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는 호주 목회자 키이쓰 파이퍼의 책을 이황로 박사(미국 West Coast Baptist College 교수)가 번역하고, 이기석 전 뉴저지 새순교회 목사와 이광복 광신대 교수이자 흰돌선교센터 원장이 감수했으며, 전 총신대 및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가 추천한 책입니다(도서출판 흰돌, 453쪽).
정성구 박사는 은퇴했으나, 지금도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종교개혁 정신의 함양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의 핵심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그들이 말한 성경은 루터, 칼빈, 틴데일의 뒤를 이어 제네바 성경 및 킹제임스 성경으로 결실을 이룬 종교개혁 성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성구 박사님의 추천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이기석 목사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읽었습니다. 20여 년 전 저는 미국 뉴저지 주에서 목회하시던 이 목사님 초청을 받아 부흥 집회를 인도했는데 그때 이 목사님께서는 전수 사본(Received manuscripts) 즉 공인(共認) 본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된 영어 성경만이 참된 성경이라고 힘주어 말했고 저도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사실 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서 <킹제임스 성경>, <틴데일 성경>, <루터의 독일어 신약 성경>, 칼빈이 주도한 <올리베땅 프랑스어 신약 성경>, 또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이요, 청교도들의 성경이며 미국 건국의 성경이었던 <제네바 성경>이 번역됐습니다.
저는 평생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과 칼빈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과 박물관에는 사본학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자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사본, 어느 본문으로,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번역했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제네바 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은 그 당시 종교개혁의 정신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정신 위에 그리스어 본문인 공인 본문(TR)을 바탕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영역 성경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 뉴에이지, 로마 카톨릭 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적인 인본주의 사상으로 성경 번역에 심대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학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이들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본문을 재구성한 것을 철저히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이단이며 가장 잘못된 사본을 사용하고,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안목으로 번역해 버린 그들은 도리어 기독교 신앙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자들입니다.
이 책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은 영어 역본들을 사본과 정확히 대조하면서 참된 번역과 잘못된 번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매우 학문적이며 사본학의 근원을 파헤치는 역작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이 책이 신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목회자와 모든 신학생들에게 두루 읽혀 성경 교육과 설교에 크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
2019-11-20 11:56:16 | 관리자
우리말 성경 연구
한국 교계에서 성경 번역의 최고봉을 들라고 하면 장로교 신학대 대학원장을 지내신 나채운 교수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1990년 나채운 교수는 성경 번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 <우리말 성경 연구>를 출간하였습니다(기독교문사 1996년 2쇄). 작은 글씨로 무려 714쪽에 기록된 내용은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참으로 유용합니다. 나채운 교수는 “우리말 성경으로 설교하고 가르치시는 한국 교회의 모든 교역자들과 그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모든 신학생들에게 이 책을 드린다”고 헌정사를 기록하였습니다.
나채운 교수는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성경을 읽어서 그 말씀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에 관한 정확 무오한 유일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즉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책이란 말이다.
한국 교회는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성경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개인의 성경 읽기나 교회에서의 성경공부의 실체를 보면 거기에는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들이 많다. 교역자들 중에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강조만 하고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으니, 교인들은 무턱대고 성경(대개는 어려운 개역성경)을 많이 읽기만 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성경 공부를 할 때에는 많은 경우에 성경이 처음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리말 성경은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등을 가르치는 바도 없고 아는 바도 없이, 그저 성경 본문을 공부하는 것으로만 그친다. 성경 본문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거의가 개역성경 하나만을 교재로 할 뿐 우리말 성경 새 번역(신약전서)이나 공동번역을 참고로 하거나 비교 대조도 하지 않는 실정이다. 더구나 관주 성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주 성경에 있는 참고 사항(구약 인용, 여러 가지 난하주 및 참조 관주 등)을 이용하는 교역자나 교인은 거의 없다.
이상과 같이 우리말 성경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말 성경(대개의 경우 개역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번역상의 문제점(오역 등)을 모르고, 그 본문 그대로를 가지고 설교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여, 때로는 성경의 원문과는 다른 뜻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상과 같은 실정인지라, 저자가 봉직하고 있는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과정에서는 몇 해 전부터 <우리말 성경 연구>라는 과목을 두어, 우리나라 교역자들이 그들의 교역에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성경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과 문제점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서는 처음, 저자의 강의에 필요한 교재로서 시도되었으나, 써 나가는 중에 한국의 전체 교인들의 성경공부를 위한 배려도 하게 되었다.
본서의 주요 부분은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편은 우리말 성경 번역의 역사, 제2편은 우리말 성경에 관한 해설, 제3편은 우리말 성경 번역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부수적인 것으로서 제4편에서는 이상의 세 분야에 관한 참고자료를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말 성경의 이해를 위한 부록을 실었다.
본서가 한국 교회의 교역자들이 그들의 실제적인 목회에서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나 성경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또 평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활용되어 우리말 성경을 더 깊이,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저자의 기쁨은 더할 나위가 없겠다.
끝으로 수고해 주신 조선근 장로님, 그리고 교정의 수고를 해주신 장영수 전도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채운 교수의 명작 <우리말 성경 연구>는 교회의 성경 공부 시간에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세밀히 다루고 있습니다.
1. 우리말 성경은 언제, 누가, 어떻게 번역하였는가?2. 우리말 성경이 가지고 있는 특색은 무엇인가?3. 우리말 성경의 번역은 어떻게 변천 발전되어 왔는가?4. 우리말 성경에는 어떠한 종류와 형태가 있는가?5. 우리말 성경에는 어떠한 특수 번역판이 있는가?6. 개신교 이외의 성경 번역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7. 우리말 성경 번역은 얼마나 원어(헬라어,히브리어)에 충실한가?8. 우리말 성경 번역은 얼마나 당시의 영어역 성경의 영향을 입었는가?9. 우리말 성경 번역은 얼마나 당시의 중국어역 성경의 영향을 입었는가?10. 우리말 성경 번역은 얼마나 당시의 일어역 성경의 영향을 입었는가?11. 우리말 성경 개역, 새번역, 공동번역의 실제적인 차이는 어떠한 것인가?12. 우리말 성경의 번역과 출판 현황은 어떠한가?13. 우리말 성경은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14. 우리말 성경 본문 중에 있는 작은 글자, 묶음표 및 부호는 무엇을 뜻하는가?15. 우리말 관주 성경 안에 있는 관주나 난하주는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16. 우리말 성경에는 문법상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17. 우리말 성경에는 어휘 면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18. 우리말 성경에는 한자 사용에 있어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19. 우리말 성경에는 표현 면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20. 번역어로서의 우리말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말 성경 연구> 전체 본문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제3편은 기존 우리말 성경의 다양한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므로 설교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매우 큰 유익을 줄 줄로 믿습니다.
2019-11-20 11:50:19 | 관리자
1996년 9월, 한종수 목사는 기독교 문서 선교회를 통해 <개역성경과 헬라어 표준 원문 비교 연구>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표준 원문은 공인 본문 즉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인 ‘Textus Receptus’를 말함).
한종수 목사는 한국 외국어 대학교 영어과와 총회 신학교 신학 연구원 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의 침례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 책 서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개역성경은 영감성이 뛰어나고 믿음으로 번역한 훌륭한 성경이지만 그 본문은 유감스럽게도 1881년에 변개된 영어개역성경 계열이어서 본문 내용이 표준 원문과 그것의 번역판인 틴데일 성경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과 너무나 틀리다. 그리하여 정확한 성경을 우리 시대에 확정지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의 원고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표준 원문의 일부분을 번역하면서 성경이 정확할 때 성경은 상당히 명료하여 누구든지 읽을 수 있고 어려운 해석을 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예 계:8:13).
개역성경: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킹제임스 성경: 또 내가 보고 들으니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이제 세 천사가 불게 될 또 다른 나팔 소리들로 인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하더라.
앞으로 표준 원문 성경의 필요성을 느끼는 성도들이 많아져서 표준 원문에서 성경을 번역하여 사용하는 때가 한국 교회에 오는 날 이 책 출판의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220쪽의 이 책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다룹니다.
1. 표준 원문에는 있으나 개역성경에서 빠진 부분2. 표준 원문에는 없으나 개역성경에 추가된 말들3. 새로운 번역 제안4. 현대 성경 번역의 특색과 그 공통점들5. 성경 번역과 뉴에이지 운동
총신대 학장을 지내신 김희보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10여 년 전에 미국에 유학을 가셨던 한종수 목사님, 지금은 미국 Covenant Bible Seminary의 교수로 계시면서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교포 교회를 목회하시는 그가 정성을 들여 연구한 원고 <개역성경과 헬라어 표준 원문 연구>를 읽고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추천서를 쓰게 되었다. 그의 이 ‘연구 작품’은 앞으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우리 교계와 또 성경 번역에 관심이 많은 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좋은 연구서이다.
먼저 저자는 성경 번역에 있어 어떤 원문 사본을 근거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절실한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의 연구 범위는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에 대한 것으로 그는 먼저 한글개역성경을 포함하여 역대의 모든 현대 역들을 표준 원문(Textus Receptus)을 수정하고 가감하고 변화시켜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과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에 거의 같게 만든 1881년에 그 내용이 많이 바뀐 ‘웨스트코트-호르트(Westcort-Hort)의 헬라어 성경’과 영어개역성경 그리고 네슬판 헬라어 성경을 거쳐 연합성서공회의 헬라어 원문을 대본으로 한 것임을 말했다.
여기에는 우리의 한글개역성경과 더불어 RSV(1946), NRSV(1987)와 또 우리가 지금 많이 읽는 NASB와 NIV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역들의 대본인 ‘Nestle판 원문 성경’과 ‘연합성서공회의 헬라어 원문 성경’은 이른바 표준 원문(Textus Receptus)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1516)은 표준 원문(TR)의 최초 인쇄본이요, 그 사본을 보완하여 최초로 장과 절을 구분하여 출판된 것을 ‘스테판 그리스어 신약 성경’(Stephanus Greek New Testament(1551, 4판)이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성경들은 틴데일 성경(1535), 제네바 성경(1560), 루터의 독일어 성경(1522) 등을 거쳐 킹제임스 성경(1611)에 이르게 됐다.
지금 우리의 한글개역성경을 위시하여 NASB, NRSV, NIV 등은 킹제임스 성경, 틴데일 성경, ‘Robert Young의 직역 성경’들과 비교하여 볼 때 많은 부분들이 삭제되고 틀린 것이 있는데 이것은 ‘원본 대본’의 차이에서 생겼음이 확실하다.그런데 본 연구 작품은 한글개역성경을 표준 원문과 비교하여 그 차이점을 제시하여 그 우열을 가리며 분석한 데 그 특색이 있다. 그 차이점을 밝힌 것이 4복음서에만도 230여 곳이요, 로마서에서 계시록까지 400여 곳에 이른다. 본서는 현대 번역 성경들의 특색과 공통점을 밝혀 성경 번역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힘을 썼다.
이 연구 논문은 성경을 연구하는 자들과 앞으로 새로이 성경 번역에 관심을 가진 자들에게 꼭 한 번 읽어 보고 검토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디 한종수 목사님의 성경 번역에 대한 이 연구가 앞으로 한국 교회의 성경 번역에 큰 유익이 되기를 삼가 바라마지 않는다.
