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빌립보서 1장 13절의 ‘palace’는 시위대를 오역한 것이 아닙니까? 현대 역본 역자들과 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킹제임스 성경의 오역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96>
대답: 이 문제 역시 장두만 박사가 제기한 것이므로 먼저 그의 지적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헬라어 원문 : εν ολω τω πραιτωριω, 영어 KJV : So that my bonds in Christ are manifest in all the palace,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 모든 궁전 안과 다른 모든 곳에도, 한글 개역판 :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프라이토리온‘(πραιτωριον)인데 이 단어는 여기서 ‘황제의 시위대‘를 의미한다. 물론 때로는 ‘프라이토리온‘이 총독이나 왕의 관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이 당시에 벌써 로마 황제의 궁전 전체에 복음이 증거 되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황제의 궁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셋집‘에 살면서 차꼬에 매여 시위대의 감시를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행28:30).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프라이토리온‘을 ‘궁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역이다.
먼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결박당한 일이 온 궁궐 안과 다른 모든 곳에 드러나게 되었고(흠정역)
장 박사의 주장은 현대 역본 역자들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영향을 받은 성경 주석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성경 비평학이 나오기 이전에 쓰인 「매튜 헨리의 주석」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 emperor, the courtiers, the magistrates, are convinced that I do not suffer as an evil-doer, but as an honest man, with a good conscience. They know that I suffer for Christ, and not for any wickedness.
황제와 대신들과 행정관들이 내가(바울이) 악행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장 박사가 여기서 오해한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궁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언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억울하게 결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이 알려지면서 자연히 궁궐 안에 복음이 전파되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22절을 보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카이사르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 문안하느니라.
여기의 카이사르는 분명히 로마의 황제를 말하며 바울은 로마 황제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 성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궁궐 안에 바울의 소식이 알려지고 복음이 선포되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따라서 빌립보서 1장 13절의 ‘궁궐’ 즉 ‘palace’는 킹제임스 성경역자들이 아주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더 이상 믿음이 없는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지니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잠30:5-6).
2009-05-08 18:40:21 | 관리자
질문: 사도행전 19장 37절에서 ‘교회’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신전’으로 번역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94>
대답: 이 문제 역시 장두만 박사가 제기한 것이므로 먼저 그의 지적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헬라어 원문 : ουτε ιεροσυλος, 영어 KJV : which are neither robbers of churches,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 이 사람들은 교회들의 물건들을 훔치지도 않았고, 한글 개역판 :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여기서 문제의 초점은 헬라어 단어 ‘히에로쉴루스‘(ιεροσυλους)의 의미이다. 이 단어는 KJV나 한글 KJV같이 ‘교회의 물건을 훔치는 자들‘이 아니고 ‘헬라인의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자들‘을 의미한다. 바우어(Walter Bauer)의 헬라어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는 분명히 ’신전 물건을 훔치는 도둑‘(temple robber)을 의미한다. 문맥적으로도 ‘교회 물건을 훔치는 자‘로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바울 사도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므로 에베소 지역에 기존 교회가 있을 리도 없다. 그러나 KJV나 한글 KJV 성경은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KJV나 한글 KJV 성경의 분명한 오역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단어는 ‘교회’입니다. 보통 신약 성경에서 ‘교회’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로서 이것은 ‘부름을 받아 나온 자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회’로 번역된 단어는 ‘히에로쉴루스’로서 ‘에클레시아’와는 다르며 이것은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주로 성전(temple)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에서 ‘전’(temple)이란 신에게 경배하기 위한 장소를 가리키는데 이 경우 경배 대상인 그 신은 그 전에 거해도 되고 거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이 ‘전’은 그 신이 있든지 없든지 그 신에게 경배하는 신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한편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보면 ‘교회’(church)라는 단어는 ‘주의 집, 특히 어떤 특정한 주의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a lord, a specific lord; each house having its own lord.
이 구절에서 마을 서기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도시에 가서 거기 있는 교회 물건을 탈취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여기의 문맥이 특정한 신을 위한 전 즉 다이아나의 신전을 가리킨다고 판단했으며 그래서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특정한 신이 거하는 특정한 집’ - 이 경우에는 여신 다이아나에게 경배하는 집 - 을 나타내기 위해 ‘교회’(church)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사실 1600년대에는 심지어 이슬람교도들의 모스크도 ‘교회’라 불렸으며 ‘교회’ 즉 ‘church’의 뜻은 문맥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같은 신조나 사상을 가진 자들의 모임’(14번째 용례)도 분명히 ‘교회’ 즉 ‘church’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이루었던 모임도 성경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하던 그 천사와 또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에 있던 교회에 있으면서 살아 있는 말씀들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행7:38).
성경을 바로 보는 사람들 중에 여기 나오는 교회가 지금 신약 시대의 교회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도 넓은 의미에서 ‘그들이 부르심을 받아 특정한 신 즉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모임’을 형성했기에 ‘교회’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물론 「옥스퍼드 영어 사전」도 13번째 용례로 이것을 들고 있습니다.
한편 ‘교회’ 즉 ‘church’는 영어에서나 한국어에서나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건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교회가 ‘건물’의 의미로 쓰였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단들도 다 자기들을 가리켜 ‘교회’라고 합니다. 몰몬 교도들도 다 자기들이 ‘교회’(Church of the Latter Day Saints)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몰몬 템플(전)에 가서 경배를 드리면서도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문선명의 통일교도 자기들의 모임과 건물을 교회라고 하며 목양자를 목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들도 자기들 건물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교회에서 도둑맞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에베소 시의 마을 서기가 “이들이 교회에서 물건을 탈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의 용례 면에서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을 서기는 진정으로 신전이 아니라 지역 교회 건물을 의미했을 수도 있습니다. 행19:10을 보면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서 두란노라는 사람의 학교에서 거의 2년 동안 사역을 했고 그 결과 아시아(물론 소아시아를 가리킴)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이 두 해 동안 계속해서 이루어지므로 아시아에 거하던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다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더라(행19:10).
이렇게 복음이 2년 동안 왕성하게 전파되었으므로 그 지역에 이미 여러 개의 지역 교회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교회가 있을 리 없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여기에서 마을 서기가 교회라고 말한 것은 영어 단어 ‘교회’(church)의 넓은 뜻으로 보아도 맞고 이단이나 이교도들이 자기들의 모임/건물을 교회라고 하는 점으로 보아도 맞으며 실제 지역 교회라 해도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킹제임스 성경역자들이 문맥에 맞게 이 구절을 잘 번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9-05-08 18:36:57 | 관리자
질문: 사도행전 8장 37절은 원래 없는 구절이라고 들었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93>
대답: 이 문제 역시 장두만 박사가 제기한 것이므로 먼저 그의 지적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 : 없음
영어 킹제임스 성경: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제외시키고 있는 사본: P45(5세기), P74(7세기), א(4세기), A(5세기), B(4세기), C(5세기), P(9세기),ψ (8/9세기), Byz 등
포함시키고 있는 사본: 630(9세기), 945(11세기), 1739(10세기), 1877(14세기) 등
이 구절은 초기 사본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 계열의 다수사본(Byz)도 이 구절의 삭제를 지지하고 있고 Hodges-Farstad의 다수 사본설에 의한 헬라어 성경도 이 구절의 삭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구절이 사도행전에 원래 있던 말씀이라면 필사자들이 삭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구절은 원독이 아니라는 강력한 뒷받침을 받고 있다.
여기서 장 박사가 사본들의 증거를 대면서 연대를 기록하고 있음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이 구절을 삭제한 사본들 - 거의 대부분이 천주교 사본임 - 의 연대가 이 구절을 포함한 사본들의 연대보다 앞섬을 알 수 있습니다. ‘시내 사본’을 א로, ‘바티칸 사본’을 B로 표기한다고 해서 독자들이 이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로써 그는 다른 현대 학자들과 함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을 따라 “오래된 것이 좋다.”는 주장을 펴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행8:21에 나오는 마법사 시몬의 마음보다도 바르지 못합니다. 성경 사본을 연구하면 몇 가지 증거물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교부들의 글입니다.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나오기 100년 전에 이미 키프리안(주후 200-258)은 이 구절이 본문에 있었음을 확증해 주었습니다(The Treatises of Cyprian I: 1:17). 또한 주후 190년의 이레네우스와 주후 370년의 파시안도 이 구절이 원래 본문에 있었음을 확증해 줍니다. 단지 가이사랴의 오리겐과 유세비우스가 주후 250-350년 사이에 변개시킨 사본들만 이 구절을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사본들 명단 역시 의심스런 알렉산드리아/천주교 사본들 아닙니까? 과연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성경의 파급을 저지하던 천주교에서 교회를 위해 사본들을 보존해 주었다고 믿는 것이 합당합니까?
도대체 근본주의 성서침례교회 목사인 장 박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고백 없이도 침례를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논리적일까요? 한 번 사본의 증거를 따지기에 앞서 앞뒤 문맥을 보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 주며 이 과정 속에서 크리스천 교회가 어떤 일을 실행했는지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 8장 이전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사도 베드로도 10장에 가서야 비로소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스데반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고 이때에 처음으로 빌립이 이방인인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는 장면이 자세히 나옵니다(26-40절).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장면에서 한글개역성경은 이상하게 37절을 ‘없음’으로 삭제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구절이 없었다면 그 다음 구절들이 한 절씩 앞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누군가가 자기의 교리나 신학을 세우기 위해 고의로 이 구절을 삭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36절에서 내시는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무엇이 내가 침례 받는 것을 방해하리요?”라고 물었으며 이에 대한 답이 37절에 나오고 내시는 그 답에 따라 어떤 일을 행합니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흠정역 행8:37).
