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장 24절에서 아나는 정말로 온천을 발견했나?
창세기 36장은 야곱의 형 에서의 계보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킹제임스 성경은 아나라는 사람이 노새들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개역성경 등은 노새들이 아니라 온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킹제임스 마제스티
시브온의 아이들은 이러하니 곧 아야와 아나인데 이 아나는 자기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들을 먹일 때에 광야에서 노새들을 발견한 그 아나더라.
And these are the children of Zibeon; both Ajah, and Anah: this was that Anah that found the mules in the wilderness, as he fed the asses of Zibeon his father.
개역개정 등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비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여기서 노새들로 번역된 말은 스트롱 번호 3222(남성 복수)이고 원어 사전에 가서 보면 분명하게 노새들로 되어 있습니다.
3222 !yE yem {yame}
3117의 동형에서 유래;‘따뜻함’봄 :- 노새
존 길, 매튜 플 등의 주석을 보면 여기의 아나는 자기 아버지의 나귀들을 먹이다가 수나귀와 암말과의 잡종인 노새를 만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4절에서 노새로 번역된 말은 성경 전체에서 여기 한 군데만 나오는데 이 말이 새 역본들에서 온천으로 번역되는 이유는 엘리콧 등의 주석이 말해 주듯이 라틴어 카톨릭 성경을 만들어 준 제롬이라는 천주교 학자가 그렇게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는 노새가 이때에 아나에 의해 (교배되어) 발견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문맥이 나귀, 노새로 이어지는 것이 마귀와 온천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당연히 월씬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NKJV도 마찬가지로 노새들로 번역하였습니다.
창세기 36장 24절 주석 참조
2021-12-15 14:08:10 | 관리자
창세기 42장 24절에서 왜 요셉은 시므온을 가두었을까?
창세기 42장 24절을 보면 요셉이 자기 형들을 가나안으로 다시 돌려보내면서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그들을 떠나 돌아서서 울고 그들에게 다시 돌아와 그들과 대화하다가 그들로부터 시므온을 취해 그들의 눈앞에서 결박하였더라.
왜 요셉은 여러 형들 중에서 그를 인질로 잡아두었을까요?
여러 주석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시므온이 그의 형들 가운데 가장 성격이 포악한 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34장 25절 이하를 보면 시므온과 레위가 잔인하게 세겜과 그의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25 셋째 날 그들이 아플 때에 야곱의 아들들 중 두 아들 곧 디나의 오라비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각각 자기 칼을 취한 뒤 담대하게 그 도시를 습격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26 칼날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며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더라.
또 창세기 49장 5-6절을 보면 그의 아버지 야곱도 그가 잔인한 자임을 인정합니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들이며 잔인한 도구들이 그들의 거처에 있도다.
6 오 내 혼아, 너는 그들의 은밀한 모임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내 존귀야, 너는 그들의 모임에 연합하지 말지어다. 이는 그들이 분노하여 사람을 죽이고 자기들의 의지대로 벽을 파 내려갔기 때문이라.
창세기 37장 18절 이하에는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이려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 서로에게 이르되, 보라, 이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그러므로 이제 오라. 우리가 그를 죽여 어떤 구덩이에 던지고 말하기를, 어떤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들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보리라, 하매
여기서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자고 말한 장본인이 아마도 시므온일 가능성이 크다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자인한 자가 인질로 남겨지면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덜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까 라고 요셉이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일을 통해 시므온은 크게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42장 24절 매튜 풀 등의 주석
Simeon, partly, because next to Reuben he was the eldest, and, as it may be probably gathered from his bloody disposition, Genesis 34:25 49:6, the most fierce and forward against Joseph, when Reuben was for milder counsels, as we see here, Genesis 42:22 38:29; and partly, because the detainment of one of so perverse and furious a temper would least afflict his father, and most secure Benjamin, who was to come with his brethren. He bound him before their eyes, that it might make deeper impression upon their hard hearts, and make their repentance more effectual.
2021-12-15 12:19:49 | 관리자
창세기 46장 34절의 가증한 목자들
창세기 46장 34절에 보면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파라오를 만나면 해야 할 말을 일러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끝에는 ‘모든 목자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가증한 존재’라는 조금 이상한 표현이 나옵니다.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의 생업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가축을 치는 것이었는데 우리와 또한 우리 조상들이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그러면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리니 이는 모든 목자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가증한 존재이기 때문이니이다, 하니라.
That ye shall say, Thy servants' trade hath been about cattle from our youth even until now, both we, and also our fathers: that ye may dwell in the land of Goshen; for every shepherd is an abomination unto the Egyptians.
존 길(John Gill) 등의 주석을 보면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1. 목자들이 자기들이 기르는 짐승들의 젖이나 고기를 먹어서가 아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당시에 고기를 먹었다(창43:16).
2. 이집트 사람들이 신들로 여기는 짐승들을 목자들이 먹어서도 아니다. 당시에는 그런 우상 숭배가 편만하지 않았다.
당시 이집트에는 왕 밑에 세 부류의 사람들 즉 제사장, 군인, 그리고 목자들이 있었으므로 목자들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들과 역사적 증언들을 종합해서 볼 때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페니키아, 에티오피아 등에서 쳐들어오는 외국인 목자들 부대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이런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의 형들 역시 외국인 목자였으므로 아마도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큰 미움이 대상이었을 것이므로 요셉은 신중하게 형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Every shepherd is an abomination unto the Egyptians
영어에서 every shepherd로 표현된 것은 '목자들은 모조리'를 뜻하는 매우 강력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아마 외국인 목자들에 대한 심한 거부감이 이런 표현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46장 34절 주석 존 길 등
for every shepherd is an abomination unto the Egyptians; not because shepherds ate of the milk and flesh of the creatures they fed, which the Egyptians abstained from; for the Egyptians in those times did eat the flesh of slain beasts, see Genesis 43:16; nor because they fed, and slew, and ate those creatures, which the Egyptians worshipped as gods, as Jarchi; for it does not appear that the Egyptians were so early worshippers of such creatures; nor is this phrase, "every shepherd", to be understood of any other than foreign shepherds; for one of the three sorts of the people of Egypt, as distinct from, and under the king, priests, and soldiers, according to Diodorus Siculus (d), were shepherds, and were not despised on that account; for, as the same writer says, all the Egyptians were reckoned equally noble and honourable (e); and such it is plain there were in Egypt, in the times of Joseph, see Genesis 47:6; and goat herds were had in esteem and honour by those about Mendes, though swine herds were not (f): wherefore this must be understood of foreign shepherds, the Egyptians having been greatly distressed by such, who either came out of Ethiopia, and lived by plunder and robbery (g), or out of Phoenicia or Arabia; for, according to Manetho (h), it was said that they were Arabians or Phoenicians who entered into Egypt, burnt their cities, &c. and set up kings of their own, called their Hycsi, or pastor kings: and therefore Joseph might the rather fear his brethren and father's family would be the more contemptible in that they came from Canaan, which was near to Arabia and Phoenicia; but Dr. Lightfoot (i) is of opinion, that the Egyptians, being plagued for Abraham's and Sarah's sake, made a law, that for the future none should converse with Hebrews, nor with foreign shepherds, so familiarly as to eat or drink with them.
