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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시간을 들여 귀중한 글을 번역해 주셔서 함께 나누기 위해 올립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영미권의 양식 있는 크리스천 지성인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샬롬   패스터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킹제임스 성경은 현대 구어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언어를 단지 구식 언어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스타일은 대부분 번역의 대본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히 번역함으로써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God's Secretaries>의 저자 Adam Nicolson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맡았던] 학자들은 성경의 언어를 자기들이 알고 있고, 집에서 사용하던 영어로 끌어내지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들은 외국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외국어의 상태에 맞게 밀고 나아가는 형태이다”(211) 라고 말한다. 영어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상태에 맞춰서 번역하는 형태는 원본의 의미와 스타일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글은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한 고어가 아닌 단어들과 문법구조    2인칭 대명사 구별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고어를 사용한다고 여기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thee’와 ‘thou’ 때문일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이러한 대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2인칭 단수 (thou, thee, thy, thine)와 2인칭 복수 (ye, you, your, yours)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이러한 구분을 한다.   성경을 자세하게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에 사용된 대명사를 세심히 살펴보면, 잘못에 빠진 사람을 회복 시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ye" which are spiritual(영적인 ‘너희’))의 의무이지만,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진실성(considering "thyself"(‘네 자신’을 살펴보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명사의 구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이 구절에서 주는 공동의 의무와 개인의 의무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다. 대명사의 인칭 구별이 중요한 구절에는 다음이 있다: 출애굽기 4:15, 출애굽기 29:42, 사무엘하 7:23, 마태복음 26:64, 누가복음 22:31-32, 요한복음 3:7, 고린도전서 8:9-12, 디모데후서 4:22, 디도서 3:15, 빌레몬서 1:21-25 등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와 같은 많은 현대 언어들 역시 단수 2인칭 대명사와 복수 2인칭 대명사의 구별을 유지한다. 게다가, “thou”와 “ye”가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이러한 대명사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찬송(심지어 현대 찬양에서도)을 드리거나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에는 여전히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 “Be thou my vision”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찬송의 제목에서,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찬양의 가사인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서 “thou” 와 “ye”를 사용하여 찬양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하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들의 국가인 “오 캐나다”를 부르는데 그 곡의 1절에서 “thy”가 한 번, “thee”가 네 번이나 나온다. 이 곡은 1980년 7월 1일에 캐나다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캐나다 어린이들이 “thy”와 “thee”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thou”와 “ye”가 일상적 대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노래와, 산문, 또는 성경에서 훌륭한 문법적, 운율적, 문체적 이유와 함께 계속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이 구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용부호의 부재 킹제임스 성경은 인용부호(" ")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의 고어적 기능으로 여겨지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는 성경에서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왜 유익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주어가 있는 명령문 명령문은 명령을 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주를 찬양하라”라는 문장은 명령문이다. 요즘에는 명령문에서 주어가 종종 사용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너, 주를 찬양하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만약 킹제임스 성경이 위와 같이 표현을 한다면, "Praise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양하라) 또는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와 같은 문장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현대 독자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 문법 책들에서는 명령문의 주어가 항상 “you(너)”이기 때문에 주어를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다. “you(너)”에는 단수인 “너”를 나타내는 “thou”와 복수인 “너희”를 나타내는 “ye”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중요할 수 있다.    시편 104편 35절의 “너는 주를 찬송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자기의 혼)에게 “Bless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송하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thou”가 사용되었으므로 화자의 명령인 “찬송하라”는 화자 자신의 혼에게만 주는 명령이 된다. 하지만, 그 후에 화자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는 명령인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이어 말한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명령문이 대상을 가리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ESV에는 “Bless the LORD, O my soul! Praise the LORD!”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마치 화자가 자신의 혼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역개정도 마찬가지로 같은 구절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라고 번역하였다(이해를 돕기 위해 개역개정 구절을 임의로 추가하였음). 킹제임스 성경의 화자는 명백하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마무리 짓는 반면, ESV의 화자는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결론짓는 듯 하다. 그러므로, 명령문에서의 인칭대명사 사용은 문법적, 그리고 의미론적인 목적을 행한다.   호격(사람 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형태)의 사용   호격은 2인칭 대명사인 “you”를 사용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을 식별하는 명사를 사용하여 그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마태복음 6장 9절 말씀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 좋은 예이다. 요즘 사람들은 “Our Father, who ARE in heaven”이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Our Father, who IS in heaven”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킹제임스 성경의 이러한 특이성은 호격의 충실한 번역에 근거한다. 이것은 고어가 아니라 호격을 사용하는 그리스어를 충실히 번역한 결과이다. 즉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보다 정확한 동의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사용되는 고어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 현대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현대식 번역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6장 73절에 나오는 "bewray”(비밀을 누설하다)라는 단어는 고어처럼 느껴진다. 전체 구절은 "And after a while came unto him they that stood by, and said to Peter, Surely thou also art one of them; for thy speech bewrayeth thee.”(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이다. 현대 역본 ESV에는 이 구절이 "After a little while the bystanders came up and said to Peter, "Certainly you too are one of them, for your accent betrays you."라고 번역되어 있다. "Bewray"라는 단어는 “betray”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Bewray"는 "divulge”(비밀을 알려주다)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조금 더 미묘한 단어이다(메리암 웹스터 사전). 그러므로 "bewray"의 전체적 의미는 “누설함으로써 배신하다”이다. 마태복음 26장 73절은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했던 말이 그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냈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을 “배신한” (연루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3절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킹제임스 성경과 ESV가 모두 “evident”(분명한)라고 번역한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나오는 단어, δηλον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뜻을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의 “오래된” 단어를 접했을 때, 그 단어를 단순한 고어로 무시해 버리기 전에 그 고어가 더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법률용어의 사용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증언) 혹은 “계약”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법률문서이다. 성경 안의 몇몇 책들이 문자 그대로 법률문서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법률문서”라는 말은 “러브레터”와 같이 따뜻하고 가벼운 느낌(몇몇 사람들이 성경을 묘사하듯)을 암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더 의미 있는 법적 계약의 관계로 들어갈 확률이 크다. 