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유다의 서쪽에 있던 모레사 출신의 대언자.
그는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일곱 번째 인물이며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50년 동안 대언하였다. 그는 대언자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이 그의 글에서도 발견된다(사2:2와 미4:1, 사41:15와 미4:13 등 비교). 그가 담대하게 주님을 섬긴 것은 그로부터 1세기 후에 나타난 대언자 예레미야의 방패가 되었다(렘26:18-19; 미3:12). 그는 고상하게 또 격렬하게 글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글에는 여러 번의 장면 전환도 나온다. 그의 대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심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는 것, 그들의 원수들이 심판 받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오심이야말로 그가 묘사하는 영광스런 장래의 모든 소망의 기초임을 보여 주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날 것을 정확히 대언하였고(미5:2-3) 유대인들은 그것이 메시아 출생에 관한 것으로 이해했다(마2:6; 요7:41-42).
II. 재판관 시대에 살던 에브라임 사람.
그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의 재판관 시대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1,100세겔을 훔쳤다가 그것을 되돌려 주었으며 자기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그 돈으로 개인의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형상을 세우며 또 복을 받기 위해 레위 사람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우상숭배를 멸시하시고 단 족속의 군대를 보내어 그의 제사장 요나단과 그의 우상숭배 기물을 강탈하게 하였다(삿17:13).
2009-07-05 00:47:23 | 관리자
요나단의 아들. 그는 므립바알이라고도 불렸다(대상8:34).
므비보셋은 그의 아버지가 길보아 전투에서 죽을 때에 아주 어렸으며(삼하4:4)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그의 유모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떠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그는 평생 동안 자리를 절었다. 다윗은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릴 때에 자기와 요나단 사이의 우정을 생각하고 사울의 집에서 남은 자들을 찾아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주었으나 후에 그는 그의 종 시바의 속임수로 인해 그 중 일부를 잃게 되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을 생각하며 충성스럽게 지냈으나 시바의 모함과 다윗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재산의 일부를 잃게 되었다(삼하9:1-13; 16:1-4; 19:24-30). 그 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사울 집에 속한 사람들을 내어줄 때에 그를 불쌍히 여겨 살려 주었고(삼하21:1-14) 이로 인해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인 므비보셋이 죽게 되었다(삼하21:8).
2009-07-05 00:46:44 | 관리자
I. 홍해와 시내 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
여기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불평하였는데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바위에서 샘이 나오게 하였다(출17:1-7). 이곳은 시험이라는 뜻을 가진 맛사라고도 불렸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이다(신33:8; 히3:8).
II. 가데스 근처의 신 광야에 있던 또 다른 기적의 샘(민20:13-14).
이곳은 모세와 아론이 죄를 범한 곳이며 이 죄로 인하여 그들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곳은 므리바의 물이라 불리기도 하며(신33:8; 시81:7; 106:32) 므리바가데스라 불리기도 한다(민27:14; 신32:51; 겔47:19).
2009-07-05 00:46:02 | 관리자
고대 바빌론 사람들의 우상.
이것은 화성의 신으로 추정된다(렘50:2). 바빌론 왕들의 이름에도 이 말이 첨가되어 에빌므로닥, 므로닥발라단 등의 이름이 생겼는데(왕하25:27; 사39:1) 후자는 브로닥발라단이라고도 불린다(왕하20:12).
2009-07-05 00:45:2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천지의 여왕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가 죽을 때 주님께서 그녀를 하늘로 끌어올리시고 그녀에게 ‘천지의 모후’ 혹은 ‘만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마리아)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제1편 p. 366 #966].
여기서 다시 한 번 카톨릭 교리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성경 말씀은 전혀 그런 교리를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르침을 책망합니다. 예레미야서 44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배도하여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알려진 거짓 여신에게 예배하는 행습을 보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게 됩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자녀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과자를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키느니라(렘7:17-18).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는 거짓 여신에게 예배했을까요?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사람들의 전통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입에서 나간 것을 반드시 이행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행하던 대로 곧 우리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 왕들과 우리 통치자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으리라. 이는 그때에는 우리에게 양식이 풍부하고 넉넉하여 아무 재난도 보지 아니하였으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 붓는 일을 그만 둔 뒤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으로 진멸을 당하였음이니라, 하며 또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을 때에 어찌 우리 남자들의 허락도 없이 그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어 경배하고 음료 헌물을 부었으리요? 하니라(렘 44:17-19).
카톨릭 주의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이교도들의 그 동일한 종교 의식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방 종교
본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호기심 있는 카톨릭 교인들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는 많은 거짓 종교들을 연구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와 그것들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 사실에 매혹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여신들을 지칭하는 데 그토록 자주 사용되었던 이름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셨다고 말하는 카톨릭 주의의 주장은 참으로 놀랄 만한 것입니다.
누가 높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높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하늘들 위로 높임을 받으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보다 위에 있기를 원하나이다(시57:5).
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어다(시18:46).
