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이 없는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에 '없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면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육신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이 있어야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게 말씀(단어)들을 주시고 완전하게 그것들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지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개역성경」에는 아예 절 자체가 삭제된 부분이 있을까요? 「개역성경」을 읽다가 신약의 13 구절에 ‘없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전체 절이 삭제된 것을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한 성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구절들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왜 절 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까요?
사실은 성경을 믿지 못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뜻과 맞지 않으므로 이런 구절을 다 삭제한 것이며 루터, 칼빈, 무디 등이 사용한 성경의 대본이 된 99%의 「다수사본」들이 이런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고 단지 천주교에서 후원하는 1%의 「소수사본」에만 이런 구절들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개역성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역성경」과 같은 본문에서 번역된 NIV, NASB, 공동번역 등의 모든 현대 역본들은 이런 구절들을 다 동일하게 삭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단 하나의 성경’ 즉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보존하셨으며 이 성경은 단 한 번의 변화도 없이 꿋꿋이 역사 속에서 그 위용을 떨치며 수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반면에 사탄은 예로부터 ‘수많은 성경들’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속여 왔습니다.
세계 동향을 주시할 때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이제 과연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 보존 문제에 관한 오랜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깨어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을 보존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개역성경에서 삭제 된 구절들]
2009-03-20 15:52:20 | 관리자
두 종류의 성경 본문
하나님은 처음에 자신의 거룩한 사람들이 직접 쓴 자필 원본으로 성경 기록들을 주셨다(벧후1:21).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 자필 원본에서 필사하여 사본들을 만들었으며 처음의 자필 원본과 그 후의 많은 사본들은 수명을 다한 뒤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성경을 번역하려면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이 필요한데 이 땅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단어들)을 담은 사본이 하나도 없으므로 누군가가 현존하는 사본들을 편집해서 ‘본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본문’을 가지고 실제로 성경을 번역하려다 보면 본문이 한 가지가 아니고 두 가지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누가 어떤 본문을 선택해서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완성된 성경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다음의 표는 본문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사례들 중의 일부를 보여 준다.
<내용이 전혀 다른 성경 구절들>
구절
킹제임스 흠정역(KJB)
개역, NIV, NASB 등
시10:4-5
그(사악한 자)의 길들은 항상 고통을 주고
그(악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잠26:22
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들은 상처들과 같아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전1:14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사9:3
주께서…기쁨을 더하지는 아니하셨으나
주께서…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호10:1
이스라엘은 텅 빈 포도나무요
이스라엘은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암4:4
삼 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막9:44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없음
롬1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없음
골2:18
그런 사람은 자기가 보지 아니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마귀의 개입
사본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구약성경 본문이 한 종류가 아니고 두 종류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 바로 마귀의 개입이 있다. 첫 사람 아담을 속여 사람을 죄 가운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사람의 구원을 담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그냥 둘 리가 없다. 분명히 처음에 하나님은 순수한 말씀들을 주셨으나 마귀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인본주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개시켜 왔으며 그 결과 두 종류의 본문이 존재하게 되었다. 마귀가 늘 하나님을 모방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일이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사실임을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사14:12-14; 고후11:13-15).
기독교와 천주교의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마16:18)는 유대교의 요람에서 탄생되어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성도들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말씀들을 지켜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복음의 초기에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을 설립하여 말씀을 변개시켰고 드디어 313년에는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 소위 ‘기독교 공인’이라는 역사를 이루었다. 그 뒤부터 정치와 종교가 혼합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주님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이교도들의 각종 거짓 교리를 도입하여 순수한 기독교를 변개시켰다. 그래서 20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로이즈 존스는 천주교를 가리켜 ‘마귀의 걸작품’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천주교회가 1000년 이상 온 세상을 암흑 속에 가두었으나 마침내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은 종교 개혁을 통해 천주교회에 대항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이 세상에 세우시고 그들이 기독교로 복귀하게 하셨다.
