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위를 잘못 표기한 오류가 있지 않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몇 개월 전에 어떤 분이 한 형제를 만나 킹제임스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누가복음 19장 13절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흠정역: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십 므나를 건네주며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올 때까지 관리하라, 하니라.
KJB: And he called his ten servants, and delivered them ten pounds, and said unto them, Occupy till I come.
그분의 질문 요지는 “왜 KJB는 여기에서 므나를 파운드(pound)로 표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복음서에서 KJB는 달란트, 드라크마 등을 영국 단위로 표기했으니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므로 오류가 있는 성경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제게 보내면서 그 형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기에, 저도 참는 데 지쳐서 그런 쓸데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니 이제는 단위를 가지고 오류 시비를 거는 분들이 있네요.
이런 쓸데없는 질문에 매번 답변을 해야 하나 싶지만, 한편으로 목사는 오래 참고 가르쳐야 하기에 결국 간단히 답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것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습니다.
영어 위키 백과에 가서 pound를 치면 무게 단위인 파운드의 유래가 나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ound_(mass)
영어 단어 파운드는 로마 단어 즉 라틴어 ‘libra’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파운드를 표기할 때는 ‘lb’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 사람들의 단위는 그리스 사람들의 단위에서 나왔습니다. 다음 기사의 첫째 줄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Roman_units_of_measurement
그러면 영어 파운드와 라틴어 리브라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므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단위를 보여 주는 다음 기사에서 무게(weight) 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Greek_units_of_measurement
므나는 100드라크마이고 표준에 따라 431-630그램입니다.영국에서 1파운드는 약 450그램입니다.
그러므로 1611년 당시의 영어 성경 번역자들은 므나에서 리브라로, 그리고 리브라에서 파운드로 무게, 혹은 화폐 단위의 이름이 바뀌었기에 보통의 영국 사람들을 위해 므나를 그대로 파운드로 번역하였습니다. 즉 영국의 문화는 많은 면에서 그리스, 로마(라틴) 문화의 연장선에 있어서 심지어 화폐/무게도 이름만 바뀌었지 내용은 같습니다. 사실 파운드 자체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단위를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역을 할 때 원어를 그대로 살려서 화폐 파운드의 경우 므나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교사가 므나의 무게 혹은 가치를 가르쳐 주면 됩니다.
한편 요한복음 19장 39절의 경우 같은 파운드라 해도 무게를 나타내는 경우는 '근'이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 원어는 리트라(litra)이고 파운드 무게와 같습니다.
흠정역: 또 처음에 예수님께 밤에 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오니라.
KJB: And there came also Nicodemus, which at the first came to Jesus by night, and brought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n hundred pound [weight].
NIV 등을 포함한 모든 메이저 영어 성경이 100 파운드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은 채소의 경우 375그램, 고기의 경우 600그램이므로 영어 파운드를 이와 비슷한 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단위는 성경의 오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름 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Jesus’를 예수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영어를 조금 안다고 하는 분은 꼭 ‘예수스’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다 님 자를 붙이면 ‘예수스님’(잘못 읽으면 예수 스님)이 되지요.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런 분들은 성령님도 성숨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Paris’를 우리는 파리 혹은 빠리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패리스라고 합니다.
‘Thomas’를 우리는 도마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토머스라고 합니다. 토머스 에디슨 아시지요?
그러면 ‘스’를 붙이고 안 붙이고가 오류의 유무를 결정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갈렙(Calep)은 여분네(Jephunneh)의 아들입니다.그런데 이름이 틀렸다고 ‘칼렙’, ‘예푼네’로 쓴 성경도 있습니다(표지에는 킹제임스라는 단어가 붙어 있음).
‘예푼네’가 ‘여편네’로 들리지 않습니까?
‘예푼네’가 정말로 맞나요? 끝의 h는 어디로 갔나요? Jesus의 s는 어디로 갔나요?
누구보다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에도 미달입니다.
단위나 이름 같은 문제로 양심이 연약한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면 안 됩니다.
파운드라고 하든 므나라고 하든 근이라고 하든,우리나라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하든 미국 사람이 지이저스라고 하든 하나님은 다 같은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분은 각 나라 문화와 언어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 단위나 이름 표기 문제로 성경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성경 안의 단어들이 있는 그대로 가능한 일대일 대응이 되게, 정직하게 수용 언어로 번역되면 그 성경을 인정하십니다.
흠정역 성경은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쓴 것은 이런 무익한 질문을 통해 성경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사람을 설득하려 함이 아닙니다. 이런 분은 이미 믿지 않기로 마음에 굳게 작정하였으므로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을 가져옵니다. 마치 여호와의 증인들과 비슷합니다. 이런 불신의 악순환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접하고 고민하는 그 형제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큰 평강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6:24:37 | 관리자
흠정역 성경은 복수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비방하면 안 됩니다.
몇 달 전에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의 한 목사님이 흠정역 성경이 복수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요한복음 1장 12절이었습니다.
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KJV: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영어로 보면 ‘the sons of God’이 복수인데 왜 흠정역은 ‘하나님의 아들’로 단수 처리했느냐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자가 이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번역할까요?
우리말은 특별히 접미사 '-들' 등을 사용해 복수를 부각하지 않아도 의미상 복수가 되면 복수로 쓰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교양 있는 표현이 될 때가 많습니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입니까? 아니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들’입니까?
이 경우 영어식 문법에 맞게 복수를 써야 한다고 ‘여러분들’이라 하면 자연스럽지 못한 번역 투의 문장이 되며 연설이 조잡해집니다.
우리말은 특히 ‘모든’, ‘여러’ 등과 같이 수 개념의 형용사가 앞에 붙으면 뒤에 오는 명사는 복수라도 대개 단수로 표현합니다.
모든 국민, 모든 사람, 여러 사람, 꽃 세 송이, 네 마리 개 등
물론 이런 데서 영어처럼 하려고 ‘들’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 모든 사람들, 여러 사람들, 꽃 세 송이들, 네 마리 개들 등
그리해도 ‘모든 국민들’, ‘모든 사람들’, ‘여러 사람들’처럼 어떤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 ‘꽃 세 송이들, 네 마리 개들’처럼 전혀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과 특히 읽힘성을 보고 판단하여 복수의 경우 ‘-들’을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번역한 뒤 많이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대화를 봅시다.
아들: “아버지, 저기 있는 꽃들은 다 뭐예요?”아버지: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They are all roses).
아버지의 대답이 “그것들은 다 장미들이란다.”로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가 훨씬 더 우리말처럼 느껴집니다. 즉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 굳이 '-들'을 넣으면 번역 투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됩니다.
이전에는 이런 것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영어가 보편화하다 보니 복수 등에 신경 쓰는 사례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로 하는 경우 장미는 물론 단수이고 영어로는 복수인 ‘roses’이므로 단편적으로 비교하면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라고 말하거나 써도 장미가 복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즉, '-들'을 생략하는 것이 우리말로서는 더 자연스럽고 교양 있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장미를 단수로 표현해도 앞에 ‘그것들’과 ‘다’가 모두 여러 개를 표현하므로 그 말을 복수로 듣거나 읽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분 중에 그래도 '-들'을 붙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여러 번역자가 번역 작업에서 우리말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하게 '-들'을 사용한 책과 글이 이미 세상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은 1장 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우리 주님은 성도들에게 다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경우 ‘아들들’이라 해도 문제가 없지만 단수 아들로 하는 것이 우리말에서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부분을 영어와 비교하고는 기계적으로 복수 처리하려 하면 교양 있는 우리말 번역이 아닌 번역 투의 조악한 번역이 됩니다.