주여, 주의 능력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이와 같이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양하리이다(시21:13).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을 알지어다. 내가 이교도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땅에서 높임을 받으리로다(시46:10).
땅의 방패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백성의 통치자들이 함께 모였으니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분께서 크게 높임을 받으시리로다(시47:9).
주는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높은 곳에 거하시며 공의와 의로 시온을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이라(사33: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은 943회 나오며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533회 그리고 주 예수라는 이름은 115회 나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고 신약의 나머지 책들도 그분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저 손에 꼽을 정도로 등장하며 결코 어떤 것의 여왕으로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빌2:9-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계5:12).
누가 모든 영광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전4: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예수님)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무슨 일이 반복되는지 아시겠지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힘쓰는 반면 카톨릭 주의는 예수님을 끌어내리고 마리아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해서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한 여자에 의해 대치되고 무시당하는 것입니까?
결 론
카톨릭 주의는 주님께서 마리아를 ‘천지의 여왕’(Queen of all things)의 반열로 드높이셨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의 전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2009-07-03 14:08:55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기도의 응답자
카톨릭 교리는 신자들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제4편 p.912-913 #2677].
여러분은 이러한 주장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전통에서 나온 것인지 반드시 아셔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 하나 하나를 면밀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청원하는 것 : 성경적 근거가 없는 사람들의 전통
∙자비의 어머니 :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
∙마리아를 지극히 거룩하신 분으로 높이는 것 : 사람의 전통. 우리는 이미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심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마리아가 우리를 맞아들임 :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의 전통
∙마리아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함 :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전통
카톨릭 신자 여러분, 부디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결코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초기 카톨릭 지도자들의 머리 속에서 고안된 전통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 복된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하나님)의 모친’(Mother of God)이란 칭호로 공경받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와 도움을 청한다[제1편 p.368 #971].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마리아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과거의 카톨릭 지도자들이 조작해 내어 오늘날의 카톨릭 교인들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예수님이나 성경의 어느 누구도 결코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까요?
성경은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기도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카톨릭 교리 문답서를 즉각 반박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환난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마리아가 아닙니다.
오 주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소서. 나의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86:6-7).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참으로 수백 구절의 성경 말씀이 우리의 인생 길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께 도피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 한 구절도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우리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자의 구원은 주께로부터 오나니 그분은 고난의 때에 그들의 힘이 되시리로다(시37:39).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니 주는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오며 고난의 때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되시옵소서(사33:2).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께서 고난의 때에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여러분은 여러분의 근심 걱정, 무거운 짐을 마리아에게 의탁하시겠습니까?
네 짐을 주께 던져서 맡기라. 그분께서 항상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의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다윗 왕은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기도하고 크게 부르짖으리니 그분께서 내 음성을 들으시리로다(시55:17).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계시는도다(시145:18).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누구에게 기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다시금 여러분은 어째서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가 예수님을 격하시키고 마리아를 격상시키는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무엇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초대장을 쓰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11:28).
성경이 틀렸거나 아니면 여러분이 필요로 할 때 여러분을 기꺼이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분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카톨릭 주의가 막고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결 론
이제 당신은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카톨릭 전통을 따라 마리아에게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거룩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겠습니까?
나로 말하건대 나는 하나님을 부르리니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시55:16).
2009-07-03 14:05:40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또 다른 중재자
많은 신실한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위해서 중재하는 중보자라고 믿으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교회헌장 62항)[제1편 p.367-368 #969].
위의 헌장에는 마리아에게 부여된 네 개의 특별한 칭호가 있습니다. 과연 그녀는 그런 칭호들을 모두 성취했을까요?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변호자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의 변호자라는 믿음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전통 즉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전통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의 유일한 변호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카톨릭 교리를 일축해 버립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보조자
다신 한번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 홀로 초자연적인 협조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요, 주는 내 혼을 붙들어 주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이시로다(시54:4).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히13:6).
의로운 자는 고난이 많을지라도 주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시는도다(시34:19).
협조자
여기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쌓아 둔 은혜를 나누어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중재자
성경은 결코 마리아를 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로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님을 유일한 중재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대속하시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상속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9:15).
참된 중재자
중보자나 변호자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재하는 것입니다. 카톨릭 주의의 전통은 이 지위를 마리아에게 부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재자로 드높이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시기 때문이라(히9:24).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라(히7:25).
성경은 참된 중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없이 분명합니다.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8:34).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7).
성경은 아버지께 다다르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아가야 한다고 밝히 말씀합니다.
이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되었음이라(엡2:18).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 있게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1-12).
사실 마리아는 성경 어디서도 중재자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예수님의 위상 격하
성경은 절대적으로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만 유일한 변호자시요, 돕는 분이시요, 중보자이시며 중재자이십니다. 그런데도 카톨릭 교회의 전통은 이러한 네 개의 칭호를 그분으로부터 강탈해서 마리아의 무릎에 갖다 바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째서 그들은 매번 예수님을 끌어내리려 하는 걸까요? 어째서 카톨릭 주의는 성경이 예수님께 부여한 모든 지위를 그분으로부터 빼앗아서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에게 바치는 것일까요? 과연 마리아가 그렇게 고귀하다면 어째서 사도 바울 같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을까요?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음이라(고전2:2).
