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저는 <가정과 결혼> 시리즈로 8회에 걸쳐 오전 예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때에 믿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성도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오늘 아침 설교에서도 다시 한 번 저는 믿는 남편들이 폭행과 폭언을 하면 안 되고 또 아내에게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512
짧은 기간에 이런 설교를 몇 차례 하다 보니 혹 우리 교회에서 누가 그런 일을 하는가 보다 하고 추측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큰딸은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사위와 딸 모두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거기서 교육을 받았기에 한국식 교회에 익숙하지 않아 미국 독립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8년 전에 이 아이들과 저의 막내딸 그리고 가끔 미국을 방문하는 제 아내 등은 볼티모어에 있는 좋은 독립침례교회를 찾아서 잘 다녔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제가 보기에도 선량해 보이고(인상이 대단히 좋음) 양심적인 분처럼 보였으며, 그 목사님의 아버지도 독립침례교회 목사님인데 참으로 경건하게 보이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그분들 모두를 모시고 식사 대접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도 깔끔하게 잘하고 전형적인 독립침례교회 틀에 매이지 않고 여러 면에서 목회를 잘하였습니다. 저의 아이들과 사위도 바이올린 연주, 노래도 하고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도 하며 교회에 적응을 잘하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교회는 부흥을 해서 큰 대지를 사서 이사도 가고 여러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끔 제가 미국을 방문해서 찾아가 보면 흠잡을 데가 없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저의 큰딸에게서 놀라운 소식이 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님이 사모님을 자주 때려서 사모님이 경찰을 불러 조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교회의 어떤 처녀 자매와 불륜을 저지르고 교회 돈을 유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사모님을 때렸고 이번에는 사모님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이야기했으며 아예 친정에 가서 안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자기 부인이 정신적인 문제로 앓고 있으니 그 말을 믿지 말라고 교인들에게 이야기하였는데 이런 식의 변명은 통계적으로 볼 때 아내를 때리는 남편들의 공통적인 행동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일이 제 딸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한 뉴스라 그 아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저나 제 아내도 그런 소식을 접하고 믿기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요, 그래서 그 목사님은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두렵네요.”라고 제 큰딸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서 그 아이가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3,000년 전 구약 시대의 다윗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제 주변에서,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보시다시피 목사도 아내를 때릴 수 있고 간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육신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아내에게 폭행하고 폭언을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런 일은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이혼 사유에 해당합니다.
또한 자기 몸만 생각하고 아내와 자식의 문제나 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즉 무관심도 이에 필적하는 죄악입니다. 이 무관심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병들게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남편(아빠)과 함께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폭언, 폭력, 무관심의 대다수가 남편들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저는 목사로서 우리 교회 성도들과 저 자신에게 선한 양심의 경고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것을 기억하고 구원받았어도 두려움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 배우자, 자녀들, 부모에게 친절을 베풀고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그 뒤에야 교회와 사회와 나라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가정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교회를 이끌고 나가는 목사인 저는 심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다음의 성경 말씀을 기억하고 남편 형제들이 아내와 자녀들을 관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17절
14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의 이전 정욕들에 따라 너희 자신을 꾸미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 16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 17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너희가 부르며 간구할진대 너희가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
에베소서 5장 25-28절
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26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느니라.
샬롬
패스터
2014-05-18 19:38:1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하나님의 뜻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라는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은 꼭 읽고 원래 책도 구매해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169
하나님의 뜻을 직통 계시로 착각하고 직통 계시(꿈 등)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심히 두려운 불신의 행위입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더 잘 깨닫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내 발을 삼가 모든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판단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훈계들을 통해 내가 명철을 얻으므로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시편119:97-104)
그리스도인들에게 쓸데없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된 문제는 아마도 최고로 높은 순위를 자랑할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지도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의의 행로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시23편).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인도하신단 말인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내가 아침의 날개들을 취하여 바다 맨 끝 지역들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 하지만 이 말 또한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로그인’만 하면 하늘에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는 대화방을 개설해 놓으셨단 말인가?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의사소통을 하시면서 그들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에 대한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단 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특정한 단계들이 있단 말인가? 만약에 그러한 단계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공식은 무엇인가? 도대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이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롬8:14).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와 인도를 받는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문제가 어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겠는가?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원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가지는 직업, 우리가 결혼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교회에서 내가 하는 역할이나 내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질문들 앞에서 다소 위축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픈 그리스도인들의 열망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일을 그토록 힘들어하는가? 왜 그것으로 인해 그토록 불안해하는가? 부득이하게도 그 대답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들과 기대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공통적인(그리고 전통적인) 관점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일단 밝힌 다음에 그러한 관점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바른 관점을 모두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잘못된 관점 이 관점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하나님의 인도란, 그와 같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만약에 그와 같은 계획이 존재한다면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계획이 있다면 매사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언제나 한 가지 결과만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완벽한 계획’ 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에 결혼이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는 단 한 사람의 배우자가 내정되어 있으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신중하게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의사 결정은 수수께끼 풀기가 되어 버린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형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치 퍼즐 조각처럼 찾아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단서와 암시들을 흘리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은 그러한 태도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점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오늘 당신이 어떤 신발을 신을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 당신이 무엇을 먹기를 원하시는가? 오늘 당신이 읽어야 할 성경 구절 혹은 당신이 가야 할 휴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무엇인가? 일터에 자가용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기차나 택시를 타야 하는가? 만약에 하나님이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면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관되게 매사에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의사결정에 대한 그와 같은 관점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식과 개인적 기호에 기초해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만약에 그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면 종교적인 주문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세례’를 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하도록 나는 인도를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있다” 와 같은 말들로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예화 다음의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서 잘못된 관점의 예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함께 첫날을 보내게 된 아담과 이브를 한번 상상해 보자. 죄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에덴동산에 거주하는 원예가로서 바쁜 하루를 보낸 아담은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집으로 왔다. 그는 집으로 가면서 나무에서 요리 재료들을 따갔다. 이브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담은 개인 풀장인 비손 강에서 수영을 즐겼다.
