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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6508개
  상징적인 차원에서 나무는 위대한 통치자나 인물을 나타내며 가지는 그들의 후손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가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막대기’, ‘그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 등으로 표현되었는데(사11:1; 53:2; 슥3:8; 6:12) 이것은 그분이 다윗 왕의 집에서 나온 왕가의 후손임을 보여 준다(렘23:5; 33:15). 또 가지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합을 보여 주기도 한다(요15:5-6). 겔8:17에서 이것은 음란한 우상숭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사람들이 우상들을 숭배하기 위해 향내 나는 가지들을 가져갔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2009-04-22 20:05:50 | 관리자
  크게 미움을 받는 대상. 성경은 우상들과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을 가증한 것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게 되고 동시에 이런 의식이 더럽고 잔인했기 때문이다(신7:25-26; 12:31). 이 말은 또한 이집트에 거하던 히브리 사람들을 향해서도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이 신성한 것으로 여긴 짐승들을 잡아 희생물로 드리고 먹었기 때문이거나(창43:32; 출8:26) 혹은 그들이 이집트 종교 체제에서 하는 방식대로 음식을 먹는 일에서 달리 행했기 때문이다(창46:34). 또한 히브리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목자들이었는데 한때 이런 목자들이 이집트를 심하게 학대했으므로 이집트 사람들이 히브리 목자들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멸망의 가증한 것’(단9:27)은 일차적으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세운 주피터 형상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마24:15; 막13:14)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것은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성전이 무너진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때 로마의 군인들은 여러 이방신들과 황제들의 형상을 담은 깃발을 들고 다니면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 신들에게 경배를 드렸다(눅21:20). 두 번째 것은 말세의 7년 환난기에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형상을 세우고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사건과 연관이 있다(살후2:3-5). 결국 에피파네스가 세운 형상은 7년 환난기에 세워질 형상의 예표가 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고 유대인들이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환난을 당할 것이다(마24:21; 단12:1).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환난기, 적그리스도 참조.  
2009-04-22 20:05:17 | 관리자
  짐승이나 사람의 몸의 껍질(창3:21; 출25:5; 레7:8). 성경에서 이 말은 피부, 살갗 등으로도 표현되었으며 대부분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짐승의 날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아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무두질과 가죽을 물들이는 일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출25:5; 행9:43). 무두장이 참조.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살갗에 덮었다.”(욥16:15)는 욥의 말은 그의 몸이 종기에 의해 변형되어 더 이상 일반 천을 사용할 수 없음을 뜻한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욥2:4)는 말은 “사람이 가죽을 얻기 위해 다른 가죽을 준다.”는 말이며 이는 곧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음을 뜻한다. 이 말을 통해 사탄은 하나님이 욥의 생명을 취하려 하면 그가 하나님마저 배반할 것이라고 고소했다.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있느냐?”(렘13:23)는 말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악한 습성을 제거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짐승의 가죽은 천막, 부대, 방패, 옷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출26:14; 겔16:10; 마3:4). 부대, 의복 참조.  
2009-04-22 20:04:30 | 관리자
  가정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기관으로 사람의 모든 사회에서 근간이 되는 집단이다(창1:27-28; 2:18-24; 3:16). 이스라엘의 역사는 가족과 부족 즉 지파라는 혈족 관계의 집단에 의해 이어져 내려왔고 처음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같은 가족의 족장이 종교의 중심이 되었다. 유대인들의 경우 어머니는 젖으로 자녀를 양육하며 유년기 예절을 가르쳤고 소년기에는 아버지가 교육을 맡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민족 역사를 가르치며 신앙심과 애국심을 키워 주었다(출13:8; 신4:9). 십계명은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였고(출20:12) 잠언은 그것이 행복의 기초라고 가르친다(잠13:1; 19:13). 아버지, 어머니 참조. 가정이 매우 중요하므로 성경은 가족의 계보 특히 메시아의 계보를 자세히 기록한다(창5; 대상1-8; 마1:1-17; 눅3:23-38). 계보 참조. 기독교의 윤리는 가정이라는 제도와 기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일부일처제를 확증한다(마19:5; 막10:6-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법규는 매우 명백하여 부부간의 결혼 관계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집안의 모든 체제를 존중히 여긴다. 부모는 자녀를 부양하고(딤전5:8) 힘닿는 대로 최선의 교육을 시켜야 한다(출12:26-27; 신6:6-7; 엡6:4).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할 의무가 있으며(눅2:51; 엡6:1; 골3:20) 부모를 공경하고(출20:12; 엡6:1-2) 감사의 보답을 해야 한다(딤전5:4; 요19:26). 그러므로 가족 혹은 가정은 사회의 첫 번째 형태로서 모든 사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좋은 가정이 모이는 교회라야 바른 지역 교회가 될 수 있다.  