이때에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그때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지켜 온 라틴 벌게이트라는 성경이 심히 부패되었다는 사실과 바른 복음 선포를 위해 바른 성경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 이외의 순수한 성도들이 전 유럽과 아프리카와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등의 지역에서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공인(共認) 본문 혹은 수용(受容) 본문을 이용하여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렇게 바른 본문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인쇄술에 힘입어 온 세상을 휩쓸었고 로마 카톨릭주의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던 일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성경의 번역과 보급을 그토록 반대하던 로마 카톨릭 교회와 일반 성도들의 손에 성경을 쥐어 주려고 목숨까지 내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서로 다른 성경 본문을 가지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 마디로 성경 본문들과 거기서 나온 역본들의 차이는 천주교와 기독교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같이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경의 역사와 주요 교리 등을 다루면서 성경의 변개가 어떻게 교리를 바꾸어 천주교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줄 것이다.
구약성경본문
구약성경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는 유대인들이 순수하게 보존한 전통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 거의 모든 성경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특권 의식을 가진 유대인 마소라들이 심혈을 기울여 본문을 보존했기 때문에 이 본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루돌프 키텔(R. Kittel)이 편찬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는 전통 마소라 본문을 수정한 본문이고, 이것을 그가 죽은 뒤인 1937년 독일 위템베르크 성서 공회가 페이지마다 평균 15-20 군데씩 수정하여 3판을 편찬했는데 이 본문은 후에 1967/1977년판 슈투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S)로 개정 출간되었다. 개역성경, 신국제역(NIV), 신미국표준역(NASB) 등 모든 현대 역본의 구약은 이 BHS를 기초로 하여 번역되었으므로 그 안에는 이러한 개정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마소라 본문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고 어떤 마소라 본문을 대본으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구약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신약성경본문
신약성경의 경우 로마 카톨릭 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약 교회가 지난 1900 년간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 혹은 수용본문)을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 본문은 다수사본에 근거했기 때문에 ‘다수본문’이라고도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천주교회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동방)본문’이라고 하며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이 한결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한다. 한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소수본문’만을 고수해 오고 있는데 ‘소수본문’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이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은 몇 개 되지 않는다(전체 사본의 1% 정도). 이 사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전시용으로 보존되어 온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산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시내 사본’이 있는데 사실 이것들은 변질된 내용 때문에 대다수 성도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1881년에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 두 사본이 가장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공인본문을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 그리스어 본문’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변개한 단어는 무려 9,970 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본문에 나오는 140,521 개 단어의 7%나 되는 양이다. 1881년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후에 1898년에는 네슬레가 티센도르프의 8판과 위마우스의 3판과 함께 신약성경 본문을 편집하여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라는 본문을 만들었다.
2009-03-20 15:50:45 | 관리자
우리말 성경 역사
우리말 성경의 역사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언더우드(H. R.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첫 선교사들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에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연합장로교회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된 로스(John Ross)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어 성경을 들고 1874년과 1876년에 한중 국경 지대에 와서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한국어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한 지 11년 뒤인 1887년에 신약성경을 우리말로 출간하였다. 로스가 스코틀랜드에 보낸 선교 보고에 따르면 우리말 성경 번역을 위해 그가 사용한 본문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온 영국의 영어개역성경(ERV)과 중국어 성경이었다. 그는 또한 번역을 위해 형식적, 문자적 일치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뜻만 통하면 된다는 동적 일치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사실은 그가 1877년에 만주에서 한국어로 성경을 출간하기 위해 발간한 「조선어 문법」(Corean Primer)이라는 소책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한국인 번역자가 중국의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다.
(2) 그 원고를 그리스어 신약성경 및 영어성경과 대조해서 수정한다[참고로 그들이 사용한 성경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만든 영어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ERV)였다.]
(3) 그리스어 성구사전과 주석을 참조하여 어휘의 통일을 기한다.
(4) 문자 그대로의 축자적 번역보다는 의미에 유의하고 조선어의 관용구를 그대로 살린다.
한편 1882년에 이수정은 일본에서 역시 중국어 성경을 사용하여 신약성경의 일부를 번역하였으며 한국 프로테스탄트교의 첫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인천에 상륙하면서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왔다.
