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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천 국제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차한 형제님께서 좋은 책을 지어 소개합니다. 읽어 보시면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도서정보 1. 도서명 : 개독교를 위한 변명2. 영문 도서명 : Excuses For Doggish Christianity3. 저 자 : 차 한 4. ISBN : 978-89-86767-44-5 032305. 판 형 : 152*2246. 면 수 : 256면7. 가 격 : 12,000원 8. 발행일 : 2019년 2월 13일 9. 출판사 : 라온누리 (T.3673-3421)10. 총판처 : 예영커뮤니케이션 (T.766-7912)   책 소개 비난받는 교회, 오해받는 기독교... 명쾌한 변증으로 풀다 !!   “교계 안팎에서 기독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세태를 보면서 필자의 칼럼들과 설교들 중 일부를 추려 기독교 변증서를 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에 필자가 집필한 저서들 가운데 「성경으로 세상보기」 및 「성경으로 세상보기2」도 기독교 변증서이지만 좀 더 도발적인 제목 하에 업그레이드 된 내용들을 담아보려고 하였다..... 앞으로 이 책이 누구의 손에 들려 읽히든지 생명의 역사가 순결하게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일일이 거명을 하지는 못하지만 필자의 사역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주고 계시는 많은 동역자들께도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로 모든 영광과 존귀가 올려지길 기도한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저자 소개 <차 한>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동대학원 예방의학교실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군 군의관으로 복무하였으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소아소화기영양학 전임의로 근무하였다.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서울적십자병원 교육수련부장 및 서울의대 외래교수를 역임하였으며현재 가천의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8년 「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되었으며저서 및 역서로는 「성경으로 세상보기」, 「성경으로 세상보기2」,  「똥 이야기」, 「성서건강학」, 「성경과 의학」, 「개독교를 위한 변명」, 「음악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공저), 「스트레스는 없다」(공저), 「생로병사, 그 신비를 벗긴다」(공저), 「크리스챤 육아백과」(역서), D. L. 무디의 「하나님께 가는 길」(역서) 등이 있다. 월간 「건강과 생명」의 편집인이며 인천 송도에 위치한 「Incheon International Baptist Church」(IIBC, 인천국제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E-mail : onecar@gilhospital.comjoyfulworld@hanmail.net Home page : www.healthlife.co.kr   목차 서문   1. 기독교의 실제세 부류의 사람들 왜 창조인가?선교와 전도 그 허와 실   2. 뉴에이지 스포츠와 영적 손상 동성결혼 시대의 믿음인공지능과 불로장생   3. 성경 속 과학참 빛성경 속 유전공학성경 속 불임   4. 간증섭식장애하늘의 비전특별한 결혼식   5. 성경 이슈자녀교육과 체벌귀신유감성경관   * 부록/AppendixA letter to Pastor Chuck SmithA letter from Pastor Chuck SmithThree kinds of people보혈문서선교사로의 초대 저자 서문   가천의대 ‘선택의학’ 강좌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단행본 「성경과 의학」이 출간된 지 두 해가 지났다.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월간 「건강과 생명」을 위시하여 여러 매체에 계속해서 신앙칼럼을 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아울러 여러 교회와 선교회 등에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셨다.   이러던 중 교계 안팎에서 기독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세태를 보면서 필자의 칼럼들과 설교들 중 일부를 추려 기독교 변증서를 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기존에 필자가 집필한 저서들 가운데 「성경으로 세상보기」 및 「성경으로 세상보기2」도 기독교 변증서이지만 좀 더 도발적인 제목 하에 업그레이드 된 내용들을 담아보려고 하였다.그래서 이 책의 출간을 위해 기도하던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출판에 필요한 재정도 여러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놀랍게 마련해 주셨다. 특히 성호네 가족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 책은 결코 발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또한 주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을 하였다. 기독교의 실제, 뉴에이지, 성경 속 과학, 간증, 성경 이슈 등의 주제 하에 각각 3편의 설교 또는 칼럼을 실었다. 그리고 부록에서 척 스미스 목사님과 주고받은 편지들과 필자가 출석하는 인천국제침례교회(IIBC)의 외국인들을 위해 이 단행본의 주제가 되는 영어 설교 한 편을 수록하였다. 또 구원을 받고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보혈(寶血) 칼럼도 첨가하였다.   그간 필자의 책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이 책의 칼럼들 중 세 편은 이미 저자의 기존 책들에 수록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개독교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 하에 다시 수록하는 까닭은 기독교 변증에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책이 누구의 손에 들려 읽히든지 생명의 역사가 순결하게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일일이 거명을 하지는 못하지만 필자의 사역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주고 계시는 많은 동역자들께도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로 모든 영광과 존귀가 올려지길 기도한다. - 2019년 2월 1일 차 한 본문 중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   고전2:14-3:17 “14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15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 1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10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2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14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15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1. 