결혼은 법적 계약이다. 가족의 재산 상속도 유언과 신탁을 통해 부여된다. 가벼운 사람은 언제든지 “러브레터”를 쓸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 증명서나 자신의 자산을 수여하는 유언장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저 “러브레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체결된 그분의 언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thereof, thereby, therein, hereby, herein, whereof, whereby, wherein, wherefore(그것의,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안에, 이것에 의하여, 여기에, ~하는, 그 점에서, 그러므로)와 같은 법적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성경이 참으로 두 가지 ”증거”의 집합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정확한 법률 용어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미권의 거의 모든 법적 서류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결코 고어가 아니다.    영국식 단어와 숙어 일부 단어들과 숙어는 북미인들에게 고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국인들이나 영연방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북미 이외의 국가에도 그러한 영국의 단어들과 숙어를 이해하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3장 3절에 나오는 “plaiting”(땋은 것 혹은 엮은 것)이라는 단어는 북미인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영국인들에게는 친숙하다. 게다가, 일부 영국 단어들은 인기 있는 영국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북미인들에게도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25절에 나오는 “schoolmaster”(훈육 선생)를 예로 들어보면, 그 단어는 북미보다는 영국에서 훨씬 더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해리포터 소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의 성공과 함께 “schoolmaster”는 북미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말하듯이 언어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래된” 단어들도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에서 사용됨으로써 다시 표준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단어를 구식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어의 모호함 보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which”(어떤)를 사용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용례를 문제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맥에서 사물이 언급되는 것인지, 사람이 언급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을 경우에는 “who(누구)” 대신에 “which”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드로전서 1:23절,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에서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부분은 “the word”(말씀)이나 “God”(하나님) 둘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뜻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리스어 자체에 이러한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도 그것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전문용어로 보존된, 고어라고 추정되는 단어들 고어로 간주되는 일부 단어들은 실제로 특정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전문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로마서 1장 13절에 나오는 “let”(막혔도다)이 킹제임스 성경(여기에서 사용된 “let”은 “방해를 받은”이라는 뜻임)에 나와있는 고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권 노트에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국경수비대, 변호사,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같이 이민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이러한 사실은 “let”이 고어이기 보다는 “전문용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테니스를 할 줄 알거나 경기를 보는 사람은 테니스 공이 네트에 닿거나 스침으로 플레이 진행이 방해되었을 때 “let”이 선언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let”과 같은 단어는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을지 몰라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단어가 결코 아니다.   시적 특징 구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부 문장구조는 사실 시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사무엘상 30장 31절의 "...all the places where David himself and his men were wont to haunt”(또 다윗 자신과 그의 사람들이 자주 가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구문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wont to haunt"는 운이 맞기 때문에 NASB의 “accustomed to go” 구문보다 더 시적이다. 또한, 유다서 1장 8절, "despise dominion”(통치권을 멸시하며)도 “최신식”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구문이다. ESV에는 "reject authority"라고 나와있지만, "despise dominion”은 두운법을 사용한 구문이다. 사실상 1장 8절의 전체 구절, "...these filthy dreamers defile the flesh, despise dominion, and speak evil of dignities”(이 추악한 꿈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고 통치권을 멸시하며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는 초성 알파벳 D가 5번 반복되는 두운법을 사용한 구절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최상의 시적 표현이다. 알파벳 D는 입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터뜨려 소리를 내는 자음인 파열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비난의 말을 기관총처럼 내뱉는 유다서 1장 8절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자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운율과 두운이 성경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시적 표현은 말씀을 암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고어인 것들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 킹제임스 성경에는 “spake”와 “shew”같이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를 가진 단어들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특별히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현대에 사용되는 같은 의미의 단어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문맥에서 누구라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친숙한 고어들 일부 단어들은 고어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단어들이다. 그러한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hou”는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뜻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고 나면, 이 고어가 다른 현대 단어들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thou” (단수 2인칭 대명사)와 “ye” (복수 2인칭 대명사)와 같은 단어들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들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준다. 기독교인이 현대 역본 대신에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고서도 단수와 복수의 2인칭 대명사의 문법적 구분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생소하지만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는 고어들 킹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고어들은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다. 사사기 3장 21절에서 22절이 좋은 예이다. “And Ehud put forth his left hand, and took the dagger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And the haf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upon the blade, so that he could not draw the dagger out of his belly;”(에훗이 자기의 왼손을 내밀어 자기의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빼서 그의 배를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에 엉기므로 그가 칼을 그의 배에서 빼지 못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haft”는 고어이다. 하지만, 문맥을 통해 그 단어가 칼날의 반대편에 있는 검의 한 부분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고어들은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구절들에 자주 등장한다.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없는 생소한 고어들 이제 문맥에 의해서 식별될 수 없는 고어들만 남아있다. 그러한 고어들은 이해를 하는 데에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킹제임스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 쓰인 낯선 고어들은 “listeth”(마음대로)(요3:8)과 “wist”(알지)(요5:13)이다. “Lust”와 연관된 “to list”는 “to desire”(열망하다)라는 뜻이며, “wise”와 연관된 “to wist”는 “to know”(알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이 두 단어들보다 더 많은 고어들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문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생소한 고어들도 다시 친숙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돼지 독감이 발발하기 전에는 북미의 많은 어린이들이 “swine”(돼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NIV와 ESV는 “swine” 대신에 “pigs”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돼지 독감에 대한 과대 광고들로 인해 “swine”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 낯선 고어들도 다른 단어들로 대체하기 보다는 뜻을 학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2016-03-09 18:33:17 | 관리자