영어에는 ‘children of Israel’이 640여 회 나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성경들은 이것을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대로 하자면 ‘이스라엘의 자손들’ 혹은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즉 야곱의 후손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일단 ‘의’를 빼도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자손’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집합 명사로 복수로 이해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매번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면 오히려 성경의 자연스러운 읽힘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혀 독자가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는 겁니다.
분명하게 야곱의 자손들이 아니라 그의 12 아들을 표현할 때는 '이스라엘의 아이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말로는 ‘이스라엘 자손’이라 해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는 좋은 짐승입니다.”의 경우에 어떤 특정한 개, 즉 개를 단수로 본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Dogs are good animal.”로 해야 합니다. 우리말이 단수라고 ‘A dog'이라고 하면 촌스러운 번역이 됩니다.
그러므로 sons, children 등의 복수는 앞뒤 문맥을 보고 아들들이나 아들, 자손들이나 아이들이나 자손 등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 그리고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와 반대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차이를 잘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셨습니까?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아들들’로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하면 결국 성도들의 성경 신뢰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말 등 명백하고 단순한 것에 대한 교양이 부족해 설익은 주장이나 가르침을 양산하거나 그것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말 용법을 잘 이해하면서 이런 주장을 지속해서 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의 의도가 순수한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말에서는 복수를 쓰면 자연스럽지 않지만 교리적으로 꼭 써야만 하는 경우 저희는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포기하고 모두 복수 처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들’(heavens)과 ‘죄들’(sins)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단어들은 교리적으로 반드시 단복수 구분이 되어야 하므로 자연스럽지 않아도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고민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나, 혹은 한국어의 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성도들 앞에서 자기자랑을 하기 위해 흠정역 성경이 단수와 복수도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의 위상이 약화되며, 자신의 목회와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목사나 교사는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부디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5:15:45 | 관리자
흠정역 성경은 시제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문제를 제기하려거든 먼저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는 흠정역 성경을 비판하면 그것은 성경 신자들을 특히 연약한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흠정역 성경을 보는 분들 가운데 시제를 문제로 삼아 혼란을 일으키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4절을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이런 분들은 1절의 ‘창조하시니라’, 2절의 ‘움직이시니라’, 그리고 5절의 ‘부르시니라’가 영어로는 ‘created’, ‘moved’, ‘called’로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는데 왜 흠정역은 이것들을 현재로 번역했느냐고 꼬투리를 잡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으로 흠정역 성경의 번역을 비난하는 분들은 한국말을 쓰는 성경 신자 중에 자기만 독보적으로 영어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설익은 주장에 미혹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 번역의 의도와 사실을 잘 알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위의 세 단어를 현재로 표현하려면 각각 ‘창조하시느니라’, ‘움직이시느니라’, ‘부르시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흠정역은 각각 ‘창조하시니라’, ‘움직이시니라’, ‘부르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흠정역 성경은 ‘하느니라’체라는 고어체의 예스러운 표현을 수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문체를 웅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면으로만 보자면 개역성경은 뛰어난 번역입니다. 우리말의 웅장한 표현을 성경에 잘 녹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을 현대인에게 익숙한 문체로 바꾸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얼마나 조잡하고 가볍게 읽힐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물론 시중에는 이미 이런 식의 번역으로 출간된 성경이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이 당장 읽기에는 친숙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심과 장중한 경륜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바로 그 놀라운 성경 기록의 격이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더불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 불가한 최고의 경전이라는 성경의 독보적 위상과 가치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번역은 일단 현대인에게 친숙하고 또 어법상 틀린 번역은 아니겠지만, 성경 번역으로는 합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읽는 창작 동화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이제 독자 스스로 두 번역을 비교하며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시제를 잘 살려야겠다고 다음과 같이 번역하면 어떨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더라.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더라.
이렇게 모든 구절을 ‘하셨더라’로 해 놓으면 웅장하게 선언하는 분위기가 전혀 살아나지 않고 그 표현이 조잡해집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독자께서 스스로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예스러운 표현인 ‘하느니라’체를 도입하여 웅장하게 선언하는 표현기법을 써야 합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잘 표현하였고 개역개정을 내면서도 이런 부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음은 개역개정 위원회의 번역 원칙입니다.
개역 성경의 옛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하다’체를 사용하여 현대화하지 않고, ‘하느니라’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고어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4절에서 보듯이 ‘하시니라’ ‘좋았더라’ 등의 표현을 ‘하셨다’ ‘좋았다’ 등으로 고치지 않았다. http://www.bskorea.or.kr/kbs_gae/change/change2.htmlhttp://pcouncil.net/jboard/?code=ilban-aa002&id=1781&p=detail&page=48(번역의 원칙만 참조하기 바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의 뜻은 현재 평균적인 교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현시대에 쓰고 있는 말이 아닌 지금 실생활에서 쓰고 있지 않은 예스러운 고어체의 글에서 경전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흠정역 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과거를 현재로 오역한 것이 아니라 ‘하느니라’체로 과거의 사건을 웅장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고어체로 유려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굳이 이 부분을 집요하게 따지는 이유는 1장 1절은 오래전에 마친 일이고, 2절부터는 재창조임이 나타나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도 흠정역 성경은 3, 4, 5절 끝에는 ‘빛이 있었고’, ‘좋았더라’, ‘첫째 날이더라.’라는 말로 과거 시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조합을 거쳐서 성경이 웅장한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입다의 이야기를 하나 더 예로 들겠습니다.
사사기 11장 34-40절을 읽으시면서 각 절의 어미 처리를 유심히 보시면 ‘하느니라’와 ‘하였더라’가 조합으로 나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9절의 ‘돌아오니라’와 ‘아니하니라’는 현재 시제가 아니라 고어체로 과거 시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로 표현하려면 ‘돌아오느니라’와 ‘아니하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지적한 뒤 줄을 긋고는 흠정역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자가 번역 과정에서 시제도 못 맞추었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시제를 고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저는 흠정역 성경에서 제가 알면서 고의적으로 시제 등을 고친 곳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채 시제 등이 잘못 표기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데를 발견하시면 언제라도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마치 제가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으로 개인 블로그 등에 발표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 자체의 위상이 약화됩니다. 특히 목사나 교사가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에게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려면 한국어와 영어 중에 어느 언어를 우선해서 잘 이해하고 구사해야 할까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어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성경 교사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아직도 많은 자료와 좋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못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한국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고 품위 있게 구사할 줄 알아야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신장이 크지 않은, 즉 다리가 길지 않아 큰 보폭으로 움직일 수 없는 육상 선수와 한쪽 다리만 비정상적으로 긴 육상 선수가 있다면 실제 경기에서 누가 더 유리할까요? 물어볼 것도 없이 비록 짧지만, 정상적인 다리를 지니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처럼 영어에 관해서는 비교적 정통하지만 정작 한국어에 대한 교양과 이해가 부족하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설익은 문제를 제기하고 어설픈 주장을 하게도 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영어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면 우리말로 된 흠정역 성경과 기타 자료들만 충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한 그리스도인보다 어느 부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독자 여러분!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거든 아직 양심이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이메일 등을 통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한 이러한 배려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잘 헤아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4:26: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사도 바울의 서신서 뒷부분에 있는 추신이 성경 말씀이냐고 물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6장 18절 뒤에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로마에서 써서 보내다.”라는 추신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추신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앞에 있는 제목 즉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도 마찬가지로 성경이 아닙니다.
