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네요.
갑자기 야구가 하고 싶어집니다.
2015-05-27 16:04:08 | 김항수
안녕하세요?
어제 어느 형제님이 킹제임스 야구단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저희 교회는 킹제임스 등산부는 있는데 야구단은 처음이라 소개합니다.
주님의 귀한 말씀이 곳곳에서 흥왕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2015-05-27 10:48: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킵바이블 사이트의 사역 목적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 사역을 하는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완전히 보존해 주셨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처럼 보존된 성경임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여기서 그치면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과연 영어로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실까요?
그러면 우리말로는 하나님의 말씀들의 보존이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한국 사람의 말로도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읽을 수 있도록 모든 민족의 말로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말도 포함됩니다.
영어로만 된다고 하면 영어를 쓰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들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킵바이블에서 하고자 하는 킹제임스 성경 사역의 최종 목표는 완전한 영어 성경을 성실하게/정직하게 번역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말로 보존된 성경을 퍼뜨리고 보급하며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귀중한 사역을 업신여기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한글 성경을 심히 부족한 것으로 폄하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많은 경우 이런 분들은 자신이 영어를 조금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인데 그렇게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배치됩니다. 만약 이런 분들의 주장이 득세하고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옮겨 널리 알리려는 사역이 쇠퇴한다면 스스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수 성경 신자의 믿음이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와 바울의 저 위대한 선포가 결국 우리들 사이에서 무색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지배하는 자가 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하나니 너희는 믿음으로 서느니라.(고후1:24)
하나님은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말로 보존된 성경을 갖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위클리프, 틴데일, 루터 등이 다 자기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보존된 성경을 그들의 말로 번역하여 제공하였습니다.
바로 이 일이 저와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해야 할, 하나님께서 친히 맡겨주신 고귀한 사역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므로 다음의 글들을 링크했으니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온리의 정의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6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7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5
성경의 완전성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18
하나님께서 우리말 흠정역 성경 위에 손을 얹어 주셔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을 통해 주저함 없이 말씀의 빛으로 걸어 나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5-14 10:32: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어쩌다가 성경 번역자와 목사가 되었습니다.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면 지금도 어찌 된 일인지 잘 모릅니다.
얼마 전에 전주 소망침례교회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번역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기억을 살려서 제대로 이야기하려 하였으나 이 안에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 경우 알려주시고 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흠정역 성경 위에 손을 얹어 주셔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을 통해 말씀의 빛으로 나오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간증: 나의 삶과 킹제임스 성경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990
2015-05-14 08:49: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와 ‘'킹제임스 온리'의 정의’를 올린 뒤 밤에 한 형제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와서 소개합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5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6
이 글을 쓰신 형제님은 영어로만 모든 것(해석/번역 등)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분들의 설교와 글 등을 읽고 마음속에 어려움을 느끼던 차에 제가 올린 글을 보고 자신의 느낌을 적어 주셨습니다. 아마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우리말 흠정역 성경을 보시는 분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정립해야 함을 보여 주는 글로서 여러 성도들에게 유익이 될 것 같아 소개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과도기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혹시 영어로 인해 주눅 들린 분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영어를 못해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바르게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우리말로도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해 주십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믿음 생활하기 어렵지요.
조용한 이 아침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합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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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랜 기간 장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교리에 대해 깨닫게 된 중년의 형제입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성경대로 믿는 성경 신자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목사님께서 킵바이블을 통해 올리신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와 ‘'킹제임스 온리'의 정의’를 읽고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함에 심히 기쁘고 공감이 되어 제 생각을 몇 자 적어 메일로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는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시절, 신학대학원 등에서 성경 원어(히브리어/헬라어)를 배우고 설교 때마다 그것을 인용하며 성경 해석에 활용하는 목사님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그 목사님들이 공부도 많이 하시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암호처럼 생긴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하셔서 감히 평신도(?)가 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성경 해석을 하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경 문맥과 전혀 상관이 없었고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말씀의 뜻과도 배치되는 터무니없는 말 그대로 영해라는 것을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교리를 접하게 된 뒤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깨달음으로 인해 기쁨으로 살던 중 참으로 묘한 일이 킹제임스 진영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차츰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수년에 걸쳐 검증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흠정역 성경을 강단 위에 펼쳐 놓고도 여전히 설교 시간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자주 거론하며 그것만을 성경 해석의 중요한 열쇠로 삼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설교와 성경 강해를 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흠정역 성경이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 제가 장로교회를 다니던 시절에 무언가 자신만의 독특한 성경 해석을 세우기 위해 자주 원어를 들먹이던 목사님들이 겹쳐져서 연상되었습니다.
