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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금까지 살펴보니 성도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주제는 영혼육, 천국, 지옥 등입니다. 여기에 대해 조직신학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노트와 함께(40-47과) 보시기 바랍니다.   노트는 PDF 파일로 올렸습니다.   샬롬   DSJ   영혼육 01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97   영혼육 02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98   운명: 최종 목적지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42   지옥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43   천국 01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51   천국 02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52    
2013-10-22 17:59:28 | 관리자
반갑습니다. 형제님께서 목사님의 설교를 그토록 반복적으로 들으셨다는 것은 진리를 찾아 올바른 길을 가보겠다는 의지라는 점에서 형제님의 열심을 높이 평가합니다. ^^ 그리고 위에 몇 분들께서 좋은 댓글을 많이 달아 주셨네요. 저는 왜? 그러한 행위구원이 사람들에게 많이 심겨져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의 사견을 부족하나마 댓글로 올려볼께요. 최근 한국 교회들이 신사도운동, 번영 및 기복신앙 등에 정신이 팔려 ‘행위구원’을 팔아먹고 있다는 데서 생각의 출발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구절들이 , , .., 얼마나 명쾌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구원상실관련 구절은 오직믿음 구원 구절만큼이나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황상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고 있지요. 그런데도 왜? 지금의 교회성도들에게 행위구원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의도적으로 노예의지를 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을 군림하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니골라당 교훈을 미워하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속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이 시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둘째, 성경변개입니다(첫째의 목표를 달성하기위한 수단). 대표적으로 이나, 등을 읽어보세요. 의도적으로 변개해서 내용을 바꿔 놓고는 마치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얻는 것처럼 해놓았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흠정역’과 비교해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를 성경보다 더 권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경은 단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대한 참고서 용도로 밖에 활용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잘 저버리는도다. 넷째,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속성 중 ‘공의’, ‘거룩’,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만약 행위구원 또는 구원상실교리가 맞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성경에 아주 정확히 그리고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도록 기록해 놓으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복음00:00)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라고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중에 거할 처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해 놓으셨는데, "내[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가노니" 하물며 구원상실이 가능하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얼마나 더 열심을 내셨을까요? 어렸을 때 교회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저는 이 가사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구원열차(방주)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 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선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빵빵~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이렇게 부르도록 가르쳐놓고서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전도도 해놓고서는 막상 교회에 오면 행위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속임수입니다. 마지막으로, 죄의 본질이 주님을 믿지 않은 것이라면, 반대로 믿음의 본질은 "HISTORY"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그의 이야기를 믿는 것이 아닐런지요.., 평강의 하나님이 형제님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013-10-22 15:28:40 | 김상진
레위기 17장 11절 등에 따라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식물은 생명체로 볼 수 없고, 유기적 성장체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없다고 봐야겠죠. 물론 생명과 같은 유전자와 세포 등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은 식물을 섭취할 짐승과 인간 등의 생명활동에 직접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이 글의 둘째 단락을 참고해 보세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041 인간과 짐승의 혼이 어떻게 다른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짐승도 생각을 하고 아픔도 느끼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말도 할 수 있으니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사람에게만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셨다고 했으니 당연히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다른 차원의 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로 고린도전서 15장 39절에 나오지 않는 곤충들도 피가 없으므로 생명 있는 육체로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들은 코로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방주에 타지도 않았고요. 때로는 곤충들도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듯하지만, 자기 의지나 판단이라기보다 창조된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성경적으로는 생명으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보고요, 식물의 수분과 성장에 도움을 주고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것들이 크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또렷이 알게 되겠지요.^^
2013-10-22 11:26:16 | 김재욱
동물도 인간처럼 3분적 요소(trichotomous)로 이루어 졌네요, 민수기 31장28절처럼.. 그러다면, 동물도 몸,영, 혼으로 이루어진건데, 인간의 혼과 동물의 혼은 어떻게 다른가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식물도 혼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경우 혼은 인간의 혼이 가진 기능은 발휘할 수없고 단순히 생명체란 의미에 불과한지요?, 여기에 게시된 내용으로는 그 차이점을 잘 알수가 없어서요.