흠정역 성경에는 성경 66권 각 책의 설명이 간단히 들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경우 기록 시기가 주후 55년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모든 것들도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1장 1절부터 6장 18절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부록으로 사람들(번역자들)이 첨가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따라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제목과 추신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분의 의문점은 갈라디아서의 기록 시기가 주후 55년경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추신에 따라서 그 이전에 바울이 이미 로마에 간 적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록 시기와 추신은 사람들의 첨가물이므로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분은 다만 참조용으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기록 시기의 경우 초기, 중기, 후기 기록설이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시 아무도 정확한 시기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추신, 제목 등은 1611년 판 영어 성경 그대로를 번역한 것이고 66권 각 책 앞의 요약 설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치 지도 등을 넣은 것처럼 저희가 정리해 넣은 것입니다.
이 점에 유의해서 흠정역 성경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0 14:25: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한 분이 창세기 1장 1절을 왜 "태초"로 번역하지 않고 "처음"으로 번역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철학에 대한 것으로 중요한 이슈이기에 잠시 설명하려 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번역은 해석과는 다릅니다.번역은 가능한 한 개인의 편견과 사견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자세로 성경 본문의 단어들(예를 들어 beginning)을 수용 언어의 중립적인 단어들(예를 들어 처음)로 옮겨야 합니다.또한 가능하면 성경 본문의 다른 구절에 기록된 같은 단어는 번역되는 언어에서도 모두 같은 단어로 옮기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그래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beginning이라는 단어가 총 106회 나옵니다.중고등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중립적인 우리말로 beginning을 번역하면 ‘처음’과 ‘시작’ 이 될 수 있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거의 다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앞뒤 문맥상 시간이 처음 시작된 때를 나타내므로 사실 태초(太初)라는 단어를 써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같은 문구인 ‘In the beginning’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앞뒤 문맥상 절대 태초로 번역될 수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개역성경처럼 이런 구절을 태초라고 번역하면 하늘과 땅이 창조되기 전, 즉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 역시 "처음"이라는 중립적인 말로 옮겨야 독자가 성경의 앞뒤 문맥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처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르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번역자는 해석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번역자는 가능한 한 자기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도록 착실하게 번역하여야 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바로 이런 철학을 가지고 가능한 한 축자 번역이 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같은 말은 가능한 한 우리말에서도 같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개역성경은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과 땅을 천지로 번역하였습니다.이것은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성경을 성경으로 공부하기에는 심히 부족합니다.
heaven, earth 등의 단어가 성경의 각 구절마다 천, 지, 하늘, 땅 등으로 달리 번역되면 이 단어들의 성경적 용례를 살펴볼 수 없게 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일관성이 있게 heaven은 하늘로, earth는 땅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누가 하늘의 위치, 개수 등을 알고 싶으면 성경 단어 찾기로 가서 "하늘"이라고 치면 됩니다.
그러면 하늘과 관련된 모든 구절이 나오므로 독자 스스로 하늘의 개수, 위치, 그 안의 존재들 등을 타인의 도움 없이 즉 신학적 편견 없이 성경이 알려주는 그대로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고 기록된 그대로를 믿는 자들을 우리는 보통 성경 신자라고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성경 신자가 계속해서 배출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단어들을 중립적인 단어로 가능한 한 초지일관 동일하게 번역한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또한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kingdom, king은 다 왕국, 왕으로 일관성있게 번역하였습니다.반면에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등은 나라, 왕, 임금 등으로 다채롭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kingdom of heaven을 하늘의 왕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등은 천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kingdom of God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반면에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등은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하였습니다.
개역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 식으로 중요한 단어인 kingdom을 마음대로 번역하면 땅에 이루어지는 왕국(하늘의 왕국)이 천국이 되어 성경의 본래 의미를 가리게 됩니다. 더구나 이 경우에는 아예 반대가 되고 맙니다.
kingdom of heaven은 단2:44에 예언된 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이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개역성경 등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는 Son of man을 인자로 번역하였습니다.반면에 신성을 나타내는 Son of God은 하나님의 아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 둘을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로 일관되게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예수님의 신성이 나타나듯이, 사람이라는 누구나 쉽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들어가야 예수님의 인성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렇게 해야 적어도 중고등학교 학생 이상의 교양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성경 번역에 관한 확고한 철학 없이 번역된 성경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이런 철학을 살려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바른 교리를 세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갈수록 악해져만 가고 미혹이 판치는 세상에서 바로 이런 성경을 손에 쥐어야 비로소 성경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2-25 16:16:1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오디오 CD를 원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간단한 것을 공지합니다.
아시는 대로 저희는 2011년의 400주년 기념 판의 이전 판인 4판을 녹음한 신약 성경과 잠언 오디오가 있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본 사이트 상단의 웹하드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시면
성경오디오 Zip 파일이 있으니 그것을 다운로드 하시기 바랍니다.
신구약 성경을 언제 녹음할 것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잡힌 것이 없습니다(한 5년 내로 해 보려고 함).
그 동안은 지금의 오디오 파일을 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4-08-12 18:25:4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아침에 재미있는 소식이 들어와서 알립니다.
충남 서천군은 11일 국내 최초의 성경(킹제임스 성경임) 전래지인 서면 마량진 일대를 해양 문화관광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644120
http://www.nocutnews.co.kr/news/845639
http://blog.naver.com/kjyoun24?Redirect=Log&logNo=60070343558
다 조성되면 한번 가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 성경도 한 권 같이 전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샬롬
2014-04-10 12:05:5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캐나다 뱅쿠버 갈보리 사랑침례교회 김봉중 목사님과 여러 형제님들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뱅쿠버 지역에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는데 받는 분들의 호응이 좋다고 합니다.
http://www.keepbible.com/Cmn4-7/View/4Y1
그 소책자의 PDF 파일을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뱅쿠버 지역에서도 주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4-02-25 10:21: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공지한 대로 아이폰에서 무료로 쓸 수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앱을 소개합니다.
지금 아이튠즈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킹제임스로 검색하면 나옴).
이 앱은 안드로이드의 LIFOVE 바이블에 사용되는 lfa 파일 - PC의 베들레헴 성경 - 포맷을 그대로 사용하므로
기존의 다른 lfa 바이블 데이터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40
사랑침례교회의 허찬 형제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일단 버전 1을 냈습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 기능도 추가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9 09:48:52 공지사항에서 복사 됨]
2013-04-19 09:46:34 | 관리자
성경에 대한 확신
왕하1:1-4
1 그때에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니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던 자기의 다락방 격자창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내가 이 병에서 나을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라, 하니라. 3 그러나 {주}의 천사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이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요,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라, 하매 엘리야가 떠나가니라. 이 사이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증거들을 보고도 여전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왕하1:3 말씀을 잘 보기 바랍니다.
“이 사이트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해 주는 증거들이 없어서 다른 데 가서 가려운 귀를 긁어 달라고 부탁합니까?”
그러한 행위는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을 판단해야지 “어느 목사님이 그러더라.”, “어디 사이트에 가니 킹제임스 성경이 틀리고 개역개정이 맞는다고 하더라.” 라는 글로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여기서는 용납하지 못합니다.
혼자만 도랑에 빠져야지 그런 사이트(목사)를 올리고 알려서 남까지 도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 사이트의 취지에 반하는 다른 사람의 글이나 사이트를 여기에 올리지 말기 바랍니다.
인용도 하지 말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개역개정을 쓰는 사람들조차 그 번역이 하도 부실해서 성도들을 가르치기에 애를 먹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흠정역: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마5:17).
여기서 뒷부분은 그리스어나 영어나 다 “성취하러 왔노라.”로 되어 있고 심지어 개역성경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이 부분을 “완전하게 하러 왔노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 불완전하다는 말입니까?
이처럼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뜯어고친 성경이 개정개역인데 이런 것을 보고도 여전히 개정개역을 찬양하면 말이 됩니까?
