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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3 01:10:41 | 류인선
좋은 믿음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샬롬
2012-05-11 19:06:49 | 관리자
요한계시록 13장 3절, 12절, 14절을 읽으면서......
먼저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이 글에는 전제 조건이 먼저 있습니다. 전제조건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은 무의미한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제조건 들입니다. 전제 조건이지만 저에게는 100% 당연한 진리, 참인 조건들입니다.
1. 킹제임스 성경(1611년 영어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2 번은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되었습니다.
3. 킹제임스 성경은 진리입니다. 이것도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됩니다.
4. 킹제임스 성경은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말하려고 할 때에는 과장, 미화, 숨김, 속임수 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말합니다. 이것도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됩니다.
5.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 온 세상을 속이자는 사건에 대하여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속성이 속이는 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9를 보시면 사탄의 속성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한계시록 13:3, 12, 14절을 묵상할 때에는 4, 5번에 주안점을 두면서 묵상하였습니다.
제가 출퇴근을 할 때에는 차에서 mp3로 킹제임스 성경을 듣습니다. 2주전부터 반복해서 요한계시록을 듣고 있던 중에 갑자기 13장 3절에 생각이 멈추면서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아니! 치명적인 상처가 어떤 치명적인 상처길 레 상처가 나았다고 온 세상이 놀라 짐승을 따를까라는 의문이 든 겁니다.
12절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고,
14절에는 상처가 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다고 하고,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는데, 그 짐승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어느 부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칼로 인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고 온 세상이 그에게 경배하게 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전제 조건 4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고 ...... 성경기록에는 많은 사건들이 사실대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어떻게 저런 사건까지 기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쁜 일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일이든 성경에 기록된 것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칼로 인한 치명상이지만 죽지는 않았다고..... 죽게 된 것 같았는데, 즉 죽지는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사건은 온 세상의 주목을 받는 정점에 이른 대단한 사건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온 세상이 놀라게 되어 치명적인 상처가 난 짐승에게 권력이 집중이 되니까요 (13장 7절 참조) 즉 온 세상의 권력이 이 짐승에게 집중되게 되는 사건이 칼로 인하여 상처를 입어 나았기에 권력이 집중이 됩니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칼로 상처가 나서 나았다고 온 세상이 상처가 나은 짐승을 경배하고 그에게 권력을 집중하여 준다.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칼로 상처가 나서 나았다고 온 세상이 경배하고 온 세상의 권력을 그짐승에 준다.
그래서 생각을 더 해 봅니다.
5번을 생각해 봅니다.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사탄인데 이 사건에는 온 세상을 속이려는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칼로 상처를 입었다는 부분인데요. 이것은 이 짐승이 온 세상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데 테러를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칼로 테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칼로 테러,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능이나 할까요. 경호원들이 있는데, 유명한 누구는 투명한 방탄유리로 사방을 방호한 차에 타고 다닙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경호원과 또한 경찰들이 즐비하게 여러 겹으로 경호를 합니다. 그런데 이 경호 망을 뚫고서 칼로 치명적인 상처를 낸다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요? 가능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 짜고서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면서…….이 사건은 이 짐승을 전 세계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무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나은 짐승을 위한 자작극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거리에서 칼로 해야 더욱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겠지요. 온 세상의 미디어가 짐승을 주목하는 상태에서 칼로 난도질을 당하고 그리고 상처의 치명상의 정확도를 높이고요. 총으로는 움직이는 사람에 대하여 잘못하면 치명상이 아닌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왜 바다에서 일어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칼로 인한 치명상을 입게 되느냐 인데요.
여기에 속이는자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창조물은 스스로가 죽음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죽음, 사망을 이기실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스스로 죽음을 이기신 분은 단 한분이신데요. 앞으로도 스스로 죽음을 이기는 창조물은 없습니다. 오직 죽임을 이기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께 경배 드립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휴거 또는 첫째 부활을 할 것입니다. 아멘.