들머리   매스컴에서 기독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피이드백이 엄청나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익명성을 갖고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기독교라는 말보다 ‘개독교’라는 표현이 일반 네티즌들에게 더 친숙한 말이 된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 비하는 너무도 많은 근거와 팩트를 가지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 대학동문 중에 현재 큰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일 년에 몇 번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가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오래전부터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해오고 있는 중인데 하루는 이 친구가 제게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 병원 재무책임자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장로인데 (그래서 더 재무담당을 시켰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몰래 수억 원을 착복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지난 달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사건이 모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일마다 각기 다른 두 번의 예배 곧 ‘열린 새 신자 예배’ 및 한국으로 돌아온 교포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포인트 파이브 예배’를 인도해 왔고, 비서실과 통역실 등 그 교회의 실제 업무를 담임목사를 대리하여 모두 맡아온 J 목사의 불륜행각이 밝혀졌습니다.J 목사는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와 필리핀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간증을 통역했고, 유명 연예인의 결혼 주례 및 외교부와 기업체강의 등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분이죠. 그리고 기독교잡지 리빙라이프의 편집장이며 모 재벌그룹 부회장의 개인 성경공부를 수년간 지속해오기도 했는데 한 영화배우로부터 ‘청년 예수의 모습 같다’고 극찬을 받기도 하였죠. 이처럼 전도유망하던 J 목사가 상대방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 5년 전부터 서류상의 이혼을 못했을 뿐 이혼한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간통을 한 사실이 일 년 만에 밝혀졌습니다.자, 이와 같은 현실에서 여러분들은 ‘개독교’라 칭해지는 오늘날의 기독교에 대한 변명을 어떻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저는 오늘 ‘세 부류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기독교에 대한 변명을 하는 동시에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과 제가 함께 주님께로 온전히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 본성에 속한 사람 오늘 주일에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영적인 상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진다고 하는 것입니다.먼저 고전2:14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니라.”첫 번째 부류는 ‘본성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natural man입니다. (참고로 natural man을 인문사회과학적으로는 ‘자연인’이라 번역하는 것이 일반인데 킹제임스흠정역에서는 진화론적 개념을 깔고 있는 ‘자연인’이라는 말 대신에 ‘본성에 속한 자’라고 번역을 잘해 놓았습니다.)14절을 보면 본성에 속한 사람의 정의는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자 곧 구원받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십일조 이상 헌금도 하고, 찬양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심지어 장로나 목사의 직분을 맡고 있더라도 구원받지 못한 ‘본성에 속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본성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시편 14편 1절입니다.“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즉 ‘본성에 속한 사람’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비록 인사기록지의 종교 난에는 기독교라 쓰지만, 또 오늘처럼 주일에 교회에 나름 열심히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여 기독교인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본성에 속한 사람’인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3. 육신에 속한 사람 두 번째 부류는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고린도전서 3장 1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육신에 속한 자’는 일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영어로는 ‘carnal Christian’ 곧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갓난아이라 표현되는 경우입니다. 이 말은 구원 받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 또는 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영적으로 갓난아이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저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입니다. 제 전공분야는 소아소화기영양학입니다. 그래서 신생아나 영아에게도 내시경을 시행하곤 합니다. 특히 동전이나 수은 배터리 같은 이물질들을 삼킨 아이들에게 내시경을 시행하여 위장관 이물질을 자주 제거하곤 합니다. 분별력이 있다면 결코 삼킬 수 없는 각종 이물질들을 삼키며 사고를 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갓난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영적으로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각종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계속하여 고린도전서 3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오직 젖만 먹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히브리서 5장 12절입니다.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들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너희에게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신앙연륜은 오래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들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성경말씀에 무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상태로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3장 3,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육신적인 자’ 곧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특징은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며 세상 사람들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구원은 받아 천국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와 결코 구별되지 않는 인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4. 영에 속한 사람 세 번째 부류는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고린도전서 2장 15,16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고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요14:26; 벧전2:12). 즉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spiritual Christian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영에 속한 자’ 곧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달리 젖이 아니라 비프스테이크 같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영적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히브리서 5장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에게 속하나니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자기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곧 성경말씀의 깊은 이해를 통해 영적 감각들을 단련시킴으로써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 p 11-20 중에서  