2019-11-20 11:38:25 | 관리자
신약 분석 성경
2008년 5월, 송종섭 박사는 <신약 분석 성경>이라는 역작을 신약 원어 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습니다. 총 827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신약 성경 전체를 원어와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하고 동시에 개역성경에서 오역되거나 삭제된 부분을 모두 표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책을 내려면 수십 년간의 연구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종섭 박사는 생략 및 삭제를 보충하고 오역을 정정하며 의역도 수정하고 문장 변개를 수정하며 심지어 단복수까지 철저히 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생략과 오역은 적색으로 개정과 수정은 청색으로 그리고 정확한 번역은 흑색으로 구분하여 누구라도 정확하게 성경 본문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송종섭 박사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두고 오랜 연구 끝에 이 책을 발간하였고 또 한국의 보수 교단이 8년 6개월에 걸쳐 완성한 바른 성경은 신학적 전제를 가지고 번역하였기에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총신대학교 총재이셨던 박아론 박사님의 추천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대한성서공회의 개역성경을 표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번역의 정확성 문제로 논란이 일어나면서 여러 종류의 성경이 번역 되었고 대한성서공회도 개역판 성경번역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역개정판 성경전서를 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번역의 정확성 문제는 지속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여러 종류의 성경도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출신으로 본인의 제자였던 송종섭 박사가 <신약분석성경>을 번역하고 발간하였습니다.
<신약분석성경>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헬라어 원전을 직역하였고 둘째로 중요한 단어마다 한헬영대역을 하였으며 셋째로 개역판 신약전서를 언어학적으로 검증하여서 정확한 번역과 정확하지 못한 번역을 분석한 후 정확하지 못한 번역은 한헬영대역으로 정정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눈으로 번역의 문제점들을 알 수 있도록 생략 및 오역은 적색으로, 수정은 청색으로 그리고 바른 번역은 흑색으로 편집하였고 문제된 번역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되 필요시에 권위 있는 여러 종류의 영어성경을 예문으로 제시하여서 증거를 담보하였습니다.
<신약분석성경>의 발간으로 한국 교회는 그동안 잘못된 번역으로 말씀을 왜곡하였던 말씀의 암흑시대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문하생이 이와 같은 <신약분석성경>을 번역한 것에 대하여 크게 치하하면서 한국 교회가 이를 널리 애용하기를 바랍니다.
2019-11-20 11:28:53 | 관리자
2018년 12월 16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AkdFe3iQkV8
2018-12-26 21:49: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선조들과 침례교 선조들은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본인들의 믿음 진술문을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개 신앙 고백(Confession of faith)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들로는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 있고 1689년에 제정된 침례 교인들의 런던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믿기를 원하는 성경 신자들에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처음에 나오는 ‘성경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1조 ‘성경기록 편’에는 총 10개의 항이 있는데 성경의 영감과 보존 그리고 번역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8항이 정교하게 믿음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옛 시대 하나님의 백성의 고유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 여러 민족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언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즉각적으로 영감 되었으며 그분의 사상 유례 없는 보호와 섭리에 의해 모든 시대 속에서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므로 진정으로 믿을 만하다. 그러므로 종교의 모든 논쟁에 있어 교회는 최종적으로 신구약 성경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권리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라고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이 원어들을 알지는 못하므로 신구약 성경은 성경이 전달되는 각 민족의 대중이 사용하는 통속적인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 풍성히 거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또 성경의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 The Old Testament in Hebrew (which was the native language of the people of God of old), and the New Testament in Greek (which, at the time of the writing of it was most generally known to the nations), being immediately inspired by God, and, by His singular care and providence, kept pure in all ages, are therefore authentical; so as, in all controversies of religion, the Church is finally to appeal unto them. But, because these original tongues are not known to all the people of God, who have right unto and interest in the Scriptures, and are commanded, in the fear of God, to read and search them, therefore they are to be translated into the vulgar language of every nation unto which they come, that the Word of God dwelling plentifully in all, they may worship Him in an acceptable manner; and, through patience and comfort of the Scriptures, may have hope. 재미있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이후 42년 만에 제정된 런던 신앙 고백의 1조 ‘성경기록 편’ 8항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1조 8항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성경에 대한 믿음’이 더 손질할 필요 없이 침례 교인들에게도 유효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성경에 대한 믿음을 표현할 때에는 심지어 침례 교인들도 항상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기록 편’을 언급합니다. 이번 주에는 이 위대한 신앙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2018-08-09 19:44:5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God의 용례에 대해 문의해서 간단히 적습니다. 이분의 이메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제가 잘 몰라서 한 가지 여쭈려고 합니다. 왕하5:3 And she said unto her mistress, Would God my lord were with the prophet that is in Samaria! for he would recover him of his leprosy. 왕하5:3 그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사마리아에 계신 대언자와 함께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분의 나병을 고쳤으리이다, 하니 위의 영어 구절을 보면 “Would God my lord....”로 되어 있는데 왜 여기서 하나님을 번역하지 않았는지요? 즉 “내 주께서”가 아니라 “하나님 내 주께서”로 번역이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목사님,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답을 드립니다. Would God 자체는 기원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민11:29, 14:2; 20:3, 신28:67, 삼하18:33 등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어에서 간절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히브리말 원어 성경에는 당연히 God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God save the king!”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총 7회). 한 예를 들겠습니다. 삼상10:24, And Samuel said to all the people, See ye him whom the LORD hath chosen, that there is none like him among all the people? And all the people shouted, and said, God save the king. 삼상10:24,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주}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온 백성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느니라, 하니 온 백성이 외치며 이르되, 국왕 폐하 만세, 하니라. 여기 역시 히브리어에 “God save” 등이 없습니다. 이것은 “왕 만세”, “국왕 폐하 만세” 등을 영어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만 이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해 달라는 당한 기원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을 구원해 주시면 왕은 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영어 성경에는 “God forbid”라는 말이 24회 나옵니다. 롬6:1-2,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continue in sin, that grace may abound? God forbid. How shall we, that are dead to sin, live any longer therein? 롬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이런 데도 그리스말에는 God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음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God forbid입니다. 즉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금하시기 원한다는 강한 기원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금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8-07-28 12:09:0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 설교자는 성경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주석을 봅니다. 설교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성경 자료 중 하나는 <Biblical illustrator>입니다, 이것은 원래 34,000페이지의 자료를 56권의 책에 모은 것입니다. 개인이 성경을 읽고 경건 시간을 가지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물론 설교 준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풀핏 주석을 지은 엑셀(Joseph S. Exell)은 무디(Dwight L. Moody), 스펄전(Charles Spurgeon), 라일(J. C. Ryle), 핫지(Charles Hodge), 매클라렌(Alexander MacLaren), 헨리(Matthew Henry) 등 유명한 설교자/저술가들의 글을 모아 놓았습니다. 이 안에는 성경의 거의 모든 절에 대해 다음이 들어 있습니다. • 예(illustrations)• 요약(outlines)• 역사(history)• 시(poems)• 강해(expositions)• 지리(geography)• 설교(sermons)• 성경 배경(Bible backgrounds)• 설교 법(homiletics) 다음 사이트에서 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http://biblehub.com/commentaries/illustrator/genesis/1.htm 요한복음 3장http://biblehub.com/commentaries/illustrator/john/3.htm 이런 자료를 통해 성경이 풍성하게 해석되고 읽히고 삶에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 As described by Bible Support: Joseph S. Exell edited and compiled the 23 volume Biblical Illustrator commentary. He was the co-editor of the famous Pulpit Commentary (this commentary is even larger than the Pulpit Commentary). This remarkable work is the triumph of a life devoted to Biblical research and study. Assisted by a small army of students, the Exell set draws on the rich stores of great minds since the beginning of New Testament times. -- The Biblical Illustrator brings Scripture to life in a unique, illuminating way. While other commentaries explain a Bible passage doctrinally, this work illustrates the Bible with a collection of illustrations of use, outlines, anecdotes, history, poems, expositions, geography, sermons, Bible backgrounds and homiletics for nearly every verse in the Bible. This massive commentary was originally intended for preachers needing help with sermon preparation. But today, the Biblical Illustrator provides life application, illumination, inspiration, doctrine, devotion, and practical content for all who teach, preach, and study the Bible. -- The Biblical Illustrator includes material from hundreds of famous authors of the day.Over 34,000 pages in its original 56 volume printing, the Biblical Illustrator is a massive compilation of treatments on 10,000 passages of Scripture. It is arranged in commentary form for ease of use in personal study and devotion, as well as sermon preparation. Most of the content of this commentary is illustrative in nature, and includes from hundreds of famous authors of the day such as Dwight L. Moody, Charles Spurgeon, J. C. Ryle, Charles Hodge, Alexander MacLaren, Adam Clark, Matthew Henry, and many more. The collection also includes lesser known authors published in periodicles and smaller publications popular in that ara. Unlike modern publishers, Exell was apparently not under any pressure to consolidate the number of pages.While this commentary is not known for its Greek or Hebrew exposition, the New Testament includes hundreds of references to, and explanations of, Greek words. Joseph S. Exell edited and compiled the 56 volume Biblical Illustrator commentary. You will recognize him as the co-editor of the famous Pulpit Commentary (this commentary is even larger than the Pulpit Commentary). This remarkable work is the triumph of a life devoted to Biblical research and study. Assisted by a small army of students, the Exell draws on the rich stores of great minds since the beginning of New Testament times. The Biblical Illustrator brings Scripture to life in a unique, illuminating way. While other commentaries explain a Bible passage doctrinally, this work illustrates the Bible with a collection of: •illustrations•outlines•anecodtes•history•poems•expositions•geography•sermons•Bible backgrounds•homiletics for nearly every verse in the Bible. This massive commentary was originally intended for preachers needing help with sermon preperation (because who else in that day had time to wade through such a lengthy commentary?). But today, the Biblical Illustrator provides life application, illumination, inspiriation, doctrine, devotion, and practical content for all who teach, preach, and study the Bible.
2018-06-08 11:36: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사이트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다음 사이트는 유명한 학자들의 주석을 보여 줍니다. http://biblehub.com/commentaries/genesis/1-1.htm 우리는 주로 매튜 헨리, 반즈 등의 주석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두 분 것 외에도 존 길, 풀핏 주석 등도 들어 있습니다. 주석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또한 난해 구절에 가면 주석자들의 의견이 다양하고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맞는지 그른지를 구분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이를 위해서는 문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런 자료들을 사용해서 말씀을 잘 강해하는 설교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우너합니다. 다음 사이트는 한 미국 성도가 스스로 만든 주석 사이트입니다.제가 보기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맥에 맞게 바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영어도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합니다. http://www.bible-studys.org/index.html 이런 사이트들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결과 우리 주 예수님만 높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8-05-08 13:22:44 | 관리자
•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 어떤 언어로 말씀하셨는가?
킹제임스성경에서는 히브리어로, NIV에서는 아람어로.
사도행전 26장 14절
우리가 다 땅에 쓰러졌을 때에 내게 말씀하시는 한 음성이 있어 내가 들으매 히브리말로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기에
킹제임스성경에는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히브리말”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었다. 개역성경도 예수님께서 “히브리말”로 사용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말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해치려했던 군중을 향해서 연설할 때 사용한 바로 그 언어이다. “그가 히브리말로 자기들에게 말하는 것을 그들이 듣고 더욱 잠잠하거늘 그가 이르되” [사도행전 22장 2절]
또한 히브리말의 글자는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써서 붙인 명패에도 사용되었다. “빌라도가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 거기의 글은 유대인들의 왕 나사렛 예수라 하더라.... 그것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었더라.” [요한복음 19장 19-20절]
사도행전 22장에서 사울 바울이 히브리말로 군중에게 연설한 동일한 내용을 사도행전 26장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다시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히브리말로 말씀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영어 성경이 예수님께서 “히브리말”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다고 번역하고 있다.
틴데일성경, 듀이림즈, RV, ASV, NASV, New KJV, RSV, NRSV, 리빙바이블, 굿뉴스바이블, ESV, 심지어 라틴벌게이트에도 예수님께서 “히브리말”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다. 다른 여러 구절에서는 킹제임스성경과 충돌하는 현대 영어 성경들이 예수님께서 히브리말을 하셨다고 동일하게 번역했다는 사실은 TR과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도행전 26장에서 예수님께서 히브리말로 사울을 부르셨다는 내용은 정확한 진실이다. “히브리말”이라는 단어 이외에 다른 표현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한국 크리스천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NIV에서는 예수님께서 히브리말이 아니라 “아람어 Aramaic”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번역했다.