개역성경
국내에서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들어온 지 8년 뒤인 1893년에 미국성경협회의 지원을 받아 주로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로 구성된 성경실행위원회와 성경번역자회가 설립되었고 이 두 기구의 주도 하에 1906년에 구약성경이 출간되었으며 신구약을 다 담고 있는 한국어 성경(구역)은 1911년 3월에 신구약 3권으로 출간되었다. 두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국의 교계 지도자들이 함께 번역한 이 성경은 최초의 공식적인 한글 성경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구역 성경 역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그리스어 본문에 근거한 네슬레의 25판과 영국의 영국개역성경(ERV)과 미국의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 ASV)을 본문으로 채택하였다.
구역 성경의 구약은 영어개역성경의 미국 판인 미국표준역을 가장 중요한 원전 중 하나로 사용하였으며 특별히 미국표준역의 영향을 받아 히브리어 사자음 문자 ‘JHWH’를 ‘주’(LORD)로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여 ‘여호와’로 표기했다. 사실 미국표준역과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역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성경은 이 신성한 ‘사자음 문자’를 ‘주’ 즉 ‘LORD’로 번역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한편 1938년에는 구역 성경을 개정한 성경 개역판이 출간되었다. 케이블(E. M. Cable), 스토크스(M. B. Stokes) 등의 미국 사람들과 남궁혁, 김인준 등의 한국 사람들이 개정에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도 여전히 오리겐의 70인역, 네슬레 25판, 영국개역성경, 미국표준역 등을 중심으로 개정이 이루어졌고 필요한 경우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 등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이 성경은 철자 수정과 얼마간의 본문 수정을 거쳐 1961년도에 ‘성경전서 한글개역판’으로 고정되었고 바로 이 성경이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가장 많이 애독하고 애용하며 대부분의 성도들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고 믿고 있는 개역성경인 것이다.
간단하게 개역성경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개역성경이 중국어 성경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영향을 받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전통 그리스어 공인본문’이 아닌 ‘수정 그리스어 본문’ 혹은 ‘비평본문’(Critical text)을 중심으로 하고 거기서 파생된 영국개역성경과 미국표준역을 번역의 대본으로 삼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채운은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 역본들도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영국개역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밝힌다.
개역성경은 문장이 간결하고 우아하고 웅장하여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마치 영어권의 킹제임스 성경 같이 한국의 독보적인 성경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는 달리 개역성경 문장의 간결성 등은 본문의 정확성을 무시하고 한자 숙어나 한국어 용례 등을 사용하고 많은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자체에 한계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본문 선택과 번역자들의 사상에 기초한 용어 선택을 살펴보면 개역성경이 기독교 교리와 신학 및 믿음의 실행 등에 큰 폐해를 끼쳤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개역성경은 보통 사람들의 감정과 문화를 잘 반영하였으며 아름다운 문체와 운율 등을 통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회심하고 구원의 감격을 맛보았으므로 이 성경이 우리 민족에게 남긴 자취는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개역성경이 전체적으로 다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다만 개역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선정된 천주교 편향적인 본문과 번역자들의 이교도/샤머니즘 사상으로 인한 번역상의 문제와 이로 인한 교리의 부패를 지적하려 할 뿐이다.
개역개정판
개역성경의 판권이 2010년 이후에 만기가 되므로 대한성서공회는 부랴 부랴 개역성경을 개정하여 개역개정판을 내놓았다. 하지만 개역개정판 역시 동일한 카톨릭 본문에서 나왔으므로 성경 본문에 관한 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개역성경과 동일하다.
