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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처녀 탄생(The Virgin Birth)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 오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났더니 그때에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기를 원치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으나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마1:18-20).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代言者)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마1:22-23). 이렇게 분명한 기록을 보고도 어떤 이가 성경이 처녀 탄생을 가르치고 있음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성경 기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이 처녀 탄생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처녀였던 유대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었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이는 어떤 육적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생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경이 이 점을 너무도 분명히 가르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말씀을 주의 깊이 그리고 신중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결코 이 문제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Jesus Sinless) 그 외에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죄 없는 인간이셨음을 가르친다. 아담으로부터 오늘날까지 태어난 모든 인류는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따라서 저주와 영원한 죽음에 무릎 꿇어야만 하지만 참 사람 예수님(The Man Jesus)께서는 죄가 없으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그 자신 위에 돌리시고 그들의 죽음을 대신하시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는 분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족속을 한 피에서 만드셨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께서 죄성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부터 육신을 받았다 해도 죄성을 띤 피가 그분의 몸에 있지 않는 한 그분께서는 여전히 죄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죄성을 띤 인간의 피를 갖지 않은 채 육신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준비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다. 피의 기원( Origin of the Blood)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동맥과 정맥에 흐르는 피는 산모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태아의 몸에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피의 형성은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서 태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후에 이루어진다. 이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예로서 달걀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정되지 않은 달걀은 인간의 난자를 크게 만들어 놓은 것과 똑같다. 당신이 수정되지 않은 달걀을 부화시키려 한다면 곧 실패할 것이다. 부화시키기 위해 그것을 따뜻한 곳에 두면 그것은 완전히 말라붙어 결코 병아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달걀을 수컷의 정자로 수정시켜 보자. 그 후에 따뜻한 곳에서 부화시키면 태아 속에 있는 생명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몇 시간 후에는 그 생명이 눈에 띄게 성장한다. 또 조금 후에는 ‘피’가 있음을 보여 주는 빨간 줄무늬가 생긴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모세가 성경에서 말한 대로 생명이 피에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에 육체의 피는 그 생명을 위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종류의 육체의 피도 먹지 말라.”(레 17:14) 산모의 피는 태아의 피와 상관없음(Mother's Blood Separate) 산모의 자궁에서 자라나고 있는 태아는 산모로부터 단 한 방울의 피도 받을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도 분명히 그렇다고 말한다. 산모는 자기의 자궁 내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는 태아가 몸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지만 태아에게 있는 모든 피는 태아 자신에게서 생성된 것이다. 수태될 때부터 태아의 출생 때까지 단 한 방울의 피도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후산물로 더 잘 알려진 임시의 조직 덩어리인 태반은 산모와 태아 사이를 서로 연결해 준다. 그것은 모든 수용성의 영양분들 - 단백질, 지방분, 탄수화물, 염류, 무기질, 항체조차도 - 이 산모에게서 태아로 자유롭게 전달되고 태아의 신진 대사 작용으로 생긴 노폐물이 산모의 혈액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정상적인 경우에 실제로 단 한 방울의 피도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태아가 가진 모든 피는 태아 자체에서 생성된 것이다. 산모는 그 피에 전혀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과학의 증거(Testimony of Science) 위의 설명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하여 나는 몇 가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려 한다. 호웰(Howell)의 『생리학 교과서』 제2판 885 페이지와 886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태반의 전반적인 기능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반이 본래 산모의 탈락막에 있는 큰 혈액의 공간에 잠겨 있는 태아의 혈관성 융모돌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태아의 피와 산모의 피는 실제로 접촉되지 않는다. 그들은 태아의 혈관벽과 융모돌기의 상피 세포층에 의하여 서로 분리되어 있다.” 윌리암스(Williams)의『산과학의 실제』제3판, 133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융모돌기의 혈관 안에 있는 태아의 피는 융모상피의 이중으로 된 세포층에 의하여 산모의 피와 분리됨으로써 융모 사이의 공간에 있는 산모의 피와 한 번도 접촉할 수 없다.” 다시 같은 책의 136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태아의 피와 산모의 피가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간호사들에게 잘 알려진 책에서 인용하여 보겠다. 즉 간호사 자브리스키(Louise Zabriskie)가 지은 『간호사를 위한 산과학』제5판, 75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아의 혈액 순환이 시작되면 그것은 산모의 혈액 순환과는 분리되며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된다. 산모와 태아 사이에 서로 교환되는 모든 영양분과 노폐물은 혈관 벽을 통하여 모체의 혈액 순환에서 태아의 혈액 순환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위의 책의 82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아는 태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산모의 피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태아의 심장은 탯줄의 동맥을 통하여 태반의 혈관으로 피를 내 보낸다. 이 태반의 혈관은 자궁 조직의 안과 밖을 감싸고 있고 자궁의 혈관과 매우 밀접하게 놓여 있어서 그 혈관 벽을 통하여 태아로부터 산모에게로는 노폐물이, 산모로부터 태아에게로는 영양분과 산소가 확산되도록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이런 상호 교환 작용은 삼투 현상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혈액간의 직접적인 혼합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산모의 피는 태아에게로 흘러들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아의 피도 산모에게로 흘러들어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준비(God's Wonderful Provision)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처녀 탄생을 위해 얼마나 놀랍게 준비하셨던가!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피가 여자로부터 여자의 후손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하셨다. 아담의 자손이면서도 죄 없는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나왔지만 피는 다른 근원에서 나오는 방법을 준비하셨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여자에게서 태어났는데 죄가 없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특히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마리아가 죄 없는 처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셨다는 질문의 해답이 아니다. 마리아도 그녀의 아버지가 죄인이므로 분명히 죄를 입고 태어난 죄인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기는 하셨지만 아담의 피는 공유하지 않았음을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말한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자녀 즉 인간의 자녀들은 육과 피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며, 예수님 자신도 그와 비슷하게 우리와 같은 것의 일부 즉 몸을 취하셨음을 주목하라. 그러나 그리스도께 적용된 ‘took part’라는 말은 자녀들에게 적용된 ‘partakers’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took part’로 번역된 말은 자기 자신의 본성을 벗어나서 어떤 일에 참여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Partakers’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코이노네호’(koynoneho)이며 이 단어는 ‘완전히 함께 공유하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은 아담의 혈육을 모두 완전하게 공유한다. “예수님께서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다”는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메테코’(metecho)인데 이 단어는 ‘전부가 아닌 일부분만 참여하다’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자녀들은 아담의 혈육을 모두 가졌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한 부분, 즉 육신만을 공유할 뿐이다. 그분의 피는 초자연적인 수태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완전하신 인간이셨다. 육신적으로는 그분께서 다윗의 씨였지만 그분의 피는 거룩하게 만들어졌다. 인간이 창조될 때 아담의 육신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 넣으셨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그 일 후에 아담의 몸에서 피가 생겨났다. 그러나 첫 아담의 피는 죄로 인해 부패되었고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셨으므로 모든 인류에게는 죄가 있다. 마지막 아담 속에서 새롭고 거룩하며 죄 없는 피가 생성되었고 결국 거룩한 피가 나왔다. 하나님의 피(Divine Blood) 처녀 탄생이 성취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님에 의한 수태뿐이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영양분을 주었고 그래서 그분께서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은 죄 없는 피요, 거룩한 피며 고귀한 피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피는 지금까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무죄한 피(Innocent Blood)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지었도다.” 가룟 유다는 마태복음 27장 4절에서 이처럼 고백했다. 진실로 우리 주님께서는 무죄하셨다. 주님께서는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분께서 인간인 아버지에 의해서 수태되지 않고 ‘거룩하신 아버지’에 의해 수태되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 결과 생물학적으로 주님께서는 거룩한 피, 즉 죄 없는 피를 갖고 계셨다. 또 그 피에는 죄가 없으므로 그 피는 결코 썩을 수가 없다. 썩지 않는 피(Incorruptible Blood)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피는 썩게 되었다. 사람은 죽자마자 곧 썩기 시작하며 부패는 먼저 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고기에서 피를 모두 짜내는 이유이다. 또 그것이 부식 방지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방부제 약을 피 속에 넣는 이유이다. 다윗은 “예수님의 몸이 썩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했다. 비록 주님께서 사흘 밤낮 동안 죽은 상태로 있었지만 그분의 몸은 썩지 않았다. 주님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분을 영원히 죽도록 할 수가 없었고 그분께서는 다시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버리셨다. 사망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권세를 휘둘렀지만 주님께 대해서는 그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자신의 권능으로 부활하셨다. 모든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셨을 때 - 사망은 자기의 먹이를 붙들 수 없었네 예수님, 나의 구원자여 주님께서 지옥의 장벽을 부수셨네 예수님, 나의 주여; 무덤에서 솟아올라 부활하사 권능으로 원수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셨도다. 죄인이여, 당신은 이처럼 능력 있는 구원자를 영접하여 그분의 고귀하신 피로써 씻겨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도 죽음이라는 저주와 무서운 선고 아래 있다. 오늘 그분을 영접하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롬5:8-9). 