사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는 절대로 죽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죽음을 이겼다고 쇼를 하는 거죠. 실상은 죽지는 않고 거의 죽게 된 것 같기만 한 것인데. 사탄은 칼로 치명상을 입은 짐승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온 세상을 속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이니까요. 단지 상처가 나은 짐승을 온 세상이 경배할 리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부활을 모방한 사탄의 사기극입니다. 성경은 단지 칼로 인하여 죽지는 않았고 죽게 된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속임수를 사용하여 칼로 상처를 입어서 죽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부활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놀라고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지만 할 수도 없는 것을 속임수를 사용하여 온 세상을 속이려고 할 것입니다.
이 몸이 이러한 속임수를 보기 전에 휴거 되거나, 첫째 부활하여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23절 후반부터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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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5:44:59 | 길준남
어버이날 아니 어머니의 날을 찾아보면 신약이 열리는 시대까지 건너가야 할겁니다. 그 당시에는 2월의 둘째주였는데, 지금은 노르웨이를 제외하곤 많은 나라들이 5월의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날은 옛날부터 있었던건 아니고 1900년대가 넘어가고 나서 생겼다네요. 날짜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미국,영국 기준으로 6월의 셋째주 일요일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2-05-10 07:22:58 | 박범준
(뭐니뭐니 해도 항상 철도로 끝나시는 우리 김용묵 형제님 덕분에 한참 웃었지만..(^^;))
너무나 우리를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뼈 빠지게 고생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껴 봅니다. 또한 부모님의 그런 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우리는 없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음 번에는 어버이날에 꼭 부모님께 감사를 전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2012-05-10 00:06:18 | 소범준
다시 다듬었습니다.
인쇄하면서 PDF 파일을 만들어 올립니다.
어디서든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2-05-09 11:54:57 | 관리자
저도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
음,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니,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거지가 저축과 노후 대비에 대해서 아주 그럴싸하게 글 한 편 올려 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쑥스럽습니다.;;
2012-05-08 15:45:07 | 김용묵
저는 40대 초반 가장입니다. 그래서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불효자로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나며,
가장으로서 저를 의지하는 가족들을 보면 책임감을 느낍니다.
쏜 살같은 시간속에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달라져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형제님!
2012-05-08 09:39:43 | 양희석
1. 어버이날과 부모님에 대해서
내가 분류해 보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각종 특별한 명절, 기념일 등의 명칭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갈래로 나뉜다.
- ‘절’로 끝나는 한자어: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성탄절 - ‘일’로 끝나는 한자어: 석가탄신일, 식목일, 현충일 - 완전히 독립적인 한자어: 추석, 단오 - ‘날’로 끝나는 고유어: 한글날, 어버이날, 어린이날, 설날 - ‘-의 날’로 끝나는 고유어: 철도의 날, 스승의 날
이런 조어 원리는 그다지 규칙성이 없고 전적으로 그냥 어감을 고려한 case by case인 걸로 보인다.똑같이 종교 공휴일일 뿐인데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의 조어 원리가 서로 다른 이유라든가, 어린이날이 ‘아동의 날’이 되지 않고 굳이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딱 떨어지는 규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 5월 5일 어린이날 다음으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이야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이 제정한 굉장히 한국적인 근거를 지닌 날인 반면, 어버이날은 명목상의 근거는 미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외국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는 곳도 많고, 또 한국의 어버이날이 어린이날보다 나중인 것이 윤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은 철없는 막장 부모도 많아서 참 문제이긴 하다만, 그래도 ‘일반적인’ 경우로 볼 때, 인생의 참으로 막대한 부분을 희생하여 우리를 이 정도까지 키운 부모님의 은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성경도 예외가 아님. 십계명에서 종교적인 규범에 속하는 1~4를 제끼고 곧바로 등장하는 인륜 규범 1타는 “부모를 공경하라(honour)”이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 명령에 무조건 ‘까라면 까’라는 식의 발상이라기보다는, 그보다도 일단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기쁘게 하고 남들 보는 데서 부모님 품위를 존중하고 명예를 높여 주라는 뜻이다.