2021-12-15 12:01:11 | 관리자
베드로전서 4장 5-6절의 죽은 자들과 죽어 있는 자들
베드로는 자기의 죽음을 앞두고, 당시 로마 제국에서 큰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베드로전후서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4장 1-3절에서 그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1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가 이미 죄를 그쳤기 때문이니
2 그러므로 그는 육체 안에 거할 자기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리라.
3 이는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의 뜻을 이룬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우리에게 족하기 때문이라.
1절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그쳤다고 하는데 이 말은 의도적으로 죄 짓는 것을 그쳤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2-3절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4절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뀌면 이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4절 이 점에서 그들이 너희가 자기들과 함께 달음질하여 동일하게 과도한 방탕에 이르지 아니함을 이상히 여기며 너희를 비방하나
그러나 5절에서 보듯이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해야 합니다.
5절: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신 분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5절에서 살아 있는 자들은 구원받는 자들이고 죽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전자는 휴거 이후 곧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결정하기 위한 회계 보고를 하고(고전3:11-15) 후자는 그 뒤 약 1007년(7년 환난기+1000년 왕국) 쯤 지나서 크고 흰 왕좌 앞에서 회계 보고를 합니다(계20:11-15).
그런데 6절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6절 이런 까닭으로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육으로는 사람들을 따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이런 까닭으로’는 ‘모든 것을 회계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를 뜻합니다.
죽어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결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짐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
6절의 죽어 있는 자들과 5절의 죽은 자들은 영어를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5 Who shall give account to him that is ready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6 For for this cause was the gospel preached also to them that are dead, that they might be judged according to men in the flesh, but live according to God in the spirit.
즉 5절의 죽은 자들과 6절의 죽어 있는 자들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5절과 6절의 죽은 자들(The dead)과 죽어 있는 자들(them that are dead)을 달리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역,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등 거의 모든 성경들은 둘 다를 그냥 죽은 자들이라고 번역하여 제대로 성경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개역 5.6절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게 될 그 분께 설명하게 되리라.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한번 읽어 보기 바랍니다.
이런 식의 번역으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직고하다, 설명하다, 사람과 일치하여, 하나님과 일치하여 등 번역 자체가 난해합니다.
6절의 죽어 있는 자들은 베드로 당시에 이미 구원받고 죽어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육신으로는 사람들의 판단을 받고 고난을 당했지만 영으로는 살아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2-3절과 비교해 보시면 대비가 쉽게 될 것입니다.
6절을 말하면서 베드로는 지금 살아 있는 성도들이 6절의 성도들처럼 지금은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것들을 상속받을 것을 말하며 이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의 시작이 조금 이상합니다.
7절 그러나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
7절에 ‘그러나’가 나온 것은 이렇게 고난을 당하지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니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 등 그 당시 사도들은 다 자기들 시대에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임박한 재림 신앙을 가지고 핍박을 견디며 믿음 생활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베드로전서 4장 1-7절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하는 일이 조금 쉬워질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6절 등 주석: 반즈 주석 좋음
샬롬
2021-12-15 10:57:21 | 관리자
히브리서 6장 9절의 바른 번역
히브리서 6장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말씀입니다.
6장 15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5절 이런 식으로 그(아브라함)가 끈기 있게 견딘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5절의 그 약속하신 것이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끈기 있게 견뎌야 구원을 받는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13-14절을 보면 여기의 약속은 구원이 아닙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구원은 이미 오래 전에(약 50년 전에) 확고하게 이루어졌고 그는 이삭을 이미 낳았습니다.
14절의 약속은 이삭을 바침으로써 그가 번성하게 됨을 보여 줄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이삭을 바친 뒤 그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창22:16-18절을 보기 바랍니다.
16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나를 두고 이것을 맹세하였노라. 즉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므로
17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내가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18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라, 하니라.
10-12절을 보면 여기의 주제가 구원이 아니라 성도들이 누릴 복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 아니하사 자신의 이름을 위해 너희가 보여 준 너희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성도들을 섬겨 온 것과 또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11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열심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우리가 바라노니
12 이것은 너희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13-15절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10-12절을 설명합니다. 즉 여기의 주제는 구원이 아니라 구원 뒤에 따라오는 복입니다.
7장뿐만 아니라 10장도 다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에 받게 될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꾸준히 견딘 자들(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누렸지만 나머지는 구원은 받았어도(이집트 탈출 시 믿음으로) 광야에서 멸절되어 가나안의 복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떠나 예수님을 믿게 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이제 구원받았지만 여러 가지 핍박과 환난을 견지디 않고 중도에 미끄러지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이집트를 떠난 구약 시대 이스라엘 성도들같이, 성도가 누릴 가나안의 복을 잃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누릴 복을 잃는 것입니다.
6장에서 사도는 이것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또다시 기초적인 교리를 놓는 일을 할 필요가 없음을 말합니다.
4-8절에서 사도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을 잃었다가 다시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8절을 보면 사도는 구원을 받고 나서 심각한 배도의 길을 가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전5장에서 심각한 음행을 범한 자(성도)를 죽음에 내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 이것은 요일5:16-17이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짓는 것을 보거든 그는 간구할 것이요, 그러면 그분께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그에게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나는 그가 그것으로 인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모든 불의가 죄이지만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느니라.
바울은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를 주고 나서 9절에서 히브리 성도들에게는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을 확신 있게 말합니다.
9절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9절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 관하여는 더 좋은 것들과 또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있음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But, beloved, we are persuaded better things of you, and things that accompany salvation, though we thus speak.
9절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구원 상실 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개역 등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제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에 따르면 바울의 말 즉 9절은 그들에게 구원의 증거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에 동반되는 선한 행위가 그들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10절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10절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지 아니하사 자신의 이름을 위해 너희가 보여 준 너희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성도들을 섬겨 온 것과 또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러므로 6장은 구원의 상실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을 보여 주고 다만 구원받는 자가 심각한 배도의 길로 들어서면 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중요한 부분에서 개역 성경은 9절을 이상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처럼 그들에게 구원에 가까운 것이 있다고 하면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이집트(세상)를 떠난 사람들입니다.
다만 지금 광야에서(세상에서)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나안의 복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10장 26-39절도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으나 순종하지 않다가 광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맥을 잘 보고 성경을 읽으면 영원한 구원의 의미가 확실해질 것입니다.