결 론
이제 여러분은 성경과 카톨릭 전통의 입장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영광을 마리아에게 돌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전통을 거부하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더욱 뛰어난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또한 그분께서 더 나은 약속들 위에 세우신 더 나은 언약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이라(히8:6).
2009-07-03 14:02:17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성덕의 근원
교리 문답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제1편 p.706 #2030].
우리가 또 하나의 모순점에 봉착했다고 해도 이제 독자께서는 이제 과히 놀라지 않으실 것입니다. 앞 장에서 논의한 대로 성경은 마리아 역시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하나님의 아드님을 낳는 축복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녀를 거룩함의 근원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스스로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눅1:47-48).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함(성덕)의 근원
성경은 반복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심을 단언합니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사오매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4).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발받침 앞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5).
그들로 하여금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그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니이다(시99:3).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9).
그들이 서로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6:3).
성경에서 거룩 또는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600번 이상 사용되었지만 그것이 마리아를 의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가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이는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음이니라(벧전1:15-16).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11:44).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해 있는 여러분, 여기에서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따라야 할 거룩함의 본보기와 근원으로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라고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카톨릭 주의는 “아니야,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여기 덧없는 인간에 불과한 한 여인을 의지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섭니다.
이것은 지독한 신성 모독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카톨릭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연히 계셔야 할 권좌에서 그분을 몰아내고는 그 자리에 마리아를 앉히려고 할까요?
왜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에 마리아를 거룩함의 모범으로 삼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곧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리니 어찌 내 이름을 더럽히리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결 론
누가 당신의 거룩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죄 있는 한 여인입니까?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이 그 여자를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거룩함의 모범이 될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나는 주 곧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사43:15).
2009-07-03 13:59:00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평생 동정녀
교리 문답서는 마리아가 평생 동안 처녀로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과연 사실인가 확인해 봅시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성 아우구스띠노 설교집 186,1.)[제1편 p.191 #510].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교회헌장 52항)[제1편 p.188 #499].
마리아가 평생 동안 처녀로 지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해 여러분이 취하게 될 입장은 여러분이 어느 것을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전통과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말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도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마13:55).
이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실족하니라(막6:3).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보지 아니하였노라(갈1:19).
이 구절들이 카톨릭 교리에 너무나 명백하게 모순이 되기 때문에 교리 문답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의 형제들’(마13:55)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마28:1)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제1편 p.188 #500].
다른 마리아라고요? 왜 성경 기록을 왜곡합니까? 이 구절들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카톨릭 교회는 의도적으로 신자들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교리는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의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초월한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퍼뜨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또한 이 교리는 마리아가 독신 생활을 하는 지금의 신부들 및 수녀들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요? 스스로 이 질문에 대답하셔야 합니다.
이교도들의 풍습
도대체 무슨 이유로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이처럼 ‘영원한 처녀’의 상태로 끌어올리려는 것일까요?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로마 카톨릭 주의의 마리아와 구약 시대에 숭배되던 이교도의 여신들 사이에는 놀랄 만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가 숭배하는 마리아가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보다는 이교도들의 여신과 한층 더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든 카톨릭 신자들이 크게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렘44:17-19).
결 론
마리아는 신비하게 ‘평생토록 처녀’였을까요? 이 문제 역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람들의 전통을 취하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으시든지 말입니다.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진실하시오니 주의 의로우신 모든 판단은 영원히 지속되리이다(시119:160).
2009-07-03 13:55:33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무염시태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무염시태 교리).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생 동안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았다[제1편 p.185 #493].
마리아는 전혀 죄에 물들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였으며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주의 종으로 온전히 바쳤다[제1편 p.185 #494].
‘은총이 가득한’ 그 이(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전례헌장 103항)이다. 그 이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하게 보호되고 일생 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제1편 p.190 #508][#722 참조].
여러분께서는 혹시 이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 않을까 하고 한 가닥 희망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교리 문답서는 그것이 또 하나의 카톨릭 교회의 전통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제1편 p.184 #491].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 죄 없는 분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성경은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죄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롬3:10-12).
잘 보십시오. 이 구절 중 어느 한 구절도 “모두가 죄를 지었다. 마리아만 빼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하심이라(갈3:22).
마리아도 자신이 구원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 스스로 자기가 죄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결코 자기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드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눅1:46-47).
하지만 여전히 카톨릭 교회는 자기 회원들로 하여금 마리아를 숭배하도록 요구합니다.
복된 동정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신심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본질적 요소다(마리아 공경 56항)[제1편 p.368 #971].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고귀하게 높이셨나요?
어느 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분을 뵙기를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에게 말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냐? 누가 내 형제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 이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라, 하시더라(마12:48-50).
