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가 성경 공부중 누가 복음 족보에 가이난(게난) 2번 나오는데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는 성경의 오기 라고해서 성경이 잘못될리가 없다고 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창조과학 홈에서 찾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건지 알고 싶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은 누구인가? : 가이난, 셀라? (Who was Arphaxad’s son: Cainan or Shelah?)
Answers Magazine
만일 당신이 성경 관련 잡지에서 족보 도표를 대조해 본다면, 대부분의 현대 번역 성경들에 기록되어있는 누가복음 3:36절의 가이난(Cainan)의 이름이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이 이름이 창세기 10:24, 11:12, 그리고 역대상 1:18,24절에 있는 상응하는 족보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첫째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딤후 3:15-17), 이 모순은 무오 했던 성경 원본에서는 오류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 삽입(insertion)은 후대의 70인역(Septuagint, LXX) 필사본들(비-영감된 히브리 필사본들)에서 발견되어진다.
누가복음 3:36절에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삽입된 것에 대해서는 2 가지의 가능성 있는 설명이 존재한다. 첫째, 가이난은 원본 사본에는 들어 있었는데, 히브리 필사자들이 창세기와 역대상의 구절들을 필사하던 중에 이 이름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헨리 모리스 박사가 지적했던 것처럼[1] 히브리 서기관들은 필사 과정에 매우 신중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성이 낮은 설명이다. 또한 그 이름은 구약성경의 다른 고대 판(사마리아역, 불가타역, 가장 오래된 70인역 등)들에서도 빠져있다.
두 번째의 설명은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즉 누가의 편지를 필사한 70인역 필사자들이 부주의로 인해 아르박삿(Arphaxad, 아박삿)과 셀라(Shelah, 살라) 사이에 가이난을 실수로 삽입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 11:12). 따라서 그 사이에 가이난이 들어가는 것은 나이 상으로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중의 70인역 필사자들이 누가복음에 있는 명단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창세기와 역대상의 구절들에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을 삽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래리 피어스(Larry Pierce)는 이러한 설명이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38 – 약 100)의 자료에 의해서도 지지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도를 편집하기 위해 분명히 70인역을 사용했지만, 가외의 가이난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그는 입증하였던 것이다 :
만약 요세푸스가 ‘70인역(LXX)’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70인역에 기초하여 쓰여진 어떤 다른 문서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세푸스의 저술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70인역의 실수들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의 시대에는 가이난이라는 가외의 세대가 70인역 또는 요세푸스가 사용했던 문서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세푸스는 그(가이난)를 넣었을 것이다! 만일 70인역에 가이난의 이름이 포함되어있었다면, 요세푸스가 착오로 그것을 누락시켰거나(가능성 없음), 그 자료를 가볍게 취급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제롬(Jerome, 약 AD 347 – 419/420)은 벌게이트 성경(Vulgate, 성경의 라틴어 판)을 AD 5세기에 번역하였을 때, 어거스틴(Augustine, AD 354 – 430)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는 70인역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롬은 70인역이 너무나도 부정확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변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 히브리 텍스트(Hebrew text)를 사용했다[2].
피어스는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 AD 약 180 – 약 250)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누스도 그가 분명히 70인역의 부풀려진 연대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대표(AD 220년에 쓰여짐)에 가이난을 누락시켰다. 가외의 가이난의 추가는 AD 220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 피어스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
... 요세푸스는 크리스천 저술가가 아니었고 누가복음 족보의 필사본들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에 반해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의 아리스티데스에게 보낸 서신(Epistle to Aristides) 3장에서, 그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족보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 사실 그는 누가복음 3:25절을 인용하고 있었다[3]. 따라서 아프리카누스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사본들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리카누스가 누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누가복음의 사본들에 이 가짜 가이난이 들어 있었다면, 아프리카누스는 분명히 그것을 포함시키기 위해 그의 연대기를 수정했을 것이다. 사실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누가복음 사본이라고 알려진 P75 (AD 175-255년 사이[4])라 불려지는 보드머 소장품(Bodmer Collection)의 파피루스 사본(papyrus codex) 102 페이지(원래는 144 페이지)에는 가이난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3:36절에 있는 내용은 AD 220년 이전에는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다.