부모의 사상과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체로 부모가 너님들 먹여 살릴 여건을 만들고 체통 세우느라 사고방식이 최대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방향만을 추구하게 돼서 그런 거다. 부모 세대라고 해서 쿨하고 개방적인 걸 몰라서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산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 동의는 못 하더라도 부모님 마음을 이해는 할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라 해도, 너님을 낳아서 키울 필요가 없었다면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 신세 못 펴고 그 모양 그 꼴로 살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물론, 부모가 예수 믿지 말고 네 신앙을 부인하라고 한다거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교리 노선을 추구하는 교회에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그런 데에까지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품위와 명예를 존중해 주면서 불순종할 수는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지는 먼저 구원받고 먼저 바른 신앙을 물려받은 자녀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방법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소한의 윤리와 기강을 갖춘 문명 사회에서는 효도를 강조하고 패륜은 엄벌로 다스렸다. 구약 율법은 부모를 저주하거나 때리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명기에는 고집 세고 식탐이 심하고 부모의 교정만으로 씨가 안 먹히는 싹수 노란 자식은 아예 마을 차원에서 린치를 가해서 죽여 버리라는 섬뜩한 추가 지시까지 있다(신 21:18-21). 하나님은 그 정도로 패륜을 싫어하신다. 특히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집/곳에서 태어나게 됐어” 부류의 패드립 말이다(사 29:16, 45:9).
이 명령이 특히 무시무시한 이유는, 부모의 말이 사실인지 이웃 주민이나 자식 당사자로부터 최후 변론을 듣는 절차도 전혀 없이 완전 비민주 인민재판 즉결처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배도 행위가 발견되었을 때는 ‘부지런히’ 진상 파악부터 하라고 돼 하지만(신 13:12-16, 17:2-7) 저건 그렇지 않다. 사실, 자식 새끼를 제발 좀 어찌해 달라고 친부모가 제 발로 찾아올 정도면 자식이 얼마나 막장인지 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이 명령이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 가정과 성에 대해서
5월이고 하니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다시 해 보게 된다.
성경에서 창세기 1~2장은 전반적으로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천지 창조에 대한 과정을 묘사하는 내용인데, 끝부분에 유일하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아예 독자에게 코멘트를 남긴 구절이 있다. 바로 창 2:24로, 그게 그 이름도 유명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라는 결혼 제도 구절이다. 기독교식 결혼식의 목사 주례에서 단골로 듣는 구절이다.
오늘날 이 정도라도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간 데엔 가정의 공이 절대적이었을 것이고, 특히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지금 같은 여성 인권 단체가 있었고 사람들이 좀 힘들다고 덥석 집 나가고 이혼을 해 버렸다면, 파탄 나는 집안과 인생 망치고 자살이나 범죄로 빠지는 애들이 넘쳐나게 됐을 것이다.
옛날에 가혹한 여성 인권 유린이라 불릴 정도로 엄한 성 억압(?) 관습이 왜 있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민망하니, 구체적인 예를 거론하진 않겠다) 마치 고문처럼 그것도 물론 나쁜 관습이고 부조리이다. 언제까지나 여성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역시 본인은 안다. 단지 옛날에 죄의 결과 때문에 그런 게 왜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는 뜻이다.
성이라는 건 정말로 생판 모르던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시키는 근간으로만 ‘은밀하게’ 쓰여야 하는 선물이요 비밀 병기이다. 부부 사생활은 하나님도 전혀 간섭 안 하고, 서로 같이 뭘 하며 즐기든 존중해 주는 절대적인 영역이다(히 13:4. honour과 동일한 어근인 honourable).
그러나 반대로 성이라는 게 다른 용도로 오· 남용되는 것을 하나님은 구역질을 할 정도로 가증스럽게 여기며 미워하고 정죄한다. 결혼한 부부가 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성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미혼 청소년이나 청년에겐 피임법을 가르칠 게 아니라 잠언 6장이나 딤후 2:22를 숙지시켜야 한다. 이걸 몰라서 인생 망친 안타까운 예가 허다하다. 옛날에 서부희 씨도 그랬고.