2013-10-22 10:57:04 | 양경수
오늘 아침에는 전병국 형제님이 쓰신 글을 올립니다. 교리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바른 성경, 바른 구원, 바른 교리, 바른 교회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에는 핵심 요약 성경 해석법 책자를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Pds1-4/View/3oe   샬롬   패스터   교리 공부가 필요한 7가지 이유   우리는 교리(敎理; doctrine)를 소홀히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리 공부를 목회자나 신학자들의 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교리를 공부하면 머리만 커지고 영혼이 메마른다며 교리 공부 자체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교리 때문이라면서 교리보다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신자는 어떤 것에 대해 입장을 정리할 때 사도 바울이 던졌던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What saith the script-xure?” (로마서 4:3)   자신의 기분이나 경험, 지도자의 가르침, 모임의 분위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교리 공부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1. 교리를 알아야 부흥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의 끝 부분과 같은 부흥을 꿈꾼다.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사도행전 2:46-47)   이렇게 사랑 넘치는 교회, 기쁨 가득한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개 이런 결과적인 모습을 흠모할 뿐 그들을 진정한 부흥으로 이끌었던 개혁의 모습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예루살렘 교회로 모인 사람들에게 부흥을 앞두고 나타났던 모습들이 있었다.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입은 베드로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한 교회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이 모여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찬양? 봉사? 기도? 아니다.   “그들이 흔들림 없이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사도행전 2:42)   그들은 함께 모여 4가지 실천했다. 사도들의 교리(가르침)를 배우고 교제하고 빵을 떼며 기도했다. 그들은 제일 앞에 사도들의 교리를 두었다. 교제와 만찬과 기도는 그 다음이었다. 사도들의 교리란 오늘날 성경의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교리, 성경의 가르침은 신앙생활이라는 기차의 기관실과 같다. 제일 앞에서 끌어주고 방향을 잡아준다. 교제 앞에, 만찬 앞에, 기도 앞에 교리가 있고 성경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이 4가지 일들을 “흔들림 없이, 변함없이(steadfastly)” 계속했다. 다시 말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재미있을 때나 지루할 때나, 사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교리를 배우고 교제하고 만찬하고 기도했던 것이다. 많은 이적과 표적, 재산의 나눔, 매일의 모임, 교회의 성장 등은 그 뒤에 찾아온 일들이었다. 부흥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부분이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몫이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성경의 교리를 배우는 것이다.   2. 교리를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의 복음은 감상적인 외침이나 피상적인 말로 꾸민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체계적인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교리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이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17-18)   사도 바울은 “죄의 종이…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생길 수 있는가? 로마의 성도들이 어떻게 했길래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인가? 그들이 “교리의 그 틀(that form of doctrine)”에 반응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을 하나의 교리체계로 말하고 있다. 물론 조직신학이나 구원론같이 좀 더 학문적이고 복잡한 지식과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복음은 분명히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죄인 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에 대한 믿음이 차례로 이어진다(고전 15:1-5). 바울은 우리가 이 복음을, 이 교리의 틀을 지성으로(“전달된”), 감정으로(“마음으로부터”), 의지로(“순종하고”) 믿고 받아들이면 죄로부터 해방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자가 되는 것과 교리를 아는 것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다. 신자가 되는 것 자체가 이미 교리 공부의 시작이다.   3. 교리를 알아야 하나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너희를 간절히 보고 싶다”(롬 1:11)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이유를 말한다.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이것은 곧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와 함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 (로마서 1:12-13)   간절한 그리움의 첫 번째 이유는 로마 성도들에게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그들을 굳게 세우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서로에게 위로받기 위함이었다. 사도 바울과 로마 성도들은 로마서를 썼을 당시 아직까지 서로 만나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 비밀은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the mutual faith)”에 있었다.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 만났든 적도 없던 사람들이 만났으나 서로 같은 믿음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공통된 믿음이라는 것은 공통된 대상, 공통된 내용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기본적인 교리의 일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다. 만약 다른 대상, 다른 내용에 대한 믿음이라면 서로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오히려 서로를 나누어 놓을 것이다.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공통의 교리는 신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준다.   4. 교리를 알아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다.   흔히 쓰는 단어는 뜻이 왜곡되기 쉽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년의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한 어떤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분이 신앙을 갖기 전에 교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나오는 표현 중 하나가 “은혜 받았다”였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 “은혜(grace)”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천국행 티켓이나 면죄부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은혜는 그 이상이다. 은혜는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딛 2:11-14; 고전 15:10). 그런데 이런 것이 단지 지식이나 이해의 정도 차이가 아니라 생사(生死)의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6-8)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피상적인 단어에 머무르지 말라고 경고한다. ‘복음’이란 단어를 쓴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된 복음과 다른 복음, 거짓 복음, 저주받을 가짜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단어가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쓰는 단어가 대충 비슷하면 서둘러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 칭의, 은혜 같은 기독교의 핵심 개념들을 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종교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언뜻 관용과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들리지만 성경과는 크게 어긋난 모습이다. 