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좋은 지적입니다. 오늘날 철도가 고속화하고 전철화 구간이 늘면서 전통적인 심야 열차는 점점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새벽 일찍이나 자정 무렵에라도 열차 운행은 가능한 한 당일에 끝내는 걸 선호하죠. 그래야 역무원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고, 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시간대엔 전차선을 단전할 수도 있어서 경영면에서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열차 안에서는 잠을 그리 편하게 자기는 못하겠더군요. 새마을호 같은 열차가 조명을 상당 부분 소등한 상태로 다닌다면 모를까, 숙면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2011-11-06 18:55:18 | 김용묵
어릴 때에는 새마을, 무궁화, 통일, 비둘기 중에서 비둘기가 제일 빠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부전역에서 해운대까지 갈 때에는 비둘기나 통일호 탄 적이 있는데 지금은 다들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요.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강의 다니던 시절에는 심야열차가 딱 좋았는데, 요즘은 심야 열차도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비용 대비 수송능력이라는 효율 면에서는 자동차보다 기차가 훨씬 우월하지요.
2011-11-06 02:25:00 | 김문수
--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한국 철도의 역사와 체계를 어디에 비유할까? 혹은 그것을 무엇과 비교할까? (막 4:30 패러디)
1. 영동선 인클라인의 구배
철도는 쇠로 된 궤도 위를 쇠바퀴가 구른다는 특성상 마찰이 작다. 그래서 수송 효율이 우수하여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더 길고 무거운 대형 차량이 연료를 적게 들이고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그러나 이런 특성 때문에 철도는 자동차보다 가감속이 더디고, 경사를 오르는 데도 훨씬 더 취약하다.
자동차의 성능을 나타내는 스펙 중엔 등판능력이라는 게 있다. 교통수단의 최대 등판능력은 x축으로 1만큼 진행하는 동안 y축인 위로 얼마만치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다. 기울기, 즉 탄젠트값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성능 제원을 보면 등판능력이 0.3~0.4대가 보통인데, 이것을 각도로 환산하면 18도에서 22도 사이가 된다.
그 정도 구배는 1단 기어가 아니면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평지에서 너무 가파른 언덕을 갑자기 오르면, 엔진의 힘이 받치기 전에 일단 차 바닥부터가 긁힐 것이다.
군용차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일부 사륜구동 차량만이 30도가 넘는 경사를 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차량은 정말 기름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는 그렇고, 그럼 철도 차량은 어떨까?1940년에 개통한 강원도 영동선의 통리-심포리역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간이 있었다. 아래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사진임.
이 정도 경사의 탄젠트가 약 0.27 정도였다고 한다. 각도로 환산하면 15도 정도.이건 자동차로나 간신히 오르지, 철도 차량의 등판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울기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관차+객차형 열차가 무리 없이 버티는 오르막의 기울기는 고작 0.035. 1km당 35m를 오르는 구배를 각도로 환산하면 겨우 2도밖에 되지 않는다!그래서 사실 철도 업계에서는 구배를 나타낼 때 탄젠트값에다 1000을 곱한 퍼밀, 즉 천분율 단위를 즐겨 쓴다. 다루는 값의 범위가 자동차 도로보다 훨씬 더 작기 때문이다.
철도를 요 모양으로 만든 덕분에, 당시 영동선은 결국 이 언덕 앞뒤로 쪼개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로 통과할 수 없는 철도 구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과 자원으로는 길을 이렇게밖에 낼 수 없었나 보다.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열차를 모두 쪼개고, 기관차와 각 객차를 하나씩 케이블로 연결하여 별도의 크레인 시설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 동안 승객은 내려서 1km 남짓한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통과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느리고 불편하고...
이 방식을 인클라인이라고 부르는데, 인클라인은 1963년에 진작에 없어졌으며, 1km 거리를 7~8km의 완만한 경사로 빙빙 돌며 우회하는 경로로 바뀌었다. 상식적으로 35퍼밀로 270 퍼밀치 높이를 오르려면 7.7배의 우회가 필요하다는 걸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영동선 인클라인의 평균 구배인 270퍼밀은 사해의 소금 농도와 비슷한 값이고,35퍼밀은 전세계 바닷물의 평균 소금 농도와 거의 같은 값이라는 것.세계 지리 상식과 철도 기록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 내는 데 성공했다.