이 부분에서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 37절을 친히 기록하셨습니다. 즉 복음을 듣고 올바르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명확한 근거로 인해 초대 교회에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침례를 받아 지역 교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교도들의 믿음과 연합한 천주교가 생겨났습니다. 중세암흑시대를 주도한 천주교에서는 모든 사람을 자기들의 체제 하에 가두기 위해 유아세례라는 비성경적 관행을 도입하여 믿음 고백을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도 세례를 주어 어려서부터 천주교인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행8:37의 말씀이 이런 비성경적 관행에 큰 거침돌이 되었기에 그들은 과감히 성경 본문에서 이 구절을 삭제했습니다. 그 결과 한글개역성경,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NIV, NASB 등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 근거한 역본에는 이 중요한 구절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은 이 구절을 잘 보존하여 천주교의 유아세례 교리가 허구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2009-05-08 18:26:23 | 관리자
질문: 십일조를 3일 만에 드릴까요, 3년 만에 드릴까요? 킹제임스 성경은 아모스 4장 4절에서 오역을 하지 않았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84>
대답: 이 문제 역시 장 박사가 제기한 것이므로 먼저 그의 지적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모스 4:4의 경우를 보자. KJV는 “Come to Bethel, and transgress; at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s; and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and your tithes after three years.” (“벧엘로 와서 범죄하며 길갈에서 죄를 더하고, 매일 아침 너희 희생제물을 가져오며, 삼년 후에 십일조를 가져오고 ”; NIV도 이탤릭체 부분은 동일함).
NASB는 “Enter Bethel and transgress; in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your tithes every three days” (“벧엘에 들어가서 범죄하며 길갈에서 죄를 더하고 매일 아침 너희 희생제물을 가져오며, 삼일 후에 십일조를 가져오고” ; NKJV도 이탤릭 부분은 동일함). 재미있는 것은 KJV는 히브리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3일’을 ‘3년’으로 해석했다(이 구절의 히브리 원문은 ‘3년’이 아니라 ‘3일’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히브리 원문대로 ‘3일’이라 번역하지 않고 ‘3년’으로 의역했다는 그의 주장은 과연 맞을까요? 성도들이 3일마다 십일조를 가져오면 현대 교회는 얼마나 부자가 될까요?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간단하게 조사를 해 봅시다.
먼저 「스트롱의 성구용어색인」에 가서 킹제임스 성경이 ‘3년’으로 번역한 단어를 찾아보면 색인 번호가 ‘구약 3117’로 되어 있고 이것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으며 킹제임스 성경의 용례도 나와 있습니다.
yowm (yome); from an unused root meaning to be hot; a day (as the warm hours), whether literal (from sunrise to sunset, or from one sunset to the next), or figurative (a space of time defined by an associated term), [often used adverb]:
KJV - age, + always, + chronicals, continually (-ance), daily, ([birth-], each, to) day, (now a, two) days (agone), + elder, X end, + evening, + (for) ever (-lasting, -more), X full, life, as (so) long as (… live), (even) now, + old, + outlived, + perpetually, presently, + remaineth, X required, season, X since, space, then, (process of) time, + as at other times, + in trouble, weather, (as) when, (a, the, within a) while (that), X whole (+age), (full) year (-ly), + younger.
이것을 통해 우리는 여기 쓰인 히브리 단어 ‘욤’이 주로 ‘날’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말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으며 이 히브리 단어 역시 ‘날’ 말고도 분명히 ‘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용례의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를 보면 밑줄 친 것과 같이 ‘년’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단어가 ‘년’으로 번역된 곳을 찾아가 봅시다. 여러분이 「Englishman's Concordance」를 가지고 있으면 그 책에서 스트롱 번호 ‘구약 3117’을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그 단어가 쓰인 곳과 번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더더욱 편할 것입니다.
조사를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히브리 단어는 거의 대부분 ‘날’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끝나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25장 29절에 가보니 이 단어가 드디어 ‘년’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nd if a man sell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e may redeem it within a whole year after it is sold; within a full year may he redeem it.
사람이 성벽을 두른 도시 안에 있는 집을 팔았으면 그 집을 판 지 한 해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만 한 해 안에 그것을 무르려니와
여기에도 분명히 동일한 히브리어 ‘욤’이 쓰였지만 그 단어를 ‘날’로 하면 안 되기에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현대 역본들은 어떠할까요?
If a man sells a house in a walled city, he retains the right of redemption a full year after its sale. During that time he may redeem it(NIV).
Likewise, if a man sells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is redemption right remains valid until a full year from its sale; his right of redemption lasts a full year(NASV).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한글개역성경).
모든 현대 역본들도 여기에서 동일한 히브리어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기서 의역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그 히브리어의 뜻 가운데 ‘년’이 있음을 알았기에 여기서 정확하게 ‘년’이라 번역했습니다.
자, 더 확신을 갖기 위해 민수기 9장 22절을 보십시다.
Or whether it were two days, or a month, or a year, that the cloud tarried upon the tabernacle…(KJV).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그 위에 남아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장막에 거하고…(흠정역).
물론 NIV, NASV, 한글개역성경도 동일한 히브리어를 여기서 다 ‘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한글개역성경)
이제 우리는 문제가 되었던 아모스 4장 4절의 히브리어 ‘욤’이 ‘하루’로도 번역되고 또 ‘일 년’으로도 번역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의 ‘3년’과 한글개역성경 등을 비롯한 현대역본들의 ‘3일’과 어느 것이 맞겠습니까? 성경에서 십일조가 언급된 구절을 살펴보면 ‘3년’마다 한 번씩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3일’마다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신14:28).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너는 네 모든 소출의 십일조 드리기를 다 마치고 그것을 레위 사람과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네 성문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26:12).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아모스 4장 4절을 ‘3년’이라고 바르게 번역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영감과 보존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구절들로 인해 주눅 들거나 의기소침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식이 부족해서 그들이 제시하는 구절들을 다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을 통해서 말입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고후5:7).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학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완전하신 말씀으로 응징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2009-05-08 18:23:36 | 관리자
질문: 이사야서 65장 11절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갓’을 ‘군대’로 ‘므니’를 ‘수’로 오역하지 않았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82>
대답: 이 문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장 박사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 번역의 문제라고 지적한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히브리어 원문 : ךשׁממ ינמל… ןחלשׁ דגל
영어 KJV: But ye are they that forsake the LORD, that forget my holy mountain, that prepare a table for that troop and that furnish the drink offering unto that number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그러나 너희는 주를 버린 자들이며 나의 거룩한 산을 잊어버리고 그 군대를 위하여 식탁을 마련하며 그 수대로 술을 제물로 제공하는도다.
한글 개역판: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두 단어는 가드(דג)와 므니( ינמ)라는 단어이다. KJV에서는 ‘가드‘를 ‘군대‘로 ‘므니‘를 ’수‘(數)라고 번역하여 문맥상 그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고대의 종교에 관한 지식이 불충분한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오역이 가능했다는 것이 이해는 된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바빌론이나 수리아에서 ‘가드‘는 ‘행운의 신‘(god of fortune)을 ‘므니‘는 ‘운명의 신‘(god of destiny)을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백성을 책망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번역은 KJV와 사뭇 다르다. NKJV는 ‘가드‘(Gad)와 ‘므니‘(Meni)를 번역하지 않은 채 남겨 놓았고, NIV나 NASB는 ‘행운의 신‘(Fortune), ‘운명의 신‘(Destiny)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한글 개역판은 NKJV와 같이 ‘갓‘, ‘므니‘라고 함으로써 오역의 실수는 범하지 않고 있다.
히브리어를 음역하느냐, 번역하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구절의 ‘갓’과 ‘무니’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문제 단어 중 하나인 ‘갓’(스트롱번호 1409)은 이 구절 말고도 창세기 30장 11절에 나옵니다.
레아가 이르되, 군대가 오는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흠정역).
And Leah said, A troop cometh: and she called his name Gad(KJV).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개역성경)
Then Leah said, “A troop comes!” So she called his name Gad(NKJV).
Then Leah said, “How fortunate!” So she named him Gad(NASV).
여기서 뉴킹제임스역(NKJV)은 ‘갓‘을 분명히 군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역자들은 도저히 양심상 여기를 NASV나 개역성경처럼 ‘운이 좋도다!‘라고 번역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자기의 자식들에게 일일이 축복하는 장면이 묘사된 창세기 49장에서 갓에 대한 해석이 명백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갓은 군대가 그를 이길 것이나 끝에는 그가 이기리로다(흠정역 창49:19).
Gad, a troop shall overcome him: but he shall overcome at the last(KJV).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개역성경).
Gad, a troop shall tramp upon him, But he shall triumph at last(NKJV)
심지어 개역성경도 여기서는 갓과 관련해서 ‘군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우리는 이사야서 65장 11절의 ‘갓‘이 킹제임스 성경대로 ’군대‘로 번역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무니‘(스트롱 번호 4507)의 경우 성경에서 여기 한 군데만 나오므로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이 단어는 스트롱 번호 4487인 단어에서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단어는 구약에서 대개 ‘수‘ 혹은 ‘수를 세다‘는 의미의 ‘number’로 번역되었습니다(창13:16; 삼하24:1; 대하5:6; 사65:12 등).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이사야서 65장 11절에서 ‘갓‘처럼 ‘므니‘도 ‘수‘로 잘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현대 역본들과 킹제임스 성경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현대 역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우상 숭배 대상이 ‘갓‘과 ‘므니‘ 둘 뿐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은 그들이 섬긴 이방 신들이 군대처럼 많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번역을 하느냐, 개역성경처럼 음역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처럼 번역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음역을 해도 해석의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고치지 않고도 매튜 헨리처럼 있는 그대로 다음과 같이 주석을 쓸 수 있습니다.
They prepared a table for that troop of deities which the heathen worship and poured out drink-offerings to that numberless number of them.
그들은 이교도들이 경배하던 수많은 신들을 위해 상을 마련했고 수없이 많은 신들을 위해 음료 헌물을 부었다.