2019-02-14 09:46:56 | 관리자
박영숙 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뉴질랜드에 사는 최문선 자매입니다. 저처럼 해외에 거주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세상을 바꾼 책(한글자막)' 동영상이 예전에 keepbible에 올라왔던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어서 다른 독립침례교회에서 올려놓으신 영상을 알려드릴게요. 이와 함께 '어둠속의 등불' 동영상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성경신자모임이 있는데, 참석은 못하시더라도 교제하고 싶으시면 연락해 보세요.   킹제임스 흠정역@Toronto 예배 장소 변경 안내 http://new.keepbible.com/Cmn1/View/46G   * The Book(세상을 바꾼 책) https://www.youtube.com/watch?v=IlZnE84vNbc   * 어둠 속의 등불 https://www.youtube.com/watch?v=OoNZv1Te-6Q      
2019-02-12 08:10:41 | 최문선
성경에서 야베스에 대한 기록은 역대기상 4장 9~10절을 빼고 나면 전무합니다.  이 두 구절을 가지고 주님을 믿는 많은 신자들이 그 기도를 따라 복을 달라고 간구하며, 잘못된 신앙관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 야베스는 누구이며 그 기도가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것을 성경적으로 짚어보려 합니다.    1. 야베스는 누구인가?   역대기는 아담부터 시작하는 긴 족보와 함께 주로 남 왕국 유다의 사건들을 보여주며 다윗과 그의 자손들 속에, 약속된 왕 메시아의 계보를 따라 이름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오백 명 이상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야베스는 바로 다윗 왕의 혈통인 유다 지파에 속했습니다.    성경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 살펴보면,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혹은 '빼앗는 자'(grabber)인데 이름 그대로 그는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또한 나오미가 그 두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말론과 기룐인데, 말론은 '병약한'(puny)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기룐은 '수척해지다'(pining)라는 뜻을 가진 것과 같이 이 이름대로 두 사람 모두 젊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솔로몬의 뜻은 '평화'(peace)인데 그는 이름처럼 전쟁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첫 번째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의 뜻이 한 사람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어머니가 지어준 야베스라는 이름도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베스가 살던 시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12지파에 골고루 땅의 지분을 나누어 주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주전(B.C) 1450년대경으로 추정됩니다. 야베스(יַעְבֵּץ֙, Jabez)라는 이름의 뜻은 '슬픔에 잠긴' 또는 '슬퍼하다' '고통을 겪다'이지만, 그는 그 의미와 다르게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름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는 사실에서 유복자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도 있고, 8절의 아하헬의 가족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으로 보면 원래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데 어머니가 지어준 것을 보면 유복자라는 말이 신빙성이 있습니다. 또, 아이가 할례를 받을 때까지도 그 어머니가 낳았던 고통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평생 그 고통을 기억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전승에 보면 그는, 훌륭한 율법학자요 많은 제자들을 남겼습니다.  대상 2:55절에서 보듯이 '야베스에 거주하던 서기관 가족들'이라고 기록된 말씀이 유대인의 전승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야베스는 자기 형제들보다 더 존귀한 자더라'라는 말씀으로 보아 경건과 학식에 뛰어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건이라 함은 그가 드리는 기도에서 보듯이 항상 하나님을 삶에서 인정하려 하는 것과 그분의 축복과 보호하심에서 떠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율법학자로서 제자들을 배출할 만큼 학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존귀하다는 말씀은 그 지역에서 명예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성경 기록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삼상 9:6) 그가 그에게 이르되, 이제 보소서, 이 도시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는 존귀한 사람이니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반드시 다 이루어지니 이제 우리가 거기로 가사이다. 혹시 그가 우리가 가야 할 우리의 길을 보여 줄까 하나이다, 하므로    위 구절은 사울과 그의 종이 사무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2. 야베스의 기도는 무엇인가?   그의 집안이 별로 좋은 집안은 아니었던지 3장에 나오는 왕족의 족보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4장에 유다의 아들들에서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고통과 슬픔을 안고 태어났지만,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그가 구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한 구절의 말씀으로 많은 신자들에게 붐? 이 일어나며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말씀은 왜 따라 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빌 2:5-8)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이 빌립보서 2장 말씀은 웬만한 신자라면 다 아는 구절인데 말입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의 기도를 한번 보겠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원하건대 주께서 참으로 내게 복을 주사 내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 주께서 나를 악에서 지키시며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그에게 주셨더라.    야베스는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견주며 사람들과 견줄 능력으로 이겨서 얻은 이름. 