그러나 부엌에서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브는 자신이 맡은 임무가 너무도 막중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도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맛있는 과일들 중에서 무엇을 요리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이브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그 많은 과일들을 다 먹을 수는 없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이브는 알고 있었다. 이제 갓 결혼한 이브는 초반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놓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브는 자신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아담에게 부탁했다. “내가 저녁 식사로 무엇을 준비하기를 원하시는지 주님께 물어봐 주세요.”
아담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 주시는 계시가 없구려. 우리의 식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밖에 없구려. 그러니까 ‘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의 열매든 다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는 말씀 말이요.” 아담은 자신이 금지된 나무에서는 열매를 따지 않았다고 이브를 안심시켜 주었다. 이브는 여전히 결정을 못했고, 식사 준비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몹시 배가 고픈 아담은 아삭아삭하고 빨간 사과가 아주 맛있어 보여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에 정말로 화평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사과를 먹도록 인도를 받는 것 같소.” 이브는 사과를 먹는 데에 순순히 동의했고 자신에게도 아담과 같은 ‘화평’이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과를 먹기로 한 결정이 이브에게 새로운 문제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아담, 이 사과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밀까요, 깍둑썰기를 할까요, 으깰까요, 파이 안에 넣어 구울까요, 아니면 사과파이나, 튀김이나, 푸딩을 만들까요, 아니면 사과 턴오버(turnover, 잼 들을 넣어 반원형으로 접은 파이)를 만들까요, 아니면 그냥 날 것으로 먹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나는 기꺼이 받기를 원해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한 번만 더 하나님께 가서 물어봐 주겠어요?” 다시 한번 기도를 하고 나서 아담은 말했다. “마찬가지의 대답을 받았소. ‘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의 열매든 다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본 아담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요, 이브, 주께서는 그 말씀만으로도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하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소.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먹고 어떻게 그것을 먹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나는 확신하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정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구려. 오늘 내가 짐승들의 이름을 붙인 것처럼 말이요. 하나님은 내가 알아서 그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소.”
이브는 충격을 받았지만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이 과일들 중에서 어떤 것을 저녁식사로 먹든 내가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든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놓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내가 무엇인가를 실행하기 전에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의 모든 세부사항을 구석구석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함께 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경우는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과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경건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사용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과일 샐러드를 먹자!”
잘못된 관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이브는 마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단 하나의 올바른 선택을 찾아다니는 신비로운 여행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브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광범위한 자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은 동그라미 안에 찍혀 있는 자그마한 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가 가능한 거대한 강과 같다. 그 가능성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백 혹은 수천 가지의 대안적 선택들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다. 충격적인 진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폭넓은 자유보다는 끝도 없는 규칙들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들은 지혜보다는 미성숙을 선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아기처럼 자신들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기를 원한다.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려주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성인처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원칙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타당한 결정들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올바른 관점 어떤 특정한 사건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어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서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그와 같은 구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뜻은 계시되었거나 혹은 계시되지 않았다. 다음의 도표가 우리의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 ↙ ↘ 계시된 뜻 숨겨진 뜻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계획 도덕적 뜻 주권적 뜻 교훈 섭리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 (앞으로 일어날 일들) 하나님의 계시된 뜻 _ 도표의 왼쪽 부분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도덕적 뜻 혹은 하나님의 교훈적 뜻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서 기대하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싫어하시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 우리가 일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눕고,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모든 것 - 의 기준으로 삼기를 원하시는 모든 윤리적 원칙들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알려 주셨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성경66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그 개요가 들어가 있으며(출20장), 더 요약해서 두 개의 주요 원칙으로도 주셨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22:36-40). 우리가 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숨겨진 뜻 _ 도표의 오른쪽 부분 하나님의 숨겨진 뜻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 은밀한 뜻, 혹은 언약적 뜻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정하신 모든 일과 관련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령적 뜻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뜻은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확실하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다. 그 청사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 까지 포함해서 - 다 들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적 맹세를 성취해 가시는 동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 하실지가 다 들어 있다. 이 은밀한 뜻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천사들이 자유롭게 내린 결정들을 다스리고 지배하셔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신다. 이 말은 모든 것이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숨겨진 뜻에 대해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내일 아침에 당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목적과 명령 속에서 정해진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 어디에도 ‘당신의 인생을 향한 완벽한 계획’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셋째 ‘뜻’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시지 않다. 