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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자존심 낮추는 법과 자존감 높이는 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 글을 쓴지 일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높이는 법 자존심 낮추는 법. 이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안에서는 너무 쉽습니다. 이제 그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정 욕구의 방향을 잡아라.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인정 욕구입니다. 인간을 심각하게 좌절하도록 만드는 욕구는 다양하지만, 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가장 중요한 근간은 무엇보다도 '인정에 관한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욕구를 인정받지 못할 때 우울감이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인정 문제'와 '인정을 위한 싸움'은 심리적 인정이든, 정치적 인정이든, 제도적 인정이든, 경제적 인정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실존적 인정이든 간에 모든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바로 자신과 타인이 바라보는 관점에 방향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는 강해집니다. 또한 자존심이 낮은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는 약해집니다.   즉, 헤겔이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의 인정 욕구는, 개개인 자신의 자존심은 높이 세울지 모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사람은 육신안에 여전히 악한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가지고 있는 이 인정 욕구의 방향을 바로 잡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고 스스로를 세우려는 자존심은 낮아지게 될겁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사탄 루시퍼의 생각은 정반대로 다릅니다.    (사 14: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우리가 다 스스로를 세우려는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어쩔수 없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본성속에 있는 인정 욕구이기 때문에 포장이 되어서 보이지 않던,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던, 우리 몸에 피가 도는 한 이것은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방향을 바로 잡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정 욕구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중하고 고귀한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을 한번 보시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실 것입니다.    (시 119:10) "내가 온 마음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오 주의 명령들에서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시 42:2)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에 목이 타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보이리요?"   (시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그리하리이다."   왜 다윗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는지 위 구절들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다윗의 욕구가 너무나 간절하고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도 밧세바를 차지하기위해 우리야를 죽게 만들었던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크신 긍휼하심과 성령하나님의 부드러움으로 그를 높이셨고 크게 만드신 것은, 다윗이 가지고 있던 인정 욕구의 방향이 주(LORD)를 향해 똑바르고 올바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요 5:42) "다만 내가 너희를 알거니와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느니라."   (요 14:21) "내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들, 즉 성경 기록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을 마음판에 새기려고 온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따위는,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진 그 말씀들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spirit, 영에서 전달되어져 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져 육신은 저절로 말씀에 맞춰져 체질화 되어 갑니다. 그래서 인정 욕구의 방향을 바르게 잡는 것은, 귀중하고 고귀함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행해야 할 마땅한 본분(本分)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중심을 세운 성도가 좋은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상극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는 마음과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은 비슷한 것 같으나 많이 다릅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고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을 바로 알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세울 수 있는 것이며 자존심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가장 커지게 됩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나 또는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자꾸 길이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존감은 가장 낮아지게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또는 가장 존경하고 특별한 사람, 소중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모든 일이 형통함을 얻을 때 자존심은 가장 높아지게 됩니다. 이런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자존심과 자존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높이는 법과 자존심을 낮추는 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합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다시 태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통을 받으시며,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죽으셨지만, 죄가 없으신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며 우리 대신 죄값을 치루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우리의 자존심이 어디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달라집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신분 자체가 이미 영원한 하늘 왕국의 자녀로 옮겨져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자존심 따위로 하나님의 의를 가로막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따윈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먼지같은 저와 여러분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앞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추켜세우는 자존심을 부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고 웃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없애버리는 그 순간부터, 즉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배운 그 순간부터 자존감은 저절로 높아져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주님을 따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생각을 가졌다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되리라는 마음을 굳혔다면 그 기초가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며, 스스로를 내세우려하는지 모릅니다.   (롬 10:3)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도바울에게 율법아래 있던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위에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의 힘이나 생각,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 즉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됩니다. 억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는 사랑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편만하게 있어서 웬만한 교리적인 지식이나 성경 지식을, 마치 세상 지식을 습득하는 것 같이 교회를 어느정도 다니신 분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게 되면 이런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찾게되며 묵상하고 그분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친족이나 가족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할수록 자신의 자존심을 부인하는 것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고, 그분을 향한 인정욕구가 강해지면서 자존감은 신기하게 저절로 올라가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존심은 낮아지고 자존감은 올라갑니다. 이와같이 오직 한 목적,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기록된 말씀에 따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타난 행위는, 그 자체로 불의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자 곧 그는 참되며 그 속에는 불의가 없느니라." 결론.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와 다시 하나님께로 다 돌아갑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거짓되며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성도의 참 생명과 참 진리는 그분안에 영원으로 함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설때에야 비로소 완전해지지만, 이 땅에서도 우리가 조그맣게나마 하나님의 의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존심은 버리듯이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안에 항상 언제 어디서나 고난이 오든 시험이 닥치든 이 생각을 가지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생각, 그것은 기록된 성경 말씀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자존감은 바로 예수님의 생각을 담은 우리의 의(righteousness)의 지게표가 되시는 말씀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법과 자존심을 낮추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목사님의 강해설교를 같이 들으시며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2018-12-27 00:46:14 | 이명석
KEEP BIBLE - home page  새 단장 되었군요. 멋지고 깔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서 기쁨의 상급을 받는 용사들로 승리하십시오.  -샬롬 
2018-12-15 18:16:47 | 심재국
좋은 문서 자료들을 제공해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Middletown교회의 성경공부 자료를 안내해 주셔서 크게 도움 받고 있습니다. 1. 영어권 선교사로서 릭 존스의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책자의 원문을 구할 수 있는지 여쭙습니다.ebook으로 다운 받을 수 있는지요? 2. 이곳이 영어권이기는 하나 영어는 제2의 공용어 이기 때문에 영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성경을 살 수 있는 서점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지요. 수도 지역에서나 겨우 NIV 또는 Goodnews Bible을 살 수 있는 정도지만 현지인들의 생활 수준으로는 성경 한 권 구매하는 것이 적쟎은 헌신이 됩니다. 혹시 귀 교회에서는 저희의 작은 모임을 위해 20권 정도의 영어판 킹제임스 성경을 증정해 주실 의사가 있으신지요? 남태평양 피지에서유정옥 드림
2018-12-12 10:01:57 | 유정옥
안녕하세요? 목사님께서 성경 작업외에도 여러 일로 바쁘셔서 일단 답변을 드리지만, 부족하면 보충 설명 해 주실거라 생각합니다. 질문 : 은총을 호의로 범죄자를 범법자로 판이 바뀔 때 단어가 바뀌게 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 이미 킹제임스 흠정역은 은총이 호의로, 범죄자가 범법자로 바뀌어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절을 보시면, (잠 13:15) 선한 명철은 은총을 베푸나 범죄자들의 길은 험하니라.=> 선한 명철은 호의를 베푸나 범법자들의 길은 험하니라. 은총 => 호의는 "헨"이라는 히브리 원어를 사용하여 보존하셨고, 영문 kjv는 "favour"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흠정역은 처음 원어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여 호의로 번역을 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헨"이라는 원어의 의미는 주관적으로 "호의"를 말하고 있으며 객관적으로는 "은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명철(Goodunderstanding)"은, 각자 개인이 깨닫고 이해하는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인 것이 아니기때문에 호의라고 바르게 번역을 했다고 이해를 하고 있으며, 범죄자 => 범법자는, "바가드"라는 원어로 기본어근은 '덮다'이지만, '범죄자, 범법자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KJV 에서는 "transgressors" 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 뜻은 "위반자, 범칙자"로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영문NIV 같은 경우는 "unfaithful, 외도를 하는, 바람을 피우는", 또, 영문 NASB 같은 경우는 "treacherous, 기만적인, 신뢰할 수 없는" 등으로 번역을 해 놓아 원래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덮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거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안으로 들어오면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조금 더 설명드리면, 하나님앞에 모든 사람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아담이후로 육신을 입고 있든지 벗고 있든지 누구도 이 죄의 굴레에서 피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법으로는 가능합니다. 