참 사랑은 결코 진리와 충돌하지 않는다. 사랑은 진리를 기뻐한다(고전 13:6) 이 모습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가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지만 아무하고나 무작정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사람들이(요 17:6), “아버지의 진리로…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이(요 17:17)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며 기도하셨다.   5. 교리를 알아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그 비결을 보여주고 있다. 성도들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으며 서로 참아주고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신”대로 교회를 잘 섬겨야 한다(엡 4:7). 또한 교회 안에 가르치는 사람들을 잘 세워야 한다.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주님의 뜻이다(엡 4:12).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건강한 교회를 이루게 된다.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에베소서 4:13-14)   건강한 교회는 앎에서 하나가 된 교회요, 점점 자라 그리스도께 이르는 교회다. 그리고 속이는 자들이 “교리의 모든 바람(every wind of doctrine)”을 부채질해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다. 진짜를 아는 사람은 가짜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한국 교회에 신천지 같은 이단이 판을 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 안에 바른 교사와 바른 교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성장은 개인적 성장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장이다. 혼자서 열심히 책을 본다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몸은 함께 자란다. 신앙은 교회를 이룰 때 자란다. 교리를 알아가며 자란다.   6. 교리를 알아야 싸울 수 있다.   교리는 우리끼리만 알면 그만인 지식이 아니다. 참된 교리는 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어떤 때는 노골적인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슬그머니 기어 들어온 자들에 의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염되어 갈 수도 있다. 이런 공격은 한 교회가 아니라 한 시대의 교회들을 향할 수도 있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님의 신성이나 삼위일체 교리가 공격 당한 때가 있었다. 지난 100여 년간은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에 대한 공격이 특별히 치열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우리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 (유 3-4)   원래 유다는 “공통의 구원(the common salvation)”에 대해서 편지를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단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싸움을 독려하는 전투적인 편지를 쓰게 되었다. “단 한 번 전달된 믿음(the faith which was once delivered)”이 공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 속의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예비된 것은 캄캄한 어둠뿐이다(유 13). 참된 믿음은 참된 경건을 낳는 법이다.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려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공격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 6:17)   7. 교리를 알아야 전할 수 있다.   “너희가 선한 것을 따르는 자들이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너희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니 그들이 두렵게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베드로전서 3:13-14)   세상은 고난을 불행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행복이라 말한다. “의로 인하여 핍박 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마 5:10). 무서워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마 10:30-31)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베드로전서 3:14-15)   신자가 할 일은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반응하는 우리를 보면 사람들은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그들이 찾아와 우리가 가진 “소망의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에게는 구원, 예수님의 재림, 영생의 소망이 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한 대답을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어느 날 찾아올 영혼구령의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자. 준비된 사람은 좀 더 온유할 수 있다. 자신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은 교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일 수 있기에 애타는 사람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온유함과 두려움 가운데 교리를 알고 있어야 상대를 인도할 수 있다.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고린도전서 8:1)   교리 공부 좀 했다고 우쭐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교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교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지식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닦지 않은 것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이다(마 7:24-29; 약 1:22-25). 하나님은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아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경의 교리를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 성경을 통해 교리를 배우고 책망에 귀를 열고 방향을 바로잡으며 의의 가르침을 따르면 점점 더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약속이다. 교리 공부에 주어진 찬란한 축복이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2013-10-21 10:00:48 | 관리자
조용기는 복음과 교리 면에서 일말의 동정도 받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단 누명을 돈으로 벗은 사람입니다. 세계최대의 교회, 세계일보에 대항하는 언론 등등을 얻기 위해 교계가 억지로 밀어올린 눈덩이가 두고두고 내려와 마을을 덮치는 꼴입니다. 엉터리 은사주의를 유행시키고, 많은 이단 소지가 있는 목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종교다원주의 강의를 하고, 멀쩡히 목회자가 있는데도 본부 교회의 영상을 보며 예배하는 프랜차이즈 교회의 효시 격이며, 김태촌 등 가짜 회심자를 이용하고, 펄시 콜레 등 거짓말쟁이를 간증꾼으로 알리고, 토마스 주남 같은 거짓 증언자의 책을 번역 추천하고, 아들이 만드는, 음란물에 가까운 스포츠 투데이를 방관하고, 온갖 재산 축적과 사유화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의 종합 패키지 선물세트입니다. 단지 그가 용서받아온 것은 세계최대 교회라는 허울을 같이 공유하려는 종교인들의 무한한 너그러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법이 그를 심판할 때까지도 아무도 손을 못 쓰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뜻 이야기하기 전에 그는 세상에서도 범법자이며 기독교적으로는 큰 해악입니다.