2.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종류의 비둘기
과거에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여행비둘기(Passenger Pigeon)라는 새가 살고 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개체수가 수십억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한때 새 가운데 개체수가 가장 많은 녀석으로, 아니 당대의 인구 수보다도 더 많은 날짐승으로 여겨졌다.
어느 탐험가의 1838년도 일기에 따르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채 머리 위를 통과하는 여행비둘기 떼가 다 지나가는 데 꼬박 사흘 밤낮이 걸렸으며, 그 동안 주변은 햇볕이 가려져서 낮에도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무는 하얀 새똥으로 온통 뒤덮였고, 잎사귀와 열매는 남아나질 못하고 흔적도 안 남고 사라지곤 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을 향해 아무 데나 엽총을 쏴도, 우수수 떨어지는 여행비둘기들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새조차도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씨가 말라 버렸다. 고기와 깃털의 품질이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이 새는 절대 멸종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굳이 식용이 아니라도 포수 한 명이 취미로 여행비둘기를 몇백 마리씩 잡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19세기 말부터 미국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행비둘기를 보호하려 애썼으으나, 개체수가 줄어든 이 새는 설상가상으로 작은 집단에서는 번식도 잘 되지 않았다. 야생에서 이게 발견되고 잡혔다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전해진 건 1906년.
그 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겨우 보존 중이던 마지막으로 여행비둘기도 번식에 실패한 채 수컷이 먼저 죽었다. 그리고 1914년 9월 1일 오후 1시 무렵, 최후의 여행비둘기이던 암컷 마사(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영부인의 이름에서 땀)가 죽음으로써... 여행비둘기는 완전히 멸종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짐승의 종류(kind) 중 하나가 이렇게 지구상에서 없어진 것이다.이제 이 새는 박제된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
어째, 대약진 운동 시절 마오쩌둥의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해프닝이 떠오르는데,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므로 더 언급은 하지 않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링크를 따라가 보시라.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9684
한글이 이례적으로 창제자와 창제 목적· 시기가 알려져 있는 유일한 문자인 것만큼이나, 여행비둘기는 인류 역사상 멸종의 정확한 시기와 장소가 딱 알려져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한때 대한민국의 최하위 열차 운행 등급이던 비둘기호는 강원도 정선선에 마지막 유일한 노선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하였고, 이로써 비둘기호라는 열차 자체가 없어졌다.
똑같이 비둘기라는 단어가 있다니, 게다가 그냥 비둘기도 아니고 여행비둘기!! 영어로는 아예 '승객'이라는 뜻이니까 교통수단과도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비둘기호가 사라진 날은 공교롭게도 2001년도 수능 시험 바로 전날(수능일은 2000년 11월 15일, 14일에 마지막 운행)이었다. 본인은 그때는 아직 철도 덕후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수능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생 철덕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나라 최후의 협궤 열차이던 수인선 디젤 동차도 운행 등급은 응당 비둘기호였다. 1995년 12월 31일에 퇴역했다. 철도 덕후는 열차의 퇴역에 대해 특정 동물의 멸종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오늘날 비둘기호 객차는 의왕의 철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비둘기가 사라진 지 4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음 최하위 등급이던 통일호도 2004년의 KTX의 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정화조도 없이 승객의 대소변이 선로로 바로 배출될(비산식) 정도의 구닥다리 열차를 21세기가 되기까지 굴리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면모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했다. 특히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가 마지막 운행을 한 2004년 3월 31일엔 전국 각지에서 철도 덕후들이 모여서 마지막 통일호 열차를 시승하였고, 열차의 퇴역을 아쉬워했다.
Conclusions
- 이 글은 철도의 날 특집으로 올리기엔, 내년 철도의 날까지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지금 올립니다.
