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사람들은 하늘의 사방을 이야기할 때 항상 얼굴이 동쪽을 향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앞에’ 혹은 ‘앞으로’는 동쪽을 뜻했고 뒤는 서쪽을 뜻했으며 그러므로 오른쪽은 남쪽을, 왼쪽은 북쪽을 뜻했다. 또한 이 같은 일반적인 의미 말고도(수4:19; 시103:12)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북동부와 남동부의 큰 지역 즉 시리아와 아라비아, 바빌론, 아시리아, 아르메니아를 포함하는 큰 지역을 동쪽으로 표현했다(창29:1; 민23:7; 삿6:3; 7:12; 8:10). 어린 예수님을 찾아온 동쪽의 지혜자들은 바로 그런 지역에서 동쪽의 별을 보고 그분께 왔다(마2:1-2).
2009-06-07 01:01:23 | 관리자
남의 곤란이나 불행을 가엾게 여기고 그를 이해하여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
하나님은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성도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신다(시103:13). 주님은 지극히 동정심이 많고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며(약5:11) 그래서 목자 잃은 양 같은 무리를 보시고 여러 차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동정심을 베푸셨고(마9:36; 14:14: 15:32) 성도들이 어려움에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울 것을 명하신다(히10:34).
2009-06-07 01:00:53 | 관리자
히브리말에서는 들판과 달리 사람이 조금이라도 정성을 들여 식물이나 나무를 가꾸는 곳을 다 동산 혹은 정원이라고 했다. 이 같은 동산에는 과일나무나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와 향내 나는 꽃 등이 있었다(창2:8-10, 15; 왕상21:2; 전2:5-6). 이런 동산들은 가능한 한 강이나 샘 곁에 위치했으며(창13:10; 민24:6) 흐르는 물이 없는 데서는 저수지 근처에 있었다(잠21:1; 아4:12-16; 사58:11). 동산에는 담이 있거나 혹은 장미나 석류나무, 가시나무 등의 울타리가 있었고(삼하23:6-7; 욥1:10; 잠15:19; 호2:6) 전혀 담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사1:8; 렘4:16-17). 동산이나 작은 숲에는 장막 같은 것이 있어서 연회를 열거나(사51:3), 쉬거나(요18:1), 묵상할 수 있었고(마26:30; 요1:48; 18:1-2) 사람들은 동산에 가증한 우상들을 세우기도 했다(왕상14:23; 사1:29; 65:3; 66:17; 렘2:20; 3:6). 한편 동산에는 가족의 무덤을 두기도 하였다(요19:41).
2009-06-07 01:00:25 | 관리자
요르단 강 너머의 땅. 재판관이 되기 전에 입다는 길르앗에서 쫓겨나 여기로 가서 살았다(삿11:3, 5).
2009-06-07 01:00:00 | 관리자
돌을 쏘기 위해 보통 가죽과 끈으로 만든 간단한 기구.
이것은 목자들이 짐승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기구이며 중앙은 조금씩 폭이 넓어지면서 우묵하게 만들어졌다(삼상25:29).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끈의 양끝을 손에 쥐고서 머리 위에서 휘두르다가 한 손 끝을 놓아 돌을 날려 보냈다. 이것은 간단히 만들 수 있었으나 명중시키려면 많이 연습해야 했다. 구약시대에는 활 쏘는 자들 다음으로 돌팔매 기구를 쓰는 자들이 멀리 공격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은 군대에서 중요했다. 다윗은 이것으로 골리앗을 죽였다. 한때 베냐민 지파에는 700명의 왼손잡이 돌팔매 기구 무사들이 있었다(삿20:16).
2009-06-07 00:59:32 | 관리자
문짝을 문설주에 달고 여닫게 하려고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 맞춰 꽂게 된 쇠붙이로 만든 두 개의 물건.
