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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4월 12일(주일)부터 사랑침례교회는 장소를 이전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새 예배당은 지난 번 장소에서 아주 가까운 데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송래역에서 내리셔서 남부광장으로 나와 곧장 큰길을 따라 200미터 오시면 오른쪽에 쌍용자동차 영업소 빌딩이 나옵니다. 예배당은 이 건물의 5층에 있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도 엽니다.   또 미국의 펜사콜라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김형훈 형제님이 4월부터 교육 목사로 와서 같이 일합니다. 4월 14일부터는 디모데 스쿨도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새 예배당에서 모입니다. 참조하십시오.   또한 사랑침례교회의 사이트를 새로 개설하였습니다. 주소는 http://cbck.org입니다. 구 사이트는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새 사이트에 약도가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05-02 16:09:21 | 관리자
2년 전에 저희는 스터디 바이블과 에스라 성경 사전을 출간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사람들이 스터디 바이블 혹은 에스라 성경 사전 내의 사전에 대해 질문해 오시고 그것을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저희는 390쪽짜리 성경사전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오늘부터 사이트에 올립니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사용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셔도 됩니다. pdf 파일이므로 검색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경사전 뒤에 있는 100쪽의 컬러 지도와 선도 등은 성경공부의 지도/선도 메뉴에서 다운 받기 바랍니다. 특히 외국에 계신 분들에게 이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중국 동포에게 이 파일을 보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된 상황에서 이런 사전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북한에도 이런 파일이 들어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은 어려워도 이런 파일의 유입은 가능하겠지요. 더 좋은 제안이 있으면 언제라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05-02 16:06:39 | 관리자
죄(Sin):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거나 그것과 비교하여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는 생각, 말, 욕망, 행동. 성경에서 죄는 불법, 범죄, 허물, 빚, 불순종, 반역, 거역, 실족, 완고, 무지, 위선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말에서는 죄가 ‘과녁을 벗어난 것’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롬3:23)고 말함으로써 죄가 곧 하나님의 영광에서 벗어난 것임을 보여 준다. 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선행을 통해 죄를 덮거나 죄 값을 낮추려 하지만 성경의 기준에 따르면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다. 이것은 기차 출발 시간이 오후 5시이면 그로부터 1분 지나서 온 사람이나 1시간 지나서 온 사람이나 다 기차를 놓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세상의 종교는 기준 혹은 과녁에서 얼마나 가깝게 갈 수 있는가를 보여 주지만 기독교는 기준 혹은 과녁 자체를 맞추어야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의 죄는 세상이 정한 죄와 다른데 그 이유는 후자가 사람들의 법규나 기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이 땅에 죄가 들어왔음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죄의 형벌과 권능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 없이 사탄의 가장 큰 무기인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길뿐이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서 온 인류를 오염시킨 것과 죄의 본성, 형태, 효과 등에 대해서는 창6:5; 시51:5; 마15:19; 롬5:12; 약1:14-15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과 비교해서 죄는 ‘경건하지 못한 것’(ungodliness)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말에서 종종 경건으로 번역된 말은 원래 ‘하나님을 닮는 것’을 뜻하므로 죄는 하나님과 정반대를 닮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는 측면에서 죄는 범법이라 불리며 영원한 정직성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불법 혹은 불의라 불린다. 또 죄는 모든 범법의 사악한 원천으로서 우리의 첫 조상으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부패이므로 원죄라 불리기도 한다. 성경은 죄를 가리켜 육 혹은 육신, 죄와 사망의 법 등이라 한다(롬8:1-2; 요일3:4; 5:17). 죄의 형벌은 사망이며 하나님은 분명히 아담이 죄를 지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2:17). 그래서 죄를 짓는 혼은 반드시 죽는다. 단 하나의 죄라도 사람의 혼을 완전히 멸절시키는데 이것은 마치 전기 줄의 한 부분이라도 끊어지면 전기가 흐르지 않는 것과 같다. 죄의 사악함은 죄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의 법의 거룩함과 공정함과 선함 등에 의해 또 죄로 인해 놓치는 영원과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 예물의 위대함 등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죄를 알지도 못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죄인 참조.