성경에 어려운 구절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목사와 교사와 성경 주석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위와 같은 주석이 맞는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주를 버리는 자들이요, 나의 거룩한 산을 잊고 그 군대를 위하여 상을 예비하며 그 수대로 음료 헌물을 제공하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 수를 세어 칼에 넘길 터인즉 너희가 다 몸을 구부리고 살육을 당하리니(흠정역 사65:11-12).
But ye are they that forsake the LORD, that forget my holy mountain, that prepare a table for that troop, and that furnish the drink offering unto that number. Therefore will I number you to the sword(KJV).
물론 NKJV도 사65:12에서 ‘number’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사65:11의 ‘number’와 사65:12의 ‘number’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수많은 이방 신에게 경배를 드렸듯이 나도 그렇게 너희 수를 세어 칼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사65:11의 ‘므니’를 ‘수’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만이 사65:1과 함께 이 구절의 의미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도 또 한 번 영어 킹제임스 성경 이 최종 권위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2009-05-08 18:19:09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라고 지시한 제임스 왕이 동성연애자였다는 게 사실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3>
대답: 그렇지 않습니다. 제임스 왕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유명한 킹제임스 성경 번역을 위임했던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는 비록 영국이 낳은 최고의 군주는 아니었다 해도 많은 이들이 존경을 금치 않았던 위대한 군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혜와 결단을 통해 그는 스코틀랜드의 상호 투쟁하는 족속들을 하나의 통합 민족으로 연합하였으며 그 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병하여 현재 알려진 것과 같은 대영제국의 기틀을 형성하였습니다.
단지 영국의 국교회들만이 영어로 된 성경을 소유하던 때에 제임스 왕은 평민들 즉 일반인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소유할 것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1603년에 제임스 왕은 이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학식 있는 54명의 학자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자기 백성이 영적 무지에 빠져 지내길 바라던 때에 제임스 왕은 자기 국민들에게 자기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책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프랑스어에 능통했습니다.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가르쳤던 제임스 왕은 「담배를 강력히 반대한다」(Counterblast to Tobacco)라는 소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그것은 영국 내에서의 흡연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항상 적들을 두게 마련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인 웰돈(Anthony Weldon)은 조정에서 추방당했고 이에 복수를 맹세했습니다. 제임스 왕이 죽은 지 25년 후인 1650년에 가서야 웰돈은 그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그는 제임스 왕을 동성연애자로 몰아 부치는 글을 썼는데 그때는 이미 제임스 왕이 죽은 뒤라 왕이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웰돈의 이 보고서를 무시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제임스 왕을 비방함으로써그의 이름이 담긴 성경 즉 「킹제임스 성경」을 더럽힐 수 있으며 그 결과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책인 「킹제임스 성경」을 버리고 ‘좀 더 현대화 된’ 역본들로 돌아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최근 들어 끄집어낸 것인데 사실 그전까지 이것은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 그런 종류의 시시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한 번 웰돈의 이 거짓 보고서는, 그 보고서의 저자였던 웰돈과 같이 불순한 동기를 가진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에 의해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1605년 영국 국민들의 손에서 그 참된 성경을 빼앗기 위하여 의회의 의원 전원과 제임스 왕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필사적인 노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605년에 가넷(Henry Garnet)이라는 예수회(Jesuits) 사제의 지도하에 포크스(Guy Fawkes)라는 이름의 로마 카톨릭 교도 한 명이 의회와 제임스 왕을 살해하기 위해 암살용 화약 36통을 가진 채 의회 지하실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살해한 후 그의 자녀들을 감금시키고, 반항했던 자들을 다 죽이고, 영국을 교황에게 충성하는 나라로 재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영어 성경’도 그 계획의 희생물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포크스와 가넷 그리고 8명의 공모자들은 체포되어 다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제임스 왕의 인품에 먹칠을 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을 내는 자들은 한결같이 성스럽지 못한 자리에 동참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2009-05-08 18:15:24 | 관리자
질문: 열왕기상 10장 28절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오역을 하지 않았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79>
대답: 먼저 이 문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장두만 박사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 번역의 문제라고 지적한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히브리어 원문 : הוקמו םירצממ המלשׁל רשׁא םיסוסה אצומו
영어 KJV: And Solomon had horses brought out of Egypt, and linen yarn.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솔로몬에게 이집트에서 가져온 말들과 베실이 있었으니
한글 개역판: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내어 왔으니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 (‘크베’)라는 단어이다. 영어 KJV와 한글 KJV는 이 단어를 ‘베실’이라고 번역했고 한글 개역판은 아예 이 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사실 1611년경에는 고대의 지리나 종교에 관해서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크베’를 ‘베실’로 번역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러나 오늘날 ‘크베’(또는 쿠에)는 지리적 이름임이 드러났다. 그래서 NASB나 NIV는 ‘쿠에’(Kue)라는 지명으로, NKJV는 ‘케베’(Keveh)로 번역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새 역본들이 만들어 내는 혼동을 보고 있습니다. 반격 재료가 모자라자 이제 현대 학자들은 음역과 번역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서 제기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이름은 거의 대부분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역자들이 번역을 할 때 이름이나 장소가 나오면 번역을 해야 할지(KJV처럼 아마 실로) 혹은 음역을 해야 할지(NKJV처럼 케베로)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이 결정은 문맥에 좌우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펜사콜라(Pensacola)라는 도시는 스페인 말로 ‘다섯 개 별’(Five stars)을 뜻합니다. 자, 거기 사는 사람이 스페인 사람을 만나서 “나는 펜사콜라에서 왔습니다.”(I am from Pensacola)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나는 펜사콜라에서 왔습니다.”로 생각할까요? 아니면 “나는 다섯 개 별에서 왔습니다.”로 생각할까요? 바로 이런 문제가 히브리말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크베’ 역시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새 역본들은 이 단어를 장소로 음역 처리해서 솔로몬이 구매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문맥을 보면 그가 구입한 것이 말과 병거 등임을 알 수 있으며 그래서 ‘아마 실’은 문맥에 맞지 않는 듯 하므로 새 역본 역자들은 이 단어를 장소로 음역 처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흠정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집트에서 말과 아마 실을 가져오매 왕의 상인들이 한 값에 아마 실을 받았으며(흠정역)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이를 ‘아마 실’로 번역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의 ‘크베’(Keveh)는 ‘모은다’(to gather)는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실’ 즉 ‘린넨 실’은 아마 섬유를 ‘모은 것’이며 이것을 가지고 다시 아마포를 만듭니다. 사실 이집트는 아마포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네(두로)가 이집트에서 들여온 수놓은 제품과 고운 아마포를 넓게 펴서 돛을 삼았으며 엘리사의 섬들에서 들여온 청색과 자주색 옷감으로 너를 덮게 하였도다(겔27:7).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7:16-17에서 왕이 되는 자는 말과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왕) 자기를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며 말을 많이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지 말지니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후로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하셨느니라. 또 그는 자기를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 자기 마음이 돌아서지 않게 하며 자기를 위해 은금을 많이 쌓지 말지니라.
그런데 솔로몬은 말과 아내를 많이 두었습니다. 특히 그는 이집트의 파라오의 딸을 아내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파라오의 딸을 포함하여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과 에돔 족속과 시돈 사람들과 헷 족속의 여인들이라(왕상11:1).
그러므로 이집트에서 들여온 말과 병거는 솔로몬을 위한 것이었으며 아마 실은 그의 아내들 특히 파라오의 딸을 위한 것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문맥이 이를 지지하므로 현대 역본들처럼 음역을 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또한 “1611년경에는 고대의 지리나 종교에 관해서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주장 또한 거짓입니다. 이 단어를 ‘크베’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은 라틴 벌게이트와 70인역에 근거한 것으로(아담 클락의 주석서 참조) 1611년 번역 당시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산물인 이런 자료들의 허구를 잘 알고 있는 역자들은 신빙성 없는 이런 자료를 단호히 배격하고 문맥에 맞게 이를 ‘아마 실’로 번역한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현대 학자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음역과 번역 문제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걱정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순수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개역성경이나 말씀보존학회 성경처럼 아마를 베로 번역한 것은 오역입니다. 아마 즉 ‘린넨’은 아맛과에 딸린 한해살이 풀이며 베는 삼(hemp)에서 만든 것입니다.
2009-05-08 18:00:47 | 관리자
질문: 민수기 33장 52절의 그림은 오역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76>
대답: 한국에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그룹 중 하나는 성서침례교회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거의 대부분 킹제임스 성경만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들의 모임인 ‘Bible Baptist Fellowship’에서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을 가장 잘 알고 근본주의 침례교회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전히 세례 성경인 개역성경을 고집하며 킹제임스 성경을 배격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내에 성경 이슈가 크게 번지자 당황한 개신교 학자들과 목사들은 근본주의 성서침례교회 출신으로 달라스 신학교에서 공부한 장두만 박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킹제임스 성경을 반대하는 글을 쓰게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배운 대로 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신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한 이분으로부터 성경의 영감과 보존에 대한 바른 교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글을 보면 그의 사상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5에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다. 그 향유의 가치를 헬라어 원문에서는 300 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NIV에서는 1년 분 봉급 (one year's wage)라고 번역했다. 그러면 NIV의 번역을 오역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필자는 이 부분의 NIV 번역은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면 1년 동안에 안식일과 절기를 빼면 300데나리온 정도 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NIV의 번역은 현대인들에게 훨씬 더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1998년 6월과 7월호 「목회와 신학」).