바로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니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견주며 사람들과 견줄 능력이 있어 이겼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창 32:28) And he said, Thy name shall be called no more Jacob, but Israel: for as a prince hast thou power with God and with men, and hast prevailed.    이 말씀도 어떤 목사님들은 야곱이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육체적으로 이겼다고 이해를 하며 설교를 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 이기다니요? 위 말씀의 뜻은, 기도를 그만큼 끈질기게 하며 사람들 중에 통치자로서의 파워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prince hast thou power"를 히브리어로 보면 싸라(שָׂרִ֧יתָ, sarah)이며, '왕으로서 힘을 가지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견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야곱, 바로 자신과 견주어 이겼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닥쳐오니 얼마나 그 마음이 다급하고 간절했겠습니까? 바로 그 심정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한 것처럼 야베스의 기도가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광야에서 태어나 죽을 고생을 다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야베스가, 고통과 수고와 슬픔으로 얼룩진 모친의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뼈저리게 겪고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며 야곱의 마음과 동화된 심정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여호수아로부터 분배될 자신의 땅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평안을 구한 것입니다.  정말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바로 앞에 계신 것처럼 야곱이나 야베스와 같은 진실되고 간절한 심정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막연히 집이 잘되고 풍족하게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의미 없는 간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들을 잘 살펴봐야 할거라 생각됩니다.  허벅지 뼈가 탈골될 정도로 자기 육신(사람)을 이기고 오직 그분만이 내 생명이 된다는 심정 속에서 기도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완전한 마음으로 무장하고 그분께 매달린 적이 있습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4 분법으로 나누어서 설교를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3. 신약 교회에서 바라본 관점과 결론   그의 기도는 땅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리고, 근심과 환난이 없는 복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누구에게 구했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고 했습니다.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 복은 신약교회 성도들에게 해당이 되지 않는 기도의 복입니다.  왜 그런가 다음 구절들을 한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엡 1:3)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롬 8:16-18)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빌 1:29-30)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고난 당하는 것도 주께서 그분을 대신해서 너희에게 주셨나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보았고 또 지금도 내 안에 있다고 듣고 있는 그 동일한 싸움이 너희에게도 있느니라.    더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이 말씀들로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위 말씀들이 초대교회 시대만 해당되는 것이고 지금의 우리에겐 해당이 되지 않는 말씀입니까?  사도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만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린 아닙니까? 이미 우리는 야베스가 받았던 복보다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눈에 보이지가 않거든요. 실질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내 손에 잡히지가 않으니까 자꾸 헛된 것을 구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그런 물질적인 복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마 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그날의 악은 그날에 족하니라.    이 세상에 충만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아버지께서 육신의 아버지보다 못할까요? 육신의 부모도 자식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좋은 것을 해 주려 하는데 영원에 같이 있을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필요한 것을 채우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완전한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더디고 그분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바른 믿음 안에서 그분의 숨이신 말씀을 대하고, 그것을 절대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바로 공의(公義, judgment)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록들을 통해 확실하고 바꿀 수 없는 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떤 성도들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발동이 되지 않게 됩니다. 공의는 그분께서 세워놓으신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잣대 안에 있게 되면 자연히 야베스의 기도의 복은 모두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믿음과 신약의 믿음은 모두 동일하지만, 신분이 바뀐 것을 망각하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로 다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고난이 오면 고난으로,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복이 오면 축복으로, 때로는 어려움이 찾아오면 어려움으로,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 오면 브니엘의 야곱의 심정으로 그분께 매달리며, 오직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의 절대적 믿음으로 쇠벽을 뚫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모든 성경 기록은 우리의 배움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지금 곧 죽을 것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 것이 확정되어 있다면, 얼마나 실질적이고 애절한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지금 신약시대에는 정욕에 쓰려고 구하지 말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주신 말씀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약 4:3)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요일 5:14-15)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바로 공의가 되시는 성경 기록들입니다.  그분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는, 바로 다음 구절의 말씀으로 잣대를 삼으시면서 구하시게 되면 잘못된 기도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이 잣대 안에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롬 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아멘. 