당신의 인생 지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은밀한)뜻 안에 있는 수십억 개의 세부 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우여곡절을 안고 있는 그 지도를 알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만약에 그와 같은 인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좌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모세는 그것을 신명기 29장 29절에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서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밀한 일은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인도는 성경에 다 나와 있다. 말하자면 “나타난 일이 율법의 모든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관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사 결정을 잘하는 방법이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거나 논리적으로 암시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전부다. 우리가 성경과 일관된 결정을 내리는 한 우리는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뜻이다. 2. 우리가 그 뜻을 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 뜻을 엿볼 수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왜냐하면 안다 해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의도하시고 명하신 일들은 피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 나아가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보여 주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한가?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의 죄와 실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는 우리의 모든 도덕적 그리고 비도덕적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들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덕적 뜻을 어기는 많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에는 모든 역사속의 모든 사람과 천사들의 완고함과 불신앙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아담의 죄,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화형당한 순교자들에게 가해진 잔인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밀한 뜻을 보여 주셨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을 보여 줄 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만약에 내일 오후 3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당신이 특정한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도 아닌 이유는 그러한 말을 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당신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이러한 경우에는 특히 혀의 사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말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기억하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사탄까지도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심지어 사탄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스터플랜에 계획해 놓지 않으신 일들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된 도덕적 뜻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면과 관련된 행동 원칙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시켜 준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행동하기란 너무도 쉽다. 해석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리적 추론의 역할은 무엇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에서 발췌, 피터 블룸필드, 성서유니온선교회
2014-05-15 13:33: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 아침(14년 5월 11일)에 알지 못하는 어떤 분이 <목사의 타락 과정>이라는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생각할 것이 더러 있으므로 같이 나누고자 올립니다.아마 글의 원저자는 목사인 것 같습니다.
저부터 선한 양심을 지키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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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은 어떤 타락 과정을 밟는가?
1. 힘든 목회 생활 속에서 처음 가졌던 소명들이 점점 식는다.
2. 목회 소명이 식으면서 은혜도 식고 그러면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3. 세상 것을 가지고 싶어진다. 돈도 가지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어진다.대형 교회 목사들 보면 부러운 마음이 생긴다. 노후를 위해 집도 한 채 마련해 두고 싶어진다.
4. 세상 것을 찾다 보니 교회를 키워야 한다.교회를 키우는 목적이 영혼 사랑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5. 목회자도 사람이다. 자기가 성공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진다.그래서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교회를 키워야 되겠다고 마음먹는다.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법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도입한다.온갖 세미나에 쫓아다니면서 방법론을 배운다.
6. 교회 건물을 크게 지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교회 건물을 잘 짓는다.세상 비즈니스 방법, 마케팅 방법을 교회 성장에 사용한다.
6. 진리를 말하고, 회개를 외치면 다들 도망간다고 생각되니까, 인간 비유 맞추는 설교하기 시작한다. 천국 설교, 지옥 설교를 하면 인기 없어지니까 세상 부귀영화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설교한다.번영 신학을 도입하고, 부자 되도록 부추기는 설교하기에 바쁘다.
7. 세상 비즈니스가 '고객 중심'이 되어야 성공하는 것처럼,목회자들도 성공하기 위해서 '성도 중심'의 목회를 한다.그러다 보니 교회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고 성도들, 대중들이 되어 버린다.예수님의 뜻이 중요한 것 아니다. 대중들의 뜻이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판을 친다.다수결이 최고의 힘을 가진다. 그러니 목사들도 표를 던지는 청중들에게 비유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마치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에게 한 표를 구걸하는 것처럼 목회자들도 그렇게 굽실거리기 시작한다.
8. 상황이 이 정도쯤 되면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어떻게든 교회 돈을 좀 더 자기 앞으로 빼내서 유용하고,차세대 통장을 만들어서 자식 유학시키고,자기 노후 대책 세우기 바쁘다.
9.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중형교회가 되면 '교만'해지기 시작한다.노회장쯤 되고, 목사 세계에서도 파워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면 목에 힘을 준다.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세상 영광의 맛을 보면서 점점 세상으로 빠져간다.그것이 사탄이 놓은 올무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10. 이렇게 교만의 올무에 빠지게 되면 사탄은 이 목회자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이젠 세상 영광을 취하게 해 준다.정치인들도 손을 뻗쳐오고, 지방 자체 단체에 있는 시장을 비롯한유력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가 이루어진다.그러면서 정치적 파워도 생기고, 사회 유지로서 한 몫을 감당하게 된다.그럴수록 마귀는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려 주어서 다시는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세상 사람들은 그런 목사를 '성공한 목사'라 하지만, 영적으로는 마귀에게 완전히 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1. 교회가 대형화될수록 사단의 공격은 점점 더 강해진다.대형교회는 목회자로서의 성공의 척도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그런 대형교회는 사단의 밥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하나님이 그렇게 해 준 것으로 생각하지 누가 마귀가 그렇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겠는가?그러나 대형교회는 이미 마귀들이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다원주의를 받아들이고, 혼합주의로 나가지 않는데 어떻게 대형교회가 가능하겠는가?부부간에도 맞지 않아 다투고 이혼하는 판국에수천 명, 수만 명이 한 뜻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진리를 고집하고, 회개를 외치고, 천국 지옥을 외쳐보라!장례식 예배, 추도 예배 폐지한다고 해 보라!아마도 교인들이 데모할 것이다. 그러니 대형교회 목사는 그들과 타협하여 혼합주의로 가 버리는 것이다.