2009-04-22 20:03:57 | 관리자
  가나안 남서부 귀퉁이의 고대 도시(창10:19). 이곳은 앗사라 불리기도 했으며 아비 족속에게 속하였고(신2:23) 후에 블레셋에게 속하였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여호수아는 이곳을 유다 지파에게 배정하였으나 철저히 정복하지는 않았다(수10:41; 11:21-22; 13:3; 15:47). 유다는 잠시 이곳을 소유했지만 재판관들의 시대에 이곳은 독립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5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삿1:18; 3:3; 13:1; 16:1-31). 삼손은 이곳의 성문을 가져갔으며 후에 그곳의 큰 신전과 함께 죽었다. 재판관 엘리 시절에는 이곳에 하나님의 궤가 있었다(삼상6:1-21). 가자는 다윗과 솔로몬에게 충성하다가 요담과 아하스 때에 자유를 얻었으나 히스기야가 다시 정복했고(왕하18:8) 그 후에는 갈대아, 페르시아, 이집트 사람들의 지배를 받았다(렘47:1). 가자는 대언자들이 종종 언급한 도시이다(렘25:20; 47:5; 암1:6-7; 습2:4; 슥9:5). 이디오피아 내시가 회심한 것으로 유명한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이르는 길’은 마을이 없으므로 사막 즉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행8:26).  
2009-04-22 20:03:24 | 관리자
  아담과 이브의 맏아들(창4:1), 인류 최초의 살인자. 아벨 참조.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살인죄를 저질렀으며 이를 고백하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멸했다(창4:6-9). 그에게 내려진 형벌에는 육신적인 고난과 궁핍, 양심의 불안감, 사회에서의 격리, 하나님의 호의를 받지 못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창4:16).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과 함께 긍휼도 베푸셨고 그래서 그에게 표를 주셔서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심판자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는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가서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는 이름의 도시를 지었다. 신약성경은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는 경고를 주며(요일3:12) 가인의 길로 가지 말 것을 촉구한다(유11).  
2009-04-22 20:02:28 | 관리자
  I.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에 따라간 마케도니아 사람. 그는 에베소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행19:29). II. 바울이 고린도에서 회심시킨 사람. 그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에 그를 후하게 대접했다(롬16:23; 고전1:14). III. 더베 사람. 그는 고린도에서 와서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여행할 때 그를 돌보아 주었다(행20:4). IV. 요한삼서의 수신인. 요한 서신의 수신인은 ‘사랑하는 가이오’로 되어 있으며 그가 손님을 잘 접대한 것으로 보아 두 번째 가이오일 수도 있다. 이 이름은 로마 사람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2009-04-22 20:01:45 | 관리자
  이스라엘의 북부 도시 단에서 5-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이곳은 헤르몬 산의 남서 부분이 훌레 호수 위의 평야와 만나는 고원 지대에 있었다. 사분영주 빌립은 높고 두껍게 성벽을 쌓았고 카이사르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 빌립보라는 명칭을 더 붙였는데 우리 주님은 변화산에 이르기 전에 이곳을 지나가셨다(마16:13-28; 막8:27-38; 눅9:18-27). 변화 참조.  