2019-01-11 20:14:40 | 이명석
예전에 자존심 낮추는 법과 자존감 높이는 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 글을 쓴지 일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높이는 법 자존심 낮추는 법. 이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안에서는 너무 쉽습니다. 이제 그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정 욕구의 방향을 잡아라.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인정 욕구입니다. 인간을 심각하게 좌절하도록 만드는 욕구는 다양하지만, 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가장 중요한 근간은 무엇보다도 '인정에 관한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욕구를 인정받지 못할 때 우울감이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인정 문제'와 '인정을 위한 싸움'은 심리적 인정이든, 정치적 인정이든, 제도적 인정이든, 경제적 인정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실존적 인정이든 간에 모든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그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바로 자신과 타인이 바라보는 관점에 방향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는 강해집니다. 또한 자존심이 낮은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는 약해집니다.   즉, 헤겔이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의 인정 욕구는, 개개인 자신의 자존심은 높이 세울지 모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사람은 육신안에 여전히 악한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가지고 있는 이 인정 욕구의 방향을 바로 잡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고 스스로를 세우려는 자존심은 낮아지게 될겁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사탄 루시퍼의 생각은 정반대로 다릅니다.    (사 14: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우리가 다 스스로를 세우려는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어쩔수 없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본성속에 있는 인정 욕구이기 때문에 포장이 되어서 보이지 않던,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던, 우리 몸에 피가 도는 한 이것은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방향을 바로 잡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정 욕구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중하고 고귀한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을 한번 보시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실 것입니다.    (시 119:10) "내가 온 마음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오 주의 명령들에서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시 42:2)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에 목이 타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보이리요?"   (시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그리하리이다."   왜 다윗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는지 위 구절들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 다윗의 욕구가 너무나 간절하고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도 밧세바를 차지하기위해 우리야를 죽게 만들었던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크신 긍휼하심과 성령하나님의 부드러움으로 그를 높이셨고 크게 만드신 것은, 다윗이 가지고 있던 인정 욕구의 방향이 주(LORD)를 향해 똑바르고 올바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요 5:42) "다만 내가 너희를 알거니와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느니라."   (요 14:21) "내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들, 즉 성경 기록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을 마음판에 새기려고 온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따위는,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진 그 말씀들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spirit, 영에서 전달되어져 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져 육신은 저절로 말씀에 맞춰져 체질화 되어 갑니다. 그래서 인정 욕구의 방향을 바르게 잡는 것은, 귀중하고 고귀함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행해야 할 마땅한 본분(本分)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중심을 세운 성도가 좋은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상극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는 마음과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은 비슷한 것 같으나 많이 다릅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고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을 바로 알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세울 수 있는 것이며 자존심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가장 커지게 됩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나 또는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자꾸 길이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존감은 가장 낮아지게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또는 가장 존경하고 특별한 사람, 소중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모든 일이 형통함을 얻을 때 자존심은 가장 높아지게 됩니다. 