12. 돈은 하나님만큼이나 힘이 있다.그래서 목사들이 처음엔 하나님을 의지해서 시작했지만 나중엔 돈을 붙잡는다.교회를 지어야 하고, 선교사업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기도로 하기보다는 돈으로 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사탄에게 넘어간다.사탄은 돈을 주어서 선교도 하게 하지만, 구원 없는 선교, 열매 없는 선교를 하게 한다.목사도 속고, 성도들도 속고, 다 하나같이 속는다.그렇게 하고선 목사도 교회도 자기들이 선교 많이 한다고 나팔을 불고, 광고하고, 인터넷에 올린다.
13. 대형교회 목회자는 인기 연예인을 방불케 한다. 그 인기에 맛 들여진 목회자들은 자꾸만 스크린에 나오려 하고,자기의 설교 모습을 전국 방송에 내보내려 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 영광을 구하며, 자기를 나타내려 하다 보니예수님은 뒷전이고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고 만다.
14. 목회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음란 마귀'가 찾아온다.수많은 아름다운 여성도들을 대하다 보면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목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단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음란에 약한 것을 알기 때문에 여자를 통해 접근해 온다. 목사 자신이 천국을 위해 고자가 되지 않은 이상집요하게 찾아오는 음란의 영을 물리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사모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또 육체적 접촉이 없다 할지라도 마음에 이미 간음하게 된다.수많은 목회자들이 음란죄에 빠진 것이 현실이다. 유명할수록 더욱 그러하고, 부흥사일수록 음란죄에 빠져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설마 저 목사님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누구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아신다.
15. 목회자로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면 국가조찬기도회에 초청을 받게 된다.크리스천 국회의원 기도회에도 가게 된다.그렇게 정치인들과 접촉하게 되면 위세 등등한 목사님이 된다.변질되기 시작한다.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 누구를 밀어 주라고 하고어느 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둥 정치적 발언을 교회 강단에서 하게 된다.이미 사탄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16. 큰 교회를 세워 놓은 목회자들은 그 교회 남 주기 아까워서 자기 자식에게 세습시킨다.그 세습 작업은 자기 자식이 어릴 때부터 서서히 이루어진다.유학을 보내서 박사학위를 받아 오게 해서 목사로 강단에 세운다.그러면서 자기는 서서히 뒤로 빠진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식하고 강단을 나눠 먹기 한다.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라 자기 사유화된 교회이다.그런 교회 성도들은 불행하다.
17. 목사들이 한기총이니 총회니 노회니 하는 곳에 나가 한자리하려고 돈 봉투를 돌린다. 서로 싸우고 다툰다. 상대방 후보를 헐뜯는다.세력 다툼을 하고, 정치하기 시작한다.그러다 보니 목사가 아니라 '깡패'가 되고 만다.목사 입에서 "개XX"가 나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면서상대방 세력을 향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린다.완전히 사탄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18. 더 이상 목사들이 천국과 지옥에 관심이 없다.믿음 생활이야 어떻게 하든 죽으면 당연히 천국 갈 거라고 믿는다.회개하고는 담쌓은 지 오래다!자기만큼 의로운 자가 없고, 자기만큼 성공한 목회자가 없다고 착각한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이 땅에 있다.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살까?어떻게 하면 부동산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더 좋은 차를 탈까?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더 많은 재산 물려 줄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자식들 미국이나 외국에 유학시킬 수 있을까?예수님을 발판삼아 출세해 보려고 하고,자기 배를 채우려 하는 목회자로 전락한다.
이런 목사들을 주님이 어떻게 쓰시겠는가?돈과 음란과 명예와 세상 영광, 쾌락,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서 그런 것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달려가는 목사들을 주님이 어떻게 쓰시겠는가?
그들이 가는 곳은 지옥불이다. 열심히들 달려가고 있다.한국교회 많은 목사들, 하나같이 지옥불로 달려간다.
정말 주님이 쓰시는 숨겨놓은 목회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지금 한국교회 많은 목사들은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큰일이다. 돌이켜야 한다.죽고 싶지 않으면 회개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가운데 목회자가 있다면당신도 타락의 길을 걷고 않는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주님께 책망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타락 과정을 당신만큼은 밟지 말기를 부탁한다.
주님이 원하는 정도로 가라!그 길은 고난과 핍박이 있는 곳이다. 좁고 험난한 길이요, 십자가 지지 않고서는 못 가는 길이다.배고픈 길이요, 인기도 없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길이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산다.
목회 실컷 하고 정죄 받지 말고, 지금 돌이켜라!타락한 목사가 되지 마라!'내 마음에 합한 종'이란 말을 듣도록 하라!