피의 거룩함(The Sanctity of Blood) “그러나 너희는 고기를 그것의 생명과 함께 곧 그거의 피와 함께 먹지 말지니라”(창9:4). 이 말씀은 노아의 대홍수라는 무서운 심판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의 일부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 사람들의 악이 점점 증가되어 최고 절정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완전히 부패되어 멸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큰 홍수를 보내어 단 한 가정만 남겨 두고 모든 사람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때 유일하게 남게 된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당시의 세대들 가운데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홍수 이후 깨끗하고 청결하게 된 이 땅 위에서 주님께서는 이 새로운 가정을 통해 인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심판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들이 취해야 할 행동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지시를 내리셨다. 그 명령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아가 새로운 땅 위에 맨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셨던 말씀이 바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명령은 대 홍수가 일어나게 된 부분적인 요인이 인간들이 ‘피의 신성함’을 무시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홍수 전에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범해진 최초의 죄는 가인이 아벨의 무죄한 피를 흘린 것이다. 그 피는 땅에서 복수를 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 무죄한 피의 호소에 대한 부르짖음이 노아의 홍수를 초래케 했다면 하물며 말세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는 의인들의 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는가? 오늘날 팽배하고 있는 악과 폭력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사실이 조금도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눅17:26). 그렇다. 이렇게 악이 만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지상에서 횡행하고 있는 무서운 통치에 끝을 내고 말 것이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 예표로 보여진 대환난의 심판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다시 새롭게 되고 정결하게 된 이 땅 위에 평화의 왕국 즉 천년 왕국을 문자 그대로 이룩하실 것이다. 피는 신성하다(Blood Is Sacred) 하나님의 피조물의 생명이 육체에 있지 않고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먹되 오직 피 없이 먹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음식과 규정과 규례들을 줄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장 4절의 금지 사항을 다시 반복해서 명령하고 계신다. “또한 너희는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 날짐승의  피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지니라. 어떤 혼이든지 무슨 피라도 먹으면  그 혼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레7:26-27). 그와 동일한 명령이 레위기 17장에서 보다 더 많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피든지 먹는 것은 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죄는 너무도 심각해서 그 죄를 범한 자는 자기의 백성들에게서 끊어짐을 당할 것(즉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피를 철저하게 빼지 않은 고기는 음식으로 적당하지 않으며 목매어 죽인 것도 무엇이든지 먹기에 적당치 않다. 오늘날 적어도 정통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금지 사항을 기억하고 오직 코셔(kosher) 고기만 먹는다. 그것은 율법에 있는 대로 죽여서 피를 완전히 빼낸 고기를 뜻한다. 따라서 모든 코셔 고기나 다른 코셔 음식들은 피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다(We Are Under Grace) 이제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며 그 명령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반대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 있지 않았던 노아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노아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사실은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은혜의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법칙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도 “피를 먹지 말라” 하는 명령은 유효하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첫 번째 공회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안디옥 교회 내에서는 상당히 골치를 앓게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초대 교회의 유대인들이 그곳에 와서 이방인 신자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보다 심각한 쟁점으로 일어나게 되자, 급기야는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소집되었고 거기에서 이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안디옥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내려 왔다. 그리고 많은 논쟁과 토의를 벌인 끝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달문을 가지고 이들은 다시 안디옥의 이방인 교회로 돌아갔다. “우리가 들은즉 우리에게서 나간 어떤 자들이 말로 너희를 혼란에 빠뜨리고 너희 혼을 뒤엎으며 이르되, 너희가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 하나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명령을 준 적이 없으므로”(행15:24). 여기서 사도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사도들은 교회가 율법 아래 있다거나 이방인 신자들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 이후 19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가 아직도 우리들을 유대인들로 만들려는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율법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 사도들이 한 말을 더 읽어 보자. “성령님과 우리는 이 필요한 것들 외에 다른 큰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을 좋게 여겼나니 곧 우상들에게 바친 음식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너희가 멀리할지니라. 너희가 이것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하리로다. 평안할지어다, 하였더라.”(행15:28-29). 비록 우리 크리스천들이 율법 아래 있지는 않으나 아직까지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제를 받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율법 아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육체의 생명인 피가 신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있기 1000년 전에 즉 은혜 시대에 벌써 노아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 원리는 율법 시대에도 효과를 발생했고 율법의 시대가 지난 지금의 은혜 시대에도 계속해서 준행되고 있다. 지금은 왜 피를 금하는가?(Why No Blood Now?)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로 임의적인 것이 아니며 언제나 시대를 초월해서 정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이다.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우리는 건강과 위생상의 이유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외에도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생명이 피에 있으며 생명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며 그분의 숨을 불어 넣으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모세는 창세기에서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2:7). 이제부터 성경이 주장하는 논리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없으면 모든 육체는 생명이 없다. 처음에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이 존재했다. 그 아담은 한낱 흙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코에다 숨결을 불어 넣으시자 그는 살아 있는 인간이 되었다.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 몸에다 부여해 주신 것은 다름 아닌 피이다. 아담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피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피와 함께 그 육체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고귀한 피(The Precious Blood) 두 번째로 중요한 이유를 하나 더 제시해 보겠다. 피는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대가였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무엇인가 좋지 않은 것이 피 안에 생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피는 절대로 부패하지 않고 죽음이 없는 피로 존재하지 못했고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게 되었으며 결국 아담은 죽음에 의해 굴복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죽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이 다시 그 속에 심겨져야만 했다. 즉 사망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명이 바로 피 안에 있다. 그래서 반드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 없고 절대로 부패하지 않은 피’가 흘려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 계열의 인종 가운데서는 아무도 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첫 아담 안에서 그의 모든 후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천사들도 그 피를 공급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순전히 영적 존재들이어서 육체도 없고 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피를 공급해 주실 유일한 한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바로 처녀에게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 오셨으나 전혀 죄가 없는 초자연적인 피를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그분은 바로 성령님으로 잉태된 분이신 것이다. 윗부분에서 우리는 태아의 몸속의 피는 어머니의 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스스로 그 안에서 형성되며 어머니의 난자로부터 그 작은 태아의 몸이 시작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몸은 마리아에게서 왔고 그분의 피는 성령님으로부터 왔다. 이처럼 죄 없고 초자연적인 피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속을 위해 용인하실 수 있는 대가가 될 수 있었다. 죽음은 오직 생명에 의해서만 사라질 수 있으며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수혈이 필요하다. 수혈(Blood Transfusions) 오늘날 우리는 수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수혈에 의해 목숨을 구해 왔다. 수혈이란 출혈이나 갖가지 피와 관련된 질환의 경우에,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얻은 피를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에게 넣어 줌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모든 수혈 중에 가장 위대한 수혈은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순간 그분의 피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질 때 행해진다. 여기에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은 바로 대속의 피를 그 사람이 믿는 것이다. 혈액 은행(Blood Bank)  요즈음 우리는 혈액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혈액 은행은 부상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미래에 사용될 목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취해진 피를 저장하는 창고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채취한 피에는 어떤 보존제들이 첨가되어지고 그렇게 처리된 피는 무균 용기 안에서 미래에 사용되기 위해 보존될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보존제는 피의 모든 기능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므로 그 피는 어느 때든지 사용될 수 있다. 종종 우리는 이러한 피를 기증하기 위하여 병원이나 보건소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거기에서 피가 채취되고 처리된 뒤 저장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응급 환자의 경우에도 수혈에 필요한 피가 항상 충분히 있게 된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발견들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오늘 당신은 한 달 후에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낯선 이의 생명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당신의 피를 기증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혈액 은행(God's Blood Bank)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20세기 전에 행하신 그 일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못한다. 