2021-12-14 10:52:42 | 관리자
히브리서 4장 12-13절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12-13절을 보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13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위에서 보듯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12절을 번역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분이라고 하였고 연이어 13절은 그분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분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것에 대해 의아해하기에 잠시 설명을 드립니다.
이를 위해서는 영어를 보아야 합니다.
12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13 Neither is there any creature that is not manifest in his sight: but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ed unto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
영어로 12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이 부분의 뒤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discerner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discerner(분별하는 자 혹은 분별하는 분)로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13절이 나오며 앞부분에 in his sight가 나옵니다. 여기의 his 역시 의인화된 discerner를 가리킵니다(물론 하나님으로 보아도 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영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인화한 것을 따라 형식적 일치를 위해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영어 성경은 왜 의인화를 했을까요?
1-11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히브리 성도들 가운데 아무도 불신이라는 죄의 본을 따라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12절은 원래 ‘왜냐하면’의 for로 시작합니다. 바울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말씀 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맥을 고려하고 의인화된 discerner를 생각하면서 이 부분을 읽으면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주석
2021-12-14 10:15:09 | 관리자
히브리서 13장 10-16절의 이해
히브리서 13장 10-16절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읽으면 앞뒤 문맥상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0절이 왜 갑자기 나오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13:9-16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9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에 끌려다니지 말라. 음식이 아니라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함이 선한 일이니 음식에 전념한 자들에게 음식이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느니라.
11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해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13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자.
14 여기에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오히려 우리가 다가올 도시를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16 더욱이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느니라.
잘 아시는 것처럼 히브리서는 사도 바울이 구약과 신약을 비교하면서, 유대인들 가운데 주님을 믿게 된 자들에게 그리스도와 신약의 우월성을 보여 주어 그들이 배도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도록 하기 위해 쓴 서신입니다.
10-16절에서 사도는 히브리서를 마감하면서 또다시 구약과 신약의 비교를 통해 신약 성도들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사도는 신약 성도들에게 특별한 제단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 즉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나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즉 신약 성도들은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구약식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갑자기 먹는 이야기가 나올까요?
9절에서 음식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신약 및 구약 성도들의 차이를 먹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제단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갈보리 십자가로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로 보는 견해입니다.
여하튼 구약식으로 경배하는 자들은 우리가 가진 제단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이 음식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 음식으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11절은 10절에 대한 설명입니다. 즉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지 못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12절은 11절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13절 역시 12절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14절에서 사도는 당시 핍박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함을 촉구합니다.
15절은 신약 시대에는 구약식 짐승의 희생이 아니라 우리 입으로 드리는 찬양의 희생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16절은 신약 시대 성도들의 선행의 희생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이해하고 이 부분을 읽으면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10절이 갑자기 나오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0절 주석
2021-12-14 09:49:33 | 관리자
욥36:5, 딤후4:1의 the+형용사 단수 및 복수 문제
우리말은 단수 복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원어, 영어 성경 등을 읽으면 단수 복수가 명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가능한 한 단수 복수를 명확히 구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단수 복수 관련해서 먼저 우리말의 문제와 한계를 보겠습니다.
복수를 지칭하는 형용사와 연결되면 그 다음 단어가 단수든 복수든 모두 복수가 됩니다.
1. 모든 사람이 왔다. 모든 사람들이 왔다.
국어 연구원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모든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나 둘 다 사용 가능합니다.
2. 저기 아름다운 꽃 다섯 송이가 있다. 꽃들 다섯 송이들이 있다.
‘꽃들 다섯 송이들이 있다’ 식으로는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사실 정확성을 기한다고 하면서 후자처럼 번역하면 졸역이 됩니다.
여하튼 우리말의 용례와 한계 안에서 단수 복수 구분이 되면 좋으므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가능하면 복수를 복수로 처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원어, 영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the+형용사’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말이 성경에는 자주, 많이 나옵니다.
The rich, the poor, the wicked, the just, the living, the dead, the sick
사실 이런 말들이 단수인지 복수인지 영어로는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12장 the firstborn 문제
그런데 원어를 보면 단수인지 복수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the+형용사’ 표현 수 백 군데를 다 원어를 참조하여 이것들의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공인 본문을 사용하는 슈퍼바이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에를 들어 욥36:15를 보겠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He delivereth the poor in his affliction, and openeth their ears in oppression.
이 구절에서 앞의 the poor는 단수이고(바로 뒤의 his 참조), 뒤는 복수(their)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가난한 자가 고난당할 때 그를 구출하시며 압제당할 때 그들의 귀를 여시나니
욥36:6을 보겠습니다.
He preserveth not the life of the wicked: but giveth right to the poor.
이런 구절의 the wicked, the poor는 영어로만 보면 단수 복수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슈퍼 바이블을 사용해서 원어의 단수 복수를 고려하면 번역이 다음과 같이 됩니다.
그분께서는 사악한 자(단수)의 생명을 보존하지 아니하시고 가난한 자들(복수)에게 정당한 것을 주시며
이런 문제는 시가서에 특히 많습니다.
물론 신약 성경에도 매우 많습니다. 다음은 한 예입니다.
딤후4:1을 보겠습니다.
I charge thee therefore before God, and the Lord Jesus Christ, who shall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at his appearing and his kingdom;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앞과 또 친히 나타나실 때에 자신의 왕국에서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기존 성경들은 대부분 the living과 the dead를 산 자와 죽은 자로 단수 처리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보겠습니다.
For Christ also hath once suffered for sins, the just(단수) for the unjust(복수), that he might bring us to God, being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quickened by the Spirit: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해 한 번 고난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해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려 하심이라.
이런 식으로 이번의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the+형용사’를 다 찾아서 가능한 한 다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여 표기하였습니다.
2021-12-13 15:50:59 | 관리자
디모데전서 3장 16절, 시편 1편, 로마서 1장 등에 나오는 godly, ungodly 등의 번역
성경을 번역할 때 참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가 godly 혹은 ungodly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 단어들의 사용 빈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godly:15회(시4:3-요삼6), godliness 15회(딤전2:2-벧후3:11), 총 30회
ungodly: 27회(삼하22:5-유18), ungodliness 4회(롬1:18-딛2:12), 31회
godly 혹은 ungodly 총 61회
개역성경 등에는 이 말이 주로 경건하다, 불경건하다, 악인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옥스퍼드 사전과 한영사전에서 godly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OED: Of or pertaining to God; coming from God; divine; spiritual. Obs. exc. arch.
한영사전: 신을 공경하는, 고어: 하나님에게 속한, 신성한
그러니까 원래대로 하면 godly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등의 뜻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2011년 400주념 기념판까지 이미 61회의 반 수 이상을 그렇게 번역하였고 개역성경도 피치 못하게 몇 군데는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후7:10을 보겠습니다.