2009-06-07 00:58:51 | 관리자
이 말은 행24:2에 한 번 나오며 감독하며 돌보는 것을 뜻하고 하나님에게 적용할 때는 섭리로 번역된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창조물을 규제하고 지탱하며 전 우주적이고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멈추지 않는다. 또한 섭리에는 그분의 모든 성품이 들어 있다. 그분은 까마귀에게도 음식을 주시며 모든 창조물의 소원을 만족시킨다. 성경은 온 자연계가 그분을 바라보며 의지함을 보여 주며(욥38:41; 시104:1-35; 145:15-16; 147:8-9) 모든 사건과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완전하게 규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온 우주에는 우연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비는 겹친 옷자락 속에서 사람이 뽑으나 그것의 모든 배분은 주께서 하시느니라”(잠16:33). 그러므로 참새 한 마리도 머리털 하나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사14:26-27; 마10:29-30; 행17:24-29).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보존하시고 규제하신다. 한 사람의 생애와 민족의 흥망성쇠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진보 등은 매 순간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의 손길을 드러낸다.
2009-06-07 00:58:25 | 관리자
매장지.
히브리 사람들은 시체를 조심스레 다루었고 바위에 돌무덤을 파서 묻었으며(사22:16)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은 대부분 돌무덤에 들어갔다. 우리 주님도 역시 돌무덤에 안치되었다. 보통 이런 무덤들은 절벽의 한쪽에 있었으며 유대 지방의 고대 유적들은 이를 잘 보여 준다(왕하23:16; 사22:16). 절벽에 판 돌무덤은 마치 사람의 열린 목구멍처럼 생겼다(롬3:13). 무덤이나 공동묘지는 다 도시 밖에 있었다(왕하23:6; 렘26:23; 눅7:12; 요11:30). 아겔다마 참조.
유다의 왕들은 예루살렘 안에 시온 산에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왕상2:10; 왕하14:20; 대하16:14; 28:27; 행2:29). 구약시대에는 가족 무덤이 흔하였고 잘 보존되었으며(창50:5-13; 삿8:32; 삼하2:32; 왕상13:22) 묘비도 사용되었다(창35:20; 왕하23:16-17). 압살롬은 돌무더기 아래 매장되었다(삼하18:17).
대언자들의 무덤을 보존하고 치장하는 것은 경건한 일이었지만 후에는 위선이 되었으므로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밖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안에는 썩은 것이 가득한 회칠한 돌무덤이라고 말씀하셨다(마23:27-29). 유대인들은 겨울비가 지난 뒤에 돌무덤을 희게 칠해 새 것처럼 단장하였다. 무덤과 그 안의 뼈를 숭배하는 유골 숭배는 그때나 지금이나 흔한 우상숭배였다. 우리 주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들만큼이나 죄가 많다고 말씀하셨다(눅11:47-48). 그들의 조상들은 대언자들을 죽였고 그들은 돌무덤을 만들어 위선의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대언자들 혹은 그들의 뼈를 숭배하던 무리들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대언자 모세가 오래 전에 오실 것을 대언한 ‘위대한 대언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킴으로써 자기 조상들보다 더 악하게 행하였다.
한편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무덤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신처요 거주지였다(사65:4; 눅8:27).
2009-06-07 00:57:49 | 관리자
I. 잇사갈의 맏아들 겸 그 가족의 우두머리(창46:13; 민26:23).
II. 잇사갈 지파에 속한 이스라엘의 재판관.
그는 에브라임 산의 사밀에 거하면서 아비멜렉 이후에 23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다(삿10:1-2).