표준새번역
개역성경이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는 동안 대한성서공회는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번역의 필요를 느꼈다. 또 동시에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국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번역이 있어서 외국인 선교사들의 힘으로 거의 이루어진 개역성경을 대체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에 대한성서공회는 외국에서 공부한 국내 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고 1983년에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표준새번역이라는 새 역본을 발간하였다. 표준새번역은 연합성서공회가 1983년에 발행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3판과 키텔(R. Kittel)이 수정한 ‘히브리어 구약성경’(Biblia Hebraica)과 거의 유사한 ‘슈투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1967/1977, BHS)를 번역의 원전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표준새번역 역시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그리스어 본문과 히브리어 본문을 사용했으므로 문체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번역
1968년에 대한성서공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카톨릭 교회의 연합 작품인 공동번역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것은 사실 1960년대에 이루어진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종교일치 운동(Ecumenism)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1962년에 미국성서공회와 영국성서공회의 니다(E. A. Nida)와 브래드녹(W. J. Bradnock)이 한국을 방문해서 새로운 번역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형식적 일치’보다는 ‘동적 일치’ 번역을 해야 하다고 주장했으며 공동번역 위원회는 이런 원칙을 수용했다.(1) 공동번역의 구약은 1937년도에 발행된 키텔의 Biblia Hebraica에서 번역되었으며 신약은 연합성서공회가 1966년에 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1판에서 번역되었다. 이렇게 출간된 공동번역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교회가 연합해서 만든 성경 중 두 번째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한국에서 발행된 최초의 의역 성경(Paraphrased Bible)이며 프로테스탄트 판과 카톨릭 판이 출간되었는데 카톨릭 판에는 외경도 정경으로 들어가 있다.
각주
(1) 성경 번역에서 ‘형식적 일치’란 본문의 단어 하나 하나를 수용 언어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대로 일치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이렇게 번역된 대표적인 성경으로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동적 일치’란 단어 단어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사상이나 뜻이 전달되도록 번역하는 것이며 이렇게 번역된 대표적인 성경으로는 신국제역(NIV)을 들 수 있다. 다음은 구체적으로 이런 번역의 원칙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보여 준다.
마가복음 14장 5절에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다. 그 향유의 가치를 헬라어 원문에서는 300 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NIV에서는 1년 분 봉급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면 NIV의 번역을 오역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필자는 이 부분의 NIV 번역은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면 1년 동안에 안식일과 절기를 빼면 300 데나리온 정도 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NIV의 번역은 현대인들에게 훨씬 더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장두만, 목회와 신학, 1998년 6월, 7월)
이런 주장대로라면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 데나리온, 에바, 큐빗 등을 모두 ‘1년 치 봉급’, ‘10평’, ‘세 바구니’, ‘50센티미터’ 등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이 부분만 ‘1년 치 봉급’으로 해야 한단 말인가?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정할 권한과 그에 필요한 영감을 그에게 주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단어, 단어에 영감을 불어넣으시고(축자 영감) 단어, 단어를 보존하시며 단지 뜻만을 보존하시지는 않는다. 성경을 번역할 때 300 데나리온이라 두고 그것이 대략 1년 치 봉급이라고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목사와 교사가 필요한 것 아닌가? 성경이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신 단어 단어를 그대로 유지한 가운데 독자들이 그 안에서 뜻과 사상을 찾아야 한다. 성경은 값싼 소설책이 아니며 초등학교 학생들의 만화책이 아니다. 이런 책은 한 번 읽고 나면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신비를 간직한 책이므로 계속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결코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이 뜻이나 사상만을 전달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어 단어를 보존하신다!
2009-03-20 15:49:37 | 관리자
성경 문제
1885년 4월 5일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 왔다. 한국의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역사상 다른 나라들에서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참되신 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큰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조선 왕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선포하며 선한 싸움을 싸웠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필요하므로 1877년부터 로스 등을 필두로 하여 여러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성경 번역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1911년에는 신구약성경인 성경전서가 출간되었고 그 뒤 1938년에 성경전서의 개정판인 성경개역이 출간되었으며 1961년도에는 성경개역의 개정판인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하 개역성경)이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의 집중적인 노력으로 장로교회가 가장 큰 그룹을 형성하였는데 장로교인들은 전통적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여기면서 주일 성수나 금연/금주 같은 규칙을 강하게 주장해 왔고 특히 성경에 관한 한 아주 보수적인 믿음을 고수해 왔다. 그 결과 그들은 개역성경에 단 한 점의 실수도 없음을 성도들에게 주지시켜 왔고 따라서 어떤 이가 행8:37 같이 전체 구절이 삭제된 사례를 들며 그 이유를 묻거나 혹은 너무나 명백하게 번역이 잘못된 부분(1)을 지적하면 그 일을 형제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한 마디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개역성경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제대로 입을 열어 그 문제점을 지적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성도들의 믿음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성경의 보존과 번역에 대한 성도들의 이해가 부족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나 교단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개역성경이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이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 권위로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와 프로테스탄트들의 교리와 실행에 문제를 안겨 준 성경, 많은 삭제 구절을 포함하고 있는 훼손된 성경, 문법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실한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주장하며 100여 년을 버텨 왔으므로 이것으로 인해 신학, 교리, 실행 등의 문제가 매우 컸음도 부인할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 이슈
