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와 <성경 번역 기법: 형식적 일치 vs 동적 일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그 안에서 여러 유명한 미국 석학들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소개하자 어떤 분들이 혹시 국내의 유명한 신학자 중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분은 없느냐고 묻기에 오늘은 간단히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4
국내 신학대학교의 명망 있는 신학자들 중에서도 바른 사본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는 호주 목회자 키이쓰 파이퍼의 책을 이황로 박사님(미국 West Coast Baptist College 교수, http://wcbc.edu/)이 번역하고, 이기석 전 뉴저지 새순교회 목사님과 이광복 광신대 교수이자 흰돌선교센터 원장님이 감수했으며, 전 총신대 및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님이 추천한 책입니다. 네이버: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6438/20170112/%EC%A2%85%EA%B5%90%EA%B0%9C%ED%98%81-500%EC%A3%BC%EB%85%84%EC%9D%98-%ED%95%B5%EC%8B%AC-%EA%B0%9C%ED%98%81%EC%9E%90%EB%93%A4%EC%9D%98-%EC%84%B1%EA%B2%BD.htm
정성구 박사님은 총신대/대신대 총장을 역임한 분으로 장로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정성구 박사님의 추천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어느 사본, 어느 역본으로,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번역했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제네바 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KJV)은 그 당시 종교개혁의 정신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정신 위에 [그리스어 본문인] 공인(共認)역(TR)을 바탕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영역 성경들, 특히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신국제역)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 뉴에이지, 로마 카톨릭 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적인 인본주의 사상으로 성경 번역에 심대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학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이들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본문을 재구성한 것을 철저히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이단이며 가장 잘못된 사본을 사용하고,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안목으로 번역을 해버린 그들은 도리어 기독교 신앙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자들입니다.
이 책은 사본학의 근원을 파헤치는 역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목회자와 모든 신학생들에게 두루 읽혀져 성경교육과 설교에 크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의 추천사 중에서
이 책을 감수하신 이광복 목사님이나 추천하신 정성구 박사님을 이단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이단이 됩니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sug.top&where=nexearch&acq=%EC%9D%B4%EA%B4%91%EB%B3%B5&acr=2&qdt=0&ie=utf8&query=%EC%9D%B4%EA%B4%91%EB%B3%B5%EB%AA%A9%EC%82%AC
우리는 이런 훌륭한 분들이 이단이라고 지목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수정한 본문, 그 뒤로 네슬레 알란드가 편집한 본문, 그리고 연합성서공회가 편집한 본문이 틀리고 공인 본문과 거기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만 옳다고 믿을 뿐입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문제점 1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2_02&write_id=20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매직마커 1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2_02&write_id=23
*유명한 분들은 다 킹제임스 성경을 썼네요.(특별 영상)
http://www.cbck.org/Series9/View/2HC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4-04 15:35: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떤 분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을 해 달라고 해서 간단히 글을 올립니다.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기법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기법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명한 성경 사본 학자인 웨이트 박사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으므로 일단 그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이 상세해서 조금 길므로 오늘은 먼저 결론을 말씀드린 뒤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성경 번역 기법 결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구체적 증거 자료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78-90쪽).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 인용 시작 ---------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문자적 일치’(Verbal equivalence) 곧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번역 기법을 채택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이 우수한 까닭은 번역자들이 소위 ‘문자적 일치’ 혹은 ‘형식적 일치’라 불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역본들의 이른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가지고 ‘말씀의 그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그것으로 자라가길’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필요하다. 나는 부록 A에 이 ‘하나님의 말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몇 구절들을 실었다. 한 번 유심히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을 번역할 때도 사람의 말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필요하다.
설교자나 교사가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가 첫째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말씀의 젖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것이다. 베드로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고 말한다(벧후3:18).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고 붙들고 믿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 양식으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로써 우리는 자라나고 성장하며 증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
이제 킹제임스 역본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NIV, NASB, NKJV 등)의 문제점 특히 번역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번역 기법을 거부했다. 대신 그들은 번역에 있어 동적 일치 방법을 도용하였다. ‘동적’(Dynamic)이란 단어는 ‘변하다’ ‘움직이다’는 뜻을 내포한다.
현대 역본 번역자들은 일종의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여 히브리어를 영어로 번역했다. 관용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의 단어들을 영어로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식(의미가 잘 통하는 경우에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본래 있는 내용에 더하거나 본래 있는 내용을 바꾸거나 빼버리는 방식으로 말을 맞추었다. 그들은 이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의역’(Paraphrase)이라고도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리빙 바이블’은 의역에 관한 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나는 동적 일치 기법이 본질적으로 마귀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방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이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영어로 옮길 수 있다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바뀌는 문법을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소위 동적 일치라 불리는 기법이 나왔다. 동적 일치가 적용되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래 단어의 모습을 잃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의 우수성은 역자들이 이런 동적 일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 혹은 형식적 일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a. 동적 일치는 마귀의 것이다.
동적 일치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우리가 동적 일치를 마귀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기로 그것의 근원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을 보여 주시고 믿게 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every word) 중요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우리는 그 말씀들 즉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A를 참고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 주는 구절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b. 동적 일치의 연대기
사탄이 시작한 동적 일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자. 동적 일치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사탄은 뱀을 통해 이브와 아담을 차례로 넘어뜨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소위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의역해서 이브와 아담에게 제시한 것이다.
(b.1) 마귀의 삭제 법칙
동적 일치의 첫째 법칙은 삭제 법칙이다. 즉, 하나님을 말씀에서 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 :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뱀을 통해 사탄은 이브에게 물었다.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은 곧 “너희가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부분을 빼버렸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자, 여기까진 좋다. 사탄은 이 부분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 17절의 말씀이 이어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16절과 17절을 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3장 1절에서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 “자, 너희가 모든 나무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뭔가를 빼버렸다. 즉, 17절을 삭제하고 말한 것이다. 동적 일치가 마귀적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말씀을 삭제하고 없애버리는 마귀의 방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록 B에 지난 1992년까지 612년 동안 존재했던 영어 성경전서들과 신약성경전서들의 목록을 실었다. 거기에는 영어 성경전서 135권과 영어 신약성경전서 293권이 올라와 있다. 합치면 총 428권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영어 성경전서 혹은 영어 신약성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428권이면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현재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보는 역본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진행하되 다른 역본들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NASB, NIV, 그리고 NKJV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역본들은 모두 의역본들이다. 나는 여러 가지 실례를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해 보이겠다. 우리에게는 NKJV와 원문(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하여 출력한 자료가 있다. 거기에 보면 편집자들이 의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빼고 변개한 곳만 2,000군데가 넘는다[B.F.T. #1442]. NASB도 똑같이 분석해 보았는데 이것에는 4,000군데가 넘었다.
NIV는 어떨까? NIV에는 이것들 중 가장 많은 6,653군데의 첨가, 삭제, 변개가 이루어졌다[B.F.T. #1749‐P]. 이 방법은 사탄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것을 마귀의 것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자신의 말씀을 함부로 바꾸길 원치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첨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권한을 주신 일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따라야 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b.2) 마귀의 변개 법칙
둘째 법칙은 변개 법칙 곧 하나님을 말씀을 바꾸는 것이다. 삭제도 바꾸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변개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삭제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들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 3장 4절에는 이런 변개의 사례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경우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것을 만들었다. 창세기 3장 4절을 읽어 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변개된 내용이 보이는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불순종의 형벌은 죽음 곧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불순종의 결과였다. 첫 사람을 죽인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바로 불순종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절에서 마귀는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창2:17).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동적 일치이다. 동적 일치는 말씀을 뺄 뿐 아니라 말씀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바꾼다. 이것은 마귀의 것이다.
(b.3) 마귀의 첨가 법칙
마지막으로 우리가 동적 일치 방법을 마귀의 것이라고 하는 셋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은 이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자, 이것이 첨가의 예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이 열릴 것에 관한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창세기 2장 17절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창세기 3장 2‐3절을 보자.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자, 이젠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첨가했다.]
위에서 언급된 삭제, 변개, 첨가는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의 핵심이다. 그것의 본질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역에 불과하다.
c. 동적 일치의 역사
동적 일치의 현대사는 니다(Eugene Nida)와 함께 시작되었다. 니다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 미국 성서 공회, 연합 성서 공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며 동적 일치 방법을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니다가 동적 일치라는 독약을 소개한 이후로 이 방법을 채택한 역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변개된 역본이 되었다. 그는 성경 변개의 전문가이다. 여기서 변개는 동적 일치를 말한다. 나라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귀의 일이다.
심지어 성경을 믿는다는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 않고 대신 이 동적 일치를 수용했다. 다음은 니다와 또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책들이다.
(1) 1947년, 「성경 번역」(Bible Translation), 니다 저, 런던의 연합성서공회출간
(2) 1950년, 니다는 ‘번역 또는 의역’이라는 글을 ‘성경 역자’(The Bible Translator)지에 실음
(3) 1952년, 「성경 해석의 새로운 방법론」(A New Methodology in Biblical Exegesi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4) 1955년, 「성경 번역 문제」(Problems in Translating the Scripture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5) 1959년, 「성경 번역의 예를 통해 본 번역의 원칙」(Principles of Translating As Exemplified by Bible Translating),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6) 1960년, 「메시지와 미션」(Message and Mission), 니다 저, Harper Brothers 출간
(7) 1961년, 「번역자들을 위한 새로운 도움」(New Help for Translator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간. 이 책은 도움은커녕 훼방과 치욕을 가져오는 책이다.
(8) 1964년, 「번역을 위한 과학」(Toward a Science for Translating), 니다 저, 네덜란드에 있는 E. J. Brill사 출간
(9) 1966년, 「성경 번역자들의 수용 언어 본문 사용」(The Bible Translator's Use of Receptor Language Text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10) 1969년, 「번역의 이론과 실행」(Theory and Practice of Translation), 니다 저, 네덜란드에서 출간
(11) 1966년, 「현대인을 위한 복음」(Good News for Modern Man) 출판 (또는 「Today's English Version – 의역 성서 중 하나). 이것은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적용한 대표적 변개 역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을 위한 복음」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피’ - 그리스어로는 ‘haima’ - 를 전체 103번 중 36번 빼버렸는데 그중 16번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그들은 동적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대신 ‘죽음’ 혹은 ‘희생’ 등의 단어를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haima’는 분명히 ‘피를 뜻한다.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을 보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Today's English Version」은 이것을 그저 ‘값비싼 희생’(Costly sacrific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피’를 빼고 ‘희생’이란 단어를 넣었다. 오늘날 유명한 모 성경 해설가[존 맥아더]도 같은 것을 주장한다. 즉, 피는 단지 죽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존 맥아더의 이단 교리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B.F.T Brochure #5에 나와 있으며 현재 여기의 리스트에는 150개가 넘는 책자들이 있다.]
(12) 1975년, 나이로비에 있는 WCC(세계 교회 협의회) 역시 동적 일치 방법을 채택했다. WCC는 배도한 단체로 공산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과 이단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지금도 그들은 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에서 살인, 약탈, 고문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돕고 있다. 이런 WCC가 동적 일치를 번역의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WCC는 사탄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니다와 연합성서공회 그리고 미국성서공회의 계보를 이었다.
(13) 1978년, 신국제역(NIV)이 출시되었는데 이것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이 역본은 마귀의 동적 일치 방법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었다.
(14) 1983년, 세계 복음주의 침례교 연합[ABWE]이 「말씀으로」(By the Word)를 출판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교사들 중 몇몇은 이 위원회 소속일 것이다. 출간 당시 ABWE 본부는 뉴저지 주, 체리힐 근처에 위치해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 년 내에 펜실베이니아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씀으로」는 실버네일(Lynn Silvernale)이 쓴 책이며 다른 말로 「성경 번역의 우선순위와 방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니다를 수없이 언급했다. 그런데 니다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배도자이다. 그녀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나는 번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번역 양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마다 나름대로의 분류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비크맨(John Beekman)의 분류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는 번역 특히 성경 번역에 있어 두 가지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문자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관용적 접근이었다.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양식으로 세분된다: 엄격한 문자적 번역, 한정적 문자적 번역, 관용적 번역, 그리고 자유 번역. [실버네일의 책, 13쪽]
실버네일의 문제는 번역 기법론에 관한 책들을 잘못 선택한 데 있다. 비크맨과 캘로우(John Callow)는 「하나님의 말씀 번역」(Translating the Word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에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근본주의 진영의 성경을 믿는 선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에 보급할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마귀적인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버네일과 ABWE는 공히 관용적 번역 기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동적 일치 방법을 선호하며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실버네일은 이 일을 33쪽에 언급해 놓았다.