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가? ---------------------(*) 이 글은 다음 기사를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이 번역한 것이다. http://www.kjvtoday.com/home/Features-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양식 있는 크리스천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한다.   ◾English Standard Version (ESV)◾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HCSB)◾King James Version (KJV)◾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New International Version (NIV)◾New King James Version (NKJV)◾New Living Translation (NLT)◾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RSV)◾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 (TNIV) ---------------------   킹제임스 성경은 거의 400년이라는 기간에 개신교(침례교 포함)의 표준 성경으로 의심 없이 수용되어 왔다. 1611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역본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중 단 한 개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 후 20세기 중반부터 새 역본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52년에 신약과 구약이 다 출판된 RSV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최초의 만만치 않은 경쟁 대상이었다. 그 이후로 NASB, 리빙 바이블, NIV, NKJV, 그리고 점차적으로 수십 개의 역본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쏟아져 나왔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역본들의 대부분은 21세기에 들어 대중성을 잃었고, 판매 수량으로 봤을 때 오늘날 가장 인기가 많은 역본은 2011년에 업데이트 된 NIV와 ESV, 그리고 NLT이다. 새로운 역본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현재와는 상관이 없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역본들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가운데 킹제임스 성경은 세월의 시험을 견디어 내며 그럴 만한 이유와 함께 건실한 독자층을 꾸준히 형성해 왔다. 이 기사는 킹제임스 성경의 뛰어난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A. 교리 1. 입증할 수 있는 오류가 없는 성경 James R. White의 <Th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Can You Trust the Modern Translations?>나, D. A. Carson의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A Plea for Realism>과 같은 책들은 킹제임스 성경에 문법 및 원문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책들의 목표는 ‘킹제임스 유일주의’ 즉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킹제임스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의 저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및 원문 선택을 평가하는 면에 있어서 중립적이지 않다. James R. White는 NASB의 자문 위원이었으며 D. A. Carson은 NLT의 번역자였다. 이들이 제안했듯이 번역 및 원문 선택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구절은 합리적인 대안 이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이 웹사이트는 킹제임스 성경에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150개의 오류를 반박하며 킹제임스 성경이 명백히 무오함을 보여 준다.  2. 더 완전하고 교리적으로 우수한 원문 NKJV와 마찬가지로 킹제임스 성경의 신약은 다양한 비잔틴 계열의 신약 사본을 따르는 공인본문에 기반을 둔다. NASB, NIV, ESV, HCSB와 같은 인기 있는 역본들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을 따르는 ‘네슬레-알란드’ 판(즉 ‘NA 27 과 UBS 4 본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기반으로 하는 역본들은 많은 수의 중요한 단어들과 구절들을 생략하거나 그 말씀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러한 단어들과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마가복음의 결말(마가복음 16장 9-20절), 간음한 여인에 관한 말씀(요한복음 8장 1-11절), 주기도문의 결론(마태복음 6장 13절), 베데스다 연못에 내려온 천사에 관한 말씀(요한복음 5장 4절) 에티오피아 내시의 믿음 고백(사도행전 8장 37절), 그리고 마태복음 12장 47절, 마태복음 17장 21절, 마태복음 18장 11절, 마태복음 21장 44절, 마태복음 23장 14절, 마가복음 7장 16절, 마가복음 9장 44절과 46절, 마가복음 11장 26절, 마가복음 15장 28절, 누가복음 17장 36절, 누가복음 22장 43절, 누가복음 22장 44절, 누가복음 23장 17절, 사도행전 15장 34절, 사도행전 24장 7절, 사도행전 28장 29절, 로마서 16장 24절, 요한일서 5장 7절 등. 알렉산드리아 본문 지지자들도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인 공인본문이 교리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는 공인본문을 옹호하는 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가 있다. B. 정확성   1. 직역킹제임스 성경은 본질적으로 직역된 성경이다. NIV와 NLT 같은 많은 새 역본들은 미국성서공회의 Eugene Nida에 의해 대중화된 ‘동적 일치’라 불리는 번역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적 일치의 번역 원칙을 따를 경우 번역자들은 번역이 아니라 해석을 하게 된다(이들은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뜻만 통하면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동적 일치 원칙을 적용한 역본을 읽는 독자들은 결국 실제 성경 본문이 아니라 학자의 해석을 읽게 된다. NKJV, NASB, 그리고 ESV 또한 본질적으로 직역된 성경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ESV 번역 위원회의 회원인 Leland Ryken이 쓴 훌륭한 서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온라인 소책자는 다음에 있다.http://www.gnpcb.org/assets/products/excerpts/1581347308.1.pdf 2. 사람의 단수와 복수 구별 킹제임스 성경은 2인칭 단수와 2인칭 복수를 구별하기 위해 ‘thou’, ‘ye’, 그리고 동사의 어미변화를 사용한다(다음 참조).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guide   ‘Thou, thee, thy’는 2인칭의 단수를 나타내며 ‘ye, you, your’는 복수를 나타낸다. 스페인어 (“tú” and “vosotros”), 독일어 (“du” and “ihr”), 중국어 ("你" and "你們")와 같은 현대어 역시 2인칭에 대해 여전히 이러한 구분법을 유지한다. 2인칭에 대한 이런 구별이 없이 모두 ‘you, you, your’를 사용할 경우 독자들은 출애굽기 4장 15절, 출애굽기 29장 42절, 사무엘기하 7장 23절, 마태복음 26장 64절, 누가복음 22 장 31-32절, 요한복음 3장 7절, 고린도전서 8장 9-12절, 디모데후서 4장 22절, 디도서 3장 15절, 빌레몬서 21-25절 같은 구절에서 개인이 언급되고 있는지 혹은 여러 명의 복수 그룹이 언급되고 있는지 구분할 수가 없다. 3. 이탤릭체의 사용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원어에는 없지만 본문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추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했다. NIV, ESV, TNIV와 같은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추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시편 16편 2절이 “Thou art my Lord: my goodness extendeth not to thee” (extendeth가 이탤릭체로 쓰여 있음. “주는 나의 주시니이다. 나의 선함이 주께는 미치지 못하오나”)라고 번역 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구절의 뒷부분이 ‘my goodness’, ‘not’, 그리고 ‘to thee’ (나의 선함, 주께, 못하오나)라는 세 단어로만 쓰여 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extendeth’ (미치지)를 첨가하고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기함으로써 그 단어가 첨가되었음을 표시하였다. <옥스퍼드 주석 NRSV>의 주석은 시편 16편 2절의 히브리어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러 성경 역본들은 같은 방법으로 이 구절을 번역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번역자들이 추가한 단어들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NASB와 NKJV도 추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한 성경이다. 4.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은 성경 인용부호 (“ ”)는 구술된 말씀을 표기한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어떠한 구절에도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것이 왜 좋을까? 킹제임스 성경이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이유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서술자가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한 것인지 번역자들이 직접 추측해야만 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인용부호를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때때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독자들이 본문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될 수도 있다.   C. 스타일 1. 중복문(重複文)의 사용 (종속절을 하나 이상 가진 중문)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어에 흔히 나타나는 복합 문장을 거의 나누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에서 로마서 1장 1-7절과 히브리서 1장 1-4절은 각각 한 문장으로 쓰여 있다. 반면에 현대 역본들 중에서 직역을 했다고 하는 NASB와 ESV조차 이런 문장을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복합 문장은 아이디어들 간의 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저자의 사고 과정을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2.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Hebraisms)킹제임스 성경은 사전적이고 통어법에 따른 히브리 어법을 그대로 지킨다(William Rosenau의 <Hebraisms in the Authorized Version of the Bible> 참조).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독자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의 히브리적 느낌을 희석시킨다.  킹제임스 성경에 표현된 언어의 특수성은 히브리어를 충실히 모방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히브리어의 선행 직접 목적격을 사용한 표현들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창세기 1장 4절)과 히브리어의 이중전치사 (“Abram went up out of Egypt” 창세기 13장 1절)는 본질적으로 직역의 취지로 번역된 NASB나 ESV와 같은 역본들에서조차 완전히 삭제되었다. <Learn New Testament Greek>의 3판 저자이자, 널리 호평을 받는 그리스어 교사인 John Dobson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히브리어가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라고 권한다. 