For godly sorrow worketh repentance to salvation not to be repented of: but the sorrow of the world worketh death.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개역성경도 마찬가지 이 부분은 마찬가지입니다.
딤전3:16을 보겠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And without controversy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God was manifest in the flesh, justified in the Spirit, seen of angels, preached unto the Gentiles, believed on in the world, received up into glory.
킹제임스 마제스티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다 인정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시고 들려서 영광으로 들어가셨느니라.
개역개정 등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16절 후반부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처녀탄생, 인성과 신성의 존재, 믿음의 대상, 승천 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 전에 나오는 Godliness입니다.
이런 데 나오는 godly를 경건으로 번역되면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도무지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품은 성질이나 됨됨이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런 데의 godliness는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신비 등으로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한편 시1:1, 1:4, 1:6 등에는 godly가 잘 번역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Blessed is the man that walketh not in the counsel of the ungodly, nor standeth in the way of sinners, nor sitteth in the seat of the scornful.
킹제임스 400주년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개역성경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개역성경은 등은 이 단어를 악인들로 번역하였습니다.
사실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나 악인들은 둘 다 원래 뜻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로 하고 이런 데를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ungodly)로 번역하였습니다.
킹제임스 마제스티
1:1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계획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1:4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그렇지 아니하며 오직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도다.
1:6 의로운 자들의 길은 {주}께서 아시나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편은 단순히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겨와 같고 (1:4) 이들의 길은 결국 망한다고(구원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말합니다.
아마도 사울과 같은 사람이 이런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도 이와 비슷합니다.
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hold the truth in unrighteousness;
킹제임스 400주년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킹제임스 마제스티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모든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이렇게 해야 1장 19절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물론 godly, ungodly를 번역할 때는 하나님을 명조체로 번역하였습니다. God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성경 전체의 godly, ungodly를 번역하여 원래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2021-12-13 15:29:19 | 관리자
군대들의 주, 만군의 주, 만군의 여호와(Lord of Hosts) 설명
우리가 약 30년 동안 성경 단어들을 바르게 번역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성경의 영향, 비기독교 세상의 한계 등으로 2011년 400주년 기념판까지 제대로 고치지 못한 단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만군의 주’(기존 성경의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성경에는 군대를 나타내는 말 host가 단수와 복수로 총 491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Host(192), hosts(299), 총 491회
이 host는 LORD of hosts의 용례를 빼고는 모두 군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LORD of hosts는 구약성경에 삼상1:3-말4:3까지 245회 나오고 기존 성경에서는 만군의 여호와(하나님), 킹제임스 성경 400주년 판에서는 만군의 주로 번역되었습니다.
한편 이 표현은 신약성경 롬9:29와 약5:4에도 두 번 나오고 모두 만군의 여호와 혹은 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대다수 성도들은 지금까지 성경을 읽으면서 만군의 하나님, 만군의 주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읽어 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만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만군은 무엇을 뜻할까요? 만군은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한 번도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 어른들도 어려운데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야 하는데 여기의 hosts를 만군으로 하고 다른 데는 군대로 하면 성경 해석이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해집니다.
이제 Host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창2:1에 처음 나옵니다.
영어 킹제임스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host of them.
킹제임스 마제스티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그리하여 하늘들과 땅이 완성되었고 하늘들의 군상들도 그러하니라.
개역 개정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일단 개역 개정의 문제점을 보겠습니다. 2장 1절은 단순히 천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늘들이라는 복수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그저 만물이 아닙니다.
1장에서 하나님은 6일 동안 우주 공간(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지구, 그리고 이것들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십니다.
이 모든 창조 행위의 결론이 창2:1-2입니다.
원어 사전으로 가서 host라는 말을 찾아보면 이 말은 전쟁을 위해서 조직된 무리 즉 군대를 뜻합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 많은 떼, 다수《of》; 《고어》 군세, 군대
분명히 고어로는 군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옥스퍼드 사전 역시 이 말이 군대임을 보여 줍니다.
OED: An armed company or multitude of men; an army. Now arch. and poet.
그러므로 host는 군대를 뜻합니다. 이것이 창2:1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말씀보존학회처럼 이 말을 군상으로 처리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말씀 보존이 안됩니다.
원어 사전의 용례 역시 이를 지지합니다.
(Sabaoth, 쌔베요스) 군대들. ‘여호와 사바오쓰’(Jehovah Sabaoth)는 ‘군대들의 주’(The LORD of hosts)이며 기존 성경에서는 이를 ‘만군의 여호와’로 표현하였다. 이 말의 ‘군대들’에는 하늘의 군대인 천사들과 일월성신 군대 즉 천체들과 땅의 군대들과 심지어 메뚜기, 까마귀, 메추라기, 자벌레 같은 창조물 군대도 모두 포함한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군대를 치리하며 조절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신약과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군대의 대장이시다(삼하6:2; 시24:10; 롬9:29; 약5:4).
군대들의 주는 삼상1:3에 처음 나오며 연이어 한나의 기도에 나옵니다(1:11). 여기의 군대들의 주는 우리의 어려움을 모든 군대들로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아들의 수태가 불가능한 한나의 경우 아들을 수태하게 해 주는 권능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사야서와 계시록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밤낮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군대들의 주여!”라고 외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사6:3; 계4:8).
즉 하나님은 온 세상과 우주 공간의 모든 군대들을 치리하는 분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장면의 대화를 보겠습니다(삼상17:45).
이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내게 오지만 나는 네가 도전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군대들의 주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Then said David to the Philistine, Thou comest to me with a sword, and with a spear, and with a shield: but I come to thee in the name of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thou hast defied.
여기서 army와 host가 같은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이번 마제스티 에디션에서는 285회에 걸쳐 나오는 만군의 주, 만군의 하나님을 모두 군대들의 주, 군대들의 하나님으로 교정하였습니다.
기존 용어에 사람들이 익숙해 있어도 익숙함보다는 정확함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이해하기에 쉽습니다.
2021-12-13 14:09:36 | 관리자
히브리서 12장 23절의 firstborn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단수복수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영어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석하는 분들에게서 발견되는 오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히12:23
영어 KJV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킹제임스 마제스티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모든 자들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이 부분은 신약 시대 성도들이 도달한 곳을 말하며 23절은 그곳 중 하나가 처음 난 자들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23절을 보면 firstborn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 firstborn이 처음나신 분이신 예수님이라고 말하며 따라서 단수를 써서 처음난 자의 총회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무식한 주장입니다. 구절의 단어들 구성과 시제 단수복수 면에서 영어는 원어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그리스어 공인 본문은 여기의 firstborn이 분명하게 남성 복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firstborn은 복수로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단수로 번역되면 명백한 오역입니다. 다음은 슈퍼 바이블의 내용입니다.