번역 일을 시작한 지 [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면서 벵골 성경을 번역했다]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안에는 상당한 거리낌이 있었다. 성경의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조정’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을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실버네일의 책, 33‐34쪽]
성경에는 동적 일치 접근법에 대한 저주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이어서 실버네일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벵골 성경의 충실한 번역을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조정 [즉, 첨가, 삭제, 변경] 양식을 선택한 뒤 일관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괄호의 말은 저자의 것임] [실버네일의 책, 34쪽]
이처럼 늘 내용을 조정하는데 어찌 충실한 번역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하나님을 말씀을 변경한다면 충실한 번역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조정 양식들을 담은 31개의 원칙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원칙들은 우리 지역 협회 전체의 인가를 받았고 이로써 공중 앞에 널리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실버네일의 책]
그래서 그들은 방글라데시 현장의 모든 ABWE 선교사들로부터 이 모든 조정 사항들을 인정받았고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의 고소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번역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 수십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꿀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죄(罪)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녀는 죄(罪)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이다.
d. 동적 일치의 역사 요약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했고 니다(Eugene Nida)가 계승했던 이 동적 일치 ‘바이러스’는 급기야 1983년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배도한 WCC 내에서 얼마간 활동하던 이 바이러스가 소위 [거룩함의] 분리를 외치는 근본주의 진영에도 침투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Bible International’에서 나온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동적 일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Bible International’은 오하이오 주 소재 근본주의 선교 기관 중 하나인 침례교 중간 선교회(Baptist Mid-Missions)의 지부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의 전직 회장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하이오 주 베레아에서 있었던 나의 목사 임직식 때 심의위원회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BIBLE FOR TODAY의 뉴스 보고서에서 ‘Bible International’에서 사용하는 동적 일치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변개에 대한 여러 통의 질의서가 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침례교 중간 선교회는 내게 이 두 가지 보고서를 주문해 왔다. 나는 내 뉴스 보고서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읽어 보도록 했다. 결국 침례교 중간 선교회가 사람을 보내어 이것을 수령해 갔다. 나는 부디 그들이 내용을 읽고 동적 일치로 인해 생긴 잘못들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현재 기독교 진영은 동적 일치가 만연한 상태이다. 이미 그것은 두 곳의 침례교 근본주의 선교회에 침투해 들어갔다.
동적 일치는 더 이상 배도한 진영(신복음주의, 현대주의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본주의, 분리주의 진영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곳에서 더 위험하고 마귀적이며 치명적이다. 다를 것이 없다. 진실은 진실이고 오류는 오류다. 마땅히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마귀의 방법으로 소위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d.1)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동적 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바른 구약성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성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이라도 원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의미가 있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해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 일치에서는 본문상의 단어나 본문 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그러할진대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본문이 정확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떠하겠으며 그의 자질을 따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 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 일치 방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 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현실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마소라 본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역자들이 동적 일치 방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d.2) 여러 역본에 대한 4년간의 검증
나는 근본주의 진영에서 사용되는 여러 역본들을 4년 이상 검토하고 비교해 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이 역본들이 킹제임스 성경 및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얼마나 다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d.2-1) 1611년 KJB 분석
첫 해는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 - 넬슨 출판사가 재출간한 초판 킹제임스 성경 - 을 가지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킹제임스 역본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25쪽 분량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B.F.T. #1294]. 이 보고서에는 초판과 현재 판 사이에는 종종 철자나 구두법의 차이가 있지만 바뀐 곳은 오직 421군데뿐이며 그것도 모두 소리(귀로 듣는 차이)와 관련된 차이뿐임이 명시되어 있다. 바뀐 곳은 모두가 사소한 내용들이다. 원한다면 이 내용을 요약한 소책자를 구할 수 있다[B.F.T. #1495].
(d.2-2) NKJV 분석
다음은 NKJV와 KJV를 카세트로 들으며 비교해 보았다. 테이프에 녹음된 성경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자료이다[B.F.T. #777/1‐43]. 일단 차이점이 발견되면 해당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본문을 찾아보고 어느 번역이 더 본문에 가까운지 확인해 보았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 원문에 가장 충실했다. 그래서 나는 전보다 더 킹제임스 성경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연구에 대한 보고서는 95페이지(큰 페이지)의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42]. 이 보고서에는 2,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올라와 있다. 이 보고서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 형태로 나와 있다[B.F.T. #1465]. 또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9개)도 있다[B.F.T. #1367/1‐9].
(d.2-3) NASB 분석
이듬해 나는 NASB를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한 다음 KJB의 근간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도 비교해 보았다. NASB도 앞서 NKJV에 대해 한 것처럼 그렇게 진행했다. 이번에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을 확인한 결과 본문과 동떨어진 쪽은 NASB였다. 연구 결과는 187쪽짜리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94‐P]. 이 보고서에는 4,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로 구할 수 있으며[B.F.T. #1518]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1개)도 있다[B.F.T. #1494/1‐11].
(d.2-4) NIV 분석
이후 2년 8개월 동안 같은 식으로 NIV를 분석했다.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 후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대조해 보았다. 이 보고서 역시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749‐P]. NIV는 온통 의역과 동적 일치 방법으로 가득했고 그 분량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 찾아보자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6,653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소개되어 있다.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비교했을 때에도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항상 정확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6개)이 있는데 여기에는 4,600개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B.F.T. #1749/1‐16]. 이것의 제목은 ‘NIV의 결함들’이다[B.F.T. #2054].
(d.3) 일반 사람들은 새 역본들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성경 역본들을 원문과 직접 비교해 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어느 역본이 바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NIV가 말하는 게 다르고, KJV가 말하는 게 다르다. 히브리어도 모르고 그리스어도 모르는데(대부분 그렇다) 아는 언어 즉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으라. 그리스어, 히브리어 원문이 이 역본에 고스란히 번역되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라. 아니면 영국의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가 간행한 소책자를 참고해도 좋다[B.F.T. #1060]. 이 소책자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618개의 단어가 간략한 의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좋은 사전 한 권을 가지고도 이 단어들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가령 ‘Habergon’은 방패 혹은 쇠사슬 갑옷을 뜻하며 ‘Ouches’는 주머니 또는 행낭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영어 단어들이 정확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번역이라는 점이다.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우리는 1611년 이후로 의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단어들의 정의를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BIBLE FOR TODAY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제목은 「The Defined King James Bible」이다. 이것은 12포인트의 큰 활자로 인쇄되었다. 싱가포르의 토우(S. H. Tow) 박사는 이 성경 4,000권을 구입해서 세계 여러 곳에 배포했다. 원하는 사람은 전화로 주문 가능하다.
(d.4) 앞으로 연합성서공회는 오로지 동적 일치 기반의 의역 성경만을 출간할 것이다.
연합성서공회(United Bibel Society, UBS)는 더 이상 성경전서(창세기‐계시록)를 출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의역본 및 관용 번역본만을 출간할 것이며 그것도 성경전서가 아닌 쪽 성경만을 내놓을 것이다. 1962년 연합성서공회는 성경 선집(쪽 성경) 또는 소책자 3.5권당 성경 한 권을 출판했고, 1969년에는 18.5권당 성경 한 권을, 1974년에는 쪽 성경 33권당 한 권의 성경전서를 출간했다. 선집이나 쪽 성경에 비해 성경전서 발행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성경전서를 출판하는 경우는 성경 출판 자금이 어디서 들어왔을 때뿐이다.
성경공회는 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있는 자금은 성경 선집을 출판할 때나 쓰인다. 이 내용은 BIBLE FOR TODAY에서 출간된 「성경의 미래」(The Future of the Bible)’에서 확인할 수 있다[B.F.T. #1246]. 성경의 미래는 어떤가? 연합성서공회가 연루되어 있는 한 성경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하는 이유이며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d.5) ‘동적 일치’에 대한 간략한 정의
동적 일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동적 일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b. Of or pertaining to dynamics; active; opposed to static; Pertaining to change or process(1b. 역학적인; 동적인; 정적의 반대; 변화하는) [웹스터 사전, 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 1949년, 257쪽]
다시 말해 ‘동적’이란 말은 ‘움직이는’을 뜻한다.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이와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둔다. 즉, 운동(movement), 변화(change), 역동(dynamics)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바꾸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기 원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 원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Thus saith the Lord)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거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화를 가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나는 부록 A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였다.
‘동적’(dynamic)이라는 단어에서 ‘역학’(dynamics)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역학’의 정의를 웹스터 사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That branch of mechanics treating of MOTION of bodies(kinematics) and the action of forces in producing or CHANGING their motion(kinetics). 2. The MOVING MORAL, as well as physical, forces, or any kind, of the laws relating to them
1. 물체의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을 일어나게 하거나 바꾸게 하는 힘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2. 움직이는 어떤 것 ‐ 물리적인 힘, 윤리, 법
모든 동적인 과정은 변하는 과정이고 진화하는 과정이며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낸 과정이다. 힘이든 물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 강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하염없는 은혜, 흐르는 강물같이 넘치네!”라고 찬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흐른다’, ‘움직인다’, ‘유동적이다’라는 식의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정된 어떤 것이어야 하며 이로써 우리는 그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바위’(a Rock) 곧 거대한 바위산과 같으시다. 산은 움직이지도 흔들리지도 요동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신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11).
이제 관련 단어인 ‘일치’ 혹은 ‘동등함’(equivalence)에 대해 웹스터 사전을 살펴보자
State of being equivalent, equality of worth, meaning, or force: 가치나 의미나 힘에 있어 같은 혹은 동등한 상태
여기서 ‘equivalent’(같은, 동등한, 일치하는)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obs. Equal in force or authority. 2. Alike in significance. 3. Equal in value, esp. for exchange. 4. Virtually or in effect identical; tantamount; as, his remark was equivalent to an insult
1. 사어(死語). 힘이나 권위에 있어 같은 2. 의미나 비중이 같은 3. 가치 특히 교환 가치가 같은 4.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
어떤 면에서 ‘equivalent’는 좋은 용어이다. 하지만 위의 정의 중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이란 부분은 어떤 범위를 한정짓기 어려운 의미이다. 이런 의미라면 나는 ‘동등’(equivalent)이란 개념을 선호할 수 없다. 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원한다. 왜 동등한 것 혹은 일치하는 것이 필요한가? 독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이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나는 단지 어떤 동등한 것, 일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바로 그 진짜를 보여 준다. 그것은 바른 본문, 우수한 번역자, 우수한 팀 작업, 우수한 번역 기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단어들의 정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idiom’(숙어, 관용어법) 혹은 ‘idiomatic’(관용적인, 관용어법을 사용한)이란 용어이다. 이 용어들은 번역이나 역본에 대해 말할 때 동적 일치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로 쓰인다.
‘관용적인 번역’(idiomatic translation)에서 ‘관용어’(idiom)란 이런 뜻을 지닌다(웹스터 사전).
1. The language peculiar to a people(a tongue)’, or to a district, community, or class(a dialect). 2. The Structural form peculiar to any language. 3. An expression in the usage of a language, that is peculiar to itself either in grammatical construction or in having a meaning which cannot be derived as a whole from the conjoined meanings of its elements(as, the more the merrier)
1. 특정 민족 혹은 지역이나 단체 및 계급 고유의 언어 2. 특정 언어 고유의 구조 3. 일반적인 문법 구성이나 각 단어의 단순한 결합에서 나올 수 없는 뜻을 가진 독특한 언어 표현, 가령 다다익선 같은 표현]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바로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 그리스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곧 관용어이다. 원어를 알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말씀의 정확도에 훼손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이 ‘관용어들’은 결코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관용적이고 동적인 일치가 아닌 ‘문자적, 형식적 일치’를 기반으로 번역되어 우리 손에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 인용 끝 ---------
결 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형식적 일치의 중요성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24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01 15:07: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떤 분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을 해 달라고 해서 간단히 글을 올립니다.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기법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기법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명한 성경 사본 학자인 웨이트 박사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으므로 일단 그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이 상세해서 조금 길므로 오늘은 먼저 결론을 말씀드린 뒤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성경 번역 기법 결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구체적 증거 자료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78-90쪽).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 인용 시작 ---------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문자적 일치’(Verbal equivalence) 곧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번역 기법을 채택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이 우수한 까닭은 번역자들이 소위 ‘문자적 일치’ 혹은 ‘형식적 일치’라 불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역본들의 이른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가지고 ‘말씀의 그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그것으로 자라가길’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필요하다. 나는 부록 A에 이 ‘하나님의 말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몇 구절들을 실었다. 한 번 유심히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을 번역할 때도 사람의 말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필요하다.
설교자나 교사가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가 첫째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말씀의 젖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것이다. 베드로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고 말한다(벧후3:18).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고 붙들고 믿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 양식으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로써 우리는 자라나고 성장하며 증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
이제 킹제임스 역본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NIV, NASB, NKJV 등)의 문제점 특히 번역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번역 기법을 거부했다. 대신 그들은 번역에 있어 동적 일치 방법을 도용하였다. ‘동적’(Dynamic)이란 단어는 ‘변하다’ ‘움직이다’는 뜻을 내포한다.