“and I heard a voice saying to me in Aramaic, Saul, Saul...”
킹제임스성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실 때 히브리말을 사용하셨다는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NIV 하나만 예수님께서 “아람어”로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말과 아람어는 같은 어족(語族)으로 분류할 수는 있어도 동일한 언어는 아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같은 어족으로 매우 가까운 언어이지만 동일한 언어는 아닌 것과 비슷하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매우 가깝지만 동일하지 않다.
NIV는 사도행전 22장에서도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의 군중들에게 히브리말이 아닌 아람어로 연설했다고 번역했다. 이 구절 또한 매우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리스어 본문과 성경 번역의 역사를 무시한 NIV의 오역(誤譯)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써서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붙인 명패에도 NIV에서는 아람어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썼다고 잘못 번역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히브리말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성경기록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킹제임스성경과 대부분의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 히브리말로 말씀하셨다고 바르게 기록하고 있는데 오직 NIV는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하셨다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18-02-01 09:56: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시내 사본은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12구절을 조작하였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8 그 결과 시내사본에 근거한 NIV는 <The most reliable early manuscripts and other ancient witnesses do not have Mark 16:9-20.>이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가장 신뢰할 만한 초기 사본들과 다른 고대의 증거들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담고 있지 않다.> 다른 성경은 이 부분에 괄호를 치고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고 각주를 붙였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9-20절이 있는 성경이 옳은 성경인지, 없는 성경이 옳은 성경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8-01-31 18:42:5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에 성경의 지명을 모두 찾을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하였습니다.사이트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openbible.info 그 안에 들어가서 이것저것을 보다가 매우 흥미로운 데이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떤 영어 성경을 선호하는가를 분석한 데이터였습니다. 구글의 트렌드와 키워드 도구를 가지고 빅데이터를 분석한 것이므로 가장 합리적이며 근거가 있는 데이터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openbible.info/labs/translation-share/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역본은 킹제임스 성경이었습니다(빨간색). 그 다음은 NIV였는데 NIV의 선호도는 급격한 감소 추세를 보이며 지금은 KJV의 절반도 안 됩니다(파란색). NASB, ESV, NKJV 등 다른 현대 역본들은 KJV의 5분의 1도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KJV의 증가 추세가 매우 가파르다는 것입니다. NIV 등과 같은 현대 역본의 가벼움이 잠시는 통했지만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거운 말씀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NIV, NASB, NKJV 등이 등장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는 KJV가 99.9%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역본들의 등장 이후 무수한 폭격을 맞으면서 KJV는 50% 이하의 점유율을 보이다가 이제는 다시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데이터라 오늘 아침에 구글 트렌드에 가서 지난 5년 동안 KJV와 NIV의 추세만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가장 최근까지 동일한 추세 즉 KJV는 급격히 상승하고 NIV는 추락하는 추세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무려 두 배 이상 KJV가 NIV를 앞서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영국에서 이 추세가 확연히 나타났습니다(세계 지도의 파란색). 아무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없애려고 노력해도 결국 그런 사람들만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대다수 사람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습니다. 주님의 완전한 말씀만 영광과 존귀를 받기 원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2018-01-30 10:13:54 | 관리자
안녕하세요?오늘도 한 분의 질문에 답하려고 간략하게 글을 씁니다.그분의 질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영어 성경에는 sanctify, consecrate, hallow 등의 단어가 나오는데 왜 이것들을 ‘거룩히 구별하다’, ‘거룩히 구분하다’, ‘거룩히 만들다’ 등으로 번역하여 ‘거룩히’를 넣었는지 궁금합니다. 즉 ‘역전’으로 하면 될 것을 ‘역전 앞’처럼 표기하여 불필요하게 ‘거룩히’를 넣은 것은 아닌지요?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창2:3)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sanctified it: because that in it he ha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and made.너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 곧 내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한 모든 자에게 말하여 그들이 아론의 의복들을 만들어 그를 거룩히 구분하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리라(출28:3).And thou shalt speak unto all that are wise hearted, whom I have filled with the spirit of wisdom, that they may make Aaron's garments to consecrate him, that he may minister unto me in the priest's office.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all that in them is, and rested the seventh day: wherefore the LORD blessed the sabbath day, and hallowed it.------이를 설명하려고 일단 sanctify, consecrate, hallow가 들어간 동사와 명사를 찾으니 영어 성경 안에 총수가 다음과 같습니다.sanctify: 293회consecrate: 41회hallow: 37회21세기 영한사전으로 sanctify, consecrate, hallow를 찾으면 뜻이 다음과 같습니다. sanctify: 신성하게 하다. 축성하다. 신에게 바치다consecrate: 신성하게 하다. 성화하다. 성별하다. 성직에 임명하다hallow: 신성하게 하다. 깨끗하게 하다. 신에게 바치다.영한사전을 통해 이 세 단어의 뜻을 대충 알 것 같지만 아주 명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이런 문제를 풀려면 늘 그러하듯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을 보아야 합니다.OED로 가서 sanctify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1. To set apart religiously for an office or function; to consecrate (a king, etc.).직무나 기능을 위해 종교적으로 구별하다. consecrate와 같음2. To canonize, make a saint of. Obs. 성인(성도)을 만든다.3. To honour as holy; to ascribe holiness to; = hallow거룩한 것으로 존중히 여긴다. 거룩함을 부여하다.4. To consecrate (a thing); to set apart as holy or sacred. 거룩한 것으로 구별한다.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sanctify는 종교적 목적으로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언가를 거룩히 구별하는 것입니다. ‘거룩히’를 빼고 단지 구별하다로 하면 이 단어의 뜻이 제대로 번역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의 명사형은 sanctification이며 모든 신학 사전은 이를 성화(聖化)라고 부릅니다. 성화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처럼 거룩히 되는 것’입니다. 또한 sanctuary라는 단어도 누구나 다 ‘성소’로 번역합니다. 그냥 ‘소’ 혹은 ‘처소’로 하면 안 됩니다. ‘sanct’라는 말에 ‘거룩하다’가 들어 있습니다.원어 성경의 그리스말로 sanctify는 ‘하기아조’이며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스트롱 번호 37 aJgiavzw hagiazo {hag-ee-ad'-zo}스트롱 번호 40에서 유래;‘거룩하게 하다’, 즉 (의례적으로)‘깨끗하게 하다’, 혹은 ‘성별하다', (정신적으로)‘숭배하다’ <엡 5:26;히 10:10>동. to sanctify;여기서 성도(saint)가 나옵니다. 성도에 해당하는 말은 ‘하기오스’입니다.스트롱 번호 40 a{gio" hagios {hag'-ee-os}Hagos <하고스>(‘두려운 것’)에서 유래【53, 2282와 비교】;‘신성한’, (육체적으로)‘순결한’, 도덕적으로 ‘결백한’ 또는 ‘종교적인’, (의례적으로)봉헌된, (가장)거룩한(사람, 사물), 성도 <요 1:33;계 14:10>형. holy;그러므로 sanctify를 번역할 때는 반드시 ‘거룩히’가 들어가야 합니다.Consecrate도 마찬가지입니다. OED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1. To set apart (a person or thing) as sacred to the Deity사람이나 사물을 하나님에게 거룩한 존재로 구분한다.Hallow는 다음과 같습니다.1. To make holy; to sanctify, purify. 거룩하게 만들다. sanctify와 같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가능한 한 영어 성경의 모든 단어의 의미를 원어에 맞게 살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단어들에서 ‘거룩히’가 빠지면 원래 의미가 퇴색됩니다.“영어, 영어, 영어!” 하면서 21세기 한영사전으로 나약한 성도들을 힘들게 만드는 일을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런 단어들에는 ‘거룩히’가 들어가야 영어 성경이 바르게 번역된 것입니다.이런 분들 중 다수는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아닙니다! 우리말 성경으로도 성경을 깨닫기에 충분합니다.<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7우리는 언제라도 긍정적인 제안을 수용하여 교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샬롬패스터
2018-01-19 12:27:27 | 관리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을 조심하라
<이사야서 53장 8절에는 ‘not’이 없는데 ‘not’이 있는 것처럼 번역했나요? 오역 아닙니까?>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전치사 ‘from’에 대해 질문하셔서 간단히 글을 씁니다.
I kept him from going home.
이 문장을 번역하면 “나는 그가 집에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입니다. ‘keep from’과 ‘prevent from’은 중고등학교 영어 시험에 늘 나오는 주제입니다.
이런 경우 ‘from’은 ‘못하도록’의 의미를 내포하며 자연스레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즉 문장에 ‘not’이라는 말이 없어도 이미 ‘from’이 ‘not’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못하다’로 번역됩니다.
계시록 3장 10절에는 환난 전 휴거를 뜻하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Rev 3:10, Because thou hast kept the word of my patience, I also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 which shall come upon all the world, to try them that dwell upon the earth.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여기에는 “I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이 나오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것을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문장 역시 “네가 시험의 시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너라는 당사자 즉 필라델피아 교회는 시험의 시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도 ‘not’은 없지만 ‘from’ 자체가 이미 ‘not’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환란 통과 후 휴거 교리가 왜 나오는가?>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1917
이런 예가 킹제임스 성경에 몇 군데 나옵니다. 유명한 이사야서 53장 8절을 보겠습니다. He was taken from prison and from judgment: and who shall declare his generation? for he was cut off out of the land of the living: for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was he stricken.
이 구절 앞부분에는 “He was taken from prison and from judgment:”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데 ‘from’은 무엇을 뜻할까요? 일단 prison과 judgment는 감옥과 공정한 재판(혹은 판단의 공의)을 뜻합니다.
다른 성경들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개역)그가 잡혀가 감금당하고 재판받았으니(바른)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공동)그가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현대인) 사람들이 정의를 짓밟고 그를 거칠게 끌고 갔다(쉬운)그가 감옥과 재판에서 끌려갔으니(한글 킹제임스)
대다수 성경들은 예수님이 곤욕을 당하고 끌려간 것으로 되어 있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직역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자, 이 성경 말씀은 사도행전 8장에서 언급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성경을 성경으로 풀기 위해 그곳을 보아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내시는 이사야서 53장의 이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행8:33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In his humiliation his judgment was taken away: and who shall declare his generation? for his life is taken from the earth.
앞부분을 보면 “In his humiliation his judgment was taken away.”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judgment는 공정한 재판(판단의 공의)입니다.
다른 성경들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개역)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자신의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였으니(바른)그는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굴욕만 당하였다(공동)그는 모욕을 당하고 바른 재판을 받지 못했으니(쉬운)그가 굴욕을 당하고 억울한 판결을 받아(현대인)그가 굴욕 중에 부당한 재판을 받았으니(한글 킹제임스)
대다수 한글 역본들이 예수님이 굴욕을 당하며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였다고 이 부분을 번역하였습니다. 비록 ‘not’이 없지만 ‘taken away’에 ‘not’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고 ‘받지 못하였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분에 대한 공정한 재판이 제거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서 제거되었을까요? 당연히 주님에게서 제거되었지요. 그러므로 여기에도 이미 ‘away’라는 말에 ‘not’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이사야서 53장의 “He was taken from prison and from judgment:”는 사도행전 8장에 근거해서 킹제임스 흠정역처럼 번역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이 이사야서 53장에 대한 주석이요, 해석입니다.
He was taken from prison and from judgment: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킹제임스 흠정역)
비록 ‘not’이 없지만 여기의 ‘from’은 이미 ‘not’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미스 파우셋 주석은 이사야서 53장에서 사도행전 8장 33절을 언급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 was treated as one so mean that a fair trial was denied Him (Matt 26:59; Mark 14:55-59).
그분은 너무 비천해서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할 자처럼 취급을 받았다(마26:59; 막14:55-59).