도대체 성을 왜 남의 것하고 비교를 하는가? 그게 공공연한 개방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금전 거래의 대상이 되고 개나 소나 다른 용도로 문란하게 쓰이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옛날에 어떤 아저씨의 절규처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헬게이트가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위의 화면은 2003년 12월 23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장면이다.사업 실패로 인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던 어느 40대 남성이 아내를 칼로 찌르고 10층 베란다에 매달려 자살 소동을 벌였다. 집 윗층에서 어느 기자는 마이크를 아래로 들이대고 당사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그때 횡설수설하던 중에 저런 희대의 명대사가 나온 덕분에 인터넷 상으로 무수한 인용과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옷이 찢어지면서 진짜로 떨어졌지만, 구조 대원이 매트를 밑에 이미 깔아 둬서 별다른 부상 없이 생존했다.비슷한 시기에 개독안티들에게 복음이 무수히 비방당할 빌미를 제공한(삼하 12:14) '에어장' 목사의 추락 장면이라고 소개된 사진은 사실은 저 아저씨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3. 출산과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성경의 사고방식은 결혼과 출산에 아주 옹호적이다. 성경에는 “다산하고 번성하라”라는 명령만 있을 뿐 맬서스 같은 사고방식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소위 가족 계획이란 건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도 간섭 안 하는 영역을 공권력이 나서서 자기 편한 대로 제어하겠다고 하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이다.
흔히 중국 하면 자녀를 한 명씩밖에 못 낳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 마오 쩌둥은 한때 굉장한 산아 장려책을 폈으며 20세기 중반에만 해도 6억 남짓이던 중국 인구를 10억이 넘게 불려 놓았다. 중국이 처음부터 지금만치 인구가 많은 게 아니었다는 게 충격적이다.
마 주석은 쪽수가 국력이라고 여겼으며 어느 문헌에 따르면, “아이는 전투기에서 투하하는 폭탄과 같다”고 교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라? 무신론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답지 않게 저 말의 표현 자체는 묘하게 성경적이다. (시 127:3-5) 무기에다 비유한 게 일치한다. 비록 그러다 얼마 못 가서 중국은 다시 산아 제한으로 돌아섰지만 말이다.
단, 성경이 말하는 다자녀 예찬은 자녀들을 성경대로 잘 양육했을 때에나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안 그러면 뼈 빠지게 자식 키워 봤자 미래에 부모는 휴거되는데 자녀는 못 되고 땅에 남아서 오히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온갖 재앙을 당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군대에 징집되어 계 19:18-21의 악역에 동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종말이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간에 발생한다면 말이다.
성경은 자녀 양육에 대해 절대적으로 각 가정의 부모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체벌에도 아주 옹호적이다. 잠언에 애들 때리면서 키우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나도 부모님에게 맞으면서 컸지만, 그거 정말 공감한다. 안 그랬으면 내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실감을 못 했을 것이다.
사랑의 체벌은 가정 폭력 및 아동 학대하고는 가히 종이 한 장 차이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인생에서 정말 미묘한 점이고, 어찌 보면 세상이 참으로 공평한 면모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 없이 돈만 쏟아 붓는다고 절대로 저절로 바르게 크지는 않으니 말이다. 내 말이 안 믿어지면, 한번 실제로 저렇게 해 봐라.
부모가 세상적으로 잘났기 때문에 애를 때리고 자녀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게 아니다. 비록 부모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안 하면 애가 정말로 바르게 클 수가 없으며 자녀에게 그 정도까지의 악역을 눈물을 머금고라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오늘날 사회는 부모의 권위가 실종되고, 애들을 부모로부터 점점 떼어 놓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매우 큰 심각한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바른 크리스천 신앙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건 올바른 가정 교육밖에 없는데 요즘은 이런 현상까지 있는 듯하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om&write_id=1715#c_1744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원을 안 받으면 손해라고 여기고 한창 부모와 상호작용할 나이의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http://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4546 능력 있는 국민들까지 공짜로 내모는 정부 때문에 엄마 정신이 병들고 애기도 파괴됩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이런..결혼은커녕 여친 사귄 적도 전혀 없는 주제에 나 벌써부터 너무 애늙은이 같은 글을 써 버렸다. =_= 하지만 이 글은 어버이날 기념 특집이니 양해 바란다.마지막으로 애늙은이 같지 않은 젊음과 패기가 느껴지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맺겠다. 바로...
4.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계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의 은혜와 관련하여 가장 감화를 받았던 때는 2007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병특 복무 중이었고, 그러고 보니 훈련소에 들어가기 얼마 전이었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서 경부선 새마을호 특실을 탔다. 그때 본인은 새마을호 특실의 음악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의 샘플을 채널별로 15분씩 녹음해 놓으려고 컴퓨터와 양방향 잭을 챙긴 상태였다. 특실에는 마치 비행기 객실처럼 다음과 같은 6개의 채널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음)
(1) 자연의 소리 (이지리스닝 instrumental) (2) 한국 가요 (3) 가곡 (4) 재즈 (5) 클래식 (6) 객실에서 방영되는 TV 방송
일반실은 이어폰을 꽂으면 6번만 들을 수 있다.