현대 역본 번역자들은 일종의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여 히브리어를 영어로 번역했다. 관용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의 단어들을 영어로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식(의미가 잘 통하는 경우에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본래 있는 내용에 더하거나 본래 있는 내용을 바꾸거나 빼버리는 방식으로 말을 맞추었다. 그들은 이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의역’(Paraphrase)이라고도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리빙 바이블’은 의역에 관한 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나는 동적 일치 기법이 본질적으로 마귀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방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이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영어로 옮길 수 있다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바뀌는 문법을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소위 동적 일치라 불리는 기법이 나왔다. 동적 일치가 적용되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래 단어의 모습을 잃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의 우수성은 역자들이 이런 동적 일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 혹은 형식적 일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a. 동적 일치는 마귀의 것이다.
동적 일치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우리가 동적 일치를 마귀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기로 그것의 근원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을 보여 주시고 믿게 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every word) 중요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우리는 그 말씀들 즉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A를 참고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 주는 구절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b. 동적 일치의 연대기
사탄이 시작한 동적 일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자. 동적 일치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사탄은 뱀을 통해 이브와 아담을 차례로 넘어뜨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소위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의역해서 이브와 아담에게 제시한 것이다.
(b.1) 마귀의 삭제 법칙
동적 일치의 첫째 법칙은 삭제 법칙이다. 즉, 하나님을 말씀에서 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 :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뱀을 통해 사탄은 이브에게 물었다.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은 곧 “너희가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부분을 빼버렸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자, 여기까진 좋다. 사탄은 이 부분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 17절의 말씀이 이어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16절과 17절을 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3장 1절에서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 “자, 너희가 모든 나무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뭔가를 빼버렸다. 즉, 17절을 삭제하고 말한 것이다. 동적 일치가 마귀적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말씀을 삭제하고 없애버리는 마귀의 방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록 B에 지난 1992년까지 612년 동안 존재했던 영어 성경전서들과 신약성경전서들의 목록을 실었다. 거기에는 영어 성경전서 135권과 영어 신약성경전서 293권이 올라와 있다. 합치면 총 428권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영어 성경전서 혹은 영어 신약성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428권이면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현재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보는 역본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진행하되 다른 역본들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NASB, NIV, 그리고 NKJV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역본들은 모두 의역본들이다. 나는 여러 가지 실례를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해 보이겠다. 우리에게는 NKJV와 원문(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하여 출력한 자료가 있다. 거기에 보면 편집자들이 의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빼고 변개한 곳만 2,000군데가 넘는다[B.F.T. #1442]. NASB도 똑같이 분석해 보았는데 이것에는 4,000군데가 넘었다.
NIV는 어떨까? NIV에는 이것들 중 가장 많은 6,653군데의 첨가, 삭제, 변개가 이루어졌다[B.F.T. #1749‐P]. 이 방법은 사탄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것을 마귀의 것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자신의 말씀을 함부로 바꾸길 원치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첨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권한을 주신 일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따라야 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b.2) 마귀의 변개 법칙
둘째 법칙은 변개 법칙 곧 하나님을 말씀을 바꾸는 것이다. 삭제도 바꾸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변개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삭제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들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 3장 4절에는 이런 변개의 사례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경우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것을 만들었다. 창세기 3장 4절을 읽어 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변개된 내용이 보이는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불순종의 형벌은 죽음 곧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불순종의 결과였다. 첫 사람을 죽인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바로 불순종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절에서 마귀는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창2:17).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동적 일치이다. 동적 일치는 말씀을 뺄 뿐 아니라 말씀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바꾼다. 이것은 마귀의 것이다.
(b.3) 마귀의 첨가 법칙
마지막으로 우리가 동적 일치 방법을 마귀의 것이라고 하는 셋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은 이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자, 이것이 첨가의 예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이 열릴 것에 관한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창세기 2장 17절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창세기 3장 2‐3절을 보자.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자, 이젠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첨가했다.]
위에서 언급된 삭제, 변개, 첨가는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의 핵심이다. 그것의 본질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역에 불과하다.
c. 동적 일치의 역사
동적 일치의 현대사는 니다(Eugene Nida)와 함께 시작되었다. 니다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 미국 성서 공회, 연합 성서 공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며 동적 일치 방법을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니다가 동적 일치라는 독약을 소개한 이후로 이 방법을 채택한 역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변개된 역본이 되었다. 그는 성경 변개의 전문가이다. 여기서 변개는 동적 일치를 말한다. 나라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귀의 일이다.
심지어 성경을 믿는다는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 않고 대신 이 동적 일치를 수용했다. 다음은 니다와 또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책들이다.
(1) 1947년, 「성경 번역」(Bible Translation), 니다 저, 런던의 연합성서공회출간
(2) 1950년, 니다는 ‘번역 또는 의역’이라는 글을 ‘성경 역자’(The Bible Translator)지에 실음
(3) 1952년, 「성경 해석의 새로운 방법론」(A New Methodology in Biblical Exegesi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4) 1955년, 「성경 번역 문제」(Problems in Translating the Scripture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5) 1959년, 「성경 번역의 예를 통해 본 번역의 원칙」(Principles of Translating As Exemplified by Bible Translating),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6) 1960년, 「메시지와 미션」(Message and Mission), 니다 저, Harper Brothers 출간
(7) 1961년, 「번역자들을 위한 새로운 도움」(New Help for Translator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간. 이 책은 도움은커녕 훼방과 치욕을 가져오는 책이다.
(8) 1964년, 「번역을 위한 과학」(Toward a Science for Translating), 니다 저, 네덜란드에 있는 E. J. Brill사 출간
(9) 1966년, 「성경 번역자들의 수용 언어 본문 사용」(The Bible Translator's Use of Receptor Language Text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10) 1969년, 「번역의 이론과 실행」(Theory and Practice of Translation), 니다 저, 네덜란드에서 출간
(11) 1966년, 「현대인을 위한 복음」(Good News for Modern Man) 출판 (또는 「Today's English Version – 의역 성서 중 하나). 이것은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적용한 대표적 변개 역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을 위한 복음」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피’ - 그리스어로는 ‘haima’ - 를 전체 103번 중 36번 빼버렸는데 그중 16번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그들은 동적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대신 ‘죽음’ 혹은 ‘희생’ 등의 단어를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haima’는 분명히 ‘피를 뜻한다.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을 보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Today's English Version」은 이것을 그저 ‘값비싼 희생’(Costly sacrific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피’를 빼고 ‘희생’이란 단어를 넣었다. 오늘날 유명한 모 성경 해설가[존 맥아더]도 같은 것을 주장한다. 즉, 피는 단지 죽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존 맥아더의 이단 교리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B.F.T Brochure #5에 나와 있으며 현재 여기의 리스트에는 150개가 넘는 책자들이 있다.]
(12) 1975년, 나이로비에 있는 WCC(세계 교회 협의회) 역시 동적 일치 방법을 채택했다. WCC는 배도한 단체로 공산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과 이단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지금도 그들은 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에서 살인, 약탈, 고문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돕고 있다. 이런 WCC가 동적 일치를 번역의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WCC는 사탄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니다와 연합성서공회 그리고 미국성서공회의 계보를 이었다.
(13) 1978년, 신국제역(NIV)이 출시되었는데 이것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이 역본은 마귀의 동적 일치 방법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었다.
(14) 1983년, 세계 복음주의 침례교 연합[ABWE]이 「말씀으로」(By the Word)를 출판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교사들 중 몇몇은 이 위원회 소속일 것이다. 출간 당시 ABWE 본부는 뉴저지 주, 체리힐 근처에 위치해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 년 내에 펜실베이니아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씀으로」는 실버네일(Lynn Silvernale)이 쓴 책이며 다른 말로 「성경 번역의 우선순위와 방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니다를 수없이 언급했다. 그런데 니다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배도자이다. 그녀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나는 번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번역 양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마다 나름대로의 분류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비크맨(John Beekman)의 분류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는 번역 특히 성경 번역에 있어 두 가지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문자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관용적 접근이었다.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양식으로 세분된다: 엄격한 문자적 번역, 한정적 문자적 번역, 관용적 번역, 그리고 자유 번역. [실버네일의 책, 13쪽]
실버네일의 문제는 번역 기법론에 관한 책들을 잘못 선택한 데 있다. 비크맨과 캘로우(John Callow)는 「하나님의 말씀 번역」(Translating the Word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에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근본주의 진영의 성경을 믿는 선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에 보급할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마귀적인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버네일과 ABWE는 공히 관용적 번역 기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동적 일치 방법을 선호하며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실버네일은 이 일을 33쪽에 언급해 놓았다.
번역 일을 시작한 지 [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면서 벵골 성경을 번역했다]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안에는 상당한 거리낌이 있었다. 성경의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조정’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을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실버네일의 책, 33‐34쪽]
성경에는 동적 일치 접근법에 대한 저주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이어서 실버네일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벵골 성경의 충실한 번역을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조정 [즉, 첨가, 삭제, 변경] 양식을 선택한 뒤 일관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괄호의 말은 저자의 것임] [실버네일의 책, 34쪽]
이처럼 늘 내용을 조정하는데 어찌 충실한 번역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하나님을 말씀을 변경한다면 충실한 번역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조정 양식들을 담은 31개의 원칙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원칙들은 우리 지역 협회 전체의 인가를 받았고 이로써 공중 앞에 널리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실버네일의 책]
그래서 그들은 방글라데시 현장의 모든 ABWE 선교사들로부터 이 모든 조정 사항들을 인정받았고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의 고소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번역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 수십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꿀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죄(罪)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녀는 죄(罪)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이다.
d. 동적 일치의 역사 요약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했고 니다(Eugene Nida)가 계승했던 이 동적 일치 ‘바이러스’는 급기야 1983년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배도한 WCC 내에서 얼마간 활동하던 이 바이러스가 소위 [거룩함의] 분리를 외치는 근본주의 진영에도 침투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Bible International’에서 나온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동적 일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Bible International’은 오하이오 주 소재 근본주의 선교 기관 중 하나인 침례교 중간 선교회(Baptist Mid-Missions)의 지부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의 전직 회장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하이오 주 베레아에서 있었던 나의 목사 임직식 때 심의위원회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BIBLE FOR TODAY의 뉴스 보고서에서 ‘Bible International’에서 사용하는 동적 일치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변개에 대한 여러 통의 질의서가 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침례교 중간 선교회는 내게 이 두 가지 보고서를 주문해 왔다. 나는 내 뉴스 보고서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읽어 보도록 했다. 결국 침례교 중간 선교회가 사람을 보내어 이것을 수령해 갔다. 나는 부디 그들이 내용을 읽고 동적 일치로 인해 생긴 잘못들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현재 기독교 진영은 동적 일치가 만연한 상태이다. 이미 그것은 두 곳의 침례교 근본주의 선교회에 침투해 들어갔다.
동적 일치는 더 이상 배도한 진영(신복음주의, 현대주의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본주의, 분리주의 진영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곳에서 더 위험하고 마귀적이며 치명적이다. 다를 것이 없다. 진실은 진실이고 오류는 오류다. 마땅히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마귀의 방법으로 소위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d.1)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동적 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바른 구약성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성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이라도 원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의미가 있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해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 일치에서는 본문상의 단어나 본문 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그러할진대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본문이 정확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떠하겠으며 그의 자질을 따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 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 일치 방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 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현실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마소라 본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역자들이 동적 일치 방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d.2) 여러 역본에 대한 4년간의 검증
나는 근본주의 진영에서 사용되는 여러 역본들을 4년 이상 검토하고 비교해 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이 역본들이 킹제임스 성경 및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얼마나 다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d.2-1) 1611년 KJB 분석
첫 해는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 - 넬슨 출판사가 재출간한 초판 킹제임스 성경 - 을 가지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킹제임스 역본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25쪽 분량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B.F.T. #1294]. 이 보고서에는 초판과 현재 판 사이에는 종종 철자나 구두법의 차이가 있지만 바뀐 곳은 오직 421군데뿐이며 그것도 모두 소리(귀로 듣는 차이)와 관련된 차이뿐임이 명시되어 있다. 바뀐 곳은 모두가 사소한 내용들이다. 원한다면 이 내용을 요약한 소책자를 구할 수 있다[B.F.T. #1495].
(d.2-2) NKJV 분석
다음은 NKJV와 KJV를 카세트로 들으며 비교해 보았다. 테이프에 녹음된 성경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자료이다[B.F.T. #777/1‐43]. 일단 차이점이 발견되면 해당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본문을 찾아보고 어느 번역이 더 본문에 가까운지 확인해 보았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 원문에 가장 충실했다. 그래서 나는 전보다 더 킹제임스 성경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연구에 대한 보고서는 95페이지(큰 페이지)의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42]. 이 보고서에는 2,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올라와 있다. 이 보고서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 형태로 나와 있다[B.F.T. #1465]. 또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9개)도 있다[B.F.T. #1367/1‐9].