즉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매튜 헨리도 행8:33 주석에서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He appeared so mean and despicable in their eyes that they denied him common justice, and against all the rules of equity, to the benefit of which every man is entitled, they declared him innocent, and yet condemned him to die;
그분은 그들의 눈에 너무 비천하고 비열하게 보여서 그들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공정한 재판을 거부하고 공평함의 모든 규칙들을 어기면서 그분이 무죄하다고 선포하고는 정죄하여 죽게 만들었다. 그 결과 행8:33은 끝에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하였다” 즉 “그분의 생명이 땅에서부터 끊어져 제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누가 그분의 세대를 밝히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그가 굴욕을 당하며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 이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하였기 때문이로다, 하였더라. 이러한 맥락으로 이사야서 53장과 사도행전 8장을 번역하고 이해함이 맞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에서 from judgment를 찾아보면 다음의 용례가 한 군데 더 있습니다(사10:2).
1 Woe unto them that decree unrighteous decrees, and that write grievousness which they have prescribed; 2 To turn aside the needy from judgment, and to take away the right from the poor of my people, that widows may be their prey, and that they may rob the fatherless!
1 불의한 법령을 포고하고 자기들이 제정한 무거운 법을 기록하며 2 궁핍한 자를 따돌려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게 하고(킹제임스 흠정역)
다른 성경들은 2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개역)너희가 영세민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공동)가난한 자들에게 불공평하게 판결하며(바른)그들은 재판할 때에 가난한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았고(쉬운)가난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하며(현대인)
이 모든 성경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가난한 자들에게서 공정한 재판을 빼앗아갔음을 말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합당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궁핍한 자를 따돌려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게 하고
여기도 ‘from’에 이미 ‘not’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위의 예들에서 보듯이 어떤 경우에는 ‘from’에 이미 ‘not’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말 번역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다’로 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사야서 53장 8절을 사도행전 8장 33절의 의미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데는 ‘not’이 없어도 ‘from’에 이미 ‘not’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영어!, 영어!, 영어!” 하면서 무언가를 보여 주려 하며 은근히 자기를 높이지만 실제로 성경의 용례를 보면 그런 분들의 주장이 많은 경우 틀림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데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성경 번역과 해석을 위해서는 언제나 성경 전체를 바른 문맥에서 보아야 합니다. 한두 구절을 들먹이면서 ‘not’이 없는데 왜 ‘못하다’가 번역 문장에 있느냐고 하며 성경을 폄하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하는 일은 순진한 성도의 성경에 대한 확신을 없애고 자기들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아닙니다! 우리말 성경으로도 성경을 깨닫기에 충분합니다.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7
우리는 언제라도 긍정적인 제안을 수용하여 교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8-01-06 15:54: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 때문에 영어를 맹신하는 사례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이것은 대개 17세기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21세기 영어 사전으로 공부한 사람들에게서 주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enjoy’는 주로 ‘즐기다’, ‘기뻐하다’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기 1장 15절을 보면 “땅으로 돌아가 그것을 차지할지니라”에 해당하는 영어가 “and enjoy it”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는 “그것을 기뻐할지니라.” 혹은 “그것을 즐거워할지니라”로 번역하지 않느냐고 분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주장이고 그래서 순진한 사람들이 쉽게 거기에 걸려 넘어집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신 것 같이 너희 형제들에게 안식을 주사 그들 또한 주 너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소유하게 될 때까지 그들을 도울지니라. 그 뒤에 너희는 너희 소유의 땅 즉 주의 종 모세가 요르단 이편 곧 해 뜨는 편에서 너희에게 준 땅으로 돌아가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하니라.
Until the LORD have given your brethren rest, as he hath given you, and they also have possessed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th them: then ye shall return unto the land of your possession, and enjoy it, which Moses the LORD'S servant gave you on this side Jordan toward the sunrising.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enjoy를 보면 셋째 용례에 ‘소유하다’, ‘차지하다’가 나와 있습니다.
‘3. a.3.a trans. To possess, use, or experience with delight. Also with reference to the feeling only: To take delight in, relish. Also absol.
또한 enjoy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역시 잠유하다, 차지하다를 뜻합니다.
3423 vr"y: yarash {yaw-rash'} or yaresh {yaw-raysh'}또는 Yaresh , 야레쉬; 기본어근; ‘차지하다’(먼저 있던 소작인들을 쫓아내고 대신 소유함으로); 함축적으로‘점유하다
그러므로 “영어! 영어! 영어!”만 주장하는 분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분이 ‘concluded’라는 단어를 거론하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오역을 했다고 하기에 왜 그런지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성경에는 ‘concluded’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21세기 사전에 ‘conclude’가 ‘결론내리다’이므로 세 군데 모두를 ‘결론내리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완강히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역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첫 번째 용례(행21:25)
25 믿는 이방인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편지를 써서 결론을 내리되 그들이 그러한 것을 지킬 필요가 없고 다만 우상들에게 바친 것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느니라, 하니(행21:25)
25 As touching the Gentiles which believe, we have written and concluded that they observe no such thing, save only that they keep themselves from things offered to idols, and from blood, and from strangled, and from fornication.
두 번째 용례(롬11:32)
32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믿지 아니하는 데 가두어 두신 것은 친히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심이라(롬11:32).
32 For God hath concluded them all in unbelief, that he might have mercy upon all.
세 번째 용례(갈3:22)
22 그러나 성경 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주려 하심이라(갈3:22).
22 But the scripture hath concluded all under sin, that the promise by faith of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em that believe.
위에서 보듯이 행21:25에서는 ‘concluded’가 ‘결론을 내리다’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롬11:32와 갈3:22에서는 ‘concluded’가 ‘가두어 두다’로 번역되었습니다. 평소에 영어를 좀 하는 것으로 알려진 어떤 사람이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르게 번역되었다는 자료를 제시하면 대다수의 순진한 분들은 그런 주장에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과연 그럴까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보면 ‘conclude’의 1차 뜻은 ‘shut up’ 즉 ‘가두어 두다’입니다. 그리고 이 사전은 ‘가두어 두다’의 용례로 위클리프 성경의 갈3:22와 1611년 성경의 롬11:32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세 구절 모두를 문맥에 맞게 제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세 구절의 ‘concluded’에 해당하는 그리스말도 행21:25와 롬11:32 및 갈3:22의 경우 다릅니다(스트롱 번호 2919와 4788).
이렇게 근거를 제시하면 또 왜 개역성경처럼 번역했느냐고 화를 냅니다. 이것은 개역성경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와 원어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번역해야 바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역성경은 여러 면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좋은 성경입니다. 이런 부분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개역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나오므로 달리 표현해야 할까요? 이것은 누구라도 영어와 원어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반드시 이렇게 두 가지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런 예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21세기 영어 지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도둑질하려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분이 friends를 왜 ‘친구들’로 번역하지 않고 몇 군데서는 ‘친지들’로 번역했느냐고 묻기에 잠시 답을 드립니다.
그분의 친지들이 그것을 듣고 그분을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제정신이 아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막3:21).
And when his friends heard [of it], they went out to lay hold on him: for they said, He is beside himself.
신약성경에 가서 friends를 찾으면 그리스어는 딱 두 개로 나옵니다(스트롱 번호 3588, 5384). 저희는 전자는 친지로 후자는 친구로 번역하였습니다.
<스트롱 코드란 무엇인가?>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0
왜 그랬을까요?
문맥이 그리 말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사전에 가서 friends를 찾아봅시다.
⁂friend [frend] n. 벗, 친구. (복수.) 근친, 육친.
복수로 쓰일 때는 친지로 볼 수 있다고 일반 사전도 이야기합니다. 물론 옥스퍼드 사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게 friends를 ‘친지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이런 데서 friends를 ‘친구들’이라고 해도 됩니다. 다만 ‘친지들’이 틀렸다고는 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이 경우 친지들이 영어, 원어, 우리말에 맞게 정확히 번역되었다고 믿습니다.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 기계적 일치 번역은 안 된다>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끝으로 귀중한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옥스퍼드 사전을 보십시오. 옥스퍼드 사전은 모든 단어에 대해 1000년경부터 영어가 형성되면서 생긴 대다수 용례를 참고문헌과 함께 기록합니다.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옥스퍼드 성경은 ‘위클리프 성경’, ‘틴데일 성경’ 등에서 인용한 경우 그냥 ‘위클리프’, ‘틴데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에서 인용하는 경우에는 그냥 ‘1611 Bible’로 표현하고 있음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라 그냥 ‘1611 성경’입니다. 즉 영국 사람들에게 바이블은 ‘1611 바이블’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영어 성경이 있었지만 옥스퍼드 사전에 ‘Bible’로 출처가 명기된 성경은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밖에 없습니다. ‘1611 Bible’이라 표기된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합니다.
올 한 해도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로 말씀의 확신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교정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언제라도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의견을 주시기 전에 17세기 영어 사전을 참조하신 뒤 알려 주시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옥스퍼드 사전 구매 안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782
샬롬
패스터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6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8-01-03 10:59:51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마제스티 판 스마트폰 예상 앱(낭독 및 보기) 설명안녕하세요?우리가 앞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마제스티 판을 내면서 무료 앱을 만들어 제공한다고 하니 여러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보이기에 앱에 대해 잠시 알려드립니다.<2017년 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 근황 및 미래 계획>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782일단 최고의 성우가 신구약을 녹음합니다. 변화가 없는 한 이미 성우는 정해졌습니다. 아주 좋은 그리스도인이고 목소리 좋은 성우로 유명한 분입니다.그 뒤에 성우가 읽는 대로 본문이 노랗게 하이라이트 되면서 나오게 됩니다.즉 낭독과 본문이 동시에 앱에서 들리며 보입니다.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781https://www.youtube.com/watch?v=lVy4de5v9Jg
2017-12-07 13:29:13 | 관리자
중세 최고의 지성 에라스무스의 공인 분문과 루터 성경
안녕하세요?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여러 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루터의 밧모섬>을 소개하였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253
이 책은 세속 역사가가 루터의 삶을 그린 것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맨 뒤에 있는 황대현 교수의 루터 이야기 요약을 보고 여러분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목원대 역사학 교수인 필자는 <루터의 모든 책을 불사를 수는 없었다>라는 짧은 글을 통해 종교 개혁의 의미를 잘 요약해서 보여 줍니다.
특히 인쇄술과 루터 성경 번역에 대한 황 교수의 평가는 심히 공정하며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서 번역한 신약 성경은 서기 1세기에 신약 성경이 처음 편찬되었을 때 쓰인 언어인 그리스어를 기반으로 해서 당대 최고 지성이었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1516년 새롭게 출간한 ‘그리스어 판본 성경’을 원본으로 활용해 번역한 것이었기에, 천 년이 넘도록 사용되면서 불가피하게 여러 문제점을 안게 된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황 교수는 분명하게 천주교회의 성경인 라틴어 불가타(벌게이트)가 오류를 담고 있었고, 당대 최고 지성인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본문과 여기서 나온 루터 성경이 그런 오류들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즉 천주교 소수 사본에서 나온 현대 역본들은 오류를 담고 있고 루터 성경, 킹제임스 성경 등과 같이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에서 나온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주교회에서 비롯된 본문 비평에 영향을 받지 않는 대다수 역사가가 증언하는 바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구 박사님도 동일하게 증언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708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공정하게 사실을 평가하며 사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리 할 때 마음의 평안이 하늘로부터 주어집니다.
이 시간에 아무리 마귀가 진리를 대적해도 우리에게는 확고한 진리의 말씀,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루터의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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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모든 책을 불사를 수는 없었다>황대현 목원대 교수 ㆍ 역사학
2017년은 종교 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루터의 생애나 종교 개혁의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술서와 교양서를 막론하고 다양한 관련 서적들이 속속 출판되고 있다. 독일이나 유럽, 미국과 비교하면 그렇게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우리가, 왜 500년 전에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굳이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것일까? 루터의 종교 개혁은 전 세계에서 9억여 명, 우리나라도 전체 인구의 5분의1 가량이 신자로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탄생시킨 출발점이기에 개신교 신앙의 뿌리로서 한 번쯤 되돌아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단지 신학이나 교회사의 측면에서만 중요하다면, 아무리 500주년을 맞이하는 때라고 해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진지하게 그 사건의 현재적 의미에 관심을 기울일 까닭은 없으리라.