예수님께서는 어서 이 축복 받은 여인을 모셔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마리아와 다름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마리아를 특별히 받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마리아를 떠받들려 할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마리아를 칭송하려 했을 때 주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의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이 빤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7-2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이들이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보다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훗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는 교회의 전통을 따르려는 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이 구절들을 성경 기록에 넣어 두셨나 봅니다.
반복되는 현상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똑같이 반복되는 어떤 현상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홀로 받기에 합당하신 영광과 존귀를 누군가가 자꾸 강탈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카톨릭 주의는 예수님을 죄 없는 유일한 분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일축하고는 마리아 역시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 론
과연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었습니까? 카톨릭 전통은 여러분이 그렇게 믿어 주기를 바라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이는 선을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의인이 땅 위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로다(전7:20).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5:12).
2009-07-03 13:52:48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또 다른 구원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에 어떤 역할을 할까요? 교리 문답서의 대답을 들어 봅시다.
(마리아는) 하늘에 올림을 받은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을 위한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 준다[제1편 p. 367 #969].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제1편 p.185 #494].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제1편 p.367 #968].
과연 이 교리가 성경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 사역의 전 과정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 기록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신만이 천국으로 이르는 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그러나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들의 구세 사업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제2편 p.442 #1172].
여러분은 성경과 교회의 전통 중에서 어떤 것을 믿을지 다시 한 번 결정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단 한 점의 혼동도 없이 분명합니다.
나 곧 나는 주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그러나 나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주 네 하나님이니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알지 말지니 이는 나 외에 구원자가 없기 때문이니라(호13:4).
내가 신뢰하는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주께서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22:3).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한 천사가 그분께서 구원자가 되실 것을 전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임이라, 하니라(마1:21).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가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신 것을 읽게 됩니다.
그들이 그 여자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 때문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때문이라, 하였더라(요4:4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자를 일으키셨으니 곧 예수님이시라(행13:23).
이제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났으니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딤후1:10).
공통된 믿음을 따라 나의 친아들 된 디도에게 내가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딛1:4).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노니(요일4:14).
카톨릭 주의가 첫번째 교황으로 인정한 베드로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1:1).
또 이같이 하면 주께서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존하는 왕국에 들어감을 너희에게 풍성히 베푸실 것임이라(벧후1:11).
만일 그들이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하여 세상의 오염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 안에 말려들어 지게 되면 그들의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나쁘리니(벧후2:20).
명백히 베드로는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신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찬양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십니다. 마리아가 아닙니다.
결 론
이번 주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로 인해 또 다시 대답을 요하는 몇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카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님 대신에 마리아에게 의지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그분의 영광을 훔쳐서는 마리아에게 주는 것일까요?
∙마리아가 구원에 한 몫을 한다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기록된 말씀 가운데서 그렇다고 일러 주시지 않았을까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당신의 구원을 누구에게 위탁하시겠습니까? 카톨릭 교회의 전통이 가르치는 마리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예수님입니까?
이는 우리의 생활권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2009-07-03 13:48:3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살아 있는 카톨릭 신자들이 죽은 자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제2편 p.504 #1371].
성찬례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지닌 파스카적 의미의 핵심이 된다. 이때 교회는 죽은 이와 이루는 효과적인 통공을 표현한다[제2편 P.608 #1689].
참으로 구미가 당기는 이 교리는 카톨릭 신자들이 규칙적으로 성체성사에 참석하게 되면 이미 고인이 된 사랑하는 그들의 가족이나 이웃이 보다 빨리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믿음을 심어 줍니다. 만일 이러한 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그것에 순종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 두기 위해 사람이 고안한 전통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잔인하고도 무자비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것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살펴봅시다.
어떠한 근거도 없는 교리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성체성사 즉 미사가 죽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은 단 한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어느 누구도 이미 고인이 된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성체성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미 짐작하신 대로 이러한 카톨릭 주의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에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놓고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 각 사람이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관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술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14:12).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선하신 사역 곧 ‘그분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지 결코 우리의 의나 친구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의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 그 다음은 심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심판 받기 위해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아 있더라도 이미 지옥형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3:18).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 위에 임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으며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성경은 누군가가 이미 고인이 된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성체성사를 드렸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지지 않음을 밝히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정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결 론
자 또 다시 여러분의 답변을 요하는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그토록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자기 회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종교 의식을 수행하기 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행습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계속해서 붙들어 두려는 또 하나의 수단이 아닌가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골2:8).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2009-07-03 13:27:47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죄로부터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과연 성체(聖體)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카톨릭 교인들을 과거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고 미래의 죄로부터 보호해 주는 능력을 부여할까요?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준다[제2편 p.513 #139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死罪)에서 보호한다(제2편 p.514 #1395].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과 카톨릭 전통은 크게 어긋납니다. 과거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모든 죄가 씻겨 없어졌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7).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1:5).