(d.2-3) NASB 분석
이듬해 나는 NASB를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한 다음 KJB의 근간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도 비교해 보았다. NASB도 앞서 NKJV에 대해 한 것처럼 그렇게 진행했다. 이번에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을 확인한 결과 본문과 동떨어진 쪽은 NASB였다. 연구 결과는 187쪽짜리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94‐P]. 이 보고서에는 4,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로 구할 수 있으며[B.F.T. #1518]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1개)도 있다[B.F.T. #1494/1‐11].
(d.2-4) NIV 분석
이후 2년 8개월 동안 같은 식으로 NIV를 분석했다.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 후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대조해 보았다. 이 보고서 역시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749‐P]. NIV는 온통 의역과 동적 일치 방법으로 가득했고 그 분량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 찾아보자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6,653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소개되어 있다.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비교했을 때에도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항상 정확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6개)이 있는데 여기에는 4,600개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B.F.T. #1749/1‐16]. 이것의 제목은 ‘NIV의 결함들’이다[B.F.T. #2054].
(d.3) 일반 사람들은 새 역본들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성경 역본들을 원문과 직접 비교해 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어느 역본이 바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NIV가 말하는 게 다르고, KJV가 말하는 게 다르다. 히브리어도 모르고 그리스어도 모르는데(대부분 그렇다) 아는 언어 즉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으라. 그리스어, 히브리어 원문이 이 역본에 고스란히 번역되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라. 아니면 영국의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가 간행한 소책자를 참고해도 좋다[B.F.T. #1060]. 이 소책자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618개의 단어가 간략한 의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좋은 사전 한 권을 가지고도 이 단어들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가령 ‘Habergon’은 방패 혹은 쇠사슬 갑옷을 뜻하며 ‘Ouches’는 주머니 또는 행낭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영어 단어들이 정확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번역이라는 점이다.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우리는 1611년 이후로 의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단어들의 정의를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BIBLE FOR TODAY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제목은 「The Defined King James Bible」이다. 이것은 12포인트의 큰 활자로 인쇄되었다. 싱가포르의 토우(S. H. Tow) 박사는 이 성경 4,000권을 구입해서 세계 여러 곳에 배포했다. 원하는 사람은 전화로 주문 가능하다.
(d.4) 앞으로 연합성서공회는 오로지 동적 일치 기반의 의역 성경만을 출간할 것이다.
연합성서공회(United Bibel Society, UBS)는 더 이상 성경전서(창세기‐계시록)를 출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의역본 및 관용 번역본만을 출간할 것이며 그것도 성경전서가 아닌 쪽 성경만을 내놓을 것이다. 1962년 연합성서공회는 성경 선집(쪽 성경) 또는 소책자 3.5권당 성경 한 권을 출판했고, 1969년에는 18.5권당 성경 한 권을, 1974년에는 쪽 성경 33권당 한 권의 성경전서를 출간했다. 선집이나 쪽 성경에 비해 성경전서 발행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성경전서를 출판하는 경우는 성경 출판 자금이 어디서 들어왔을 때뿐이다.
성경공회는 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있는 자금은 성경 선집을 출판할 때나 쓰인다. 이 내용은 BIBLE FOR TODAY에서 출간된 「성경의 미래」(The Future of the Bible)’에서 확인할 수 있다[B.F.T. #1246]. 성경의 미래는 어떤가? 연합성서공회가 연루되어 있는 한 성경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하는 이유이며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d.5) ‘동적 일치’에 대한 간략한 정의
동적 일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동적 일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b. Of or pertaining to dynamics; active; opposed to static; Pertaining to change or process(1b. 역학적인; 동적인; 정적의 반대; 변화하는) [웹스터 사전, 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 1949년, 257쪽]
다시 말해 ‘동적’이란 말은 ‘움직이는’을 뜻한다.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이와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둔다. 즉, 운동(movement), 변화(change), 역동(dynamics)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바꾸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기 원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 원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Thus saith the Lord)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거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화를 가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나는 부록 A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였다.
‘동적’(dynamic)이라는 단어에서 ‘역학’(dynamics)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역학’의 정의를 웹스터 사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That branch of mechanics treating of MOTION of bodies(kinematics) and the action of forces in producing or CHANGING their motion(kinetics). 2. The MOVING MORAL, as well as physical, forces, or any kind, of the laws relating to them
1. 물체의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을 일어나게 하거나 바꾸게 하는 힘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2. 움직이는 어떤 것 ‐ 물리적인 힘, 윤리, 법
모든 동적인 과정은 변하는 과정이고 진화하는 과정이며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낸 과정이다. 힘이든 물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 강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하염없는 은혜, 흐르는 강물같이 넘치네!”라고 찬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흐른다’, ‘움직인다’, ‘유동적이다’라는 식의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정된 어떤 것이어야 하며 이로써 우리는 그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바위’(a Rock) 곧 거대한 바위산과 같으시다. 산은 움직이지도 흔들리지도 요동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신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11).
이제 관련 단어인 ‘일치’ 혹은 ‘동등함’(equivalence)에 대해 웹스터 사전을 살펴보자
State of being equivalent, equality of worth, meaning, or force: 가치나 의미나 힘에 있어 같은 혹은 동등한 상태
여기서 ‘equivalent’(같은, 동등한, 일치하는)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obs. Equal in force or authority. 2. Alike in significance. 3. Equal in value, esp. for exchange. 4. Virtually or in effect identical; tantamount; as, his remark was equivalent to an insult
1. 사어(死語). 힘이나 권위에 있어 같은 2. 의미나 비중이 같은 3. 가치 특히 교환 가치가 같은 4.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
어떤 면에서 ‘equivalent’는 좋은 용어이다. 하지만 위의 정의 중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이란 부분은 어떤 범위를 한정짓기 어려운 의미이다. 이런 의미라면 나는 ‘동등’(equivalent)이란 개념을 선호할 수 없다. 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원한다. 왜 동등한 것 혹은 일치하는 것이 필요한가? 독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이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나는 단지 어떤 동등한 것, 일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바로 그 진짜를 보여 준다. 그것은 바른 본문, 우수한 번역자, 우수한 팀 작업, 우수한 번역 기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단어들의 정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idiom’(숙어, 관용어법) 혹은 ‘idiomatic’(관용적인, 관용어법을 사용한)이란 용어이다. 이 용어들은 번역이나 역본에 대해 말할 때 동적 일치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로 쓰인다.
‘관용적인 번역’(idiomatic translation)에서 ‘관용어’(idiom)란 이런 뜻을 지닌다(웹스터 사전).
1. The language peculiar to a people(a tongue)’, or to a district, community, or class(a dialect). 2. The Structural form peculiar to any language. 3. An expression in the usage of a language, that is peculiar to itself either in grammatical construction or in having a meaning which cannot be derived as a whole from the conjoined meanings of its elements(as, the more the merrier)
1. 특정 민족 혹은 지역이나 단체 및 계급 고유의 언어 2. 특정 언어 고유의 구조 3. 일반적인 문법 구성이나 각 단어의 단순한 결합에서 나올 수 없는 뜻을 가진 독특한 언어 표현, 가령 다다익선 같은 표현]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바로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 그리스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곧 관용어이다. 원어를 알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말씀의 정확도에 훼손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이 ‘관용어들’은 결코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관용적이고 동적인 일치가 아닌 ‘문자적, 형식적 일치’를 기반으로 번역되어 우리 손에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 인용 끝 ---------
결 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형식적 일치의 중요성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24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19 14:54:55 KJB 문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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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15:07: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과 개역성경, NIV 등의 근간인 천주교 소수 본문(수정 본문 혹은 비평 본문)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고 해서 글을 씁니다.
아마도 이분은 흠정역 성경 부록이나 팸플릿에 들어 있는 표 데이터를 보고 ‘정말 이 정도일까’ 하고 의아히 여겨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먼저 데이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37-40쪽).
-------- 인용 시작 ---------
7.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수용 본문(TR)의 5,600군데 이상을 바꾸었다.
나(웨이트 박사)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1984년 8월 2일까지 앞서 말했던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가지고 내가 직접 세어 본 결과 수용 본문과 웨스트코트/호르트의 비평 본문 사이에 5,604군데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5,604개의 변화 중 1,952개는 빠진 것(35%)이고 467개는 더해진 것(8%)이며 3,185개는 바뀐 것(57%)이었다. 여기에는 이렇게 변개와 관련된 5,604군데 말고도 4,366개의 단어가 더 포함되어 있어 총 9,970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이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이 숫자를 647쪽의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본문을 기준으로 나누어 본다면 페이지 당 평균 15.4개의 단어가 수용 본문에서 변경된 셈이다.
무어맨(Dr. Jack Moorman) 박사는 수용 본문의 단어들을 세어서 총 140,521개라고 보고했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변화들은 전체 단어의 7%이며 이것들을 모두 모아 놓으면 그리스어 신약성경 45.9쪽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표의 제목을 두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터’로 했다.
[신약 성경 그리스어 본문 전쟁터: <그리스어 「공인본문」과 「수정본문」 비교> ]
-------- 인용 끝 ---------
위의 작업은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을 비교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질문하신 분에게 답하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과 일치하는 스크리브너의 공인본문과 소수 본문의 대표인 네슬레-알란드(Nestle-Aland, 독일 식으로 네스틀레-알란트, 한국에서는 네슬 알란트 혹은 네슬 알랑으로 부름)의 26, 27판을 비교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몇 년 전에 28판이 나왔으나 내용은 대동소이함). 네슬레-알란드 판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의 뒤를 이어 1898년부터 110년 이상 판을 무려 28번이나 바꾸며 나온 소수 본문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판이 나올 겁니다. 이들은 이렇게 인간의 학식과 능력과 노력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복원 혹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을 보시면 국내에도 사정이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이 두 본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8
영국 런던에서 사역하시는 무어맨 박사님은 수용 본문(TR)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모든 단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비교하고 다 세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단어가 수용 본문보다 무려 2,886개나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웨스트코트‐호르트 본문이 삭제한 단어보다 934개가 더 많음을 뜻합니다. 삭제된 2,886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 단어로 환산하면 베드로전후서와 맞먹는 분량이 됩니다.
무어맨 박사님의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 2002년에 <8,000개의 차이>(8,000 Differences)라는 제목의 책(524쪽)으로 출판되었습니다.
http://www.amazon.com/Differences-Between-Greek-Modern-Versions/dp/1568480547/ref=sr_1_1?s=books&ie=UTF8&qid=1459413487&sr=1-1&keywords=8000+differences
무어맨 박사님의 치열한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 드리기 위해 마태복음이 시작되는 1쪽과 계시록 마지막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본학을 거론하며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주장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객관적인 데이터는 제시해야 합니다. 혹은 기존에 발표된 이런 위대한 학자의 자료보다 더 많거나 신빙성 있는 데이터를 들고나와야 무언가 다른 주장을 해 볼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 몇 개를 수집하여 사이트에 올리거나 책을 내는 일로는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수 없습니다.
성경 사본 학자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는 보통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 주기 위해 무어맨 박사님은 수많은 시간을 들여 두 본문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엄청난 수고를 마다치 않았으며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어맨 박사님은 성경 사본학과 직접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쓴 저명한 학자입니다. 아마존에서 Jack Moorman을 검색하면 모두 볼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s/ref=nb_sb_noss_2?url=search-alias%3Daps&field-keywords=jack+moorman
저희가 출간한 <박사성경>은 이 8,000개 차이의 많은 부분을 킹제임스 흠정역 신약 성경 본문에 표기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1
잠언 30장 5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Every word of God [is] pure:)
우리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여기의 ‘말씀’(word)은 말 그대로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순수한 모든 단어가 없다면 성경의 말씀들은 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글쎄요, 이러나저러나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요? 뭐 교리가 바뀐 것도 아닌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어들이 바뀌면 교리가 바뀝니다. 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맨 밑에 있는 PDF 자료를 내려받아 보기 바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자, 여기 공인 본문(TR)을 가지고 만든 영어 성경이 있고 네슬레-알란드 26-28판을 가지고 만든 성경이 있습니다. 두 성경이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학에는 이런 정리가 있습니다.
"어떤 한 개와 비교해서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따라서 서로 다른 본문에서 나온 두 개의 역본은 서로 같을 수 없습니다.
네슬레-알란드 본문을 아무리 잘 번역한다 하더라도 – 그것이 무슨 성경이든 – 그것과 무려 5,600군데 이상 (그리스어 단어로는 무려 10,000개 이상) - 차이가 나는 공인 본문에서 나온 킹제임스 성경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웨이트 박사님의 말대로 NIV나 NASB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어 본문이 진리를 떠나 모든 면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들은 기초가 잘못되었습니다(웨이트의 같은 책에서).