2013-10-18 13:16:50 | 김재욱
지난 주에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부부가 찾아와 담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구원교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순복음교회는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행위구원'은 절대적인 진리 였습니다. 최근 신사도운동으로 인해서 많은 교회들이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추세이니 그건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황당한 것은 계속 이어서 설명하는 말이었는데, 그것은 구원 받는 것과 천국가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받는 것이지만, 행위가 충족되지 못하면 구원을 받았더라도 천국에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과 천국이 다릅니다. 이러한 교리는 이슬람 교리와 흡사하지만, 사실 이슬람 교리도 이정도로 모순적이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이니 그들의 교리대로 적용해보자면, 조용기 목사가 구원은 받았다고 치더라도, 천국에는 절대로 못간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천국도 못가는 목사를 하나님 다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 교리를 생산해내는 저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것으로 인해서 스스로 자처하게 된 노예속박. 지금의 교회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자 분별해야 할 점은, 말씀보다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나 교리를 더 중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분깨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잘 저버리는도다.
2013-10-17 00:50:51 | 김상진
배임행위 기사를 보니 교회의 재정을 위해서라기 보다 헌금으로 아들을 도와주려고 한 것 같네요. 동국대 특강 내용이나 썩은 열매들을 볼 때 과연 구원받은게 맞는가 할 정도입니다. 조용기 목사가 구원받았는지는 하나님과 마귀와 본인만 알겠지요 구원받았다면 잘못된 성경, 교리에 대한 무지, 경제성장시기, 교만이 어울어져 지금의 모습을 만든거겠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과연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2013-10-16 23:58:04 | 윤찬수
한국 교회가 다른 것도 아닌 돈과 건물 문제로 이처럼 몸살을 앓고 위상이 추락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결코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앞날을 위한 선의에서 출발하였거나, 다수를 섬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한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을 사들였다니 차후에 자산가치가 상승하여 교회재정에 이득이 된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판단하여 그러한 결정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중 삼중의 복을 넘치게 부어주실거란 확실한 믿음에 차 있었을테니까요. 또한 그를 가까이에서 섬기는 회중 역시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이며 탁월한 영적 지도자이므로 평소 그의 양심과 언행을 믿고 그러한 일들을 굳이 막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주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계속해서 교회는 부흥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뜻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고 우리만은 예외라는 생각은 커다란 교만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것이므로 처음부터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바른 성경이나 어려운 교리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건전한 상식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교회의 규모가 크던지 작던지 돈의 액수가 적던지 크던지 예외없이 교회의 재정을 운영함에 있어 항상 투명하게 원칙을 지키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무시하지 않았었더라면 이와 같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막상 직접 여러가지 문제들을 처리하다보면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시끄러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시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믿는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평생토록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과 순수한 복음을 위해 헌신했다고 자부하는 조용기 목사는 아마도 매우 억울한 심정일 것입니다. 사소한(?) 일로 자신을 비방하는 무리들의 작은 목소리 역시 귀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상처받은 여러 성도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 앞에 가며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절을 할까? 내가 번제 헌물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분 앞에 갈까? 주께서 수천의 숫양이나 수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가 내 범법으로 인하여 내 맏아들을, 내 혼의 죄로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오 사람아, 그분께서 무엇이 선한 것인지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6:6-8)