장 박사의 주장대로라면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 데나리온, 에바, 큐빗 등을 모두 ‘1년 치 봉급’, ‘10평’, ‘세 바구니’, ‘50센티미터’ 등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이 부분만 ‘1년 치 봉급’으로 해야 한단 말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정할 권한과 그에 필요한 영감을 그에게 주었습니까? ‘축자 영감’(Verbal or word inspiration)에 대해 이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근본주의 목사 후보생들을 가르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단어, 단어에 영감을 불어넣으시고 단어, 단어를 보존하시지 단지 뜻만을 보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번역할 때 300 데나리온이라 두고 그것이 대략 1년치 봉급이라고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목사와 교사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부디 근본주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뜯어고치는 일에 도움을 주어 자유주의자들을 기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 박사 같이 하나님께서 본문을 보존해 주심을 믿지 못하고 학자들이 원본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철학이 다르므로 여러 구절을 비교해서 설명하는 일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창조와 진화’의 문제처럼 ‘믿음의 문제’이므로 아무리 증거를 대도 상대방이 틀렸다고 믿으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장 박사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상 문제를 논하면서 킹제임스 성경의 오역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히브리 원문 : .....םתיכשׂמ־לכ תא םתדבאו
영어 KJV : and destroy all their pictures
말씀보존학회 한글 KJV :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한글 개역판: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마스키트’(תיכשׂמ)이다.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의 히브리어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는 “show-piece, specifically carved figure of idolatrous symbols”(전시물, 특히 우상적 상징의 새긴 상), “figure”(상) “imagination, conceit” (상상)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구약 원어 신학 사전」도 ‘마스키트’의 의미를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33:52은 영어 KJV나 한글 KJV같이 ‘그림’으로 번역해서는 안되고 ‘새긴 상(像)’ 또는 ‘석상(石像)’으로 번역해야 될 것이다. 히브리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원어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KJV의 번역을 맹신하는 럭크만은 사람들이 KJV의 ‘그림’이라는 번역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각종 그림이나 TV를 즐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스트롱 번호는 4906이며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6번 나오며 ‘형상’(image)으로 2번, ‘그림’으로 2번 번역되었으며 나머지 다른 용례로 쓰였습니다. 어떤 단어든지 두세 가지 이상의 뜻을 갖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그 중 어떤 것을 따르느냐는 문맥이 결정합니다. 도대체 누가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의 히브리어 사전과 「구약 원어 신학 사전」에 최종 권위를 부여했단 말입니까? 이런 사전을 지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불신자들인데 이들이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며 그들의 그림과 부어 만든 형상을 다 멸하고 그들의 산당을 다 허물며(흠정역 민33:52).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교도들의 숭배 대상을 다 부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형상의 그림들을 신전에 걸거나 그려 두고 거기에 경배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에서도 형상과 함께 그림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림과 형상과 산당을 즉 가장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몽땅 다 부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번역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또한 영어에서 ‘picture’는 ‘조각칼 등으로 만든 것을 묘사한 것’이라는 용례도 있습니다(「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두 번째 용례 f항 참조).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최종 결과는 그림이며 이는 우리말 큰사전에 있는 그림의 정의와 똑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지적으로 인해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완전한 성경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 완전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숨은 콧구멍에 있나니 어떤 점에서 그를 수에 넣어야 하겠느냐?(사2:22)
2009-05-08 17:39:52 | 관리자
질문: 일개 역본보다는 오히려 최초의 자필 원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요?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1>
대답: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필 원본에 가치를 부여하신 만큼만 가치를 두면 됩니다.
자필 원본(Original autographs)이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최초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원본’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필 원본은 이미 오래 전에 소실되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므로 사실상 자필 원본에 충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신실한 성경 신자라면 자필 원본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정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위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쉽게 깨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답변의 끝은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자필 원본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계실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예레미야서 36장에 나오는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 즉 예레미야가 기록한 두루마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예레미야서의 몇 장을 면밀히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이에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그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왕과 왕 곁에 서 있던 모든 통치자들의 귀에 그것을 낭독하니라. 이제 왕은 구월에 겨울 집에 앉아 있고 왕 앞에는 불타는 화로에 불이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했을 때에 왕이 펜 칼로 그것을 찢어 화로 위에 있던 불에 던지더니 마침내 그 두루마리 전부가 화로 위의 불에 소멸되니라(렘36:21-23).
21절에 보면 여호야김 왕 앞에 두루마리가 놓이고 그의 종 여후디가 그것을 낭독하는 장면이 나오며 23절에는 여후디가 두루마리의 서너 쪽을 낭독하자 여호야김 왕이 그것을 펜 칼 즉 소도로 일일이 찢어서 활활 타오르는 화로 불에 던져 넣어 그 두루마리를 전소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자필 원본’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우리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감동시키사 재차 두루마리를 기록하게 하셨고 거기에 몇 말씀을 추가하셨습니다(렘36: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니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에 태운 그 책의 모든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에서 받아 거기에 기록하고 그것들 외에도 그와 같은 말씀들을 거기에 많이 더하였더라(렘36:32).
이리하여 ‘두 번째 원본’이 탄생했으며 예레미야 45-51장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재생된 이 ‘두 번째 자필 원본’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그가 바빌론에 이르거든 이 두루마리를 읽고(렘51:59-61) 다 읽은 후에는 돌에 매어 유프라테스 강에 던지라고 말하였습니다(렘51:63)!
이리하여 ‘두 번째 자필 원본’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잠깐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아직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45-51장의 그 두루마리 본문의 복사본이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복사본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그 ‘두 번째 자필 원본’의 ‘복사본’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사실 우리는 그것을 ‘세 번째 자필 원본’이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필 원본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1) 이제껏 출판된 모든 성경에는 예외 없이 예레미야서 45-51장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본문은 ‘두 번째 자필 원본’이나 혹은 ‘세 번째 자필 원본’의 복사본으로부터 번역된 것이다.
(2) 이 사실을 통해 일단 원본이 복사되어 자신의 메시지가 전달된 이상 하나님께서는 그 ‘원본’을 보존하시는 데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으셨음이 분명히 드러났으며 이 점은 그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명백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것 이상으로 자필 원본을 강조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같이 원본을 강조하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자필 원본의 본문이 하나의 오류도 없이 순수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설사 이 시간에 자필 원본이 발견된다 해도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2009-05-08 17:36:11 | 관리자
NIV Omissions by Keith P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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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1 14:40:42 | 관리자
큰글자 성경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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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바이블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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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대역관주성경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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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18:09:39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PDF 파일입니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배포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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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18:08:0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에드워드 힐즈 박사의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파일입니다.
다운받아 사용하시고 마음대로 배포해도 됩니다.
샬롬
2009-04-29 18:07:12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여기서는 웨이트(D.A. Waite) 박사의 「킹제임스 성경을 변호하며」(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와 리플링거(G. Riplinger)의 「현대 성서와 뉴에이지」(New Age Bible Versions) 및 다른 자료를 이용하여 「흠정역 성경」의 우수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흠정역 성경」은 다음의 네 가지 면에서 최근에 나온 현대 역본들보다 우수하다.
(1) 본문(Original Language Texts)(2) 번역자(Translators)(3) 번역 기법(Translation Technique)(4) 신학(Theology)
한 가지씩 사례를 제시하며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기에 앞서 위의 네 가지를 다음의 성경 구절과 비교하면 앞으로 전개할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9-11)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건물을 짓는 데 꼭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요소들은 성경 번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음의 요소들과 비교될 수 있다.
(1) 주건축자(Master builder) : 사도 바울 등과 같이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본을 직접 기록한 사람들(2) 다른 사람들(Builders) : 원본을 이용하여 각 나라 말로 번역하는 사람들(3) 건물을 어떻게 세우는가?(How to build) : 번역의 방법 및 기술(4) 건물을 무엇으로 세우는가?(How to build) : 번역의 재료, 즉 신학
하나님의 건물의 기초나 성경의 기초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번역된 성경의 질이나 그 우수성은 위의 네 가지 요소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며 심지어 그 안의 내용도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흠정역 성경」과 다른 현대 역본들을 비교해 보면 그 질이나 내용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우수성
<1.1> KJV의 구약 본문“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롬3:1-2)
이 성경 말씀이 보여 주듯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맡겨졌고 이들 중에서 성경을 맡아 직접 손으로 복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을 서기관(성경기록관, Scribe)이라고 불렀다. 유대인들에게는 성경을 보관하고 복사하는 일이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했으므로 자연히 서기관들이 큰 대접을 받게 되었고 예수님 당시에는 이들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학자 등과 함께 큰 권세를 지닌 그룹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사 과정을 통해 성경 본문에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며 따라서 이런 필사본에 근거한 본문으로 번역한 성경에는 오류가 있게 마련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약성경 보존을 위해 선택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많은 인본주의자들의 막연한 생각이 단지 상상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다.
1960년, 밀러(H.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 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 줄에서 60 줄이 들어가야만 한다.(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 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한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흠정역 성경」의 구약 본문은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Traditional Masoretic Hebrew Text)이다. ‘마소라’라는 말은 주후 10세기경에 처음 사용된 말이 아니라 주전 400여 년 전부터 사용된 말로서 ‘전해져 내려오다’라는 뜻의 ‘마사르’(masar)에서 파생된 말이며 현재는 ‘전통적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마소라’라는 말은 명사로 쓰일 때에 ‘히브리어 자음 본문’(Consonantal text)을 보존해 온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히브리어 자음 본문’은 전통적인 히브리어 성경 본문으로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WATER’를 보면 그 안에 ‘a’와 ‘e’라는 모음이 있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히브리 단어였다면 모음이 없는 ‘WTR’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물론 마소라들은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이 단어에 다른 모음들을 넣으면 그 단어가 전혀 다른 뜻을 갖는 ‘WAITER’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 주고 단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소라들은 모음 표시를 했다. 예를 들어, 자음 밑에 있는 ‘t’는 ‘아’(ah)라는 발음을 갖고, 점이 세 개 있으면 ‘에’(eh), 점이 두 개 있으면 ‘아이’(ay), 그리고 점이 하나 있으면 ‘에에’(ee) 등으로 발음된다.