2009-06-07 00:56:57 | 관리자
고대에는 쇠가 아니라 부싯돌로 칼을 만들었고(출4:25; 수5:2) 또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무더기를 쌓곤 하였다(창31:46; 수4:5-7; 7:26; 8:29; 삼하18:17). 모퉁잇돌 참조. 히브리 사람들은 율법을 거스르는 일을 한 사람을 돌로 쳐서 죽였다. 사람이 죽을죄를 지었으면 사람들이 처형할 곳으로 그를 데리고 나가서 그로 하여금 죄를 시인하게 한 뒤 그에게 돌을 던져서 죽이거나 혹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한 뒤 그 위에 돌을 쌓았다. 그런데 보통은 첫 번째 방법을 취하였으며(신17:5-7) 이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옷을 벗어야만 했다(행7:58). 마21:44; 눅4:29는 후자의 방법을 가리키는 듯하다.
2009-06-07 00:56:28 | 관리자
내 아버지는 6.25 때에 인민군으로 내려와 후퇴하다가 UN군에 사로잡혀 거제도로 가서 수용소 생활을 하고 반공 포로로 풀려났습니다. 북에 돌아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분은 온 가족을 포기하고 혈혈단신으로 남쪽에 남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사촌을 보지도 알지도 못한 채 지냈습니다. 그 아버지가 통일을 바라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늘 하시는 말씀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살아 봐야 그 체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체제 밑에서 산 적이 없으나 성경을 보면 그것은 명백한 마귀 시스템입니다. 몇 명의 공산당 지도자들을 위해 온 민중이 희생되는 사악한 체제입니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으면서 기독교는 가치관의 혼란 속에 사는 성도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는 일생 동안 정치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바빌론에게 항복하면 살고 이집트와 동맹하면 죽는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복음 메시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종교가 왜 정치에 개입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열심이 예레미야 안에서 일할 때에 그는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여 평생을 백성의 안위를 위해 외쳐댔습니다. 물론 그의 말은 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울면서 진심을 이야기해도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가 지금 나타나서 우리에게 바른 것을 전한다 해도 아마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거의 고통과 배고픔을 잃어버린 세대들의 이념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터질 때에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세계관이요. 가치관입니다.
6월, 전쟁의 때에 과거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를 알아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긍휼을 베풀되 특별히 내 아버지의 고향 북한 땅에서 독재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내 동포들에게 풍성히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은 과거를 볼 수 있는 글입니다.
사상과 이념을 떠나서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만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조국과 바른 체제를 사랑합니다.
백선엽 장군과의 대화
2009-06-06 13:15:59 | 관리자
고대에는 돈을 세지 않고 달았으며 또 처음에는 동전이 없었다. 고대에는 한 종류의 물품을 다른 종류의 물품과 바꾸는 형식으로 물건이 교환되었다. 즉 한 사람이 자기에게 넘치는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고 대신 그에게서 넘치는 것을 받았다. 그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치를 알고 있는 귀금속이 무역에서 사용되었으며 서로 동의한 가격만큼을 무게로 달아 주고받았다(창23:16; 43:21; 출30:24). 마지막으로 그들은 한 금속과 다른 금속을 섞어서 합금을 만들고 그것의 가격을 매겨서 사고파는 사람들이 무게를 달고 검사하는 일 같은 불편한 일을 제거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150여 년 전 시몬 마카비 때에 처음으로 동전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동전은 세겔과 반 세겔, 삼분의 일 세겔, 그리고 사분의 일 세겔짜리였다. 그들의 동전에는 아몬드나무 가지와 만나 항아리 형상이 있었고 다른 형상은 금지되었다(마22:16-22 참조). 신약시대에 유대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동전이 통용되었다. 우리 주님은 그 당시에 남의 돈을 맡아서 이득을 남기고 후에 돈 주인에게 이자와 함께 돈을 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사했다(마25:27). 또한 성전의 바깥뜰에는 외국인들에게 유대 돈을 바꾸어 주는 장사치들이 있어서 매해 내야 하는 반 세겔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헌물을 드리려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출30:15). 우리 주님은 이런 자들이 기도하는 집에서 세상 사업을 하며 또 부당하게 이득을 챙겼으므로 성전에서 그들을 쫓아내셨다(막11:15-17).