우리 손 안에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말씀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영어로 하나님이 완전무결한 ‘오류가 없는 말씀’을 주시고 우리말로 그것을 번역하여 다음의 말씀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우리를 완전하게 해 줄 수 있는 성경이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것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입니다.
원어가 없어도 누구나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고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원어의 덫에 빠지지 말기 바랍니다. 원어를 논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다 자기가 최종 권위입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
이것이 없으면 구원받고도 평생 마귀의 종노릇합니다.이단 교주나 거짓 목사의 유혹에 쉽게 걸려 넘어집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이 험한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자녀들에게도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기 바랍니다.그래야 아이들도 이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2013년에는 부디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이 땅의 곳곳에서 넘쳐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의 남은 자(remnant)를 우리에게 예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는 자들이 이 땅에 넘쳐나도록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2-23 17:42: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앞으로 1주일 내로 "흠정역/개역/KJB/NIV 비교 신약성경"이 출간됩니다.
총 1280쪽이고 신약성경 비교와 개역성경 분석이 부록으로 100여 쪽 들어 있습니다.
개역성경과 NIV를 고집하는 이들에게 직접 보여 주면 좋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장정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드커버 전체를 컬러 표지로 싸서 만든 것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검은색 하드커버에 금박으로 타이틀을 인쇄하고 띠 지를 돌려서 붙인 형태입니다.
둘 다 가격은 19,000원입니다.
2월 15일에 나오고 생명의 말씀사에서는 19일부터 판매가 될 것입니다.
저희 출판사로 주문하면 19일부터 배송해 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25일부터 보름 동안 출장을 가므로 그때에는 배송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출장 가기 전에 배송을 원하시면 032-872-1184로 전화하거나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 주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택배비 포함 19000원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2-07 16:23:01 | 관리자
2012년 후반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국민일보 광고
9월 달 집행위원 회의에서
앞으로 후원회 사업에 대한 결의 사항 중 하나로
주기적인 국민 일보 광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에 따라 올해 광고를
이번 주 11월 8일, 목요일 국민일보지 미션라이프 1면에 게재합니다.
필요하신 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PDF 파일도 첨부합니다.
- 킹제임스 흠정역 홍보후원회 (http://cafe.daum.net/KJB1611) 알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1-27 13:43:5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1-06 16:07:50 | 송재근
성경을 번역해야 하는 이유
저는 지난 12년 동안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번역해서 출간/판매해 오고 있습니다.이 기간에 저는 여러 이유로 성경을 번역하겠다는 분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성경을 번역할 분들이 있을 터이므로 이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는 제발 번역 작업을 하지 말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스스로 시간을 버리는 일이고 그 일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오도될 수 있습니다.
(1) 흠정역 성경은 사역(私譯)이기 때문에 우리가 번역해야 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대부분의 성경은 사역 성경입니다. 유명한 히브리어 벤카임 마소라 본문,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공인본문, 베자의 공인본문, 루터 성경, 틴데일 성경, 스페인의 라이나 발레라 성경, 프랑스의 올리베땅 성경과 심지어 최근에 나오는 NIV, NASB, NKJV 등이 모두 사역 성경입니다. 저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저 개인이 홀로 번역한 것이 아니고 제가 번역한 본문을 20여 명의 형제님들이 - 다 바이블 빌리버들임 -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살펴보며 교정하고 또 10여 년의 교정 기간을 통해 여러 독자들이 지적해 준 것을 반영하여 만든 것입니다. 사역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는 역본 역시 사역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공적 성경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모릅니다. 공적인 것은 정부 같은 공적 기관에서 주도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의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공적 성경입니다. 이분들이 무엇을 펴내도 그것은 다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펴서 성도들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2) 흠정역 성경은 그동안 몇 차례 판을 바꾸었기 때문에 우리가 번역해야 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1611년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1380년경부터 영어 성경이 나오면서 약 230년의 교정 기간을 거쳐 1611년에 본문이 고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출간하면 절대로 교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번역의 빌미로 삼는 분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교정을 해서 바르게 내서 본문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실 부지런히 교정해서 본문을 정착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리 함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3) 흠정역 성경은 판매를 통해 이윤을 내기 때문에 우리가 번역해야 한다.
기드온 협회나 성경 보급 기관의 무료 성경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성경에는 판매 이윤이 붙습니다. 이윤이 생겨야 교정도 더 빠르게 하고 성경 홍보도 하며 선교용으로 값싸게 혹은 무료로 성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 번역과 성경 출판 사업을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보급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희는 가장 좋은 재료를 써서 세상의 다른 성경들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합당한 가격에 성경을 판매해 왔습니다. 저희는 어느 누구의 돈도 갈취하지 않았고 열심히 일해서 빚지지 않고 여기까지 사역을 끌고 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 땅에서 많은 이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돌아서는 일을 직접 보았고, 이단에 빠진 분들이 바른 진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에서도 많은 성도들이 진리 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성경 판매로 만들어진 이윤으로 저희는 먼저 출판사를 유지하고 또 여러 종류의 책들과 CD, 전도지 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즈니스 차원으로 성경을 만들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저희 성경을 폄하한 뒤 "우리 교회가 공적 성경 번역의 이 중차대한 일을 실수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분들을 주의하기 바랍니다. 이윤이 안 나면 결국 누군가 무고한 성도들의 돈이 들어가야 출간 사역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번역을 해야 할까요?
성경을 번역해야 할 유일한 이유는 지금 쓰고 있는 성경의 본문이 왜곡되어 진리를 가리거나 대본은 좋은데 번역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대한성서공회의 개역성경(개정판), 표준 새번역, 공동 번역 등이 전자의 경우이고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후자의 경우이므로 저희는 바른 본문에서 바르게 성경을 새로 번역하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가 아닌 한 성경을 다시 출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희가 출간한 흠정역 성경의 본문을 탐탁지 않게 여기거든 얼마든지 번역해도 됩니다.
그것은 정당한 이유가 됩니다.
흠정역 성경의 본문이 탐탁지 않은 경우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자기가 선정한 본문 - 원문이든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든지 - 을 가지고 스스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정직하다면 적어도 몇 년은 번역하고 또 몇 년은 교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저희에게 고칠 부분을 알려주고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사이트를 통해 누누이 이야기했듯이 저희는 독자들이 주는 교정 의견이 합당하면 모았다가 적절한 시기에 교정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2011년 9월에 400 주년 기념판을 냈지만 저희는 그 이후에도 독자들이 주는 의견을 귀중하게 모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번역에 대한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라도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누군가 성경을 번역하려고 하거든 부디 번역의 대본과 질을 이유로 내걸고 새롭게 번역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성경들의 번역 이유입니다.
심지어 NIV, NASB 등도 다 같은 이유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이유 외의 다른 것을 번역의 사유로 내거는 것은 사실 성도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들의 헌금과 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부디 성도들도 다시는 그런 이유를 내거는 분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2012년 10월 31일(루터의 종교개혁일에)
정동수 드림
2012-10-31 15:59:57 | 관리자
원어, 좋은 것이지만 정도를 벗어나면 독약이 된다!
30년 전 쯤 캐나다에서 유학할 때 옆방에 같이 공부하러 온 그리스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자 그는 신약성경이 그리스어로 기록된 것을 아느냐고 말하면서 자기가 그리스 사람이라 누구보다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경을 잘 읽고 알 수 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물론 그는 교회도 전혀 가지 않았고 더더욱 성도는 아니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그의 말이 옳은 것 같은데 과연 그 말은 옳은 것이었을까요? 저도 그때는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단어들)을 지금까지 보존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사실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그분의 말씀들이 실제적으로 우리의 믿음과 행실에서 최종적인 권위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실 그 말씀들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중세 암흑시대에 천주교 사제(제사장)들이 라틴어로 미사를 드린 것과 똑 같습니다. 이 경우, 백성은 아무것도 모른 채 종교 의식만 행하는 것입니다.