이 같은 기호들은 ‘읽는 것을 도와주는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 ‘마트레스렉션스’(matres lections)라 불리며, 이런 기호들을 통해 이방인이나 본문에 익숙하지 않은 유대인들이 히브리 단어를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WATER’와 ‘WAITER’는 이런 기호들에 의해 구분이 된다. 그런데 마소라들은 이처럼 ‘히브리어 자음 본문’을 보존하고 거기에다 모음 부호를 달아준 사람들이다. 특히 유대인이 아닌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이 행한 일이 매우 지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마소라들은 주후 500~1000년경에 매우 많이 존재했으며, 주후 600~700년경에 자음 본문에 모음 부호를 달아 표준화하는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들이 만든 본문을 ‘마소라 본문’ 즉 ‘전통 본문’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역자들은 이 마소라 본문을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채택하였다.
<1.2> NIV, NASB 등 현대 역본들의 구약 본문신미국표준역(NASB)의 서문에는 번역자들이 키텔(Rudolph Kittel)의 「Biblia Hebraica」 최신판과 최근의 어휘 사전, 히브리어와 동일한 기원을 지닌 다른 나라의 말들, 그리고 사해사본 등에 기초해서 NASB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NASB의 구약 본문은 ‘전통 마소라 본문’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들을 이용하여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이미 죽은 키텔의 이름으로 독일 위템베르크 성서공회가 출간한 1937년 판 「Biblia Hebraica」에는 페이지마다 각주에 15~20 군데의 수정 사항이 들어 있으며 따라서 구약성경 전체에 최소한 20,000~30,000 군데의 수정 사항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할진대 과연 이것을 보존된 성경 본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국제역(NIV) 역시 키텔의 「Biblia Hebraica」와 사해사본, 사마리아 모세 오경, 본문을 수정하는 데 사용된 고대 성경 기록관들의 전통, 본문 여백에 있는 여러 종류의 다른 본문들, 70인역,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등을 사용하여 구약 본문을 만들었다고 그 서문에 기록하고 있다.
한편 뉴킹제임스역(NKJV)은 그 서문에서 번역자들이 1967/1977년 판 「Stuttgart Edition of Biblia Hebraica」를 사용했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독일의 슈트트가르트에서 만들어진 본문이므로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라고 불리며 내용 면에서는 키텔의 「Biblia Hebraica」와 거의 비슷하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키텔의 본문은 「Biblia Hebraica Kittel」 즉 「BHK」라고 부르며, NKJV가 사용한 본문은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즉 「BHS」라고 부른다. 이 「BHS」 역시 「BHK」처럼 페이지마다 각주에 수정 사항이 들어 있고 구약성경 전체적으로는 20,000~30,000 군데의 수정 사항이 들어 있다. NKJV의 역자들은 자신들이 종종 KJV의 근간이 된 1525년 판 「봄베르그 마소라 본문」과 비교하였으며, 70인역,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사해사본 등을 참고하고 그것들과도 비교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NKJV 역시 ‘전통 마소라 본문’ 외에 다른 것을 기초로 해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 마소라 사본이라면 다 같은가?새로 출간되는 성경들에 대한 광고를 보면 NIV, NASB의 역자들도 자신들이 ‘전통 마소라 본문’을 사용하여 구약성경을 번역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쉽사리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순진한 독자들은 이들도 KJV의 ‘전통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으로 믿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소라 본문에는 두 종류가 있으며 KJV의 ‘마소라 본문’과 NIV, NASB 등 현대 역본의 ‘마소라 본문’이 매우 다르다. 이들이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들을 현혹시켜 KJV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KJV의 히브리어 본문과 현대 역본들의 히브리어 본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516-1517년에 유대인 랍비들이 출간한 구약성경을 「다니엘 봄베르그판」(Daniel Bomberg Edition)이라 부르며 또한 이를 「제1 랍비 성경」(The First Rabbinic Bible)이라고도 부른다. 그 이후에 1524-1525년에 제2판이 출간되었는데 벤 카임(Jacob Ben Chayyim)이 이를 편집하였다 해서 이 본문을 「벤 카임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라 하며 이 본문은 「제2 대(大) 랍비 성경」(The Second Great Rabbinic Bible)이라고도 불린다.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은 출간된 후 400여 년이 지나도록 표준 마소라 본문으로 인정받아 왔는데 KJV 역자들은 바로 이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을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사용했다.
위템베르크 성서 공회는 1937년 과거에 키텔이 편집한 「BHK」의 제3판에서 KJV의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을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Ben Asher Masoretic Text)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실 1906년과 1912년에 키텔이 출간한 제1판과 제2판에서는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이 사용되었는데 1937년에 출간한 제3판에서는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갑자기 구약성경의 출처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구약성경 전체 중 20,000~30,000 군데의 변개를 시도하였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주후 10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KJV의 기초가 된 ‘전통 마소라 본문’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 이후 1967년과 1977년에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BHK」를 개정한 「BHS」가 출간되었는데 이 마소라 성경 역시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KJV를 제외한 NASB, NIV, 신개역표준역(NRSV), NKJV 등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이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사용한 마소라 본문이 유대인들의 ‘전통 마소라 본문’인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이 아니라 바로 유대인들을 증오한 루돌프 키텔의 「BHK」와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지인 독일 슈트트가르트의 「BHS」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신학 대학에서 성경 본문에 대해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성경의 경우 어떤 본문을 사용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으신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이 아니고 필사본이었지만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 안에 있는 구약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바’(it is written)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말씀’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이 보존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은 것임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란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1.4> KJV의 신약 본문흠정역 신약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은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이다. 「공인본문」은 누가 이것을 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본문」(公認本文)이 아니고 누구나 이를 공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본문」(共認本文, Received Text)이며 따라서 이것을 「수용본문」(收容本文)이라고도 부른다.
「공인본문」은 KJV 신약 성경 번역의 토대가 되었으며 특히 1598년에 출간된 베자의 제5판이 사용되었다. 「공인본문」의 특징은 우선 신약 교회가 거의 1900년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며 그 내용이 변화가 없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은 다수 사본에 근거했기에 ‘다수 본문’이라고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 (혹은 동방) 본문’이라고 하며,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자들이 한결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한다.
「흠정역 성경」 번역에 사용된 그리스어 본문은 상당수의 서로 다른 편집자들에 의해 조합되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는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베자(Theodore Beza),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와 엘제비어 혹은 엘지버 형제(Elzevir Brothers), 아브라함과 보나벤쳐(Abraham and Bonaventure)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에라스무스는 다섯 판에 걸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1516년의 제1판에 이어, 1519년에는 마틴 루터가 그의 역사적이고 매우 중요한 독일어 번역판에 사용했던 제2판이 나왔다. 그 뒤 그의 셋째, 넷째 그리고 다섯째 판은 1522년, 1527년 그리고 1535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에라스무스의 작품은 매우 훌륭했고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모범 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스테파누스는 1546년, 1549년, 1550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1551년에 모두 네 판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베자도 1565년, 1582년, 1588년, 그리고 1598년에 걸쳐 여러 판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KJV의 역자들은 1598년의 베자 성경과 1550년과 1551년의 스테파누스 성경을 주요한 출전으로 사용했다. 1611년에 KJV가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엘제비어 형제가 1624년, 1633년, 그리고 1641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는데 이들은 에라스무스의 표준을 따랐던 베자의 판을 충실히 따라가며 본문을 편집했다. 한편 이들은 1633년에 출간된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서문에다 지금까지의 본문들을 개선한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문구를 새겨 넣었는데, 그 문구는 라틴어로 “textum ergo habes, nunc ab omnibus receptum…”이며, 그 뜻은 “사람들이 수용한 책으로부터 입수한 본문에 따르면…”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 구절에서 「공인본문」 혹은 「수용본문」(Received Text 혹은 Textus Receptus)이라는 명칭이 탄생하였다.
<1.5> NIV, NASB 등 현대 역본들의 신약 본문사도 시대부터 근 1900년 동안 신약 교회는 「공인본문」만을 사용해 왔으며 특히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이 출간된 이후에는, 비록 여러 가지 영어 성경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360년 동안 다른 영어 성경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또한 KJV는 온 세계로 퍼져 나가 말 그대로 전 세계의 보편적 성경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권위를 인정한 성경’이라는 인식 하에 ‘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불안을 느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소위 본문 비평이라는 도구를 도입하여 성경을 한낱 역사책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권위를 떨어뜨리려 했으며, 이를 위해 허영에 들뜬 신학자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도는 결국 사악한 열매를 맺게 되었고, 1881년에 영국 성공회에 속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라는 두 명의 학자들은 「공인본문」에서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본문」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빼거나 변개시키거나 추가한 단어들은 무려 9,970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 본문에 나오는 140,521개 단어의 7%를 차지하는 것이다.
웨스트코트는 영국 성공회의 주교였으며 호르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다.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은 강신술 등에 심취한 영성주의자들이요, 지옥이나 마귀 등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창세기 기록을 신화로 생각한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변개시킨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인본문과 킹제임스 흠정역 신약성경>
1988년에 무어만 박사는 「공인본문」의 단어와 현대 역본들의 근간이 된 「네슬레/알란드판」(Nestle/Aland Edition)의 그리스어 본문의 단어 수를 비교하였는데, 그 결과 「네슬레/알란드판」의 본문이 「공인본문」에 비해 무려 2,886 단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본문」이 1,952 군데를 삭제한 데 비해 네슬레와 알란드의 본문은 그보다 934 단어를 더 삭제하였다. 이만큼 단어가 삭제되면 결과적으로 신약성경에서 베드로전후서에 상당하는 분량이 없어지게 되며 따라서 현대 역본을 읽게 되면 그만큼 짧은 성경을 읽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한편 이들은 단순히 단어만 변개시킨 것이 아니라 성경의 내용 자체를 변개시켜 뉴에이지 신학을 수용하고 있다. 우리는 수학에서 평면이나 입체를 배울 때 두 개의 사물이 같은가 다른가를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공리를 이용한다. 주어진 어떤 것과 동일한 두 개의 사물은 서로 동일하다.