국내에서는 1611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어 영어의 발흥과 함께 전 세계적인 성경이 되고 모든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며 수많은 신학 교재 및 일반 크리스천 교양서적의 근간이 되고 30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권위를 자랑하는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KJB)이 단지 문헌을 통해 ‘제임스 왕이 제정한 성경’ 즉 ‘흠정역 성경’으로 알려져 왔다. 그것은 영미 문학에 가장 큰 공헌을 끼치고(2) 문장이 수려하며 보수적인 성경 정도로만 인식되었고 그것을 소장하여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까지는 개역성경과 킹제임스 성경 사이에 큰 차이점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로 그때에 성경대로 믿기를 원하는 성도들 가운데 몇 사람들이 주로 미국에서 출간된 문헌들을 통해서 킹제임스 성경과 신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신미국표준역(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같은 현대 역본들 사이에 엄청난 교리적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개역성경이나 공동번역 그리고 표준새번역 등의 한글 성경들을 비교한 결과 대부분의 한글 성경들도 다른 현대 영어 역본들과 내용 면에서 거의 동일함을 알게 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학계나 관련 출판계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미국 등의 영어권 국가에서 성경 논쟁이 일어난 것도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1969-78년에 NIV가 출간되기 전까지 전 세계 영어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1611년 이후로 약 400년 동안 킹제임스 성경은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거룩한 성경’(Holy Bible)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1960-70년대 이후에 NIV, NASB, NKJV, Living Bible 등의 현대 역본들이 광고의 홍수 속에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한결같이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였고 이것들의 맹공에 맞서기 위해 급기야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NIV 등의 현대 역본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1881년 영국에서 웨스트코트(B. F. Westcott)와 호르트(F. J. A. Hort)(3)가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을 대적하며 로마 카톨릭 천주교 사본에 근거한 영국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ERV)을 들고 나온 이래로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는 성경 본문 논쟁이 늘 있어 왔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반 성도들에게까지 성경 본문 논쟁이 확산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한 마디로 미국의 성경 논쟁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공격과 변호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킹제임스 성경 논쟁은 마치 진화론 논쟁과 비슷하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했을 때 보수주의 학자들이나 성도들은 이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지냈다. 그러다가 인본주의자들에 의한 맹공으로 인해 성경의 토대인 하나님의 특별 창조가 거의 무너질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경 신자들이 창조과학회 등의 사역을 통해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진화론은 이미 온 세상에 마치 과학처럼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NIV 등의 현대 역본들이 나올 때에 미국에서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 문제로 인해 교회가 갈리고 교리의 문제가 발생하자 적극적으로 이에 대항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은 미국의 웬만한 크리스천 독자라면 성경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에 가서 신학 공부를 했지만 이 같은 성경 본문 문제를 접할 기회는 거의 갖지 못하였다. 그들 역시 필자와 마찬가지로 여러 역본을 대하면서 본문은 같은데 단지 번역이 다를 뿐이라고 피상적으로 생각했음에 틀림이 없다. 한국 교회의 특성상 유학생이라면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주로 장로교와 감리교 신학교를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지하는 대로 미국에서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가장 인본적이므로 이런 신학교에서는 이미 현대 역본만을 사용하거나 혹은 현대 역본의 기초가 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그리스어 본문을 귀중히 여기므로 이런 데서 공부하는 경우 성경 문제 자체를 살펴볼 기회를 갖기 어렵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는 침례교회가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이런 교회들에서는 어김없이 킹제임스 성경만을 사용해 왔다. 따라서 성경 본문 논쟁도 실제로 침례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침례교회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장로교, 감리교 등은 성경 본문 문제 등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이 침례교 신학교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런 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므로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왔어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한국에서도 뜻있는 성도들이 개역성경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던 차에 미국의 자료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마귀의 계략에 넘어간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여 “개역성경은 사탄 성경이다.”,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야말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신약교회이다.” 등과 같은 비상식적이고도 비논리적인 발언을 하며 안하무인격의 행동을 함으로써 킹제임스 성경의 명성과 권위는 하루아침에 땅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한편 이런 현실과 성경 문제의 핵심이 성경 본문에 있음을 인식한 성경 신자들이 1990년대 초반부터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경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의 모든 단어를 보존해 주심을 확고히 믿는 가운데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부담을 갖고 차근차근 일을 수행하여 2000년 8월에 ‘킹제임스 흠정역’이라는 우리말 성경을 펴냈다.