예수님 한 분만이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에 합당하심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서는 그리스도로부터 그러한 자격을 빼앗아서 제병(祭餅)이라고 불리는 성체 즉 얇은 과자로 하여금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그들은 예수님을 끌어내리려는 것입니까?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앞으로 지을 죄로부터의 보호?
빵 조각을 먹는 것이 누군가를 앞으로 짓게 될 죄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카톨릭 주의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교리가 갖고 있는 단 한 가지 실제적인 기능은, 회원들로 하여금 성체성사가 자신들을 죄로부터 보호해 주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성체를 받기 위해 카톨릭 교회로 되돌아오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사실 사람들을 교회의 굴레에 붙들어놓는 것 외에는 이 같은 성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행습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뒷받침해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주의는 그것이 참으로 여러분을 죄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숨겼나이다(시119:11).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할 따름이니이다(시119:9).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죄로부터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암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것을 권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톨릭 지도자들은 여러분이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보다는 교회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주께서 너를 보존하사 모든 악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혼을 보존하시리로다(시121:7)
주는 나의 은신처시오니 고난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구원의 노래들로 나를 에워싸시리이다. 셀라(시32:7).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자신의 하늘 왕국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리니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후4:18).
결 론
여러분을 과거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고 미래의 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이 빵 조각에 기대를 걸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사람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카톨릭 교리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한 성경말씀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넘치는 기쁨으로 서게 하시는 분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구원자께 영광과 존엄과 통치와 권능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유24-25).
2009-07-03 13:25:01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화체설 : 실체 변화
카톨릭 주의는 천주교의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서 빵과 포도주를 실제적이고도 문자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카톨릭 신앙을 요약하여 선포한다, ‘우리는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내어주시는 것은 참으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이러한 확신을 지녀 왔으며 공의회는 이를 다시금 선포하는 바이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카톨릭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 변화라고 불러 왔다’[제2편 p.506- 507#1376].
교리 문답서의 이 인용 구절은 수백 년전에 트렌트(천주교에서는 트리엔트라 함) 공의회가 규정한 이러한 교리를 카톨릭 교회가 여전히 고집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제2편 p.490 #13331].
교리 문답서는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성체 즉 빵 속으로 들어가 얼마나 오랫동안 머무는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축성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그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현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며 또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신다[제3편 p.507 #1377].
카톨릭 주의가 자기 회원들에게 그야말로 식인종들의 의식과 비숫한 의식에 참여하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히 이 교리를 검토해 보아야만 합니다. 우선 우리는 이 교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인지 말입니나. 카톨릭 주의는 요한복음 6장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화체설이 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요6:53-54).
이 한 구절만 볼 때에는 식인종의 의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문맥 가운데서 전체 구절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시기 바로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 곧 그가 하나님의 빵이기 때문이라.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이 빵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3-35).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도 일관되게 이러한 가르침을 보여 줍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그분의 신체를 뜯어먹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 주님께서 더욱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라(요6:40).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믿음을 통해 영생이 주어짐을 지적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말씀을 놓고 웅성거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것을 말씀하셨으며 결코 육적인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생명이 자신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온다고 영적으로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의 몸을 먹음으로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디에서도 사람을 먹는 풍습을 권장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그분은 그러한 행습을 엄격히 금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째 먹지 말지니라(창9:4).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 어떤 혼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레17:12).
결코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손수 엄히 금하셨던 것을 자신의 자녀들이 지금 행하도록 명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논지는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1장에 있는 바울의 가르침이 이 문제에 대해 아주 밝은 빛을 비춰 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은 또한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나누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부서진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고전11:23-24).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결코 자신의 제자들이 팔을 뻗어 자신의 살점을 뜯어먹으라고 권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살을 먹으라고 제안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터무니없고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실 것에 대해 영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구절이 어떻게 끝나는지 주의해서 보십시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주의 만찬을 지키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이루신 일을 기억하라는 것이지 결코 그것을 재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느니라(고전11:25).
예수님 자신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똑같은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나누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눅22:19).
결 론
화체설 또는 실체 변화의 교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성경적인 카톨릭 전통에 불과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호기심을 자아내는 몇 가지 질문이 카톨릭 주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성경에서 문맥과 상관없이 한 구절을 끄집어내서는 성경이 가르치지도 않는 교리를 고의적으로 만드는 것일까요 ?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을 먹도록 하는 것일까요 ?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러한 행습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약4:17).
2009-07-03 13:22:11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죄의 경중
카톨릭 주의는 신자들에게 죄에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관념을 주입시킵니다.
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제3편 p.657 #1854].
첫째로 가벼운 죄로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들 즉 소죄가 있습니다.
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제3편 p.659 #1862].
다음으로 죽을 죄가 있습니다.
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 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느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제3편 p.659 #1861] [#1014, #1033, #1035, #1037 참고].
‘지옥에서의 영원한 죽음’의 위협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을 죄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죄를 용서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회개가 필요한가요?
∙죄가 용서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죄의 경중에 관한 문제에 대해 성경은 왜 아무런 언급이 없을까요?