2009-05-02 15:58:21 | 관리자
지옥(Hell): 이것은 ‘스올’이라는 히브리말과 ‘하데스’라는 그리스말을 번역한 것으로 성경에 총 54회 나온다(시16:10; 사14:9; 겔31:16; 눅16:23). 이 경우는 지옥이란 단어가 실제로 쓰인 경우이고 이 외에도 성경에는 영원한 불, 영원한 멸망, 바깥 어두운 곳, 불 호수, 바닥없는 구덩이 등과 같이 지옥을 묘사하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이런 구절들은 지옥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분명한 장소임을 보여 준다. 지하 세계 선도 참조(81).영어의 지옥 즉 hell은 ‘감추다’ 또는 ‘덮다’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1차적으로는 ‘죽은 사람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뜻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하 세계에서 악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곳’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자의 ‘지옥’ 즉 ‘땅의 감옥’이란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말 성경에 아주 근사한 용어를 허락해 주셨다.   성경은 지옥이 땅의 심장부에 있다고 말한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12:39-40).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가셨고(행2:31)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구약 성도들을 하늘로 옮기셨다(엡4:9-10). 낙원 참조.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에 나오는 지옥은 그리스어 ‘게헨나’를 번역한 것으로 신약에서 열두 번 사용되었는데 이 중 열한 번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게헨나는 ‘결코 끝이 없는 불, 사람이 끌 수 없는 불이 타는 곳’을 의미하며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힌놈’이라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되었다.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도시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유대인들은 대대로 계속해서 불타는 이 골짜기에다 쓰레기, 죽은 짐승, 범죄자의 시체 등을 내다 버렸다. 힌놈 참조. 게헨나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을 표현하는 기술적인 용어였으며 단 한 번도 무덤을 뜻한 적이 없다.지옥을 만드신 창조주는 지옥의 소름끼치는 본질을 강조하시면서 그곳을 어둠의 장소라고 말씀하셨다(마8:12; 22:13; 25:30). 사도 베드로 역시 지옥의 어둠에 대해 기록했고(벧후2:4) 사도 유다도 짧지만 권능 있는 자신의 글에서 지옥의 끔찍한 어둠에 대해 기록했다(유13). 지옥의 특성 중 또 하나는 그것이 깊고 넓다는 것이다. 계시록에는 지옥이 밑바닥 없는 구덩이 즉 무저갱으로 일곱 번 언급된다(계11:7, 17:8, 20:1, 3 등). 지옥으로 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거기에는 그들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이 있고 그래서 그 길이 좁아지기 시작하면 지옥은 스스로를 키운다(사5:14). 또 지옥은 절망의 장소이다(계14:11). 지옥에는 희망이 없으며 지옥에 있는 자들은 산 채로 불 호수에 던져져서 영원히 산 채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옥의 본질이다(계19:20). 예수 믿지 않은 악인들이 궁극적으로 영원토록 살 불 호수 즉 불로 가득한 호수의 위치는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계19:20; 20:14). 불 호수 참조.끝으로 기존의 우리말 성경들은 54회의 지옥 중 반 이상을 ‘스올’로 음역해서 구약에서는 지옥을 완전히 제거하였으며 신약에서도 몇 차례만 지옥으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음부로 번역했다. 음부는 저승과 같은 말로서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 유명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교도 사상이 기존의 우리말 성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교리와 신학에 참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개역성경 잠15:11; 27:20 참조).
2009-05-02 15:55:43 | 관리자
천국(Heaven): 신자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성경에서 하늘로 번역되었다. 하늘, 새 예루살렘 참조. 기존의 우리말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4:17) 등에 나오는 천국은 원래 ‘하늘의 왕국’이며 이것은 결코 신자가 죽어서 가는 천국 즉 하늘나라가 아니다. 신자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딤후4:18에 하늘 왕국(Heavenly kingdom)으로 되어 있다. 하늘의 왕국 참조. 성경의 하늘들 선도 참조(80).
2009-05-02 15:54:55 | 관리자
하늘(Heaven): 성경은 세 개의 하늘이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의 하늘들 선도 참조(80). I. 첫째 하늘 - 새들과 구름이 거하는 곳. “내가 본즉, 보라, 사람이 없으며 하늘들의 새들이 다 도망갔고”(렘4:25; 단4:12; 마6:26; 8:20 비교). 첫째 하늘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는 아니다. II. 둘째 하늘 - 해와 달과 별이 있는 곳.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창22:17, 시19:1 비교).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처음으로 첫째 하늘을 가로질러 둘째 하늘로 가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비록 둘째 하늘이 광대하고 아름답다 해도 첫째 하늘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는 아니다.   III. 셋째 하늘 -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노니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 왕상8:27, 30 비교). 바로 이곳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실제의 셋째 하늘이다. 수 천 년의 노력 끝에 사람들은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로 갈 수 있었지만 아무리 우주 공학이 발달해도 둘째 하늘에서 셋째 하늘로 사람을 데려다 줄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여행은 ‘뇌’에 의해 가능하지 않고 오직 ‘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이런 하늘에 들어갈 수 없고 심지어 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하늘은 셋째 하늘, 하늘의 하늘, 가장 높은 하늘 등으로 불리며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이 여기에 거한다(마6: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하늘에 가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며 자신의 백성이 와서 영원히 거하게 될 처소를 준비하고 계신다(엡4:10; 히8:1; 9:24-28). 한편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모두 죽는 순간 바로 이 셋째 하늘에 간다.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빌1:23). 여기서 ‘몸을 떠난다는 것’은 육체적 죽음을 가리키며 우리 성도들은 죽으면 곧바로 주님과 함께 셋째 하늘에 있게 된다. 중간 대기소나 연옥 같은 장소로 간다는 것은 성경과는 동떨어진 미신이다.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 셋째 하늘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할 도시가 있으며 신구약 성도들은 바로 이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히11:10; 참조 시46:4; 87:3; 요14:2-3). 그런데 이 도시 즉 새 예루살렘은 영원히 셋째 하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류 구속 계획이 끝나면 하늘에서 새 땅으로 내려온다(계21:2). 바로 이 도시 새 예루살렘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천국이다. 새 예루살렘 참조.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94).
