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거룩함은 종종 밖으로 나타난 깨끗함을 표현하고 어떤 때는 내적인 순수함과 성결함을 나타낸다.
참된 거룩함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마음의 생각과 의도에 특징을 부여한다. 거룩함은 내적인 원리이므로 단순히 정직함이나 자비 등과 같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뜻하지 않고 모든 선한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무한대로 완전한 방법으로 거룩한 존재이시다(사1:4; 6:3). 메시아 역시 거룩한 분이었고(시16:10; 눅4:34; 행3:14) 물론 성령님 역시 거룩한 영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함과 무죄함과 성결함의 근원이시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타락 때에 이 모든 거룩함을 상실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거룩함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그들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성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 일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고 생각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 선도 참조(60).
성경은 거룩하다는 말을 2차적인 의미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천국과 그분의 성전과 그 안의 기구들과 그 안에서 행하는 일과 그분의 날과 그분의 사역자들과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사도들이 거룩하다. 성경은 또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거룩히 구분된 사람들이며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한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거룩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이 내적인 순수함과 긍휼과 깨끗함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현대 교회는 거룩함을 잃고 있고 그것을 사랑과 혼동하고 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성경에 611회 나오며 사랑은 488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사랑보다 거룩함에 대해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근본 속성은 거룩함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사랑이 아니라 거룩함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 거룩하게 경배하여야 한다(출15:11; 대하20:21; 사6:2-3; 계4:8).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시29:2).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 사이에는 중요한 관계가 있다. 실로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켰으며 그 결과 그분의 거룩함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사랑이 사람에게 나타나게 되었다. 참으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성품을 조절하는 근본 속성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속죄는 사랑에서 왔으나 그 사랑을 요구한 것은 그분의 손상된 거룩함이었다. 모든 사랑은 기준이 있어야 바른 사랑이 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거룩함이다. 사랑이라는 엔진이 아무데나 굴러가면 무절제의 도구가 되는데 그분의 거룩함이 사랑의 엔진을 조절하여 바른 곳으로 인도하므로 그것은 사랑보다 높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 예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만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가진 사람도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분과 같이 거룩해야 하며 성경은 분명하게 그것을 요구한다(레20:26; 벧전1:15-16).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아드님, 거룩한 영, 거룩한 성경을 믿으며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 불린다. 현대자유주의자들은 거룩함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 하며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을 찾기 어렵고 각 사람이 자기 보기에 선한 대로 하나님께 나오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거룩함이라는 궤도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교회 안에 각종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랑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교회가 수용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며 그런 식의 거룩하지 못한 경배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신다(잠28:9). 그러므로 기준과 표준을 요구하지 않는 기독교는 바른 기독교가 아니다.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세상의 것을 버리고 야곱과 같이 벧엘로 올라가야 거기에 부흥이 있다(창35:1-5). 따라서 교회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이 갈등을 일으킬 때 반드시 거룩함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살 수 있는 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