참고로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은 명문 미시간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였고 댈러스 신학교에서 신약 그리스 문학으로 석사를, 성경 강해학으로 신학 박사를, 명문인 퍼듀 대학에서 스피치로 철학박사(Ph.D.)를 받았으며, 수십 년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이 정도의 학력이면 원어에 얼마나 능통할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단을 초월해 한국의 신학자들도 종종 논문과 기고문 등에서 이분의 의견을 인용할 정도로 저명한 분입니다. 현재 85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지금도 독립침례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http://biblefortoday.org/
이분은 원어 학자이므로 늘 원어를 언급하지만 영어로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신뢰할 수 있는 성경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저서 <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은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을 보여 줍니다. http://www.amazon.com/Defending-King-James-Bible-Waite/dp/1568480121
이 책은 우리 출판사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누구나 PDF 파일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저는 웨이트 박사님과 그분의 교회에서 독립침례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수 받을 때 믿음을 고백한 대로 신실하게 킹제임스 성경만이 바른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가르치는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위의 책 부록에 실린 웨이트 박사님의 간증입니다(198-200쪽). 하나님 앞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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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번역’과 관련된 이런 종류의 사역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언제인가?
답변: 먼저 말해 둘 것은 번역 관련 사역이 내 사역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 사역의 일부이다. 우리, 즉 BIBLE FOR TODAY는 본문 논쟁,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 성경 보존 및 영감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900개 이상의 책자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매년 추가로 많은 타이틀이 더해지고 있음). 이것은 총 2,300개의 자료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신념은 확고하다. 나는 1971년 6월 「킹제임스 성경 옹호」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해당 주제에 대한 내 연구의 첫째 산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언 35년이 되었다.
누군가 이 사역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필요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변호하는 일에 나서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현실에서 그냥 이대로 앉아 전투에 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간 수많은 잘못이 저질러졌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 전까지 나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으로 교육받았고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BIBLE FOR TODAY라 명명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65년의 일이다.
나의 배경과 BIBLE FOR TODAY의 배경을 다룬 소책자가 있다[B.F.T. #168]. 내가 매사추세츠 주, 뉴튼의 믿음침례교회에서 목사로 섬기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때 라디오 방송 하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BIBLE FOR TODAY였다. 이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가지고(1965년, 성경은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다) 오늘날의 여러 이슈 – 낙태, 학교에 있는 여러 성경들, 공산주의, 구원 등 – 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BFT의 상징을 보면 왼쪽에는 어둠, 오른쪽에는 빛을 바탕으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방패(믿음의 방패), 방패 위에 검(성령님의 검)이 놓여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있다. 이것이 초기 사역의 모습이었다. 참고로 BIBLE FOR TODAY News Report는 1971년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1960년 NASB가 나왔을 때 의문은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성경일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성경일까?” 그래서 우리는 NASB를 검토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NASB는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 즉 ‘The Bible for today’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9년 뒤, 1969년에 NIV라는 또 다른 역본이 탄생했다. 이때도 질문은 동일했다. “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인가?” 물론 그즈음에 다른 여러 역본들 – 현대인을 위한 복음, ‘리빙 바이블’ 등 ‐ 이 쏟아져 나왔다. 부록 B에 이런 성경 출판의 역사가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다가 1979년에 NKJV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성경이 나왔다. 과연 이것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일까? 이처럼 ‘성경’(Bibles)의 홍수 속에 살면서 증거와 사실을 확인하고 규명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성경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왜 중요한가?”이다. 대답은 이렇다. 오늘날 교회에 발생하는 여러 교리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학, 즉 성경과 교리의 연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성경에 대한 믿음도 좋고 성경의 계시나 권위, 영감, 무오성에 대한 토론도 좋다.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그 성경이 어디 있는가?”이다. 그 성경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당신이 말한 것이 죄인의 마음을 파고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발견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겠는가? 현재 자기 손에 있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이것 혹은 저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라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확신하건대, 20, 21세기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한 공격이다. 이 공격은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냐?”라고 물으며 시작되었다. 이것은 마태복음 4장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시험으로 이어졌다. 이때 사탄은 성경 기록을 거짓으로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으나 주님은 성경 기록으로 즉 “기록된바…”, “기록된바…”로 이것을 물리치셨다. 이것은 사탄의 공격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성경 전쟁이 낳은 하나의 부작용일지 몰라도 오늘날 일부 크리스천들과 젊은이들, 믿지 않는 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성경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 내 주위에 있는 수많은 성경 중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없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은 이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확신 곧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고 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바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쓰레기통에 내던져서는 안 된다. 킹제임스 성경은 잘못되지도,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 같은 역본은 이제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일단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당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사용했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들은 현재 우리 손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본문들이 전 세계 어떤 번역자에 의해서든 앞으로 다시 사용될 일은 없다.
내 말이 좀 막연히 들릴지 모르니 한 번 자세히 말해 보겠다. 현재 킹제임스 성경 번역에 사용되었던 본문을 번역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직 계급 체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 즉, 대학, 신학교, 그리고 성경으로 돈벌이를 하는 출판사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배교자들과 현대주의자들, 그리고 로마 카톨릭 주의의 추기경들이 후원하는 본문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킹제임스 성경 역자와 같은 번역자를 다시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거인들이라면 현대 번역자들은 소인국의 난쟁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성경의 번역 기법 곧 문자적, 형식적 방법은 이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이 방법으로 번역했다. 오늘날에는 동적 일치 방법이 일반적인 번역 기법이다. 누누이 말했지만 동적 일치 방법은 넣고 빼고 바꿔서 만든 의역이다. 자, 어떤가? 킹제임스 성경 같은 성경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는가? 내가 계속하여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세인트 매리에 있는 1,000와트짜리 출력을 가진 - 그래도 주당 30분에 $13.5달러면 내가 들은 것 중 제일 싸다 -조그만 방송국인 WVVW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나 맡고 있다. 굳이 거기서 한 이유는 그곳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국 담당자에게 편지를 쓰면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 방송국에선 의사의 자유가 보장됩니까?”였다. 그는 대답했다. “예, 얼마든지요. 다만 방송국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항상 내가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렇게 성경 번역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30분짜리 주간 프로그램과 5분짜리 일간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15개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청취 가능하며 곧 위성을 통해 영국과 유럽, 캐나다, 그리고 남미까지 전송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로, 글로 많은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 두 프로그램의 주제는 모두 ‘전통 성경 본문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뜨겁고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내가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켄터키, 사우스캐롤라이나, 와이오밍, 그리고 메릴랜드 주에 있는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서만 이 일을 한 건 아니다. 나는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일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한 시간은 꼭 방송 테이프 녹음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녹음테이프를 우리 BIBLE FOR TODAY 독자들 - 현재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2,300명 정도 되며 우리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되어 BIBLE FOR TODAY News Report를 구독하는 사람들 - 에게 배포했다. 그 결과 녹음테이프를 통해 독자들은 나의 방송 강연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상 나는 정해진 시간 동안 성경을 주제로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한 달에 네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여기 논의된 내용을 따로 녹음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여러 번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 건 사실이지만 이 일 외에도 나에게는 다른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손자들도 원한다면 방송 강연 테이프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테이프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 줄 것이다.
-------- 인용 끝 ---------
독자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손에 들린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가져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대로 이 성경이 그분의 모든 단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마치며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 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한 리건 박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 인용 시작 ---------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 인용 끝 ---------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01 11:04: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시간을 들여 귀중한 글을 번역해 주셔서 함께 나누기 위해 올립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영미권의 양식 있는 크리스천 지성인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샬롬
패스터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킹제임스 성경은 현대 구어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언어를 단지 구식 언어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스타일은 대부분 번역의 대본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히 번역함으로써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God's Secretaries>의 저자 Adam Nicolson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맡았던] 학자들은 성경의 언어를 자기들이 알고 있고, 집에서 사용하던 영어로 끌어내지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들은 외국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외국어의 상태에 맞게 밀고 나아가는 형태이다”(211) 라고 말한다. 영어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상태에 맞춰서 번역하는 형태는 원본의 의미와 스타일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글은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한 고어가 아닌 단어들과 문법구조
2인칭 대명사 구별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고어를 사용한다고 여기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thee’와 ‘thou’ 때문일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이러한 대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2인칭 단수 (thou, thee, thy, thine)와 2인칭 복수 (ye, you, your, yours)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이러한 구분을 한다.
성경을 자세하게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에 사용된 대명사를 세심히 살펴보면, 잘못에 빠진 사람을 회복 시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ye" which are spiritual(영적인 ‘너희’))의 의무이지만,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진실성(considering "thyself"(‘네 자신’을 살펴보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명사의 구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이 구절에서 주는 공동의 의무와 개인의 의무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다. 대명사의 인칭 구별이 중요한 구절에는 다음이 있다: 출애굽기 4:15, 출애굽기 29:42, 사무엘하 7:23, 마태복음 26:64, 누가복음 22:31-32, 요한복음 3:7, 고린도전서 8:9-12, 디모데후서 4:22, 디도서 3:15, 빌레몬서 1:21-25 등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와 같은 많은 현대 언어들 역시 단수 2인칭 대명사와 복수 2인칭 대명사의 구별을 유지한다. 게다가, “thou”와 “ye”가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이러한 대명사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찬송(심지어 현대 찬양에서도)을 드리거나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에는 여전히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 “Be thou my vision”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찬송의 제목에서,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찬양의 가사인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서 “thou” 와 “ye”를 사용하여 찬양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하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들의 국가인 “오 캐나다”를 부르는데 그 곡의 1절에서 “thy”가 한 번, “thee”가 네 번이나 나온다. 이 곡은 1980년 7월 1일에 캐나다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캐나다 어린이들이 “thy”와 “thee”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thou”와 “ye”가 일상적 대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노래와, 산문, 또는 성경에서 훌륭한 문법적, 운율적, 문체적 이유와 함께 계속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이 구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용부호의 부재
킹제임스 성경은 인용부호(" ")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의 고어적 기능으로 여겨지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는 성경에서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왜 유익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주어가 있는 명령문
명령문은 명령을 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주를 찬양하라”라는 문장은 명령문이다. 요즘에는 명령문에서 주어가 종종 사용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너, 주를 찬양하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만약 킹제임스 성경이 위와 같이 표현을 한다면, "Praise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양하라) 또는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와 같은 문장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현대 독자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 문법 책들에서는 명령문의 주어가 항상 “you(너)”이기 때문에 주어를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다. “you(너)”에는 단수인 “너”를 나타내는 “thou”와 복수인 “너희”를 나타내는 “ye”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중요할 수 있다.
시편 104편 35절의 “너는 주를 찬송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자기의 혼)에게 “Bless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송하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thou”가 사용되었으므로 화자의 명령인 “찬송하라”는 화자 자신의 혼에게만 주는 명령이 된다. 하지만, 그 후에 화자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는 명령인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이어 말한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명령문이 대상을 가리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ESV에는 “Bless the LORD, O my soul! Praise the LORD!”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마치 화자가 자신의 혼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역개정도 마찬가지로 같은 구절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라고 번역하였다(이해를 돕기 위해 개역개정 구절을 임의로 추가하였음). 킹제임스 성경의 화자는 명백하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마무리 짓는 반면, ESV의 화자는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결론짓는 듯 하다. 그러므로, 명령문에서의 인칭대명사 사용은 문법적, 그리고 의미론적인 목적을 행한다.
호격(사람 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형태)의 사용
호격은 2인칭 대명사인 “you”를 사용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을 식별하는 명사를 사용하여 그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마태복음 6장 9절 말씀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 좋은 예이다. 요즘 사람들은 “Our Father, who ARE in heaven”이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Our Father, who IS in heaven”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킹제임스 성경의 이러한 특이성은 호격의 충실한 번역에 근거한다. 이것은 고어가 아니라 호격을 사용하는 그리스어를 충실히 번역한 결과이다. 즉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보다 정확한 동의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사용되는 고어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 현대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현대식 번역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6장 73절에 나오는 "bewray”(비밀을 누설하다)라는 단어는 고어처럼 느껴진다. 전체 구절은 "And after a while came unto him they that stood by, and said to Peter, Surely thou also art one of them; for thy speech bewrayeth thee.”(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이다. 현대 역본 ESV에는 이 구절이 "After a little while the bystanders came up and said to Peter, "Certainly you too are one of them, for your accent betrays you."라고 번역되어 있다. "Bewray"라는 단어는 “betray”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Bewray"는 "divulge”(비밀을 알려주다)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조금 더 미묘한 단어이다(메리암 웹스터 사전). 그러므로 "bewray"의 전체적 의미는 “누설함으로써 배신하다”이다. 마태복음 26장 73절은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했던 말이 그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냈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을 “배신한” (연루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3절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킹제임스 성경과 ESV가 모두 “evident”(분명한)라고 번역한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나오는 단어, δηλον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뜻을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의 “오래된” 단어를 접했을 때, 그 단어를 단순한 고어로 무시해 버리기 전에 그 고어가 더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법률용어의 사용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증언) 혹은 “계약”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법률문서이다. 성경 안의 몇몇 책들이 문자 그대로 법률문서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법률문서”라는 말은 “러브레터”와 같이 따뜻하고 가벼운 느낌(몇몇 사람들이 성경을 묘사하듯)을 암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더 의미 있는 법적 계약의 관계로 들어갈 확률이 크다. 결혼은 법적 계약이다. 가족의 재산 상속도 유언과 신탁을 통해 부여된다. 가벼운 사람은 언제든지 “러브레터”를 쓸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 증명서나 자신의 자산을 수여하는 유언장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저 “러브레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체결된 그분의 언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thereof, thereby, therein, hereby, herein, whereof, whereby, wherein, wherefore(그것의,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안에, 이것에 의하여, 여기에, ~하는, 그 점에서, 그러므로)와 같은 법적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성경이 참으로 두 가지 ”증거”의 집합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정확한 법률 용어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미권의 거의 모든 법적 서류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결코 고어가 아니다.