루터가 1517년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하면서 시작된 종교 개혁은 독일을 포함한 서구세계 전반에 큰 충격파를 가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몰고 왔다. 다시 말해서, 종교 개혁은 개신교 프로테스탄티즘의 탄생이라는 차원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다. 이 글에서는 근대 초기 독일사를 전공하는 필자가 판단하기에, 주로 교회사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할 경우 놓치기 쉬운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를 두 가지 측면, 즉 인쇄술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소통 기술적 측면과 근대국가 형성이라는 정치적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종교 개혁을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1. 인쇄술과 종교 개혁, 그리고 팸플릿 전쟁
1999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라이프』가 15세기 중엽 구텐베르크에 의해 개발된 활판 인쇄술을 지난 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서양에서는 서구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주요 요인으로 인쇄술이라는 기술적 혁신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근대 초기 유럽의 ‘인쇄혁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역사가 엘리자베스 아이젠스타인에 따르면, 인쇄기의 출현은 종교 개혁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자 이후 종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촉진 조건이었다. 다소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인쇄) 서적 없이는 종교 개혁도 없다”는 교회사가 베른트 묄러의 명제 역시 인쇄술이 종교 개혁에 미친 핵심적인 영향을 강조한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루터 스스로가 인쇄술에 대해 ‘하나님에게서 받은 최후의 선물이자 가장 위대한 은총’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원래 유럽의 변방 지역에 위치한 비텐베르크 대학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신학교수가 교황의 막강한 권력에 맞선 그리스도교 세계의 유명 스타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을 팔 수 있었던 최초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인쇄술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1521년 보름스 국회가 루터의 ‘이단적인’ 저서들을 모두 불태우라는 칙령을 공표했을 때 그 결정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당시 루터의 책들은 이미 50만 부 가까이나 팔려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100년 전인 15세기 초에 보헤미아의 개혁가 얀 후스를 화형에 처했던 것처럼 설사 교황청과 세속 당국이 루터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가 쓴 엄청난 양의 인쇄물을 모두 불사를 수는 없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인쇄술이라는 무기가 없었던 후스의 개혁운동이 실패로 끝났던 전철을 밟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쇄술이 종교 개혁에 일방통행식 영향만 미쳤던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발명된 지 70년도 채 되지 않은 ‘신기술’이었던 인쇄술 역시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초기 자본주의 사업가의 전형이었던 인쇄업자와 출판업자들은 루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을 출간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루터의 공개서한 『독일의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고함』은 초판 4,000부가 금세 다 팔려나가 인쇄업자가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어야 할 정도였고, 1522년 출간된 이른바 『9월 성경』초판은 당시 숙련된 목수의 일주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가격에 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ㆍ구약 완역 성경이 출간된 1534년까지 80~85쇄라는 기록적인 증쇄를 거듭했다.
흔히 서양 역사에서 종교 개혁은 기성체제에 반대하는 선전ㆍ선동에 인쇄술을 활용한 최초의 운동으로 평가받곤 한다. 특히 종교 개혁 초기에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정식 제본되지 않은 가철본 형태의 얇고 저렴한 소책자(Flugschrift)가 독일어로 제작되어 대량 유포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들은 종교 개혁 시대에 소책자를 활용해 벌어졌던 여론전을 ‘팸플릿 전쟁’이라고 부른다.)
비록 이 새로운 종류의 인쇄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5세기였지만, 소책자가 진정한 대중매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다양한 소통방식을 활용해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여론을 창출했던 ‘종교 개혁 공론장’(라이너 볼파일) 속에서 개신교 진영의 핵심적인 투쟁수단으로 부상하면서부터였다. 독일 종교 개혁기 소책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한스-요아힘 쾰러의 추산에 따르면, 종교 개혁 시작 첫 해인 1517~18년 사이에 소책자의 제작은 무려 530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또 16세기의 첫 30년 동안 출간된 소책자의 총 발행량을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전체 인구수와 비교해보았을 때 대략 주민 한 사람당 소책자 1부가 돌아갈 정도로 방대한 양이 시중에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2. 루터의 성경번역과 문체혁명
소책자가 종교 개혁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독일 개신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준거점으로 작용하며 문화적 측면에서 독일어 문어체의 발달에도 크게 기여했던 것은 역시 루터가 번역한 성경이었다. 레스턴은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실, 즉 루터가 번역한 성경이 최초의 독일어 성경이 아니었다는 점을 제대로 짚어주고 있다. 『9월 성경』이 출간될 무렵 신성로마제국에는 이미 18종에 달하는 서로 다른 독일어 판본의 성경이 유통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독일어 성경들은 중세의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Vulgata) 본을 번역한 것이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한 측면이 많았다. 아직 표준 독일어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지역 방언으로 씌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널리 확산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서 번역한 신약 성경은 서기 1세기에 신약 성경이 처음 편찬되었을 때 쓰인 언어인 그리스어를 기반으로 해서 당대 최고 지성이었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1516년 새롭게 출간한 ‘그리스어 판본 성경’을 원본으로 활용해 번역한 것이었기에, 천 년이 넘도록 사용되면서 불가피하게 여러 문제점을 안게 된 [천주교회의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번역자 루터가 당시 치열한 논란의 중시에 서 있었던 유명 인사였다는 사실 이외에도, 그가 번역작업을 수행하면서 되도록 현학적인 표현은 피하고 대신 가정주부와 시장의 보통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문장을 쉽게 풀어썼기 때문에 루터 성경은 다른 독일어 성경들과는 달리 여러 지역에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루터 성경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게 되면서 그가 번역할 때 사용한 중동부 지역의 고지(高地) 독일어는 부부 지방의 저지(低地) 독일어와 다른 방언들을 제치고 점차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는 향후 표준적인 독일어 문어체의 발전에 기본 토대를 제공했다.
루터의 성경번역이 가져온 파급효과는 비단 독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루터의 시도에 자극 받아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도 자국어 성경 번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영국의 윌리엄 틴데일(틴들)은 신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할 생각을 갖고 일부러 루터를 만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1526년 출간도니 틴데일의 영어 성경은 당시 자국어 성경 출판을 금지하고 있었던 영국이 아니라 독일의 보름스에서 처음 인쇄되어 나왔다.
2017-11-17 12:35:20 | 관리자
성경 이슈 관련 용어 정리
성경 이슈를 논하려면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자주 보게 되는 용어들 가운데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이 외에 필요한 것들은 독자께서 시간을 내서 조금 연구하기 바랍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 파피루스(Papyrus): 파피루스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필기 용도로 사용되던 종이와 비슷한 매체로서 사초과(莎草科 Cyperaceae)에 속하는 동일한 이름의 파피루스(Cyperus papyrus) 식물의 잎으로 만들어졌다. 다음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파피루스 식물은 이집트의 나일 강 삼각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필기 용도로 쓰기 위해 자루나 줄기를 모았고 가운데 수(髓) 부위를 얇고 긴 조각으로 잘라 압착하여 말린 뒤 매끄럽고 얇은 필기 용지를 만들었다. 파피루스는 풀처럼 생긴 수생 식물로서 목본성의 무딘 3각형 줄기를 가지며 깊이가 90㎝ 정도인, 잔잔하게 흐르는 물에서 4.6m 높이까지 자란다. 지금도 따뜻한 지역에서는 이것을 연못에 관상용으로 심거나 온실에서 기르곤 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파피루스 줄기를 가지고 돛·천·방석·밧줄·종이를 만들었다. 파피루스로 만든 종이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주요한 문방구였는데 후에 그리스 사람들이 이것을 도입하였고 이것은 로마 제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것은 두루마리 형태의 책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통신문과 법률 공문서를 기록하는 데도 쓰였다.
플리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파피루스로 종이를 제조하는 법에 대해 기술하였다:
줄기 속의 섬유 층을 제거하고 세로로 길쭉한 조각으로 잘라 이들을 나란히 놓은 다음 그 위에 다른 조각들을 직각으로 교차시킨다. 이렇게 2층으로 쌓은 시트를 풀이 죽게 압축시킨다. 말리는 동안 아교 같은 수액(樹液)이 시트를 서로 접착시킨다. 마지막으로 시트를 망치로 두드린 다음 햇볕에 말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순백색을 띠며 잘 만들어진 것은 반점·얼룩 및 다른 결함 등이 없다. 두루마리의 경우 시트를 풀로 붙여 만드는데 대개 하나의 두루마리에 시트가 20개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 파피루스는 8-9세기에 다른 식물 섬유로 종이를 제조하기 전까지 이집트 사람들이 필기 용도로 사용하였다. 3세기경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파피루스가 이미 벨럼이라 불리는 저렴한 양피지로 대체되기 시작했지만 12세기경까지는 책이나 공문서를 만들기 위해 간간이 쓰였다.
양피지 사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파피루스 사본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아마도 초기에 신약 성경은 이런 종이 위에 필사되었을 것이다. 학자들이 발견한 파피루스 조각 사본들은 1, 2, 3, 4, 5, 6, 7 등의 번호가 매겨졌으며 그 안에는 신약 성경의 서로 다른 부분들이 적혀 있었다. 이런 파피루스 사본 중 많은 수가 교회 역사의 첫 3세기(주후 100-300년) 동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벨럼(Vellum): 글이 기록된 고급 가죽(양피지). 벨럼은 주로 양·염소·송아지 등 동물의 가죽을 가공·처리하여 만든 서사(書寫) 재료이다. 다음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BC 2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도시 페르가뭄(지금의 터키 베르가마)에서 양피지가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짐승의 가죽이 필기 재료로 쓰인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가죽을 좀 더 철저하게 세척하고 늘리고 문지르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필사 시 양면 사용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두루마리 사본이 철을 한 책자(코덱스)로 대체되었다. 처음에는 송아지나 새끼 염소의 가죽 또는 사산되었거나 갓 태어난 송아지나 양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를 벨럼이라고 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사용 범위가 확대되어 모든 최고급 양피지를 일컫는 데 쓰이게 되었다.
AD 6세기에 대부분의 초기 사본들에 사용되었던 벨럼은 질이 좋았다. 이후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상당한 양의 불량품이 시장에 나왔으나 서유럽에서 많은 필사본이 만들어졌던 12세기까지는 부드럽고 유연한 벨럼이 유행하였다. 초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진한 자줏빛 염색을 하고 금·은으로 글씨를 새긴 호화스러운 형태의 양피지가 만들어졌는데 제롬은 그의 잘 알려진 시구에서 이러한 관행을 쓸모없는 사치라고 비난했다. 자줏빛 염색은 그 후에 사라졌지만 금·은 그리고 다른 색조로 양피지 사본에 ‘윤을 내는’ 관행은 중세에도 크게 유행하였다. 오늘날 양피지 혹은 벨럼이라는 용어는 주로 목재 펄프 및 제지용 넝마로 제조하여 특수한 마감 처리를 한 일종의 고급 종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벨럼 중 어떤 것들은 족자처럼 말 수 있었으므로 ‘두루마리’(scroll)라고 불리며 또 어떤 것은 마치 책처럼 장(page)으로 구성되어 있어 ‘코덱스’(codex)라고 불린다. 성경 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두 개의 ‘코덱스’는 ‘바티칸 코덱스’(Vaticanus)와 ‘시내 코덱스’(Sinaiticus)이다. 이것들은 보통 ‘바티칸 사본’(B 사본) 그리고 ‘시내 사본’ 혹은 ‘알레프 사본’(Aleph)이라 불리는데 여기서 ‘알레프’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이다.