이 규칙을 성경 번역에 적용해 보면 NIV든 NASB든 그 역본들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어 본문이 「공인본문」과 5,600 군데나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지난 1900년 동안 보존해 온 「공인본문」에 근거를 둔 KJV와 절대로 동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NIV나 NASB를 손에 들고 이것이 영어로 보존된 ‘100%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다.다음 장의 표는 신약성경의 각 책에서 200여 구절을 발췌하여 여러 역본의 순수성을 비교한 것이다. 이 표의 매 오른쪽 열은 비교대상인 200 구절 중에서 변개된 구절 수를 나타내는데 「공인본문」에 기초한 「루터 성경」과 「흠정역 성경」을 빼고는 모든 현대 역본들의 부패 정도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독자는 「박사성경」(정동수 저,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 출간)을 참조하기 바란다.
<1.6> 역사적 증거들「공인본문」(TR)이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본문이라는 것은 다음의 사실들이 증명한다.
A. 주후 33-100년 사이의 사도 교회 시대(1) 초기의 사도교회들이 다 TR을 사용했다.(2) 팔레스타인에 있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3) 안디옥의 시리아 교회가 TR을 사용했다.
B. 주후 100-312년 사이의 초대 교회 시대(4) 페시타 역본이 TR을 사용했다.(5) 파피루스 66번이 TR을 사용했다.(6) 북이탈리아의 교회가 TR을 사용했다.(7) 남프랑스 골 지방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8) 영국의 켈트 교회가 TR을 사용했다.(9)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교회가 TR을 사용했다.(10) 왈덴시아파 사람들의 교회 이전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11) 왈덴시아파 사람들의 교회들이 TR을 사용했다.(12) 4세기의 「고딕역」이 TR을 사용했다.(13) 4, 5세기의 ‘W 코덱스 사본’이 TR을 사용했다.(14) 5세기의 ‘A 코덱스 사본’이 TR을 사용했다.(15) 5,255 개의 사본 중 5,210 개의 사본이 TR을 사용했다.(16) 그리스 정교회가 TR을 사용했다.(17) 현 시대의 그리스 정교회 역시 오직 TR만을 사용한다.
D. 주후 1453-1831년 사이의 초기 현대 시대(18) 종교개혁 시대의 모든 교회가 TR을 사용했다.(19) 1516년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TR을 사용했다.(20) 1522년의 「컴플루텐시안 폴리글롯」이 TR을 사용했다.(21)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2) 1525년의 「틴데일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3) 1535년의 프랑스의 「올리베땅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4) 1535년의 「커버데일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5) 1537년의 「매튜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6) 1539년의 「태버너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7) 1539-1541년의 「그레이트 성경」이 TR을 사용했다.(28) 1546-1551년의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TR을 사용했다.(29) 1557-1560년의 「제네바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0) 1568년의 「비숍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1) 1569년의 「스페인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2) 1598년의 「베자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3) 1602년의 「체코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4) 1607년의 디오다티의 「이탈리아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5)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이 TR을 사용했다.(36) 1624년의 엘제비어(혹은 엘지버) 형제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TR을 사용했다.
<1.7> 사본들의 증거1967년도까지 존재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본의 수는 모두 5,255 개이다. 이런 사본들에는 81 개의 파피루스 사본과 267 개의 대문자 사본, 2,764 개의 소문자 사본, 2,143 개의 기도문(혹은 교독문) 등이 있다. 다음의 표는 이런 사본들이 어떤 본문을 지지하는지 잘 보여 준다. 이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현존하는 사본들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하며 이 사실은 초대교회로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오직 「공인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필사하여 각 지역에서 사용했음을 잘 보여 준다.
지금까지 수정된 적이 없는 「공인본문」과는 달리 1898년에 처음 만들어진 「네슬레판」은 1992년까지 무려 26번이나 판을 개정하여 평균 3.1년마다 새로운 판이 개정되어 나왔다. 이 사실은 여러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성경을 뜯어고치려 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고정되어 더 이상 가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배도한 무리들이다.
특히 알란드(Kurt Aland)는 배도한 독일인으로 독일의 뮨스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공인본문」을 믿지 않으며 「네슬레/알란드판」 편집위원회의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의 90% 정도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하여 보관하고 있다. 그는 「공인본문」과 일치하는 사본을 발견할 때면 무조건 그것을 무시하고 그 사본이 과거의 어떤 사본을 베낀 형편없는 사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 하며 사본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TR을 지지하는 사본들은 모두 한 덩어리로 묶어 그 개수에 상관없이 단 하나의 증거로만 사용하려 한다.
이들이 이 같은 철학을 수용한 데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주후 250~350년 사이에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들의 회의가 열려 자기들이 선호하는 사본들을 모두 없애고 「공인본문」을 지지하는 사본들만을 간직하게 되었다는 엉뚱한 이론을 폈는데 알란드와 그의 동료들은 바로 이같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상상 속에서 꾸며 낸 헛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으며 날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 주의에 심취되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영성주의자들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지금은 로마 카톨릭 소수 사본에 근거를 둔, 즉 전체 사본 중 1%에 해당하는 사본에 근거를 둔 NIV, NASB 등의 현대 역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성도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우수성
<2.1> KJV 번역자들의 우수성KJV 번역에 참가한 사람들은 약 57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학문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고 관료나 학자가 되려면 반드시 이 두 개의 언어에 정통해야만 했다. 이들의 원어 실력은 다음과 같이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15, 16세기경 조선 왕조에서 출세를 하려면 한문 실력이 뛰어나야만 했는데 따라서 가문 있는 집안에서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의 중국 고전을 읽고 외우고 공부하게 했다. 자, 이렇게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읽어 술술 외는 사람과 성장한 뒤 대학에 가서 중국 고전을 공부한 20세기의 중국 고전 학자와 과연 누가 더 중국 고전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영어 성경 번역자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경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고,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읽고 술술 외우는 사람과 장성하여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배운 현대 학자와 과연 누가 더 원어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20세기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15, 16세기에 학식 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이 그리스어 놀이였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과연 현대 원어학자들을 KJV가 출간되던 시대의 학자들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자그마치 그 당시 최고의 석학 57명이 모여서 번역 작업을 했다면 과연 누구를 신뢰해야만 할 것인가?
KJV 번역자들이 기술한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드리는 글」(The Translators To the Reader)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단순히 학자가 아니라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1) 이들은 성경을 읽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진리가 없는 경건함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경 기록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경 기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자들은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거나 그것에 능숙하지 못한 자들은 책망을 받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2) 이들은 성경이 무엇이며,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성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영적 싸움을 위한 무기 창고로서 거기에는 방어용 무기도 있고 공격용 무기도 있다. 바로 이 말씀으로 우리는 구원받고 대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채소가 아니라 나무이며 또한 매달 새로운 열매를 내는 생명의 나무이다. 그 열매는 음식이 되며 그 잎은 약이 된다. 성경은 단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혹은 한두 번 먹으면 없어지는 만나 단지나 기름병이 아니며 누구나 배부르게 할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양식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 성경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은 행복한 자요, 더욱이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는 자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3) 이들은 성경을 올바르게 번역해야만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4) 이들은 성경을 읽고 그 안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서 비늘을 제거해 주시는 분이다. 또한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셔서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고, 우리의 욕구를 자제하게 하사 우리로 하여금 금이나 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부디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을 경멸하지 말라. 돼지처럼 귀한 보물을 밟지 말라. 또한 개처럼 거룩한 것을 물어뜯지 말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분께서 손을 내미사 당신을 부를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주의 뜻을 행하기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하라.
<2.2> NIV, NASB 등 현대 역본 번역자들의 열매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책을 저술하는 작가든,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든, 혹은 도자기를 만드는 예술가든 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성경은 열매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말씀이 구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확신하고 번역에 임한 KJV의 역자들의 작품과 성경을 단지 하나의 고대 작품으로 혹은 신화 정도로 이해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이 자기 뜻대로 성경을 번역한 NIV 등 현대 역본들 편집자들의 작품이 어떨지 금방 판단해 볼 수 있다. 이제 현대 역본 편집자들과 이들에게 본문을 제공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사상 및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자.
• 「그리스어 신약성경 수정본문」의 저자인 호르트의 창세기관, 진화론관, 연옥관, 속죄관, 세례관 등을 살펴보자.
나는 에덴동산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또한 아담의 타락도 영국의 시인 코울릿지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그의 후손들의 타락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윈에 대해 읽어 봤소? 그 이론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소. 어찌 됐든 그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오…그러나 나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끈 책은 다윈의 것이요. 비록 그것에 대해 남들이 무어라 할지는 몰라도 그 책은 우리가 동시대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 책이오. 만일 그렇다면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오.
나는 모리스가 말로써 연옥을 부인했다는 것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의 세 가지 주요한 논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확고부동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1) 영원이 기간과는 상관없다; (2) 회개의 힘은 현생에만 제한되어있지 않다; (3)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회개하든 회개하지 않든 영원은 드러나지 않는다. 현 시대 사람들이 이 중 둘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즉 연옥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신학을 영적이 아닌 것으로 즉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기까지 고통 당하셨다는 것보다 더 성경적이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그것은 거의 보편적 이단 교리의 한 측면이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영아 세례를 통한 중생’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지킨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관점이 복음주의자들의 관점보다 더욱더 나를 진리로 가깝게 인도하는 것 같다…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몸의 일원으로서 하늘나라의 상속인임을 보장해 준다.