영국식 단어와 숙어
일부 단어들과 숙어는 북미인들에게 고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국인들이나 영연방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북미 이외의 국가에도 그러한 영국의 단어들과 숙어를 이해하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3장 3절에 나오는 “plaiting”(땋은 것 혹은 엮은 것)이라는 단어는 북미인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영국인들에게는 친숙하다. 게다가, 일부 영국 단어들은 인기 있는 영국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북미인들에게도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25절에 나오는 “schoolmaster”(훈육 선생)를 예로 들어보면, 그 단어는 북미보다는 영국에서 훨씬 더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해리포터 소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의 성공과 함께 “schoolmaster”는 북미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말하듯이 언어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래된” 단어들도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에서 사용됨으로써 다시 표준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단어를 구식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어의 모호함 보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which”(어떤)를 사용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용례를 문제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맥에서 사물이 언급되는 것인지, 사람이 언급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을 경우에는 “who(누구)” 대신에 “which”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드로전서 1:23절,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에서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부분은 “the word”(말씀)이나 “God”(하나님) 둘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뜻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리스어 자체에 이러한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도 그것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전문용어로 보존된, 고어라고 추정되는 단어들
고어로 간주되는 일부 단어들은 실제로 특정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전문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로마서 1장 13절에 나오는 “let”(막혔도다)이 킹제임스 성경(여기에서 사용된 “let”은 “방해를 받은”이라는 뜻임)에 나와있는 고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권 노트에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국경수비대, 변호사,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같이 이민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이러한 사실은 “let”이 고어이기 보다는 “전문용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테니스를 할 줄 알거나 경기를 보는 사람은 테니스 공이 네트에 닿거나 스침으로 플레이 진행이 방해되었을 때 “let”이 선언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let”과 같은 단어는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을지 몰라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단어가 결코 아니다.
시적 특징
구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부 문장구조는 사실 시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사무엘상 30장 31절의 "...all the places where David himself and his men were wont to haunt”(또 다윗 자신과 그의 사람들이 자주 가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구문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wont to haunt"는 운이 맞기 때문에 NASB의 “accustomed to go” 구문보다 더 시적이다. 또한, 유다서 1장 8절, "despise dominion”(통치권을 멸시하며)도 “최신식”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구문이다. ESV에는 "reject authority"라고 나와있지만, "despise dominion”은 두운법을 사용한 구문이다. 사실상 1장 8절의 전체 구절, "...these filthy dreamers defile the flesh, despise dominion, and speak evil of dignities”(이 추악한 꿈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고 통치권을 멸시하며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는 초성 알파벳 D가 5번 반복되는 두운법을 사용한 구절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최상의 시적 표현이다. 알파벳 D는 입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터뜨려 소리를 내는 자음인 파열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비난의 말을 기관총처럼 내뱉는 유다서 1장 8절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자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운율과 두운이 성경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시적 표현은 말씀을 암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고어인 것들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
킹제임스 성경에는 “spake”와 “shew”같이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를 가진 단어들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특별히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현대에 사용되는 같은 의미의 단어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문맥에서 누구라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친숙한 고어들
일부 단어들은 고어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단어들이다. 그러한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hou”는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뜻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고 나면, 이 고어가 다른 현대 단어들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thou” (단수 2인칭 대명사)와 “ye” (복수 2인칭 대명사)와 같은 단어들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들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준다. 기독교인이 현대 역본 대신에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고서도 단수와 복수의 2인칭 대명사의 문법적 구분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생소하지만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는 고어들
킹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고어들은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다. 사사기 3장 21절에서 22절이 좋은 예이다. “And Ehud put forth his left hand, and took the dagger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And the haf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upon the blade, so that he could not draw the dagger out of his belly;”(에훗이 자기의 왼손을 내밀어 자기의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빼서 그의 배를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에 엉기므로 그가 칼을 그의 배에서 빼지 못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haft”는 고어이다. 하지만, 문맥을 통해 그 단어가 칼날의 반대편에 있는 검의 한 부분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고어들은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구절들에 자주 등장한다.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없는 생소한 고어들
이제 문맥에 의해서 식별될 수 없는 고어들만 남아있다. 그러한 고어들은 이해를 하는 데에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킹제임스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 쓰인 낯선 고어들은 “listeth”(마음대로)(요3:8)과 “wist”(알지)(요5:13)이다. “Lust”와 연관된 “to list”는 “to desire”(열망하다)라는 뜻이며, “wise”와 연관된 “to wist”는 “to know”(알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이 두 단어들보다 더 많은 고어들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문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생소한 고어들도 다시 친숙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돼지 독감이 발발하기 전에는 북미의 많은 어린이들이 “swine”(돼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NIV와 ESV는 “swine” 대신에 “pigs”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돼지 독감에 대한 과대 광고들로 인해 “swine”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 낯선 고어들도 다른 단어들로 대체하기 보다는 뜻을 학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2016-03-09 18:33:17 | 관리자
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가?
---------------------(*) 이 글은 다음 기사를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이 번역한 것이다.
http://www.kjvtoday.com/home/Features-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양식 있는 크리스천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한다.
◾English Standard Version (ESV)◾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HCSB)◾King James Version (KJV)◾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New International Version (NIV)◾New King James Version (NKJV)◾New Living Translation (NLT)◾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RSV)◾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 (T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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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성경은 거의 400년이라는 기간에 개신교(침례교 포함)의 표준 성경으로 의심 없이 수용되어 왔다. 1611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역본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중 단 한 개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 후 20세기 중반부터 새 역본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52년에 신약과 구약이 다 출판된 RSV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최초의 만만치 않은 경쟁 대상이었다. 그 이후로 NASB, 리빙 바이블, NIV, NKJV, 그리고 점차적으로 수십 개의 역본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쏟아져 나왔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역본들의 대부분은 21세기에 들어 대중성을 잃었고, 판매 수량으로 봤을 때 오늘날 가장 인기가 많은 역본은 2011년에 업데이트 된 NIV와 ESV, 그리고 NLT이다. 새로운 역본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현재와는 상관이 없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역본들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가운데 킹제임스 성경은 세월의 시험을 견디어 내며 그럴 만한 이유와 함께 건실한 독자층을 꾸준히 형성해 왔다. 이 기사는 킹제임스 성경의 뛰어난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A. 교리
1. 입증할 수 있는 오류가 없는 성경
James R. White의 <Th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Can You Trust the Modern Translations?>나, D. A. Carson의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A Plea for Realism>과 같은 책들은 킹제임스 성경에 문법 및 원문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책들의 목표는 ‘킹제임스 유일주의’ 즉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킹제임스 성경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의 저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및 원문 선택을 평가하는 면에 있어서 중립적이지 않다. James R. White는 NASB의 자문 위원이었으며 D. A. Carson은 NLT의 번역자였다. 이들이 제안했듯이 번역 및 원문 선택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구절은 합리적인 대안 이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이 웹사이트는 킹제임스 성경에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150개의 오류를 반박하며 킹제임스 성경이 명백히 무오함을 보여 준다.
2. 더 완전하고 교리적으로 우수한 원문 NKJV와 마찬가지로 킹제임스 성경의 신약은 다양한 비잔틴 계열의 신약 사본을 따르는 공인본문에 기반을 둔다. NASB, NIV, ESV, HCSB와 같은 인기 있는 역본들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을 따르는 ‘네슬레-알란드’ 판(즉 ‘NA 27 과 UBS 4 본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기반으로 하는 역본들은 많은 수의 중요한 단어들과 구절들을 생략하거나 그 말씀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러한 단어들과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마가복음의 결말(마가복음 16장 9-20절), 간음한 여인에 관한 말씀(요한복음 8장 1-11절), 주기도문의 결론(마태복음 6장 13절), 베데스다 연못에 내려온 천사에 관한 말씀(요한복음 5장 4절) 에티오피아 내시의 믿음 고백(사도행전 8장 37절), 그리고 마태복음 12장 47절, 마태복음 17장 21절, 마태복음 18장 11절, 마태복음 21장 44절, 마태복음 23장 14절, 마가복음 7장 16절, 마가복음 9장 44절과 46절, 마가복음 11장 26절, 마가복음 15장 28절, 누가복음 17장 36절, 누가복음 22장 43절, 누가복음 22장 44절, 누가복음 23장 17절, 사도행전 15장 34절, 사도행전 24장 7절, 사도행전 28장 29절, 로마서 16장 24절, 요한일서 5장 7절 등.
알렉산드리아 본문 지지자들도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인 공인본문이 교리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는 공인본문을 옹호하는 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가 있다.
B. 정확성
1. 직역킹제임스 성경은 본질적으로 직역된 성경이다. NIV와 NLT 같은 많은 새 역본들은 미국성서공회의 Eugene Nida에 의해 대중화된 ‘동적 일치’라 불리는 번역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적 일치의 번역 원칙을 따를 경우 번역자들은 번역이 아니라 해석을 하게 된다(이들은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뜻만 통하면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동적 일치 원칙을 적용한 역본을 읽는 독자들은 결국 실제 성경 본문이 아니라 학자의 해석을 읽게 된다. NKJV, NASB, 그리고 ESV 또한 본질적으로 직역된 성경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ESV 번역 위원회의 회원인 Leland Ryken이 쓴 훌륭한 서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온라인 소책자는 다음에 있다.http://www.gnpcb.org/assets/products/excerpts/1581347308.1.pdf
2. 사람의 단수와 복수 구별 킹제임스 성경은 2인칭 단수와 2인칭 복수를 구별하기 위해 ‘thou’, ‘ye’, 그리고 동사의 어미변화를 사용한다(다음 참조).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guide
‘Thou, thee, thy’는 2인칭의 단수를 나타내며 ‘ye, you, your’는 복수를 나타낸다. 스페인어 (“tú” and “vosotros”), 독일어 (“du” and “ihr”), 중국어 ("你" and "你們")와 같은 현대어 역시 2인칭에 대해 여전히 이러한 구분법을 유지한다. 2인칭에 대한 이런 구별이 없이 모두 ‘you, you, your’를 사용할 경우 독자들은 출애굽기 4장 15절, 출애굽기 29장 42절, 사무엘기하 7장 23절, 마태복음 26장 64절, 누가복음 22 장 31-32절, 요한복음 3장 7절, 고린도전서 8장 9-12절, 디모데후서 4장 22절, 디도서 3장 15절, 빌레몬서 21-25절 같은 구절에서 개인이 언급되고 있는지 혹은 여러 명의 복수 그룹이 언급되고 있는지 구분할 수가 없다.
3. 이탤릭체의 사용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원어에는 없지만 본문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추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했다. NIV, ESV, TNIV와 같은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추가된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시편 16편 2절이 “Thou art my Lord: my goodness extendeth not to thee” (extendeth가 이탤릭체로 쓰여 있음. “주는 나의 주시니이다. 나의 선함이 주께는 미치지 못하오나”)라고 번역 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구절의 뒷부분이 ‘my goodness’, ‘not’, 그리고 ‘to thee’ (나의 선함, 주께, 못하오나)라는 세 단어로만 쓰여 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extendeth’ (미치지)를 첨가하고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기함으로써 그 단어가 첨가되었음을 표시하였다. <옥스퍼드 주석 NRSV>의 주석은 시편 16편 2절의 히브리어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러 성경 역본들은 같은 방법으로 이 구절을 번역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번역자들이 추가한 단어들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NASB와 NKJV도 추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 이탤릭체를 사용한 성경이다.
4.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은 성경 인용부호 (“ ”)는 구술된 말씀을 표기한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어떠한 구절에도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것이 왜 좋을까? 킹제임스 성경이 인용부호를 쓰지 않는 이유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서술자가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한 것인지 번역자들이 직접 추측해야만 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인용부호를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때때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독자들이 본문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될 수도 있다.
