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아들. 그는 므립바알이라고도 불렸다(대상8:34).
므비보셋은 그의 아버지가 길보아 전투에서 죽을 때에 아주 어렸으며(삼하4:4)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그의 유모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떠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그는 평생 동안 자리를 절었다. 다윗은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릴 때에 자기와 요나단 사이의 우정을 생각하고 사울의 집에서 남은 자들을 찾아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주었으나 후에 그는 그의 종 시바의 속임수로 인해 그 중 일부를 잃게 되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을 생각하며 충성스럽게 지냈으나 시바의 모함과 다윗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재산의 일부를 잃게 되었다(삼하9:1-13; 16:1-4; 19:24-30). 그 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사울 집에 속한 사람들을 내어줄 때에 그를 불쌍히 여겨 살려 주었고(삼하21:1-14) 이로 인해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인 므비보셋이 죽게 되었다(삼하21:8).
2009-07-05 00:46:44 | 관리자
I. 홍해와 시내 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
여기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불평하였는데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바위에서 샘이 나오게 하였다(출17:1-7). 이곳은 시험이라는 뜻을 가진 맛사라고도 불렸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이다(신33:8; 히3:8).
II. 가데스 근처의 신 광야에 있던 또 다른 기적의 샘(민20:13-14).
이곳은 모세와 아론이 죄를 범한 곳이며 이 죄로 인하여 그들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곳은 므리바의 물이라 불리기도 하며(신33:8; 시81:7; 106:32) 므리바가데스라 불리기도 한다(민27:14; 신32:51; 겔47:19).
2009-07-05 00:46:02 | 관리자
고대 바빌론 사람들의 우상.
이것은 화성의 신으로 추정된다(렘50:2). 바빌론 왕들의 이름에도 이 말이 첨가되어 에빌므로닥, 므로닥발라단 등의 이름이 생겼는데(왕하25:27; 사39:1) 후자는 브로닥발라단이라고도 불린다(왕하20:12).
2009-07-05 00:45:24 | 관리자
가나안에서 태어난 레위의 세 아들 중 막내.
그는 레위 사람들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창46:11; 출6:16; 민3:17; 대상6:1). 광야에서 생활할 때 므라리 가족은 성막의 구조물을 맡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지고 가서 세우는 일을 했으며(민4:29-33; 7:8) 가나안 정복 이후에 그들에게는 요르단 너머에 열두 도시가 배정되었다(수21:7, 34-40).
2009-06-15 00:25:49 | 관리자
에녹의 아들.
그는 라멕의 아버지였으며 969세를 살아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 가장 오래 살았고 홍수가 생기기 바로 전에 죽었다(창5:21-22, 27). 노아의 대홍수 이전에는 궁창 위의 물 층이 있어서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하였으며 그 결과 사람의 수명이 길고 또 짐승이나 사람의 크기도 컸다. 또한 온 세상이 온화해서 심지어 극지방도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서 심지어 매머드 같은 짐승도 극지방에 살았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 사람의 수명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여 노아는 950세, 살라는 433세, 벨렉은 239세, 아브라함은 175세, 모세는 120세, 다윗은 70세를 살았고 그 이후로 평균 수명이 70-80세가 되었다(시90:10).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 때에는 다시 수명이 증가하여 100세에 죽은 사람을 아이라고 부르는 일이 발생한다(사65:20). 천년왕국 참조.
2009-06-15 00:25:19 | 관리자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창25:2). 그는 자기 형제 미디안과 함께 아라비아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2009-06-15 00:24:44 | 관리자
I. 요셉의 장자.
그는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후손들은 하나의 완전한 지파를 형성하고 후에 가나안 땅에서 둘로 나뉘었다. 그래서 일부는 바산 지방 즉 요르단 동쪽(북쪽)에 거하였고 다른 일부는 에브라임과 잇사갈 사이에서 요르단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에 거하였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므낫세 지파 지도 참조(19, 23). 므낫세는 야곱의 예언에 따라 재물과 권세에서 에브라임보다 훨씬 못하였다(창41:50-51; 48:1-22; 수16, 17). 지파 참조.
II.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그는 12세에 왕이 되어 55년 동안 치리하였다. 그의 우상숭배와 폭정과 잔인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의 통치 제22년에 그가 바빌론에 죄수로 끌려가게 하셨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낮추었고 이에 하나님은 아시리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를 돌려보내 그가 다시 왕권을 유지하게 하셨고 그때부터 그는 자기가 행한 악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가 숭배하던 우상들과 자기가 조언을 받던 점치는 자들을 제거하고 자기 왕국의 영적/물질적 번영을 위하여 많은 것을 개혁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 방어벽을 보수하고 유다의 견고한 도시들을 강화시켰다. 그는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하다가 평안히 죽어 예루살렘에 묻혔다(왕하21; 대하33).
III.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요나단의 할아버지(삿18:30). 요나단 참조.
2009-06-15 00:24:07 | 관리자
이스라엘의 열여섯 번째 왕.