그는 분명하게 동적 번역 형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을 선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킹제임스 성경이 현대 역본들의 일반적인 번역보다 더 밀접하게 히브리어 스타일을 따른다”는 것을 인정한다(305). 3. 그리스어 구조와 스타일과의 일치 킹제임스 성경은 신약에서 다른 역본들보다 그리스어의 어순을 더 밀접하게 따른다. 마태복음 17장 19절의 “Then came the disciples to Jesus.”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사가 주어보다 앞서 나오는 이 구절의 문법은 영어를 사용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어순은 그리스어의 어순(“τοτε προσελθοντες οι μαθηται τω ιησου”)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리스어의 정확한 스타일과 구조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어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킹제임스 성경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현재 시제의 사용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종종 마태복음 3장 13절, “Then cometh Jesus from Galilee to Jordan unto John”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르단으로 요한에게 오사)과 같이 과거의 일을 묘사할 때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현재형으로 쓰인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하게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기록자들은 과거의 일에 중요성을 부여할 때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사용했다. 역사적 현재 시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들리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역본들은 역사적 현재 시제를 단순 과거형으로 번역하려는 경향이 있다. 4. 시적 표현 성경은 매우 시적인 책이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는 성경에 나오는 명확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구약의 대언서들과 요한계시록도 형상화, 유사성, 과장법 및 직유법 등의 시적 기능들로 가득하다. <The Five Books of Moses>의 저자인 Everett Fox는 모세오경의 책들도 시적 기능이 풍부하다고 말하며, 모세오경이 서양 독자들에게는 종종 간과되는 ‘말로 표현되는’ 시적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유대인들은 몇 세기에 걸쳐 ‘캔틸레이션 표시’(cantillation marks) 즉 시를 노래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시들을 사용하여 토라 즉 모세오경의 율법을 노래했다. 신약에서는 우화, 유사성, 팔복의 비유, 바울의 은유, 베드로의 종말에 대한 발언, 요한의 어둠과 빛을 나란히 두어 비교하는 병치(juxtaposition) 같은 시적 기능들이 발견된다. 킹제임스 성경과 같이 진정으로 시적 번역을 추구한 역본들이야말로 성경의 시적 표현을 정당하게 다루는 역본들이다. D. 배경 1.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 왕에 의해 승인되다킹제임스 성경을 공인한 제임스 왕은 변명의 여지없이 성경의 무오성, 절대적인 확실성, 그리고 충분성의 교리 (오직 성경)를 옹호했던 성경 신자 크리스천이었다. 성경의 무오성에 관하여 그는 “성경 말씀을 대할 때에는 정화되고 순결한 귀로 대하라.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호한 부분들은 오직 너의 무능함을 힐책하며 겸손하게 흠모하라.” (Book I:13, Basilicon Doron) 라고 말했다. 성경의 절대적 확실성에 관하여는 “성경 말씀 전체는 명령과 금지, 이 두 가지만을 담고 있다. 명령은 지키고 그에 반대되는 것들은 삼가라. 명령과 금지 두 가지 모두에 순종하라.” (Book I:7, Basilicon Doron)라고 하였다. 또한,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가 성경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에 쓰여 있지 않은 것들을 구하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 네가 알기를 원하시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릇된 추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그분께서 생각하시는 것들은 친히 성경에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Book I:13-14, Basilicon Doron). 크리스천 왕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된 것은 윌리엄 틴데일이 1536년 공개 처형을 당하면서 “하나님이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던 그의 최후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David Daniell의 <The Bible in English: Its History and Influence. New Haven>: Yale UP, 2003 at 156). 2. 근대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나다 킹제임스 성경은 자유주의 신학, 진화론, 정치적 정당성, 그리고 종교통합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신학적/사회적 견해를 만족시키기 위한 맞춤형 역본들이 출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NIV는 성경이 성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내기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출판되었다. 그 결과는 시편 1장 3절, 요한계시록 22장 18절 등에서 문제가 되는 부정확한 번역으로 나타났다 (Vern S. Poythress 와 Wayne A. Grudem의 <The TNIV and the Gender Neutral Controversy>). 물론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도 그 시대의 남성들이었고, 그들의 문화 역시 ‘중립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 기독교 군주 문화는 신을 부정하는 현대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이상적인 민족인 ‘주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민족’(시33:12)에 더 가까웠다. 믿음과 실행에 관한 모든 면에서 성경의 무오성과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번역자들의 헌신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제임스 왕 자신도 “이 지식으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것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Book I:6, Basilicon Doron). 3. 2차적 저작물에 관한 법률에 영향 받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 현대 역본 출판사들은 개정 작품 (예: 새 역본)을 출판할 때 저작권을 주장하기 위해 법률상 상당한 개정을 해야 한다. “저작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2차적 저작물은 ‘새로운 저작물’로 여겨지기 위해 원본과 충분히 달라야 하거나, 상당한 양의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에 사소한 변경을 하거나 소량의 내용만 추가하는 것은 새 버전으로서 저작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Copyright Registration for Derivative Works (Circular 14)). 이 법은 각각의 새로운 버전이 이전 버전과 ‘충분히 다른 면’을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을 지키는 현대 역본들을 읽을 때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있는 단어들이 가장 정확한 단어들인지, 아니면 저작권 취득을 위한 역본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대체로 사용된 덜 정확한 내용을 읽고 있는 것인지 추측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 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독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읽을 때에는 번역자들 스스로가 그들이 선택한 단어들이 가장 정확한 단어들임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확신해도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위해서 15가지의 규칙이 주어졌는데, 그것들 중 일부는 개선할 필요가 없는 기존 번역들을 번역자들이 그대로 유지하도록 분명하게 허용했다. 첫 번째 규칙은 번역자들이 비숍 성경(Bishop Bible)을 따르도록 권고하되 원어 텍스트가 비숍 성경과 다른 경우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열네 번째 규칙은 다른 좋은 역본이 원어와 더 잘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면 그 번역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망가진 게 아니라면 고치지 말라.”와 같은 태도는 변화를 위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2차적 저작물 관련 법률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4.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 능통했던 번역자들 킹제임스 성경은 틴데일과 위클리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전의 영어 성경에 나타난 학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믿음과 기록된 말씀에 있어서 경건한 경쟁자였다. 47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및/또는 그리스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 언어인 아람어, 갈대아어, 시리아어, 그리고 아랍어에도 능통했다 (Alexander McClure의 <Translators Revived>). 엘리자베스 1세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의 학자들은 젊을 때에 문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학교들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그리고 영어 공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어에 능숙한 많은 현대학자들이 라틴어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사실 라틴어는 개신교 학교에서 성직자들(신부나 목사 등)이 주로 사용하는 교회의 언어 – 즉 일반 사람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 - 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원문과 번역의 변형을 해명 해 줄 많은 자원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제작된 라틴어 주석과 저작물에서 발견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번역자들은 라틴어에 능숙했다. 5. 영어에 능통했던 번역자들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적절한 번역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번역은 원문의 언어와 번역 대상어 모두에 대한 전문 지식을 수반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대부분의 현대 번역자들보다 영어를 더 잘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킹제임스 성경의 비평가인 월러스(Daniel Wallace)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발언을 했다. “킹제임스 성경이 많은 오류를 갖고 있는 만큼 그 성경의 번역은 종종 많은 현대 역본들보다 그리스어 완료 시제를 더 우수하게 번역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의 황금 시대였던 셰익스피어 시대에 출간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 (RSV, NASB)은 에베소서 2장 8절을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라고 번역한 반면, 킹제임스 성경은 “For by grace are ye saved”라고 번역했다. 