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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4장 26절) 네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즙이나 <독주> 등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거기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네 집안이 먹고 기뻐할지니라.   전에는 술에 대해서 완전금주해야 하며 한 모금이라도 마셔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오래전에 신명기 14장 26절에서 독주를 먹어도 된다는 글을 보고는 조금 당혹스러웠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술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지만, 신명기 14장 26절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글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도 아닌 것 같아서 술을 주량만큼 마시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대한 적지 않은 글들을 봤을 때 위의 구절을 언급한 글은 본 적이 없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여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가 잘 모르고 있는 게 있다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6:04: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30 20:39:54 | 김양규
어느 분이 성경에 담배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있느냐고 물어 와서 간단히 답변하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담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6장 12절은 술, 담배, 마약, 식욕 등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뒷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I will not be brought under the power of any.   여기서 권능이라는 말은 파워 즉 힘을 뜻합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식욕, 심지어 성욕 등에는 사람을 미친 듯이 몰아가는 파워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런 파워 밑으로 끌려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적법하지만 그런 것들의 파워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담배나 술을 하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도 담배나 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우리가 그런 것들의 파워 밑으로 굴복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 끊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 글은 결코 술 담배 하는 분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고 권면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식욕 등에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식욕의 파워도 이겨야 합니다. 너무 몸이 비대해서 남 보기에 민망할 정도가 되고 건강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고 거기에 굴복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노력합시다.   샬롬. 
2011-12-10 11:23:21 | 관리자
성경의 단어나 구절은 항상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살전 5:1-8의 문맥이 평범한 진노가 아니라 주의 날의(혹은 환난기의) 진노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의 진노는 환난기의 진노입니다. 또한 9절의 구원 역시 그 진노에서 구원받는 것을 뜻합니다. save라는 단어는 from과 연결되어 어디에서 구원받는지를 보여 줍니다. 신약 성경에서 save는 대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from이 없으므로 문맥상 그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샬롬.
2011-12-10 11:10:0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KJV 흠정역을 읽는 학생입니다. 그동안 친척분으로부터 이 싸이트를 소개받고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KeepBible과 싸이트에 들어오시는 분들을 계속해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천년설을 믿습니다. 그래서 무천년설을 믿는 선배와 가끔 충돌합니다다. 최근에도 함께 성경을 보며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해답을 찾지 못해서, 부끄럽지만 잘 몰라서 이곳에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살전5:9)에 wrath 와 salvation이 나오는데, (1) 이 wrath는 대환란을 의미하는가요? 아니면 지옥형벌을 의미하는가요? (2) 이 salvation은 어떤 구원을 말하는가요? 영의 구원인가요? 몸의 구원인가요?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0절에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도 두가지로 해석되더군요. A. 육신적인 상태(죽은 성도 or 살아있는 성도),  B. 성도의 영적인 상태(성숙한 성도, 성숙하지 않은 성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 혼란스러워서 질문드립니다.    혹시 이전에 이미 다루어진 내용이면 어디를 찾아가야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2-10 11:32: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10 08:02:32 | 임현빈
출애굽기 34장 7절을 읽을 때에는 수고스럽지만 1절부터 읽으면서 그 말씀이 어떤 배경 하에서 나왔는지 먼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18장 역시 앞부분부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34:7과 제가 쓴 글의 내용이 충돌하는 듯하다고 하셨는데,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은 "출34:7과 겔18:4,20"이지, "출34:7과 제 글"이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않고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은 성경 말씀을 인용한 것이지 제가 독창적으로 지어낸 글이 아닙니다. 저는 두 말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기 34:7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자신의 거룩한 성품을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 자녀들에게 벌하셨습니다. 아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으로 그의 아들딸들과 가축들까지 죽었으며(수7:24-25),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범죄로 땅이 입을 벌려 그 아내와 아이들까지 산 채로 삼켰습니다(민16:27-33). 또한 아버지들의 불법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 당장 직접적으로 그 자손에게 임하지는 않더라도 아버지의 잘못된 본, 그릇된 결정으로 인한 영향력이 그 후손들에게까지 미친 사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34:7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배경이나 맥락을 무시한 채 무분별하게 우리에게 적용하여 조상이 큰 공덕을 쌓으면 후손이 복을 받고, 조상이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후손이 저주를 받는다라고 해석하여 복과 저주의 원인을 조상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 제가 쓴 글의 요지입니다. 제가 쓴 글은 출34:7 말씀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성도들에게 분별없이 적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가계저주론"이나 "조상의 공덕으로 그 자손이 복 받는다"라는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 교회 안에 가져와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구약시대의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와 정죄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출34:7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에스겔 대언자가 대언한 내용을 인용하며 설명한 것입니다. 