그는 전에 사가랴 왕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디르사에 있을 때 살룸이 왕을 죽이고 사마리아로 몸을 숨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대적하기 위해 즉시 돌아와 그를 붙잡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10년 동안 통치하면서 폭정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그때에 아시리아의 왕 불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그는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부유한 사람에게서 각각 오십 세겔을 취하여 1,000달란트를 바쳤다. 그는 정상적으로 죽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그의 아들 브가히야는 2년 동안 통치하였다(왕하15:13-22).
2009-06-15 00:23:31 | 관리자
키프러스 사람. 그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오래된 제자’로 불렸다(행21:16).
2009-06-15 00:23:02 | 관리자
신약성경에서 이것은 100드라크마와 같았다(눅19:13, 16).
2009-06-15 00:22:37 | 관리자
므낫세 지파에게 속하고 잇사갈 지파의 경계에까지 이른 마을.
이곳은 예전에 가나안 족속들의 귀중한 도시였으며 그들은 오랫동안 여기를 점령하였다(수12:21; 17:11; 삿1:27). 이곳은 기손 근처 평야의 남서부 경계에 있었으며 그래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는 승리의 장소로 므깃도의 물가가 나온다(삿5:19, 21). 솔로몬의 통치 때에 이곳은 강화되었으며(왕상9:15) 바로 여기에서 아하시야가 죽었고 요시야 왕도 전쟁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백성으로부터 큰 애도를 받았다(왕하9:27; 23:29; 슥12:11). 이곳은 므깃돈으로도 불린다(슥12:11).
2009-06-15 00:22:09 | 관리자
이집트 탈출 뒤에 히브리 여인들이 내놓은 놋 거울을 주조하여 만든 원형의 큰 그릇.
이것은 성막의 문과 태우는 헌물을 드리는 제단 사이에 있었으며 여기에 물을 담아서 제사장들이 몸을 씻을 수 있게 하였다(출30:18-21; 38:8; 40:7). 솔로몬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사용한 큰 물두멍 외에도 희생물을 씻기 위해 열 개의 물두멍이 마련되었다(대하4:6). 각각의 물두멍은 약 1,000리터 정도의 물을 담을 수 있었고 아름다운 지지대 위에 놓였다(왕상7:27-39). 이것들은 성전 앞에 있는 제사장들의 뜰 안에 양쪽에 각각 다섯 개씩 놓였다(왕상7:39). 성전 참조.
2009-06-15 00:21:39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은 물고기의 이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이름이 많지 않다. 모세는 강이나 호수나 바다의 물고기 중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어도 되고 다른 것은 가증하다고 말했다(레11:9-12; 신14:9-10). 나일 강에는 좋은 물고기가 많았으며(출7:18-21; 민11:5) 디베랴 바다에도 역시 물고기가 많았다(눅5:5; 요21:6-11). 유대인들은 물고기를 흔하게 먹었고(마7:10) 지중해와 요르단 강에서 물고기를 얻기도 하였다(느13:16). 그들은 낚시나 창이나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욥41:7; 사19:8-10; 암4:2).
원래 영어의 fish는 ‘물에 사는 생물’을 뜻했으며 따라서 요나를 삼킨 고래 역시 이런 차원에서 큰 물고기였다(욘1:17). 성경에는 어부들도 자주 나오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상당수가 어부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을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만드셨다(마4:18-2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할 때 믿음 고백의 표시로 메달이나 무덤 등에 물고기를 새겼다. 왜냐하면 물고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다섯 글자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다섯 단어의 첫 글자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고기 상징은 이제 어느 정도 미신적인 요소를 띠게 되었다.
2009-06-15 00:21:11 | 관리자
팔레스타인에는 도시나 시골에 물 저장고가 많았다. 여기에서는 1년 중 반은 비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마르지 않는 강이나 샘이 거의 없었으므로 우기의 비를 물 저장고에 담아 두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이런 물 저장고들은 물탱크 혹은 연못 등으로 불렸으며 관개용수가 필요한 밭에 또 여행자를 위해 큰길의 여러 곳에 만들어졌다(시84:6). 그래서 큰 도시들은 돌로 큰 저수지를 만들어 겨울의 비를 모아 두었다. 베데스다, 실로암 참조.
2009-06-15 00:20:44 | 관리자
물은 종종 눈물을 뜻하며(렘9:1) 그래서 고난(시66:12), 재난(애3:54; 시69:1; 124:4-5), 핍박(시88:17), 적군(사8:7; 17:13) 등을 상징한다. 또 물은 자식이나 후손(민24:7), 구름(시104:3), 성령님의 새롭게 하는 능력(사12:3; 55:1; 요7:37-38)을 뜻하고 물을 쏟아 붓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호5:10) 두려움으로 인해 실신하는 것(시22:14)을 뜻한다. 깊은 물은 마음속의 권고나 조언(잠20:5), 지혜로운 자의 말(잠18:4)을 뜻한다. 땅에 쏟은 물은 죽음의 상징이고(삼하14:14) 물의 불안정성은 흔들리는 성격을 뜻한다(창49:4). 사람이 물로 난다는 것은 모태에서 물속에 있다가 태어날 때 물과 함께 나오는 자연적인 출생을 뜻한다(요3:5-6). 우물과 샘 참조.