4416 prwtotovko" prototokos {pro-tot-ok'-os}
4413과 5088의 대체어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먼저 태어남’(일반적으로 명사로서), 처음난 <롬 8:29; 골 1:15>형. firstborn;
형용사, 형용대명사, 소유격, 남성 복수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쓰면서 보니 참으로 이상하게도 말씀보존학회는 이 단어를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하늘에 기록된 첫째로 난 자의 총회와 교회, 모든 것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와,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에게와,
그들이 무슨 이유로 명백한 복수를 단수로 번역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들이 열렬히 추종하는 럭크맨 박사의 히브리서 주석을 보니 여기의 firstborn이 단수도 되고 복수도 되며 단수복수에 따라 여기의 총회가 교회도 되고 이스라엘도 된다는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교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이므로 단수로 하면 결코 안 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들, 특히 럭크맨같이 여러 중요한 경우에 사적 해석으로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안 됩니다.
단수 복수 문제
이와 관련해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럭크맨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서가 신약시대 교회와는 상관이 없고 환난기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인 히브리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들 역시 주님의 교회에 속한 자들이며 따라서 히브리서의 모든 내용은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르게 나눈다고 하면서 극단적인 세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중요한 말씀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등의 일반 서신도 모두 현 시대 교회의 크리스천들을 향한 주님의 귀중한 말씀입니다. 이런 보화를 빼앗아가려는 마귀의 계략들에 대해 우리는 무지하지 않습니다(고후2:11).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신약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매우 귀중한 말씀입니다.
큰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9 12:37:10 | 관리자
창세기 22장 8절의 provide oneself는 어떻게 번역해야 합니까?
안녕하세요?
갑자기 한 분이 창세기 22장 8절 번역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해서 글을 올립니다.
설명을 위해 먼저 여러 번역을 소개하겠습니다.
영어 KJV
And Abraham said,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so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
킹제임스 마제스티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렇게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서
개역개정, 공동, 바른 성경 등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영어 NIV
Abraham answered,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my son." And the two of them went on together.
영어 NASB
And Abraham said,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my son." So the two of them walked on together.
보시는 바와 같이 세상의 모든 성경들은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을 ‘하나님이 친히 어린양을 예비하시리라’ 혹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어린양을 예비하시리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분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말씀보존학회의 번역 때문입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 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말씀보존학회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린 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의 himself를 목적어로 취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30년 전부터 동일합니다.
우리는 영어 provide의 사전적 용례와 성경의 용례에 따라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영어 원문은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으로 되어 있습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비롯한 여러 사전에서 ‘provide’를 살펴보면 우리의 본문 용례 즉 “provide oneself something”의 구체적인 용례가 없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이 자기 자신이, 자기를 위해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사례들이 더러 나와 있습니다.
To equip or prepare oneself, to make oneself ready, prepare (to do something, for or against something). Cf. 3 and 4. Obs.
여하튼 여러 개의 영어 사전들을 살펴보았지만 provide oneself의 oneself를 목적어로 취하는 사례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다 다 그것을 재귀 대명사로 보고 ‘친히, 자기를 위하여’ 등의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영어 성경들이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성경으로 푼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또한 킹제임스 성경의 내장 사전이 최종적인 권위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에서 ‘provide’를 포함하는 구절 중에 “provide oneself something”의 용례를 찾아서 어느 것이 맞는지 성경으로 비교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경우 다행히도 창세기를 포함해서 성경에 두 번 그 용례가 나와 있습니다. 눅12:33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Sell that ye have, and give alms; provide yourselves bags which wax not old, a treasure in the heavens that faileth not, where no thief approacheth, neither moth corrupteth.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 구제하며 너희 자신을 위해 낡지 않는 가방들 곧 하늘들에서 없어지지 않는 보물을 예비하라. 거기서는 도둑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좀도 부패시키지 못하느니라.
이 구절은 정확하게 provide oneself something의 구조 즉 provide yourselves bags의 용례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보존학회가 일관성 있게 번역하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 구제하며 너희 자신을 낡지 않는 가방들로 예비하라.
그런데 이런 번역은 말이 안 됩니다.
심지어 말씀보존학회도 다음과 같이 이 부분을 ‘너희 자신을 위하여’로 번역하였습니다.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만들라. 고갈되지 아니하는 하늘들의 보물이니, 거기에는 도둑도 접근하지 못하고 좀도 손상시키지 못하느니라.
동일한 provide oneself something의 oneself를 한 구절에서는 ‘자기를’로 번역하고 다른 데서는 ‘자기를 위하여’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1611년 당시 동일한 영어 성경 번역자들이 provide의 동일한 용례를 사용하여 일관성 있게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너희 자신을 가방들로 예비하라가 말이 될까요? 이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provide oneself something의 oneself가 재귀 대명사로서 '자기가 직접' 혹은 '자기를 위하여'로 번역되어야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경과 영어 사전의 용례를 따라 지금 있는 것처럼 창22:8을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말씀보존학회는 왜 이렇게 번역하였을까요?
럭크맨, 리플링거, 사무엘 깁 등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분들이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당시 아브라함에게 예비해 주신 것은 어린양이 아니라 13절에 있듯이 숫양이기 때문에 창22:8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어린양이 되실 것을 보여 주는 예언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레이시 목사님도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생각을 번역에 넣으려는 것이지 성경 본문이 이야기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것을 주장하면 주변의 동료들에게 단순한 영어 문장을 왜곡해서 보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이 구절이 아니라도 하나님이 성육신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절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문법 자체와 성경의 용례가 지지하지 않는 구절들을 근거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다른 영어 성경보다 우수하다거나 원문보다 향상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냥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오히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면 좋겠습니다.
굳이 이 구절을 말씀보존학회처럼 번역하여 이해하려고 한다면 앞으로 창22:8을 논할 때 우리 성경을 오역(誤譯)이라 하지 말고 이역(異譯)이라 하기 바랍니다.
참고로 영어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석하는 분들에게서 발견되는, 이와 비슷한 오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히12:23
영어 KJV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ich are written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just men made perfect,
킹제임스 마제스티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모든 자들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이 부분은 신약 시대 성도들이 도달한 곳을 말하며 23절은 그곳 중 하나가 처음 난 자들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23절을 보면 firstborn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 firstborn이 처음나신 분이신 예수님이라고 말하며 따라서 단수를 써서 처음난 자의 총회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무지한 주장입니다. 구절의 단어들 구성과 시제 단수복수 면에서 영어는 원어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그리스어 공인 본문은 여기의 firstborn이 분명하게 남성 복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firstborn은 복수로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단수로 번역되면 명백한 오역입니다. 다음은 슈퍼 바이블의 내용입니다.