원어 성경이 그와 비슷합니다. 히브리 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원어 성경을 가져다주면 그것의 대부분을 읽지 못합니다. 학식을 자랑하는 원어 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어 사전이 없이는 꼼짝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시대를 거치면서 말 자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어는 1850년대 문서를 가져다주어도 지금 그리스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원어 성경의 덫에 걸리면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원어 성경 안에만 자신의 단어들을 가두어두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우선 말 자체가 변할 뿐 아니라 같은 단어가 여러 개의 뜻을 갖습니다. 그러면 원어를 읽고 어떤 것이 맞는 뜻인지 누가 어떻게 정할까요?
이사야서 40장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말하노라.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ye, comfort ye my people, saith your God.
여기서 ‘위로하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나함’입니다(스트롱 번호 5162).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한숨 쉬다’, 즉 강하게 ‘숨 쉬다’; 함축적으로 ‘뉘우치다’, 즉 (호의적인 의미로) ‘동정하다’, ‘위로하다’, 혹은 (재귀적으로) ‘후회하다’; 또는 (비호의적으로) ‘원수를 갚다’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단어가 삿21:15에서는 ‘뉘우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백성이 베냐민으로 인해 뉘우쳤으니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한 지파를 깨뜨리셨기 때문이더라.
And the people repented them for Benjamin, because that the LORD had made a breach in the tribes of Israel.
즉 동일한 히브리어가 영어로 comfort도 되고 repent도 됩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다른 것을 누가 최종적으로 구분해 줄까요?
이제 사사기 2장 18절을 봅시다.
{주}께서 그들을 위해 재판관들을 일으키실 때에 {주}께서 그 재판관과 함께하셨고 그 재판관이 사는 모든 날 동안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서 건지셨으니 이는 그들을 학대하고 괴롭게 하는 자들로 인하여 그들이 신음하였으므로 {주}께서 뜻을 돌이키셨기 때문이더라.
여기에는 재판관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쇼파트’ 혹은 ‘솨파트(스트롱 번호 8199)’로서 ‘재판하다’ 즉 ‘판결을 선고하다’; 함축적으로 ‘정당함을 입증하다’, 또는 ‘벌주다’, ‘보복하다’ 등을 뜻합니다.
그래서 삼하18:19에서는 동일한 단어가 ‘원수를 갚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이제 내가 달려가서 {주}께서 왕의 원수들에게 원수 갚은 소식을 왕에게 전하게 하소서, 하니
Then said Ahimaaz the son of Zadok, Let me now run, and bear the king tidings, how that the LORD hath avenged him of his enemies.
한편 시82:3에서는 같은 단어가 ‘보호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아버지 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고난 당하는 자들과 궁핍한 자들에게 정의를 베풀며Defend the poor and fatherless: do justice to the afflicted and needy.
자, 누가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 히브리어 쇼파트의 뜻을 확정할까요?
이것은 그리스어도 동일합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And in hell he lift up his eyes, being in torments, and seeth Abraham afar off, and Lazarus in his bosom.
여기서 지옥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 ‘하데스(스트롱 번호 86)’로서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죽은 자의 거처’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총 11회 나옵니다(마11:2; 16:18; 눅10:15; 16:23; 행2:27; 2:31; 고전15:55; 계1:18; 6:8; 20:13; 20:14). 이 중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고린도전서 15장 55절은 이 단어를 무덤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O death, where [is] thy sting? O grave, where [is] thy victory?
자, 누가 그리스어 하데스를 지옥으로 혹은 무덤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즉 누가 말씀의 최종 권위일까요? 하데스만으로 문제가 안 풀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11군데의 하데스 중에서 고전15:55를 제외하고 나머지 10군데를 지옥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어 하데스의 뜻이 지옥 10번, 무덤 1번으로 확정되었다고 믿습니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은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천주교 사본에서 나온 역본들은 거의 다 음부나 하데스로 애매모호하게 처리해 놨습니다(개역성경, NIV 등). 반면에 하나님께서 복 주신 킹제임스 성경은 확신 있게 10:1로 번역하였고 이 번역의 결과를 가지고 이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고 세상의 신학이 모두 정립되었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학은 1611년 이후에 킹제임스 성경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어느 분이 미국에 가서 신학을 하면서 잠시 히브리어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 교수가 히브리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 잘 정리된 글이니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와 영어는 속성상 구조가 다른 언어이다. 1. 히브리어는 자음(22)만으로 글자가 구성된다. (영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다)2. 히브리어는 관사(the)는 있지만 부정관사(a, an)가 없다. (영어는 정관사와 부정관사 모두 있다)3. 히브리어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다 (영어는 대문자와 소문자 구별이 아주 중요하다. 뜻이 달라진다. God와 god. 그러나 히브리의 ‘엘로힘’은 대소문자 구별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 뜻이 모두 포함된다) 4. 히브리어는 “be” 동사가 없다/ 단 “존재하다”는 특별 동사가 있다 (영어는 be 동사가 없이 문장을 구성할 수 없다. Ex) I am Ruth Be 동사가 없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은 am, are, is를 이탤릭체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를 표현해야 할 때에는 그대로 사용했다. ex) I AM THAT I AM5. 히브리어에는 현재형이 없다. 오직 “완료”와 “미완료”밖에는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시제” 자체가 없다. 동작의 속성이나 성질에 따라서 완료와 미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I AM THAT I AM”은 현재형을 나타내는 “am”이 아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히브리어의 완료와 미완료를 영어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영어는 12가지 시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리되지만 히브리어의 시제는 동작의 상태나 속성에 따라 분류되기 때문이다.6. 히브리어는 소유(have) 동사가 없다. 그래서 항상 누구누구에게 속했다는 표현을 쓴다.7. 히브리어는 단어의 기본형은 항상 3인칭이다8. 히브리어의 명사에는 남성과 여성은 있지만 중성이 없다.9. 히브리어에는 복수대명사도 남성과 여성이 구별되어 있다. (영어로 they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르지만 히브리어로는 알 수 있다)10. 히브리어에는 하나의 접속사밖에 없다. 그 하나가 “and”도 되고 “but”도 되고 “therefore”도 된다. 문장의 상황에 따라서 접속사의 의미가 달라진다.11. 히브리어는 형용사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명사 안에 2차적인 뜻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ex) 코는 단순히 코가 아니라 분노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원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성도들에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사가 대단한 사람인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요즘 서울에 서머나 교회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김성수 목사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다니고 미국에서 신학하고 목회하다가 들어와서 남들과 다르게 신선하게 하는 것 같으니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런데 그분은 설교와 원어 해설 시간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가 설교 시간에 원어를 설교하면 이로써 자연스레 신분이 구분되고 성도들은 목사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즉 목사는 은근히 니골라당이 됩니다.