물을 퍼 올리는 작업
2009-06-15 00:20:18 | 관리자
개인 집이나 도시의 문지기(삼하18:26; 왕하7:10; 막13:34; 요10:3).
성전의 문지기는 모두 레위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한때 4,000명이나 되었고 여러 조로 나뉘어서 문을 지켰다(대상16:42; 23:5). 그들은 모든 문을 지키고 자기들의 조 별로 성전 안에서 의무를 행하였으며(대상26:1-19; 대하8:14; 35:15) 밤에 찬양의 노래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시134:1-3). 또한 대하23:14는 그들이 요아스를 보호하고 아달랴를 죽이는 일을 했음을 알려 준다.
2009-06-15 00:19:51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은 보통 “샬롬레카” 즉 “당신에게 평강이 있기를!”이라는 말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
이런 인사를 받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당신에게 평강이 있기를!”이라고 응답하였다(창29:6; 삿18:15). 성경에는 이 외에도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혹은 “주의 복이 너와 함께 있기를 바라노라.” 등의 문안 인사가 있다. 지금도 동방 사람들은 정중하게 이런 식의 인사를 하며 어떤 때에는 문안 인사와 함께 입을 맞추거나 손이나 수염에 입을 맞추고 손을 가슴에 대고 몸을 숙였다가 위로 펴서 인사를 한다. 야곱이 에서에게 인사한 것과(창33:1-34) 또 창19:1; 23:7; 42:6; 삼하1:2; 요20:26 등을 비교하기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문안 인사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엘리사가 자기 종을 보내 죽은 아이의 몸에 자기 지팡이를 올려놓게 하였을 때 길에서 인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왕하4:29). 그와 동일한 이유로 우리 주님은 70명의 제자들에게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 인사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눅10:4).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선포하는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방 사람들의 문안 인사는 겉치레로 이루어졌으므로 다음과 같은 우리 주님의 말씀은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2009-06-15 00:19:26 | 관리자
성벽이 있는 마을의 문은 대개 나무로 만들고(삿16:3) 두꺼운 쇠나 놋으로 입히며(시107:16; 사45:2; 행12:10) 빗장으로 강화시키고(신3:5; 왕상4:13) 옆에는 탑이나 망대를 세웠다(삼하18:24, 33). 보통 성문을 취하면 도시를 점령한 것으로 보았으므로(신28:52; 삿5:8) 성문 혹은 문은 권력과 지배의 상징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가 그들의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고 약속하셨다(창22:17). 그런 차원에서 ‘지옥의 문들’은 실제적인 문으로 볼 수도 있고 ‘지옥의 권세’ 혹은 ‘지옥’ 그 자체로 볼 수도 있다(마16:18).
성문 혹은 성문 근처에는 빈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장이 서거나 재판이 열리곤 했으며(창23:10-18; 신16:18; 21:19; 25:6-7; 룻4:1-12; 잠22:22; 암5:10-15) 또 거기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창19:1). 그러므로 ‘성문에 앉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한가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술 먹는 사람들을 나타낸다(시69:12). 도시가 재앙을 당하면 사람들이 성문에서 애곡하였으며(사14:31; 렘14:2) 또 여기에서 공적 메시지가 선포되고 대언자들이 말씀을 선포했다(잠1:21; 8:3; 사29:21; 렘17:19; 26:10). 한편 성문에서 가까운 바깥에서 사람을 처형하기도 했다(왕상21:13; 행7:58; 히13:12).
교만을 통해 자기 집의 문을 높이는 자는 결국 도둑질을 하게 되어 파멸에 이른다(잠17:19). 문을 넓게 여는 것은 기쁨과 환영을 뜻하며 우리 주님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시24:7, 9). 끝으로 새 예루살렘의 문들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땅의 도시들의 성문이 밤에 닫혀 있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면서 그곳이 빛의 세상이요 안전을 보장하는 세상임을 보여 준다(계21:25).
2009-06-15 00:18:51 | 관리자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에 아주 흔했으며 다른 것이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다.
이 나무는 키가 크고 잎이 많으므로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했고 또 과일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음식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무화과는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었다(왕상4:25; 미4:4; 슥3:10; 요1:49-51). 무화과는 동방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물이었고 여름에 가장 많이 배출되었지만(왕하20:7; 사38:21) 이른 무화과의 품질이 좋았다(사28:4; 렘24:2; 나3:12). 잎이 나타나거나 꽃이 피기도 전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무화과의 특징이었으나 아주 작고 숨겨진 꽃이 있기는 하였다.
무화과나무의 잎은 봄의 끝에 생기며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옳음을 보여 준다.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마24:32; 아2:13). 무화과는 마치 미국에서 나는 배처럼 생겼고 어떤 때에는 줄에 묶어 말리기도 했으며 이로써 무화과 덩이라는 표현이 생겼다(삼상25:18; 왕하20:7; 대상12:40). 이렇게 말린 무화과의 부피를 줄이려고 바구니나 그릇에 넣고 누르면 마치 떡처럼 눌리게 된다.
2009-06-14 13:04:58 | 관리자
유대인들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가리킨 말(엡2:11).
2009-06-14 13:02:2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