1611년 출간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신실하게 번역한 흠정역 성경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되어 읽히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 해석의 중요한 길목마다 흠정역 성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렇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마도 킹제임스 성경을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오래전부터 알아 왔다는 것과 영어에 능통하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성경 신자들은 계속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믿음과 성경 해석이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구약 성경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양과 목(양)자’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양 떼는 목자를 따라가며 말씀의 꼴을 먹이는 목자의 인도와 양육을 받아야 함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목자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바르고 선한 목자요 양 떼를 해롭게 하지 않고 좋은 말씀의 꼴을 먹이는지는 누가 분별해 줍니다. 그것은 오직 양들 스스로가 분별해 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께서 성경에 아래와 같은 경고의 말씀들을 기록해 주셨나 봅니다.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마7:15).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행20:29~30)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빌3:2~3)
이런 말씀들을 읽어보면 결국 개들과 거짓 대언자와 사나운 이리와 악한 일꾼과 삯꾼 목자와 거짓 형제와 거짓 교사들과 또 그들과는 구별된 하나님께서 보내신 신실한 참 목자를 구별해 내는 일은 모두 성도 개개인의 몫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신실하게 번역한 흠정역 성경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야 어떤 목사의 설교가 바른지 그른지 또, 어떤 성경 교사의 가르침이 바른지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양들 즉 성도들은 사실상 그런 능력이 없는 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제가 인용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구원받고 바르게 믿음 생활을 하려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그렇다면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께서 보존해주신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인 후에도 킹제임스 성경을 남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접했고 영어에도 능통한 (혹은 능통하다고 여기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믿음과 성경 해석을 의존해야 한다면 평범한 성도들이 목사와 성경 교사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듣고 자기 스스로 그들의 참됨과 거짓됨 여부를 분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흠정역 성경의 완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내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돌아가 버리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주장대로 흠정역 성경에 그렇게 수천 가지 이상 오역이 존재한다면,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그렇게도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고 영어도 잘 알고 모든 능력을 갖춘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라도 모든 것을 투자해서 바르게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새로운 우리말 성경을 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의 말이 맞는다면 그렇게 외곽에서 한가하게 흠정역 성경을 공격하고 잘못을 지적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토록 비판하는 흠정역 번역자처럼 오랜 세월을 기꺼이 골방에 틀어 앉아 성경 번역에 매진하지 못하십니까?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아니면 인내심이 부족해서인가요? 그도 아니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요?”
말하지 않아도 저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압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과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어 킹제임스 성경의 새로운 우리말 번역을 내놓아도 흠정역 성경과 견주어 세상의 인정을 받을 자신도 없고 엄두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말과 글로 흠정역 성경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힘겹게 쌓아가는 이 성경의 신뢰와 권위를 조금씩 갉아먹으면 과연 누구에게 유익이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 누가 뭐라 해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신실하게 번역한 흠정역 성경이 영적으로 매우 혼탁하고 타락한 이 마지막 때 저와 제 가족을 지켜줄 영적 등대가 되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우리말 성경임을 확고히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이 성경으로써 보통의 평범한 대다수의 한국인 성경 신자들이 거짓 목자와 참된 목자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영어를 잘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능통하다고 자부하는 일부 형제·자매들에게 전혀 굴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실천하고 하늘의 보상을 쌓으며 탁월하게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부디 대다수의 선량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독자들을 위해서 힘내시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선한 사역을 더욱 힘있게 끌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5-13 09:19:30 | 관리자
킹제임스 온리(유일주의)의 정의
요즘 미국 등에서는 ‘킹제임스 성경만 성경이다’라는 의미의 ‘킹제임스 온리이즘’(King James Onlyism)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이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숭배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대적들이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레 ‘킹제임스 온리’라는 라벨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말로는 ‘킹제임스 유일주의’ 정도로 부를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출간/배포하고 킹제임스 성경만을 읽고 그것만 사용하여 강해/설교하므로 자연히 ‘킹제임스 온리’라는 라벨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온리’에 대한 바른 정의 없이 ‘킹제임스 온리’라는 라벨이 붙으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크므로 오늘은 저와 또 함께 믿음의 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견지하는 ‘킹제임스 온리’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
이런 정의는 사실 오래전에 네팔의 선교사로 있는 데이비드 클라우드 형제님이 내린 적이 있는데 저 역시 그 형제님과 비슷하게 제가 믿는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
http://www.wayoflife.org/database/kjo.html
저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킹제임스 온리’가 정의된다면 그러한 라벨이 저에게 붙는 것을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입으로 불어내신(영감 과정) 완전한 말씀들(단어들)을 히브리어/그리스어로 주셨고 모든 시대를 통해 섭리로 이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셨다.
2. 하나님께서는 친히 보존하신 단어들(원어들)을 한 점의 오류 없이 수용 언어인 영어를 통해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담아 주셨다.
