권한 것도 자동으로 포도즙이 되는 것이다. 환자에게 술을 권하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술, 이제는 마시지 맙시다
술에 대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든지, '모든 것이 가하나...' 등의 성경을 이용한 궤변은 용납될 수 없다. 성경에서 술은 각종 죄의 도구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잠드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아들 함에게 죄를 짓게 한 사건이 술에 대한 성경의 첫번째 기록이다(창 9장). 롯의 딸들은 아버지의 씨를 보존하자며 술에 취하게 하고 범죄하였다(창 19장). 또한 성경은 잠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술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이사야서 5장에서는 술이 지옥을 확장시킨다고 한다. 술을 마시는 자들로 인해 지옥의 인구가 더해질 것이라는 대언이다.
"화 있을진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되 밤이 될 때까지 계속 따라가 포도주로 붉게 된 자들이여! ...그러므로 지옥이 자기를 확장하고 한량없이 자기 입을 벌렸은즉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큰 무리와 그들의 영화와 기뻐하는 자가 다 거기로 내려가리로다. (사 5:11, 14)
술에 대한 성경의 정확한 메시지를 볼 때, 주의 만찬 때도 순수한 포도즙이나 주스를 써야 함이 어느 모로 보나 옳다. 누군가가 변질시킨 전통을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로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적은 양이지만 술을 마시면서 유월절 어린양이신 흠없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생활에서 술을 완전히 멀리하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를 우리 모두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2: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