킹제임스 성경의 완곡어법 완료 형태 – ‘ye are saved’가 아니라 도치를 사용하여 ‘are ye save’로 한 것, 또 ‘구원받아 오고 있다’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다’ -  는 한번 얻은 구원을 강하게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현대 번역자들만큼 그리스어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영어만큼은 그들이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베소서 2장 8절을 영어 완료 시제(‘you have been saved’가 아니라 ‘ye are saved’)로 번역 하는 경우 구원받은 이후로 생긴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Daniel Wallace의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p. 575). E. 유산 1. 초기 근대 영어 인칭에 따른 동사의 어미변화 (이것은 사실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를 제외하면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모든 단어들은 현대 출판물에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Laurence M. Vance의 <Archaic Words and the Authorized Version>). 게다가, NIV조차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구절들을 비교해 보자. 에스라 9장 5절에서 KJV가 ‘heaviness’(근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반면, NIV는 ‘abasement’(근심)을 사용했다. 이사야 24장 23절에서 NIV는 ‘abashed’(수치를 당하고)를, KJV는 ‘confounded’(당황할 것이며)를 사용하고, 에스겔 40장 18절에서 NIV는 ‘abutted’(좌우편인데)를, KJV는 ‘over against’(맞은편으로)를 사용한다. NIV는 역대기하 15장 14절에서 ‘acclamation’ (소리)을, KJV는 ‘voice’(소리)를 사용한다. NIV는 이사야 13장 8절에서 ‘aghast’ (무서워하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KJV는 ‘amazed’(놀라며)를 사용한다. Laurence M. Vance는 NIV가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220개의 예시들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단어는 마가복음 4장 37절에서 사용된 NIV의 ‘squal’l (광풍)과 KJV의 ‘storm’(폭풍)이다. 인칭에 따른 동사의 어미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NIV보다 읽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무엇이 더 어려운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꼼꼼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아래의 링크들을 확인해 보길 권한다.   Understanding 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Version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은 그저 오래된 역본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오래된 요소들보다 언어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겨다.   A Beginner's Guide to 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Version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guide 이 링크는 초보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문법과 어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정제되고 단련된 말씀 킹제임스 성경은 400년 동안 신중하게 교정되어 왔다. 현재의 버전은 인쇄 상의 모둔 오류를 수정한 신뢰할 만한 버전이다.  3. 성경의 인기도 인기도는 무언가의 가치를 평가하는 성경적인 척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여전히 인기 있는 역본들 중 하나임에 주목해야 한다. 2011년 2월 CBA 판매량에 의하면,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NIV를 제외하고는, NKJV, ESV, NASB, 그리고 NLT보다 킹제임스 성경이 더 인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부가 주장하듯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크리스천들은 구닥다리의 ‘소수’가 아니다.
2016-01-22 12:23:29 | 관리자
안녕하세요?   5분만 공부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인칭에 관한 문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http://ultrafree.org/articles/A%20Five-Minute%20Complete%20Guide%20to%20King%20James%20Grammar.pdf   http://www.scripturetruth.org/biblebackground/strangewords/kjvgrammar.html   샬롬   패스터
2015-12-16 10:22: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 괄호가 나옵니다.이런 괄호는 킹제임스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주어진 원어 성경에는 콤마, 세미콜론,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이탤릭 체 글자 등이 없습니다. 이 모든 부호들은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괄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괄호 안의 내용은 원래 없었는데 역자들이 첨가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 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성경은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괄호 안의 모든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 있던 것입니다. 다만 역자들이 강조하며 정확히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물음표, 느낌표처럼 넣은 것입니다.   예1, 요7:50(그들 중의 한 사람 곧 밤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Nicodemus saith unto them, (he that came to Jesus by night, being one of them,)   예2, 마6:32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예3, 마24:15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괄호를 치면, 예1처럼 괄호 안의 내용이 다음 구절을 수식하기도 하고, 예2처럼 괄호의 내용이 바로 전 구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 주기도 하며, 예3처럼 괄호이 내용이 명확하게 독자에게 경고를 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지고 괄호가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KJB에는 223개, NASB에는 240개, ESV에는 269개의 괄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괄호를 접하면 역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하면 될 것입니다. 괄호는 물음표, 느낌표 등과 같이 문장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역자들에 의해 사용된 문장 부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11-16 15:09:4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더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시내 사본 조작"이라는 제목의 PDF 파일을 추가로 만들어 올립니다. 고화질로 되어 있으니 인쇄해서 주변 분들에게 보여 주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5-08-08 14:02:19 | 관리자
게일 리플링거(Gail Riplinger)의 글을 PDF 파일로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리플링거는 트리니태리안 성경 공회의 성경을 추천합니다.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Holy-Bible-Authorised-Version-Windsor/dp/1862283346/ref=sr_1_4?s=books&ie=UTF8&qid=1436930867&sr=1-4&pebp=1436930888596&perid=0SBJVP0XJBM3E7BB731G    
2015-07-15 12:22:41 | 관리자
안녕하세요?   미국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관련 참고 문헌 목록을 여러 목사님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공개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  존경하는 목사님들께,   성경론에서 총체적 축자영감과 섭리보존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입장과 믿음도 있습니다.   여러 목사님들과 교제하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참고문헌을 부탁하시곤 하였습니다. 더 많은 책들과 자료들이 있지만 여기 보내드리는 것은 단지 제가 소유하고 있는 자료들입니다. 더 좋은 책들, 또 반대입장에 있는 책들도 물론 있으니, 그 판단과 선택은 각자 목사님들께서 하시고 시간 절약을 위해서 몇 가지 서적과 웹사이트를 찾아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목사님께서 아시는 좋은 책자들과 정보들도 소개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은 명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명품이 아닌데 짝퉁 가방을 가지고 있으면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슈는 이제 단지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목회자 각자 시간과 마음을 내어서 그 반대 입장에 분명히 서든가 아니면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한 가지로 기록하게 하시고, 오늘날까지도 보존하셨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여튼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보내드립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사역에 두루 열매가 맺히는 귀한 목사님들이 되시도록 기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 Sunday Service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 Evening Serviceswww.centralkbc.com