3. 그러므로 모든 원어의 뜻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번역된 것만이 참되고 바르다. 이 말은 원어 단어마다 여러 뜻이 있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반영된 뜻만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른 뜻이라는 의미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는 현시대의 본문 비평은 마귀의 이단 교리이다. 현대 본문 비평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되지 않았고 성경본문 비평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발견되어 성경에 추가, 삭제,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5. 하나님의 참된 본문은 천주교 도서관, 수도원, 동굴 등에 비밀리에 숨겨지지 않았고 시대를 거치며 신실한 성도들의 손으로 필사되어 보편적으로 온 세상에 전달되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의미로 ‘킹제임스 온리’를 주장한다면 저는 그러한 의미의 ‘킹제임스 온리’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1.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영감을 받았다. ---- 아니다. 오직 영감은 1차적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원어에만 해당된다. 킹제임스 성경이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성경이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들을 정확하게 번역했기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1611년의 영어 번역본에 다시 한 번 영감, 즉 숨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 아니다.
2.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그것의 모체가 된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본문보다 우수하다. ---- 이 말은 그 자체가 난센스이다. 이것은 1611년 전에는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이 없었고, 완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인정할 수 없다.
3.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그리스어 본문의 향상된 계시이다. ---- 이 말은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로 원어를 고치고 향상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 난센스이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5
4.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있으면 원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번역 등에 필요한 원어 도구들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 ---- 이런 주장은 성경 번역/해석 등에 영한사전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이며 결국 자기만 옳다는 자가당착으로 귀결된다.
5.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만 보존되었다. ---- 아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에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우리말로도 보존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읽어야 하고 영어를 할 수 있는 해석자의 지도를 받아야만 바르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극단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18
6. 오직 킹제임스 성경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개역성경 등의 현대 역본은 사탄의 성경이다. ---- 우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으며(롬1:16) 개역/개정/NIV 등의 현대 역본에도 복음이 보존되어 있다고 믿는다.
7.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로 정죄 받거나 저주받아도 할 말이 없다. ---- 우리는 개역/개정/NIV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도 우리의 형제요, 자매인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믿는다. 다만 그들은 완전한 말씀 전달에 대한 지식이 없어 전통에 매인 채 바른 말씀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 참음으로 설득하여 성경 말씀의 완전성과 보존의 실재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대상이다.
2015-05-12 18:41:52 | 관리자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함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와 바른 이해가 없으면 성경 신자라는 우리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극단적 주장을 펼 수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 주장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엉뚱하게 믿는 것도 개인의 자유지만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거나 정죄하는 지경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일로 성경 신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오해를 사는 요소이며, 결과적으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되는 일입니다.
1611년에 반포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 성경을 손에 들면 원어의 여러 뜻을 두고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뜻이 많이 달라진 원어의 의도를 잘 알기 어려운 이 시대의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보존에 대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7
다음의 예를 살펴봅시다.
아모스 4장 4절에는 십일조를 드리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법을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KJB: Come to Bethel, and transgress; at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s; and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and your tithes after three years.
개역: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 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NASB: Enter Bethel and transgress; in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your tithes every three days
킹제임스 성경은 ‘3년’이라고 하고 개역성경은 ‘3일’이라고 합니다. 물론 현대역본 지지자들은 KJB가 히브리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3일’을 ‘3년’으로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히브리 단어를 살펴보면 ‘욤’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스트롱 번호가 3117이고 구약성경에 2,300회 이상 나옵니다. 욤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거의 대부분 ‘날’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역본 지지자들은 암4:4에서도 욤은 ‘3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 지지자들은 두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어가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장의 지지자들은 비록 욤이 날을 가리키는 것이 맞지만 이런 경우는 신명기 등의 예를 볼 때 3일이 아니라 3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면서 영어가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고 우기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독보적 우수성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3일이 아니라 3년이 맞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영어가 원어보다 정확하거나 우수해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아무 근거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욤이라는 단어를 ‘년’으로 번역한 셈이 됩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펴면, 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3일이 아니라 3년이 맞는다고 주장할까요? 그 이유는 욤이라는 히브리 단어에 ‘년’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장 29절에 가보니 이 단어가 ‘년’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흠정역: 어떤 사람이 성벽을 두른 도시 안에 있는 거주하는 집을 팔았으면 그 집을 판 지 한 해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만 한 해 안에 그것을 무르려니와
KJB: And if a man sell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e may redeem it within a whole year after it is sold; within a full year may he redeem it.
여기에도 분명히 동일한 히브리어 ‘욤’이 쓰였지만 그 단어를 ‘날’로 하면 안 되기에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현대역본들은 어떠할까요?
개역: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NIV: If a man sells a house in a walled city, he retains the right of redemption a full year after its sale. During that time he may redeem it.
NASB: Likewise, if a man sells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is redemption right remains valid until a full year from its sale; his right of redemption lasts a full year.