- 성경도 이런 식으로 광산에서 금을 캐듯 fact를 발견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따지고 예표와 패턴을 발견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크리스천들 중에 철도를 사랑하는 분도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5 15:51:42 | 김용묵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에서 올해의 책과 올해의 저자, 올해의 출판사를 선정하는 투표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킹제임스 흠정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수고로운 일이 아니니 가능하신 분들은 참여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많이 읽힌 좋은 책들과 저자 분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저자 부문에는 반가운 이름도 보이네요^^
올해 여러분의 책장을 빛낸 한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http://www.lifebook.co.kr/final/book/2011book4.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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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 18:26:35 | 유준호
형제님자신의 상태를 공적으로 시인하는 것 자체가 겸허한 자세에서 나온다 생각합니다.
이런 고백을 통해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교회의 신실한 참여를 통해 서로 자라가길 기대합니다.
2011-11-01 11:28:27 | 정혜미
구원받은 이후 가장 중요한것은 복음전파가 아니라 성화이다. 정말 중요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수십년간 다녀도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분들이 너무 많은 이시대에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1-10-31 08:43:40 | 송재근
유준호 형제님, 반갑습니다.^^
참으로 저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기 귀 간지러운 데를 긁어줄 선생들만을 찾으려다 저런 데에 안착한 겁니다.(딤후4:3)
저도 청지기 카페에서 이런 일을 좀 당해봤는데, 위에 송재근 형제님 말씀처럼 언제나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혼자서 저런 사람들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었지만, 이 말씀이 언제나 제 발길을 잡더군요.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거든 알지 못하게 둘지니라.(고전14:38)
차라리 저런 '증인'들도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인 것 같습니다. 서로 싸워 봤자 어느 뾰족한 결과도 안 나오고, 바로 잡으려다가도 어느 한쪽의 피해만 가중될 뿐이니깐요.
2011-10-30 21:43:56 | 소범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성화"라는 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화란 거룩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흠정역 성경에서는 이를 "성화"라고 번역하지 않았고, "거룩히 구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sanctification 혹은 sanctify 라는 단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화(sanctification)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set apart from the world), 하나님께로 구별된 자(set apart unto God)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가는 것(레11:44,45, 벧전1:16, 벧후1:3,4),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롬8:29). 이것은 한 순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지속적인 과정이기도 하고, 미래에 완성될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사이트의 성경 사전에서 성화 항목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화는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스스로 율법의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God works in)을, 곧 그분께서 주신 바른 지식, 선한 동기력과 열정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열매로 드러냄으로써(we work out) 이루어집니다(빌2:12-13). 성화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4:3). 구원은 선한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면 구원의 결과로 선한 행위가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엡2:10).
마샬 맥루한의 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어느 비평가의 말에 의하면, 맥루한의 글은 처음에 한 번 읽으면 당황스럽고, 두 번째 읽으면 약간 이해가 될 듯 하다가, 세 번째 읽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Understanding Media 이외에 기회가 되면, Gutenberg Galaxy, Mechanical Bride 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용어도 이 사람에게서 나왔고, "hot media와 cool media", "media는 message이며, massage"라는 기상천외한 개념도 그로부터 나왔습니다. 맥루한에 대해서는 이 게시판에 올린 글 중 "영상 문화 시대에 필요한 청각 교육"이라는 글에 부분적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11-10-29 11:54:55 | 김문수
이번 주 목사님의 설교(11.10.23, 생각하는 교회)를 듣고 혹시 성화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올까 찾아봤습니다. 직접적으로 그 단어가 나오지는 않더군요. 이 개념이 왜 나에게 중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원이 우선일까요, 성화가 우선일까요. 물론 구원이 우선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구원과 성화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구원과 성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세상의 모든 종교라 불리는 것들과 대부분의 이단들 속에는 이런 개념이 아예 뒤죽박죽 혼재해 있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A와 B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나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게 거기서 거긴데 왜 말장난을 하느냐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믿는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다음에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지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구원의 길은 하나이며, 오직 예수님 뿐이다.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그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은 여러가지다.