• 「그리스어 신약성경 수정본문」의 또 다른 저자인 웨스트코트의 창세기관, 기적관, 기도관 등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창세기의 첫 세 장이 문자 그대로의 역사를 제공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눈을 뜨고 그것을 읽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누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세 장의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여 주고 있음을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인간적으로 말해서, ‘태양의 떠오름’에 대해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당신이 느낀다면, 모세와 다윗 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사용했던 것처럼 분명히 그분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셨어야만 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사실 나는 시(詩)가 역사보다 수 천 배나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적 이야기 같은 것은 읽어 본 적이 없으나 직관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서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발견했다.나는 많은 학식과 경험을 가진 몇몇 다른 감독들과 의논했고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에 관하여 우리 교회가 취할 태도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공식예배에서 교회 전체와는 별개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금지해야만 한다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러나 개인기도 때에는 그러한 제약을 두지 않았다.• NIV의 주 편집자 팔머(Edwin Palmer)는 자신이 편집한 NIV가 가르치는 이단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랑한다.NIV는 현재 몇몇 정통 기독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큰 오류, 즉 ‘거듭남이 오직 믿음에 달려 있으며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잘못된 개념임을 보여 준다.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분명한 구절은 사실상 성경에 거의 없다.•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서방 세계와 동방 세계의 중보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NASB의 창시자는 「동서양 저널」(East-West Journal)이 ‘새 시대 운동과 동서양의 합성을 위한 시작’이라고 칭했던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 새 역본의 편집자는 자신이 변개시킨 믿음의 신조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지금까지의 변화들 - 즉 자신이 변개시킨 것들 - 은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것들은 반드시 새로운 신학의 보물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새’ 역본 편집자들이 그리스어 어원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한 참고 사전은 히틀러의 추종자(루돌프 키텔)가 집필한 것으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전쟁에 관련된 소송에 회부되어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인 것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NIV 편집위원회의 몰렌코트 박사(Dr. Virginia Mollencott)는 “동성연애(Lesbianism)는 항상 나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왔다.”고 자랑스레 말한다(1991년 6월호 성공회 「위트니스」지). 그녀가 동성연애를 찬성하기 위해 저술한 「동성연애는 내 이웃인가?」라는 책은 성경이 ‘매춘’, ‘폭력에 의한 갱들의 강간’ 등과 같은 형사상의 범죄 행위들만을 책망하며, ‘동성끼리의 진실한 동성연애’는 책망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사실 그녀의 이 같은 사상이 그대로 NIV에 반영되어 있다.결국 ‘의’(義)를 ‘부’(副)로, ‘십자가’를 ‘왕관’으로, ‘새로운 창조’를 ‘모방’으로 대치시킨 ‘새로운’ 역본들로부터 ‘새로운’ 기독교가 태동되어 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성경 역본들의 사악한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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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18:06:1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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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잠시 보기만 해도 바른 성경과의 차이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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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18:04:54 | 관리자
성경이 다르다!
성경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과서입니다. 교과서가 부실하면 부실한 학생이 배출됩니다. 마찬가지로 부실한 성경은 부실한 크리스천을 - 심지어 가짜 크리스천을 -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4:4)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말씀(단어)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며 이에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모든 말씀(단어)을 영원토록 지키고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하나님께서 이 말씀(단어)들을 지켜 주셨기 때문에 잠언 기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지난 6,000년 동안의 인류 역사를 통해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지옥으로 몰고 가기 위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개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완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손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어로 ‘전통 마소라 본문’을, 그리스어로 ‘공인 본문’을 완벽하게 보존해 주셨고 이 둘을 근거로 보통 사람이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성경 즉 ‘전 세계의 공용어’인 영어로 완벽하게 보존된 표준 잣대 성경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20년 이상 이 성경과 다른 역본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공학을 전공하는 경험주의 학자로서 수십 차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고 번역하면서 이 성경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단어) 보존 약속에 따라 지금 이 시간에도 완전히 보존된 성경이 우리 손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수많은 성경 중에 어느 것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많은 분들이 - 심지어 크리스천들조차 -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다 같은 것 아닙니까?”, “성경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무슨 큰 문제가 있습니까?” 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참으로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 성경이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사실이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뉴스여야 하고 따라서 성경 이슈가 당신의 삶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가장 중대한 문제이어야 합니다!”
자 이제 간단하게 몇 구절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비교
구절
킹제임스 흠정역(KJB)
개역, NIV, NASB 등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9:13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19: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20:16
이와 같이 마지막인 자가 처음이 되고 처음인 자가 마지막이 되리니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으니라.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23:1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없음
막10:21
이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길로 가서 네게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막10:23
예수님께서 주변을 둘러보시고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려우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막11:26
그러나 너희가 만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범법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없음
요6:47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고전5:7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골1:1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딤전6:5
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이득이 하나님을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비록 목사나 신학자가 아니라도 혹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모른다 해도 위의 표에 밑줄 쳐진 부분이 성경에 있어야만 함을 신자라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없다면 교리가 약화되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실로 여기 나타난 차이는 너무나 명백하며 이로 인해 엄청난 신학/교리/믿음의 차이가 발생하므로 바른 성경을 선택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한글개역성경, NIV, NASV 등의 모든 현대역본에서는 신약 성경에서만 자그마치 5000여 군데가 변개되어 있으며 베드로전후서에 상응하는 분량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본 웹사이트는 성경 문제와 관련된 이와 같은 진실을 보여 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께서 기록된 성경 말씀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한다면 ‘어떤 성경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논하는 성경 이슈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정말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만히 음미해 보기 바랍니다. 신학자나 목사나 교사의 말에 의존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독자의 가슴 속에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진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분[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성경의 진실 시리즈에 담겨 있는 '개역성경분석', '성경과 교리' 그리고 '매직마커 1'이라는 글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2009-04-03 11:24:06 | 관리자
서문을 대신하여 제임스 왕께 드리는 글
본 성경의 번역자들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아일랜드의 군주이시며
믿음의 옹호자이신 제임스 왕
곧 지극히 높으시고 강력하신 통치자
제임스 왕께 이 글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긍휼과 화평이 왕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존엄하신 주권자(主權者)시여, 전능하신 하나님 곧 모든 긍휼의 아버지께서 고귀하신 폐하를 보내시어 우리 영국 백성을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셨으니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복은 참으로 크고 많다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서구 세계의 빛나는 별이시던 엘리자베스 여왕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행복한 추억을 남기고 서거(逝去)하신 뒤 우리 나라의 안녕(安寧)을 바라지 않는 많은 무리들이 지금이야말로 두껍고 짙은 어둠의 구름이 이 땅을 뒤덮어서 사람들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이 불안한 국가를 누가 다스리게 될지도 몰라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폐하께서 세찬 태양처럼 나타나사 그러한 모든 억측(臆測)의 안개를 말끔히 일소(一掃)하시고 그로 인해 불안해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는 안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확고한 칭호에 의거하여 폐하께서 세우신 정부와 폐하의 황태자를 우리가 바라볼 때 이 일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평화와 안녕과 더불어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어 참으로 큰 안위가 됩니다.
우리에게 많은 기쁨이 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우리 가운데서 계속 선포될 수 있다는 복(福)보다 우리 마음을 더 기쁘게 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의 모든 부(富)를 능가하는 가장 귀중한 보물이니 이는 그 말씀에서 나오는 열매가 이 일시적인 세상에서 퍼져나갈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을 높은 하늘에 있는 저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폐하의 고명(高名)하신 전임자께서 물려주신 이 나라에서 그 말씀을 붙들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유지하며 이를 원근 지방에 확산하는 일에 사람들이 확신과 결의를 가지고 전진하는 것이야말로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경건한 모든 백성의 마음과 폐하를 굳게 결합시켜 주는 원동력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폐하의 존함(尊啣)이 모든 백성 가운데서 고귀하게 되며 자기들이 위로받는 가운데 폐하를 바라보고 폐하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힘입어 백성들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 창시자(創始者)가 되시며 거룩한 일꾼이 되시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될 것입니다.
실로 백성들의 이러한 만족은 줄어들거나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늘어나 힘을 얻고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집을 향한 폐하의 열심(熱心)이 줄어들거나 차가워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뜨거워져서 기독교계의 저 먼 곳에서도 밝히 드러나고 있음을 그들이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진리를 옹호하는 글을 쓰사 (그 글로 저 죄의 사람에게 치명타를 가해 회복 불능으로 만드셨으며) 또 날마다 집에서 경건하며 식견(識見) 높은 연설을 하시고 하나님의 집에 자주 들러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시며 그곳의 교사들을 위로해 주시고 참으로 부드럽고 사랑이 많으사 양육하시는 아버지로서 교회를 돌보고 계심을 백성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이처럼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열정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는 증거가 수없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 성경 곧 우리 번역자들이 겸손하게 폐하께 바치는 성경을 완성하고 출판하시기 위해 지금까지 친히 보여 주신 뜨겁고도 지속적인 열망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사려 깊은 판단하에 우리보다 앞서간 훌륭한 분들이 우리말과 다른 외국어로 이루어 놓은 여러 성경들을 비교해 가면서 거룩한 원어에서 더 정확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셨으며, 그 이후에는 그 작업을 맡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격려하시고 그 일이 신속히 진행되도록 촉구하셨으며 이처럼 중요한 일에 마땅히 요구되는 매우 품위 있는 방식으로 그 번역 작업이 진행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우리의 지속된 노력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작업으로 말미암아 영국의 교회가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을 크게 소망하면서 우리의 왕이시고 주권자시며 이 작업을 창시하시고 주관하신 폐하께 이 성경을 바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사례를 살펴볼 때 늘 이런 종류의 일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모든 일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왔지만 우리는 폐하와 같이 식견이 높고 현명하신 군주께서 이 일을 인정하고 지원해 주시기를 감히 바라는 바입니다. 폐하께서 우리의 수고를 승인하고 받아 주시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영예와 위로가 될 것이며 이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모함과 혹독한 비판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이겨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국내외에서 교황의 추종자들에 의해 모함을 받을 것이며 그들은 우리에게 해악(害惡)을 끼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무지와 암흑 속에 가두어 두기 원하지만 우리가 부족하나마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더욱더 널리 알리는 일을 수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자만에 차서 자기들의 길만을 고집하는 형제들에게 중상모략을 당할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직접 틀을 세우거나 만든 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내적으로는 진리와 선한 양심의 순결함에 힘입어 굳건히 서서 주님 앞에서처럼 단순하고도 순전한 길들로 걸으면서 평안히 거할 것이며 또 외적으로는 폐하의 은혜와 호의의 강력한 보호를 받아 굳건히 설 것입니다. 이같이 폐하께서 보호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한 정직한 수고와 노력에 힘을 북돋아 주어 거친 비판과 무자비한 비난을 이겨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主)께서 많은 행복한 날로 폐하께 복을 주시고 자신의 천상의 손을 펴사 놀랍고도 비상(非常)한 은혜로 폐하를 부요하게 하셔서 이 마지막 때에 행복과 진정한 지고의 복락(福樂)으로 인해 온 세상이 경탄하는 분이 되게 하시기를 바라오며 이로써 이 일이 우리의 주(主)시요, 유일한 구원자(救援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교회의 유익이 되기를 간구하는 바입니다.