2013-10-16 23:09:06 | 유준호
NIV, NASB, 개역성경, 개역개정, 공동번역 등의 현대역본들은 다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소수 사본 계열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은 비평 본문(critical text)이라 불리며 여기에는 크게 네슬레-알란드(Nestle-Aland, NA) 판과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y, UBS) 판이 있습니다.   이름은 달라도 사실 이 둘은 같은 조상에서 나온 쌍둥이입니다.   네슬레-알란드 판(독일 식으로 네스틀레-알란트, 한국에서는 네슬 알란트 혹은 네슬 알랑으로 부름)은 1898년에 네슬레가 초판을 만든 이후로 최근에 28판이 나왔습니다.   http://www.nestle-aland.com/en/history/    http://www.amazon.com/Novum-Testamentum-Graece-Nestle-Aland-Greek/dp/1619700301/ref=sr_1_1?ie=UTF8&qid=1459411833&sr=8-1&keywords=nestle+aland+28    그러므로 4.25년마다 한 번씩 신약성경이 개정되어 온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보존을 믿지 않으므로 카톨릭 텍스트를 근간으로 영원히 성경을 개정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철학은 다음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NA 판이나 UBS 판이나 다 카톨릭 교황의 수하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음 사진은 NA 판의 알란드(Kurt Aland) 교수가 교황을 알현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USB 판의 편집자는 알란드, 마르티니, 멧츠거, 니다 등입니다. 이 중에 마르티니(Carlo M. Martini)는 천주교 추기경으로 밀라노의 주교였으며 교황 성경 연구소에서 신약성경 본문 비평을 가르치는 교수이고 1967년부터 연합성서공회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편집자 중 하나로 일했습니다.   http://prophets-see-all.tripod.com/46647.htm http://www.wayoflife.org/database/biblesocieties.html     교황을 알현하는 마르티니 추기경   이렇게 현대역본들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은 다 천주교 교황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요, 천주교회의 부패한 소수 본문을 최고로 여기고 그것만을 파급시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리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간단히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립니다.   샬롬
2013-10-16 16:55:07 | 관리자
한국 교회의 목사 숭배 사상이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돈 횡령과 부자 세습 등이 뻔뻔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은 사실 목사와 성도의 무지에서 나온 합작품입니다.   다음은 조용기 목사에 대한 기사입니다.   배도가 심한 이 세상에서 바르게 알아야 것을 알아야 하기에 올립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섬겼으나  배임·탈세 혐의 조용기 목사 2차 공판…전 총무국장 "주식 매매 조 목사 지시 따른 것"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327
2013-10-16 16:11:18 | 관리자
김경완 목사님 평안하셨는지요? 몇 년 전 가입인사 겸 올리신 글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친숙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위선과 허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사역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지만 독립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말씀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기회가 닿는 대로 알리시는 모습에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은 절로 고개가 숙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반성하게 하는 귀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2013-10-16 09:28:46 | 김대용
먼저, 답변을 달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성경을 연구하고, 고민하였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부분이 발견 될 것입니다. 너그러이 이해하시고 본인이 더욱 노력하고 연구해 보시면 더욱 유익이 있으실 것입니다. 질문을 요약해 보면 1) 고후10:8 과 딛2:15 말씀의 권위의 개념이 잘 이해가 안된다. 2) 목사에게 권위가 있는 것이냐? 3) 세상에서 말하는 권위와 성경에서 말하는 권위가 같은 말이냐? 먼저1)질문 답변입니다. 고후10:8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권위는 너희를 무너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세우라고 주신 것인즉 그것에 대하여 내가 조금 더 자랑해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니 1. 바울이 사도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논쟁이 초기 교회사에서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문제를 가장 크게 문제 삼는 부류의 사람들은 특별히 사도들은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는데 바울은 그 교회의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공격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언급했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합니다.) 