애석하게도 교리 문답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돌려보면 카톨릭 주의의 교리 문답서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얻게 됩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요일3:4).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의 대가로 우리는 모두 죽음과 지옥의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죄들을 보다 무거운 죄로 차별화시키지 않으며 단순히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모든 죄 값을 단번에 지불하셨습니다.
오직 이 사람(예수님)은 죄들로 인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히10:12).
참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 이유는 오직 그분께서만 모든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무죄한 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1:14).
그 까닭은 이것이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마26:2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에게 나아와 죄를 자백하기 원하시며 일단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은 후에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히10:17).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끌어내리는 행위
여기에서 그들은 또 다시 예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예를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신 주님의 희생적 행위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전 인류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자격을 홀로 갖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주의는 비천한 죄인들이 자신들의 선행을 통해서 여러 가지 죄 값을 지불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주님을 끌어내리고 그분께서 홀로 받기에 합당하신 영광과 존귀를 강탈하고 있습니다.
결 론
이제 다시 한번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죄는 다른 죄 보다 심각하고 여러 가지 죄의 경중에 따라 지속적인 선행이 요구된다고 믿으면서 계속해서 카톨릭 주의의 노예로 남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단번에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이는 나 역시 전해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니 그것은 곧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시고(고전15:3-4).
2009-07-03 13:18:5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유아세례
유아세례는 카톨릭 교회의 교리 중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교리 문답서의 진술을 들어 봅시다.
어린아이들도 원죄로 타락하고 더러워진 인간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므로 어둠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위해 세례로 새로 나야 하며 모든 사람이 그곳으로 부름을 받는다. 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제2편 p. 465-466 #25O].
교리 문답서는 이러한 기본 교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말해 줍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하게 확인된다[제2편 p.466 #1252].
교리 문답서는 이 교리가 성경 말씀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전통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고가 바로 이 경우에 잘 들어맞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골2:8).
성경적인 침례
유아세례 행습을 특히 반대하는 이유는 유아가 세례(침례)받는 장면이 성경에 단 한번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침례는 전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나이가 된 사람들만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장성한 어른이었을 때에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고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시더니(마3:16).
성경을 통틀어서 침례는 언제나 구원받은 후에 행하여졌습니다. 빌립에 의해 구원을 받게 된 이디오피아 내시는 침례 받을 당시에 성인이었습니다.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행8:38).
다른 여러 사람들도 믿고 난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행18:8).
유대인들은 침례자 요한이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말을 듣고 그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죄들을 자백하며 요르단 강 속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마3:6).
의심의 여지없이 유아들은 회개하거나 믿거나 혹은 자기 죄를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적으로 볼 때 결코 침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 간수의 경우
바울 사도를 맡아서 감시하던 빌립보의 간수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하고 물었을 때(행16:30)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31절)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간수가 믿은 후에 바울은 즉시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33절).
또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마친 후에 그의 말을 반갑게 받아들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았고 그 날 제자들에게 삼천 혼 가량이 더하여졌습니다(행2:41).
빌립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도했을 때 성인 남녀 모두가 침례를 받았지만 유아는 아무도 침례를(심지어 세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의 왕국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것들을 선포하는 것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매(행8:12).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성장한 사람들만 침례를 받도록 성경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어째서 카톨릭 주의는 갓 태어난 아이들도 세례를 받도록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을 지체 없이 교회 울타리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분은 진지하게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하셔야만 합니다.
결 론
만일 여러분이 유아세례를 받았다면 그때 여러분은 실제로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나요, 아니면 그저 몇 방울의 물로 뿌림을 받았나요? 이것은 여러분이 어느 편을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전통 중에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잘 기억해 두십시오.
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9).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into the water)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out of water)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니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행8:38-39).
2009-07-03 12:12:30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자만의 죄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확신을 갖는 것이 자만의 죄라고 주장합니다.
자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늘의 도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는 형태도 있고, 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용서를 얻고 공로 없이도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과신하는 형태도 있다[제3편 P. 729 #2092].
이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카톨릭 교회는 스스로 다시 한번 기록된 성경 말씀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낙원인 천국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고 또한 지옥이라 불리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가 있다고 하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한 쪽을 얻고 다른 쪽은 피할 수 있는가를 알려 주고 싶어하지 않으셨을까요?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옥 불꽃에서 벗어나서 자신과 함께 낙원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지내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가능한 한 많이 선행을 쌓아라. 그리고는 행운을 빌고 장차 내 앞에 서게 될 때에 희망을 잃지 말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문입니다! 그것은 고도의 잔학 행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끔찍한 고통의 장소를 피하고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를 분명하고도 쉽게 한 자 한 자 설명해 주시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셔들이고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영존하는 생명을 얻은 사실을 지금 당장 알 수 있다고 명백히 선언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으며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면 여러분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담대히 주장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사실이며 주 예수님의 귀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결코 자만이 아닙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요10:27-2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이미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하기를 원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졌나니(요6:47).