모든 현대 역본들도 여기만큼은 동일한 히브리어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기서 자의적인 번역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히브리어 욤의 뜻 가운데 ‘년’이 있음을 알았기에 여기서 정확하게 ‘년’이라 번역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7
다시 말씀드립니다. 히브리어 욤에는 극히 드물게 사용되긴 하지만 ‘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런 용례를 알기에 이 구절들의 욤을 정확하게 ‘년’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성경이든, 히브리 문학 작품이든 본래 욤에 ‘년’이라는 의미가 전혀 없는데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욤을 ‘년’으로 번역했다면 그것은 번역자들이 실수를 범하였거나 심한 경우 독자들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성경과 히브리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욤의 용례들을 폭넓게 연구한 뒤 대개 날을 의미하는 욤을 이런 경우에는 ‘년’으로 바르게 번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할 수 있다는 점은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도 적용되는 번역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성경에는 용례가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음이 그런 예의 하나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이 구절의 vexation은 오직 전도서에만 10차례 나옵니다(전1:14; 17; 2:11, 17, 22, 26; 4:4, 6, 16; 6:9). 성경에 이 단어의 다른 용례가 없으므로 우리는 vexation에 상응하는 히브리어(스트롱 번호 7469, 7475)가 어떤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개역/NIV 등의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vexation of spirit’을 ‘바람을 잡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자, 이 경우에도 영어 성경 번역자들이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해서 아무도 뜻을 알 수 없는 그 히브리어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번역했을까요?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들은 원어뿐만 아니라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과 그 이전 역본들의 역자들은 어떻게 이리 번역하였을까요?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그분들은 히브리 사람들의 작품(대개는 성경 관련 작품)을 읽고 그런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맥에 의거하여 바르게 성경에 도입하였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04
다시 말해 영어 성경을 번역하는 누군가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다른 데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은 단어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 성경을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 번역된 것은 원어 자체가 그런 뜻을 품고 있고 히브리 사람들의 저작에서 그리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히브리어는 오직 ‘괴롭게 하는 것’으로 번역해야만 정확한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성경들 가운데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만 그렇게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심지어 뉴킹제임스 성경도 ‘바람을 잡는 것’으로 번역하여 불교 사상을 반영하였습니다.
중요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절대로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난센스이며 오류 없이 완전하게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혹시 주위에 누군가가 이런 주장을 펴거든 속히 그에게서 멀리 도망가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성경과 히브리어/그리스어 용례를 샅샅이 살핀 뒤 모든 원어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에 들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단어들)이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되어 보존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당시 번역 과정을 통해 성경과 히브리어/그리스어 용례를 폭넓게 샅샅이 살핀 뒤 모든 원어를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킹제임스 성경 위에 모든 건전하고 바른 신학이 정립되었고 이 성경으로 오대양 육대주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성경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는 것은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의 보급과 확산에 방해가 됩니다. 제아무리 동기가 좋더라도 사실을 왜곡한 비뚤어진 그릇에는 진리를 담을 수 없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을 그것이 있을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두고 정직한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바르게 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 숭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지극히 바르고 당연한 것도 그것을 주장하고 알리는 사람이 바른 논리와 상식을 가지고 주장해야 상대방에게 바르게 들립니다. 단순히 영한사전에서 뽑아낸 지식으로 영어만을 가지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만약 성경 번역/해석 등이 그리 쉽게 기계적으로 다 될 것 같으면 구글 번역기로 전체 영어 성경을 하루 만에 번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보물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행로가 과격하거나 비상식적이며 비논리적인 주장에 의해 가로 막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 맑은 정신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해야겠습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14:20).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5-12 18:28:32 | 관리자
참 이와 관련해서 어떤 분이 friends를 왜 ‘친구들’로 번역하지 않고 몇 군데서는 ‘친지들’로 번역했느냐고 묻기에 잠시 답을 드립니다.
그분의 친지들이 그것을 듣고 그분을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제정신이 아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막3:21).
And when his friends heard [of it], they went out to lay hold on him: for they said, He is beside himself.
신약성경에 가서 friends를 찾으면 그리스어는 딱 두 개로 나옵니다(스트롱 번호 3588, 5384). 저희는 전자는 친지로 후자는 친구로 번역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맥이 그리 말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사전에 가서 friends를 찾아봅시다.
⁂friend [frend] n.
벗, 친구.
(복수.) 근친, 육친.
복수로 쓰일 때는 친지로 볼 수 있다고 일반 사전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게 friends를 ‘친지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이런 데서 friends를 ‘친구들’이라고 해도 됩니다. 다만 ‘친지들’이 틀렸다고는 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이 경우 친지들이 영어, 원어, 우리말에 맞게 정확히 번역되었다고 믿습니다.