그래서 본문 고후10:7 먼저 겉모습으로 사역자를 판단하려는 자들을 먼저 언급 하면서 본인이 받은 사도로서의 권위가 어떠한 것인지 8절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바울이 말하는 권위 (1) 권위의 출처는 주님이심(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갈1:1 (사람들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사람으로 말미암지도 아니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로부터 그분을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바울은 (2)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함(즉, 교회를 세우는 대에는 반드시 주님께서 주신 권위가 필요하다는 말.) 그러나 주의 할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하여(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함으로 성도들을 억누르고, 헌금을 횡령하고, 온갖 더러운 짓 등등을 하는 것) 행하는 권위는 결코 주님으로부터 나온 권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3) 자랑할 만한 참된 일 (고후7:13~16 참조) 모든 일에서 성도들을 신뢰하게 되고, 목양자의 어려움을 성도들이 위로하고 목양자는 성도의 영적 성숙을 자랑한 것이 진실로 들어나고, 성도들이 목양자(디도)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받아들이고(순종의 마음으로),목양자 또한 성도들을 향한 내적 애정을 더욱 넘치 되는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바로 주님께서 주신 권위로 인해 시작될 수 있기에 사도 바울은 참되게 자랑할 만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딛2:15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1)이것들을 말하고... 위에 본문말씀을 읽어보면 건전한 교회 성도의 태도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바울이 계속 얘기하고 있습니다. 현 세상을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 뜻대로 살며 주님 다시 오심을 소망삼고 선한 행위에 열심 내는 하나님의 특별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2) 말하라(Speak), 권면하라(Exhort), 꾸짖으라(Rebuke) 모든 권위(all authority)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고, 바르게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옳은 길로 가도록 권면하고 그래도 자기 고집 피우는 성도에게는 꾸짖고 책망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든 권위는 무엇일까요? 성도들에게 진리를 말하고, 권면하고, 꾸짖을 수 있는 권한이 사람에게 있을까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선물 받았으니 누가 누구를 책망할 권한은 없는 것일까요? ○○교회 처럼 목사(감독)는 비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일까요? 에베소서4장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모두가 한 주님 안에서 한 믿음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셔서... 복음 전도자, 목사 겸 교사를 주셨습니다. 이유는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3) 디도서에서 말하는 모든 권위란? 디도가 비록 사도는 아니지만(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권위를 받은 사도들과는 차이가 있지만/디도가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교적인 유대주의자들은 그를 할례받지 않은 헬라인이라고 조롱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성직자로서의 그의 권위를 확증해 주고 성직자로서의 그의 존엄성을 확립시킴으로써 그의 지위를 확고하게 해주어야 했다.)그러한 사도들과 동일한(공통된) 믿음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권위가 이어져 내려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교회(크레테 지역) 목양자로서 그 지역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고, 권면하고, 책망할 권위를 부여 받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딛1:4~5 공통된 믿음을 따라 나의 아들이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두었나니...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각 도시에서 장로(목사)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라... 1)답변을 잘 이해하셨다면 2~3)질문도 자동으로 해결 되시리라 믿어요. 나머지 이해 안되는 부분은 본인이 더 연구해 보시면 좋겠네요^^* 본 사이트의 취지도 일방적으로 뭔가를 알려주는 것 보다는 질문자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과 겸손함과 온유한 마음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10-15 23:32:28 | 오광일
김경완 목사님, 반갑습니다. 매우 공감 가는 글 감사드리고요~. 이토록 간단한 것인데 외면하는 것을 보면 틀린 성경 말씀이 사람의 영혼에 별로 치명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겠지요. 결국 말씀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임을 별로 믿지 않는 생각일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목사는 영혼의 의사이건만 의사되기는 그렇게 어려운데 목사 되기는 왜 이리도 쉬운가 한탄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쉽게 목사가 된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구원도 받기 전에 목회자가 되었다는 리처드 백스터의 탄식도 떠오르는군요. 멀리 평택에서 귀한 소식 전해주시니 정말로 반갑고 감사합니다. 말씀에 무감각한 영혼들을 깨우는 의사로, 또 바른 진리의 말씀을 먹이는 목회자로, 많은 역할 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샬롬~.