또한 개혁주의 침례교파 신학자인 존 길(John Gill)은 누가복음 3:36절에 가이난이 더해진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 가이난은 창세기 11:12절에서 모세에 의해서 언급되지 않았고, 구약의 어떤 히브리어 사본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으며, 또한 사마리아어 판(Samaritan version)이나, 탈굼어 판(Targum version)에도 없다. 또한 요세푸스도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가계의 족보가 반복되고 있는 역대상 1:24절에도 없고, 베자(Beza)의 가장 오래된 누가복음의 헬라어 판에도 없다. 그 이름은 정말이지 현대의 70인역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원래는 거기에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자료로부터 누가가 취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어떤 부주의한 누가복음 필사자의 탓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권위 있는 70인역에 부주의하게 삽입되어진 그때부터, 많은 헬라어 판들(Greek copies), 라틴어 판인 벌게이트(Vulgate Latin), 모든 동방 판들(Oriental versions), 심지어 그들 중 가장 오래된 시리아어 판(Syriac)에도 가이난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박삿의 아들이며 셀라의 아버지가 되는 그러한 가이난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성경의 어느 사본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5].
Footnotes[1] Morris, H.M., The Genesis Record,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 1976, p. 282. [2] Pierce, L., Cainan in Luke 3:36: insight from Josephus, CEN Technical Journal 13(2):76, 1999. [3] Ante-Nicene Fathers 6:126, Hendrickson, Peabody, MA, 1994. [4] Geisler, N.L. and Nix, Wm. E., A General Introduction to the Bible, Moody Press, Chicago, revised and expanded, pp. 390–391, 1986. [5] Commentary available online.
*참조 : What about Caina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2/j18_2_41-43.pdf
Some remarks preliminary to a biblical chronology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6
출처 : AiG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chronology-conundrums번역자 : IT 사역위원회[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1:1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3 16:39:08 | 허광무
본 사이트는 성경과 관련된 글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정치적 색채가 있는 글은 게재하지 말기 바랍니다.
저는 이북의 김정일 세력을 극도로 미워합니다.
그것은 마귀의 세력입니다.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아주 싫어합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아주 이상하지요.
물론 북쪽 동포들의 아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도 이북 사람(황해도 안악)으로 공산주의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런 일로 다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잘 판단해서 올려주세요.
이런 종류의 글이 예고 없이 지워져도 용서하세요.
부탁합니다.
2010-04-13 16:38:20 | 관리자
매우 공감합니다.
좀더 작은 일에 충실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4-13 15:27:26 | 김재욱
기존 교회의 목사제도 등에 염증을 느낀 분들이 너무 과도하게 반발하는 것이 바로 그런 대안교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평신도'라는 말 자체가 그런 것을 구분짓는 말입니다. 목사자격이 있는 분은 그 교회에 갈 수 없나요?
말씀하시는 곳이 지방교회인지 가정교회, 형제교회.. 용어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신약에 해당 구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김재근 형제님이 찾아 주셨네요.^^ 목사님이시지만 이렇게 형제님이라고 부를 수 있답니다.
성경대로 하면 자유가 생깁니다.
아무튼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닌, 말씀을 맡아 가르치고 이끄는 목자는 꼭 필요합니다.
물론 교단 등에서 지정한 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받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다음은 목사에 대한 성경사전 검색 내용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시든 선택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목자. 이것은 그리스도의 양 떼를 먹이고 보호하는 직무를 가진 사람으로 감독과 장로와 같은 사람이다(엡4:11; 벧전5:2). 목자, 감독, 장로 참조. 신약성경에서 목사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포이멘’이며 이것은 18군데에서 모두 목자로 번역되었다(마9:36; 막6:34; 눅2:8; 요10:11; 히13:20; 벧전2:25 등).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교회를 위해 목사 즉 지역 교회의 목자라는 선물을 주셨다(엡4:11).