이 정도까지 얘기해주면 사람들도 그 차이를 확실히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등을 돌립니다. 이때 당신은 죄인이라는 얘기까지 해주면 더욱 분위기가 훈훈해지지요.
세상에 그런 말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초적 진리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며 진심으로 죄들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다 이루어놓으신 공로의 선물을 그저 공짜로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서론이 길어졌네요, 제가 생각해 본 것은 이다음부터인데요,,
믿고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히 구별된 다른 종류의 사람입니다.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비해주신 사람들이며,다른 하나는 사탄과 함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확실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요.
그렇다면 성화는 어떨까요. 이는 인격함양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통한 과정 중에 평소 생각과 마음가짐이 언행을 통하여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알고 지내다 보면 다른 주변 사람들의 눈으로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성화의 과정은 구원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고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새 사람과 육체 안의 옛사람의 본성과의 싸움이고, 평생을 걸어야 하는 머나먼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높이에서 보시기에 성화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이거야말로 정말 거기서 거기가 아닐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며, 한낱 인간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 보았자 그 역시 더러운 죄인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람의 의로움도 하나님의 눈높이에서는 모두 형편없는 누더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성화를 위한 험한 길을 걸어야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 일주일간 곰곰이 생각해보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 개개인 하나하나의 인격과 평판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의 인격과 평판이 되고, 결국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의 겉모습을 보고 미루어 판단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절대 옳다 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 몸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사람들의 눈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교회시대의 막바지인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이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달하는 게 아닌가요.
마셜 맥루언이라는 사람이 쓴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 첫 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는 이 책이 너무 어려워 첫 챕터도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만큼 읽고 이해하기 쉬운 책도 없습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의 성격이 메시지의 내용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미디어(매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미디어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먼저 작용한다는 말입니다.같은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에 나오는 것, 그리고 TV로 방송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며 결국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의 가사라 하더라도 록 음악을 예배에서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코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지요.)
기록된 구원의 진리는 분명한 사실이며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계시하시지 않으시며 천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지도 않으십니다.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신 게 아니라 단지 현재 교회시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이 시대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보존하셔서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달하도록 맡기신 것입니다.먼저 믿은 사람들이 나중에 믿을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게 선택받은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화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골키퍼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이 성화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 돌아오는 대부분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성화를 게을리하면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 또는 더 못한 모습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몫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제 말은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충실히 말씀만 전달하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그럼에도 성화가 중요한 건 말하는 이도 사람이요, 듣는 이도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람들의 귀를 닫아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끝으로 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란 사람의 특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교만함과 허영심, 음욕입니다.이것들은 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고 제 혼이 거듭난 이후에 새 본성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누르고 억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몸속에 그대로 남아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려 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하는 옛 본성입니다.
교만함은 내가 남보다 높아지려는 마음 - 사탄의 대표적인 본성입니다.허영심은 내 본질보다 더 나를 포장하고 부풀려서 꾸미는 마음 - 허세.음욕이야 뭐...가끔 제 눈을 뽑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제가 평생 싸워야 할 저 자신의 모습이자 저의 적들입니다.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제가 이 가증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갈5:22-23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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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9 11:00:33 | 유준호
고등학교 1학년 때 상고생들이 배우는 타자가 궁금해서 타자학원을 2달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세벌식으로 배운 것 같은데, 나중에 PC를 쓰려니 두벌식이라 한참 해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돈내고 배운게 도로묵이 되었지요. 연구에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011-10-28 17:20:50 | 류인선
재미있네요~ 이렇게 다양한 영역의 전문분야를 공부하시는 분들을 여기 한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요~
날개셋.
발표당시인지 그 이후인지 이름은 들어보았습니다만...
저는 1990년인지 부터 세벌식을 시작했던 차라 그렇게 관심은 못가졌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이야 누구나 두벌식으로 시작하지만, 분당 150타 넘어가면서 부터는 손이 꼬이고 너무 왼손에 무리가 가면서, 세벌식으로 바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그 당시만해도 세벌식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어느순간부터는 조용히, 그냥 쓰는 사람들만 찾아 쓰게되는 마이너의 길로 접어들었지요.