그때에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는 자신의 죄 없는 피 전부를 남김없이 쏟아 주신 분이 계셨다. 바로 그곳에서 혈액 은행이 개설되었고, 주 예수님의 피가 그 은행을 채웠다. 그 피는 A형이든 B형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고 유효하며 성령님에 의한 그 피의 수혈을 받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거저 주어진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그것을 얻기 위한 신청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피를 보존하기 위해 혈액 은행에 있는 피에다 반드시 보존제들을 첨가하여야만 하고 그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피는 결국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질된다. 그러나 그분의 피에는 어떤 보존제도 첨가되어질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 피가 썩을 수 없으며 죄 없는 피이기 때문이다. 그 피 중 단 한 방울도 손실되었거나 소모된 적이 없다. 그 피는 썩을 수 없는 피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 피로 인해 우리 주님께 찬양을 드리자!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이 피가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신선하며 앞으로도 항상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피는 결코 소멸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가사의 찬송가가 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피가 쏟아졌고 그것은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사는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것은 어떤 사고로 인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사고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 놓으셨고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자신의 귀중한 피를 흘려 주셨다. 오 죄인이여, 당신은 바로 지금 그 귀중한 피를 차지하지 않겠는가! 죄의 능력과 정죄됨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 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늘 그 피를 받아 곧 구원을 받으라. 자기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성도들이여, 다음을 기억하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바로 지금 그분을 신뢰하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피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009-05-08 13:22:28 | 관리자
3. 오직 피만이(Only The Blood)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니나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4-26).   이 구절 가운데는 우리가 특히 관심을 기울일 말씀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를 서로 서로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피다. 인류는 한 피에서 나왔고 그 피는 첫 인간이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피였다. 성경은 생명이 피에 있고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죄는 아담의 피에 영향을 끼쳐서 궁극적으로 그에게 죽음을 가져왔다고 기록한다. 모든 인류의 피가 아담의 피를 공유하기 때문에 오직 죄가 없는 피만이 그것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피는 바로 영혼의 속죄를 이루는 피이다.   첫 아담의 죄가 전 인류의 피를 부패시켰으므로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죄가 없는 피만이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들의 사면이 없다. 영혼의 속죄를 이루는 것이 바로 피이다.” 비록 이브가 아담보다 먼저 죄를 지었지만 이브의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 인류는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한 것은 바로 ‘아담의 죄’이다.   성경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을 여자의 씨(The Seed of the Woman, 창3:15)라 부르는데 이는 그분만이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그분의 피’에는 아담의 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역자 주:마태복음 1장을 펴고 2절부터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성경은 모두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에는 ‘beget’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것’(was born)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그분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직 예수님만이 여인에게서 나온 사람이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도서출판 예향의 『말씀의 비밀을 찾아서』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비록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어 여자에게서 태어나셨으므로 당신이나 나 같은 죄인이 아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단 한 가지 해결책은 ‘죄 없는 피’뿐이며 오직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에게 그 피를 줄 수 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우리는 이 속죄하는 피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된다. 그 예로, 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피 흘리는 희생 제사를 통해 죽임 당한 양과 염소의 피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어린양께서 오시기 훨씬 전에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에서 여러 가지 예표들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다. 피가 없이는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피가 드려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법은 죄인에 대해 공의와 죽음을 요구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의 두 돌판을 주셨을 때 - 긍휼이 아니고 공의를 요구하는 율법, ‘그것을 범한 혼은 죽으리라’고 말한 율법 - 그 율법은 ‘완전함’ 이 아니면 죽음을 요구했다.   그분께서는 또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의 형태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모두 피 위에 지어진 것이며 그 안에서의 모든 의식 역시 피 속에서 거행되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여 반드시 죽을 것을 아셨으므로 은혜 가운데 율법에 의해 정죄된 범죄자가 안식을 주는 피를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성막과 희생단과 피를 주셨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양(God's Perfect Lamb) 송아지와 염소와 양의 피는 죄인을 완전하게 속죄할 수 없으며 그것은 단지 자신을 직접 희생하심으로써 구약 시대의 끝에 죄를 없애려고 오신 그분을 가리킬 뿐이다.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셨고, 마지막에 그분께서는 자기의 고귀하고 영원한 피를 온 세상을 위해 ‘단 한 번’ 영원히 흘리셨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속죄를 위한 어떤 희생 제사도 필요 없게 되었다. 구약 시대에 희생된 짐승의 피는 부패하기 쉽고 썩어서 빨리 없어지지만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흘리신 피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피이다. 그래서 그것은 결코 부패할 수 없는 것으로 불린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주 예수님의 피는 죄 없는 피요, 죄가 없으므로 그 피는 썩을 수가 없다. 죄는 부패를 초래하지만 죄가 없는 곳에는 부패가 있을 수 없다. 본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는 예수님의 몸에 흘렀던 피가 왜 죄 없는가를 지적할 것이다. 예수님의 몸속을 흘렀던 핏방울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마치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상처받은 이마와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흘러 나왔던 그 피처럼 여전히 신선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찢어지지 않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던 피, 채찍질하는 자가 그분을 채찍질했을 때 무거운 가죽 끈이 그분의 몸을 찢어 놓았을 때 그분의 등으로 흘러내렸던 피, 가시관 밑에서 스며 나와 그분의 손, 머리, 발로 흘러내렸던 피는 썩지 않는 피였으므로 결코 파괴되지 않았다. 다윗이 시편 16장에서 주님을 가리켜 말했던 것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나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행2:27).   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죽음 속에서 세 밤과 세 낮 동안 무덤 속에 있었으나 썩지 않는 피를 지녔기 때문에 그 몸은 부패되지 않았다. 나사로의 누이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악취가 난다고 말하였지만 그분의 육신에는 부패의 유일한 원인인 ‘죄성을 띤 피’가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썩음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피의 한 방울까지도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옛날의 대제사장처럼 하늘에 있는 긍휼의 자리 위에 피를 뿌리기 위해 지성소 안으로 즉 하나님의 존전으로 가셨다. 구약 시대의 성막에 있던 눈에 보이는 긍휼의 자리와 언약궤는 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하여야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9:23-26).   속죄를 이루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사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지성소에 피를 드리기 위해 하늘로 올라 가셨다. 그 피는 오늘도 그곳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호소하며 우리를 위해 승리를 주고 있다. 구약 시대의 성막에 있던 제사장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다만 피를 드렸을 뿐이며 그때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2000년 전이나 똑같이 지금도 순결하고 능력 있고 신선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하늘나라에 있는 금잔 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었던 성막의 제사장은 반복해서 피를 뿌려야 했다. 성막의 모든 가구들 중에 의자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성막 내에 있었던 희생 제단, 분향 제단, 등잔대, 주님의 언약궤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성막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한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스라엘의 성막에는 의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희생 동물의 피를 뿌렸던 이 땅에 속한 제사장의 일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앉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코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고귀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2-14).   썩지 않고 영원하며 신성하고 죄 없으며 모든 것을 이긴 고귀한 피는 이미 흘러내렸다. 그 피는 그 당시에도 유용했으며 지금도 유용하며 세세 무궁토록 그 능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형용사로써 그리스도의 피를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 피가 고귀하다고 했으며 다윗은 썩지 않는다고 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마귀)를 이겼다.”고 말하며 그것이 ‘모든 것을 이기는 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피를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피의 권능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피 없이는 결코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오늘날에도 율법은 그 성격을 바꾸지 않았고 피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은 여전히 죽음을 집행하고 있다(고후3:7).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정의는 아직도 진리이다. 율법의 행위로부터 난 사람들은 저주 아래 있다. 율법 자구는 사람을 살리지 않고 죽이기 때문이다(고후3:6).   오직 피만이(Only the Blood)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내가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내가 너의 선행, 도덕 행위, 열렬한 종교심, 십계명 혹은 도덕의 황금률을 진정으로 지키려고 하는 점을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고 하셨다. 당신은 내가 피에 대해 너무 많이 말했다고 생각하는가? 즉 피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였다고 생각하는가? 들어보라,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은 적어도 칠백 번이나 피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묘사된 하늘에 있는 구속된 무리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선행이나 율법을 지키는 데 충실했음을 노래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노래함을 보게 된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1:5).