2009-05-02 15:54:18 | 관리자
Across The Bridge   I have lived a life of sin, in this world I'm living in I have done forbidden things I shouldn't do I ask a beggar along the way if he could tell me where to stay Where I could find real happiness and love that's true Across the bridge there's no more sorrow across the bridge there's no more pain The sun will shine across the river and you'll never be unhappy again [ organ ] Follow the footsteps of the King, till you hear the voices ring They'll be singing out the glory of the Land The river Jordan will be new,and the sound of trumpet you will hear And you'll behold the most precious place never known to man Across the bridge there's no more sorrow... Across the bridge there's no more sorrow...
2009-05-02 15:53:16 | 관리자
새 예루살렘(New Jerusalem): 이것은 하나님께서 건축하고 만드신 도시 곧 기초들이 있는 도시로서(히11:10)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들이 있는 거룩한 처소이며(시46:4) 신구약 성도들이 가기를 바란 천국이다.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94). 새 예루살렘은 네모반듯하게 놓여 있으며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만 이천 스타디온으로 같다(계21:16). 지금의 척도를 따르면 이 도시는 대략적으로 길이, 높이, 너비가 각각 약 2,240킬로미터 정도 된다. 여기에는 (1) 아버지 하나님(계4:2-3; 단7:9), (2) 아들 하나님(계5:6), (3) 성령님(계1:4; 4:5; 22:17), (4) 거룩하고 선택받은 천사들(히12:22; 계5:11), (5) 스물네 명의 장로들(계4:4), (6) 교회(히12:22-23; 계19:1, 7-8; 21:1, 9-11), (7) 구원받은 이스라엘(히11:16) 등이 거한다. 이 도시의 성벽은 열두 개의 기초석 위에 놓여 있고 거기에는 신약시대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계21:14).새 예루살렘 성벽의 높이는 약 65미터이며 벽옥으로 되어 있다(계21:17-18). 물론 이 성벽은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약 2,240킬로미터 높이의 도시에 약 65미터 높이의 성벽을 쌓는 것은 마치 63빌딩에 2센티미터 높이의 담을 친 것이나 같다.
2009-05-02 15:46:36 | 관리자
진화론 교육 금지 美 캔사스주, 교과과정 삭제 결정  / 과학계 "시대착오적 발상" 반발 美 캔사스주에서는 교육위원회가 진화론을 교과과정에서 삭제키로 결정, 종교계와 과학계간 뜨거운 논쟁이 한창이다. 캔사스주 10인 교육위원회는 11일 생물학은 물론 다른 과학분야에서도 기본원리로 인정되고 있는 진화론을 교과과정에서 제외시키자는 새로운 지침을 6대4로 채택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이 12일 일제히 보도했다. 캔자스주에서는 앞으로 새로운 종(種)의 출현에 대해 영장류가 인류로 진화했다는 식으로 설명했던 영국 과학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결정이다. 종교계는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므로 창조과학(창조론)으로 대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들이나 실험실에서 물고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이치 아닌가. 학교에서 입증되지 않은 진화론을 가르쳐선 안 된다." 한 종교지도자의 말이다. 그러나, 캔자스주내 6개 공립대학 총장을 비롯한 교육계와 과학계는 "위원회의 결정은 캔자스주의 과학수준을 1백년 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일부 교사들은 "캔자스주에서는 더 이상 진실을 가르칠 수 없게 됐다"며 "다른 분야로 전업하거나 다른 주로 이동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 내에는 현재 캔자스주 이외에도 애리조나·앨라배마 등 6개 주가 진화론 폐기여부로 논란을 벌이고 있어 이번 결정은 이들 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99년 8월 13일 중앙일보)    
2009-05-02 15:45:33 | 관리자
전자: 전자는 원자의 핵 주변을 도는 아주 가벼운 입자로서 음 전하를 띄고 있고 핵 주변의 궤도에 배열되어 있다. 핵으로부터 전자까지의 거리는 핵 지름의 10,000배 정도 된다.   양성자: 양성자는 핵에서 발견되는 두 종류의 입자 중 하나이며 전자보다 2,000배 정도 무겁고 양 전하를 띄고 있다.   중성자: 중성자는 핵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입자로서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거우며 전하를 갖지 않아 중성이다. 중성자는 대체로 같은 수의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하며 중성자와 양성자는 핵력(核力)에 의해서 굳게 결합되어 있다. 원자핵 내의 양성자수는 원자의 원자번호와 같다.   원자는 화학 원소로서의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도달할 수 있는 물질의 기본적인 최소입자를 말하는데 각각의 원자는 전기적으로 완전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양 전하를 띈 양성자의 숫자와 음 전하를 띈 전자의 숫자가 같기 때문이다. 원자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핵에서 발견되는 핵력이라는 응집력이다. 원자의 핵에서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창조의 기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기초 물리에서 배우듯이 같은 전하를 띈 입자들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낸다. 그런데 원자의 핵에서 창조주께서는 전혀 다른 법으로 이 같은 현상을 억제하고 계신다. 다시 말해 같은 전하를 가진 양성자들이 핵에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알 수 없는 신비의 엄청난 응집력에 의해 굳게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원자에 대한 가장 신비한 사실 중 하나로서 ‘우주의 근본적인 신비’라 불린다. 만일 이런 현상이 없다면 온 세상 만물은 다 해체될 수밖에 없다.   “온 우주를 지탱하는 시멘트 같은 힘은 중력이다. 원자를 함께 모으는 것은 전자기적인 견인력이다. 