● 자필 원본(Autographs): 글자나 음표 등을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원고. 다음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영어의 ‘autograph’는 사람이 손으로 쓴 서명을 가리키기도 한다. 골동품으로서 지니는 가치나 부수적인 가치 이외에도 자필 원고는 원고의 초기 초안이거나 또는 수정본일 수 있고 작성 단계상 귀중한 증거나 작품의 마지막 수정판의 귀중한 증거를 제공한다.
성경과 관련해서 자필 원본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최초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원본’을 가리키며 이것들은 다 소실되어 현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 사본(Manuscripts): 이것은 성경의 구절이나 일부분을 담고 있는 기록으로 파피루스나 벨럼에 기록된 문서이다. 신약 성경 사본이든 구약 성경 사본이든 성경 전체를 담고 있는 것은 없고 대부분의 사본들은 그중 일부분만을 담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것들은 단지 몇 구절만 담고 있기도 하다.
● 사본들의 계열(Families of manuscripts): 현재 네 종류의 사본 계열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루터의 독일어 성경 등은 ‘시리아 계열’(Syrian family) 사본에서 번역되었으며 신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신미국표준역(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 ASV), 개역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 RSV), 우리말 개역성경,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등은 ‘알렉산드리아 계열’(Alexandrian family) 혹은 ‘이집트 계열’(Egyptian family) 사본에서 번역되었다. 또 다른 계열로는 ‘구 라틴어 사본들’을 포함하는 ‘서방 계열’(Western family)과 ‘가이사랴 계열’(Caesarian family)이 있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 계열은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해 주는 사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1924년에 스트리터(B. H. Streetr)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서 킹제임스 성경의 사본학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인위적 계열이다.
● 본문(Texts):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필사본 자료를 모아 구성한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을 의미한다. ‘본문’이라는 단어는 어떤 종류의 문서든지 그 문서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지칭하며 ‘그리스어 본문’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그리스어로 편집한 신약 성경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그리스어 본문을 만든 유명한 사람들로는 에라스무스, 스테파누스, 엘제비어, 베자, 밀, 펠, 왈톤, 트레겔레스, 티센도르프, 그리스바흐, 알포드, 메츠거, 알란드(알라트), 네슬레,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등을 들 수 있다.
신약 성경 본문 중에서 시리아/비잔틴 ‘다수 사본’에서 나온 본문은 보통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이라 불린다. ‘공인 본문’은 어떤 공적인 단체가 그 성경을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 본문’(公認 本文)이 아니고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 본문’(共認 本文)이다. 따라서 이 같은 ‘공인 본문’을 ‘표준 원문’(標準 原文)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표준’으로 만들거나 선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본문 혹은 비평 본문(Revised text 혹은 Critical text)을 따라 알란드, 네슬레 등이 천주교의 이집트 ‘소수 사본’에서 만든 그리스어 신약 성경 본문이 있는데 바로 이런 본문으로부터 부패한 현대 역본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성경 문제는 궁극적으로 시리아/비잔틴/안디옥 본문과 이집트/알렉산드리아 본문 간의 대립의 결과이며 또 종교 개혁을 일으킨 프로테스탄트 본문과 로마 카톨릭 본문 간의 대립의 결과이다. 영어 성경 중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만이 시리아/비잔틴/안디옥 본문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NIV, NASB, RSV,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역본, 한글개역성경, 한글표준새번역, 한글공동번역 등은 이집트/알렉산드리아 본문에서 나왔으므로 문체와 표현은 다소 다를지 몰라도 킹제임스 성경과의 차이점들에서는 궁극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 역본(Versions): 이것은 누군가가 히브리어/그리스어 본문으로부터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 성경을 의미한다. 서기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가 열리기 전에 이미 시리아어와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들이 있었다. 성경은 아주 오래 전에 고딕어, 페르시아어, 콥틱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역본’은 사실 ‘성경 기록’(Scripture)을 ‘옮겨 놓은 것’(Translation)이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Version’이란 단어는 원래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다시 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역표준역(RSV)과 미국표준역(ASV) 등은 킹제임스 성경을 개정한 영어 역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ASV와 RSV는 킹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된 ‘다수 사본’이 아닌 다른 종류의 ‘소수 사본’으로부터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 킹제임스 성경: 1611년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의 후원으로 출판된 영역 성경으로 제임스 왕의 이름을 따라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이라고도 하고 모든 사람이 권위를 부여했다고 해서 권위역 성경(Authorized Version)이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는 중국말의 영향으로 ‘왕이 친히 제정한 성경’이라는 의미의 흠정역 성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음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제임스 왕이 승인한 54명의 학자들 가운데 47명이 7년 동안 세 곳에서 여섯 개 조로 나뉘어 원어로 된 본문과 과거의 여러 역본들을 사용하여 작업했다. 그 결과 등장한 킹제임스 영역 성경은 영어 문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300년 이상 표준 영어 성경으로 널리 수용되었다.
킹제임스 성경은 사본학적 권위와 문체의 수려함 등에서 다른 모든 역본을 압도하고 있으며 특히 외적으로 드러난 우수성 몇 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a) 부흥과 영혼 구원: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이 킹제임스 성경으로 선교하고 전도함으로써 구원받게 된 영혼들과 선교 사역의 양은 그 외 다른 어떤 성경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보다 훨씬 많다.
(b) 물질적 번영: 영국, 미국, 독일의 역사는 사람들이 ‘종교 개혁 본문’을 귀중히 여겼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 복의 역사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버리게 될 때 재난이 닥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c) 킹제임스 성경을 거부한 사람들의 열매: 만일 독자가 이성적이라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있는 중남미 국가들과 남유럽, 필리핀 등을 살펴보기 바란다. 이 국가들 모두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채를 짊어진 나라들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더 지하자원이 많고 땅도 비옥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이교 사상)과 신학(바르지 못한 성경)이 나라를 지배하므로 번영을 이룰 수가 없다.
또한 새로운 역본들의 근거가 된 ‘소수 사본’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한 영혼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들의 대부분은 - 네슬레, 알란드, 메츠거, 웨스트코트, 호르트, 라이트푸트 등 - 참으로 다시 태어나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또한 그들은 이미 1611년부터 킹제임스 성경이 바른 것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 등을 통해 사람이 거듭난다는 로마 카톨릭 사상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열매들은 이미 교회 역사가들에 의해 잘 알려져 있으며 카톨릭 교회는 지금까지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공인 본문’을 올바른 본문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그들은 부패된 계통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와 이집트 계열의 사본들만을 중요시하고 있다.
● 개정(Revisions): 성경 본문을 바꾸는 것.
● 교정, 정정(Correction): 철자나 맞춤법이 틀린 것을 바로잡는 일로서 ‘개정’과는 전혀 다른 것임.
2017-11-06 15:53: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여러 성경에서 요7:53-8:11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요7:53-8:11까지 없음"
그런데 요7:53-8:11의 기사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우리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매우 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귀한 이야기가 원래 성경에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게 어찐 된 일일까요? 사본들의 증거는 무어라 말할까요?
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 등 천주교 알렉산드리아 소수 사본들만 이 말씀을 삭제하였고 다수의 사본들은 이 이야기를 다 담고 있습니다.
다음은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학자로 알려진 장로교 출신의 에드워드 힐즈의 설명입니다. 참고로 힐즈 박사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라틴 피 베타 카파’라는 특별 명예를 인정받고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신학사 학위(Th.B.)를 받았고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Th.B.)를 받았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신약 성경 본문비평 분야의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하버드 대학에서 최종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마쳐 이 분야에서 신학박사(Th.D.)가 되었다. 그는 또한 「믿음의 성경 연구」(Believing Bible Study)를 저술했다.
주님의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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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요7:53-8:11)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 - 이것은 보통 ‘Pericope de adultera’라고 불린다 - 는 현대 영어 역본들에서 상당히 가혹한 취급을 받아 왔다. RV와 ASV는 이것을 괄호로 묶었고 RSV는 각주로 내려 보냈으며 NEB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를 따라 원래의 자리에서 모두 들어내어 기원을 알 수 없는 독립된 단편 조각으로 취급하며 요한복음의 맨 마지막에 두어 출판했다. 심지어 NEB는 이 기사에 ‘성전에서의 한 사건’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하지만 버건이 오래 전에 우리에게 상기시켰던 것처럼 이들이 이 귀중한 구절들을 이렇게 일반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a)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과거에도 문제 거리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으로 인해 곤란을 겪었다. 그리스도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것은 간음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과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암브로스(374)가 밀라노의 주교로 있던 바로 그 시기에도 요한복음의 이 부분에 대해 여전히 그러한 의심을 느꼈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암브로스가 다윗의 죄에 대해 설교한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가르침은 순진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화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복음서에서 여러분은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께 끌려왔다가 정죄 받지 않고 돌아간 것을 봅니다…그리스도께서 공정하게 재판을 하지 않은 과오를 범한 것입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Vienna, vol. xxxii, pp. 359-360).
어거스틴(c. 400)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 신약 성경 사본이 이 본문을 생략하는 이유는 바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한 이러한 도덕주의적인 혐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용서의 행위는 어떤 나약한 신자들이나 불신자들과 기독교 신앙의 적들의 마음에 충격을 준다. (내 생각에) 자기 아내에게 [간음] 죄로 인한 형벌을 주지 않은 뒤에 그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그 복음서 사본으로부터 우리 주님이 간음을 행한 그 여인을 용서하셨다는 부분을 떼어 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실 죄를 지으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Vienna, vol. xxxxi, p. 387).
또한 10세기의 니콘이라는 그리스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해롭다는 이유로…간음한 여인이 예수님께 어떻게 끌려왔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 기사를 빼버린” 아르메니아 교도들을 비난했다(S. S. Patrum . . . J. B. Cotelerius, Antwerp, 1698, vol. i, p. 235).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은 5세기의 그리스어 사본인 D에 그것이 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구 라틴 코덱스 b와 e에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것은 초기 라틴어 사본들 또한 그것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결론 모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된 많은 사본들의 요한복음에는 고소당해 주님 앞에 끌려온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는 제롬(c. 415)의 진술에 의해 확증된다(MPL, vol. 23, col. 579.).
제롬의 진술의 정확성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 특히 마가복음의 종결 부분에 어떤 첨가가 이루어졌다는 제롬의 진술은 W 사본에서 첨가된 부분이 실제로 발견됨으로써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롬이 개인적으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참 본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라틴 벌게이트에 그것을 포함시켰다는 사실로서도 알 수 있다.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의 요한복음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뜻하는 디다스칼리아와 또 이 디다스칼리아의 기초가 된 ‘사도들의 헌장’에 이것이 인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죄를 범한 여인을 처리하신 것처럼 하리라.…장로들이 그녀를 주님 앞에 데려와 주님의 손에 심판을 맡기고 떠나가니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물어 이르시되, ‘딸아, 장로들이 너를 정죄했느냐?’ 하시니 여인이 그분에게 이르되, ‘아닙니다. 주님’, 하매 주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가거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Didascalia Apostolorum, trans. by R. Hugh Connolly, Oxford: Clarendon Press, 1929, p. 76. Funk, Didascalia et Constitutiones Apostolorum, vol. 1, p. 92).
(각각 3세기와 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두 개의 문서에서 감독들은 회개하는 죄인에게 용서를 베풀도록 권유를 받고 있다. 이러한 청원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성경 구절이 인용된 후 하나님의 긍휼의 최상의 모범 즉 그리스도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에게 보여 주신 동정심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티센도르프는 이 인용문이 요한복음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비록 ‘사도들의 헌장’이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의 기록자가 요한이라고 실제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누구든지 이 이야기의 유래를 다른 출처에서 찾으려 한다면 헛수고를 하게 될 것이다.”(Tischendorf, N. T. Graece, vol. 1, p. 829).