2009-05-08 13:21:37 | 관리자
2. 우리의 공급원 그리스도(Christ Our Supply)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히9:13-14). 인류 구속의 전체 계획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 안에 존재한다. 우리는 위에서 피가 몸 안에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조직임을 살펴보았다. 근육, 뼈, 신경, 지방 조직과 피부 등 대부분의 다른 조직들은 고정되어 있다. 오직 피만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조직으로서 전신을 돌며 살아 있는 모든 세포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의 몸 안에는 침이나 위액, 눈물, 담즙 등의 여러 가지 액체가 존재하지만 이것들은 조직이 아니며 분비물이고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신체로부터 생성되는 물질들일 뿐이다. 오직 피만이 몸 안의 모든 세포에 도달할 수 있는 액체 조직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지체들을 머리와 그 외 다른 지체들과 연결시켜 줄 수 있다. 신비한 구조(Mysterious Structure) 현미경의 발명과 혈액 화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사람들은 피에 대하여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신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피의 물리적 구조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이해하고 있다. 약 5리터 정도의 피를 갖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의 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전적으로 피의 순환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육체의 생명이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피는 혈장(Plasma)이라 하는 무색의 액체와 그 액체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세포 성분들과 수없이 많은 화학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피의 고형 성분은 주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 종류의 세포들로 이루어진다. 1 세제곱 밀리미터 당 약 500만 개 정도의 밀도를 갖고 있는 적혈구들은 복합 산소의 형태로 조직들에게 연료를 공급해 주며 피를 빨갛게 만드는 세포들이다. 백혈구라 불리는 세포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것들은 주로 세균 감염을 물리치기 위한 몸의 방어와 관계가 있다. 혈소판은 매우 얇고 투명한 세포로서 부족하게 되면 출혈이 생기게 된다. 이 외에 피 안에는 피를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는 인자들과 질병을 예방해 주는 항체 등의 여러 성분이 존재한다. 적혈구(The Erythrocytes) 적혈구와 백혈구는 쉽게 연구할 수 있으므로 이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바가 많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이라 불리는 신비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미세한 원반형의 세포인데 헤모글로빈은 철분 복합체로서 신체의 연료가 되는 산소에 대한 친화력을 지니고 있다. 폐를 통해 이 적혈구들은 우리가 들여 마시는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하게 되고 산화 헤모글로빈을 형성하기 위해 산소와 느슨하게 결합한다. 이런 형태로 적혈구들은 세포들 사이를 움직여 가면서 그 속에 담긴 아주 작은 운반물을 각 세포에게 내주게 되어  연소와 열을 위한 필수적인 산소가 몸속의 각 세포에 공급된다. 그러면서 피는 우리가 ‘세포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는 조직의 노폐 물질, 이산화탄소 그리고 조직의 신진 대사에서 나온 찌꺼기를 취해서 이것들을 콩팥, 피부, 내장, 폐등을 통해 내버리면서 동시에 귀중한 산소를 채우고는 다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피가 한 번 순환되는 데는 약 23초가 소요된다. 이처럼 피에 의해서 자양분이 조직에 공급되고 동일한 운반체 안에서 ‘쓰레기’가 수거되는데 위대하신 창조주께서는 그런 과정 속에 절대로 오염이 생기지 않도록 완벽하게 우리를 창조하셨다. 오늘날 도시의 청과상들이 매일 우리에게 줄 음식을 포장도 하지 않은 채로 날라 오고는 바로 그 트럭에 쓰레기들을 운반해 간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피의 이 같은 성질은 우리의 청소 담당 보건소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공급원 그리스도(Christ Our Supply) 우리의 몸에 피가 필수적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수적이다. 그 피 역시 액체이기 때문에 비록 그 몸의 지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 몸의 모든 지체에게 도달할 수 있다. 피가 양분과 생명의 유지를 위해 영양 요소들을 공급해 주며 노폐물들과 세포의 신진대사에 의한 독소들을 날라 가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유일하신 생명의 근원이시요, 생명을 지지해 주며 유지시키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씻기시므로 우리의 생명은 참으로 영구히 지속될 수 있다. 당신은 깨끗케 하시는 능력을 위해 예수님께로 가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양의 피로 씻겨졌는가? 당신의 옷은 흠이 없는가? 그리고 그것은 눈처럼 흰가? 당신은 그 양의 피로 씻겨졌는가?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화학의 놀라움이 있다! 계시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 어린양(예수님)의 피로 자신들의 옷을 깨끗케 했음을 읽게 된다. 피로 씻어 희게 된다는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당신의 옷을 사람의 피로 씻게 될 때 그것이 어떤 색으로 변하게 될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사람의 붉은 피로 옷을 하얗게 빠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에 관한 화학 실험실에는 모든 더러움과 얼룩들을 완전히 빨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 그 방법은 몰랍게도 바로 그 어린양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이다. 오직 그분의 죄 없으시고 초자연적인 그 피만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다. 백혈구(The Leucocytes)   우리는 위에서 적혈구 외에 백혈구라고 불리는 세포들이 혈장 안에 있음을 언급했다. 이것들이 ‘백혈구’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것들이 적혈구와는 달리 외형적으로 볼 때 아주 엷은 색 혹은 흰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백혈구들은 적혈구보다 조금 크지만 개수로는 적혈구보다 훨씬 적다. 적혈구들이 대개 1 세제곱 밀리미터당 400-500만개 정도 있는데 비해 백혈구들은 고작해야 4,000개에서 7,000개 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백혈구의 수는 위급한 경우에 매우 신속하게 증가될 수 있다. 평상시 1세제곱 밀리미터당 7,000개라는 숫자는 혈액 속의 정규적인 ‘상비군’에 해당된다. 그러나 적군인 ‘세균 군대’의 공격을 받아 몸의 어느 곳에 감염이 생기면 이 소식은 즉각적으로 백혈구를 생산하는 ‘군인 부대’로 들어가며 그 부대는 신속하게 많은 수의 백혈구들을 만들어 감염이 생긴 곳으로 급파한다.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을 위급한 때에 동원되는 ‘하얀 군대의 모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백혈구들이 몸을 지키는 ‘군인들’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백혈구의 숫자는 두 배 혹은 세 배로 증가한다. 그것들은 병원체를 죽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잡아 먹는다. 그래서 당신의 손가락 끝이 벌레에 쏘이거나 가시에 찔려 거기에 감염이 생길 때에 당신은 곧 그 상처 부위가 부어오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조그만 ‘군인들’인 백혈구 세포들을 급히 실어 나르기 위해 피가 급파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백혈구들은 그 감염 장소를 완전히 감싸며 감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포위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죽게 되고 한 군데로 모이게 되는데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우리가 보통 ‘고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자, 이제 전쟁은 역전되기 시작하며 처음에는 붉은 색을 띠고 매우 아프며 부어올랐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며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게 된다. 그 상처는 성공적으로 포위되고 마침내 그 중심 부위가 터지면서 고름이 나오게 된다. 고름은 혈청과 몸을 위한 전쟁에서 죽은 수많은 ‘백혈구 군인들의 시체’와 백혈구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분해된 병원균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름의 형태로 ‘죽은’ 것들이 배출되고 모든 것이 아물어 결국 상처 딱지만 남게 될 때까지 피와 다른 백혈구들이 모여들어 ‘전쟁터’를 깨끗이 치우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게 된다. 전쟁 기간에 백혈구 ‘군인들’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이제 전쟁이 끝나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다시 평화 시기의 정상 숫자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의사들이 당신의 몸 어느 곳엔가 감염이 생긴 것 같다고 판단할 때 백혈구의 수를 세어 보기 위해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피를 채취하여 검사하는 이유인 것이다. 맹장염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경우에도 한 방울의 피를 채취하여 그것을 검사한다. 만일 백혈구들이 굉장히 증가되었고 이 작고 ‘흰 군인들’의 증가로 인해 ‘군대’가 모병 작업을 시작했음이 확인될 때 의사는 신체의 어느 곳에선가 감염에 의한 공격이 진행 중임을 거의 확신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만들어졌도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시139:14). 피에 의해 승리함(Overcoming by the Blood) 우리 몸의 피가 각종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것과 똑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도 모든 믿는 자를 위해 일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요한계시록 12장을 인용하려 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구원과 힘과 우리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권능이 임하였도다.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는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던 자가 쫓겨났도다.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계 12:10-11).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사탄을 이겼다. 위의 말씀은 교리적으로 볼 때 말세의 7년 환난기 중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되기는 하지만 영적으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역시 적용된다. 사탄은 형제들을 참소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 대해 많은 참소를 한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참소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을 때 거기에는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어린양이 계시며 그분께서 하셔야 할 일은 단지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사탄의 비방을 이겨내기에 충분하다. 때때로 사탄은 우리를 참소하며 우리의 범죄와 실패를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신의 죄와 단점을 본다. 그때 사탄은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구원받았는가? 아무래도 그리스도인 같지가 않은데?”라고 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종종 쓰러지기도 하며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죄를 보게 될 때 패배 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의심하기도 하며 우리의 구속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 적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마귀에 의한 감염에 대항할 것인가? 거기에는 오직 한 가지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사탄을 이겼다.” 나는 내 안에 아무런 선(善이) 없음을 안다. 나는 내 안에 아무런 소망도 없으며 육신 안에 어떤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없음을 안다. 바로 그럴 때에 나는 피에 호소한다. 내가 갈보리를 보고,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나를 위해 피를 흘려 주신 주님을 보면 주님의 빛이 내게 나타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승리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선이나 너무나 많은 범죄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피에 달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피는 나를 위해 싸운다. 적을 도망가게 만드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 안에 있는 ‘백혈구 군대’이다. 나는 나의 죄를 인정하며 부인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에 나는 다음의 약속을 내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9).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1:7).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계12:11). 죄에 대한 면역(Immunity to Sin) 우리는 이제 피에 있는 몇 개의 다른 성분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려 한다. 피 속에는 위에서 언급된 세포들과 응고 인자들뿐만 아니라 ‘항체’ 혹은 ‘항독소’라는 성분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발견하였다. 이것들은 ‘감염을 방지하는 성분들’이다. 백혈구는 염증이 생길 때 염증과 싸우지만 ‘항체’는 처음부터 감염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 작용은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이같이 질병을 방지하는 요소가 없다면 인간은 곧 죽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항체들이 감염에 대한 반응으로 생성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즉, 질병을 막는 이 항체가 피 속에 없다 하더라도 ‘일단 사람이 어떤 질병에 걸리게 되면’ 항체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같은 질병에 다시 걸리지 않게 된다. 천연두, 성홍열 등으로 인해 생긴 항체들은 평생 동안 있게 된다. 그 외의 다른 항체들은 짧은 기간에만 면역을 지니고 있어서 일시적인 효과를 보이므로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같은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 번 질병에 걸린 몸은 면역을 형성하므로 다시 그 질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면역이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Christ) 우리가 이런 사실을 그리스도의 피에 적용시키면 우리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된다. 