4416 prwtotovko" prototokos {pro-tot-ok'-os}
4413과 5088의 대체어에서 유래;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먼저 태어남’(일반적으로 명사로서), 처음난 <롬 8:29; 골 1:15>형. firstborn;
형용사, 형용대명사, 소유격, 남성 복수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쓰면서 보니 참으로 이상하게도 말씀보존학회는 이 단어를 단수로 번역하였습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하늘에 기록된 첫째로 난 자의 총회와 교회, 모든 것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와,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에게와,
그들이 무슨 이유로 명백한 복수를 단수로 번역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열렬히 추종하는 럭크맨 박사의 히브리서 주석을 보니 여기의 firstborn이 단수도 되고 복수도 되며 단수복수에 따라 여기의 총회가 교회도 되고 이스라엘도 된다는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교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이므로 단수로 하면 결코 안 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들, 특히 럭크맨같이 여러 중요한 경우에 사적 해석으로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창22:8의 번역이 이렇게 되어야 함을 한영대역 성경 부록에 밝혔습니다(부록 70쪽, 한글성경 용어 설명)
이렇게 설명해도 럭크맨을 추종하는 말씀보존학회의 번역과 주장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믿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마음껏 누릴 자유입니다.
큰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9 12:32:20 | 관리자
히브리서 4장 8절의 예수는 여호수아로 보는 것이 좋다(사도행전 7장 45절도).
킹제임스 성경으로 히브리서 4장 8절을 보면 예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킹제임스 마제스티
만일 예수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분께서 그 뒤에 다른 날을 말씀하려 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영어 KJV
For if Jesus had given them rest, then would he not afterward have spoken of another day.
개역 개정, 바른 성경 등은 여기의 예수를 여호수아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개역 개정 등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앞뒤 문맥상 여기의 Jesus가 구약 시대 여호수아를 가리킨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이름 여호수아가 신약에서는 예수로 표현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즉 구약의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신약 식으로 예수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의 예수를 주의 천사로 보고 예수님이라고 해석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 45절의 예수가 보여 주듯이 이 예수는 여호수아로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 합당합니다.
그 뒤에 일어난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의 얼굴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소유지 안으로 예수와 함께 또한 그것을 가지고 들어가 다윗의 시대까지 이르렀느니라.
영어 킹제임스 신약성경으로 가면 구약 시대 사람들의 이름이 그리스식으로 바뀌어 표기되었습니다.
1. 이사야, 구약 Isaiah, 신약 Esaias(마13:14 등)
2. 엘리야, 구약 Elijah, 신약 Elias(마11:14 등)
3. 호세아, 구약 Hosea, 신약 Osee(롬9:25)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의 이름을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으로 가서 비교해 보시면 구약식 이름과 신약식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Joshua가 신약에서 Jesus로 표기됨을 알 수 있습니다.
4. 여호수아, 구약 Joshua, 신약 Jesus(행7:45; 히4:8), 신약 성경에는 Joshua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음
이처럼 구약과 신약의 이름 표기가 달라도 성경 번역을 할 때는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신구약 모두 이사야, 호세아 등으로 통일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미제스티 성경 번역에서 예외로 둔 것은 히4:8과 행7:45의 여호수아 사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 Jesus는 예수로 두어야 신약과 구약의 예수를 비교해 보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여호수아라 하지 않고 예수로 두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고 이 두 구절의 예수는 1차적으로 여호수아로 읽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두 곳의 예수를 주의 천사이신 예수님으로 이해하려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다만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석해야만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구약 이름의 용례와 시간적으로 배열되는 문장의 구조가 후자보다는 전자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의 100% 모든 주석이 이 두 구절의 예수를 여호수아로 보고 있습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2021-12-08 14:50:54 | 관리자
히브리서 2장 5절 이하의 문맥과 의미
히브리서 1-2장을 읽다 보면 2장 5절부터가 어디에 연결되었는지, 왜 갑자기 여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지 등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분이심을 보입니다. 히브리서 1장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사실 바울이 기독교의 구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천사들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문맥 밖에서 삽입한 구절로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까 1장 1-14절 다음에 2장 5절이 나오면 문맥이 더욱 자연스럽습니다. 즉 2장 5절부터 그 뒷부분은 1장에 이어서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 줍니다. 사실 2장 1-4절은 1장 14절에 나오는 구원을 강조해서 이야기하며 사람이 반드시 구원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2장 5절부터 사도 바울은 1장에 이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천사들에게는 주신 적이 없는 큰 영예를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5절에 있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가오는 세상 (곧 천년 왕국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시키지 아니하시고 자기 아들이신 예수님께 복종시키심으로써 큰 영예를 그분에게 주신 것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6-8절은 세상의 통치가 원래는 사람에게 주어졌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현됨을 보여 줍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이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냐? 그분께는 모세와 같은 영광도 없다”라고 주장하므로 사도 바울은 그 이후에 예수님 성육신의 필요와 목적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9절).
또한 그분이 고난도 당하고 슬픔을 알아야 함도 보입니다(2:10-17).
2장 16절은 죽기 위해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만 하시는 예수님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부분이 현대 역본들에서는 완전히 다 파괴되었습니다.
킹제임스 마제스티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즉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천사가 아니라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셨음).
개역 개정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공동 번역 등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개역 개정, 공동 번역 식으로 이 구절이 번역되면 하나님이 보여 주시려는 목적 즉 예수님의 성육신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 루터 성경 등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다수 사본 성경을 보아야만 합니다.
2장 5절 이하의 문맥에 대해서는 반즈 주석을 보기 바랍니다.
2장 5절 이하 반즈 주석
For unto the angels hath he not put in subjection - In this verse the apostle returns to the subject which he had been discussing in Hebrews 1:1-14 - the superiority of the Messiah to the angels. From that subject he had been diverted Hebrews 2:1-4, by showing them what must be the consequences of defection from Christianity, and the danger of neglecting it. Having shown that, he now proceeds with the discussion, and shows that an honor had been conferred on the Lord Jesus which had never been bestowed on the angels - to wit, the "supremacy over this world." This he does by proving from the Old Testament that such a dominion was given to "man" Hebrews 2:6-8, and that this dominion was in fact exercised by the Lord Jesus; Hebrews 2:9. At the same time, he meets an objection which a Jew would be likely to make. It is, that Jesus appeared to be far inferior to the angels. He was a man of a humble condition. He was poor, and despised. He had none of the external honor which was shown to Moses - the founder of the Jewish economy; none of the apparent honor which belonged to angelic beings. This implied objection he removes by showing the reason why he became so. It was proper, since he came to redeem man, that he should be a man, and not take on himself the nature of angels; and for the same reason it was proper that he should be subjected to sufferings, and be made a man of sorrows; Hebrews 2:10-17. The remark of the apostle in the verse before us is, that God had never put the world in subjection to the angels as he had to the Lord Jesus. They had no jurisdiction over it; they were mere ministering spirits; but the world had been put under the dominion of the Lord Jesus.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8 14:07: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디모데후서 2장 12-13절에 대해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아 글을 씁니다.