목사는 감독으로 교회를 감독하며(빌1:1) 장로로 위엄 있게 치리하고(딛1:5) 목자로 꼴을 먹이는 의무를 수행한다(엡4:11).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요10:11), 큰 목자(히13:20), 우리 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 목자장(벧전5:4)이시며 따라서 목사는 하늘에 계신 그분을 대신해서 땅의 성도들을 먹이는 작은 목자 혹은 보호자를 뜻한다. 목사의 자격은 딤전3:1-7과 딛1:6-9에 나와 있다.
어떤 이들은 엡4:11을 잘못 해석해서 목사, 교사 등이 직분이 아니라 선물(은사)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문맥을 벗어난 자의적 해석이다. 성경은 그 부분에서 분명하게 교회에게 목사, 교사 등의 선물을 주셨음을 말하며 결코 개인의 선물(은사)을 말하지 않는다. 목사는 집사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교회에게 주신 직분(office)이다(딤전3:1-7).
목사는 권위를 가지고 모범을 보이면서 감독하며 지역 교회의 양들을 이끌고(히13:7, 17; 딤전5:17; 살전5:12) 먹이며(엡4:11-16) 양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목사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사랑하고 후하게 대우하며 기도해 주고 격려하며 감사히 여기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
한편 구약성경에서도 pastor는 목자이며 또 다른 목자를 나타내는 shepherd와 구분하기 위해 목양자로 번역되었다(렘2:8; 3:15; 10:21; 23:1-2). 목자 참조.
2010-04-13 15:23:37 | 김재욱
....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에베소서 4장 11절]
선포자(preacher)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장 14절]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이방인들과 선포자(preacher)와 사도와 교사로 정하여졌느니라. [딤후1:11]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oversight).... [베드로전서 5장 2절]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히브리서 13장 17절]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을 기억하며... [히브리서 13장 7절]
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디모데전서 3장 5절]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overseer)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장 28절]
2010-04-13 15:11:20 | 김재근
오늘 아침에 마태복음 5장을 읽게 되었는데 5:13-16을 읽으면서 좀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거듭나기 전에는 제가 다녔던 많은 교회들에서 목사님들이 늘 교인들에게 설교하기를 [너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서는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마5:13)............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마5:14).......]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이미 소금이고 빛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소금이 아니로되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소금되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왔고 빛되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도 소금과 빛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들은 다 소금이요 빛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것은 다만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분과 빛이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깊이 좀 묵상이 되었습니다.
소금이로되 맛을 읽은 소금, 빛이로되 통으로 가려놓은 빛- 아무도 쓸모없는 소금이요 빛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말씀으로 많은 설교를 했고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하면서 형제자매님들께 세상에서 또한 교회 안에서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고 나 또한 그렇게 살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가정으로 부터라는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들기 전에 가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만든 교회입니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님을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가정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만든 교회입니다.
그래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어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잘 나타내주고 있는 부분이 바로 엡5:25- 6:4까지의 말씀에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제일 가까운 부부간의 관계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길 원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자녀가 부모님께, 부모님이 자녀에게 ......