거듭난 후에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자주 유혹의 희생물이 된 채 굴복되기도 한다. 실수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찾으며 그 후 그리스도의 피에 호소하고 한 때 그를 넘어지게 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같은 죄로 넘어지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경험으로 인하여 그 범죄에 대한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도와 죄인의 차이점은 성도는 자기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호소하지만 죄인은 자기 죄를 사랑하고 죄 속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성도는 마치 양과 같다. 양은 진흙 구덩이 속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가 건져 올려 줄 때까지 울고 있다. 그 후 양은 많은 징계를 통해 진흙 구덩이를 피하게 된다. 반면에 죄인은 돼지와 같다. 돼지는 더러운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찾으면 기쁨의 환호를 지르며 어느새 빠져 들어가 당신이 거기에서 그를 끌어내려고 하면 맹렬한 반대를 하면서 항의한다. 설사 끌어낸다 해도 돼지는 다시 더러운 곳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성도도 죄 가운데 떨어지지만 그는 결코 거기에 그냥 남아 있지 않으며 죄 안에 거하게 될 때 늘 불안해한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실수했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당신을 위해 죽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우리의 고귀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실패할 것도 알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은혜와는 원수가 되는 이 옛 세상에서 성도들이 깨끗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인생길의 구덩이들과 육체의 속임수를 아셨다. 그러므로 당신을 위해 돌아 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당신을 깨끗케 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8-9). 나의 친구여, 당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죄를 부인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당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데 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 있는 ‘백혈구 군대’를 보내실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죄로부터 당신을 보호하시도록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 보혈 속에는 싸워서 정결케 하는 ‘백혈구’ 외에도 후에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항체’가 포함되어 있다. 오늘 당신이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생각해 보며 절망하지 말고, 당신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며 돌보시기 위해서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주님께로 피신하라.
2009-05-08 13:20:32 | 관리자
제 1 장 피의 화학적 성질 (The Chemistry of the Blood) 1.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Christ) “또한 너희는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 날짐승의 피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지니라. 어떤 혼이든지 무슨 피라도 먹으면 그 혼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 하시니라”(레7:26-27). 성경은 피에 관한 책이며 피로 젖어 있는 책이다. 우리가 피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 때 우리는 그러한 비난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님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단 한 가지 사실만이 우리의 가르침에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을 부여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야말로 복음의 생명이며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살아 있는 책’ 즉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살아 있는 책이라고 스스로 선포하고 있다. 성경은 또한 마음을 다하여 그것이 가르치는 바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다. 히브리서 4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히4:12). 이 성경 구절에서‘살아 있고’(quick)로 번역된 단어는 ‘살아 있는’(living) 혹은 ‘생생하여 활동하는’(alive)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모든 다른 책들과 전적으로 구별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 책이 구절마다, 각 장마다 순환되고 있는 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의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해 주는 피가 흐름을 본다. 만일 피가 없다면 성경도 다른 책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이 생명은 피 안에 있다는 사실을 평범하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우리는 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기본 원리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본 원리는 레위기 17장에 주어졌으며 다음과 같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레17:11) 이처럼 영감을 받은 원리는 14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에 육체의 피는 그 생명을 위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종류의 육체의 피도 먹지 말라.”(레 17:14)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결코 정의를 내리거나 파헤쳐 볼 수 없었던 그 신비한 것, 즉 생명(life)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바로 육체의 피 속에 있다. 그러므로 피 없는 생명이란 있을 수가 없다. 비록 이것이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진리이긴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주로 사람의 피와 특히 사람이셨던 그리스도 예수님(The Man Christ Jesus)의 피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피 속에는 우리가 흔히 육신적인 의미로 생각할 때의 생명뿐만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피의 생리학(The Physiology of Blood) 인간의 몸속에는 여러 가지 조직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근육, 신경, 지방, 내분비선, 뼈 결합 조직 등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같은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들은 고정되어 있는 세포들로서 매우 미세하며 어떤 특정하고도 제한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고정된 조직들과는 달리 피는 유동성이 있어 몸 안을 돌아다니는 조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몸의 한 부분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몸 전체를 돌아다니며 고정된 세포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며고 세포의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재와 쓰레기들’을 갖고 간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신진 대사(Metabolism)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사람의 몸에는 약 5리터 가량의 피가 있고 이 피는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 23초마다 전신을 돌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체의 모든 세포들은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받고 노폐물을 제거 받으며 그와 동시에 신체 안의 다른 세포들과 꾸준하게 연락을 취하게 된다. 피는 모든 조직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으로서, 수많은 원소들과 복합체들과 아직까지도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특별한 화학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찌됐든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이라는 신비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피가 신체의 다른 부위에 있는 세포들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생명체든지 곧장 죽게 된다. 즉 피의 순환이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데 그 이유는 생명이 바로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Christ)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육적인 몸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훨씬 더 크고 깊은 영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 불리며 우리는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며 우리끼리도 서로서로 지체들이다. 이 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리가 되시며 모든 믿는 사람들은 지체들이 된다. 이 지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진다. 각 지체의 생명은 그분의 피로 인함이며 생명뿐 아니라 영양분과 정화와 성장을 위해 오로지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생명이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거듭난 모든 신자들은 그 몸의 지체이며 다른 지체들과 함께 공동의 삶을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이들을 연합시켜 주며 ‘형제와 친척’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다. 이 지체들은 몸 안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전혀 다른 색을 띄고 있을 수도 있으며 기능이나 구조면에서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한 몸의 지체들이며 한 가지 조직에 의해 연합되는데 그 조직은 바로 모든 부위에 있는 각 지체들에게 다다르는 피다. 이것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인 참된 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체들은 피부색이 서로 다를 수도 있으며 따라서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혹은 황색 인종일 수도 있다. 에스키모인으로부터 남아프리카의 보어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사는 곳은 서로 많이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거듭난 은사주의자일 수도 있고 근본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몸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끝내 놓으신 일’(The finished work)을 신뢰하는 모든 거듭난 성도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왕이든 농부든 또는 교파가 무엇이든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모두 피에 의한 형제들이며 한 가족이며 같은 몸의 일원이다. 이 모든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가 되었다. 피에 의해 모두 하나 됨(All One by the Blood)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구분이나 집단 등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으신다. 또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사소한 것을 따지기 좋아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식이라든가 조직들에 전혀 관심을 두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임을 우리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교파를 세우고 사람들을 어떤 믿음으로부터 다른 믿음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라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로 씻겨지지 않는 한 어떤 교회에 출석하든지 간에 멸망 받고 만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의 교인 수를 늘리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그 피의 ‘하나 되게 하며 정결케 하는 능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은 어떤 형식이나 의식 혹은 예배의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주 예수님을 높이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통해서 우리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교리들과 교파주의적 견해를 변호하며 자기 교회의 교인 수를 늘리기에 너무 바빠서 실제로 한 영혼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피로 인해 관계를 맺음(All Related by Blood) 모든 사람들은 죄성으로 가득 차 있고 오염되어 있으며 범죄와 죄들로 인해 죽은 아담의 피에 의해 상호 연결되어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또 그분(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6).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공통된’ 기원을 갖는다. 사람들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교도든 문명인이든 상관없이 모두 아담의 피에 의한 친척들이다. 그들의 피는 지금까지도 아담의 죄로 인한 사형 선고를 전하고 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심지어 아기들까지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공통적인 죽음을 당하게 된다. 생명이 피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피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그것을 먹음으로 인해 ‘피의 중독 현상’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죽음이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그때 생긴 독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그 일 이후 약 6,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연적 출산에 의해 아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인가 핏속에 담겨져 내려오는 이 죄의 독에 의해 굴복 당하고 결국 죽고 있다. 아담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그 진리가 더욱 더 명확해 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부터 사람을 형성하셨다고 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담은 생명이 없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했다. 원료로 볼 때에 그는 단지 흙에 지나지 않았으며 사람의 모습으로 빚어졌을 뿐 아직까지 그 안에 생명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인형에 불과했다. 그 뒤 성경의 기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2:7). 