이런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자존심과 자존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높이는 법과 자존심을 낮추는 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합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다시 태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통을 받으시며,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죽으셨지만, 죄가 없으신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며 우리 대신 죄값을 치루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우리의 자존심이 어디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달라집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신분 자체가 이미 영원한 하늘 왕국의 자녀로 옮겨져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자존심 따위로 하나님의 의를 가로막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따윈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먼지같은 저와 여러분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앞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추켜세우는 자존심을 부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고 웃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없애버리는 그 순간부터, 즉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배운 그 순간부터 자존감은 저절로 높아져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주님을 따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생각을 가졌다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되리라는 마음을 굳혔다면 그 기초가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며, 스스로를 내세우려하는지 모릅니다.   (롬 10:3)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도바울에게 율법아래 있던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위에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의 힘이나 생각,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 즉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됩니다. 억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는 사랑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편만하게 있어서 웬만한 교리적인 지식이나 성경 지식을, 마치 세상 지식을 습득하는 것 같이 교회를 어느정도 다니신 분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게 되면 이런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찾게되며 묵상하고 그분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친족이나 가족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할수록 자신의 자존심을 부인하는 것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고, 그분을 향한 인정욕구가 강해지면서 자존감은 신기하게 저절로 올라가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존심은 낮아지고 자존감은 올라갑니다. 이와같이 오직 한 목적,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기록된 말씀에 따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타난 행위는, 그 자체로 불의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자 곧 그는 참되며 그 속에는 불의가 없느니라." 결론.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와 다시 하나님께로 다 돌아갑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거짓되며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성도의 참 생명과 참 진리는 그분안에 영원으로 함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설때에야 비로소 완전해지지만, 이 땅에서도 우리가 조그맣게나마 하나님의 의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존심은 버리듯이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안에 항상 언제 어디서나 고난이 오든 시험이 닥치든 이 생각을 가지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생각, 그것은 기록된 성경 말씀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자존감은 바로 예수님의 생각을 담은 우리의 의(righteousness)의 지게표가 되시는 말씀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법과 자존심을 낮추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목사님의 강해설교를 같이 들으시며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2018-12-27 00:46:14 | 이명석
KEEP BIBLE - home page  새 단장 되었군요. 멋지고 깔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서 기쁨의 상급을 받는 용사들로 승리하십시오.  -샬롬 
2018-12-15 18:16:47 | 심재국
좋은 문서 자료들을 제공해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Middletown교회의 성경공부 자료를 안내해 주셔서 크게 도움 받고 있습니다. 1. 영어권 선교사로서 릭 존스의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책자의 원문을 구할 수 있는지 여쭙습니다.ebook으로 다운 받을 수 있는지요? 2. 이곳이 영어권이기는 하나 영어는 제2의 공용어 이기 때문에 영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성경을 살 수 있는 서점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지요. 수도 지역에서나 겨우 NIV 또는 Goodnews Bible을 살 수 있는 정도지만 현지인들의 생활 수준으로는 성경 한 권 구매하는 것이 적쟎은 헌신이 됩니다. 혹시 귀 교회에서는 저희의 작은 모임을 위해 20권 정도의 영어판 킹제임스 성경을 증정해 주실 의사가 있으신지요? 남태평양 피지에서유정옥 드림
2018-12-12 10:01:57 | 유정옥
안녕하세요? 2018 년 8월 29일, 월간 목회라는 잡지에서 제게 < 나는 설교준비를 이렇게 한다>는 제목으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월간 목회는 목회정보 교환과 목회자료 제공, 효율적인 현대 목회의 연구와 개발,  참 지도자를 통한 교회 부흥 촉구를 목적으로 발행되는 잡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게 잘못 온 이메일로 생각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부탁한 것이 맞는다고 해서 의아해 했습니다. 어쨌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제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바를 기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제 2018 년 12월호를 보내 와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목회를 하시는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하시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샬롬 패스터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성>http://cbck.org/bbs/board_m.html?board_table=qt&write_id=1799
2018-11-24 15:31:0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