잘 살펴보십시오. 이 약속은 여러분이 선행을 충분히 쌓으면 언젠가 영생을 얻게 될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라(요6:40).
사도 바울은 자기가 천국에 간다고 단언하는 것을 자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내가 이 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니 내가 원하는 바는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빌1:23).
사랑하는 카톨릭 신자 여러분, 이러한 카톨릭 주의의 교리가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카톨릭 교회는 여러분이 더 이상 교회의 필요성을 못 느낄까 봐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바로 지금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를 원하심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신자들이 영원한 천국에 대한 기대 속에서 교회를 위해 일하면서 속박 가운데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된 것이라.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딛1:2).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요일 2:25).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요3:3).
이렇게 다시 태어나려면 여러분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개인의 구원자로 모셔들이고 오직 그분만이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요1:12).
일단 하나님의 가족이 되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롬8:17).
상속자로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운명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사라지지 아니하는 상속을 받게 하셨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예비해 두신 것이라(벧전1:4).
멋지지 않습니까? 하늘에서의 영원한 상속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이미 예약되고 확보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2).
여러분은 하나님의 참된 본성을 알고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믿고 그분의 선하심 가운데서 안심하는 것은 자만이 아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이 지금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음을 알기 원하십니다. 바로 지금 말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행위의 종교에 속박되어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놀라운 은혜에 기초해서 여러분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영원히 거하게 될 곳이 어디인지를 몰라 노심 초사하면서 불안과 번민으로 고문당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눈이 열려서 이러한 경이로운 진리를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청하십시오. 그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림으로써 예수님을 모셔들이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 저는 저의 믿음을 주님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에 두었던 것을 인정합니다.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선행에 복종함으로써 천국에 가 보려고 애써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행이 결코 저를 천국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것만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법임을 믿습니다.
바로 지금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오셔서 저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의 모든 죄악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저의 믿음을 로마 카톨릭 교회(혹은 비복음적 교회)에 두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 순간부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신뢰하겠습니다.
저에게 진리를 보여 주신 것과 제 혼을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이 진심으로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렸다면 이제 당신은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죽을 때에 천국에 갈 것을 보장받았다고 확실히 약속하셨습니다.
자만인가, 믿음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결코 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거하실 때에 그분께서는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결 론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당신은 분명히 당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크게 만족하실 것입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다시 태어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롬8:16-17).
이는 주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성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 그들은 영원히 보존될 것이나 사악한 자의 씨는 끊어지리로다(시37:28).
2009-07-03 12:09:0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성사(聖事)들은 구원을 받는 데 필수적인가요? 다시 한 번 교리 문답서의 대답을 들어 봅시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트리엔트 공의회 DS 1604)[제2편 p.426 #11291].
성사란 무엇입니까?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가 있다. 즉,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다[제2편 p.421 #1113].
사실 이러한 일곱 가지 성사는 선행 시리즈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앞 장에서 살펴본 대로 성경은 선한 행위가 결단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음을 반복해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기 때문이니라(롬3:20).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는 선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잘 보십시오.
오직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우리를 바람같이 몰아가나이다(사64:6).
구원받으려면 카톨릭 신자가 되어야만 하나요?
성사들이 구원에 필요하고 그 성사들은 오직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면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실한 카톨릭 교인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이 사실을 인정하는 카톨릭의 대변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이것이야말로 카톨릭 교리가 명확히 전달해 주고자 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로마 카톨릭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사람들의 전통(유전)
카톨릭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러한 성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 규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그것들을 지킬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전통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사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혹은 카톨릭 교회가 사람들을 평생 동안 교회에 복종시키기 위해서 영원한 저주의 협박 아래 사람들을 겁주려고 사람의 전통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 여러분은 한 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인가, 성사들을 통한 구원인가?
만일 성사들이 구원에 필요하다면 왜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선포할까요?
오직 이것들을 기록함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사도 바울은 구원 문제에 관해서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기 때문이라(고전1:18).
카톨릭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성사들과 같은 선행이 구원에 필요하다고 믿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사역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지옥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이 오직 자기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선언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것을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지금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40).
예수님께서 틀리셨다고 말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틀리셨다고 말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여러분이 이 문제에 관해 카톨릭 교회의 교리를 수용하려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심을 아셔야 합니다.
결 론
로마 카톨릭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로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을 아무 의심 없이 확신하십니까? 여러분은 기꺼이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등을 돌리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저로서는 여러분이 심히 걱정됩니다.
이에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또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르침으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막12:38-39).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하나도 없느니라(갈2:16).
2009-07-03 12:04:25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오류가 없는 교황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및 교리 문제에 있어서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전해 준 교회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를 진리이신 당신의 무류성에 참여시키시기를 원하셨다. ‘신앙에 대한 초자연적 감성’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의 지도를 받아 ‘탈선함이 없이 신앙을 지킨다’(교회헌장 12항, 계시헌장 10항),[제1편 p.343-344 #889].