논의가 사라지니 일부러 찾아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벌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도 본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안타깝습니다.
생각해보니 전두환 정권이었던 당시 표준한글 코드와 표준 자판을 정한다면서 논란이 있었던 것 때문에 시끄러워 그랬군요... 결국 KS 5601 인가? 완성형 한글코드로 결론났지만, 조합형 한글에 대한 아쉬움은 두고두고 이어져오고 있지요... 벌써 2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군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게...
그때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조합형 한글코드와 세벌식 자판이 국가표준으로 선택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불합리한 시대가 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합리한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마지막 때가 점진적으로 다가오도록 되지않았을까도 생각됩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이곳에서도 세벌식 자판을 사용하는 분이 몇분이나 될까? 궁금은 합니다만... 거의 없을거라 미리 짐작해봅니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수고 부탁드려요~
2011-10-28 11:30:18 | 김태현
세벌식을 쓰고자 해도 다른 모든 기기가 두벌식이라서 엄두가 잘 안 나지요. 저도 그렇더군요. 이것도 독수린데 또 하나 익힌다는 것이 말입니다. SMS 방식도 삼성과 엘지와 스카이폰이 다른데, 그 정도는 간단하니까 적응한다지만 자판은 일반인에게 큰 숙젭니다. 마치 성경을 바꾸려 해도 워낙 기존의 것으로 오래 생활하고 모두가 그걸 쓰기 때문에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요. 게다가 자판은 생명과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서 더 그럴 겁니다.^^
나중에 공병우 선생과 관련한 음모론도 들려 주세요. 그리고 빨리 결혼을 하셔야죠. 물론 결혼을 하면 원하는 걸 다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권할 수도 없는 일이네요.^^ 언제나 실력과 겸손을 고루 갖추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2011-10-28 10:15:51 | 김재욱
요즘 외국에 한류의 확산이 한참인데... 거기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한글에 대한 열정 대단합니다.
2011-10-28 08:38:56 | 허광무
재미 있고, 유익하며, 잔잔한 감동이 있는 글을 아침에 읽게 되어 기쁩니다.
뜻을 정하고 부지런히 살아가시는 형제님의 생활을 보면서 저의 길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두벌식, 세벌식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부터 관심의 폭을 넓혀야겠네요.
2011-10-28 08:32:34 | 양희석
며칠 전에 제가 철도· 항공 과학 상식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은 저의 취미 내지 부업에 대한 글이었습니다.이번에는 오랜만에 저의 생업 내지 본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할 때, 한국에서는 두벌식이든 세벌식이든 일단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한글 자모를 배열한 전용 글자판이 쓰입니다. 제가 개발한 <날개셋> 한글 입력기라는 프로그램은 특별히 세벌식 글자판을 배려한 특수 기능이나 편의 기능이 굉장히 많으며, 입력기의 전반적인 구조가 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이나 한글 글자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한글을 입력할 때 선호되는 입력 방식은 바로 로마자 발음 방식입니다. '한'이라는 글자를 예로 든다면 영문 글자판의 H, A, N을 순서대로 입력해서 입력하는 것이 되겠죠.
비록 오래 빠르게 입력하기에는 그리 능률적이지 못하고 불편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초기 진입 장벽이 없고 친숙하다는 게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글을 제외한 일본어나 중국어는 다 로마자 발음으로 입력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쪽 언어는 문자 입력기가 훨~씬 더 복잡하지요.