그러나 원자의 핵을 다 같이 모으는 힘은 현존하는 물질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무시하는 신비의 힘이다. 이 힘은 지금까지 사람이 이해한 다른 모든 힘과 다르므로 제대로 그것을 묘사할 방법이 없다”(Robert E. Marshak, "PIONS", American Scientific Magazine).   창조주의 큰 손에 의해 마치 큰 스프링처럼 둘둘 말려 압축되어 있는 이 엄청난 에너지는 보통 핵 에너지라 불리며 이 에너지는 위력이 대단해서 원자 폭탄 하나가 수천 톤의 TNT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겨우 관찰할 수 있는 이 작은 원자에 이 같은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겼다는 진화론의 우화를 믿을 수 있을까? 누구라도 원자의 핵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안에 엄청난 지적 설계가 들어 있고 창조주의 놀라운 힘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처음에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분이시다(창1:1).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들고 있기에(히1:3) 원소들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주님의 날이 임하면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타서 만물이 해체될 것이다(벧후3:10-11). 우리 주님은 자신의 재림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3:9). 창조주의 참으심의 끝이 이르기 전에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2009-05-02 15:44:13 | 관리자
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He's got my brothers and my sisters in His hands,He's got my brothers and my sisters in His hands,He's got my brothers and my sisters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He's got the sun and the rain in His hands,He's got the moon and the stars in His hands,He's got the wind and the clouds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He's got the rivers and the mountains in His hands,He's got the oceans and the seas in His hands,He's got you and he's got me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He's got everybody here in His hands,He's got everybody there in His hands,He's got everybody everywhere in His hands,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2009-05-02 15:37:29 | 관리자
Chorus:Kumbaya Lord. Kumbaya. Kumbaya, oh-oh-oh-oh-oh.Kumbaya Lord. Kumbaya. Kumbaya.Somebody needs you Lord Kumbaya. Kumbaya, oh-oh-oh-oh-oh.Somebody needs you Lord Kumbaya. Kumbaya.Somebody's praying Lord Kumbaya. Kumbaya, oh-oh-oh-oh-oh.Somebody's praying Lord Kumbaya. Kumbaya.Oh-oh-oh-oh. Oh, Lord. Oh, Lord. Oh, Lord Kumbaya.Oh, Lord. Lord Kumbaya. I need a blessing Lord. Kumbaya. Kumbaya, oh-oh-oh-oh-oh.I need a blessing Lord. Kumbaya. Kumbaya.I need a miracle Kumbaya. Kumbaya, oh-oh-oh-oh-oh.I need a miracle Kumbaya. Kumbaya.Oh-oh-oh-oh. Oh, Lord. Oh, Lord.Oh, Lord Kumbaya.Oh, Lord. Lord Kumbaya.Bridge:Shower down on me. Shower down on me.I need You to shower down on me.Lord I'm down here praying.Lord I need a blessing.
2009-05-02 15:33:39 | 관리자
This is the dayThis is the dayThat the Lord has madeThat the Lord has madeWe will rejoiceWe will rejoiceAnd be glad in itAnd be glad in itThis is the day that the Lord has made We will rejoice and be glad in itThis is the dayThis is the dayThat the Lord has made.
2009-05-02 15:30:01 | 관리자
We thank Thee   We thank Thee each morning for a newborn day where we may work the fields of new mown hay We thank Thee for the sunshine and the air that we breathe Oh Lord we thank Thee We thank Thee for the rivers that run all day we thank Thee for the little birds that sing away we thank Thee for the trees and the deep blue sea Oh Lord we thank Thee Oh yes we thank Thee Lord for every flower that blooms birds that sing, fish that swim and the light of the moon. We thank Thee every day as we kneel and pray that we were born with eyes to see these things. We thank Thee for the fields where the clovers grow we thank Thee for the pastures where the cattle may roam We thank Thee for Thy love so pure and free Oh Lord we thank Thee. Oh yes we thank Thee Lord for every flower that blooms birds that sing, fish that swim and the light of the moon. We thank Thee every day as we kneel and pray that we were born with eyes to see these things. We thank Thee for the fields where the clovers grow we thank Thee for the pastures where the cattle may roam We thank Thee for Thy love so pure and so free Oh Lord we thank Thee.  