철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저 으리으리한 좌석을 보라!“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새마을호의 날이로다.”“KTX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새마을호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는 아니하니라.”새마을호는 몇 년 뒤면 퇴역하여 더 볼 수 없게 된다. 지금 많이 타 두시기 바란다.
그랬는데 1번과 2번 채널 다음으로 3번 가곡 채널을 듣고 있으니 얼마 후 <어머니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양주동 박사가 작사한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그 곡 말이다.
그 곡은 가사가 잘 알다시피 정말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지어져 있다. 국문학 박사가 쓴 가사답게 예스러운 표현도 제법 들어가서 품위 있어 보인다. 100을 의미하는 ‘온’, 그리고 일부러 음운을 탈락시킨 ‘따(땅) 위에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그지없다’ 등. 3절 가사를 보시라. 눈물 없이는 못 듣는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3절이 흘러나올 때,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계시가 내려왔다. 아아, 어머니께서 나를 낳아서 키워 주신 덕분에 내가 지금 이런 지상천국 열차를 타면서 한없는 행복에 젖을 수 있구나!
그 깨달음으로 인해 행복과 감격과 감사와 감동이 교차하면서 콧등이 찡해졌고, 나는 옆자리 승객이 보건 말건 엉엉 흐느껴 울음을 터뜨렸다. 남들은 군대에 가서 유격 훈련 때 PT 체조 8번을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스승의 은혜>로 바뀌는 체험을 한다지만 나는 그걸 열차 안에서 체험했다.
세상에 지구상의 어느 교통수단에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겠는가?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알면 퇴치되지만, 사실 철도만으로도 충분히 퇴치 가능하다. 정말 이 정도 간증이 있으니 철도'교'라는 말까지 쓰는 것이다. 난 말을 장난으로 하지 않는다.
철도가 나의 삶을 얼마나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음침하고 어둡던 나의 가치관을 건전하게 바꿨으며, 심지어 신앙에도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이 자리에서 다 간증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이 땅에 성경과 복음과 더불어 이런 철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며, 우리나라에 철도 덕후들이 많이 많이 배출되면 좋겠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8 05:24:29 | 김용묵
예수님께서 낙원과 함께 통째로 데리고 올라간 구약 성도들은 아직 부활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들의 처소 위치가 옮겨졌을 뿐입니다. 그들의 몸은 여전히 땅에 묻혀 있습니다. 이들의 몸은 7년 환난기 끝에 부활합니다.
2012-05-07 09:28:53 | 관리자
질문을 하시기 전에 상단의 전체게시글 검색에서 궁금한 단어나 구절을 검색하시면 왠만한 자료는 다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2012-05-06 23:19:13 | 송재근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257 작은 숲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45 작은 숲인가요, 아세라인가요?
참고하고 읽어보세요.
2012-05-06 06:53:05 | 신영일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몰라 이렇게 게시판에 올립니다.
열왕기상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도움을 구합니다.
왕상 14:15과 14:23을 보면 여로보암이 저지른 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중에 '작은 숲' (KJV원문에는 gorves)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왜 작은 숲을 만든것이 죄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개역한글판을 찾아보니 이 구절이 '아세라 목상' (NIV Asherah poles)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상을 만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구절을 그냥 작은 숲이라고 만 쓴다면
솔직히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분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작은 숲이 왜 죄가 되는지 도저히 이것 만 가지고는 풀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아세라 목상이라고 쓰여진 개역한글 혹은 NIV가 더 그 의미에 충실할 것은 아닌가 싶어서요.
번역의 말꼬리를 잡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로서 성경을 읽으며 부딪히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6 06:33:58 | 최도진
감사합니다.더 공부하기 원해,자주 들리겠습니다.