딤전6:10에서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하면서 돈 자체를 정죄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 즉 사람의 이기심과 탐욕을 정죄하였다. 바로 이런 성정으로 인하여 부자든 가난한 자든 죄를 짓는다. 왜냐하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한결같이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2009-06-06 03:25:55 | 관리자
호10:4; 암6:12에 나오는 이 말은 히브리말로 ‘로쉬’이며 이것은 다른 곳에서 ‘쓴 것’ 혹은 ‘쓸개’로 번역되었다(신32:32). 이것은 쑥과 함께 언급되며(신29:18; 렘9:15; 23:15; 애3:19) 보통 치명적인 독을 가진 야생 식물을 뜻한다.
2009-06-06 03:25:25 | 관리자
알코올 성분이 들어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음료.
제사장은 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 독주를 삼가야 했고(레10:9) 나사르 사람도 서원 기간에 그리해야 했다(민6:3). 통치자도 독주를 피해야 하며(잠31:4) 삼손의 어머니(삿13:4, 7), 한나(삼상1:15), 침례자 요한(눅1:15) 등도 전혀 독주를 마시지 않았다. 대언자 이사야는 아침부터 독주를 마시는 자를 정죄했다(사5:11).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대언자들은 이런 독주를 통해 실수를 범했으며(사28:7) 백성은 포도주와 독주를 권하는 거짓 대언자들을 환영했다(미2:11).
2009-06-06 03:24:57 | 관리자
신앙심이 깊고 열성이 있음.
2009-06-06 03:24:31 | 관리자
새들의 왕(욥39:27-30).
독수리도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가 있다. 새들 중에서 독수리는 가장 높이 날며(잠23:5; 렘49:16; 옵4) 또한 가장 빠르게 난다. 성경에는 이에 관한 말씀이 여럿 있다(삼하1:23; 욥9:26; 애4:19).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 임할 재앙에 대하여 대언자는 주님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데려와서 빨리 나는 독수리같이 그들을 치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신28:49). 그런데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느부갓네살 군대의 행진은 그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리니 그의 병거들은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렘4:13; 48:40; 49:22; 호8:1).
독수리는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른 새와 마찬가지로 초봄에 털을 바꾸어 다시 새롭게 젊은 모습을 띠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그분께서 좋은 것들로 네 입을 만족하게 하사 네 젊음을 독수리의 젊음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5; 참조 사40:31). 또한 독수리가 자기 새끼들이 날도록 힘을 들여 가르치고 보살피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비교되어 있다(출19:4; 신32:11-12). 독수리는 멀리 보는 눈을 가지고 있고 냄새를 잘 맡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육식성 조류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새였으며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 살을 먹지 않았다.
2009-06-06 03:24:09 | 관리자
유일하게 낳은 아들.
성도들도 요1:12와 롬8:14-15 말씀에 따라 양자 삼으시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만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특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독생자이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은 아버지가 ‘유일하게 낳은 아들’이므로 과거의 언젠가 아버지가 물리적으로 아들을 낳은 시점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삼위일체가 성립이 안 되며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창조물이 된다. 물론 성령님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므로 이런 혼동을 피하기 위해 ‘낳다’(beget)라는 단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서는 ‘beget’을 ‘낳다’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beget’은 ‘get’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I got the book.” 혹은 “I got the cold.”라는 말은 “내가 책상을 손에 넣었다”, “감기 들렸다”를 뜻한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손에 넣게 되면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get’의 원래 의미는 ‘소유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마1:2) 등에서 ‘낳고’를 모두 ‘beget’으로 표현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실제로 이삭을 낳지 않았다. 단지 이삭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미묘한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없으므로 ‘beget’을 어쩔 수 없이 ‘낳다’로 번역한 것이다. 다시 말해 ‘beget’은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get’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낳다’(beget)는 결코 사람이 사람을 낳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되며 더더욱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을 물리적으로 낳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삼위일체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낼 때 beget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또 사람이 다시 태어날 때 하나님과 다시 태어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날 때도 쓰인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 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리켜 ‘아버지의 독생자’ 즉 ‘유일하게 낳은 아들’이라고 할 때 이것은 곧 아버지와 유일하게 특별한 관계를 맺는 분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시2:7 말씀 즉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I have begotten thee).” 역시 아버지께서 어느 날 예수님을 물리적으로 낳았음을 말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행13:32-37에서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설명하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킨 사건을 가리킨다. 즉 아버지께서 그분을 부활시킴으로써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롬1:3-4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신성으로는 아들 하나님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였으며 인성으로는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성령님에 의해 수태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분이시다.