코놀리(1929) Didascalia Apost., p. li.)와 그 밖의 다른 최근의 비평가들은 이 부분이 정경인 요한복음이 아니라 위경인 ‘히브리 복음’(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에서 인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 거의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논의의 전 과정 동안 신약과 구약의 정경 구절들만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두 책의 기록자들이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 달라는 청원의 절정부에 이르러서는 결국 정경 성경을 버리고 어떤 위경서나 뒤적거릴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관한 또 다른 중요한 증거로서 유세비우스(c. 324)의 증언이 있다.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교회사」에서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인 파피아스(150) 가 쓴 ‘주님의 말씀 해석’이란 제목의 옛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파피아스의 기록들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끝맺는다.
“그 동일한 기록자는 요한일서와 또 베드로의 서신에서 나오는 인용문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 복음’에 들어 있는 이야기 즉 여러 가지 죄로 인해 주님 앞에서 고소당한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도 상세히 설명했다.”(LCL, Ecclesiastical History, Eusebius, vol. 1, p. 298.)
유세비우스의 이러한 진술을 근거로 자연주의적 비평가들은 유세비우스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파피아스의 글과 ‘히브리 복음’에만 나오는 한 가지 이야기로 알고 있었지 그것이 정경인 요한복음의 일부분인 것은 알지 못했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결론이 나올 필요는 없다. 유세비우스는 도덕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와 파피아스의 관련성 때문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적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나 그의 글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책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는[파피아스] 지성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유세비우스는 주장한다(동일 저자, vol. 1, p. 296).
파피아스를 경멸했기 때문에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의 이야기가 요한복음을 담고 있는 일부 사본들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를 주저했다. 어찌됐든 유세비우스의 글에 기초해서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그가 그 부분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한 ‘침묵의 주장’이며 사실 이런 침묵의 주장은 늘 설득력이 없다. 유세비우스의 침묵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사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이야기라는 그의 긍정적인 증언을 강조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또한 스페인 교부인 파시안(370)은 지나치게 혹독한 징벌에 반대하는 항의를 할 때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호소했다. 그는 물었다. “복음서에서 주님도 죄를 자백한 여인 즉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사람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읽어 보지 않겠습니까?”(MPL, vol. 13, col. 1077).
(b) 역사적 사실들의 증거
역사 기록들은 일반적으로 초기 기독교의 몇 세기동안 모든 교회가 간음을 설사 용서받는다 해도 혹독한 고행 후에만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심각한 죄로 간주했음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키프리안(250)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자기 이전의 어떤 감독들은 간음한 자들은 다시 깨끗하게 될 수 없으며 혼인 상태의 부부가 부정을 저지를 경우 결코 회개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Vienna, vol. iii, p. 638).
따라서 간음하다가 붙잡혀서 그리스도께로 끌려온 여인의 이야기는 분노를 자아냈다. 너무 쉽게 용서를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초기 기독교회의 금욕적인 견해와 크게 충돌을 일으키는 이 이야기가 정경이 아닌 다른 출처에서 나와 요한복음에 첨가된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금욕주의자들이 이 이야기를 요한복음에서 삭제했다고 믿는 것이 분명히 더 합리적이다. 이것을 삭제하고자 하는 어떤 강한 동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첨가하고자 하는 동기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사에 대한 적대적인 편견은 이것이 복음서에 삽입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명확한 사고력을 지닌 급진적인 학자들 역시 역사적인 증거를 살펴볼 때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에 첨가되었다기보다는 삭제되었다고 믿는 것이 맞는다고 인식했다. 힐겐펠드(1875)는 “초기에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복음서를 과감하게 제시한 것은 틀림없이 매우 불쾌한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라고 말한다(Einleitung, p. 782).
따라서 힐겐펠드는 그 본문이 너무 세심한 서기관들에 의해 삭제되었다는 어거스틴의 진술을 ‘불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스텍(1893)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이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이미 요한복음 본문에 있었다고 제안했다. “그것이 후에 도덕적인 정숙함에 밀려 삭제되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라고 결론짓는다(T Z aus der Schweiz, vol. 4, p. 98).
해리스(1891)는 2세기에 번창했던 금욕주의 기독교의 한 종파인 몬타니스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잘 알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몬타니스트들의 교회들은 이것이 본문에 더해졌다는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것을 삭제했다. 그러나 동시에 서방에서도 사람들이 이 구절을 더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의 라틴어 주해자가 사도행전 5장 18절의 한 부분에서 몇 단어를 차용했기 때문이다.”(Codex Bezae, TS, vol. 2 (1891), p. 195).
사도행전 5장 18절은 “[지도자들이] 사도들에게 손을 대어 붙잡아다가 일반 감옥에 가두었다.”로 되어 있다. 이 구절에 대한 D 사본의 라틴어 부분에는 “이에 그들이 각각 자기 집으로 떠났다.”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해리스의 주장처럼 명백히 이 첨가 부분은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해산하는 모습을 기술한 요한복음 7장 53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만일 몬타니스트들이 사도행전 5장 18절에 이 말을 첨가했다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틀림없이 원래 요한복음의 일부였을 것이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그 복음서 본문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연주의 학자들은 많은 사실들을 무시함으로써 즉 고대의 기록자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해 말한 것들은 무시하고 단지 다른 고대 기록자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호르트가 자신의 「본문비평개론」(1881)에서 행한 일이다. 이 책에서 그는 암브로스와 어거스틴의 증언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아르메니아 사람들에 대한 니콘의 진술은 단지 잘못 인용된 것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린다(N. T. In The Original Greek, vol. 2, Appendix, p. 82).
실제 증거와는 상충되게 호르트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초기 교회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고대에 몬타니스트들과 노바티안들을 제외하고는 이 부분을 고민거리로 여긴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동일 저자, p. 86).
그러나 호르트의 이런 대략적인 진술이 함축하고 있는 바에 대해 해리스는 동의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분명히 호르트 박사는 몬타니스트들에 의해 본문이 많이 변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들의 본문 변개는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Codex Bezae, TS, vol. 2 (1891), p. 195.)
오늘날 대부분의 자연주의 학자들은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원래 본문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어서 이 문제를 더 논의해 봤자 얻을 것이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아직도 이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 성도들을 위해) 이 문제를 다룰 때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노선을 따른다. 그들은 이 구절에 대한 고대의 증언은 모순된 것으로 던져버리고 ‘침묵의 주장’에만 의존한다. 그러므로 콜웰(1952)은 어거스틴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삭제된 것에 대해 설명한 것을 조소했다.
그는 단언했다.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의 출처들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생략’은 이런 방식으로 거의 설명될 수 없다. 일부 그리스 서기관들은 틀림없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이 이야기를 삭제한 서기관들이 누가복음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동정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기사는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는 증거를 두고 판단할 때 어거스틴의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What Is The Best New Testament? By E. C. Colwell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opy1952 by the University of Chicago, p. 82.)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콜웰이 어거스틴을 비난한 것은 타당성이 없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와 ‘주님의 발에 기름을 붓고 죄 사함을 받은 여인의 이야기’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여인의 회개와 믿음이 강조되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뚜렷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외견상 하나님의 율법이 파기된다.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죄를 지은 여인이 창녀였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여인은 간음한 여인이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에 대한 반대 의견들을 누가복음의 창녀 이야기에 적용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또 예를 들어 터툴리안이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언급하면서도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c) 현대 번역본들의 잘못된 각주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에 대한 현대 역본들의 각주들은 완전히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역표준역(RSV)은 각주에서 “대부분의 고대의 권위 있는 사본들은 7장 53절~8장 11절을 생략하거나 이것을 요한복음 7장 52절 다음에 혹은 요한복음의 맨 끝에 또는 누가복음 21장 38절 뒤에 변화된 본문의 형태로 삽입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영국성경(NEB) 역시 고대의 권위 있는 사본을 언급하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고대 신약 성경 사본들에서는 고정된 자리에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각주들은 원래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독립된 이야기로 여러 가지 형태로 유포되었고 나중에 서기관들이 신약 성경에 첨가하려고 할 때 이것을 넣어야 할 자리에 대해 자기들끼리도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어 어떤 서기관은 이곳에 또 다른 서기관은 저곳에 삽입하였음을 암시한다.
폰 소덴(1902)은 오래 전에 이러한 각주들이 암시하는 견해가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었다. 비록 그가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참 본문이라는 것을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이 본문에 대한 자신의 기념비적인 연구에서 그는 사실들을 제시할 때 뛰어난 공정성을 보여 주었다. 폰 소덴은 이 부분이 때로는 요한복음의 마지막에서 발견되며 때로는 요한복음 7장 52절 근처의 여백에 있거나 어떤 사본 군(群)에서는(Ferrar group) 누가복음 21장 38절 뒤에 삽입되어 있다고 말한 후 연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본들에서는 이 본문이 7장 52절과 8장 12절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주시할 점은 이런 사본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 정도에서 난외에 이 본문에 대한 삭제 기호가 있었다는 점이다.”(Die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von Soden, 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 Teil, 1. Abt., p. 486).
따라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통상적으로 요한복음 7장 52절과 8장 12절에 위치했다. 그러므로 다른 부분에 이 본문이 놓인 사본들은 이 같은 규칙을 벗어난 예외의 경우이다.
메츠거(1964)는 말한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명백히 서방 교회의 어떤 지역에서 유포되었던 한편의 구전이다. 그 후에 그것은 여러 곳에서 여러 사본들 속에 삽입되었다.”(Text Of The New Testament, Metzger, p. 224).
그러나 폰 소덴이 오래 전에 자신의 조심스러운 학문적 연구를 통해 논증했던 것처럼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메츠거의 해석은 틀린 것이다. 폰 소덴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통상적인 위치가 신약 성경 본문에서 이 구절들의 원래 위치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때로 이 본문이 다른 자리에 있거나 그 안에 이상스러울 정도로 많은 다른 이문이 포함된 것은 이것이 신약 성경의 일부가 된 후에 전개된 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많은 형태의 본문 이문에도 불구하고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여러 곳에서 혹은 다양한 형태로 사복음서에 억지로 끼어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그런 가설은 이 본문이 이미 확고하게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반박되었다. 소위 ‘페라 군’(Ferrar group)이라 불리는 것들의 공통 조상 사본의 입장이 예외이지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런 가설과는 반대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분명한 시기에 명확한 곳에서 맨 처음 사복음서의 본문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온갖 반대 공격에 연승을 거둠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야 한다.”(Die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1. Teil, 1 Abt., p. 500).
그리고 그 뒤에 폰 소덴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본문 형태를 재구성하여 제시하는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공인 본문과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형태와 다르지 않다.
또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들(요7:53-8:2)은 신약 성경에서의 이 기사의 원래 위치가 요한복음 7장 52절과 8장 12절 사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서론 구절들이 문맥에 가장 잘 들어맞는 위치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 가운데 첫 구절(요7:53)은 바로 이전에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의 해산을 묘사하고 있다. 다음의 두 구절(요8:1-2)은 예수님께서 그 동안에 그리고 그 이후에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해 준다. 이 후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영국성경(NEB)이 제시하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위치에서는 이 같은 서론 구절들이 전혀 뜻이 통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런 것을 제공하는 사본들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위치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한다.
오래 전에 딘 버건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는 이러한 사본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인가를 지적했다.
