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마태복음 19장 17절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는 왜 바뀌었는가?
마태복음 19장 16-17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보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분께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다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 하시니”(마 19:16-17)
그런데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은 같은 대목을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개역개정)라고 옮겼다. NIV, ESV 같은 영어 현대 역본도 마찬가지이다. 두 군데가 달라졌다. 16절에서 청년이 예수님을 부른 ‘선한 선생님이여’에서 ‘선한’이 빠졌고, 17절 예수님의 대답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는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로 바뀌었다.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이 대화의 요점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데 있다.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는데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고 물으셨다. 청년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겠지만, 선한 이가 하나님 한 분뿐이라면 예수님을 선하다고 부른 것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셈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의 무게를 깨닫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역본에서는 청년이 그저 ‘선생님’이라 부르고 예수님께서는 ‘왜 선한 것에 관하여 묻느냐’고 답하시는 전혀 다른 대화가 된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물음이 대화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사본들은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사본들의 증거
17절 앞부분을 현대 비평 본문처럼 ‘어찌하여 네가 선한 것에 관하여 내게 묻느냐’로 가진 그리스어 사본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4세기), 베자 사본(D, 5세기), L 사본과 Θ 사본, 소문자 사본군 f1, 22번과 700번 사본, 892번 사본의 원래 손 등 10여 개이다. 역본으로는 불가타(벌게이트, Vulgate)와 시내·쿠레톤 시리아 역본, 콥트 역본이 있고, 교부로는 오리겐이 있다.
반면 킹제임스 성경처럼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로 되어 있는 사본은 에브라임 사본(C, 5세기), 워싱턴 사본(W, 4~5세기), K 사본과 Δ 사본, 소문자 사본군 f13, 28번·33번·565번 사본을 비롯한 비잔틴 계열 사본 거의 전부이며, 페시타와 하르클 시리아 역본도 이 본문을 가지고 있다. 2세기의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100년경~165년경)와 4세기의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7~407)도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형태로 인용한다. 뒷부분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도 같은 다수 사본이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 19장을 담은 그리스어 사본이 1,000개가 훨씬 넘는데, 그 가운데 현대 비평 본문과 같은 것으로 알려진 사본은 10여 개이고 그 밖의 사본은 거의 다 킹제임스 성경과 같다.
16절의 ‘선한 선생님이여’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비평 본문은 16절에서도 일부 사본을 따라 ‘선한’을 본문에 넣지 않았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대로 있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7-18; 눅 18:18-19)
그리고 이 말씀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도 그대로 있다. 개역개정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선한 선생님이여 …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옮겼다. 현대 비평가들은 마태복음의 필사자들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맞추어 본문을 고쳤다고 주장하지만, 세 복음서가 같은 사건을 기록했으니 같은 말씀이 세 곳에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한쪽으로 쏠린 차이들
이런 차이들이 모두 같은 의도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차이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대 비평 본문이 킹제임스 성경과 다른 곳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딤전 3:16)는 ‘그분이 나타나시고’로,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눅 2:33)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바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행 8:37)와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7)는 통째로 빠지며, “그리스도의 심판석”(롬 14:10)은 ‘하나님의 심판석’이 된다. 대부분 예수님의 신성과 처녀 탄생과 삼위일체를 흐리는 쪽이다. 마태복음 19장 17절의 차이도 이 흐름 위에 있다.
결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부인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선하다고 부른 청년에게 그 말의 참뜻, 곧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말씀이다. 1,000개가 넘는 사본 가운데 10여 개를 뺀 나머지가 이렇게 읽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현대 비평 본문에서도 똑같이 읽는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수 사본을 따라 이 말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그것이 원래의 본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