성경 문제의 핵심
어떤 제품을 만들 때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원료에 의해 최종 산물의 질이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 같은 원리는 성경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이 경우에는 번역의 대본으로 쓰인 신구약 본문과 성경 번역자들의 사상 및 문화적 배경이 최종 산물 즉 번역된 성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개역성경과 공동번역 그리고 표준새번역 등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한 성경들 밖에 없었으므로 과연 그런 역본들이 바른지 그른지 또 그르다면 어느 부분이 그른지 비교/검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역본들과 뿌리가 다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그리스도 예수안에, www.InChristJesus.net)이 출간되었으므로 문제가 되는 점들을 하나 하나 비교하고 그 결과와 원인을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번역의 핵심 요소들이 한국의 독보적 성경으로 자리를 굳힌 개역성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을 비교/분석하려 한다. 이번의 분석을 통해서 한국의 성도들이 개역성경을 비롯한 기존의 한글 성경들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간에 본문 및 교리적 차이가 심각함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서 나온 성경들을 버리고 믿음의 선진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해 준 성경, 로마 카톨릭 교회의 허구와 미신을 와해시킨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우리는 개역성경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의 안식과 위로를 주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본 사이트에서 개역성경을 분석하는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개역성경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바른 것을 제시해야 하므로 그것의 좋지 않은 면을 많이 부각시킨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부디 양식 있는 독자께서 이 점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달고 선한 말씀들로 은혜 가운데 빛을 주실 줄 확신하다.
각주
(1) 이것에 대한 예로는 창1:2의 ‘하나님의 신’(the God of God)을 들 수 있으며 이것은 원래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이 되어야 한다.
(2)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와 영미 문학에 미친 공헌은 말로 표한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나온 두 개의 문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것은 Benson Bobrick의 ?Wide As the Waters : The Story of the English Bible and the Revolution It Inspired’?(Simon & Schuster, April 11, 2001)이다. 이 책은 위클리프로부터 시작되는 영어 성경의 역사를 잘 보여 주며 특히 킹제임스 성경의 영향에 대해 잘 설명한다. 두 번째 것은 Alister Mcgrath의 ?In the Beginning : The Story of the King James Bible and How It Changed a Nation, a Language, and a Culture?(Anchor, February 19, 2002)이다. 흥미 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NIV의 편집자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킹제임스 성경이 미국과 미국말과 문화에 미친 영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두 책 모두 세속 출판사가 출간한 것이므로 읽을 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제공하므로 가치가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www.amazon.com에서 구할 수 있다.
(3) 영국 성공회 학자들인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킹제임스 성경을 대적하는 영국개역성경을 처음으로 출간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었으며 이들이 로마 카톨릭 소수 사본을 근거로 만든 ‘수정 그리스어 본문’(Revised Greek text) 혹은 ‘비평본문’(Critical text)은 1881년 이후로 출간된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의 본문이 되고 있다.
2009-03-20 15:47:17 | 관리자
오랫 동안 기다리셨지요? 드디어 성경지킴이 사이트가 새롭게 개정되어 오픈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제안을 기다립니다. 진리를 찾으려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의 안식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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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11:35:01 | 관리자
오랫 동안 기다리셨지요? 드디어 성경지킴이 사이트가 새롭게 개정되어 오픈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제안을 기다립니다. 진리를 찾으려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의 안식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03-11 11:35:0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