2009-03-20 15:58:56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온 인류의 생사화복(生死禍福)과 온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啓示)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분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를 사람에게 전달하시는 것을 뜻하며 보통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것으로 사람의 양심이나 해, 달, 별 등과 같은 자연 만물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시19:1-6, 롬1:18-32). 사람이 이런 계시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이런 계시는 결코 사람을 구원시키는 능력이 없습니다. 특별 계시에도 하나님의 말씀, 기적, 우림과 둠밈, 천사, 예수 그리스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객관적인 형태로 하나님을 계시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며 그 외의 것은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과 그분의 크고 온전하신 뜻을 이해하고 죽은 몸을 살리는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온 과정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먼저 하나님께서는 주전(主前) 1500년부터 주후(主後) 100년에 이르기까지 약 1,600 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40여 명의 거룩한 사람들을 예비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왕, 정치가, 제사장, 세리, 어부, 의사, 목자, 사도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손 밑에서 완전한 성경을 기록하였는데 우리는 이를 ‘예비’(豫備)의 단계라 부릅니다.
이처럼 사람들을 예비하신 뒤에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시기에 ‘영감’(靈感)이라는 단계를 통해 이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계시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영감이란 단어는 ‘숨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대해 성경은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다”(벧후1:21)고 확실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한 글자 한 글자 숨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며 우리는 이를 ‘총체적 축자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소위 자필 원본(自筆 原本)이라고 하는 최초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으로 주어졌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보존’(保存)이라는 단계를 통해 자신의 말씀을 순수하게 간직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글자마다 친히 숨을 불어넣어 완전하게 만드신 뒤에 그 말씀을 전체적으로 완전하게 보존하시지 않는다면 영감의 단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완전한 보존’이 없는 ‘완전한 영감’이란 의미가 없으며 하나님의 속성 역시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감을 ‘일차적인 기적’이라고 한다면 보존은 ‘이차적인 섭리’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보존에 대하여 성경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사40:8)고 확증해 주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도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고 말씀하심으로써 말씀의 보존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사용하셔서 대부분의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기록하고 보존하게 하셨으며,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셔서 신약성경 전체를 그 당시 온 세상의 공통어이던 그리스어로 기록하고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보존의 단계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완전한 일을 행하셨는데 이 단계를 통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까지 성경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오는 경로에서 그 다음 단계는 ‘번역’(飜譯)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후 100년 이후에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 나라의 말로 번역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 결과 수많은 역본(譯本)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영감과 보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기록된 자필 원본이 이 넓은 세상 곳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시키지 않고 거기에서 각 나라의 말로 번역된 성경이 개개인을 구원시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번역의 단계 역시 영감이나 보존의 단계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번역을 위한 대본(臺本)입니다. 자필 원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필사(筆寫)한 사본(寫本)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신구약성경 전체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사본들을 정리하여 번역을 위한 대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렇게 정리된 대본을 본문(本文)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볼 때 번역을 위한 본문이 한 종류가 아니고 두 종류라는 점입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든지 그것을 찍어 내는 틀이 어떠하냐에 따라 생산되는 제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 역본 역시 본문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내용이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경우 유대인들이 순수하게 보존한 「전통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특권 의식을 가진 그들이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보존했기 때문에 20세기 초까지 이 마소라 본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欽定譯) 성경」(King James Version, KJV)의 구약은 바로 이 본문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루돌프 키텔(Rudolph Kittel)은 「전통 마소라 본문」을 수정하여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를 편찬했으며 이 본문은 후에 2, 3판을 거쳐 1967/1977년판 「슈트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BHS)로 개정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변화는 구약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약 20,000 군데가 수정된 것을 뜻하며 또한 「신국제역본」(New International Version, NIV)과 「신미국표준역본」(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이 「BHS」를 근거로 구약을 번역했기 때문에 이러한 개정 내용이 그대로 그 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소라 본문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으며 따라서 어느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구약성경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흠정역 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은 그리스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인데 이 본문의 특징은 신약 교회가 거의 1,900 년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며 그 내용이 전혀 변화가 없이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다수 사본에 근거했기에 「다수 본문」이라고도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서방 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 (혹은 동방) 본문」이라고 하며, 루터와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이 한결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 본문」이라고도 합니다.
프로테스탄트들과 침례교인들이 한결같이 「공인 본문」만을 사용해 온 것과는 달리 로마 카톨릭 교회는 처음부터 「소수 본문」만을 고집해 오고 있습니다. 「소수 본문」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이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은 몇 개 되지 않으며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신성, 대속, 삼위일체 및 기타 여러 가지 중요한 성경 교리에 대한 잘못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보존되어 온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내 사본」이 있으며 바로 이 두 사본에 근거해서 1881년에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공인 본문」을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 본문」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 본문」에서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변개시킨 단어는 무려 9,970 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 본문에 나오는 140,521 개 단어의 7%나 되는 것입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후에 1898년에는 네슬레가 티센도르프의 제8판과 위마우스의 제3판과 함께 신약성경 본문을 편집하여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이 그리스어 성경이 현재 출간되고 있는 모든 현대 역본의 대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흠정역 성경」의 내용과 다른 모든 현대 역본의 내용은 그 본문이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새로운 역본으로 인한 새로운 기독교와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수백 가지 역본이 출현하면서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고르듯 자기 뜻에 맞는 역본을 선정하고 있으며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비치하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이 구절은 이 역본이 좋고 저 구절은 저 역본이 좋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흠정역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자신의 말씀의 보존과 전파를 위해 공통 언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이로 인한 현시대의 특성을 들 수 있습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군에 의해 무참히 패배를 당한 후 보잘것없던 섬나라 영국은 온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국가를 통해 두 가지 일 즉 자신의 선민인 유대 민족을 보호하는 일과 자신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을 수행하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영국을 통해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합쳐진 성경전서가 나오게 되었고,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 지배하의 암흑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복음의 빛이 나오게 되었으며, 산업 혁명 등을 통해 인류의 복지 증진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영어 중심의 세계 판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어 이제는 영어 자체가 전 세계의 공통어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시므로 지난 400 년간 영어를 사용하셔서 전 세계에 말씀을 전파해 오셨으며 지금도 번역본을 사용해서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 계시되 특별히 전 세계의 공통어가 된 영어로 기록된 「흠정역 성경」을 표준 척도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1611년 「흠정역 성경」이 나오기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영어 성경이 여럿 있었지만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읽혀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해주신 성경이라는 호칭 즉 「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 AV)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흠정역 성경만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흠정역 성경」은 전 세계 수많은 민족이 사용하는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8, 19세기 미국 및 영국의 부흥과 전 세계 복음 전파에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시켰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경’(The Holy Bible)하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흠정역 성경」의 우수함에 대해 「톰슨대역 한영성경」 편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평을 했습니다.
성경의 내용 번역은 물론 신학 용어 번역에 있어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기본 역본이 없다면 상당한 혼돈과 분파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킹제임스 역본'이라는 걸출한 역본이 있어서 1611년 이래 수백 년 동안 성경 역본과 신학의 기본 용어를 제공하는, 만인이 수긍하고 공인하는 기본 자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는바 이 점에 있어서 '킹제임스 역본'의 공헌은 잊히지 아니할 것이다. 상술하면 '킹제임스 역본'은 영어는 물론 세계 각 나라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 때 참고가 되는 제1의 통일자료로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어의 세계적 발흥과 아울러 '킹제임스 역본'의 내적 우수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톰슨대역 한영성경, 기독지혜사, 부록 1, pp.4, 1989).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기만 하면 행위와 무관하게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천국에서 살게 된다고 믿을 터인데 사실 이 같은 믿음의 근거는 단 하나 즉 ‘기록된 성경 말씀’뿐입니다. 이 ‘기록된 말씀’ 곧 성경이야말로 우리의 육적, 영적 모든 활동의 표준이 되는 척도이며 따라서 이런 표준 척도는 시대에 따라, 사람의 눈이 밝아짐에 따라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참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논쟁이 크리스천들 간에 뜨겁게 진행되고 있으며 100 종이 넘는 책들이 소위 ‘성경’이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또한 1993년 말에 미국성서공회는 「새 시대를 위한 좋은 소식」(Good News For A New Age)이라는 뉴에이지 성경도 버젓이 출판했습니다. 이처럼 상대적 윤리가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지난 400여 년 동안 단 한 번의 개정 없이 성도들의 표준 척도가 되어 온 「흠정역 성경」을 번역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본 성경의 번역에는 총 8년이 소요되었으며 목사, 변호사, 의사, 엔지니어, 과학자, 신학자,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번역과 교정 작업에 참여하고 아낌없이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조언을 주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의 노고가 없었으면 본 성경의 출간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이에 대해 영광의 주님께서 하늘의 보상으로 충만히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성경의 출간을 위해 재정적으로 도와주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주님께서 동일한 은혜로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부디 이 성경을 통해 우리 민족 가운데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특히 반세기 이상 복음이 가려진 북녘 땅에도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아울러 이미 믿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더욱 더 담대하게 이 세상을 이기며 죽어 가는 자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긴 작업 과정 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허락하신 모든 긍휼의 아버지와 친히 십자가의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피를 흘려 영생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영원히 신자들 안에 거하시면서 지혜와 판단으로 모든 일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랍니다.
2009-03-20 15:58:2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