사실 히브리어 강의를 한 학기 듣거나 히브리어 문법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이런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교수나 혹은 그것을 들은 학생이 주장하려는 요점은 “영어와 히브리어가 이렇게 다르므로 언어적 한계가 있어서 히브리어가 아니고는 제대로 뜻을 알 수 없으며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은 최종적인 권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수로부터 이런 강의를 들은 이후에 학생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어 성경이 최종 권위구나. 히브리어를 더 많이 공부해야겠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면 이제부터 그들의 최종 권위는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 사전이 됩니다. 신학교에서 사용하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사전은 거의 불신자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또 대부분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다수 사본을 배격하고 천주교 소수 사본을 옹호하는 자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전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킹제임스 성경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학생은 킹제임스 성경과 다른 부분을 많이 보면 볼수록 엄청난 금광을 발견했다는 희열을 점점 더 크게 느끼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는 평생토록 ‘최종 권위의 말씀’이라는 기준이 없이 믿음 생활을 하고, 또 성경을 확고히 믿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자들로 치부하며, 진리를 모르는 그 불쌍한 성도들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겠다면서 자신감에 차서 다닙니다.
자, 이런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킹제임스 성경의 오류는 아모스 4장 4절 말씀에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 벧엘로 와서 범죄하며 길갈에서 죄를 더하고, 매일 아침 너희 희생제물을 가져오며, 삼년 후에 십일조를 가져오고
개역성경, NIV 등 : 벧엘에 들어가서 범죄하며 길갈에서 죄를 더하고 매일 아침 너희 희생제물을 가져오며, 삼일 후에 십일조를 가져오고
이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히브리 원문대로 ‘3일’이라 번역하지 않고 ‘3년’으로 의역했다는 주장합니다. 과연 이것이 맞을까요?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간단하게 조사를 해 봅시다.
먼저 「스트롱의 성구용어색인」에 가서 킹제임스 성경이 ‘3년’으로 번역한 단어를 찾아보면 색인 번호가 ‘구약 3117’로 되어 있고 이것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으며 킹제임스 성경의 용례도 나와 있습니다.
yowm (yome); from an unused root meaning to be hot; a day (as the warm hours), whether literal (from sunrise to sunset, or from one sunset to the next), or figurative (a space of time defined by an associated term), [often used adverb]:
KJV - age, + always, + chronicals, continually (-ance), daily, ([birth-], each, to) day, (now a, two) days (agone), + elder, X end, + evening, + (for) ever (-lasting, -more), X full, life, as (so) long as (… live), (even) now, + old, + outlived, + perpetually, presently, + remaineth, X required, season, X since, space, then, (process of) time, + as at other times, + in trouble, weather, (as) when, (a, the, within a) while (that), X whole (+age), (full) year (-ly), + younger.
이것을 통해 우리는 여기 쓰인 히브리 단어 ‘욤’이 주로 ‘날’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말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으며 이 히브리 단어 역시 ‘날’ 말고도 분명히 ‘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용례의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를 보면 밑줄 친 것과 같이 ‘년’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단어가 ‘년’으로 번역된 곳을 찾아가 봅시다. 여러분이 「Englishman's Concordance」를 가지고 있으면 그 책에서 스트롱 번호 ‘구약 3117’을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그 단어가 쓰인 곳과 번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더더욱 편할 것입니다.
조사를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히브리 단어는 거의 대부분 ‘날’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끝나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25장 29절에 가보니 이 단어가 드디어 ‘년’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성벽을 두른 도시 안에 있는 집을 팔았으면 그 집을 판 지 한 해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만 한 해 안에 그것을 무르려니와
여기에도 분명히 동일한 히브리어 ‘욤’이 쓰였지만 그 단어를 ‘날’로 하면 안 되기에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현대 역본들은 다르게 했을까요?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한글개역성경, NIV, NASB 모두 ‘년’으로 되어 있음).
보시다시피 모든 현대 역본들도 여기에서 동일한 히브리어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기서 의역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그 히브리어의 뜻 가운데 ‘년’이 있음을 알았기에 여기서 정확하게 ‘년’이라 번역했습니다.
자, 더 확신을 갖기 위해 민수기 9장 22절을 봅시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그 위에 남아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장막에 거하고…(흠정역).
물론 NIV, NASV, 한글개역성경도 동일한 히브리어를 여기서 다 ‘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한글개역성경, NIV, NASB)
이제 우리는 문제가 되었던 아모스 4장 4절의 히브리어 ‘욤’이 ‘하루’로도 번역되고 또 ‘일 년’으로도 번역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의 ‘3년’과 한글개역성경 등을 비롯한 현대역본들의 ‘3일’과 어느 것이 맞겠습니까? 성경에서 십일조가 언급된 구절을 살펴보면 ‘3년’마다 한 번씩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3일’마다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신14:28).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너는 네 모든 소출의 십일조 드리기를 다 마치고 그것을 레위 사람과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네 성문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26:12).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아모스 4장 4절을 ‘3년’이라고 바르게 번역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항상 성경 문제를 포함한 모든 것에서 최종 권위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알게 된 지혜로운 성도들은 히브리어 강의를 듣거나 문법책을 읽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복잡한 원어의 모든 뜻을 일대 일 대응시켜가며 영어로 정확히 번역해서 킹제임스 성경에 보존해 주셨구나. is, am 등이 원어에 없으므로 말이 되게 넣으면서 이탤릭체로 표시하여 원어에 없었음을 알게 하시고 또 정관사, 부정관사, 접속사 하나까지, 대문자 God, 소문자 god 하나까지 하나님께서 크신 섭리로 바르게 인도해주셨구나. 이 완전한 성경이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내 손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다면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지금까지 만민의 공통어인 영어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해 주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 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을 알려주는 성경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의 서신 원본을 가져다주어도 그들은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히브리어 성경이 최종 권위라고 주장하며 킹제임스 성경은 단지 역본에 지나지 않으므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타나면 첨부한 원본을 주고 읽고 해석해 보라고 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그런 분들이 최종 권위라고 주장하는 ‘1524년 벤카임 마소라 본문의 여호수아기’입니다. 여호수아기도 가르쳐 주지 말고 일단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와 보라고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들을 하늘에만 두었을까요?그러면 어떻게 다음의 말씀이 가능할까요?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그때나 지금이나 완전한 말씀을 주십니다.
저희는 그 완전한 성경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아무도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원본 자체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이 시간까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적인 잣대로 은혜롭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는 사람이 성경 신자입니다.
다시 요약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원어의 단어들을 보존하심을 믿습니다.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 성경을 향상시킨 특별 계시가 아닙니다. 만민이 보고 알 수 있게 정확하게 원어의 모든 단어를 일대 일로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전혀 오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이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의 실질적인 최종 권위요, 유일한 최종 권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단어들 그대로가 만민의 공통 언어로 보존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할렐루야!
샬롬
(*) 다음의 세 글도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
딱정벌레 이야기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
2012-10-23 12:25:17 | 관리자
요즘 '그리스도예수안에'에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 성경이 1611년 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1611년 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두 가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잘 읽으시면 왜 답이 둘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인쇄공의 조판 실수로 인해 여러 가지 철자 상의 실수들이 들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조금 연구한 사람들 중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리건 박사의 유명한 글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자세히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50#c_
2011년에 킹제임스 성경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간한 1611년 판 영어 성경의 맨 뒤에는 1611년 원판에 있는 철자 상의 오류들을 보여 줍니다(파일 참조하기 바람). 이 명단은 'and'를 'aud'로 인쇄한 것 같은 소소한 것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 명단에만도 150 여 개의 조판 실수가 들어 있습니다.
이런 조판 실수들은 첫 판이 인쇄된 이후에 대부분 곧바로 교정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리건 박사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한영대역 성경 부록에도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약 150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현대 스타일의 영어 성경으로 안착되었습니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1611년에 잘못 조판된 부분이 다 교정되었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이러한 변화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예를 통해 잘 보여 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uthorized_King_James_Version
1611년 판1. Though I speake with the tongues of men &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e or a tinkling cymbal.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sie,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ove mountaines, and have no charitie, I am nothing. 3 And though I bestowe all my goods to feede the poore,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e burned, and have not charitie, it profiteth me nothing.