2015-02-12 12:48: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몇 달 동안 종종 주변의 몇몇 형제/자매님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이상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며 혹시 제가 그것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의 제목은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비방 글들의 링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메일을 무차별 살포하는 분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특히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 매우 분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적어 놓은 비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지난 400년 동안 영어 세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막상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그 글을 적은 분인지 아니면 그분의 추종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에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동일한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렸기에 관리자 형제가 즉시 삭제하였습니다. 관리자들이 신경을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짧은 순간 게재되었던 글임에도 그 글을 읽고 놀란 마음에 어찌 된 일이냐고 질문의 메일을 보낸 형제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수천 군데 심각한 오류가 있어서 많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현대 역본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 허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에 오늘은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들이 차라리 현대/자유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예 틀렸고 인간 저자들이 임의대로 쓴 기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어로 성경을 보존해 주셨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킹제임스 성경을 공격하는 데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메일과 카톡 등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무차별적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들의 헛된 주장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거나 잃어버리는 연약한 지체들이 있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간단히 글을 씁니다.   이들은 한동안 원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주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와 대소문자를 가지고 성도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개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그 여러 개 뜻 가운데서 가장 합당한 하나를 정해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원래 대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위클리프 이후 킹제임스 성경에 이르기까지 약 230년 동안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에서 같은 영(그리스어의 경우 프뉴마)이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확실히 판단되는 데는 대문자 Spirit으로, 하나님의 영이나 혹은 다른 영으로 두어도 문제가 없는 데는 소문자 spirit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문맥에 따라 독자가 판단해서 이해하면 됩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난외주와 대소문자 비방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 합니다.   1. 난외주   과거에 영어 성경이 나올 때에는 번역하면서 특정 단어나 절에 대해 번역자들 간에 만장일치로 깔끔하게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 난외주에 소수의 의견을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난외주가 가장 많았던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바로 전에 나온 제네바 성경이었습니다. 제네바 성경 안에는 칼빈의 개혁주의(장로교) 사상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에 제임스 왕은 성경을 새로 번역하라고 명령하면서 특별히 난외주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평균 한 페이지에 5-6개 정도의 난외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해서 알아야 할 것은 난외주란 소수의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정황을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 난외주 자체가 본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본문 비평 학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F. 힐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번역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첨가한 난외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를 섭리[돌보심]로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스크리브너(1884)는 외경이 포함된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에 8,422개의 난외주가 있었다고 말한다. 스크리브너는 구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4,111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 원문에 좀 더 문자적인 의미를 제공해 주며 2,156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67개는 이문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경의 난외주들 가운데 112개는 그리스어의 문자적 번역을 제공해 주며 582개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예들이고 37개는 이문들이다. 이러한 난외주들은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고 과정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번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킹제임스 성경 변호 213쪽>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5   이분은 곧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살펴보았음을 난외주에 표기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섭리 즉 돌보심으로 그들이 본문의 단어들 - 난외주가 아니라 - 을 선택하는 것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겸손함에 대해 힐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외주들이 보여 주듯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인 그 성경을 완전한 것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다만 그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신뢰할 만하게 재현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도 그것을 그렇게 추천했다. (214쪽)   그리고 힐즈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서문의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온유한 독자인 당신에게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에게 당신을 맡기는 일만 남았다. 그분은 우리의 눈에서 비늘을, 우리의 마음에서 베일을 벗기신다. 또 우리가 자신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지혜를 열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며 참으로 우리의 성정을 고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금과 은보다 더 그것[말씀]을 사랑할 수 있으며 참으로 끝까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분께서 우리 앞에 자신의 말씀을 놓으실 때에 그것을 읽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뻗으시고 부르실 때에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바로] 그것은 복된 일이며 우리를 결국 영존하는 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돌보심과 내적 의식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구한다.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그분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성령님과 더불어 그분께 모든 찬양과 감사가 있기를 원한다. 아멘."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글>   난외주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611년 초판 발행 이후에 킹제임스 성경이 정착되면서 난외주들은 성경 자체에서 곧 사라졌다는 겁니다.   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역사서로 부록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카톨릭 교회를 가장 크게 미워하던 사람들이 만든 제네바 성경에도 외경이 들어 있었지만 후에는 난외주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외경이나 난외주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것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이지 난외주나 외경이 아닙니다.   바로 그 성경 본문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거기 담긴 복음을 듣고 확신하는 사람을 구원시키고 성화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고 사용하시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준 글’이나 ‘제임스 왕에게 바친 헌정문’이나 난외주나 외경이나 금박 표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본문!   하나님은 바로 이 성경 본문을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순수한 이 본문을 정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존하였습니다.   바로 그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사용해서 지난 400여 년 동안 복음이 선포되고 성경의 모든 교리가 확립되었습니다. 난외주나 외경 심지어 원본이 아닙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이 반포된 지 400년이 이미 지난 이 시점에서 난외주가 본문보다 옳다고 주장하며 교묘하게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또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분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6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 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7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 8 그런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나니 이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리니 이는 저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것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라(딤후3:6-9).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터인데 그때 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들은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복사본(팩시밀리)을 하나 구한 뒤 거기에 기록된 난외주만 열심히 찾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며 이슈를 만들 만한 단어가 나오면 손뼉을 치면서 킹제임스 성경이 틀리고 난외주가 맞는다고 소리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의 본문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성경 신자일까요?   