사실 이 구절들에 대해서는 주석가들의 의견도 분분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12절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
12절 후반부에 보면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묘한 구절들이 나옵니다. 이런 구절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잘 믿다가도 주님을 부인하면 구원을 잃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문맥에 맞게 그리고 성경 전체의 사상과 맞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성경적으로 구원을 받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안전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결코 구원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구원을 잃을 것처럼 말하는 구절들이 나오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으니 문맥을 잘 보기 바랍니다.
12절은 11절에 있는 신실한 말의 일부입니다.
다음에서 보듯이 그 신실한 말은 11절 후반부부터 13절까지입니다. 그리고 14절의 결론이 나오고 15절은 이런 말들로 인해 다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16절은 구원을 잃는다 등의 헛된 말장난의 결과가 무엇인지 등을 보여 줍니다.
11 그것은 신실한 말이로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리라.
12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
13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
14 그들에게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이 말들로 인해 다투지 말 것을 주 앞에서 그들에게 명하라. 그것은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며 오히려 듣는 자들을 멸망시키느니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이제 신실한 말 부분만 보겠습니다.
A.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리라.
B.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C.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
D.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
A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살 것을 말합니다.
B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분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면 그분과 함께 통치하는 영광을 누릴 것을 말합니다.
C는 살다가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이 우리를 버림으로 우리가 지옥으로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의 우리는 바울과 디모데를 포함한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입니다. 그 당시는 로마 제국의 핍박이 심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때에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어쩔 수 없어서 그분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deny는 다음과 같은 용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She can deny her son nothing.= She can deny nothing to her son. 그녀는 아들의 요구는 뭐든지 들어준다.
직역하면 "그녀는 자기 아들에게 [그가 요구하는] 어떤 것도 거절할 수 없다."입니다.
즉 deny 다음에 사람이 나오면 그 다음에 다른 목적어가 나오는 것이 정상적인 표현이고 이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거부하다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C의 경우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께서 B에 있는 대로 우리가 자신과 함께 통치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거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D는 또다시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을 말합니다. 극심한 핍박이 와서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도 그분은 자신(즉 자신의 말)을 부인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분의 말씀은 요10:28-29, 롬8:38-39 등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력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그러니까 A와 D는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을
B와 C는 그리스도인의 보상을 말합니다.
이런 구절들을 잘 해결하려면 15절에 있는 것처럼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이것이 구원에 대한 구절인가, 보상에 대한 구절인가 등을 바르게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12절 후반부는 보상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마귀나 우리가 하나님보다 강해야 합니다.
다음을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어 자료
https://bible.org/article/if-we-deny-him-he-also-will-deny-us-2-timothy-212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해야 합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1-12-08 13:30:2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임회장이라는 분이 이런 글을 주셨습니다.
이런 것에 일일이 답을 할 필요는 없지만 영어를 가지고 이런 불필요한 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간략히 적습니다.
임회장의 글:
수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계21:16
And the city lieth foursquare, and the length is as large as the breadth: and he measured the city with the reed, twelve thousand furlongs. The length and the breadth and the height of it are equal.
킹제임스 마제스티
그 도시는 네모반듯하게 놓여 있고 길이가 너비만큼 크니라. 그가 그 갈대로 도시를 측량하였더니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으며 그것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으니라.
여기서 And the city lieth foursquare라고 되어 있는데 lieth의 뜻이 무엇인가요?
Old English로 찾아보니까 Archaic third-person singular simple present indicative form of lie라고 나옵니다.
Lie는 거짓말한다는 뜻인데 그러면 네모반듯한 게 거짓말이라는 건가요? 다른 뜻이 있습니까?
추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동사의 어미에 -th, -eth가 붙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이 고어체 스타일의 표현이라고 싫어하는데 이것은 3인칭 단수 현재 시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에 주의하지 않고 대충 읽고 번역하면 개역이나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성경처럼 스가랴서 3장 2절을 엉터리로 번역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소개하겠습니다라는 그것을 어디서 보았는데 이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영어 킹제임스: And the LORD said unto Satan, The LORD rebuke thee, O Satan; even the LORD that hath chosen Jerusalem rebuke thee: is not this a brand plucked out of the fire?
개역 개정: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말씀보존학회 킹제임스: 그리고 주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사탄아, 주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주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것이 불에서 꺼낸 나무가 아니냐?" 하시니라.
킹제임스 마제스티: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오 사탄아, 주께서 너를 책망하시기 원하노라. 곧 예루살렘을 택하신 주께서 너를 책망하시기 원하노라. 이것은 불 속에서 잡아챈 그슬린 나무 조각이 아니냐? 하시더라.
답 1
1. lie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아래아한글 영한 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ie의 1번 용례: †lie¹ [lai] vi. (lay [lei]; lain [lein]; ly·ing [láiiŋ])
① (사람·동물 따위가) 눕다, 드러〔가로〕눕다, 누워 있다; 엎드리다, 자다《down》; (새가) 웅크리다
~ on the bed 침대에 눕다
He lɑy down on the grass. 그는 잔디 위에 누웠다.
② 기대다(recline), 의지하다《ɑgɑinst》
a ladder lying ɑgɑinst the wall 벽에 세워져 있는 사닥다리
~ bɑck in an arm chair 안락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다.
③ (사람·시체가) 묻혀 있다, (지하에) 잠들고 있다
His ancestors ~ in the cemetery. 그의 조상은 공동 묘지에 묻혀 있다.
④ (물건이) 가로놓이다, 놓여 있다
the book lying on the table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책
Snow lɑy on the ground. 눈이 지면에 쌓여 있었다....
Lie의 2번 용례: †lie¹ [lai] vi. (lay [lei]; lain [lein]; ly·ing [láiiŋ])
① 거짓말을 하여 …하게 하다《into》; 거짓말을 하여 (…을) 빼앗다《out of》
~ a person into signing a document 아무에게 거짓말을 하여 서류에 서명하게 하다
~ a person out of his rights 아무에게 거짓말을 하여 권리를 빼앗다.
② ⦗~ oneself 또는 ~ one’s way로⦘ 거짓말을 하여 …을 벗어나다《out of》
He ~d himself 〔his wɑy〕 out of the accusation. 그는 거짓말을 해서 비난을 모면했다.
계21:16은 당연히 1번 용례의 lie를 말하고 있습니다.
답 2
다음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https://keepbible.com/KJB2/View/2WF?page=3
질문하기 전에 keepbible.com에 오셔서 직접 먼저 찾아보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12-06 11:50:5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에는 번역이 쉽지 않은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면 더욱더 번역이 어렵습니다.