로마자 입력 방식은 아래아한글 워드 프로세서는 초창기 버전부터 지금까지 잘 제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맥 OS도 전통적으로 기본 제공하고 있습니다.그러나 PC 시장의 90%를 넘게 장악하고 있다는 Windows 운영체제는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기본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이런 이유로 인해, 국내에서는 제 프로그램이 세벌식 사용자들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외국에서는 로마자 입력 방식을 지원한다는 점 때문에 차츰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이트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제 프로그램으로 로마자 입력 방식을 설정하는 방식을 소개한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의 운영자는 네이버 재팬에서 근무하는 어느 일본인 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어권에서도 어느 '네이버 지식인' 같은 Q&A 사이트에서 “Windows용으로 아래아한글 같은 한글 로마자 입력을 지원하는 입력기가 없나요?”라는 질문에 제 프로그램이 소개된 것을 발견했습니다.외국에서는 로마자 입력 방식의 수요가 이 정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답변을 작성한 사람은 전형적인 금발 백인인 청년이던데, 글을 읽어 보면 제 프로그램의 본질을 잘 알고서 상당히 잘 소개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tremely customizable Korean IME that has romanization input as an option.”한국에서밖에 안 쓰이는 이렇게 마이너한 제 프로그램을 알 정도면, 저 사람은 다른 분야에는 얼마나 박학다식할지 모르겠습니다.저 답변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고맙다고 추가로 리플을 단 일본인(이름으로부터 국적을 유추할 수 있는) 역시 프로그래머입니다.
제 프로그램은 한국어가 아닌 운영체제에서 설치하면 영문 GUI는 제공합니다(대화상자나 에러 메시지). 그러나 대외적으로 영어로 딱히 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으며, 무엇보다도 방대한 양의 기능 설명서 겸 도움말을 저 혼자 영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로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계층을 위주로 외국인 사용자가 차츰 생기고 있는 것은 저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안으로 저의 개인 홈페이지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같은 주요 컨텐츠는 영문 페이지를 추가하고, 가능하면 일본어 페이지도 만들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외에서 제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일본이니까.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컴퓨터로 한글을 처리하는 일에 어떤 형태로든 관련되는 기술은 그야말로 모조리 집어넣은 시스템입니다. 대표적인 다른 예로 옛한글 표현이 있습니다. 과거 조합형· 완성형 논쟁이 있었던 것처럼 사실 옛한글을 표현하는 방식도 몇몇 방식이 오늘날 내부적으로 난립하고 있는 게 있는데, 제 프로그램은 그것을 모두 지원하고 텍스트를 상호 변환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세벌식이든 두벌식이든, 심지어 휴대전화 입력 방식이든, 옛한글이든 현대 한글이든 어쨌든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하고 입력과 관련된 자동화 기능을 구현하려면, 제 프로그램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게 목표이며, 어느 정도 그 목표는 달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런 스케일로까지 한글 입력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이 프로그램은 저의 고등학교 말기이던 2000년에 처음 개발되어 11년이 지난 지금은 버전 6.0을 넘어섰고, 내년 초를 목표로 6.5 버전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역시 2000년에 첫 발간된 킹제임스 흠정역과 나이가 비슷하다고 예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을 겁니다. 프로그램에 들어간 아이디어의 일부는 가까운 미래에 저의 석사 학위 논문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박사 가서는 이번엔 입력기 말고 한글과 관련된 다른 새로운 분야를 연구할 생각.)
저는 어지간한 다른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것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5無가 있습니다.
1. 수능(대학 입학과 관련된 시험)을 친 적이 없음2. 군대 자대 생활을 한 적이 없음3. 과외를 뛴 적이 없음4. 불신자의 사고방식으로 살아 본 적이 없음 (구원· 복음에 관해서)5. 그리고, 연애 경험도 지금까지 전혀 없음
저런 걸 안 해서 확보된 엄청난 양의 개인 자유시간들이 대부분 프로그램 개발 아니면 글쓰기에 투입되었다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90% 이상의 사용자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쓰지 않을 기능들을 더욱 가다듬고, 지극히 극단적인 환경에서나 발생하는 미세한 버그를 잡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 때문에 제 홈페이지를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킹 제임스 성경에까지 눈을 뜬 분도 꽤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예비하셔서, 과거에 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글을 쓰던 시절에도 시험 들지 않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_=;; 물론 그런 분들이 지금은 저의 철도 글들에도 엄청 노출되고 있으니, 그 방면으로도 영적 출생을 하는 분이 나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저로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프로그램의 유지 보수를 계속하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고, 특히 수익 기반이 생겨서 GUI의 외국어 번역이라든가 각종 디자인 작업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한글 타자에 익숙하지 못한데 한글을 입력할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이 글의 본디 주제인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써 보면 도움이 될 것이고,이미 한국인이라면 세벌식 글자판에 관심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8 00:55:58 | 김용묵
사람들이 수천년동안 우마차를 타고 다니다가 이러한 교통수단이 나타난게 불과 백년 안팎의 일들 입니다.