샬롬
2015-05-11 11:19: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 후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이메일을 보냅니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서너 개가 왔습니다. 지난주에는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한 형제님께서 몇 군데 교정할 곳이 있다고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미국인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래서 늘 흠정역 한영대역 성경을 보시다가 발견한 몇 가지 의견을 모아서 이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의견들을 보면서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보내 주신 교정 요청 의견을 일단 살펴보았습니다.우선 열정에 감사드립니다.주신 의견 중에는 반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있습니다.제 고민이 늘어갑니다.영어식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요.그래서 다 그만두고 죽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여하튼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그 형제님은 그 뒤에 자기 의견을 다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번역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서문에서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98
이처럼 번역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통해 글에 생명력을 넣으려면 문맥에 따라 단어들의 뜻을 잘 고려해서 합당하고 적절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영어든 한 단어가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단어 자체의 기본적인 뜻이 있지만 거기서 파생된 의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1880년경에 나온 영국 개역성경(ERV)의 실패에 대해 <Manuscript evidence>를 기록한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ERV는 본문도 문제지만 기계적으로 번역해서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글이든 말이든 살아 있으려면 문맥에 맞게 같은 단어라도 잘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번역된 글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비로소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배우다 보니 흠정역 한영대역 성경을 보시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잠시 번역의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영어로 peac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경에 429회 나오는 이 단어는 흠정역 성경에 화평, 평화, 평안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왜 모두 평화로 번역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영어로는 peace 하나로 화평, 평화, 평안 등이 다 표현되지만 우리말로는 안 되므로 각각의 문맥에 맞게 구분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그래야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듯이 합당하고 적절한 우리말 번역으로 독자들을 이해하게 하고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peac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그리스어도 10여 개나 됩니다. 이것을 영어는 peace 하나로 번역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6장에서 대언자는 거짓 대언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얼마 있다가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해야 하므로 그들에게는 실제로 평안 즉 ‘걱정이나 탈이 없음. 또는 무사히 잘 있음’이 없는데도 거짓 대언자들은 그들이 평안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경우의 peace는 당연히 불안에 대비되는 평안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거짓 대언자들]이 또한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 주고는 평안(peace)이 없는데도 이르기를, 평안하다(peace), 평안하다(peace), 하였도다(렘6:14).
이런 식으로 같은 영어 단어라도 어떤 경우에는 미묘한 차이를 살려 달리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번역이 살아납니다. 사실 예레미야도 그런 의미로 peace라는 단어를 사용했지 ‘평화 협정’을 말할 때의 ‘평화’처럼 ‘전쟁과 대비되는 peace’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영어만 가지고 번역하면 졸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eople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은 사람들도 되고 한 나라 백성도 됩니다. 특히 히브리어/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people과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인 people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들과 백성을 모두 완전하게 people로 번역하였습니다. 미국/영국 사람들은 앞뒤 문맥을 보고 people이 사람들인지 백성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구분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문맥과 더불어 English men's concordance 등을 사용해서 바르게 수행될 수 있습니다. 흠정역 성경은 이런 과정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바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권위를 무시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합당한 말이 아닙니다. 저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무결함을 믿고 그 뜻대로 바르게 번역했을 뿐입니다.
이제 다음의 몇몇 사례를 통해 번역의 미묘함을 살펴보겠습니다.
1. 신10:13 등의 good 과 goodness
12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
여기의 답이 13절입니다.
“내가 이 날 네 행복을 위해 네게 명령하는 {주}의 명령들과 그분의 법규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냐?”
우리말로만 읽으면 여기의 ‘행복’은 ‘happiness’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영어로 가서 보시면 ‘good’으로 되어 있습니다.
To keep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 and his statute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for thy good
제게 이메일을 보내신 분은 아마도 이것을 오역이라고 생각하고 제게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즉 핵심은 good을 왜 선 혹은 선함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일단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구절을 ‘네 선을 위하여’ 혹은 ‘네 선함을 위하여’라고 번역하면 말이 될까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기는 good이지 goodness가 아닙니다. 즉 good 자체가 명확히 명사로 쓰였습니다.
그러면 good이라는 명사의 뜻을 사전에서 보시기 바랍니다.제 스마트폰에 뉴에이스 영한사전이 있어서 good의 뜻을 보았습니다.
good(명사): 1. 이익, 복리, 이로운 것, 2. 탁월한 점, 장점, 3. 선
즉 명사 good은 좋은 것, 복된 것, 유익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goo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베(스트롱 번호 2896)를 보니 이 말은 영어 KJB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습니다.
beautiful, best, better, bountiful, cheerful, at ease, X fair (word), (be in) favour, fine, glad, good (deed, -lier, -liest, -ly, -ness, -s), graciously, joyful, kindly, kindness, liketh (best), loving, merry, X most, pleasant, + pleaseth, pleasure, precious, prosperity(번영), ready, sweet, wealth(재물), welfare(복지), (be) well ([-favoured]).
명사형의 경우 영한사전처럼 영어 KJB의 good은 prosperity(번영), wealth(재물), welfare(복지)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10:13의 경우 ‘네 행복을 위해’, ‘네 복을 위해’, ‘네 번영을 위해’, ‘네 복지를 위해’로 번역하면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네 선을 위해’ 혹은 ‘네 선함을 위해’는 졸역(심하게 말하면 오역)입니다.
욥기 5장 27절, 시편 122편 9절의 good도 같은 경우입니다.
이것을 보라. 우리가 그것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이 사실이니 너는 그것을 듣고 네 유익을 위해(for thy good) 그것을 알라, 하니라(욥5:27).