주여!한국교회 목사님들 타락을 막아 주시옵소서!예수님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게 해 주시고,목사님들에게 먼저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목사가 살면 교회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대형교회, 중형교회, 소형교회를 담임하는 모든 목사님들을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고,타락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한국 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목회자들을 살려 주시옵소서!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그리하여 한국 교회가 마지막 때,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4-05-13 13:25:27 | 관리자
참고로 수요일 처형에 대한 요약은 다음 링크에
PDF 파일로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0
2014-05-08 16:42:43 | 관리자
예수님이 죽으신 날과 부활하신 날: 밤낮으로 사흘, three days and three nights(부활 시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이 죽으신 날과 부활하신 날이 언제인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 나온 개신교회는 대개 전통에 따라 예수님이 금요일에 죽으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요나의 사건을 언급하며 그분께서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속에 있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므로 일단 그분은 금요일에 죽으실 수 없습니다.
38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의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거늘 3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40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12:38-40).
또한 예수님은 구약의 예표를 100% 그대로 성취하셔야 하므로 유월절 어린양으로 유월절인 1월 14일에 죽으셔야만 합니다.
구약 출애굽기 12장에 가서 유월절 어린양을 예비하고 죽이는 규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1월 10일에 어린양을 준비하고(출12:3) 14일이 될 때까지(출12:6) 즉 13일이 끝나는 저녁까지 흠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에 그 어린양을 죽이고 구워서 먹고 피를 문기둥과 인방에 뿌려야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1월 10일 즉 보통 종려주일이라 불리는 날(일요일)에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바로 이날 그분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자신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제시하셨습니다. 바로 이때가 다니엘의 70이레 중 69이레 즉 483년이 성취되는 때입니다(단9:25-26).
우리 주님께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자신이 돌아보는 그 날(day of visitation)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을 저주하셨습니다(눅19:41-44). 그리고 그 사흘 동안 예수님은 유대인 지도자들과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마23). 하지만 그 사흘 동안 아무도 그분에게서 흠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마22:46). 그런데 유대인 학자 에더샤임 등의 증언으로는, 예수님의 출생 전에 유월절 풍습에 조그만 변화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에 어린양과 누룩 없는 빵과 쓴 채소를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였고, 무교절이 시작되는 15일 저녁에 성대한 만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14일이 예비일(Preparation day)이라 불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14일이 끝나고 15일이 시작되는 저녁까지 무교절의 큰 만찬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무교절이 시작되면 15일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15:42, 눅23:54, 요19:31 등은 모두 예수님께서 예비일에 즉 14일(유월절)에 죽으셨다고 기록합니다. 마27:62는 십자가 처형 다음날이 곧 예비일 다음날이라고 하며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즉 사복음서가 다 이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14일이 시작되는 저녁(13일이 끝나는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그 밤에 붙잡혀서 유월절인 14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에 달리신 후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1월 10일에 선택되어 사흘 동안 검사를 받고 14일에 죽으시며 성경 기록들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1월 14일(목)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려 오후 3시에 죽으시고(마27:1-2) 무덤에 들어가신 뒤 1월 17일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1절은 그 목요일 다음에 온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이루어지는 평상시의 보통 안식일이 아니라 큰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런즉 그 날[십자가 처형일]은 예비일이므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그 몸들을 십자가에 남겨 두려 하지 아니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고 그 몸들을 치워 달라고 간청하니 (이는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기 때문이라.) 즉 15일(금요일)은 큰 안식일이고 16일은 늘 지키는 평상시의 토요일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토요일 저녁부터 주의 첫날인 일요일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은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위의 그림에서 유대인들의 날은 저녁부터 시작됨에 유의할 것).
이것은 눅24:13-35에 있는, 엠마오 마을로 가던 제자들의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이시라고 믿었노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오늘은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요(눅24:21)
여기서 뒷부분은 영어로 “to day is the third day since these things were done.”입니다. 여기의 since는 ‘이후로’를 뜻하므로 그들은 이 모든 일(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진 이후로 셋째 날인 일요일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 모든 일(십자가 처형)이 일어난 뒤 금요일은 첫째 날이고, 토요일은 둘째 날이며, 일요일은 셋째 날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three days and three nights)이라는 구절에 매여 예수님은 무덤에 72시간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수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신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예수님이 토요일 오후 3시에 부활하셔야만 합니다. 그때가 바로 72시간이 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엠마오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이 있은 지 넷째 날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처럼 주님께서 목요일 3시에 돌아가셨다가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으로 이해하면 그분께서 무덤에 계신 기간은 72시간이 아니라 63시간이 됩니다(현대 달력으로 목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목요일 저녁 6시부터 금요일 저녁 6시까지 24시간(유대인들의 금요일, 큰 안식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24시간(유대인들의 토요일 안식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일요일 새벽 6시까지 12시간).
그래서 이 기간이 72시간이 아니므로 틀린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이 셋째 날 부활하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으므로 수요일 십자가 처형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마16:21; 17:23; 20:19 등 14구절). 또한 에스더기 4장 16절과 5장 1절은 세 날(three days)이 꼭 72시간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거기의 세 날은 셋째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저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1월 14일(목) 오후 3시에 죽으셨다가 1월 17일(일) 새벽 6시에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이 경우 14일 오후 3시부터 오후 6시까지를 한 낮 즉 ‘one day’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정확히 ‘three days and three nights’ 이후에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됩니다. 따라서 무교절의 안식일 이후에 오는 초실절(day of firstfruits)은 1월 17일이 됩니다.