2009-05-02 15:20:23 | 관리자
교리의 중요성과 성경적 의미의 사랑 A: "그래 당신은 환난전 휴거와 후천년 종말론과 네안다르타르 인종을 주장하는 진화론을 믿으며 우리와 교제하지 않는 사람들이 휴거를 받았다가 다시 떨어진다고 말하는 겁니까? 정말이에요? 도대체 당신과 같이 엉터리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하고는 사귈 수가 없습니다." B: "도대체 누구에게 화를 냅니까? 그래 당신은 흐릿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고 환란후 휴거와 환란후 짐승의 출현을 믿으며 환란전 휴거를 단지 상징으로만 받아들이지요. 그래요. 당신은 자유주의자군요. 아니 새 예루살렘 성이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생긴다고요. 이단 교리가 아닙니까? 제발 내게 다가오지 마십시오.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십시오" (위의 글은 미국의 CCC가 1972년 5월에 발행한 "Worldwide Impact"지에 서로 삿대질하는 삽화와 함께 실린 것으로 허가를 받고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믿음 안에서 상대방을 경건히 세워주기 보다 다툼만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논쟁에 휩싸이는 잘못을 범하곤 합니다(딤전 1:4; 6:3-4; 딤후 2:23; 딛 3:9; 빌 2:14). 사실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일으키고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하고 또 사모해야 합니다(고전 14:26; 8:1 등). 반면에 위에 나와 있는 삽화의 글은 은연중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믿음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이 삽화가 실린 동일 발행물(Worldwide 1972년 5월자)은 다음과 같은 인용문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갈라놓는 첨예한 관심사(즉 교리 문제)를 내려놓아야 합니다......우리의 참된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며 비록 신학이나 철학(혹은 교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사랑해야 함을 상기합시다. 저는 이 사랑의 원리를 가지고 모든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된 관심사가 되도록 힘씁시다.(여기서 볼드체나 괄호는 제가 덧붙인 것입니다.) 아마 이같은 철학을 다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될 것입니다. "교리나 교회(혹은 교단) 이슈를 가지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분리되는 것은 지상의 그리스도의 몸을 갈라놓는 행위이므로 죄입니다. 정통의 진위는 교리가 아닌 사랑으로 판가름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를 갈라놓는 교리나 규례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차이점은 묻어두고 긍정적인 방향에서 복음의 핵심만을 부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같은 철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살전 5:21). 교리의 중요성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개념 1. 마태 28:19-20에 나오는 지상명령에서 주님은 가르침(교리)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셨습니까? 제자들의 가르치는 내용은 정확히 무엇과 일치해야 합니까? 그때의 가르침이 "본질적"인 것에 국한되었을까요? 2. 초대교회가 연합하여 강건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행 2:42)? 그들은 교리를 중요시했습니까? 유념하십시오. 진리 없는 연합이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됩니다. 3.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모든 교리를 전파하였습니까(행 20:26-31), 아니면 "실족케 하는" 교리는 생략했습니까? 4. 다음의 진술에서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보십시오: "우리를 분열케 하는 비본절적인 문제는 접어두어야 합니다." 성경에 어디 비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사소한 교리라는 것이 존재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중 어떤 부분은 복음 선포시 제외시켜야 합니까(행20:27)?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맞추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모든 성경 말씀의 경중을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까? 딤후3:16-17을 보십시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유익한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5. 다시 처음에 나오는 삽화의 글로 돌아가 봅시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사이에는 교회의 휴거와 진노의 날(대환란 기간)에 대한 혼란이 있었습니다(살전4:13; 5:1-2; 살후 2:1-5).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왜 주님께서 바울에게 이 서신들을 기록하게 했을까요? 왜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바울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가며 이러한 교리를 가르쳤을까요(살후 2:3-5, 특히 5절)? 과연 바울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실제로 그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무지하길 바울이 원했습니까(살전 4:13)? 6. 과연 우리 주님은 부활에 대해 전혀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사두개인들을 그냥 내버려두셨습니까(마 22:23-33, 특히 29절)? 군중들을 놀라게 한 건 무엇이었습니까(마 22:33; 비교. 마 7:28,29)? 7. 참된 제자 됨의 표시가 무엇입니까(요 8:31-32)? 믿는 이들이 진리를 따라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됩니까(요 13:35; 17:23)? 8.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요 14:21-24; 15:9-10; 요일 2:3-6; 5:2-3 등)? 어떤 목사가 자기 주님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요21:15-17; 벧전 5:2; 행 20:28)? 9. 과연 하나님은 순결한 교리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딛 2:7; 딤전 1:3)?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에서 이탈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딤전 6:3-5; 딤후 2:16-18)? "거슬려 말하는 자들을 어떻게 깨우치라고" 나와있습니까(딛1:9)? 어떤 사람들은 엄히 꾸짖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딛 1:13)?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말해야 합니까(딛2:1)?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의 거짓 교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계 2:14-16)? 10. 그리스도께서 지역 교회에 은사를 가진 사람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엡4;11-12)? 엡4:11-16에 따르면,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이루고 누릴 수 있습니까(비교. 4:1-6)? 교리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위험이 무엇입니까(엡 4:14)? 진리와 사랑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엡 4:15)? 요17:22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 '믿는 이들의 연합'이 어떤 것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사이에 교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까? 11. 우리가 참으로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거짓 교리나 거짓 교사에 대해 경고할 것입니다(행 20:29-31; 빌 3:2; 골 1:28;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참조하기 바람 - 마 7:15-20; 16:6-12; 24:4-5; 눅 12:1,15). 정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적절한 권징을 시행하지 않겠습니까(히 12:6; 계 3:19; 살후 3:5-6; 14-15)? 12.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본에 따르자면 진정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주어야 합니다(비록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나 실족거리가 될 수 있지만)(막 10:21)?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습니까(히 1:9)? 갈1:8-9에서 바울은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사랑은 무엇을 기뻐합니까(고전13:6)? 우리의 사랑이 넘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빌1:9-10)? 13. 