“비평가들은 4개의 초서체 복사본들(페라 군)에서 문제의 이 구절들이 누가복음 21장의 끝에 덧붙여져 있다는 것을 열심히 지적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4개의 코덱스들이 공통의 원형에서 유래되었고’ 따라서 하나의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한 마디 더 덧붙인다면 그 조상이 부패한 복사본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나는 그 비평가들에게 동일한 4개의 그 코덱스들에서 ‘그리스도의 고뇌와 피땀’(눅22:43-44) 기사가 마태복음에 삽입되어 26장 39-40절 사이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가드에 살던 어떤 사람이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사람의 손은 어떤 손이나 손가락이 다섯 개며 발가락 또한 다섯 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복음서들 가운데 발견되는 단 한 개의 파격적인 예가 이 구절들이나 혹은 다른 구절들의 올바른 위치에 영향을 줄 수 없다.”(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Burgon, p. 250). (d) 그리스 교부들의 침묵 설명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의 순수성에 반대하는 자연주의 비평가들의 주장은 주로 과거에 아무도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 즉 침묵에 근거한 주장이며 이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그리스 교부들이 이것에 대해 침묵했다는 것이다. 메츠거(1964)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언급하신 후 1000년 동안 그리스 교부들 중에 오리겐, 크리소스톰, 논누스(운율을 맞춘 자신의 의역에서)처럼 한 구절 한 구절 전 복음서를 다뤘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12세기 초반에 살았던 지가베누스는 그 구절들에 대해 논평을 한 최초의 그리스 저자이다. 심지어 그는 복음서의 정확한 복사본들이 그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Text Of The New Testament, Metzger, p. 223).
그러나 메츠거의 이 주장은 자신이 의도했던 것만큼 그렇게 설득력이 없다. 첫째로, 버건이 오래 전에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메츠거가 그토록 불길하게 말하는 1000년이란 기간에서 적어도 300년은 빼버려야 한다. 티센도르프가 그 구절들의 통상적인 위치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포함하고 있는 9세기의 사본 9개와 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본 1개를 사본들의 목록에 싣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0년의 이 기간 중에서 마지막 300년 동안 그리스 교부들이 침묵한 것은 그들이 다수의 신약 성경 사본들에서 지금의 위치에 기록되어 있는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리가 없다. 후대의 그리스 교부들이 이 구절들에 대해 논평을 하지 않았던 것은 초기의 그리스 교부들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또 오리겐(c. 230)과 크리소스톰(c. 400) 그리고 논누스(400) 같은 초기 그리스 교부들의 침묵 역시 이러한 고대 성경학자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의 일부분이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언급했던 도덕적 편견이나 자기들에게 알려진 사본들 중에 일부가 그것을 생략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버건은 초기의 이 교부들이 이 부분에 대해 강해를 하지 않은 또 다른 매우 합당한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논평은 주로 그들의 설교와 관련된 것이었고 그들의 설교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교회의 옛 오순절 성경 일과에서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크리소스톰과 키릴이 요한복음을 대중들에게 강해하면서 7장 52절에서 곧바로 8장 12절로 넘어갔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했다.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낭송되지도 않는 부분을 왜 그들이 강해해야 하는가? - 어떻게 할 수가 있었겠는가? 아폴리나리우스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가 (유명한 주석 ‘Scholium’에서) 그랬던 것도 마찬가지다. 오리겐 역시 그랬든 안 그랬든 상관없지만 - 비록 반대 입장의 비평가들이 요한복음의 그 부분에 대한 그의 주석이 빠진 것을 알고 그 설명을 요구할 권리는 없지만 - 어찌되었든지 오리겐의 이름도 역시 동일하게 그렇게 한 사람들의 명단에 첨가될 수 있다.”(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p. 257). 초기에는 오순절 날에 온 교회가 요한복음 7장 37절~8장 12절을 낭송하는 것이 관례였었다. 이 성경 일과는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대명절에 매우 잘 어울리는 구절인 요한복음 7장 37-39절부터 시작했다.
37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39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아직 성령님께서 주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7:37-39).
그런 후에 이 성경 일과는 요한복음 7장 52절까지 계속되며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을 생략하고 요한복음 8장 12절로 끝을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니라(요8:12).
따라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오순절 날에 공개적으로 낭송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초기의 그리스 교부들이 이것에 대해 강해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였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왜 오순절의 성경 일과에서 생략되었을까? 분명히 그 부분이 오순절의 중심 사상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설명은 다르다. 그들은 그 본문이 오순절의 성경 일과가 선정될 당시에 요한복음의 일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버건이 지적한 것처럼 이렇게 주장하면 이 본문이 요한복음 7장 52절 다음에 놓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어떤 서기관이 무슨 이유로 오순절의 성경 일과의 한가운데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소개하려 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생각이 났을까?
비록 그리스 교부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교회는 침묵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8장 3-11절이 매년 10월 8일, 성 펠라기아의 날에 공개적으로 낭송되는 성경 일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입증한다. 버건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동방 교회는 큰 목소리로 이 주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한다. 모든 동방 교회의 교직(敎職)에서 교회의 관례에 관한 문서 기록들을 추적해 올라가면 - 그것들은 이 구절들에 대한 교부들의 침묵이 문제를 난감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교부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 동방 교회들은 10월 8일을 위한 특별 성경 일과로 이 12구절 중에서 9구절을 선정했다.”(동일 저자, pp. 259-260).
(e) 내적 증거
자연주의적인 비평가들은 내적 증거라는 근거를 들어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의 순수성에 반대하는 주장을 힘차게 펼쳐왔다. 예를 들어 콜웰(1952)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고 거기에 사용된 어휘와 어조는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다르다고 주장한다(What Is The Best New Testament?, p. 81).
그러나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비평가들은 단지 자기들에게 새로운 어려움을 만들 뿐이다. 그 이유는 만일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삽입된 것이고 그것이 문맥과 그리고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그렇게 뚜렷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왜 그것이 현재의 그 위치에 지금껏 자리를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이것은 오래 전에 스텍(1893)이 물은 질문인데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전혀 없었다(T. Z. aus der Schweiz, p. 98.)
그러나 사실 이러한 비난에는 실속이 하나도 없다. 문체를 트집 잡아 그런 것을 주장하는 것은 나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문체를 트집 잡는 것은 온갖 것들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됐다. 오래 전에 버건은 이 본문에서 요한복음의 독특한 표현들을 지적했다. “우리는 8장 6절의 작은 설명 부분 즉 ‘그들이 그분을 시험하며 이렇게 말한 것은 그분을 고소하려 함이더라’에서 요한의 문체가 어떻게 온전히 드러나는지 주목한다. 게다가 우리는 6절과 8절에서 그분께서 쓰셨다는 사실이 강조된 것 - 이것은 요한복음의 기록자의 다른 부분과 일치한다 - 에 의해 놀라게 된다.”(The Causes Of The Corruption Of The Traditional Text, p. 241).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버건은 사실은 전혀 그 반대임을 보여 준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생략되면 그것은 즉시 고칠 수 없는, 크게 벌어진 상처를 남긴다. “수수께끼 같은 B 사본과 알레프 사본에서는 7장 52절의 ‘갈릴리에서는 대언자가 나오지 못한다’는 말씀이 8장 12절의 ‘그러므로 다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로 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순수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모든 비평가들은 그 복음서 기자의 영감 받은 자필 원본에 그 부분이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은 믿을 수 없다. 7장 37절과 52절 사이에 포함되어 있는 말씀을 다시 살펴보고 다음에 주목하라. (a) 서로 적대적인 두 무리가 성전 안뜰에 운집했다(40-42절). (b) 일부는 우리 주님을 폭력을 써서라도 잡아오는 것에 찬성을 했다(44절). (c) 논쟁에 참석한 산헤드린은 죄인인 주님을 잡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 관원들을 비난하고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45-52절).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서 기자가 어떻게 ‘그러므로 다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계속해서 기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요한이 그 말을 기록했을 때 그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동일 저자, pp. 237-238).
분명히 버건은 제대로 핵심을 집었다.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을 거부하면 7장과 8장 사이의 연결이 빠져버려 아주 이상해진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독자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의장에서의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다가 단 한 마디 설명도 없이 성전에 계신 예수님께로 이끌려간다. 이와 같은 인상적인 기록은 기교를 많이 부린 현대의 일부 책들에서는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성한 성경책에서는 그런 기교가 통할 수 없다.
(f) 사본들과 역본들의 부정적인 증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파피루스 66과 75, 알레프(시내 사본), B(바티칸 사본), W, L 등에서 생략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못된다. 그 이유는 이 모든 사본들이 습관적으로 생략하기를 좋아했던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몬타니스트들이나 혹은 어떤 다른 극단적인 집단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를 자기들의 요한복음 복사본들에서 제거하기 시작하자 초기 교회의 금욕적인 경향들과 맞물려 그러한 관행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특히 이집트에서 그랬다. 그 결과 우리가 그리스어 사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보드머 파피루스 Ⅲ을 포함하여 많은 콥트어(이집트어) 역본들의 사본들이 같은 이유로 이 본문을 생략한다. 시리아 역본과 아르메니아 역본 또한 그렇다. 이것은 이런 모든 역본들이 거슬리는 구절을 생략해 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부분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생략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후대의 서기관들은 비평가 노릇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존하는 사본들에서 이 구절에 대한 엄청난 수의 다른 형태의 본문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많은 서기관들은 이 부분의 난외에 삭제 기호를 표시했다.
이런 현상들 중 어느 것도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참 본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단지 이 본문에 대한 편견이 초기 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이러한 편견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편견 때문에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의 기사’가 요한복음의 본문에 첨가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요한복음의 본문에서 생략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것을 첨가하고자 하는 동기보다는 생략하고자 하는 어떤 더 큰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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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드워드 힐즈의 <킹제임스 성경 변호> 149-158쪽에 있음
<킹제임스 성경 변호>는 다음에서 무료 PDF를 다운받을 수 있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80
2017-11-02 17:55:13 | 관리자
천주교 소수 본문의 문제: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금까지 사본학적 근거를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알려드렸습니다.
다음 기사에서 보듯이 그리스어 신약 성경 사본의 99%는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합니다.
<사본들의 압도적인 증거: 99%가 전통 다수 본문 지지>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123
이런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주교 소수 사본이 좋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일(2017년 10월 31일)은 종교 개혁 500주년 되는 날입니다. 정확히 500년 전에 마르틴 루터는 천주교의 부패를 온 천하에 알리며 종교 개혁의 불길을 당겼습니다. 루터가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천주교 소수 본문을 버리고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다수 본문에 근거하여 보통 사람들을 위한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틴데일 성경, 제네바 성경, 킹제임스 성경, 올리베땅 성경, 디오다티 성경 등 유럽 모든 국가의 성경이 다수 본문에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광스러운 빛을 비쳐 주었습니다.
이런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주교 사본이 옳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역사적/사본학적 사실을 보지 않으려고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자기들의 위선을 감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천주교 소수 사본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알려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수 사본 지지자들이 추앙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자기들끼리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다음은 위키 백과 기사입니다.
<바타칸 사본과 시내 사본의 차이> https://en.wikipedia.org/wiki/Comparison_of_codices_Sinaiticus_and_Vaticanus
위키 백과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듯이, 이 두 사본은 사복음서에서만 무려 3,036개나 서로 다릅니다(마태복음 656개, 마가복음 57개, 누가복음 791개, 요한복음 1022개). 물론 이것 역시 이미 사본 학계에 공공연하게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니 소수 사본 중 어떤 것이 맞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어떤 사본을 신뢰해야 한단 말입니까? 누가 본문 재판관으로 앉아야 합니까?
또한 시내 사본은 특히 여러 곳에서 조작된 부분이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시내 사본 조작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내 사본 조작>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8
반면에 40여 개의 소수 본문을 제외한 99%의 안디옥 계열 사본들(다수 사본, 종교개혁 사본, 보편적 사본, 비잔틴 사본, 전통 사본)은 어느 것을 보아도 본문이 일정합니다. 바로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과 루터 성경 등이 나왔고 이러한 다수 사본 성경들이 전 세계의 신학과 교리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을 통해 진리의 빛을 온 세상에 보내 주신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119:13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따라 우리 손에 완전히 보존된 성경을 주셨습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우리는 이 성경이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다음은 리건 박사가 지은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의 결론입니다.
https://www.biblebelievers.com/Reagan_myth-early.html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을 통해 귀한 성경을 보통 사람들의 손에 쥐여 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패스터
2017-10-30 17:14:5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