2009-06-06 03:22:20 | 관리자
여러 종류의 독을 가진 뱀.
창49:17의 독사는 모래 빛을 하고 모랫길에 숨어 있는 독사를 뜻한다. 한편 Asp라 표현된 독사는 손을 쓸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독이 퍼지는 맹독성의 작은 독사를 가리킨다(신32:33; 욥20:14, 16; 시58:4; 91:13; 사11:8; 렘8:17; 롬3:13). 뱀 참조.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사는 악과 파괴의 상징이다(욥20:16; 사30:6). 그리스도와 침례자 요한은 유대인들의 사악한 종교 지도자들을 독사라고 불렀다(마3:7; 12:34; 23:33; 눅3:7). 한편 바울은 독사에게 물렸으나 해를 입지 않았고 이로 인해 멜리데 섬의 주민들은 그가 사람의 몸을 입은 신이라고 믿었다(행28:3).
2009-06-06 03:21:40 | 관리자
생물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주는 물질.
성경은 뱀(신32:24, 33)과 독사(시140:3; 롬3:13)의 독을 말한다. 바울이 멜리데 섬에 도착했을 때 독사가 그를 물었으나 그는 죽지 않고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행28:1-6). 한편 독초(호10:4), 쑥(신29:18) 등도 독을 가지고 있다. 기근이 있던 때에 대언자 엘리사는 길갈에서 야생 박으로 인해 독이 생긴 음식을 정화시켰다(왕하4:38-41).
2009-06-06 03:21:13 | 관리자
살인할 의도가 없이 사람을 죽인 사람이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도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여섯 개의 도피 도시를 마련해서 그렇게 한 사람이 거기로 피신해 자기를 보호하며 재판관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였고 이로써 죽은 사람의 친족이 그를 쫓아와서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출21:13; 민35:11-34). 이런 도시들은 요르단 강의 이쪽과 저쪽에 각각 세 개씩 있었는데 서쪽에는 납달리의 가데스와 세겜과 헤브론, 동쪽에는 골란과 라못길르앗과 베셀 등이 이런 도시였다(수20:7-8).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지도 참조(19). 이 도시들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그 땅에 살던 타국인들을 위한 곳이었다(신19:1-10).
피를 복수하는 관습은 동방의 유목민들에게는 초기부터 도입된 제도였다. 이 같은 관례는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혹은 그들이 이집트에 들어가 머물기 전에 이미 확정된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모세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이것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다만 도피 도시들을 지정하여 그대로 유지하였다. 도피 도시로 피신한 무고한 사람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거기 머물다가 그 뒤 안전하게 자기 집에 가서 거할 수 있었다.
한편 고대 민족들 사이에는 신전 혹은 그 안의 제단을 도피처로 생각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히브리 사람들에게도 이런 관습이 있어서 죄를 지은 사람이 주님의 제단으로 도망하여 그것의 뿔들을 잡고 죽음을 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죄 있는 사람을 용서해 주지 못했다(출21:14; 왕상2:28-34). 한편 죄인들에게는 둘째 사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것 즉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도피 도시와 속죄하는 피로 뿌려진 유일한 제단이 있다. 그러므로 피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피가 있는 제단으로 피신하여 둘째 사망을 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2009-06-06 03:20:4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