C. 스타일
1. 중복문(重複文)의 사용 (종속절을 하나 이상 가진 중문)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어에 흔히 나타나는 복합 문장을 거의 나누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에서 로마서 1장 1-7절과 히브리서 1장 1-4절은 각각 한 문장으로 쓰여 있다. 반면에 현대 역본들 중에서 직역을 했다고 하는 NASB와 ESV조차 이런 문장을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복합 문장은 아이디어들 간의 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저자의 사고 과정을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2.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Hebraisms)킹제임스 성경은 사전적이고 통어법에 따른 히브리 어법을 그대로 지킨다(William Rosenau의 <Hebraisms in the Authorized Version of the Bible> 참조).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독자들이 성경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의 히브리적 느낌을 희석시킨다. 킹제임스 성경에 표현된 언어의 특수성은 히브리어를 충실히 모방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히브리어의 선행 직접 목적격을 사용한 표현들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창세기 1장 4절)과 히브리어의 이중전치사 (“Abram went up out of Egypt” 창세기 13장 1절)는 본질적으로 직역의 취지로 번역된 NASB나 ESV와 같은 역본들에서조차 완전히 삭제되었다. <Learn New Testament Greek>의 3판 저자이자, 널리 호평을 받는 그리스어 교사인 John Dobson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히브리어가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라고 권한다. 그는 분명하게 동적 번역 형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을 선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킹제임스 성경이 현대 역본들의 일반적인 번역보다 더 밀접하게 히브리어 스타일을 따른다”는 것을 인정한다(305).
3. 그리스어 구조와 스타일과의 일치 킹제임스 성경은 신약에서 다른 역본들보다 그리스어의 어순을 더 밀접하게 따른다. 마태복음 17장 19절의 “Then came the disciples to Jesus.”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사가 주어보다 앞서 나오는 이 구절의 문법은 영어를 사용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어순은 그리스어의 어순(“τοτε προσελθοντες οι μαθηται τω ιησου”)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리스어의 정확한 스타일과 구조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어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킹제임스 성경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현재 시제의 사용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종종 마태복음 3장 13절, “Then cometh Jesus from Galilee to Jordan unto John”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르단으로 요한에게 오사)과 같이 과거의 일을 묘사할 때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현재형으로 쓰인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하게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기록자들은 과거의 일에 중요성을 부여할 때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사용했다. 역사적 현재 시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들리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역본들은 역사적 현재 시제를 단순 과거형으로 번역하려는 경향이 있다.
4. 시적 표현 성경은 매우 시적인 책이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는 성경에 나오는 명확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구약의 대언서들과 요한계시록도 형상화, 유사성, 과장법 및 직유법 등의 시적 기능들로 가득하다. <The Five Books of Moses>의 저자인 Everett Fox는 모세오경의 책들도 시적 기능이 풍부하다고 말하며, 모세오경이 서양 독자들에게는 종종 간과되는 ‘말로 표현되는’ 시적 내용들로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유대인들은 몇 세기에 걸쳐 ‘캔틸레이션 표시’(cantillation marks) 즉 시를 노래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시들을 사용하여 토라 즉 모세오경의 율법을 노래했다. 신약에서는 우화, 유사성, 팔복의 비유, 바울의 은유, 베드로의 종말에 대한 발언, 요한의 어둠과 빛을 나란히 두어 비교하는 병치(juxtaposition) 같은 시적 기능들이 발견된다. 킹제임스 성경과 같이 진정으로 시적 번역을 추구한 역본들이야말로 성경의 시적 표현을 정당하게 다루는 역본들이다.
D. 배경
1.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 왕에 의해 승인되다킹제임스 성경을 공인한 제임스 왕은 변명의 여지없이 성경의 무오성, 절대적인 확실성, 그리고 충분성의 교리 (오직 성경)를 옹호했던 성경 신자 크리스천이었다. 성경의 무오성에 관하여 그는 “성경 말씀을 대할 때에는 정화되고 순결한 귀로 대하라.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호한 부분들은 오직 너의 무능함을 힐책하며 겸손하게 흠모하라.” (Book I:13, Basilicon Doron) 라고 말했다. 성경의 절대적 확실성에 관하여는 “성경 말씀 전체는 명령과 금지, 이 두 가지만을 담고 있다. 명령은 지키고 그에 반대되는 것들은 삼가라. 명령과 금지 두 가지 모두에 순종하라.” (Book I:7, Basilicon Doron)라고 하였다. 또한,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가 성경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에 쓰여 있지 않은 것들을 구하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 네가 알기를 원하시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릇된 추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그분께서 생각하시는 것들은 친히 성경에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Book I:13-14, Basilicon Doron). 크리스천 왕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된 것은 윌리엄 틴데일이 1536년 공개 처형을 당하면서 “하나님이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던 그의 최후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David Daniell의 <The Bible in English: Its History and Influence. New Haven>: Yale UP, 2003 at 156).
2. 근대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나다 킹제임스 성경은 자유주의 신학, 진화론, 정치적 정당성, 그리고 종교통합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신학적/사회적 견해를 만족시키기 위한 맞춤형 역본들이 출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NIV는 성경이 성 중립적인 입장을 나타내기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출판되었다. 그 결과는 시편 1장 3절, 요한계시록 22장 18절 등에서 문제가 되는 부정확한 번역으로 나타났다 (Vern S. Poythress 와 Wayne A. Grudem의 <The TNIV and the Gender Neutral Controversy>). 물론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도 그 시대의 남성들이었고, 그들의 문화 역시 ‘중립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 기독교 군주 문화는 신을 부정하는 현대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이상적인 민족인 ‘주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민족’(시33:12)에 더 가까웠다. 믿음과 실행에 관한 모든 면에서 성경의 무오성과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번역자들의 헌신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제임스 왕 자신도 “이 지식으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것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Book I:6, Basilicon Doron).
3. 2차적 저작물에 관한 법률에 영향 받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 현대 역본 출판사들은 개정 작품 (예: 새 역본)을 출판할 때 저작권을 주장하기 위해 법률상 상당한 개정을 해야 한다. “저작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2차적 저작물은 ‘새로운 저작물’로 여겨지기 위해 원본과 충분히 달라야 하거나, 상당한 양의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에 사소한 변경을 하거나 소량의 내용만 추가하는 것은 새 버전으로서 저작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Copyright Registration for Derivative Works (Circular 14)).
이 법은 각각의 새로운 버전이 이전 버전과 ‘충분히 다른 면’을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을 지키는 현대 역본들을 읽을 때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있는 단어들이 가장 정확한 단어들인지, 아니면 저작권 취득을 위한 역본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대체로 사용된 덜 정확한 내용을 읽고 있는 것인지 추측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 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독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읽을 때에는 번역자들 스스로가 그들이 선택한 단어들이 가장 정확한 단어들임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확신해도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위해서 15가지의 규칙이 주어졌는데, 그것들 중 일부는 개선할 필요가 없는 기존 번역들을 번역자들이 그대로 유지하도록 분명하게 허용했다. 첫 번째 규칙은 번역자들이 비숍 성경(Bishop Bible)을 따르도록 권고하되 원어 텍스트가 비숍 성경과 다른 경우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열네 번째 규칙은 다른 좋은 역본이 원어와 더 잘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면 그 번역을 따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망가진 게 아니라면 고치지 말라.”와 같은 태도는 변화를 위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2차적 저작물 관련 법률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4.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에 능통했던 번역자들 킹제임스 성경은 틴데일과 위클리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전의 영어 성경에 나타난 학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믿음과 기록된 말씀에 있어서 경건한 경쟁자였다. 47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및/또는 그리스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 언어인 아람어, 갈대아어, 시리아어, 그리고 아랍어에도 능통했다 (Alexander McClure의 <Translators Revived>). 엘리자베스 1세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의 학자들은 젊을 때에 문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학교들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그리고 영어 공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어에 능숙한 많은 현대학자들이 라틴어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사실 라틴어는 개신교 학교에서 성직자들(신부나 목사 등)이 주로 사용하는 교회의 언어 – 즉 일반 사람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 - 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원문과 번역의 변형을 해명 해 줄 많은 자원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제작된 라틴어 주석과 저작물에서 발견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번역자들은 라틴어에 능숙했다.
5. 영어에 능통했던 번역자들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적절한 번역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번역은 원문의 언어와 번역 대상어 모두에 대한 전문 지식을 수반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대부분의 현대 번역자들보다 영어를 더 잘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킹제임스 성경의 비평가인 월러스(Daniel Wallace)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발언을 했다. “킹제임스 성경이 많은 오류를 갖고 있는 만큼 그 성경의 번역은 종종 많은 현대 역본들보다 그리스어 완료 시제를 더 우수하게 번역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의 황금 시대였던 셰익스피어 시대에 출간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 (RSV, NASB)은 에베소서 2장 8절을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라고 번역한 반면, 킹제임스 성경은 “For by grace are ye saved”라고 번역했다. 킹제임스 성경의 완곡어법 완료 형태 – ‘ye are saved’가 아니라 도치를 사용하여 ‘are ye save’로 한 것, 또 ‘구원받아 오고 있다’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다’ - 는 한번 얻은 구원을 강하게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현대 번역자들만큼 그리스어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고 치더라도 영어만큼은 그들이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베소서 2장 8절을 영어 완료 시제(‘you have been saved’가 아니라 ‘ye are saved’)로 번역 하는 경우 구원받은 이후로 생긴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Daniel Wallace의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p. 575).
E. 유산
1. 초기 근대 영어 인칭에 따른 동사의 어미변화 (이것은 사실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를 제외하면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모든 단어들은 현대 출판물에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Laurence M. Vance의 <Archaic Words and the Authorized Version>). 게다가, NIV조차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구절들을 비교해 보자. 에스라 9장 5절에서 KJV가 ‘heaviness’(근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반면, NIV는 ‘abasement’(근심)을 사용했다. 이사야 24장 23절에서 NIV는 ‘abashed’(수치를 당하고)를, KJV는 ‘confounded’(당황할 것이며)를 사용하고, 에스겔 40장 18절에서 NIV는 ‘abutted’(좌우편인데)를, KJV는 ‘over against’(맞은편으로)를 사용한다. NIV는 역대기하 15장 14절에서 ‘acclamation’ (소리)을, KJV는 ‘voice’(소리)를 사용한다. NIV는 이사야 13장 8절에서 ‘aghast’ (무서워하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KJV는 ‘amazed’(놀라며)를 사용한다. Laurence M. Vance는 NIV가 킹제임스 성경보다 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220개의 예시들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단어는 마가복음 4장 37절에서 사용된 NIV의 ‘squal’l (광풍)과 KJV의 ‘storm’(폭풍)이다. 인칭에 따른 동사의 어미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NIV보다 읽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무엇이 더 어려운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꼼꼼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아래의 링크들을 확인해 보길 권한다.
Understanding 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Version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은 그저 오래된 역본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오래된 요소들보다 언어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담겨다.
A Beginner's Guide to 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Version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guide
이 링크는 초보자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문법과 어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정제되고 단련된 말씀
킹제임스 성경은 400년 동안 신중하게 교정되어 왔다. 현재의 버전은 인쇄 상의 모둔 오류를 수정한 신뢰할 만한 버전이다.
3. 성경의 인기도 인기도는 무언가의 가치를 평가하는 성경적인 척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여전히 인기 있는 역본들 중 하나임에 주목해야 한다. 2011년 2월 CBA 판매량에 의하면,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NIV를 제외하고는, NKJV, ESV, NASB, 그리고 NLT보다 킹제임스 성경이 더 인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부가 주장하듯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크리스천들은 구닥다리의 ‘소수’가 아니다.
2016-01-22 12:23:29 | 관리자
안녕하세요?
5분만 공부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인칭에 관한 문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http://ultrafree.org/articles/A%20Five-Minute%20Complete%20Guide%20to%20King%20James%20Grammar.pdf
http://www.scripturetruth.org/biblebackground/strangewords/kjvgrammar.html
샬롬
패스터
2015-12-16 10:22:25 | 관리자
하나님의 사람 성경 번역자 틴데일
종교 개혁이 일어나던 변혁의 시기에 로마 카톨릭 주의와 그들의 변개된 사본을 단호히 물리치고 개혁자들과 함께 순교하면서까지 영국의 평민들에게 영어 성경을 전해주고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헌신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평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읽는 일이 훨씬 더 늦춰졌을 것이며 킹제임스 흠정역(King James Version, KJV)과 같은 걸출한 역본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20세기의 현대인들은 성경을 볼 때마다 성경을 보존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결국에는 자기 목숨까지 바친 틴데일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다음의 동영상은 그의 전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자막이 있으니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샬롬
https://www.youtube.com/watch?v=aYfHxA5vbh0
2015-11-28 15:07: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 괄호가 나옵니다.이런 괄호는 킹제임스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주어진 원어 성경에는 콤마, 세미콜론,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이탤릭 체 글자 등이 없습니다. 이 모든 부호들은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괄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괄호 안의 내용은 원래 없었는데 역자들이 첨가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 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성경은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괄호 안의 모든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 있던 것입니다. 다만 역자들이 강조하며 정확히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물음표, 느낌표처럼 넣은 것입니다.
