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성경에 나오는 모든 타언어(방언)는 그 당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던 실제 언어였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는 실제 타언어로 말한 예가 나와 있다. 여기서 타언어라고 번역된 그리스말은 ‘글로싸’이며 이것은 말 그대로 사람의 입 안에 있는 혀, 사람이 구사한 언어, 특별한 지역의 사투리 즉 방언 등을 뜻한다. ‘글로싸’가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살펴보면 그것이 모두 그 당시 사람들의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타언어와 관련된 첫 번째 사건은 행2:4-11의 오순절 사건이며 4-8절은 성령님을 기다린 유대인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도행전의 나머지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려 준다. 두 번째 사건은 행10:44-48에 나오는 고넬료 사건이다. 이때 일어난 기적도 사도행전 2장과 동일한 타언어였으며 특별히 이때에는 성령님의 그 선물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였다(45절).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면서 자신이 이전에 경험한 오순절 사건과 그것을 비교했다(행11:15-17). 베드로는 여기서 가장 먼저 성령님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10여 년 전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 나타난 동일한 것 즉 타언어를 보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동일한 선물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셨다고 결론지었다. 세 번째 사건은 행19:1-7에 있는데 여기서 일어난 기적도 타언어였으며 그들의 말 역시 사람의 언어였다. 한편 고린도전서 12-14장에도 타언어가 나와 있는데 어떤 이들은 여기의 타언어는 사도행전의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여기의 타언어도 사람의 언어임을 보여 준다.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고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가 기록했는데 바울과 누가는 가까운 동역자요 친구 사이였다. 누가는 바울의 선교 여행 때 그와 동행했으므로 두 사람은 틀림없이 서로의 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경의 순서에 따르면 사도행전이 고린도전서보다 앞에 나오며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일어났다. 그러나 실제로 사도행전은 고린도전서보다 5-6년 늦게 기록되었다. 따라서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며 거기에 바울이 이미 사용한 ‘타언어’란 말을 사용했을 때는 틀림없이 동일한 선물을 가리켰다고 볼 수 있다. 누가의 사도행전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타언어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했으므로 누가는 그 선물이 사람의 언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바울은 굳이 타언어의 본질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그의 독자들이 이미 그 선물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사람의 언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울과 누가가 동역자라는 점, 바울의 기록이 앞선다는 점, 누가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묘사할 때 바울이 쓴 것과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 등은 고린도전서의 타언어가 사람의 언어임을 확실히 보여 준다. 또한 고전14:7-11의 분명한 소리는 고전14:21-22를 볼 때 사람의 언어임이 확실하다. 타언어의 선물(은사)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말을 학습 과정 없이도 구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그래서 바른 성경은 고린도전서의 타언어를 ‘알지 못하는 언어’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현재 은사주의자들이 행하는 방언은 사람의 언어가 가지는 논리적인 구조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고 횡설수설하는 것이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선물이 아니다. 사도행전은 타언어의 근본 목적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새로운 메시지가 참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선물은 또한 고넬료와 그의 집안사람들에게도 임하여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타언어가 믿는 자들이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말하였다(고전14:22). 따라서 고린도 교회에 타언어가 주어진 것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어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신약시대에 고린도 교회만큼 유대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교회는 없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에게 사역을 시작했고(행18:1-8) 유대인 회당의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었으며 그의 뒤를 이은 소스데네 역시 구원을 받았다(행18:17; 고전1:1). 이처럼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들의 회당 바로 옆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특별한 부담을 안고 태어났고 모임이 회당 옆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래서 고린도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 교회를 주목했다. 이에 하나님은 특별 조치로 이 교회에게 타언어의 선물 즉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표적으로 작용할 선물을 주신 것이다. 물론 고린도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타언어로 말하지는 않았지만(고전12:29-30) 성령 침례는 공통적으로 받았다(고전12:13). 그러므로 타언어를 말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성령 침례, 성령 충만 참조. 타언어의 선물은 병 고침의 선물, 기적의 선물, 사도, 대언자 등이 사라지면서 성경의 완성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으며(고전13:8) 그래서 고전13:9 이후에는 타언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고전14:21-22는 타언어의 종결 시기를 알려 준다.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었고 이사야서의 인용 말씀은 외국어의 표적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주후 70년 하나님은 목이 곧은 유대인들에게 진노를 부으셔서 로마 군대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파괴하게 하였고 그 결과 유대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타언어 즉 방언은 주후 70년경에 목적을 다 이루고 그쳤으며 그 이후로는 정통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 결과 목사나 집사의 자격에도 타언어의 구사가 들어 있지 않다(딤전3; 딛1). 끝으로 “타언어로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전14:39)는 말씀은 그 당시 타언어가 고린도 사람들에게 유효했고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오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바른 타언어가 다 금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타언어는 완전히 그친 상태이다. 한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 말라고 하셨으나(마10:5-6) 이제는 하나님의 경륜(세대)이 바뀌어 그렇게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마찬가지로 타언어도 경륜(세대)이 바뀌어서 이방인들의 교회와 무관하게 되었다. 선물, 병 고침, 기적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