하나님의 숨은 그를 살아서 움직이게 만든 그 무엇인가를 그 안에 넣어 주었다. 그때 그에게 들어갔던 것이 바로 피였다.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그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위에서 살펴본 대로 육체의 생명은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이 하나님의 숨에 의해 아담에게 주어졌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 진흙 덩어리에게 피를 더해 주셨으며 그래서 사람은 ‘살아 있는 혼’(a living soul)이 되었다(*역자주 - 개역성경은 이것을 ‘산 영’(a living spirit)이라고 크게 오역했다. 그러나 전 세계모든 성경은 이것을 ‘살아 있는 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몸은 흙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의 피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또 다른 선물이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생명(Life)이시며 모든 생명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다. 죄와 죽음(Sin and Death) 처음에 창조된 뒤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는 죄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 죽게 되었다. 먼저 영적으로 죽었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육체적으로 죽게 되었다. 생명이 피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떤 일이 그 피 안에 일어났다. 죄는 간접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피에 영향을 미쳤지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피에 의해서 영양분 등이 몸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단순히 ‘죄성을 띤 육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의 몸이 죄성을 띤 피에 의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채워지며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한 피로 모든 민족을 만드셨기 때문에 죄는 아담의 자손 모두에게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경 기록대로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다. 처녀 탄생(The Virgin Birth) 죄가 사람의 피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자손이면서도 죄가 없는 사람이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본질적으로 죄성을 갖고 있지 않은 아담의 육체는 취하실 수 있었지만 완전히 죄성을 띤 아담의 피는 취하실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해 남자로부터가 아니라 여자로부터 나신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실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그분께서는 혈관 안에 단 한 방울의 아담의 피도 갖고 계시지 않았으므로 아담의 죄를 나누어 갖지 않으셨다. 우리는 이 책의 뒤에서 처녀 탄생 문제를 다룰 것이며 여기에서는 인간의 피가 죄로 가득 차 있으며 따라서 인류 구속에 대한 전체적 계획이 이 피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처녀 탄생의 문제를 잠깐 언급하고 있다.
2009-05-08 13:19:40 | 관리자
질문: 계시록 4장 6절은 짐승이 맞습니까? 아니면 생물이 맞습니까? 그리스어로는 생물이 맞는다고 하는데요. 대답: 먼저 이 문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장 박사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 번역의 문제라고 지적한 글을 인용하겠습니다.헬라어 원문 : τεσσερα ζωα, 영어 KJV : four beasts,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 네 생물, 한글개역판: 네 생물이 부분도 영어 KJV는 완전한 오역이다. ‘조아‘(ζωα)는 헬라어에서 ‘생물‘을 의미하지 영어 KJV같이 ‘짐승‘이나 ‘야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헬라어에는 ‘짐승‘이나 ‘야수‘를 의미하는 ‘데리온‘(θηριον)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있다 (cf. 계13:1, 2, 11).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왜 영어 KJV를 번역하지 않았는지 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한글 KJV가 영어 KJV의 번역이라면 영어 KJV가 비록 잘못되었더라도 그대로 번역을 해야 한다. 만약 고치려면 sic이란 문장 부호를 사용하든지 다른 방법으로 원문대로 번역하지 않았음을 표시해야지 번역자의 마음대로 내용을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 KJV는 영어 KJV의 번역도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서의 새로운 번역도 아니다. 장 박사가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 KJV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2009-05-07 17:21:37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계시록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대답: 둘 다 가능하지만 계시록 전체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므로 전자를 택한 것입니다. 영어 원문은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영어에서 ‘of’만큼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주격, 소유격, 목적격 등 여러 가지로 번역이 가능하므로 추후에 ‘of’의 용례에 대해서는 하나씩 다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혹은 대한) 계시’로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책의 제목이 ‘요한의 계시록’이기 때문에 계시록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며 이 경우 예수님은 계시의 대상이 됩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하면 예수님이 계시의 주체가 되며 이 경우 예수님이 계시록 전체를 주시는 분이 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떤 번역을 취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저희는 계시록이 ‘예수님의 계시’라고 믿습니다. 그 근거는 계시록 2, 3장에서도 일곱 교회에게 계시를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며 4장 이후부터 일어나는 7년 환난 기간의 모든 계시를 주는 분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계시록 22장에는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계22:16).이 구절과 1장 1절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계시록을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서 모든 계시의 주체가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계시를 적은 사람은 요한이므로 요한의 계시록이라 해도 이 또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럭크맨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로 가르치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럭크맨  말고도 훌륭한 성도들이 많이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읽고 있습니다. 물론 그 근거는 성경의 문맥입니다.한 성경에 두 가지 번역을 다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 적어야 하므로 킹제임스 흠정역에서는 앞뒤 문맥을 살펴보고 전체 책의 요점을 머리에 둔 채 적합하게 번역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계1:1을 논하실 때도 오역이라 하지 말고 이역이라 하기 바랍니다.
2009-05-07 17:20:20 | 관리자
아침에 어떤 분이 전화를 해서 왜 candlestick을 촛대로 번역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즉 candle이 초라면 candlestick은 촛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계시록 2:1, 5 등에 나오는 candlestick이라는 단어는 최초로 출애굽기 25장 31절에 성막을 지으면서 기구의 하나로 등잔대(candlestick)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성경 전체에는 단복수 합해서 44번 나오는 것 같습니다. And thou shalt make a candlestick of pure gold: of beaten work shall the candlestick be made: his shaft, and his branches, his bowls, his knops, and his flowers, shall be of the same(출25:31). Remember therefore from whence thou art fallen, and repent, and do the first works; or else I will come unto thee quickly, and will remove thy candlestick out of his place, except thou repent(계2:5).  이런 혼동은 현대 영한사전에 candlestick이 촛대로 나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candle의 본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심지로 기름이나 밀랍을 빨아올려 빛을 내는 기구를 뜻합니다. 최근에는 양초의 재료인 밀랍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과거에는 특히 성전과 성막에서는 언제나 기름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출27:20-21에는 등잔대에 쓸 올리브 기름이 나오고 또 슥4:1-4에서는 등잔대와 일곱 등잔과 그것들을 연결하는 일곱 개의 관이 나옵니다. 왜 관이 필요할까요? 기름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초가 흐른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계시록에서도 동일한 등잔대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런 단어를 촛대로 번역하면 완전히 잘못된 그림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실수의 근원이 어디인가 봤더니 또 말씀보존학회더군요. 그들은 candlestikc을 모두 촛대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익숙한 사람이 우리 흠정역 성경을 보고 또 현대 영한 사전을 보면 우리 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지요. 요즘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물론 개역, 표준 새번역,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도 모두 등잔대로 번역했습니다. 아무리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옳아도 그 텍스트를 가지고 번역을 잘못하면 나쁜 텍스트를 가지고 번역을 잘한 경우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부탁합니다. 틀린 데가 있다고 생각되면 통보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협조가 성경 본문을 고정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읽어 봐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낼 때 인격적인 글로 보내기 바라며 제안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노력은 주님께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05-07 17:19:45 | 관리자
하나님의 사람 성도 요한의 계시록: 요한계시록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기록자: 요한, 기록 시기: 주후 96년경, 성격: 예언, 수신자: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하나님의 모든 성도 이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담은 기록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그것을 받아 천사에게 주었고 천사는 요한에게 그것을 표적으로 보여 주었다. 주제: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요5:22, 27) 목적: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최종 목적과 인류와 사탄의 최종 종착지 특별히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최후 상태를 보여 주는 것 내용: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이 외부의 원수들에 의해 핍박을 받고 또 미지근한 성도들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위로와 경고의 메시지로 모든 교회에게 주어졌다. 이 책은 또한 신구약 성경의 진리를 요약하며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의 성취를 보여 주고 특히 창세기와 함께 완전하게 진리의 사이클을 구성한다. 요한은 자기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 이후에 있을 것을 기록하면서(1:19) 먼저 그리스도의 환상(1장), 교회의 심판(2-3장), 교회의 휴거 이후에 이 땅에 남는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들을 향한 7년 환난기(4-19장), 천년왕국(20:1-6), 하나님의 최후 승리와 사탄의 패배(20:7-15),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21-22장)을 차례대로 기록한다. 요한계시록은 22장, 404절, 12,000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9장(영광의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핵심 절: “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 이후에 있을 것들을 기록할지니”(1:19)핵심 단어: 이기다(2:7, 11, 17, 26; 3:5, 12, 21), 세상을 이기는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이다(요일5:5), 핵심 구: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2:7) 계시록의 그리스도: 살아 계셔서 승리하시는 주님(1:18), 영적 교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키라.”(1:3)
2009-05-07 17:19:03 | 관리자
유다의 일반서신: 유다서 The General Epistle of JUDE 기록자: 유다, 기록 시기: 주후 67년경, 성격: 일반서신, 수신자: 하나님의 모든 성도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이 책을 기록한 유다에게서 유래되었다(1:1). 그는 야고보의 형제이며 예수님의 동생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였다. 주제: 배도의 때에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 목적: 성도들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게 하는 것 내용: 유다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구원에 관하여 기록하려 했으나 성령님은 경건치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을 강하게 지적하기 원했다. 그래서 유다는 주님을 부인하고 마음대로 죄를 짓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말하고 구약성경의 배도의 예를 보여 준다. 그는 짧은 서신에서 삼위일체, 구약성경의 확실성, 천사들의 존재, 사탄의 존재와 그의 권능, 심판과 보복,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의 신성 등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유다서는 1장, 25절, 613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절: “이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넘치는 기쁨으로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너희를 제시하시는 분”(24)핵심 단어: 보존되다, 핵심 구: “힘써 싸우라.”(3) 유다서의 그리스도: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25), 영적 교훈: “그리스도는 능력이 있으시다.”