딤전2:6 후반부는 이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6 Who gave himself a ransom for all, to be testified in due time.
7 Whereunto I am ordained a preacher, and an apostle, (I speak the truth in Christ, and lie not;) a teacher of the Gentiles in faith and verity
킹제임스 마제스티
6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는데 이것은 정해진 때에 확증될 것이며
7 그 일을 위해 내가 선포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았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며 거짓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들의 교사가 되었노라.
개역개정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공동번역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뜻을 적절한 시기에 분명히 나타내 주셨습니다.
영어로 6절을 보면 뒤에 to be testified in due time이라는 말이 있고 이것의 번역이 조금 어렵습니다.
일단 4절부터 읽어 보면 문맥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4절: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 다음에 6절이 나옵니다.
6절: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는데 이것은 정해진 때에 확증될 것이며
즉 4-6절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대신 죽으셔서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바울과 디모데를 포함하여 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메시아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뒤 이제 경륜이 변하여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메시아라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7절에서는 자기가 그 일을 알리기 위해 온 세상(이방인 세상)을 두루 다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7절: 그 일을 위해 내가 선포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았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며 거짓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들의 교사가 되었노라.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사실 즉 그리스도께서 일부의 유대인이나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칼빈주의자들의 주장)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심을 강조해서 말하면서 그가 이 사실을 명확히 가르치고 선포하는 복음 전도자가 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6절 뒷부분 즉 to be testified in due time을 말하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다는 사실"이 정해진 때에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확증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이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럼에도 결국은 이 사실이 모두에게 확증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사실이 확증되었음을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드러나도록 번역하는 것이 6절 후반부의 바른 번역일 것입니다.
대다수 성경 주석들이 이것을 보여 주고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딤전2:6 주석
주석들은 대개 성경을 가장 많이 연구한 분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즉 일생을 성경 연구에 바친 분들이 주석들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석이 다 옳지는 않지만 다수가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평생을 매진한 분들이니). 물론 칼빈주의자들의 특정 구절 주석의 경우 칼빈의 영향을 받은 분들의 주석은 조심해야 합니다.
Barnes, Poole, Gill 등의 주석은 많은 경우 편견이 없습니다.
한편 주석들을 무시하며 그것들을 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크게 조심해야 합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성경을 다 안다고 하는 독선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일찌감치 멀리 피하는 것이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하튼 주석들을 조심해서 잘 보면 큰 도움이 됩니다.
샬롬
2021-12-06 11:20:34 | 관리자
요한일서 5장 6-8절 해석
요한일서 5장 6-8절은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제가 읽고 미국의 켄달 박사님과 주고받은 이메일 편지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해석하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지주의 문제
요한일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지 않았다는 영지주의가 널리 파급되어 있었으므로 요한은 성도들이 이런 이단 사상에 빠지지 않도록 교리적인 지침을 준다(4:1-3).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사실 그는 서신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1.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2.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은 영이었고 몸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나무 위에 달려 죽어 저주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에 대한 주제는 매우 중요하며 특별히 요한이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요한이서 7-11절
요이 7-11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당시의 속이는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다.
8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그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으리라.
7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믿음을 지켜야 우리가 보상을 받는다.
9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있느니라.
7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리이다. 이 교리가 있어야 진정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성도들이다.
10-11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면서 이 교리를 가져오지 아니하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
7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므로 상대하지도 말라.
요한일서 5장 6-8절
요한일서 5장 1-5절은 그리스도인들은 명령들을 지키는 사람들이며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곧 우리의 믿음임을 말한다. 이 믿음은 5절에 있는 믿음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그런데 6-8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육체 안에 오신 분이심을 강조한다. 즉 그분이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그치면 안 되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임을 시인해야 온전한 믿음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것은 당연한 믿음이지만 그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로 인해 이 믿음을 버리는 자들이 생겨났다.
6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이분은 5절의 하나님의 아들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즉 물과 피로 오셨다(모든 아기들의 출생 때의 물과 피를 보라). 앞뒤 문맥상 물과 피는 육신적 출생 혹은 몸을 입은 것을 뜻한다.
동일한 기록자 요한은 요한복음 19장에 기록된 십자가 처형에서도 이것을 기록한다.
그러나 군사들 중의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4).
요한복음은 요한 1,2,3서가 기록된 비슷한 시기 즉 영지주의자들이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던 시기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의 물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출생을 통해 몸을 지니신 것을 보여 주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즉 예수님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단지 영으로만 와서 몸은 소유하지 않은 분이 아니라 물과 피로 즉 인간의 출생을 통해 와서 몸을 가지신 분이다. 요한은 물과 피 두 개를 육체적 출생으로 보고 이 두 개를 통해 와야만 완전한 인간으로 보았고 이 두 단어를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 기록한다. 즉 예수님은 물 하나로만 오신 분이 아니라 물과 피 두 개로 완전한 출생을 통해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분이시다. 이에 대해서는 성령님이 증언해 주신다.
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하늘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에 대해 증언하신다.
8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여기의 영과 물과 피는 6절의 물과 피와 성령님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셋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점에서 하나로 일치한다.
9-10절의 증언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고 11절은 이런 증언이 곧 육체로 오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즉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필요충분조건이 만족이 되고 바로 그 예수님 즉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분 안에 생명이 있다.
요일5:6-8은 대략적으로 이런 구조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물론 달리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든 요한이 당시의 영지주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 드러나는 해석이라야 문맥에 맞는 해석이 될 것입니다.
2021-09-27 16:28:42 | 관리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얼마였을까?(창22:2)
많은 사람들은 이삭이 10세 정도의 소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키 백과 등 여러 자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20-37세 정도라고 합니다.
아담 클락, 플로으디 존스 등은 33세라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에는 다 근거가 있습니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삭이 어린나이의 아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saac
https://www.gotquestions.org/how-old-was-Isaac.html
https://www.aish.com/atr/Isaac-Age-at-the-Binding-Akeidah.html
2021-09-13 12:15:3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최근에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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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장 16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보면 에수님을 가리키며 KING OF KINGS, LORD OF LORDS(전체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And he hath 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a name written,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여기서 kings나 lords로 쓰지 않고 왜 전체를 대문자로 썼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저도 왜 역자들이 그렇게 했는지 100%는 모릅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의 용례를 보면 전체가 다 대문자로 된 것은 그 표현 전체가 하나의 호칭으로 강조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음의 예를 보시기 바랍니다.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1. 출3:14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KJV
2. 요19:19
And Pilate wrote a title, and put it on the cross. And the writing was, 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
KJV
3. 계17:5
And upon her forehead was a name written, MYSTERY, BABYLON THE GREAT, THE MOTHER OF HARLOTS AND ABOMINATIONS OF THE EARTH.
KJV
2021-08-10 12:33:5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