교리 문답서는 이러한 확신을 다음과 같이 거듭 천명합니다.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히여 선포할 때에,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이러한 무류성은 하느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교회헌장 25항)[제1편 p.344-345 #891].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이러한 교리는 성경 말씀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결코 아무도 완전하거나 무오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롬3:10).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의로운 자는 없나니 교황밖에는 없으며"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 사셨던 사람들 중 절대 오류가 없는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다른 카톨릭 교인들 역시 오류가 없나요?
교리 문답서는 나아가서 카톨릭 주의의 다른 지도자들 역시 이러한 무오류의 경지에 어느 정도는 도달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교도권의 사목적 직무는 하느님의 백성이 해방의 진리 안에 머물도록 보살피는 직무이다.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사목자들에게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류성의 은사를 주셨다[제1편 p.344 # 890].
사목자들이 행사하는 교도권의 무류성은 윤리를 포함해서 구원을 위한 신앙 진리들을 보존하고 설명하며 지켜 나가기에 필요한 교리 조항에까지 미친다[제3편 p.712 # 2051].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부 카톨릭 지도자들이 오류가 없다고 선언하지 않으셨음을 깨닫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일컬어서 "내 마음에 합한 자"(행13:22)라고 하셨을지라도 다윗은 다른 면에 있어서는 살인한 자요 간음한 자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모든 사도들 역시 죄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게 하시고(엡3:8).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딤전1:15).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 한 분 외에 오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외 몇 가지 질문
비성경적이라는 점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이처럼 도에 지나친 교리는 당신 스스로 답변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일으킵니다.
∙스스로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교황을 포함한 다른 카톨릭 지도자들의 주장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상치된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틀리셨다는 이야기인데 여러분은 기꺼이 이러한 입장을 수용하시겠습니까?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당신이 여러 카톨릭 지도자들 및 교황이 교리의 문제에 있어서 절대로 틀릴 수 없다고 믿기를 원하는 걸까요? 그것은 카톨릭 교회의 회원들로 하여금 로마 카톨릭 교회에 더욱더 복종하게 하고 사람들을 철저히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다른 일부 사람들은 오류가 없다고 선언할 수 있는 권위를 도대체 어디에서 부여받았을까요?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오류가 없음을 인정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를 계속해서 거부하는 것입니까?
결 론
여기 의문점 투성이인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이 있습니다. 제발 이러한 카톨릭 교리를 무턱대고 진리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무어라 답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런 다음에 여러분 스스로 결론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히5:9).
2009-07-03 12:00:13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과연 교황은 전 교회에 걸쳐서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권자인가요? 여러분께서 카톨릭의 교리 문답서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 말이 맞습니다.
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교회헌장 22항, 주교 교령 2:9항)[제1편 p.342 #882].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제1편 p.344 #891].
카톨릭 교회가 교황을 모든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누군가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틀리지 않는 선생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분명히 교황은 성령님께 부여된 지위를 스스로 차지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어떤 사람도 차지할 수 없는 지위입니다.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사도 바울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무오류한 스승이라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이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고전2:12-13).
유사성이 있을까요?
만일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면 예수님의 삶과 교황의 삶에는 여러 가지 유사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 한번 살펴볼까요?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께서는 결코 거대한 부를 축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단체 중 하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언제나 화려한 제왕의 복장만을 입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박한 환경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가는 곳마다 호화로운 대접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서민들에게 봉사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자가용 비행기로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 국의 지도급 인사들만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셨기에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그분을 배척하고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경배를 받습니다.
∙교황은 사람들의 경배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경배를 아버지께 돌리시면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10:18)
과연 교황은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아도 괜찮은 것일까요?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경배하려고 할 때 베드로 ‘교황’(?)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십시다.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그를 맞이하며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거늘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행10:25-26).
교황은 과연 교회의 머리인가요?
교리 문답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제1편 p.358 #937].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교황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그 지위는 독점적으로 주 예수님께서만 차지하십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기 때문이니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엡5:23).
교황의 칭호인 성부 곧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와 관련해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마23:9).
그런데도 교황은 '아버지'(Father)라는 칭호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한 분께만 사용해야 하는 칭호인 성부 즉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사오매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4).
하나님께 부여된 칭호를 주제넘게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은 현명한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결코 자신의 영광을 다른 어떤 사람과도 나누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니 이것이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그 밖의 질문들
또 다시 카톨릭 교리와 성경 기록은 심각하게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다음 질문들에 대해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보내셨노라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을까요?
∙어째서 성경은 교황이 아닌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고 있을까요?
∙왜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 대신에 교황이 최종 권위가 되기를 원하는 걸까요?
∙왜 카톨릭 교회는 성령님 대신에 교황이 여러분의 선생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요?
결 론
오직 여러분만이 스스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직 여러분만이 어느 것을 믿을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카톨릭 주의의 전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또한 너희는 모든 정사와 권능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완벽하며(골2:10).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나신 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친히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1:18).
2009-07-03 11:56:3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