{주}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인해 내가 네 복을(thy good) 구하리로다(시122:9).
good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선함들’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상품으로 번역됩니다.
2. full, fill 등
친구끼리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너 배고파?” “아니, 나 배불러.”
이런데 우리말 ‘배’가 나온다고 영어 belly, stomach를 생각하면 영어가 안 되지요.
“Are you hungry?", "No, I am full."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번역했더니 어떤 분이 ‘full’을 “찼어”라고 번역하지 않아 오역이라고 한다면 맞는 지적일까요?
full, fill 등은 물론 ‘차다‘가 1차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대화가 오가는 문맥에 따라 그것은 배부름을 뜻합니다. 영한사전에도 당연히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fill: ∼+목/ +목+전+명』 가득하게 하다, 채우다; ┅에 (잔뜩) 채워 넣다; ┅에 내용을 채(아무를) 배부르게 하다; 만족시키다, 흡족케 하다.
마태복음 5장 6절을 보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Blessed [are] they which do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아마도 끝의 filled를 “그들이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요”로 하지 않아 유감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그런데 여기의 문맥은 먹고 마시는 것이므로 ‘배부르다’로 해야 맞는 번역입니다.
동일한 말이 마14:20에도 있습니다.
그들이 다 먹고 배불렀으며 남아 있는 조각들을 저들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거두었는데(마14:20)And they did all eat, and were filled: and they took up of the fragments that remained twelve baskets full.
물론 여기서도 fill은 ‘배부르다’의 의미입니다.이런 경우 fil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코르타조, 스트롱 번호 5526)는 음식을 먹는 데만 사용되었습니다.
반면에 ‘채우다’로 해야만 하는 fill이 있습니다.
또 아무도 새 옷감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 낡은 옷을 당기어 그 찢어짐이 더 심하게 되느니라(막2:21).No man also seweth a piece of new cloth on an old garment: else the new piece that filled it up taketh away from the old, and the rent is made worse.
이 경우 그리스말은 ‘플레이쏘’(스트롱 번호 4130 혹은 4138)이며 뜻은 ‘빈 공간을 채우다, 메우다, 성령님으로 혹은 지혜로 채우다’ 등입니다(눅1:67; 2;40 등 다수 구절).
따라서 번역자는 같은 영어 단어 fill이라도 각각의 문맥에 맞게 ‘배부르다, 채우다, 메우다’ 등으로 구분해서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fill을 다 ‘채우다’로 해도 뜻은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졸역이 됩니다.
비교적 영어에 능숙해 영어 성경을 즐겨 보시는 분들이 간혹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영어는 절대 원어를 넘지 못합니다. 영어는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을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 어떤 사람이 영어로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거든 속히 그에게서 도망가야 합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영어만능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은 마치 성경 해석에 있어 항상 원어를 들먹이며 자기 마음대로 영해를 일삼는 신학자와 목사들 못지않게 오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영어의 역할은 성경의 단어, 시제, 단복수 등을 원어의 단어, 시제, 단복수 그대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표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절대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극히 합당한 원칙에 관련된 모든 질문에 그때그때 일일이 답하지 못하는 저의 사정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같은 영어 단어라도 원래 뜻이 다르면(이것은 문맥을 보면 알 수 있음) 구분해 주어야 바른 번역임을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인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여러 원어(배부르다, 채우다, 메우다)가 하나의 영어 단어(flll)로 쓰였고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길 때는 각각 문맥에 맞게 서로 다른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해 주십시오.
이런 것을 파악하지 못한 채 흠정역 성경에 (이런 식의) 오류가 수천 개나 된다고 주장하면 이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합당한지는 현명한 독자들이 판단할 것입니다.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하나의 영어 단어를 두 개의 우리말 단어로 번역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 역시 번역자는 그 단어의 본래의 뜻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가적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레위기 27장을 보겠습니다.
맹세로 봉헌된 자 곧 사람들 중에서 맹세로 봉헌될 자는 결코 속량하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죽일지니라(29).
None devoted, which shall be devoted of men, shall be redeemed; [but]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맹세로 봉헌된’에 해당하는 영어를 보시면 단순히 devoted라는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자가 ‘맹세로’를 자기 마음대로 집어넣었다고 항의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번역자라면 계시록 22장 18절의 저주를 잘 알고 있으므로 절대로 자기 마음대로 단어를 첨가하지 못합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계22:18),
그렇다면 왜 ‘맹세로’가 들어갔을까요? 영어 devoted와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맹세로’의 뜻을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devoted는 영어 성경에서 단 7회 사용됩니다(레27:21, 28 2회, 29 2회, 민18:14, 시11:38). 옥스퍼드 사전을 보면 devoted는 ‘Vowed; appropriated or set apart by a vow’(맹세에 의해 할당된 혹은 구분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맹세로 봉헌된’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감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한 모세의 의도가 전혀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도 ‘아주 바친 자’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참고로 21절을 보시면 devoted의 용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밭이 희년이 되어 나갈 때에는 맹세로 봉헌된 밭으로서 {주}께 거룩할 것이므로 그 밭의 소유권이 제사장의 것이 되리라.