2009-05-07 17:17:28 | 관리자
요한의 세 번째 서신: 요한삼서 The Third Epistle of JOHN 기록자: 요한, 기록 시기: 주후 90년경, 성격: 개인적인 서신, 수신자: 가이오와 하나님의 모든 성도, 이름: 요한복음 참조 주제: 겸손 목적: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하는 자들임을 보여 주고 사역에서 자기를 높이는 일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 내용: 요한은 가이오에게 이 서신을 보내어 교회의 분열을 가져온 사람을 지목하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를 조심할 것을 권고한다. 요한삼서는 1장, 14절, 299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절: “내게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도다.”(4) 핵심 단어: 진리, 핵심 구: “선한 것을 따르라.” 요한삼서의 그리스도: 합당한 이름을 지니신 주님(7), 영적 교훈: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
2009-05-07 17:16:56 | 관리자
요한의 두 번째 서신: 요한이서 The Second Epistle of JOHN 기록자: 요한, 기록 시기: 주후 90년경, 성격: 가족 서신, 수신자: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부인과 하나님의 모든 성도, 이름: 요한복음 참조 주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 목적: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 내용: 요한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영향에 대해 경고를 주고 그리스도인들이 진리 안에서 서로를 사랑할 것을 권고한다. 요한이서는 1장, 13절, 303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절: “또 사랑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명령대로 걷는 것이요, 명령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안에서 걷는 것이라.”(6)핵심 단어: 사랑하라, 핵심 구: “교리에 거하라.” 요한이서의 그리스도: 진리(1, 2), 영적 교훈: “진리를 보존하라.”
2009-05-07 17:16:15 | 관리자
요한의 첫 번째 일반서신: 요한일서 The First Epistle General of JOHN 기록자: 요한, 기록 시기: 주후 90년경, 성격: 일반서신, 수신자: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 이름: 요한복음 참조 주제: 하나님의 가족 목적: 하나님과의 교제를 보여 줌으로써(1:3)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5:11-13) 내용: 만년의 요한은 그리스도의 몸을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성도를 ‘내 어린 자녀’라고 부른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세상 속에서 모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고난과 박해를 뛰어넘는 성도의 기쁨을 강조한다. 특히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지 않았다는 영지주의가 널리 파급되었으므로 그는 성도들이 이런 이단 사상에 빠지지 않게 교리적인 안내 지침을 준다(4:1-2). 그는 성도들 안에 죄가 없다는 것과 성도들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등을 강하게 정죄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의 논리를 강하게 논박한다(5:7). 요한일서는 5장, 105절, 2,523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5장(이기는 믿음), 핵심 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5:13), 핵심 단어: 교제, 핵심 구: “우리가 말하면” 요한일서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5:20), 영적 교훈: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다.”
2009-05-07 17:15:28 | 관리자
질문: 창세기 5장과 베드로후서에 나와 있는 노아에 대한 기사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대답: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창세기 5장 기사를 보면 노아는 아담의 십대손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대기상 1장에도 분명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레엘,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셈, 함, 야벳이 있었더라(대상1:1-4).그런데 베드로후서에서는 그를 가리켜 여덟째 사람이라고 하니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이 틀린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만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벧후2:4-5).킹제임스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이번 질문은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지금 베드로후서의 문맥은 방주에서 구원받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시다시피 여덟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셈, 함, 야벳, 노아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 노아가 마지막으로 방주에 올랐다면 그는 여덟째 사람입니다. 여기의 문맥은 결코 노아가 아담의 십대손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서기관들은 아예 사본을 뜯어고치고 자기들 마음대로 ‘그 일곱 식구를’ 첨가시켜 놓았습니다.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개역성경 벧후2:5)이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기들의 말을 첨가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들’(words) 즉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2009-05-07 17:14:45 | 관리자
베드로의 두 번째 일반서신: 베드로후서 The Second Epistle General of PETER 기록자: 베드로, 기록 시기: 주후 66년경, 성격: 일반서신, 수신자, 이름: 베드로전서 참조 주제: 마지막 일들 - 영원한 왕국, 재림, 사악한 자들의 심판, 주의 날 목적: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게 하는 것(3:18) 내용: 이 서신은 베드로의 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먼저 성도들이 은혜와 영적 지식에서 자랄 것을 촉구하고 거짓 대언자들에 대해 경고를 주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후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소망을 말해 주고 성도들이 믿는 바를 계속해서 실천할 것을 권면한다. 베드로후서는 3장, 61절, 1,559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핵심 절: “너희가 전에 거룩한 대언자들이 전한 말씀들과 주 곧 구원자의 사도인 우리에게서 받은 명령을 명심하게 하려 함이라.”(3:2)핵심 단어: 아는 것, 핵심 구: “하나님을 아는 것”(1:2) 베드로후서의 그리스도: 영광의 주님(3:18), 영적 교훈: “명령을 명심하고 자라는 일을 중단하지 말라.”
2009-05-07 17:14:12 | 관리자
베드로의 첫 번째 일반서신: 베드로전서 The First Epistle General of PETER 기록자: 베드로, 기록 시기: 주후 65년경, 성격: 일반서신, 수신자: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거하던 그리스도인들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이 책을 기록한 베드로에게서 유래되었다(1:1). 그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고 베드로는 그의 성으로 조그만 돌을 뜻한다(요1:42). 그는 충동적이고 쉽게 낙담하며 겁이 많았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분의 양들을 맡은 이후로(요21:15-18) 성령 충만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주제: 순례자들이 통과하는 고난의 길 목적: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고난과 시련이 임할 때 그들에게 격려와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 내용: 로마의 박해로 인해 성도들은 곳곳으로 흩어져서 불 같은 시험을 당했다. 그때에 마귀는 삼킬 자를 찾으려고 울부짖으며 돌아다녔고 이에 베드로는 서신을 통해 성도들을 격려하고 소망을 불어넣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베드로는 먼저 구속과 중생과 성화와 보존의 은혜를 말하고 성도들이 은혜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 등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를 입증할 것을 촉구하였다. 베드로의 삶과 생각을 잘 반영하는 베드로전서는 5장, 105절, 2,482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장(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확신과 약속)핵심 절: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 이것은 너희 믿음의 단련이 불로 정제해도 없어지는 금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1:6-7), 핵심 단어: 고난을 받다(15회)핵심 구: “순례자와 나그네”, 베드로전서의 그리스도: 고난당하는 어린양 영적 교훈: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귀중하시다.”(2:7)
2009-05-07 17:13:29 | 관리자
야고보의 일반서신: 야고보서 The General Epistle of JAMES 기록자: 야고보, 기록 시기: 주후 45년경, 성격: 실제적인 교훈, 수신자: 일차적으로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고 실제적으로는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 이름: 이 책의 이름은 이 책을 기록한 야고보 즉 사도행전 12장에서 순교당한 사도 야고보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게서 유래되었다(1:1). 주제: 구원을 가져오는 믿음과 구원의 열매인 선한 행위(2:14). 목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믿음의 특성을 보여 주고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을 주는 것 내용: 야고보는 초기 사도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역 밖에 거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실제적으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지 가르친다. 야고보서는 로마서처럼 상세하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구원받은 신자의 삶에서 어떤 행위가 나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실제적인 생활지침서이다. 먼저 야고보는 성도들이 고통과 핍박 중에서 인내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것을 권면한다. 또 그는 믿음을 고백하는 신자들 가운데 바르지 못한 사람들의 악한 행습을 지적하고 그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그는 행위가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임을 확증하며 그래서 어떤 이는 야고보서를 신약성경의 잠언이라 부른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지만 야고보서는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야고보서는 5장, 108절, 2,309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믿음의 시험), 핵심 절: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2:26), 핵심 단어: 행위, 핵심 구: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야고보서의 그리스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 영적 교훈: “삶에서 믿음을 입증하라.”