이런 예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이사야서 14장 12절의 루시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분명히 에스겔서 28장의 ‘타락한 그룹’이 루시퍼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난외주에는 ‘daystar’ 즉 샛별(계명성)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할 때는 “과거에 이 단어를 샛별로 본 사람들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봐라, 루시퍼가 아니라 샛별이 맞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 한 번도 ‘샛별’을 본문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611년 이후로 지금까지 산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100억 권 정도 인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 100억 권에 무어라 되어 있습니까? 루시퍼지요.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1611년 이후의 모든 신학교가 세워지고 신학 서적들이 저술되었습니다. 즉 교리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와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기록된 루시퍼가 아니라 난외주의 샛별이 맞는다고 주장하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과연 성경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호하게 일하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신약 성경 사본들은 공개적으로 여러 대륙의 거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보급되었습니다. 반면에 모든 현대 역본들의 모체가 되는 천주교회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바티칸 도서관과 동방 정교회 수도원에 고이 간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수님 승천 후 1850년이 지난 시점에 이 둘이 공개되면서 이것들이 참으로 진실한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의 1850년 동안 성도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믿음 생활을 했단 말인가요?   성경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시12:6-7) 부인하는 현대 역본 역자들의 이런 주장과 난외주를 가지고 본문을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순수한 본문이 보편적으로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급되고 유통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의 난외주, 외경 그리고 천주교 소수 사본 등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 대문자/소문자 spirit/Spirit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몇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이 여전히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1:12(ACTS 11:12). “And the spirit bade me go with them, nothing doubting. Moreover these six brethren accompanied me, and we entered into the man’s house.”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과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8(ACTS 11:28). “And there stood up one of them named Agabus, and signified by the spirit that there should be great dearth throughout all the world: which came to pass in the days of Claudius Caesar.” 여기의 소문자 spirit은 1611년, 1638년 그리고 1769년 판에 있습니다.   요일 5:8(1 JOHN 5:8).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1611년 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1638년과 1769년 판에는 이것이 소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spirit)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spirit/Spirit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 존재(a spirit being), 사람의 영, 성령님, 정신 등   2. 성경에서는 소문자 spirit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사례들이 있다(출31:3; 욥27:3; 고전2:12).   3. 소문자 spirit은 성령님의 일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동일한 말씀이 요엘서 2장 28에는 소문자로(pour out my spirit), 사도행전 2장 17절에는 대문자로(pour out of my Spirit)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판에서 행11:12, 행11:28, 요일5:8에 소문자 spirit이 쓰인 것은 앞뒤 문맥으로 살펴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누군가가 대문자 Spirit이 쓰여야 합당하다고 주장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이 하는 일은 다시 태어난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공동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런 구절들에서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 단어 프뉴마는 대문자 소문자 구별이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프뉴마를 있는 그대로 ‘스피릿’(대문자든 소문자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의 영감/보존에도 문제가 없으며 번역되면서도 보존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영어 성경의 역자들은 영어 단어 스피릿에 그리스 단어에 없는 대소문자의 구별이 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대소문자 spirit/Spirit을 구분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인쇄술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식자공이 일일이 모든 단어의 알파벳(성경 전체를 보면 수십만 개 혹은 수백만 개)을 찾아서 조판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 조판공들은 대소문자 spirit/Spirit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조판공의 이런 실수 예는 여럿 있습니다.   이 중에 유명한 것은 사악한 성경(Wicked Bible)으로 알려진 1631년 판입니다. 이 판에서는 출20:14 말씀 즉 “너는 간음하지 말라”가 “너는 간음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Wicked_Bible   즉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라고 조판해야 하는데 꼼꼼함을 요하는 작업 때문에 몸이 매우 피곤했던 식자공은 그만 여기서 중간의 ‘not’을 넣지 못했고 결국 그 성경은 “너는 간음하라”라고 명령하는 ‘사악한 성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성경의 대부분은 즉시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몇 개만 희귀본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초판의 이런 실수 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KJB2/View/2Vl   그래도 spirit/Spirit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분들은 리플링거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구절에서는 spirit/Spirit에서 선택의 자유를 독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앞뒤 문맥을 보고 독자가 결정하면 될 일이지 성경의 보존이나 최종권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끝으로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성경에서 스펠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1611년의 초판을 참고하려 합니다. 그러나 1611년 초판에는 식자공의 이런 실수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므로 1611년 초판이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요일5:8의 경우 1611년 초판에는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고 동시에 그다음에 나오는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Water와 Blood도 신성을 가진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체가 쓰이지 않았고 고딕체가 쓰였습니다. 고딕체의 경우 이런 사례에서는 종종 같은 구절에서 몇 단어를 연거푸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어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요일5:8에서 반드시 대문자 Spirit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다음의 Water와 Blood도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결론을 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서너 군데는 spirit/Spirit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감/보존/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역자들은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번역하였으나 식자공의 실수로 이런 데가 있습니다. 이런 식자 문제들은 역자들이 살아 있던 시대에 대부분 곧바로 교정되었으나 역자들이 죽은 이후에도 처리되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서너 군데의 spirit/Spirit이 이 경우입니다.   그래서 철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스퍼드 판과 케임브리지 판이 나왔고 지금 존재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둘 중의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토마스 넬슨 출판사 판은 자기들 마음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단어를 임의로 수정하였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판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리플링거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ourkjv.com/KJB.pdf   (*) 참고로 리플링거의 글은 매우 훌륭하지만 100% 옳지는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안내해 드린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초판을 낼 때에는 영어 성경 파일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탤릭체를 살린 파일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이 주신 영어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여러 소스를 알게 되었고 2011년에 400주년 기념판을 출간할 때에는 Pure Cambridge Text로 알려진 영어 본문을 사용하였습니다.   www.bibleprotector.com   물론 앞으로도 저희는 영어 본문의 경우 Pure Cambridge Text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번역의 초기 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짐입니다. “왜 처음부터 pure text를 쓰지 않았느냐?”고 질책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만 불거지게 됩니다.   