에스겔 18:4 앞에 나오는 3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ye shall not have occasion any more to use this proverb in Israel". 하나님께서 앞으로 2절에 나오는 속담은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 말씀과 같이 각 사람은 조상 탓을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지 조상의 공덕이 아니며, 복을 받는 길은 각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린 것이지 조상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상이 불법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그 자손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그는 조상 탓에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담의 죄로 인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망이 임했으나, 아담의 후손 중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생명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므로 마땅히 그 삼 사대 자손들은 저주를 받아야 하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그 저주와 형벌로부터 벗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2011-12-07 06:52:46 | 김문수
김문수님 설명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변 주신 말씀 중 마지막 구절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겠지만 조금만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출34:7절에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에게 벌한다" 라고 하셨는데 '바르게 읽는 성경' p54 중에 "아버지가 불법을 행했다고 해서 그 죄값을 아들이 담당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과 충돌하는 듯해서 이해가 잘 안됩니다. 별로 중요치 않은 내용으로 성가시게 해드리나 싶어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2: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6 21:24:59 | 이한휘
에스겔 18장의 내용은 각 사람은 각기 자기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개인적인 죄(individual sin)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34장의 내용은 아버지의 죄로 인한 결과가 그 당사자에게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 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알콜중독이거나 심각한 질병을 앓을 경우, 그 영향력은 자손들에게도 미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에서 구속받았습니다(벧전1:18-19).
2011-12-06 02:01:44 | 김문수
안녕하세요..본 사이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궁금한 내용이 있어 도움 부탁드립니다.   바르게 읽는 성경을 읽는 중에 조상의 은덕 관련해서 이해가 잘 안되어서요. "아들이 아버지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불법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겔 18:4절) 라는 말씀과 "내가 아버지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출34:7절)라는 말씀이  서로 충돌하는 듯 한데 왜 그런지 이해가 안되어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2: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5 17:04:25 | 이한휘
흠정역 번역을 기준으로 삼으시면 되고,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또는 구원을 받으셨다면) 우리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과 계시의 영(=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이해할 지혜를 주시고 비밀을 깨달아 알게(계시)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여러가지 사역 중 일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이 있기를 기도한다는 말씁입니다.
2011-11-29 19:53:50 | 류인선
하나님 아버지께서 유다를 예수님께로 올 수 없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유다가 '마귀'이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6:70-71).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시는 기간동안 유다가 예수님께로 올 수 있는 기회들을 여러 번 주셨지만 그는 목매어 자살할지언정 예수님께로 '오지' 않았습니다.
2011-11-25 18:45:50 | 김형식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요6:64).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자기를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과거 일, 현재 일, 장래에 있을 일들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미리 아심이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은 그의 의지적 선택이었지 하나님이 장난감 인형 다루듯이 베드로의 마음을 원격 조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인격체이지 로봇이 아닙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것이니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 그냥 당해봐라." 라고 하셨을 겁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미래 일을 아는 것은 그것을 모두 결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예정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가 예정해 놓은 것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제한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지(미리 아심)를 예정(미리 정함)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아담의 범죄,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다윗의 간음, 만화책 읽다가 터진 아이의 웃음, 오늘 여러분이 걸으면서 밟은 발자국의 위치, 여러분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도, 이 글을 쓰는 동안 발생한 오탈자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결정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림으로써 그는 하나님을 모든 범죄의 근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유다가 주님을 부인한 것은 그의 선택이었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정해두거나 시킨 것이 아닙니다. 만약 유다의 범죄나 사람들의 범죄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예정하신 하나님이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하나님이 죄인들에 대해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칼빈주의 예정론은 마니교에서 나온 운명론적 세계관을 믿던 어거스틴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2011-11-25 08:33:59 | 김문수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니시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65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 하였노라.하시니라.   요한복음을 읽다가... 오병이어 사건후에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만 남게 될때 배반할 자가 있다고 말씀셨는데,   그 배반할 자는 가롯유다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65절의 말씀에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이 말씀이 가롯유다를   생각에 두고 하신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유다를 예수님을 팔자로 만든것, 예수님을 믿지 않게 한것이 아버지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인가요?   