2009-04-22 19:10:43 | 관리자
  욥바와 두로 사이에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이곳은 보통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불렸지만 한때는 ‘스트라토의 탑’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러나 헤롯 대왕이 이곳을 재건하고 장식하고 여러 개의 웅장한 건물을 지어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주로 그리스 사람들이 살았고 황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5년에 한 번씩 경기 대회가 열렸다. 이곳은 헤롯 대왕과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통치 때에 유대의 수도였으며 유대가 로마의 통치를 받았으므로 로마 권력의 핵심부였다. 여기에서는 그리스, 로마, 유대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자주 일어나서 한 번은 20,000명이 죽은 적도 있었다. 복음 전도자 빌립의 집이 여기 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행8:40; 21:8) 백부장 고넬료도 여기에 있었다(행10:1-48; 11:1-18). 여기에서 헤롯 아그립바는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행12:20-23). 사도 바울도 이곳을 몇 차례 방문했으며(행9:30; 18:22; 21:8, 16) 여기서 벨릭스 총독 앞에 섰고(행23:23; 24:1-27) 2년 동안 옥에 갇혔으며 그 후에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기에서 출발하여 로마로 갔다(행25:26; 27:1). 사도 바울의 로마 이송 지도 참조(44).  
2009-04-22 19:10:00 | 관리자
  주후 27-36년 사이의 유대인들의 대제사장. 그는 사두개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원수였다. 나사로의 부활 이후에 제사장들과 그의 무리들은 그의 집에 모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짰다. 이런 와중에 그는 민족의 정치적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제안했다(요11:47-54). 물론 그는 무의식중에 이 말을 했지만 이것은 지옥으로 향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예언의 말씀이었다. 이런 음모로 인하여 그리스도는 결국 그들의 손에 넘어갔고(마26:1-5; 막14:1; 눅22:2) 그분은 그 전의 대제사장 안나스 앞으로 끌려갔으며 그는 자기의 사위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그분을 보냈다. 안나스 참조. 가야바는 먼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그분을 심문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정죄한 뒤에 처형하기 위해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다(마26:57-68; 막14:53-72; 눅22:54-71; 요18:13-27). 가야바와 그의 친구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분의 추종자들을 박해했으나(행4:1-6; 5:17, 33) 그분의 승천 이후 몇 년이 지나서 빌라도는 권력을 잃게 되었고 가야바도 로마 총독 비텔리우스에 의해 대제사장 직분을 잃게 되었다. 구약성경의 발람과 마찬가지로 그는 빛을 거부하고 권력과 특권을 남용하며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하고 이교도의 삶을 살다가 무서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  
2009-04-22 19:09:04 | 관리자
  에벳의 아들(삿9:26-41). 그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으로 추정된다(창34:2-6). 그는 아비멜렉을 대적하면서 세겜 사람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부추기고 싸우게 했으나 패배를 당하였다.  
2009-04-22 19:08:27 | 관리자
  에브라임의 작은 산. 이곳은 여호수아의 무덤이 있던 곳이며 이곳의 북쪽에 딤낫세라가 있었다(수24:30). 가아스의 시내 혹은 계곡은 이 산의 기슭에 있었을 것이다(삼하23:30; 대상11:32).  
2009-04-22 19:06:22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는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처음 공격하기 바로 전인 주전 610년경에 대언하였다(왕하24:1).
2009-04-22 19:03:12 | 관리자
  세겜의 아버지. 레위와 시므온은 세겜이 자기 누이 디나를 겁탈하자 그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창34:2-26). 야곱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땅을 사서 거기에 제단을 쌓았고(창33:19) 후에 요셉은 그 땅에 묻혔다(수24:32).  
2009-04-22 19:02:39 | 관리자
  시리아의 유명한 도시. 하맛은 예루살렘과 다마스커스처럼 고대로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이곳은 창10:18에서 가나안 족속들의 거처로 나오며 그 이후에도 넓은 의미에서 가나안의 북방 경계로 자주 언급된다(민13:21; 수13:5; 삿3:3). 다윗의 시대에 하맛의 도이 왕은 그의 동맹자였다(삼하8:9-10).  
2009-04-22 19:01:39 | 관리자
  페르시아 왕의 총애를 받던 인물. 그는 유대인 모르드개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국에서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그의 계획은 에스더에 의해 저지를 당하고 그는 왕의 진노를 받아 교수대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아각 사람이라 불리는데 아각이 아말렉 왕들의 흔한 이름이므로 유대인들은 그가 미디안 족속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가 유대인들을 미워한 이유는 명백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것을 인도하며 그분의 백성은 위험 중에서도 안전하고 그분의 원수들은 반드시 멸망당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말렉, 아각 참조.  
2009-04-22 19:01:0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