여기서 devoted된 밭은 ‘주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맹세로 봉헌된 밭’이며 그래서 그것은 거룩한 밭 즉 거룩하게 구별된 밭입니다. 2절이 이를 설명합니다.
29절 같은 경우도 이를 강조하기 위해 맨 앞에 none이라는 강세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28절에는 every라는 강세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즉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데서 ‘맹세로’를 빼면 이 성경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 본래 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살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봉헌된 것은 얼마든지 있지만 이 경우는 특별하게 전적으로 주님을 위한 용도로만 봉헌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살리기 위해 ‘전적으로’가 들어가는데 이것은 절대 번역자가 임의대로 첨가한 것이 아니라 영어 devoted와 히브리말 케렘(스트롱 번호 2764) 즉 ‘맹세로 운명이 정해졌음’을 나타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번역입니다.
오늘은 잠시 번역에 대해 몇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흠정역 성경 번역의 원칙을 잘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합당하고 적확하게 번역해 나갈 수 있는지 그 이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희는 흠정역 성경이 결코 무오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다만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18
번역을 잘못하면 반역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저희는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사이트 공지를 통해 부탁드렸듯이 앞으로 성경을 보시다가 교정 의견이 생기면 언제라도 기탄없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추후에 교정판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주신 의견들 가운데 합당한 것들은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흠정역 성경 번역에 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사이트에 올려 논쟁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양심이 연약한 지체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원해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이러한 성원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http://lifebook.co.kr/final/bibles/bible_best.asp
이에 대해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앞으로도 하나님과 모든 성경 신자들 앞에서 더욱더 겸손한 자세로 이 사역을 유지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5-11 10:11:07 | 관리자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형제님의 글을 읽고나서 창세기를 읽어보니
하나님의 창조세상이 더욱 웅장하고 감동스럽습니다.
정말 우리말은 영어가 따라올 수 없는 오묘함이 많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2015-04-27 17:33:37 | 김영익
최상만 형제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 유의지와 자유 분방한 창의적 사고의 관점에서 성경 번역의 '오류'와 성경 번역의 '차이'를 명쾌하게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시간 할애해서 모두에게 유익한 좋은 글을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용 중) "교리가 달라서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히 그렇다고 하고 공연한 번역 시비를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2015-04-27 14:35:57 | 한원규
1.불필요한 반복은 피한다
2.정확성이 훼손되지 않은 범위내에서 읽힘성을 최대한 살린다
3.문체는 의미전달에 적합한 형태를 취한다
는 원칙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유익한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4-27 00:05:39 | 박선규
성경에 대한 권위를 유지해가는 것도 우리의 믿음의 선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것을 형제님의 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감사해요~~^^
2015-04-27 00:03:33 | 김상진
형제님의 선한 열정이 담뿍 담긴 글을 저는 이제야 귀가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
먼저 형제님! 여러 가지로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시간을 내고 노력을 더 하여
글을 잘 정리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흠정역 성경이 어느 특정인의 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그럴듯한 대의명분으로 포장해도 결국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소모적인 논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에 의해 번역된 성경이라 해도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한국인이 모국어로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입니다.
그 증거로 흠정역 성경은 가장 신실하고 정확하며 건전한 번역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안다면 설혹 부족함과 아쉬움이 보여도
서로 힘을 합하여 보완하고 더 온전하게 만들어가면
마지막 때 우리는 이 은혜의 열매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사색당파의 싸움이 끝내 조선을 침몰시켰듯이
끊임없는 소모적 논쟁의 길로 나아가느냐
사람을 살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광스러운 길로 나아가느냐는
오로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최상만 형제님의 지혜와 용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염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귀한 글 기대합니다.
2015-04-26 23:57:06 | 김대용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우리 말로 바르게 번역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처럼 성경을 바르게 변호하는 신실한 성경 지킴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최상만 형제님! 앞으로도 좋은 글을 계속 써 주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5-04-26 20:41:22 | 차대식
주일 아침 시간에 좋은 글을 접했습니다.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우리 말 어법에 맞춘 번역은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흠정역 성경은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 졌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부드러운 마음과 선한 마음을 갖고 가이오와 같이 진리의 동료 조력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5-04-26 07:42:16 | 조양교
영어성경을 우리 나라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흠정역이 엄청난 수고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흠정역의 좋은 부분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쎄시봉 팀중에 한 장로님이 열심히 전도해도 믿지 않고 있는 송창식 씨의 노래 가사로 흠정역의 번역이 좋다고 설명한다는 것이 오히려 흠정역을 안좋게 만드는것 같네요. 차라리 신실하게 믿고 있는 시인이나 가수의 노래가사로 적용하심이 더 좋았을듯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있습니다. 별세 하셨지만 월간 현대시조(새시대시조)에 오랫동안 편집장으로 수고하셨고 많은 수상까지 하신분입니다. 고 선정주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의 시는 주로 고난에 대한 시인데 시적 표현이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장로교 목사이었고, 개역성경을 보신분입니다. 과거 제가 흠정역 성경도 알려드렸었습니다.) 참고하시면 우리 나라말의 의미를 더 이해하기가 쉬울것 같아서 글을 남깁니다.