이 하나님의 법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법이지만, 오직 믿음으로 이 법 안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흠정역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원 뜻의 "바가드"를 바르게 기록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질문 : 국민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산토끼 무리를 국민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국민이라는 단어를 쓰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답변 : 할 수 없이 단어를 설명하자면 원어를 같이 말씀 드려야겠기에 부득이 사용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원어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알고자 할때 참고를 하고 있습니다. (잠 30:26) 약한 국민이지만 자기 집을 바위 속에 짓는 산토끼와 (잠 30:26) The conies are but a feeble folk, yet make they their houses in the rocks 위에 허광무 형제님이 말씀하셨듯이, 국민(folk)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암(עַ֣ם)"으로 "아맘(amam, 결합하다)"이라는 기본어근에서 나왔으며, 그 뜻은 일차적으로 '백성', '지파', '무리' 처럼 집합체를 말하고 있고, 상징적으로는 사람들, 민족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 30:25) 곧 강하지 않은 백성이지만 여름에 먹을 것을 예비하는 개미와 (잠 30:25) The ants are a people not strong, yet they prepare their meat in the summer; 25절의 '백성, people'도 같은 단어로 "암(עַ֣ם)"이 쓰였습니다. 잠언은 주전 1000~ 700년경에 솔로몬의 때에 쓰여진 지혜서입니다. 즉,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가르쳐서 훈계하기 위해 쓰여졌고, 우리에게는 주를 두려워 하는 것과 매일의 생활속에서 지혜를 주기 위해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맡기신 것은 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히브리인이라는 한정된 국민입니다. 민족, 혹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지만, 여기선 문자적으로 국민과 백성은 한정되어 일차적으로 개미와 산토끼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상징적으로는 이스라엘 유대 백성, 또는 지금의 성도.즉, 한 개인을 의인화 해서 말하는구나, 하고 이해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문맥의 의미는, 자기 집을 바위 속에 짓는 산토끼, 여름에 먹을 것을 예비하는 개미는 육신의 기회가 있을때 영원한 하늘 왕국을 바라보고, 상급을 쌓으며 나가는 성도들로 그려집니다. 이건 그냥 제가 이해하고 있는 문맥의 의미니 참고만 하셔도 됩니다. 부족한 답변을 드렸지만, 나중에 목사님께서 보시고 더 올바르게 보충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샬롬
2018-11-01 15:33:58 | 이명석
문장의 의인화 아닌가요? 의인화 :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에 비기어져 표현되다. 사람은 아니지만 동물이나 곤충들도 어떤 특정적인 면에서 사람과 비슷하거나 동등 이상의 행태를 보이는 것을 의인화한 문장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냥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2018-11-01 09:36:28 | 허광무
샬롬!흠정역 성경을 구입해서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잠언을 1장씩 읽는 습관이 있어서 흠정역 성경에 잠언을 주위깊게 읽고 있습니다. 일전에도 게시판에 단어가 변경된 것을 확인하고 질문들였는데....이전 판이라고 고치겠다는 답변을 올려 주셨는데....아직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권위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라... 지식이 부족하여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은총을 호의로 범죄자를 범법자로 판이 바뀔 때 단어가 바뀌게 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10월 30일 이라서 잠언 30장을 읽던 중에 26절에서 " 약한 국민이지만 자기 집을 바위 속에 짓는 산토끼와"The conies are but a feeble folk, yet make they their houses in the rocks;     국민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산토끼 무리를 국민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국민이라는 단어를 쓰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국민의 사전적의미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고요. folk라는 단어 역시 국민이라고 쓰이지는 않고 있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싶어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친절한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평안하세요  
2018-10-30 09:15:30 | 김지환
안녕하세요? 본문을 먼저 한번 보시면, (엡 3:7)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 "은혜의 선물에 따라"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 그 윗 구절을 보시면, (엡 3:3) 곧 계시로 그분께서 내게 그 신비를 알리셨나니 (그것은 내가 전에 몇 마디 적은 것과 같으니라. (엡 3:4) 그것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읽을 때에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바를 깨닫게 되리라.) (엡 3:5)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 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아니하셨는데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밑절에 보시면 그리스도의 신비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 3:6)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우리 귀에 들려진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을 때, 주님과 같은 몸에 속해 그분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 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인격으로 받아 들인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은혜의 선물에 따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선물이 무엇일까요? (눅 11:13)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하시니라. (행 2:38)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바로 성령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질문을 보면 에베소서 3장 7절에 나오는 권능을 "구원 받은 성도"라도 따로 받아야 하나요? 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권능을 또 따로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권능(power)은 그리스어로 "뒤나미스(δυνάμεως)" 라는 말로 그냥 '힘, 능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에베소서 3장 7절의 말씀을 간단하게 줄인다면, 성령님의 힘과 능력에 따라 힘을 얻어 사도바울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많은 성도나 목회자들이 성령님의 사역을 마치 제것인양, 자신이 한 일이고 능력인양 자기우월주의가 되어 있고, 보이지 않으나 여전히 일하시고 계시는 성령님을 자신의 밑으로 누르고 있습니다. 죄악속에 허덕이는 우리가 잠시 그분의 일에 쓰여지는 도구임을 망각하는 일은, 올바른 성도라면 깨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이 자기를 생각하지 말고 겸손히 그분을 섬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샬롬
2018-09-29 11:01:12 | 이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