금요일 처형의 경우 엠마오 제자들이 주님을 만난 것은 이 모든 일이 있은 이후로 둘째 날이 되므로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맞지 않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에서 조금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이렇게 믿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 이처럼 생각을 정리하여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의견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예수님의 출생일, 출생 연도, 처형일, 부활하신 날을 정확히 기술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데이터는 하나님의 비밀인 것 같습니다. 다만 확신을 가지고 믿는 바를 잘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이 문제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4-05-08 16:39:59 | 관리자
과연 예수님은 선한 분이 아닌가?
마태복음 19:16-17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해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16 ¶ 보라, 어떤 사람이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이까? 하매 17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다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 하시니
17절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어떤 분들이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갔더니 거기에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가 있어서 가져다가 읽었다고 합니다.
이 책자의 저자는 “예수님이 자기는 선하지 않다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선하다고 했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그 저자의 주장이 맞는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성경적으로 바르게 설명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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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땅에서 이슬람의 포교 활동이 매우 거세고 활발합니다.이들은 성경의 진리를 뒤엎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유치한 책자를 만들어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책자를 접할 때 이들의 포교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이들의 주장대로 선한 분이 아닐까요?먼저 성경 기록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10장 11-14절에서 그분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무려 3번이나 말씀하십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거니와‥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
그러므로 마태복음 19장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응답은 결코 자신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며 선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행한 일들은 모두 다 선합니다.
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31 이에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 다시 그분을 치려 하거늘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나온 많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일들 중의 어떤 일 때문에 너희가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하시매 33 유대인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니라, 하매(요10:30-31)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의 감추어진 내면의 위선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단지 사람으로만 생각하면서도 하나님께만 속하는 호칭을 내게 붙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런 호칭을 내게 붙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너희 유대인들이 그런 마음으로 이런 호칭을 쓸 때에는 거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록 그 호칭이 내게 적합하지만, 너희는 그 호칭의 참된 의미대로 무한대의 완전함을 가진 분, 즉 신성을 가진 하나님으로서의 의미로 그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너희는 단지 내게 아첨하려고 그 호칭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너희 마음이 시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첨하려고 아무 뜻도 없이 하나님께만 속하는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자신의 선한 속성이나 신성을 부인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은밀한 속 중심을 살피시는 예수님께서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께 속한 호칭을 사용하여 아첨하려는 이 사람을 반박하고 그 위선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교훈을 주십니까?“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바로 유일하게 선한 이 즉 하나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사실 하나님만 선한(good) 분일까요?아닙니다!
성경에는 사람들 중에도 선한 자들이라고 불린 여러 명의 기록이 나옵니다.
20 이로써 네가 선한 자들의 길로 걸으며 의로운 자들의 행로들을 지키리니 21 이는 곧바른 자들이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들이 그 안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라(잠2:20-21).
눅23:50은 아리마대 요셉을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행11:24는 바나바를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시37:23; 112:5; 잠12:2; 13:22; 14:14; 미7:2; 마12:35 등은 선한 사람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하나님만을 선하다고 했을까요?그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의 신성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슬람 소책자의 저자는 성경 문맥에 상관없이 한 구절을 따다가 사람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심지어 “하나님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시14:1).
사실 이런 수법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성경 문맥은 무시한 채 자신들이 필요한 성경의 한두 구절만을 취해서 마치 모자이크 조각을 이어 붙이듯이 자신들의 교리를 위한 체계를 만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영적으로 사악한 무리들이 쓰는 이런 고질적인 수법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해하고 문맥의 흐름에 따라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책자의 저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저질 수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의 본래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선함의 근원인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첨하는 호칭을 붙이는 자에게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 알라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즉 그 알라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하나님처럼, '삼위일체가 아니라 아버지 홀로 존재하는, 성경 기록과 상관없는, 사람이 만들어 낸 짝퉁 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 세 분이 한 하나님이신 참 하나님입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아멘 할렐루야!!
2014-04-25 17:28:56 | 관리자
악한 자의 대언도 맞나요?
어떤 분이 질문을 해서 답을 드립니다.
“요한복음 11장 49-52절에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문맥에서는 예수님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없애려는 바리새인들의 무리가 나오고 그 무리 중에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나와 다음과 같이 대언합니다.
49 …너희가 결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50 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멸망하지 않게 되는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줄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더라51 그는 스스로 이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민족을 위해 죽으실 것을 대언하되,52 그분께서 그 민족만을 위해 죽지 아니하고 널리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함께 모아 하나가 되게 하려고 죽으실 것을 대언하였더라.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의 사람들의 죄를 없애기 위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요?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잡으려 하는 바리새인의 일당인가요?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 장에서 어떤 인물인지 또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악인입니다.그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죽어 민족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고
약 60년이 지난 뒤에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이것을 가리켜 그가 대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그의 말을 후에 살펴보니 그것 자체가 대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악한 자도 사용하여 대언하실까요?