막9:50에 보면 소금에 대해 말하면서 [........너희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화목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시면서 어찌 세상에서 교회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뜻을 마음으로 알고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 저의 아내와 충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 아내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저 아내 때문에 내가 사역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론 전도를 나가려 하면 아내가 이런 환경에서 전도를 나가려 하느냐고, 오늘만 같이 있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마귀에 속아서 나를 막으려 하니 이런 아내의 말을 들어주면 안 된다 싶어서 아내를 뿌려치고 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나를 향해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제일 가까운 아내의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냥 다 마귀의 역사로만 때려 붙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나는 영적인 사람이고 아내는 늘 육적인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난 너무 위선적인 사람이었고 육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교회를 맡기기 전에 가정이란 교회를 맡겼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내가 너를 많은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리니 너는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 하니라.](마25:21)
[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불의하리라.](눅16:10)
저는 그간 신실하지 못했고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보게 되면서 회개가 되었고 아내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잘 읽지도 않던 아내가 성경을 보는 것을 보게 되었고, 기도를 잘 하지 않던 아내가 기도를 잘 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늘 저의 부모님과 불화를 하고 늘 저를 만나면 시 어머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불평을 털어놓던 아내가 그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고 시 어머님을 섬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는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는것 보다도, 교회 봉사를 하고 전도하는 일보다도 아내가 문제가 되면 아내에게 먼저 관심을 가집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이 저에게 섬기라고 준 교회고 이 가정을 잘 섬김으로 교회도 잘 섬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아내나 가정 식구들이 영적으로 곪아터져 있는데 그냥 마귀의 일로 핑계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저는 그간 이런 삶을 살았고 많은 사역자들이나 형제자매님들이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하나님 앞에 칭찬은커녕 빵점이고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소금의 역할, 빛의 역할은 가정에서 부터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5장에 소금과 빛에 대해 읽으면서 들어지는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순서 없이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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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14:51:29 | 홍승현
삶이 분주한 이유로 일방적으로 질문만 자꾸 올리고상호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요즘 고민이 많다보니 질문이라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여유가 생기는대로 제 의견들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는 대형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소위 [대안교회]라 불리는 평신도 교회로 옮길까 고민중입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를 운영중이신 분들은
아마도 목사가 존재하는 교회를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근거들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평신도교회는
어느정도 성숙된 크리스천들이라면 돌아가면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설교라기보다는 말씀을 나눈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씀에 대해 서로 자유로운 질문과 대화가 얼마든 가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제도권 교회와 극명한 차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성경의 내용과 저사람이 말한 성경의 내용이 다르다면
그 차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정말 각자가 말씀 앞에 홀로(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서야 하는 그런 교회입니다.
마치 이미 평신도교회를 편드는 것같이 보이겠지만
저는 현재는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자 합니다.
교회에 목사가 존재해야하는 성경적 근거가 무엇인지
다른 분들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2: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13 14:35:51 | 장경선
안타깝지만 아직 제주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는 교회가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제주에도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는 교회가 생기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10-04-13 10:19:53 | 송재근
우리나라의 중부 중심 대전에 윤재근 목사님과 형제자매님들이 바른 교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대전 반석침례교회
이번에 새롭게 사이트를 개설해서 알려드립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방문하셔서 교제를 나누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04-13 09:11:51 | 관리자
그랬었군요? 죄송합니다.^^;;
킵바이블에 올라온 글들을 읽을 때, 주의해서 꼼꼼하게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시력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다보니, 밤이면 눈이 침침하고 피곤해져서 가끔은 이런 실수를 범하기도 하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글을 결코 소홀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양해해주세요.
저도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글쓰는 분들의 노고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가장 잘 변호해주시리라 믿어요. 고맙습니다. ^^*
2010-04-13 00:40:45 | 이은희
샬롬^^
혹시 제주도 제주시에 흠정역을 사용하는 침례교회가 있는지요..
있다면 위치, 교회전화번호 등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구령한 사람들 중 세 사람이 제주에 살고 있는데(딸 둘/큰딸 남친) 보낼만한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포라서...
2010-04-12 19:07:01 | 김형식
김문수 형제님의 저서 '바르게 보는 성경'을 출간하면서 형제님을 모시고 킹제임스 성경 특강을 열려고 합니다.