1769년 판(현대 판)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and have not charity, I am nothing.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and have not charity, it profiteth me nothing.
이 세 구절 안에는 철자 변화가 11개, 타이프 세팅 변화(고딕체에서 로마체로, 여기에 대해서도 역시 리건 박사의 글을 참조하기 바람)로 인한 변화가 9개, 구두점의 변화가 3개, 2절에서 본문 자체의 변화가 1개(no charity 대신 not charity)가 들어 있습니다.
자, 정직하게 이 두 판을 비교해 봅시다.이 두 판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not'과 'no'를 가지고 '틀리다' 혹은 '맞다'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이것은 문법상 not이 맞는데 조판공이 no로 잘못 조판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43장 12절과 다니엘서 11장 38절에는 1611년 판과 지금 인쇄되는 판에서 God와 god이 바뀌어 있습니다. 사43:12의 경우 원어 성경에는 god에 해당하는 단어가 원래 없으므로 지금 나오는 성경은 god을 이탤릭체로 바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판공의 실수로 1611년 판에는 이것이 God으로 정자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조판공이 실수한 대로 God을 따르지 않고 god을 따라 번역하였습니다. 절대적 의미에서 우리는 1611년 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1611년 판을 따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조판 실수요, 원본을 보면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는 명백한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god을 따라 번역한 것이 실제로 1611년 판을 번역한 것입니다.
다음의 사례도 보시기 바랍니다(God와 good).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19#c_
연약한 성도들에게 이런 실수들을 보여 주면서 "봐라. 1611년 판과 지금 우리가 보는 판은 다르지 않느냐! 그러니까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1611년 판을 번역한게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이들을 보면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과연 이런 주장이 성경을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한 주장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반대를 위한 흠집내기일까요?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흠정역이 아닌 어떤 성경이 더 낫다는 말씀인가요? 연약한 성도들을 세워 줘도 모자랄 판에 성경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리면서 통쾌해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과연 성경을 믿는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절대적 의미에서 우리는 1611년 판을 본문으로 쓰지 않았습니다.하지만 1760-1769년에 현대 영어로 확정된 영어 성경을 1611년 판이라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1611년 판에는 사람의 명백한 실수들이 있었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세속 사람들도 - 미국의 의회도 - 2011년을 맞아 킹제임스 성경 반포 400주년을 기념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1760-1769년이 아니라 1611년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554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교정을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로 작정하시고 이렇게 교정된 성경을 가지고 실제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선포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150년의 기간에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행하신 교정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소문자 g냐, 대문자 G냐는 하나님의 교정에 의해 이미 이루어져서 지금 우리 손에 확실하게 들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이 1611년에 하나님이 주시고자 했던 그 성경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는 이들이 늘 인용하는 분이 웨이트 박사님입니다. 이들에 의해 올해 연세가 85세이신 웨이트 박사님은 늘 우롱당하고 있습니다. 웨이트 박사님이 실제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직접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웨이트 목사님 교회에서 그분에게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분의 교회가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입니다. 매해 미국을 방문하면 그분의 집과 교회를 방문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그러므로 성경 보존에 관한 그분의 입장이 무엇인지 저는 확실히 압니다(<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3-4쪽, 도서출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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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1611판 킹제임스 성경과 현재 킹제임스 성경 사이엔 겨우 421개의 단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현재 킹제임스 성경이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과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사실 여부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 출판사는 1611년도에 인쇄된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일반 로마체로 서체만 바꾸어 내놓았다. 이 책은 한때 절판되었지만 다시 출간되었다. 본래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은 독일어체로 인쇄되었다. 나에게는 독일어체로 되어 있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사진 복사본이 있다. 읽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s'가 다르다. 하지만 넬슨사는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읽기 쉬운 서체로 바꾸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런 작업을 한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다(아마 독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뉴킹제임스 역본(NKJV)은 그저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을 기초로 한 또 하나의 '판(edition)'으로서 현대인에 맞게 개정되어 나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초판 때인 1611년부터 NKJV가 나온 1979년까지 킹제임스 성경이 여러 번의 굵직한 변화들을 겪어 왔다는 말도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1917년에 나온 「구(舊) 스코필드 주석 성경」 - 킹제임스 성경 본문 사용 - 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는 「구(舊) 스코필드 주석 성경」은 녹음테이프로 듣고 넬슨 출판사에서 나온 1611년 판 흠정역 성경은 눈으로 읽으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단어 하나하나를 비교해보았다. 나의 귀로 듣고 감지할 수 있는 변화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물론 철자법은 꽤 다르다. 원판 킹제임스 성경과 오늘날 킹제임스 성경 사이에는 철자법에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 예를 들면 신명기 31장 1절에 "Moses went and spake these words to all Israel."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는 'words'라는 단어가 'wordes'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비교를 하면서 다르다고 느낀 부분은 발음뿐이었다. 즉, 나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과 오늘날의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하면서 소리에 있어 몇 가지 변화를 발견했다. 그러나 모두 출력해서 확인해 본 결과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결국 차이점이라는 것은 신구약 전체에 걸쳐 발음이 다르게 나는 421개의 단어였다. 킹제임스 성경이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졌는지 아는가? 무려 791,328개의 단어이다. 1611판 킹제임스 성경과 오늘날의 킹제임스 성경의 차이는 전체 단어들 중에 고작 발음이 다른 421개의 단어들뿐인 것이다. 이 421개의 변화들 중에서도 285개는 '형태'만 바뀐 사소한 변화들이다. 나머지 136개만 '내용'의 변화 즉 'of'나 'and'의 첨가와 같은 변화들이다. 소위 사소한 변화들의 예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towards'와 'toward'가 다르게 들렸다. 이렇게 달리 들린 단어들을 기록했다. 모두 세어 보니 14번이었다. 또 나는 'burnt'와 'burned'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이 경우는 총 31번으로 아주 적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따로 계산했다. 가령 'amongst'와 'among'의 경우 36번 있었고 'Lift up'과 'lifted up'은 51번 있었다. 'You'는 82번 'ye'로 바뀌었다. 보시다시피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소한 변화가 214군데 있고 여기에 기타 71군데의 다른 사소한 변화들을 합쳐서 총 285개의 형태 변화가 있다. 요약하자면, 귀로 구별할 수 있는 변화가 총 421개인데 여기서 '모양'만 다른 곳이 285군데, '내용'이 다른 곳이 136군데이다. 이 조사 자료는 모두 책자로 정리되어 구할 수 있다[B.F.T. #1294].
E. 오늘날의 킹제임스 성경은 사실상 1611판 킹제임스 성경과 같다
오늘날 우리 손에 있는 성경이 진짜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틀림없는 킹제임스 성경이다. 따라서 여기에 초판과 비교해 3만, 4만, 5만개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철자법의 차이를 말하는 거라면 맞다. 하지만 철자는 말씀을 듣는 것과 말씀의 의미를 아는 것에 관한 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지금 출간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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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자신이 마치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는 전도사처럼 여기 저기 다니면서 성경 보존에 대해 성도들이 믿고 있는 바를 어떻게든 깨뜨리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떤 기쁨을 가져다 줍니까? 이들의 사술(詐術 혹은 邪術)에 말려드는 양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합시다.
원어의 보존을 믿는 사람이라면 웨이트 박사님처럼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완전히 보존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세워주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성경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철자의 변화, 대소문자 변화, 고딕체에서 로마체로 타이프 세팅이 변한 것을 보여 주면서 1611년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려는 이들에게 잠시도 틈을 주지 말기 바랍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이와 같은 약속에 따라 지금 우리 손에는 완전히 보존되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저희가 출간하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1611년 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샬롬
2012-10-22 19:16:28 | 관리자
한글로만 된 킹제임스 성경은 뭔가 좀 부족한 듯해서 한영 대조 킹제임스 성경을 찾다가 여기서 찾았네요.