물론입니다.
민수기 24장에서 거짓 대언자 발람이 나옵니다.그는 민24:15-17에서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대언하였습니다.
15 그가 비유를 지어 이르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이 열린 자가 말하고 16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은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지식을 안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본 자, 무의식 상태에서도 자기 눈을 뜬 자가 말하였노라. 17 내가 그를 볼 터이나 지금 보지 아니하며 내가 그를 바라볼 터이나 가까이서 보지 아니하리로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며 이스라엘에게서 한 홀(笏)이 일어나서 모압의 구석구석을 치고 셋의 모든 자녀들을 멸하리로다.
그러므로 악인인 가야바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성경적으로 대언하였습니다.
아마 발람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샬롬
2014-04-24 16:32:16 | 관리자
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 ¶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그분께서 시장하시므로 13 멀리서 잎사귀 달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가셨으나 그것에 이르러 보시니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더라. 14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듣더라.
어떤 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13절을 보면 그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므로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한데 왜 주님은 이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에 잎사귀가 있으면 당연히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으므로 보는 사람을 속입니다.
사실 여기의 무화과나무는 앞뒤 문맥 상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성한 종교 의식은 가득한데 아무 열매도 없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저주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나무는 영원히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그로부터 약 40년 뒤에 저주가 임하여 AD70년에 성전과 나라를 잃고 1948년까지 떠돌아다녔습니다. 이 이스라엘에게는 앞으로 주님의 재림과 함께 왕국의 통치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자체는 영원히 저주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 기사는 위선의 잎사귀가 아니라 진정한 열매를 바라시는 주님의 열망을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7 그때에 그(침례자 요한)가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너희 속으로,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로 있다, 하고 말하기 시작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9 이제 또한 도끼가 나무들의 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느니라, 하니라. 10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1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겉옷이 두 벌 있는 자는 하나도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니라. 12 그때에 세리들도 침례를 받으려고 와서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 하니라. 14 군사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아무도 폭행하지 말고 아무도 거짓으로 고소하지 말며 너희가 받는 급료로 만족하라, 하니라.
샬롬
2014-04-24 16:17:17 | 관리자
이번에 침몰한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의 유병언 일가로 드러났습니다.
과거에도 이들은 세모 해운을 운영했는데 1990년에 한강 유람선 사건(14명 사망)이 생겼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9C%A0%EB%B3%91%EC%96%B8
현재 유씨 일가가 소유한 재산이 무려 2,400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합니다.
다음의 기사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cselee59?Redirect=Log&logNo=100209447972
http://blog.naver.com/seekwolf?Redirect=Log&logNo=10189826946
http://ju8689.tistory.com/274
http://blog.naver.com/rlaxotmf?Redirect=Log&logNo=20209263467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0/2014042090241.html?BRtvcs
200억대 사기 의혹 혐의 등으로 9개월여 동안 경찰 조사를 받아온 기쁜소식선교회(또 다른 구원파) 박옥수 목사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돼 파문이 예상됩니다.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76524
https://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605
15 ¶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16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변질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나니 20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0).
2014-04-22 16:35:5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도들의 삶에 유익을 줄 책을 소개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안다고 하는 이들 중에 삶의 변화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습니다. 이번에 깁 박사님이 지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사무엘 깁 저, 김영균 역)
무료로 게재를 허락해 주신 김영균 목사님과 진리침례교회가 운영하는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2014-04-19 13:57:42 | 관리자
저도 처음에 NIV 성경을 통해 그렇게잘못이해하고있어는데 목사님의 자세한 설명으로
흠정역을 비교하면서 잘깨달게 되어읍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2014-04-19 05:02:03 | 그레이스김
아주 좋은말씀 잘읽어읍니다. 감사합니다
2014-04-19 04:58:13 | 그레이스김
사울과 아브엘은 사돈이 아니라 사촌입니다.
2014-04-15 11:53:41 | 관리자
사울의 할아버지는 아비엘인가요? 넬인가요?
이제 기스라는 이름의 베냐민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사대 손으로 베냐민 족속이며 능력 있고 강력한 자더라(삼상9:1).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마아스의 딸 아히노암이요, 그의 군대 대장의 이름은 아브넬인데 그는 사울의 삼촌 넬의 아들이더라.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인데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더라(삼상14:50-51).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대상8:33)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으며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더라(대상9:39).
삼상9:1과 14:50-51을 보면 넬과 기스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비엘입니다.그러므로 이 넬은 사울의 삼촌입니다. 이 넬의 아들은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입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아브넬은 사촌지간입니다.
그런데 대상8:33과 9:39를 보면 넬은 사울의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아들이나 손자 등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르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즉 사울의 할아버지 이름은 아비엘이기도 하고 넬이기도 합니다.즉 사울의 할아버지는 두 개의 이름 즉 넬과 아비엘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할아버지도 넬(혹은 아비엘)이고 삼촌도 넬입니다.
샬롬
2014-04-14 13:48:49 | 관리자
다음을 참조하세요.
https://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53
2014-04-10 13:31:24 | 관리자
예수님은 지상 사역 기간에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요12:27).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이때로부터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런 까닭으로 이때까지 왔나이다.