2012-05-06 01:28:03 | 최호헌
예수님 부활하실때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잠들고있던 자들이 예수님 따라 올라가 지금은 비어있다고 하셨는데 성막강해하실때 ''구약 시대의 성도들 역시 7년 환난기의 한 부분에서 부활할 것이다(사26:19: 단12:13)."라고하셔서 그 구약성도가 죽어서 어디에 있던 성도인지 궁금합니다
2012-05-05 22:40:46 | 정도원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진리침례교회 이우진 형제님께서 보내 주신 '가장 큰 명령'이라는 소책자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그에게 어떤 징표가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글이었습니다.
특히 진리를 많이 안다고 하는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여러 차례 읽고 머리 속에 넣은 뒤
실행에 옮겨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진리는 어려운 데 있지 않음을 요즘 뼈저리게 느낍니다.
무엇보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할 때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 모두 이 글을 읽고 이렇게 해 보자고 결심하면 어떨까요?
너무 글이 좋아 조만간 내용을 종합하여 설교로 남기려고 합니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정동수
참고로 아직 진리를 못 파신 분들은 일단 열심히 파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헛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파신 분들은 이제 이 글을 통해 균형을 잡기 바랍니다.
2012-05-05 13:54:28 | 관리자
이슬람 자본이 들어오는 걸 대통령 탄핵 운동까지 불사하면서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목사가 이슬람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담해 있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하긴, 오래 전엔 불교 대학원에서도 꽤 구설수에 오르는 발언을 한 분이지요.
2012-05-04 23:07:12 | 김용묵
안녕하세요?
* 이 자료는 인천 말씀 침례 교회의 박참하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주제 설교 시리즈를 소책자 형태로 편집하여 출간한 것입니다.
* 저는 박 목사님으로부터 이 자료를 킵바이블에 게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원고를 자체적으로 간단히 교열을 본 후 올립니다.
* 분량이 많습니다. 전체 내용은 첨부하는 hwp 파일에 들어있으며, 이곳 본문에는 머리말과 간단한 요약만 올립니다.
환란 전 휴거라는 진리를 너무나 쉽고 분명하게 풀어서 강해해 주신 박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머리말 >>
이 주제는 교리적인 문제로 아주 심각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을 말하며 계시록에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말썽 많고 주장이 다양하기로 으뜸인 책이 계시록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지 않거나 믿음이 없는 교회와 목회자들은 아예 덮어 놓은 책 또한 계시록이라 할 것입니다.
교계의 흐름으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반드시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쪽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대환란 중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대비책을 세우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계시록을 강해하는 세미나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독교계의 각종 신문에 가장 많은 세미나의 광고가 바로 요한계시록 세미나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싼 회비를 받으며 순회 세미나로 1년 내내 계속합니다. 여기에 많은 목사들이 돈을 싸 들고 모여듭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이 땅에 대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들림(휴거) 받는다는 쪽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쪽보다는 인기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계시록은 절대 어렵거나 두렵거나 비밀에 싸인 책으로 아무나 보아서는 안 될 성경이 아니라, 다른 65권의 성경과 같이 완전히 공개되고 아주 쉬운 계시인데도 문자적으로 보는 것을 외면하고 무언가 두렵고 박진감 있는 쪽을 택합니다.
오늘날 또 다시 세상이나 교계가 종말에 대해서 대단히 시끄럽습니다. 세상적인 예언이나 지진이나 기상변화에 민감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이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이 가깝다고 야단법석입니다. 물론 근래의 이상 기온으로 빙하가 녹거나 곳곳의 대형 지진은 충분히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아직도 이 지구는 대환란을 통하여 격변을 겪게 되고 심판을 통하여 변화를 받은 후에 적어도 천 년은 더 사용하고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지상 천년 통치가 있을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7년 가을에 아주 쉬운 계시록 세미나를 곤지암 기도원에서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3박 4일 동안 총 27강의로 계시록 1장에서부터 22장까지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2012년 지구의 종말을 가상하는 영화가 상영되고 잉카인들의 달력이 2012년까지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2012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소문들이 돌아 저희 교회에서 금년 봄철 특별 세미나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주제로 몇 강의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소망이요, 기쁨이요, 최고의 학수고대(鶴首苦待)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심의 공중 재림과 성도의 휴거를 문자적으로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기에 앞서 대환란이란 지옥과도 같은 너무도 두려운 재앙을 맞이해야 하므로 주님의 오심이 결코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봄철 특별 세미나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과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여러분은 각자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속히 자신의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 신랑을 맞이할 신부인 교회로서 그분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
여러분의 사랑받는 주의 작은 종 박참하 목사
<< 차례 >>
머리말.........................크고 주목할 만한 날..........................주의 날은 복된 소망인가 두려움인가....................누가 짐승의 표를 받는가?.......................구원의 날과 진노의 날...........................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부록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아겔다마(피밭).......................................