그런데 박사 성경을 보니까 또 욕심이나서..... (-_-);;;
영문 KJV 와 대조해서 보고 싶은 성경은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과 한글 개역 성경인데요....
영문 KJV 와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한글 개역성경의 문제를 지적한 박사 성경이 대조된 성경책이면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구입하지 않고 [영문 KJV-박사 성경] 대조판을 기다리기로.....
1545 루터 성경과 영문 KJV와 한글 박사 성경을 대조하면 히트치겠습니다.
저는 1545 루터 성경과 KJV 성경을 항상 비교하면서 한글 개역 성경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나서 원어 성경을 찾고요.....
미묘하고 재미있는게 많음.
1545 루터 성경이 뒤에서 떡하니 받쳐 주면 힘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말씀 보존학회의 오류가 강하게 지적되고 드러납니다.
한번 해보세요. 그렇게 됩니다.
교인들은 루터 성경을 모르고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도 접촉해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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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4 23:42:50 | 이신재
안녕하세요?
400주년 기념판을 담은 베들레헴 성경 소프트웨어 흠정역 모듈을 올립니다.집 파일을 풀면 7개의 파일이 나옵니다.이 7개 파일로 기존의 것들을 덮어 씌우면 이제 베들레헴 소프트웨어로 400주년 판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7월 30일에 고친 글입니다.
(* 먼저 올린 파일의 끝부분에는 불필요한 줄이 2개씩 들어가 있어서 성경읽기와 장절로 성구를 검색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단어로 성경을 검색하면 흠정역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베들레헴 프로그램이 인식하고 있는 데이터 파일의 정보와 실제 파일의 라인 수가 다르기 때문에 계속 "검색 중..." 이라고만 응답할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텍스트 에디터로 7개의 파일을 열어서 맨 끝에 있는 빈 줄들을 지우시고 다시 저장하셔도 되고, 지금 다시 올리는 첨부파일을 받으셔서 덮어씌우셔도 됩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
2012-07-18 16:42: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형제님께서 안드로이드 폰 성경 어플인 My Lovely Bible을 알려주셔서 공지합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보실 때 유용한 프로그램 중 My Lovely Bible이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설치해도 성경 모듈 데이터가 없으면 성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앱을 설치 한 후 안드로이드폰 sdcard(외장메모리) 또는 내장메모리에 'bible' 이라는 폴더를 만들고
베들레헴 성경 데이터파일(bdf)을 폰의 bible 폴더에 복사하시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를 링크 하시면 성경 데이터 파일(bdf)을 다운 받으실수 있습니다.
http://mynewsong.us/252
단 흠정역은 모듈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400주년 기념판 흠정역을 담은 베들레헴 파일이 있으신 분은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webmaster@KeepBible.com으로 보내 주시면 제가 첨부 파일로 올려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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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7 14:01:2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 사이트에는 현재 3 종류의 성경 관련 영화(다큐멘터리)가 올라가 있습니다.
이것들 중에서 "어둠 속의 등불"이 가장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교회 역사와 성경 역사를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4&write_id=30
지금은 비주얼 세상이라 사람들이 무엇을 읽는 것보다
TV나 컴퓨터에서 DVD 등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만큼 영상 자료가 중요합니다.
중국이나 북한 등에도 결국은 이런 매체들이 들어가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 "어둠 속의 등불"에 자막을 넣어 8.5GB 더블 레이어 DVD로 만들고
무상으로 보급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작 가격을 낮추려면 동판 원판을 만들어 2,000장을 찍어어 한다고 합니다.
이 경우 가격은 창봉투 포함 장 당 800원이라고 합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DVD 박스 등은 제작하지 않고 창봉투에 담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약 160만원의 제작 비용이 듭니다.
제작이 되면 곧바로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교회들에 무료로 보내고
7월 중순에 있을 조선족 형제들의 중국 연변 모임(킹제임스 성경 사경회)에도 무료로 보내고
또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무료로 보내드리려 합니다.
단 미국 등 해외에는 우송료만 받고 보내드리려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재정적으로 돕기 원하는 분들은 사이트 죄측 하단의 후원 계좌로 입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함과 DVD라고 해서 입금해 주세요)
다음 주에 제작에 들어가면 7월 10일경이면 나오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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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3000개 주문하였습니다.
이 DVD는 현재 미국에서 25달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http://www.adullamfilms.com/ALampInTheDark.html
TV와 연결된 DVD 플레이어에서도 되고 컴퓨터에서도 됩니다.
즉 TV로도 볼 수 있고 컴퓨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 성경을 많이 읽는 친구/친지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하는 독자께서는
webmaster@KeepBible.com으로 e-mail로 주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e-mail에는 간단하게 어디에 쓰려는지(혹은 누구에게 주려는지) 그 사유와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써 주시면 됩니다.
개인에게는 무료로 10매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발송은 7월 10일경부터 될 것입니다.
발송이 시작되면 공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14:10 공지사항에서 복사 됨]
2012-06-29 18:26: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며질 전에 어느 분이 2011년 판 스터디 바이블 부록에 있는 몇 가지 교정 사항을 이메일로 알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를 표하면서 가능하면 스터디 바이블 부록을 전체적으로 교정해 주십사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안에는 수백 군데의 참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처음에 제가 그것들 중에서 몇 개를 잘못 적었을 수도 있으므로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맞춤법, 참조 성경 구절 등을 봐 주면
참으로 좋을 것이라 판단되어 그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는 신실한 분들이 이메일로 교정 사항, 제안 등을 알려주시면 늘 이런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 혼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나중에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 오늘 다시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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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꼼꼼히 다시 봐 보겠습니다
다만, 실력도 능력도 부족하여
검토니 교정이니 하는 단어 조차도 쓰기가 죄송스러우니 오.탈자 등 위주로 봐 보겠습니다
저는 10 여 년 동안 개역성경만 가지고 아프리카지역에서
(스터디 바이블 부록의 많은 부문들을) 손으로 그리고.. 만들고.....혼자 정신 나간짓(?)들을 했었지요.
작년 봄 흠정역 뒤의 부록들을 보고 얼마나 허망했는지....
성경 연대를 알기위해 아담에서 부터 그 많은 인물들을 정리 계산하다 날밤 새기를 얼마나 했는데 ???
성경책을 밖에다 던져 버리고 일 주일 정도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만감이 교차 했었죠...
너무 반갑고..... 고맙고...... 눈물이 났었죠
아! 내가 본 것 ... 안 것들이 틀리지 않았구나..!!!
스터디 바이블을 밤새워.. 한영 바이블을 다시.....
keep bible 싸이트의 많은 내용들을 .... 설교말씀... 강해.... 교제의 글 등등...
그동안 가슴에만 품어 왔었던, 정신 나간짓(?)들의 말씀들이 이제 숨들을 쉽니다
몇 안되지만 흠정역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까지 하나 둘 모아
진리의 곧은 길을 지키며 교제케 하여주신 주님!
우리주 예수그리스께 감사를 드리고,
이 온전하고 완전한 말씀들을 위해 수고 하시는 정목사남 및 동역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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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육신의 힘이 거의 소진되어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피곤하고 의욕을 많이 잃었습니다.
이런 때에 이 글이 제게 눈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도 헛된 일을 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다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이 나라에 좋은 성도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7: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6-13 14:54:27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