진정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을 꾸짖고 경책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습니까? 사람들이 거짓 교사들에게로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딤후4:3). 진리를 거절한 후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딤후 4:4)? 14. 사랑의 사도 요한은 진리와 교리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습니까(요이1-9)? 요한은 가이오를 얼마나 사랑했습니까(요삼1)? 요한의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이었습니까(요삼3-4)? 우리는 무엇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합니까(유3)?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요일 3:18)? 15. 계22:18-19를 읽어보고 신4:2; 12:32, 그리고 잠 30:6 등과 비교해 보십시오. 과연 교리는 중요한 것인가요? 이 글을 위해 필요한 소재를 제공해 주신 은혜 신학교 위콤(John C. Whitcomb) 박사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분의 "종교 철학"(Philosophy of Religion) 요강 pp. 8-14를 보십시오. 결론 교리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적인 사랑은 결코 성경적인 교리의 중요성을 축소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진리를 일점 일획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우리의 바램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진리 없이 참된 연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신자들이 진리에 따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기 직분을 다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연합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엡 4:11-16).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초석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같은 이해와 순종"인 것입니다. 실제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을 가로막는 요인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믿고 순종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교리에 관심을 둔다면 진리가 승리할 것입니다! 이쯤 되면 당신은 앞에 나왔던 삽화의 내용을 성경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 5:21).
2009-05-02 09:55:57 | 관리자
신복음주의(Neo-evangelism) 지도자들은 "우리들의 주요 목표는 교리적 차이를 제거하고, 스스로 믿는 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연합(unity)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복음주의 철학의 기본 개념 중 하나는 사랑이 진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자들은 "사랑은 하나를 만드는 반면에 교리는 나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과연 신약성경에서 사랑이 진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인가? 고린도전서 13장 즉 "사랑" 장(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즉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셋은 항상 있으나 이것들 중의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 어떤 이는 "이 구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사랑은 최고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장(章)을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진리(truth)도 언급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6절에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진리를 기뻐하며"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 소망, 사랑은 미덕(virtues)이지만, 진리는 전혀 다른 위치를 갖는 것이다. 진리는 기준 틀(frame of reference)이며 기초(foundation)이다. 진리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으로 사랑과 같은 미덕은 이 것 없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진리 안에서 기뻐한다. 왜 그런가? 이는 진리 없이 사랑을 정의하고, 사랑을 해석하고, 사랑을 보호하고, 사랑을 인도하고, 사랑을 흘려 보낼 때, 그 사랑은 결국 파국을 가져오는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를 미덕과 같은 수준에 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미덕은, 그것이 진리를 위한 것이 아닐 경우, 시들어 죽게 될 것이다. 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물이 없는 생명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적절한 수로(channel)와 수관(canal)과 수도관 안에 있는 한, 물은 생명체에게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물을 제어할 수 없을 때, 물은 이 행성에서 불 다음으로 대참사를 유발시킨다. 한편으로 물은 절대적인 축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파국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사랑도 그와 같은 것이다.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Definition) 신성한 제한(Divine Definition)(곧, 그 안에서만 물이 흐르도록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수로)이 없는 사랑은 이 땅에서 가장 끔직한 것이 된다. 그것은 수백 만의 사람을 파괴할 수 있고 사탄의 감상주의로 떨어뜨릴 수 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바에 의하면, 어떠한 희생이 따를지라도 영원의 빛 안에서 어떤 사람을 위하여 최고의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사랑이다. 아무튼 사랑이 세계 복음주의에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잊어버리고 감상주의에 빠졌다. 사랑과 진리 사이의 차이를 조명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성경 말씀을 생각해 보자. (역자 주(註) : "definition(정의)"에는 '한정(限定)'의 뜻도 있습니다. 곧 참과 거짓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구별하는 것입니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섞여있는 세상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된 것을 구별함으로써 진리와 순결을 지킬 수 있으며, 이것이 영적 순결을 지켜야 할 우리의 태도입니다. 어떤 특정한 것을 가리키는 정관사(the)를 영어로 definite article 이라고 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구별된 하나님께 속한 것은 특정한 것입니다. 성경이 "The Book"으로 시작하는 것은 세상의 허다한 책 중에서 성경만이 유일한 그 책(the Book)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은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들이니, 너희가 진리를 알 것이요,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궁극적인 자유는 오직 전적인 복종 - 진리에 대한 무조건 항복 - 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진리에 복종한다(Love obeys the truth)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열렬하게 말한다. 요한복음 14:15, 21, 23, 24 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에 대한 복종이 사랑의 최고 형태임을 강조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명령들을 지키라."(15)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23)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 어떤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느냐? - 이것이 소위 사랑에 관한 산성 시험(acid test)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는다면, 사랑에 관해 아무리 많이 이야기할지라도 효과가 없다. 실로 계수(計數)되는 것은 복종이지 말이 아니다. 사랑 없는 복종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복종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복종 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비되는 사탄의 대용품이다. 사랑은 진리를 가르친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여러 번 말했던 한 사람의 예가 나온다. 그러나 정작 복종해야 할 때에 이르자, 그는 복종하지 않았다. 