어떤 분들은 히5:7을 언급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육체적 죽음을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히5:7).
히5:7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면하셨어야 합니다.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히5:7의 사망은 육체적 사망이 아니라 둘째 사망 즉 하나님과 영영히 분리되는 사망을 말합니다. 그분은 이 기도를 드리신 뒤 기도의 응답을 받아 부활하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그분이 둘째 사망에서의 구원을 기도했을까요?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실 때에 그분이 친히 죄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후5:21; 벧전2:24).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고 친히 죄가 되실 터이므로 영원한 둘째 사망에서 구출받기 위해 아버지께 기도한 것입니다.
샬롬
2014-04-10 13:28:59 | 관리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04-09 14:47:42 | 박성원
창49:24의 ‘거기서부터’는 무엇을 뜻합니까?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죽기 전에 자기의 열두 아들에게 복을 줍니다.그러면서 22-24절에는 요셉에 대한 복이 나옵니다.
22 ¶ 요셉은 열매가 많은 가지 곧 샘 옆의 열매가 많은 가지인데 그것의 작은 가지들이 담을 넘는도다. 23 활 쏘는 자들이 그를 심히 괴롭게 하고 그를 쏘며 그를 미워하였으나 24 그의 활이 강하고 그의 손의 팔이 야곱의 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말미암아 강하게 되었나니 (거기서부터 목자 곧 이스라엘의 돌이 나오는도다.) 24 But his bow abode in strength, and the arms of his hands were made strong by the hands of the mighty [God] of Jacob; (from thence [is] the shepherd, the stone of Israel:)
어느 분이 24절 끝 부분을 언급하면서 ‘거기서부터 목자 곧 이스라엘의 돌이 나오는도다’는 분명히 메시아 예언 같은데 어떻게 요셉에게서 메시아가 나오느냐고 물어서 간단히 답을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또 여러 사람들의 주석을 보아도 24절 끝 부분은 메시아에 대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from thence)는 무엇을 뜻할까요?
얼핏 보면 전체 구절들이 요셉에 대한 것이라 ‘요셉에게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을 보시면 ‘from thence’ 앞에 바로 야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거기서부터’는 ‘야곱으로부터’를 뜻합니다. 즉 야곱에게서 목자 곧 이스라엘의 돌이신 메시아가 나옵니다. 그 메시아는 초림 때에는 목자로 오시고(요10:11, 14; 벧전5:4; 히13:20) 재림 때에는 돌로 오십니다(단2:34-35, 44-45; 마21:44).
이런 면에서 영어 성경이 조금 더 유용합니다.
샬롬
2014-04-08 13:56:59 | 관리자
성경에는 오른편 강도가 구원받았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기록엔 오른편, 왼편이 없습니다. 장로교및 다른 곳에서 잘못가르친 것입니다.
대부분 오른편 강도가 주님과 힘께 낙원에 있고 왼쪽강도는 지옥에 갔다라고 하는데 성경엔 오른편,왼편이란 이 부분에서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용례를 볼 때 대체적으로 오른편쪽이 왼쪽 보다는 긍정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참고눅23:39-42)
2014-04-04 19:41:03 | 장경순
안녕하세요?
오늘은 음악에 대한 동영상 몇 개를 소개하려 합니다.이 영상들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음악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해 주는 내용이 들어간 강의 영상입니다.이것들을 보시면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중음악이 어떻게 마귀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과 함께 사랑침례교회가 지켜야 할 음악적 거룩함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전에 미국의 한 선교사님이 만든 동영상을 보았는데 내용이 이번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런데 그분 것은 매우 길어서 보기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의 영상들은 매우 짧습니다. 또 강사가 아주 쉽게 설명하므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시간을 내서 어떻게 음악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음악의 구성요소 - 멜로디, 하모니, 리듬http://www.youtube.com/watch?v=2s00LBlMgzY&list=PLEBZ1i5dPTa8Ry9i9td4rS1ZV6CfkfpQG&feature=share&index=19 2. 음악(가사)에 담긴 바디 랭귀지http://www.youtube.com/watch?v=jLxRpZBt0E0&list=PLEBZ1i5dPTa8Ry9i9td4rS1ZV6CfkfpQG&feature=share&index=20 3. 좋은 음악, 나쁜 음악 - 리듬을 말하다http://www.youtube.com/watch?v=p9h4SP5tiD4&list=PLEBZ1i5dPTa8Ry9i9td4rS1ZV6CfkfpQG&feature=share&index=18 4. 좋은 음악, 나쁜 음악 - 비트를 말하다http://youtu.be/KWBCygE-Zcs 특별히 교사들과 부모들 그리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들, 그리고 교회에서 음악을 담당하시는분들은 꼭 한 번쯤 여기서 말하는 원리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음악에서도 본을 세워가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유능한 강사인 Christian Berdahl(복음 성가 가수)이 안식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교리는 배우면 안 됩니다. 사실 안식교나 몰몬교 등이 경건함 측면에서 개신교를 능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경건함에서도 이런 분들보다 앞서면 좋겠습니다.
2014-03-31 10:58:1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