영어 성경도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까지 약 230년의 담금질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혹시 본문, 번역 등에 의문이 있으면 대안과 함께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메일의 내용은 제안이어야지 독단적인 주장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본문 난외주, 대소문자, 외경, 이역 등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을 조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강한 확신 속에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어리석음과 답답함(자기들이 보기에)을 깨뜨리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을 쓰는 분들은 부디 앞으로는 그 귀중한 시간을 올바른 데 투자해서 ‘개역(개정판) 성경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써서 수백만 성도들을 살리는 데 매진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값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눈을 열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오류로 인해 고생하며 종교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있는 신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거의 다 완성된 시점에 뒷북을 치며 나타나 이미 킹제임스 성경의 한국어 번역사(史)가 증명한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못할 일입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펴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쓰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입니까?   세상에는 다 때와 순서가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고속도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니 내가 바로 옆에 새롭게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미 건설된 고속도로에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모아 보수하고 다듬어 더 완성도 높은 도로가 되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미 놓인 고속도로를 마음껏 이용해 상품을 나르고 이동하며 사업을 일구는 사람이 굳이 바로 옆에 길을 다시 만들겠다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킹제임스 성경을 새로 번역할 때가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아 이미 나와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잘 다듬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선포해서 죽어가는 혼들을 구원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2015년에도 우리 주 예수님의 큰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에서 저자인 리건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http://keepbible.com/KJB2/View/2Vl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의 불편한 진실’ 같은 글로 혹세무민하는 동일한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다음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1. 원어를 과도하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2.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4   3. 딱정벌레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85   4.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5.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2015-01-07 18:08:1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뉴저지 중앙침례교회의 이황로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가 흰돌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호주의 Keith Piper 목사님이 지은 <NIV & Its Omissions>를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1   아마 NIV에 대해서는 가장 잘 평가한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황로 목사님의 글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동역자 여러분께,   섬기시는 교회와 사역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최근에 키이쓰 파이퍼의 "NIV & Its Omissions"의 번역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좋은 책들과 자료 사이트들이 있어서 또 새로운 책을 소개할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제를 연구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고 확신을 하려면, 적어도 5년 내지는 7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적어도 20-30권의 책을 읽어야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에 대한 견해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전체 이슈를 간략히 요약하여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인용된 책들을 더 공부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쁘신 목회생활 하다보면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목사님들과 사역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이나 입장을 변호하고 더 나아가 강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신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들, 신학교에서도 보고 들은 것들, 자존심과 무지, 교만 등으로 흠정역 또는 한글개역(개정)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목회/사역자로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든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이슈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흠정역이나 한글개역을 주장하면 무리라는 것이 제 소견일 뿐입니다. 저도 양쪽 진영의 신학교들을 다 졸업했고, 아직도 양쪽 진영에 훌륭하시고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이슈는 이제는 더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제 견해와 믿음은 이렇습니다.   1. 성경의 총체적인 축자영감, 섭리 보존.2.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완전한 말씀이 존재한다. (98%의 신학교가 이렇게 믿지 않음)3. 개역성경(개정개역)의 복음 구절로도 구원받는다.  (심지어 천주교, 여호와의 증인, 구약구절만으로도).4. 개역성경(개정개역)의 85%는 흠정역과 차이가 없고 그 부분은 진실한 하나님 말씀이다.5. 개역성경(개정개역)의 7%는 사본 자체의 문제가 있으므로 불완전하며 오류이다.6. 개역성경(개정개역)의 그 나머지는 번역자체의 오류들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도 인정).7. 개역성경(개정개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고 주요 교리들을 약화시킨다.8. 한글 흠정역은 어떤 단어나 문체가 독자의 기호에 맞지 않을 수 있고 Keepbible.com의 어떤 특정한 믿음이 독자와 다를 수 있지만 정확성 면에서는 한글 성경으로 최고이다.9. 개역성경(개정개역)을 쓰는 교회들의 믿음은 예정론, 교회론, 세대주의, 종말론, 성령론 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10. 세례나 침례 문제, 여집사 문제, 은사주의, 성경적 분리 등은 성경 문제와 비교해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 11. 교리에 못지않게 우리의 믿음과 인격과 언행, 교회질서, 목회자의 성경적 권위도 매우 중요하다.12. 오래 전에 성서침례교회들이 한국에서 구원 복음으로 도전하고 바로 잡아 준 것처럼, 이제는 성서/독립침례교회들이 "바른 성경"이 무엇인지 개신교회들에게 소개하고 섬겨야 한다.   ------------------------   최근에 저의 졸역인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라는 책이 흰돌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일일히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며 책을 소개하여 드리면 좋겠는데, 한국에서 나온지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번역 판권은 이기석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가지고 계시고, 원저자 Keith Piper라는 분은 호주에서 사역하시는 독립침례교회 복음전도자이며 다른 좋은 책들을 쓰신 분이기도 합니다. 출판은 독립침례교회 계통에서 하고자 했지만, 판권을 가지신 분께서 일반 개신교회들 목회자, 신학자들이 봐야 된다고 하는 비젼과 부담을 우선으로 가지셔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이 방대해서 마지막 교정을 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 나중에 그 오자, 탈자, 개신교적 용어 등은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추천을 하신 분은 정성구 박사이시며, 총신과 대신의 총장을 지내신 분이고 TR을 믿는 장로교 학자이십니다. 감수/출판을 하신 분 중의 한 분은 장로교회에 많이 알려진 이광복 목사님이시고, 설교학과 종말론에 모두 20만 명 이상에게 세미나를 하신 분이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입니다. 종말론은 우리하고는 달리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 분입니다. 장로교 목사님으로서는 모험과 압박을 감수하시고 이번 일을 추진하셨습니다.  다른 감수자이신 위의 이기석 선교사님과 이광복 목사님은 서로 친구이십니다.   한국에서 원하시는 분들은 흰돌 출판 www.hindol.com 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하실 수 있고, 아마 22,500원이며 무료배송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book.hindol.com/prd/detail_cate.php?main_cat_seq=101&ctg_seq=102&prod_seq=489   킹제임스 성경 이슈를 한 책으로 통달 할 수 있고,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마 반박을 하려든지 찬성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제일 빨리 결론에 도달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원저자가 비교한 것들을 일일이 개역성경과도 비교해서 다 찾아 넣고 역주를 달고, 사전까지 다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일반책의 5배 이상 고충).   우리 하나님께서, 교제하는 목사님들과 가정과 사역 위에 은혜와 긍휼하심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소종 이황로 올림   Hwangro Lee, Pastor                Central Baptist Church    201.981.1967.900 Madison Ave, Paterson, NJ 07501.557 Blvd., Hasbrouck Hts, NJ 07604.e-mail: hwangrolee@yahoo.comwww.centralkbc.com  
2014-12-03 16:53:12 | 관리자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원어로 너스레 떠는 목사들 격퇴하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9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원어 성경의 유혹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08
2014-12-03 16:26:3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