어려움이 닥치자, 그의 결의는 무너졌고, 주님을 부인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는 다정스럽게, 그러나 진리 안에서 베드로와 대면하셨다. "그들이 식사를 한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말씀드리되, 예,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말씀하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말씀드리되, 예,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15, 16) 어떻게 이 만남에서 주신 가르침을 따라 주 예수님께 사랑을 표현할 것인가? 우리는 그분의 양을 먹임으로,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은 무엇이든 다 가르쳐 준수하게 하라 "는 위대한 사명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모든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킴으로 그분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20 장에는 그 위임에 복종했던 사람에 관한 좋은 예가 있다. 그는 에베소인들에게 사랑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가 보여주어야 최고의 사랑을 에베소인들에게 나타냈다. 그가 어떻게 했는가?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라고 말했는가? 사도행전 20:26-27이 그 답을 준다.  "그러므로 내가 이 날 너희로 하여금 증거하게 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내가 깨끗하니라. 이는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너희에게 회피함이 없이 밝히 말하였음이라."  사랑은 아무 것도 버려 두지 않는다 위의 말씀대로 행한 결과, 아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 곧 유다인과 그리스인 모두가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주의의 기초를 건전한 교리적 가르침에 두었다. 이것이 세계 복음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열쇠이다. 갈라디아서 1:6의 바울의 증거는, 갈라디아서 4 장에서와 같이,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무뚝뚝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필연의 것이었다. 에베소서 4 장은 우리에게 어떻게 완전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를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섬김과 사역을 위하여 참된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에게 주셨던 은사들을 주목하라. "그분께서 얼마는 사도로, 얼마는 대언자로, 얼마는 복음 전도자로, 얼마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인격의 형체로 주어진 이 은사들은 모두 교리적 인격(doctrinal person)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진리 안에 포함된다. 이들 은사는 전적으로 계시된 진리의 빛 안에서 복음의 선포와 가르치는 것과 훈련을 포함한다. 신약성경에는 사랑이 교리나 진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 사랑에 관해 에베소서 4:15 에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랑은 진리를 말하는 태도와 방법이다. 사랑은 진리의 종이다. 사랑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소화하기 쉽게 한다. 그러나 결코 사랑이 진리를 가리거나 무시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진리는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인간이라는 전달자의 수중에 있을 때는 매우 연약하며 깨지기 쉽다.  사랑은 독(毒)을 물리친다 과학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모든 살아있는 조직은 독(毒)으로부터 스스로를 정결케 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내부 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끊임없이 이 해독하는 조직을 사용하며 생존한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독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정결케 하는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떠한 조직도 생존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고도로 오염된 환경 가운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사탄은 그의 타락한 본성을 통하여 끊임없이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접근한다.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한 채 어떻게 사역의 성공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성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과연 누가 결정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양떼를 보호한다.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격려하시며, 그 당시의 다른 종교지도자들의 소리를 공감하여 들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던가? 그분의 대답이 마태복음 7:15에 있다.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먹이를 찾는 이리들이라." 오늘날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 대학교나 또는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열(division)보다 나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타협에 의한 평화'이다. 진리는 세상의 거짓 연합(unity)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랑은 오류를 교정한다 어째서 그런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가족들조차 적개심을 가지고 나뉘어지지만, 적어도 그 중 한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로마서 16:17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며 실족케 하는 자들을 지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만약 우리가 주 예수님을 공경하고 사랑한다면, 그분의 진리를 파괴할지 모르는 것들을 주시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하는 자들을 피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배운 교리에 반대되는 것들을 구분하고 분별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피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종교 전체를 추방해버렸다. 선한 생명의 길이나 선한 교리는 항상 나쁜 환경이나 나쁜 교제에 의해 오염된다. 선한 자가 단순히 악한 자와 교제하는 것으로는 결코 나쁜 것을 더 좋게 만들지 못한다. 좋은 것은 나빠지지만, 나쁜 것은 개선되지 않는다. 통에 있는 썩은 사과가 좋은 예다. 나쁜 것은 결코 좋아지지 않으나, 좋은 것은 점점 썩어 간다(고전 15:33). 세속적인 교회 연합을 위하여 교리적 순결을 물 속에 잠그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는 분명히 성경을 통한 성령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2009-05-02 09:54:48 | 관리자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마디로 요약된다: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갈2:20) 당신은 이러한 사실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삶(갈2:20) 1. 믿음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열어주는 열쇠가 됩니다(요일 5:4-5). 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요1:12). 또한 그렇게 주님과 함께 걸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골2:5-6; 고후5:7). 이런 삶은 육신적인 노력이나 투쟁이 아닌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이루신 일입니다(히4:10; 빌2:13; 히13:21). 2.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고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고전15:1-4). 나는 그분께서 완성하신 일을 의지하였습니다(요19:30; 롬4:5). 나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롬6:6; 6:3; 골2:20; 갈2:20)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 되심(골3:1-4; 갈2:20; 빌1:21; 롬6:11; 고전15:22 등)을 믿음으로 죄의 권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구원받은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히4:9-11). 의롭게 되려면(칭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처럼 거룩함 가운데 살려면(성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3.