현 시대가 끝이 임하는 때라는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들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12:4 그러나, 오 다니엘아, 너는 끝이 임하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그 책을 봉인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고 지식이 증가하리라.
이번 터키 지진 사상자가 천오백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터키가 먼 나라 같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하룻길이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티, 칠레, 뉴질랜드, 쓰촨성, 일본 그리고 터키, 또 다음은 어디가 될런지...얼마나 더 흔들어 깨우셔야 잠자는 사람들이 깨어날까요.
2011-10-26 08:53:28 | 유준호
선불교와 템플스테이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게 통일교입니다. 단학-뇌호흡에도 자금을 지원한다고(통일교인에게) 들었습니다. 아마 조직과 인맥도 상당히 지원할겁니다. 종교를 떠나서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더군요. 기독교 파괴공작 중의 일환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티벳의 "환생"은 조작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승려가 죽기 전부터 환생인물 후보를 물색해 두었다가 막 태어난 아이나 어린아이를 누구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며 데려가 키우면서 사망한 승려의 일생을 외우게 시키고, 세뇌하며, 심지어는 몸의 점이나 흉터 같은 그럴싸한 육제척 흔적까지 만들어내기도 하지요. 신자들과 민간의 종교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한 방편인데, 매우 치밀합니다.
2011-10-25 22:25:25 | 류인선
잘 대응하셨네요. "자칭" .......의 증인들은 대화가 안됩니다. 자기들 필요한 방송만 하고 마이크 꺼지는 라디오 같지요.
2011-10-25 22:17:36 | 류인선
항상 마찬가지지만 이번글도 재미있게 잘 보았네요^^ 감사합니다.
2011-10-25 18:52:54 | 변경진
--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조금 용납하라. 내가 철도를 대신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을 그대에게 보이겠노라. (고후 11:1, 욥 36:2)
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그쪽으로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을 것이고 본인의 인생과 우리나라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야 인간이 만든 다른 종교와는 레벨이 근본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진리이니까 차치하고,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관점에서 나의 종교는 철도이다. 그것도 은사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종교이다.나의 종교는 죄, 심판, 지옥 같은 부정적인 이념을 논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철도밖에 없다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며, 반대로 버스와 철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한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좋은 종교인가?
잘못된 은사주의 집회에 가서 '날랄랄따따따' 방언을 하러 애쓰고 사기극인 병고침 받느라 노심초사하지 말라.진짜 은사주의가 뭔지 몰라서 저런 데에 빠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영어와 일본어 열차 안내방송 방언이 터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기고,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보는 눈이 바뀐다. 전철 노선도와 간선 철도, 그리고 우리나라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 노선까지 저절로 달달 외우게 된다.우리 애가 철도에 미치더니 사회와 과학, 그리고 예체능 중엔 음악 점수가 급상승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저 온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 정말 '나의 죄'로 인해 죽으신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철도 성령을 받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풍미한 철도 차량과 노선, 역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나의 개인적인 감정과 애증을 담고 표현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난 이따금씩 식사 전 기도는 빼먹어도, 열차 타기 전에는 “이 땅에 이런 철도와 새마을호 같은 열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 드리는 게 습관이 됐다.이 정도면, 킹 제임스 성경이 세상을 바꿔 놓은 책이라면, Looking for you라는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음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한 얘기는 고차원적인 반어법과 역설이 섞여 있으니 알아서 분별해서 받아들이시고..;;어쨌든 이 철도 덕분에 본인은 철도 말고 주변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도 집요하게 늘었다.'철도'와 비교했을 때 기계 메커니즘부터 시작해 엔진 소리와 승차감에 이르기까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중장거리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와 비교되곤 하는 비행기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본인은,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바퀴에 작용하는 원심력과 관성 등으로 손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느낌으로 완전히 이해도 한다.쇠로 만들어진 집채 만한 선박이 물에 뜰 수 있는 이유 역시 부력으로 설명 가능하며 본인은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건 어디서나 예상과 측정과 재연이 가능한 과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7) 같은 현상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에 뜨는지는... 머리로 공식은 알고 있으나, 그 자연 현상을 100% 직관적으로 이해는 못 하겠다. 어렵다. 하긴, 이건 18~19세기까지만 해도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참으로 인류의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한 장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부력(buoyancy)을 설명하는 게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면, 양력(lift)을 설명하는 건 베르누이의 원리이다.