일시: 2010년 4월 25일 주일 오후 2시부터 50분씩 2번
장소: 사랑침례교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강1: 영, 혼, 몸에 대한 이해
"생령인가, 살아있는 혼인가?"를 중심으로, 영혼몸의 성경적 개념과 이를 잘못 이해할 때 빠질 수 있는 교리적 오류에 대해 소개합니다.
특강2: 스스로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방법
성경공부의 필요성과 자세, 그리고 여러가지 방법 중 단어 중심의 성경공부 방법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김문수 형제님의 책 '바르게 읽는 성경'이 출간되면서 몇몇 분들이 이 책을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는데 가격이 부담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4월 한 달 동안에는 한 번에 10권 이상 구입하는 분에게 정가에서 4000원을 할인하여 7000원씩에 드립니다. 즉 10권 구입: 70,000원20권 구입: 140,000원 등 원하시는 분은 우리은헁계좌(256-031553-12-009, 정동수)로 입금하시고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주소, 핸드폰, 성함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e-mail로 주문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0-04-12 18:31:26 | 관리자
흔히 목사님들은 남에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많이 있는데
항상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많이 우리나라에도 생기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0-04-12 15:31:43 | 정혜미
반갑습니다.
저도 한동안 아이디를 분실하여 아들아이디로 들어와 댓글을 달고 아무개 자매라고 썼는데도 이은희자매님께서 제게 형제님이라고 써주신 적이 있으셨지요^.^
깜딱 놀랐습니다. 형제님 소리를 들어서요.
미국에서도 바로 한국의 인터넷기독교서점인 '생명의 말씀사"로 흠정역을 주문하셔도 될 듯...
제 동기에게 한 번 보낸 적 있었는데 배송료 별로 안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멀리서도 가깝게 교제할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2010-04-12 15:16:51 | 김선희
흠정역으로도 손바닥만한 성경이 만들어져 북한으로 들어갈 수는 없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모퉁이돌 선교회에선가 북한말로 성경을 새로 만들어 보낸다고해서말이죠. 흠정역을 통해서 남북한 언어도 잘 소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2010-04-12 15:07:47 | 김선희
결국 NKJV도 올바른 버젼이 아니었군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부지런히 공부해서 언젠가 이 무지함에서 벗어나고 싶네요~^^
2010-04-12 12:21:46 | 김혜진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통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UFO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왜 이제야 이걸 알게 되었을까 한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UFO에 대해선 비성경적이니 관심조차 가지지 말라고 덮어버리는 허약한 기성교회의 강단을 떠 올리며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말세에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은 기성교회들의 배교에 UFO의 존재가 무언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영화, 인터넷등을 통해 UFO는 외계인이라는 둥 몇 천년 전부터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 해 왔다는 둥 되지도 않는 엉뚱한 얘기를 토해내는 사탄의 전략으로부터 도무지 우리 아이들을 막아주지 못하는 허약한 교회교육 앞에 우린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2010-04-11 20:21:01 | 김대용
일반적으로 NKJV = New King James Version 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NKJV 는 킹제임스 성경과 다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NKJV 서문에는 이것은 슈트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루돌프 키텔이 전통맛소라 본문을 변개한 것)를 텍스트로 사용하였고, 오리겐의 셉튜아진트(70인역)를 참고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역본들에 비해서는 상당 부분 KJV와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번역의 기초가 되는 저본이 다르면 같은 성경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직접 KJV와 NKJV를 읽고 차이점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0-04-11 16:12:19 | 김문수
킹제임스KJV 성경의 고어와 표현들을 현대 영어로 바꾼 것이 뉴킹제임스NKJV입니다.
그러나 현대역본들이 변개한 부분도 많이 반영되어 변질된 것이 뉴킹제임스입니다.
물론 NIV, NASB 등의 현대역본들보다는 좀 나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관련 자료들을 보시면 그 차이점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2010-04-11 12:36:53 | 김재욱
안녕하세요.
영어 성경중에 KJV와 NKJV가 있던데 두 버젼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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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1 02:29:30 | 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