하나님 아버지가 유다에게는 예수님께로 올 수 없도록 만들은 것인가요?   질문이 이상하다면, 부드러운 충고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4: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25 07:46:24 | 나창주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축도할 때 목사님들이 늘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고후13:14).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개역성경에서는 끝부분을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성경도 가능하면 기존 틀을 유지하려고 4판까지는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ㄹ지어다;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ㄹ지어다‘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ㄹ’ 받침인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예스러운 표현으로) 해라할 자리에 쓰여,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의 뜻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 어미. 장엄한 어감을 띤다.    즉 'ㄹ지어다'는 명령형 종결 어미입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목사들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내리라고 명령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즉 "있을지어다"를 쓰면 마치 목사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은혜를 내려 줄 수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그러나 원어와 영어는 단순한 기원문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May God be with you! May God bless you! 이것을 짧게 하면 God bless you!입니다. 이런 구문은 기원문입니다. May의 용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후13:14도 앞에 기원문의 May가 생략된 것으로 보면 단순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지 명령해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들이 이런 것을 오용/남용해서 마치 자신들의 축복 기도를 통해 무언가가 될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 5판(400주년 기념판)에서는 이런 기원문을 모두 '하기를 원하노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것은 대개 바울의 서신서의 첫부분과 끝부분에서 발견됩니다(고후1:2 등 참조).   "있을지어다'로 안 하면 성경을 변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 변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편 비슷한 축복 문이라도 구약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부분에서는 "있을지어다"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복이 있을지어다(창14:19).   이런 경우는 높은 자 - 예수님의 예표인 멜기세덱 - 가 낮은 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이고 blessed be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기를 원하노라"를 쓰면 오히려 문장을 망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런 몇 부분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말이 복잡하여 어미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순 현상이니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1-11-21 11:30:03 | 관리자
가나안 족속들의 경계는 시돔에서부터 네가 그랄에 이를 때에 만나는 가자까지며 또 네가 가면서 만나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까지 곧 라사까지였더라(창10:19_.   And the border of the Canaanites was from Sidon, as thou comest to Gerar, unto Gaza; as thou goest, unto Sodom, and Gomorrah, and Admah, and Zeboim, even unto Lasha.   이런 구절에는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부분 전체를 빼거나 thou만을 빼서 매끄럽게 처리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으며 따라서 영어 성경은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thou(너)는 누구일까요? 여기의 thou는 창세기가 기록되었을 당시에 창세기를 읽는 히브리 독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말로 하면 '너도 알다시피 지금도 거기로 가면 그게 나오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말이나 영어나 심지어 히브리말에서도 이런 표현은 조금 어색합니다. 갑자기 너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기에 저희는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읽으시면서 이런 부분이 나오면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샬롬.  
2011-11-21 11:04:08 | 관리자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가운데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솔로몬은 여기서 우리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남자들 가운데서는 1000명 가운데서 하나 정도가 나올 정도로 그런 사람은 희박하다고 이야기하며 여자들 가운데서는 심지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여자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의 교육과 문화 등이 남자 중심이었으므로 남자들 가운데서도 찾기 어려운데 심지어 여자들 가운데서는 어떠하겠느냐는 뜻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1000명이라는 것은 솔로몬의 아내와 첩의 수입니다(왕상11:3). 즉 그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을 상대해 봤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로 지혜로운 여인은 찾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것은 26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는 29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사람이 잔머리를 써서 여러 가지 비뚤어진 것들을 만들어 내어 이렇게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알지만 좋은 것이라고 사람이 발명한 것들이 후에는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주석들은 제가 말씀드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꼭 100%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참조만 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6 16:47:21 | 관리자
고전 12:9 의 믿음은 구원받는데 필요한 믿음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gift)로서의 믿읍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 우리가 맺게 되는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기 위해서 주신(이것은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것임) 성령의 선물(gift)인 믿음과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믿음(엡4:5)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똑같은 믿음을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대상이 한 분이며(엡4:5), 우리가 믿는 내용이 같기 때문입니다.
2011-11-14 05:04:41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