2015-04-26 00:07:39 | 김경완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멋지지 않습니까?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라는 표현은 과거의 어떤 한 때를 언급하는 것이지만, 위와 같이 ‘하시니라’로 표현하면 시간의 경계를 넘어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따라서 저는 ‘하시니라’가 ‘하셨느니라’보다 훨씬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사실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들에서 사용된 과거형 시제로도 충분히 확인이 됩니다. 저는 이와 같이 현재형과 과거형을 교차 사용한 훌륭한 문체가 “흠정역 성경 문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위의 기행문 (2) 다음에 인용한 송창식의 노래 ‘토함산’의 가사에서도 “해를 안고 앉았어라”,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라고 특유의 어미를 사용함으로써 송창식 특유의 문체로 토함산 가요의 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겠습니다.
(1) 흠정역 번역
(2) 과거형 준수 번역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6)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시고
(7)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더라.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느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셨으되, 빛이 있으라, 하셨으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셨더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셨으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느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었더라.
(6) ¶ [하나님]께서 이르셨으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셨고
(7)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셨고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셨으니 그대로 되었느니라.
(8)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느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었더라.
자, (2) 번처럼 고쳐 놓고 읽어 보니까 어떠십니까? (1) 번처럼 번역한 것을 읽으시고 시제가 과거로 생각이 안 되어서 불편하십니까? 앞서 마태복음 3장과 똑 같은 원리로 실제로는 과거이지만 현재형을 사용하여 창조의 장엄함을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1) 번 번역이 더 자연스럽고 수준 높은 번역이 아닙니까? 마태복음과 같은 신약 성경 기록이나 다른 구약 성경 기록에서 이처럼 시제를 섞어 쓴 것을 가지고는 문제삼지 않고 유독 창세기 1장 첫 부분에서 시제를 문제삼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과거 사실을 기술하거나 번역할 때, 과거 사실인 것이 자명한 문맥에서 모든 동사들을 과거형으로 고집함으로써 글의 질을 저하시키고 읽음성을 훼손시키기 보다는 필요한 경우에는 현재형 동사를 쓰더라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과거형 동사로 충실하게 번역하면 마치 배우는 학생이 작문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훨씬 뛰어난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수준 높은 글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성경 기록을 학생 수준의 번역으로 읽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학생 수준의 번역 성경을 그래도 원하신다면 별도로 그렇게 번역하셔서 원하시는 분들은 그것을 보셔야겠지요. 여호와의 증인들이 신세계역 성경을 만들고, 가톨릭이 가톨릭 성경을 만들듯이 교리가 달라서 받아들일 수 없는 번역이라고 한다면 말릴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의 교리에 맞는 성경으로 번역하는 수밖에요.
그러나, 성경 번역에 임하는 사람이 명확한 교리적 주관이 없이 단지 영어 실력과 한국어 실력만 있으면 성경 번역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사사기 11장에서 입다의 딸이 자신의 처녀 생활로 인해 애곡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처녀로 죽음을 애곡했다고 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면 ‘오역’ 또는 ‘흐지부지역’이 될 수 밖에 없는 사태가 생기니까요. 따라서, 교리가 달라서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히 그렇다고 하고 공연한 번역 시비를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현재의 번역이 더 이상 손댈 것이 없는 최상의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무랄 데 별로 없이 아주 잘 된 번역이며, 이보다 더 좋은 번역이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보다 더 잘 가꾸고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도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도 주셨다는 생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흠정역 성경을 받아 들이고 아끼게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한국 교회에서도 기존의 개역(개정) 성경을 버리고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서게 되었으면 합니다.
바른 성경 불모지에서 수십 년 동안 바른 말씀이 없어 목말라 하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드디어 제대로 된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5 18:19:26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5-04-25 23:06:30 | 최상만
2015년 3월에도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최우수 성경으로 선정되었네요.
월간 베스트 1위, 주간 베스트 1위가 다 우리 성경입니다.
성도님들의 사랑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http://lifebook.co.kr/final/bibles/bible_best.asp
2015-04-04 15:01:13 | 관리자
참고로 흠정역 성경에는 복수의 경우 같은 말인데도 '들'을 붙인 경우도 있고 안 붙인 경우도 있습니다. 위에서 든 예처럼 '모든 사람', '모든 사람들'이 다 쓰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읽힘성 등을 고려한 번역자의 의도가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꼭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으로 해야겠다는 의견이 우세하면 추후에 그렇게 교정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요점은 이런 것이 번역의 오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연약한 성도들을 요동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샬롬
2015-03-31 13:07:3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