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 있는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먼저 믿는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6:3 -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6:6 - "우리가 알거니와"). 둘째로 믿는 이는 이 일이 실제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여겨야 합니다(롬6:11 - "여기다"라는 단어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즉,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에 나와있는 사실에 기초하며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경우에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4.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신분(지위)과 실제 내 상태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의 신분은 완전하고, 영원한데(골2:10: 고후5:17; 롬8:1) 이는 내가 완전하신 구주 안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고전1:30).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의 모습입니다(엡1:6; 고후5:21). 내 상태라고 함은 매일의 삶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입니다. 나는 롬6:6을 통해 내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신분을 보여 준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실제 삶에서 내 옛사람이 건재해 있는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이 신분과 상태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령님께서 하십니다(고후3:18). 그러나 내가 맡은 부분도 있습니다. 자신을 롬6:6이나 6:11; 갈2:20과 같은 말씀에 있는 존재로 여기면 여길수록 그 말씀의 실현을 실제 삶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신분과 실제 상태와의 괴리는 이와 같이 믿음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실패할 때 느낌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완전한 신분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를 보시는 것처럼 자신들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다"  왜 더 이상 내가 아닌가? "오직 그리스도이다"  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는가? "내 속에(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롬7:18-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나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다."(사64:6)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게서 나사 지혜와 의가 되셨도다."(고전1:30) "죄가 내 안에 거한다."(롬7:20)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갈2:20) "내 자신을 위한 삶."(고후5:15)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한 삶."(고후5:15) "육신의 행위는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음란과 우상 숭배와 마법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분노와 다툼과 폭동과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취함과 흥청댐......""(갈5:19-21)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이다."(갈5:22-23).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8:8). "나는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주한다."(롬8:9). "나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렸다."(골3:9) "나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곧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이 새로워진 사람이다."(골3:10) "내 옛 사람은 속임으로 가득한 정욕들에 따라 부패했다."(엡4:22) "내 새 사람은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피조되었다."(엡4:24). "내 옛 사람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롬6:6) "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골3:3)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골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났다."(골3:1) "나는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갈2:20) "나는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어졌다."(롬6:5)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갈2:20) "지금 내가 사는 삶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갈2:20) "옛 것들은 지나갔다."(고후5:17).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물이다."(고후5:17) "나는 죄에 대해 죽었다."(롬6:11) "나는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다."(롬6:11) "나는 첫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전15:22)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다."(고전15:22). "나는 한 때 죄의 종이었다."(롬6:17;20).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롬6:18-22). 5.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보아야 했습니다. 즉 길 잃고 소망이 없으며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죄인으로서 말입니다(롬3:10-23 등).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에 기초하여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또 죄의 지배와 권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나는 하나님의 관점에 내 자신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번엔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히고 일어나고 하늘의 처소들에 앉은 자로서 말입니다(엡2:5-6; 골3:1-4). 나의 초점은 자아나, 내 자신의 노력, 형편없는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 곧 그분의 영광, 그분께서 완성하신 일, 그분의 완전한 대속, 그분 안에 있는 나의 새로운 생명에 맞추어져 있습니다(고후3:18; 5:17). 나는 그분 안에 있는 나의 신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성령님께서 장차 나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영광에서 영광에(그리스도와 같은 모습) 이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고후3:18; 벧후3:18). 6. 성경을 보면 볼수록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내가 소유한 부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엡1:3; 고후8:9). 그리고 믿음으로 이 부유함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영적인 억만장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사실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나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미 내가 도달한 것을 또한 추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므로(엡5:8) 빛 가운데 걸어야 합니다(엡5:8). 성도이므로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엡4:1; 살전4:1-7). 7. 복음을 한 마디로 압축해 놓은 구절이 요3:16이라고 한다면 갈2:20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 마디로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내용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열쇠는 믿음이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에 있다; 3) 동일시됨이 강조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고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4)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것이지만, 실제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만 역사 한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다; 5) 갈 2:20은 위의 표에 계속해서 설명되어 있다. 
2009-05-02 09:53:0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