2013-10-15 22:18:28 | 김재욱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의 속담이 지난 토요일에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 이 글의 전체의 내용에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비꼬는 말도 아니며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경험담을 글로 올립니다.   토요일에 아는 목사님을 통해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맛 있게 식사를 하고 다른 목사님의 교회 서재에 가서 티 타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초대 했던 목사님께서 평소에 즐겨 드시던 중국 차, 일명 보이차를 드시는데 다른 목사님이 교회 성도님을 통해서 보이차를 구입하여 드시고 있다고 하여서 테스트를 해 볼테니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보이차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에 드시고 있던 보이차에 대해서 제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무응답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제가 추궁을 하였습니다. 대답하시기를 100%가짜 였다는 것입니다. 그 100%가짜인 보이차를 근처 교회 목사님이 아는 선교사님을 통해서 구입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 교회 성도님들한테 몸에 엄청 좋으니 많이 드시라고 선물까지 했었고, 지금 가지고 있는 보이차가 80만원 어치가량 남아 있어서 처리 하는 것도 골치아파서 모르는 척 하고 구입한 근처 교회 목사님께 처분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난감했습니다.   100%가짜인 보이차는 아는 전문가를 통해서 들었다면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발효를 시키기 위해 카바이트를 넣어 섞음으로 진짜처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우리 나라에 있는 보이차가 거의 가짜입니다.) 그럼 2~3년동안 그 보이차를 먹었는데 그 카바이트는 간에 엄청 안좋다고 하더군요. = 점심 초대했던 목사님의 이야기   그러던중 다른 목사님과 제가 대화를 했습니다.   다른 목사님 : 이를 어쩌나 교회 성도님이 사오셔서 지금까지 먹고있었는데 내 간이 망가졌겠네 남아 있는 이 보이차는 어떻게 하지? 걱정이되네 교인이 사준것인데   Me :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가짜인데 더이상 볼 필요 없잖아요   다른 목사님 : 그래도 성도가 사줬는데   Me :  가짜인데 더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간이 썩어 가고 있습니다. 더 몸이 망가져야 하겠습니까?   다른 목사님 : 아 아깝다. 버리기도 그렇네   Me :  (속으로 답답해서 서재를 둘러 보았습니다.) 아 목사님. 목사님도 카리스 주석이 있네요. 그런데 그 주석을 BHS사본으로 주석을 써서 문제가 있는데요.   다른 목사님 : (충고하며) 이것으로도 충분해. 교인들은 알려줘도 몰라. 그것으로 설교해도 충분하니간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제가 그동안 킹제임스흠정역성경에 대해서 여러번 말을 건내었던 터라 그 말이 듣기가 싫었나 봅니다. 주변분들에게 틈만나면 흠정역 성경을 일부러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더 듣기가 싫었나봐요)   Me : (속으로 혼자 생각하며) 보이차를 드시고 간이 썩어가고, 교인들한테도 보이차를 먹으라고 할 수가 없어서 있는 보이차도 처분하려고 하면서도 왜 보이차의 문제를 보면서 완전한 성경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을까?(더욱 답답했습니다.)   점심 초대 목사님 : (중국 보이차 진품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대익7572 라는 보이차의 기본이 되는 이 제품을 기준으로 해서 모든 보이차를 실험하는데 실험할때 이 대익7572와 비슷한 냄새가 나면 좋다고 합니다. (들으면서 흠정역이 기준인데....)     시간이 되어 교회로 돌아오면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분들의 눈을 열어주세요! 저분들도 완전한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오기를 소원합니다. 보이차를 보면서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가짜를 성도들에게 더 먹으라고 하지 못하고있습니다. 하나님 저분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더이상 헤매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눅 12:54~57 ¶ 또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즉시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는도다, 하나니 참으로 그러하고 너희가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더우리라, 하나니 그렇게 되느니라.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능히 하늘과 땅의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어찌 이때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참으로 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평택 김경완목사
2013-10-15 19:05:51 | 김경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10월 20일)에 김문수 목사님께서 부산의 제일성서침례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구하는 분들이 오셔서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확신을 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일정 :   10:45-12:20경 예배 (방주로 들어오라 창6:9-18) -1:00 식사 1:00-2:00 특강 (구원의 확신) 3:00-5:00 성경공부1 (부활)              성경공부2 (요한복음 3장)     장소 : 제일성서침례교회(부산시 금정구 장전3동 636-8)     찾아오시는 방법:   부산대 후문 밑 금정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일방통행로로 50m 정도 내려오면 우측에 위치   . 지하철 1호선 타고 온천장역이나 부산대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10분 거리 . 금정초등학교 하차하는 시내버스 이용 (77,80, 100-1, 121, 16, 16-1, 51, 100, 131, 144, 183, 1008, 130, 8)   문의)  011-866-1805(전경환 형제)       샬롬    
2013-10-14 12:27:40 | 전경환
반갑습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다니시는 교회는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만, 그곳 분들에게 바른 말씀을 지혜롭게 잘 전해주는 역할을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믿음의 결국이 구원이긴 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곤란하고요... 마귀들도 알고 믿긴 믿으니까요.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믿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권위에 순복해야겠지요. 또한 믿음에 '회개'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복음을 전하는 곳에 항상 함께 전해졌습니다.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행 20:2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떠나 완전함으로 나아가서 죽은 행위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에 관한 교리와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히 6:1~2)
2013-10-14 00:50:47 | 김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