<< 본문 중에 나오는 중요한 대목을 짜깁기한 abstract -- 영화로 치면 예고편 >>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환란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그 환란을 ‘대환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를 넘어서 무지(無知)입니다. 이는 God와 gods가 단어가 비슷하다고 해서 서로 연관이 있고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Spirit(성령)이 있고 spirits(영들)이 있습니다. Lord가 있고 lords가 있습니다. 한 처녀(a virgin)가 있고 처녀들(virgins)이 있습니다. 발음이나 글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는 단어이지만 이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노아의 대홍수와 지역이나 나라들에 있는 홍수들이 같은 홍수가 아니듯이 “야곱의 대환란과 환란들”은 조금도 같지 않습니다. 소위 성경을 믿고 연구한다는 분들이 성경의 어휘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혼잡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받는 환란들은 대환란과 조금의 연관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갖가지 환란들, 고난들,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것들을 대환란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크리스천이 받는 환란, 믿는 성도들에게 닥치는 환란, 아벨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박해가 있었지만 이것을 대환란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대환란이 아닙니다.
믿음의 단련이나 육체의 시험이나 징계와 고난은 지역적으로 언제나 있지만 그것이 성경에 말씀하는 대환란은 아니며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대환란은 말 그대로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환란입니다. 야곱의 대환란은 그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지상의 이스라엘입니다.
대환란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 (욜 2:31)대환란을 겪지 않고 관전만 할 신약 성도들에게는: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 (행 2:20)주인은 결혼식을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에서 돌아”옵니다. (눅 12:36)
주님이 곧 오신다는 건 복된 소망으로, 성도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흥분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제 곧 대환란이 시작되니 우리는 대환란을 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불안과 걱정과 초조와 공포를 조성하는 거짓 교사와 거짓 형제들이 기독교계에 유난히 많습니다.
대환란은 복된 소망이 아닙니다. 대환란은 하늘로부터 오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표적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관심사는 언제나 땅의 표적들입니다. (짐승의 표, 베리칩, 각국의 화폐 통합, 종교 통합)
짐승의 표는 오늘날 신분증이나 신용카드나 의료보험용 카드 대신에 받는 칩이 아닙니다. 그런 용도로 받은 것을 앞으로 용도 변경하여 짐승의 표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라는 고백이나 증거가 있어야 받는 증명서입니다.
대환란이 주의 오심보다 먼저라면, 즉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 후에나 들림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지금은 복음을 전할 때이지 대환란을 전할 때가 아닙니다.
현 시대에 진짜로 구원받은 자녀들은 모두 다 그 이름이 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대환란 중에 땅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짐승의 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짐승의 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분명히 대환란은 그분의 진노의 날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 확실히 다른 날입니다.계시록 5장의 스물네 장로들은 지상의 대환란 때 저 하늘의 주님의 보좌 둘레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스물네 장로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내용이 더 궁금하신 분은 첨부 파일을 열어 보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4 22:56:49 | 김용묵
우리는 날마다 '연약한 육신으로 인한 죄'에대해서 자신의 태도나 입장이 어떠한지 (통회 하는 마음이 있는지) 확증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해 로마서 7장에서 아직 육신을 입고사는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21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들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위 말씀이 '통회하고 상한 영' 에게는 위로로 다가올 것이고 '번제헌물의 영' 에게는 '죄의 합리화'와 같은 왜곡된 해석이 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로마서 13장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4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구원의 받은 이후, 죄에 대해 날마다 통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만큼 내 속에 죽어있는 영이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 내주해 계신다는 것이 증명되는것 아닐까요?
2012-05-04 13:02:45 | 이상걸
http://cbck.org/Series6/View/29E에 소개된 구원 바로 알기를 한번 들어 보시지요.
2012-05-04 09:46:02 | 허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