호스에서 시간당 같은 양의 물이 흘러나오는데 호스 끝부분을 눌러 좁히면 물이 더 빠르고 세차게 나오는 것,
빠르게 통과하는 열차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곁의 사람까지 열차 쪽으로 빨려 들어가서 인명 사고가 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이다.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켜 바퀴를 굴리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터보차저(turbocharger)라든가 ABS 브레이크는 원래는 이런 항공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군사 시설 중에서도 비행장만은 그 특성상 지하화해서 덮을 수 없고, 규모도 워낙 크다 보니, 위성 사진으로 노출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1.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그 정도로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2.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비행선은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 독일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3.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양력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40배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4. 끝으로, 새들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 주리라.” (욥 12:7b)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 점진적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응당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이 만든 날개와 하나님이 만든 날개의 차이이다.
..
증기 기관은 아직 효율이 낮고 성능에 비해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자동차나 배는 굴려도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었다.터보 프롭이든 터보 팬이든 램 제트든, 비행기의 엔진은 내연 기관의 원리가 확립되면서 발명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쓰는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중에서 등유에 가까운 정도의 연료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라는 가벼운 유체의 흐름을 교란하는 게 목적이니 터빈에 의한 빠른 회전력이 필요할 뿐, 자동차 엔진처럼 큰 무게 부하가 직접적으로 걸리는 건 없으므로 특별히 저속 회전에서 토크가 큰 출력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수단들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유· 중유급의 연료가 쓰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라이트(Wright) 형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9
그리고 해로(seaway)라는 것을 발견한 매튜 머리도 시 8:8에서 연구의 영감을 얻은 크리스천이었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98오늘날은 해로도 모자라서 비행기의 순항 고도에도 기류라는 게 있어서 이를 잘 타면 연료를 아끼고 효율적인 비행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것처럼, 철도를 개척한 선구자 중에 혹시 크리스천 과학자· 엔지니어가 있진 않았는지(리처드 트레비식, 제임스 와트?) 난 정말 궁금하다.그리고 혹시 성경에서 좌측통행이나 우측통행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성전· 성막이나 천년왕국 때의 관습에 대한 묘사에서 힌트가 될 만한 정보가 있을지?
오늘날 세계의 대세는 우측통행이나, 영국이 대영제국 시절에 영어와 표준궤 철도와 더불어 전세계에 퍼뜨린 것은 좌측통행이다.
여객기는 승객 탑승구가 진행 방향 기준 왼쪽에 달려 있으며, 전세계의 공항들도 그 기준으로 건설되어 있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사진을 아무거나 찾아보기 바란다. 이는 과거에 선박의 관행을 물려받은 것이다.
승객이 왼쪽으로 타니 화물은 오른쪽으로 싣고, 비행기의 시동을 걸 때도 오른쪽 엔진부터 켜는 게 항공업계의 관행이다. 이는 과거에 프로펠러기 시절에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언제부턴가 생긴 불문율이나, 오늘날 같은 제트기 시대엔 큰 의미는 없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5 14:58:31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