2009-05-07 17:09:41 | 관리자
질문 : 아브라함의 아들은 몇 명인가요? 대답 :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으나 자기가 취한 그 첩의 아들들에게는 선물을 주고 자기 생전에 그들을 내보내어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쪽으로 곧 동쪽 지방으로 가게 하였더라."(창25:5,6)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바쳤으니 곧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기의 독생자(獨生子)를 바쳤느니라."(히11:17)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  이삭, 그리고 첩 그두라가 낳은 아들들을 포함해서 아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히11:17은 이상하게 그가 자기의 독생자를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의 초점은 "독생자"(only begotten son)에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합법적인 아들과 비합법적인 아들을 구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갈4:4-7). 성경은 어머니가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번 마태복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마1:2-15) 여기에서 "낳다"로 번역된 단어는 "beget"이며 따라서 아버지가 낳은 아들은 "begotten son"이 됩니다. 이런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기록된 아담과(눅3:38) 하나님의 독생자 즉 "그분께서 유일하게 낳은 아들"이라 기록된 예수님(요1:20;3:16)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아담은 그분의 아들이지만 그는 아버지가 낳은 아들 즉 "begotten son"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분의 "유일하게 낳으신 아들" 즉 독생자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독생자"(only begotten son)라는 단어는 단지 이삭과 예수님에게만 적용됩니다. 그 이유는 이삭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예수님처럼 기적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갔듯이 이삭 역시 자기 자신을 희생으로 드리기 위해 스스로 나무를 지고 희생 제단까지 감으로써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항변하지 않았듯이 이삭 또한 자기 아버지에게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희생 예물로 바쳤듯이 아브라함도 자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희생 예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모형으로 부활한 이삭 즉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삭과 함께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능히 그(이삭)를 일으켜 세우실 줄로 생각하였으므로 또한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모형으로 받았느니라."(히11:19) 아브라함은 이삭의 부활을 보기까지 사흘 길을 갔으며 예수님께서도 사흘 안에 부활하셨습니다. 끝으로 이 두 사람은 예루살렘 근처의 동일한 장소에서 희생 예물로 드려졌습니다(창22:2).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히11:17은 "독생자"라는 단어를 써서 이 두 인물 간의 의미 심장한 관계 즉 예표와 실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25:6과 히11:17은 전혀 모순이 아닙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09-05-07 17:08:55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 히브리서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HEBREWS 기록자: 바울, 기록 시기: 주후 66년경, 성격: 교리, 수신자: 일차적으로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고 실제적으로는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 이름: 이 서신의 이름은 바울이 편지를 쓴 히브리 사람들에게서 유래되었다. 사실 그 당시 이방인들 가운데는 히브리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로마서가 이방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한다면 같은 저자가 기록한 히브리서는 동일한 내용을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들을 동원하여 선포한다. 주제: 유대교의 인물이나 제도보다 훨씬 뛰어나신 그리스도 목적: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보여 주고 그분께 초점을 두게 하는 것 내용: 그 당시에는 여전히 유대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유대인 교사들은 기독교로 회심한 형제들에게 손을 뻗어 그들을 다시 유대교로 복귀시키려 하였다. 이에 사도는 유대인 교사들의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먼저 그리스도가 천사와 모세와 여호수아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레위의 제사장 체계와 그 안의 모든 희생물보다 우월함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사도는 율법의 신비를 아는 것과 그 안의 의식 법들이 제정된 목적과 용례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이 실체가 옴으로써 완전히 폐기된 것 등을 논리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사도는 극심한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을 참으라고 권면하고 배도의 물결에 휘말리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러면서 사도는 구약시대 영웅들의 믿음 열전을 보여 주며 ‘구약과 신약의 동일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우리의 참 소망이 하늘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지만 히브리서는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히브리서는 13장, 303절, 6,913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9, 11장(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핵심 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1:3)핵심 단어: 더 나은(13회), 단 한 번(9회), 하늘(15회), 핵심 구: “더 나은 상속 언약” 히브리서의 그리스도: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 영적 교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왕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2009-05-07 17:07:34 | 관리자
빌레몬에게 보내는 바울의 서신: 빌레몬서 The Epistle of Paul to PHILEMON 기록자: 바울, 기록 시기: 주후 62년경, 성격: 개인 서신, 수신자: 일차적으로는 빌레몬이고 실제적으로는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 이름: 이 서신의 이름은 바울이 편지를 쓴 빌레몬에게서 유래되었다(1:1, 4). ‘사랑이 많은 자’를 뜻하는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로 재산이 많았으며 압비아와 아깁보가 그의 아내와 아들인 것으로 생각된다(2). 주제: 도망친 종의 구원과 회복, 목적: 복음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 내용: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로마로 도망갔다가 바울의 복음 선포로 회심하였다. 바울은 두기고와 함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그가 그를 친절히 대우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삼분의 일 이상이 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회심한 오네시모를 자기의 협력자로 두고 싶었으나 먼저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도망친 종이 주인에게 돌아가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도는 오네시모를 대신해서 간곡하게 그를 용서해 줄 것을 간구한다. 빌레몬서는 1장, 25절, 445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절: “이제는 종으로서가 아니요 오히려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서니라. 특별히 내게 그러하거늘 하물며 네게는 육신 안에서나 주 안에서나 얼마나 더 많이 그러하랴?”(16)핵심 단어: 받아들이라, 핵심 구: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서의 그리스도: 우리의 죄의 빚을 갚아 주시는 주님, 영적 교훈: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라.”
2009-05-07 17:06:58 | 관리자
디도에게 보내는 바울의 서신: 디도서 The Epistle of Paul to TITUS 기록자: 바울, 기록 시기: 주후 65년경, 성격: 목회 서신, 수신자: 일차적으로는 디도이고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자 이름: 이 서신의 이름은 바울이 편지를 쓴 디도에게서 유래되었다(1:4). 디도는 바울이 초기에 회심시킨 사람으로 공통된 믿음을 따라 바울의 영적 아들이 된 사람이다. 디도는 거짓말을 잘하고 악한 짐승 같은 크레테 사람들을 위한 사역자로 임명을 받았다. 주제: 성도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 목적: 선한 행위가 하나님의 구원의 열매임을 가르쳐 주는 것 내용: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온 크레테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교회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행2:5, 11). 사도는 크레테 교회의 사정을 알리는 소식을 듣고 디도를 보내어 모든 일을 정돈하고 모든 도시에 장로 곧 목사를 임명하게 하였다. 디도서에서 사도는 목사의 자격과 교회가 목사를 선임하고 임명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그가 목회하고 있는 지역 사람들의 특성을 말해 주며 거짓 교사들과 싸워서 그들의 이단 교리를 부수고 또 율법에 관한 논쟁으로 발생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피하라고 조언을 준다. 끝으로 사도는 크레테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할 복음에 대해 말한다. 디도서는 3장, 46절, 921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2장(교리와 행위를 위한 지침 사항)핵심 절: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1:5)핵심 단어: 유익한 것, 핵심 구: “그리스도 안에서” 디도서의 그리스도: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3:4, 6), 영적 교훈: “모든 일을 정돈하고 교리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2009-05-07 17:06:2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