예1, 요7:50(그들 중의 한 사람 곧 밤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Nicodemus saith unto them, (he that came to Jesus by night, being one of them,)
예2, 마6:32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예3, 마24:15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괄호를 치면, 예1처럼 괄호 안의 내용이 다음 구절을 수식하기도 하고, 예2처럼 괄호의 내용이 바로 전 구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 주기도 하며, 예3처럼 괄호이 내용이 명확하게 독자에게 경고를 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지고 괄호가 사용되었습니다.
영어 KJB에는 223개, NASB에는 240개, ESV에는 269개의 괄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괄호를 접하면 역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하면 될 것입니다. 괄호는 물음표, 느낌표 등과 같이 문장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역자들에 의해 사용된 문장 부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11-16 15:09:42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 괄호가 나옵니다.이런 괄호는 킹제임스 성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발견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주어진 원어 성경에는 콤마, 세미콜론,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 이탤릭 체 글자 등이 없습니다. 이 모든 부호들은 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넣은 것입니다.
괄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괄호 안의 내용은 원래 없었는데 역자들이 첨가한 것이 아닌가 궁금해 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성경은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괄호 안의 모든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 있던 것입니다. 다만 역자들이 강조하며 정확히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물음표, 느낌표처럼 넣은 것입니다.
예1, 요7:50(그들 중의 한 사람 곧 밤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Nicodemus saith unto them, (he that came to Jesus by night, being one of them,)
예2, 마6:32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혹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For after all these things do the Gentiles seek:) for your heavenly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all these things.
예3, 마24:15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괄호를 치면, 예1처럼 괄호 안의 내용이 다음 구절을 수식하기도 하고, 예2처럼 괄호의 내용이 바로 전 구절의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 주기도 하며, 예3처럼 괄호이 내용이 명확하게 독자에게 경고를 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지고 괄호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음 기사를 보면 영어 KJB에는 223개, NASB에는 240개, ESV에는 269개의 괄호가 있다고 합니다.
https://www.thisisyourbible.com/index.php?page=questions&task=show&mediaid=2828
그러므로 앞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괄호를 접하면 역자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하면 될 것입니다. 괄호는 물음표, 느낌표 등과 같이 문장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역자들에 의해 사용된 문장 부호입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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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15:09:4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 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다음은 이에 대한 영어 기사이다.
마가복음 16장 마지막 12구절
내용:
Furthermore, there is abundant manuscript evidence supporting the authenticity of Mark 16:9–20. E F Hills wrote, “They [Mark 16:9–20] are found in all the Greek manuscripts except Aleph [i.e. Sinaiticus], and B [i.e. Vaticanus], … And more important, they were quoted as Scripture by early Church Fathers who lived one hundred and fifty years before B and Aleph were written, namely, Justin Martyr (c. 150), Tatian (c. 175), Irenaeus (c. 180), Hyppolytus (c. 200). Thus the earliest extant testimony is on the side of these last twelve verses.”
또한 마가복음 16:9-20의 진위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사본 증거가 있습니다. E F 힐즈는 “그것[마가복음 16:9-20]은 알레프 [즉, 시나이투스]와 B [즉, 바티칸우스]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 사본에서 발견되며, ... 더 중요한 것은 B와 알레프가 기록되기 150년 전에 살았던 초대 교회 교부들, 즉 저스틴 마티어(150년경), 타티안(175년경), 이레네우스(180년경), 히폴리투스(200년경)가 성경으로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언은 이 마지막 열두 구절이 있어야 한댜는 것을 지지합니다..”
다음 링크를 보세요.
시내 사본 문제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어느 형제님이 킹제임스 야구단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저희 교회는 킹제임스 등산부는 있는데 야구단은 처음이라 소개합니다.
주님의 귀한 말씀이 곳곳에서 흥왕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2015-05-27 10:48: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킵바이블 사이트의 사역 목적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 사역을 하는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완전히 보존해 주셨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처럼 보존된 성경임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킹제임스 성경 사역이 여기서 그치면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과연 영어로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실까요?
그러면 우리말로는 하나님의 말씀들의 보존이 불가능할까요?
아닙니다. 한국 사람의 말로도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읽을 수 있도록 모든 민족의 말로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말도 포함됩니다.
영어로만 된다고 하면 영어를 쓰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들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킵바이블에서 하고자 하는 킹제임스 성경 사역의 최종 목표는 완전한 영어 성경을 성실하게/정직하게 번역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말로 보존된 성경을 퍼뜨리고 보급하며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귀중한 사역을 업신여기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한글 성경을 심히 부족한 것으로 폄하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많은 경우 이런 분들은 자신이 영어를 조금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인데 그렇게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배치됩니다. 만약 이런 분들의 주장이 득세하고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옮겨 널리 알리려는 사역이 쇠퇴한다면 스스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수 성경 신자의 믿음이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와 바울의 저 위대한 선포가 결국 우리들 사이에서 무색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지배하는 자가 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하나니 너희는 믿음으로 서느니라.(고후1:24)
하나님은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말로 보존된 성경을 갖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위클리프, 틴데일, 루터 등이 다 자기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보존된 성경을 그들의 말로 번역하여 제공하였습니다.
바로 이 일이 저와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해야 할, 하나님께서 친히 맡겨주신 고귀한 사역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므로 다음의 글들을 링크했으니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온리의 정의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6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영어를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요?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7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5
성경의 완전성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18
하나님께서 우리말 흠정역 성경 위에 손을 얹어 주셔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을 통해 주저함 없이 말씀의 빛으로 걸어 나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5-14 10:32: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어쩌다가 성경 번역자와 목사가 되었습니다.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면 지금도 어찌 된 일인지 잘 모릅니다.
얼마 전에 전주 소망침례교회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번역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기억을 살려서 제대로 이야기하려 하였으나 이 안에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 경우 알려주시고 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흠정역 성경 위에 손을 얹어 주셔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성경을 통해 말씀의 빛으로 나오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간증: 나의 삶과 킹제임스 성경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990
2015-05-14 08:49: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와 ‘'킹제임스 온리'의 정의’를 올린 뒤 밤에 한 형제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와서 소개합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5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6
이 글을 쓰신 형제님은 영어로만 모든 것(해석/번역 등)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분들의 설교와 글 등을 읽고 마음속에 어려움을 느끼던 차에 제가 올린 글을 보고 자신의 느낌을 적어 주셨습니다. 아마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우리말 흠정역 성경을 보시는 분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정립해야 함을 보여 주는 글로서 여러 성도들에게 유익이 될 것 같아 소개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과도기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혹시 영어로 인해 주눅 들린 분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영어를 못해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바르게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우리말로도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해 주십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믿음 생활하기 어렵지요.
조용한 이 아침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합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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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랜 기간 장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교리에 대해 깨닫게 된 중년의 형제입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성경대로 믿는 성경 신자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목사님께서 킵바이블을 통해 올리신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와 ‘'킹제임스 온리'의 정의’를 읽고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함에 심히 기쁘고 공감이 되어 제 생각을 몇 자 적어 메일로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는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시절, 신학대학원 등에서 성경 원어(히브리어/헬라어)를 배우고 설교 때마다 그것을 인용하며 성경 해석에 활용하는 목사님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그 목사님들이 공부도 많이 하시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암호처럼 생긴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하셔서 감히 평신도(?)가 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성경 해석을 하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경 문맥과 전혀 상관이 없었고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말씀의 뜻과도 배치되는 터무니없는 말 그대로 영해라는 것을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교리를 접하게 된 뒤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깨달음으로 인해 기쁨으로 살던 중 참으로 묘한 일이 킹제임스 진영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차츰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수년에 걸쳐 검증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흠정역 성경을 강단 위에 펼쳐 놓고도 여전히 설교 시간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자주 거론하며 그것만을 성경 해석의 중요한 열쇠로 삼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설교와 성경 강해를 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흠정역 성경이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 제가 장로교회를 다니던 시절에 무언가 자신만의 독특한 성경 해석을 세우기 위해 자주 원어를 들먹이던 목사님들이 겹쳐져서 연상되었습니다.
1611년 출간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신실하게 번역한 흠정역 성경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되어 읽히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 해석의 중요한 길목마다 흠정역 성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렇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마도 킹제임스 성경을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오래전부터 알아 왔다는 것과 영어에 능통하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성경 신자들은 계속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믿음과 성경 해석이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구약 성경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양과 목(양)자’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양 떼는 목자를 따라가며 말씀의 꼴을 먹이는 목자의 인도와 양육을 받아야 함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목자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바르고 선한 목자요 양 떼를 해롭게 하지 않고 좋은 말씀의 꼴을 먹이는지는 누가 분별해 줍니다. 그것은 오직 양들 스스로가 분별해 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께서 성경에 아래와 같은 경고의 말씀들을 기록해 주셨나 봅니다.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마7:15).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행20:29~30)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빌3:2~3)
이런 말씀들을 읽어보면 결국 개들과 거짓 대언자와 사나운 이리와 악한 일꾼과 삯꾼 목자와 거짓 형제와 거짓 교사들과 또 그들과는 구별된 하나님께서 보내신 신실한 참 목자를 구별해 내는 일은 모두 성도 개개인의 몫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신실하게 번역한 흠정역 성경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돌아가 살펴야 어떤 목사의 설교가 바른지 그른지 또, 어떤 성경 교사의 가르침이 바른지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양들 즉 성도들은 사실상 그런 능력이 없는 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제가 인용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구원받고 바르게 믿음 생활을 하려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그렇다면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께서 보존해주신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인 후에도 킹제임스 성경을 남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접했고 영어에도 능통한 (혹은 능통하다고 여기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믿음과 성경 해석을 의존해야 한다면 평범한 성도들이 목사와 성경 교사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듣고 자기 스스로 그들의 참됨과 거짓됨 여부를 분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흠정역 성경의 완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내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돌아가 버리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주장대로 흠정역 성경에 그렇게 수천 가지 이상 오역이 존재한다면,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그렇게도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고 영어도 잘 알고 모든 능력을 갖춘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라도 모든 것을 투자해서 바르게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새로운 우리말 성경을 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의 말이 맞는다면 그렇게 외곽에서 한가하게 흠정역 성경을 공격하고 잘못을 지적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토록 비판하는 흠정역 번역자처럼 오랜 세월을 기꺼이 골방에 틀어 앉아 성경 번역에 매진하지 못하십니까?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아니면 인내심이 부족해서인가요? 그도 아니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요?”
말하지 않아도 저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압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과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어 킹제임스 성경의 새로운 우리말 번역을 내놓아도 흠정역 성경과 견주어 세상의 인정을 받을 자신도 없고 엄두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말과 글로 흠정역 성경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힘겹게 쌓아가는 이 성경의 신뢰와 권위를 조금씩 갉아먹으면 과연 누구에게 유익이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 누가 뭐라 해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신실하게 번역한 흠정역 성경이 영적으로 매우 혼탁하고 타락한 이 마지막 때 저와 제 가족을 지켜줄 영적 등대가 되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우리말 성경임을 확고히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이 성경으로써 보통의 평범한 대다수의 한국인 성경 신자들이 거짓 목자와 참된 목자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영어를 잘 몰라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능통하다고 자부하는 일부 형제·자매들에게 전혀 굴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실천하고 하늘의 보상을 쌓으며 탁월하게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부디 대다수의 선량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독자들을 위해서 힘내시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선한 사역을 더욱 힘있게 끌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5-13 09:19:30 | 관리자
킹제임스 온리(유일주의)의 정의
요즘 미국 등에서는 ‘킹제임스 성경만 성경이다’라는 의미의 ‘킹제임스 온리이즘’(King James Onlyism)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이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숭배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대적들이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레 ‘킹제임스 온리’라는 라벨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말로는 ‘킹제임스 유일주의’ 정도로 부를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출간/배포하고 킹제임스 성경만을 읽고 그것만 사용하여 강해/설교하므로 자연히 ‘킹제임스 온리’라는 라벨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온리’에 대한 바른 정의 없이 ‘킹제임스 온리’라는 라벨이 붙으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크므로 오늘은 저와 또 함께 믿음의 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견지하는 ‘킹제임스 온리’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
이런 정의는 사실 오래전에 네팔의 선교사로 있는 데이비드 클라우드 형제님이 내린 적이 있는데 저 역시 그 형제님과 비슷하게 제가 믿는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
http://www.wayoflife.org/database/kjo.html
저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킹제임스 온리’가 정의된다면 그러한 라벨이 저에게 붙는 것을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입으로 불어내신(영감 과정) 완전한 말씀들(단어들)을 히브리어/그리스어로 주셨고 모든 시대를 통해 섭리로 이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셨다.
2. 하나님께서는 친히 보존하신 단어들(원어들)을 한 점의 오류 없이 수용 언어인 영어를 통해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담아 주셨다.
3. 그러므로 모든 원어의 뜻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번역된 것만이 참되고 바르다. 이 말은 원어 단어마다 여러 뜻이 있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반영된 뜻만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른 뜻이라는 의미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는 현시대의 본문 비평은 마귀의 이단 교리이다. 현대 본문 비평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되지 않았고 성경본문 비평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발견되어 성경에 추가, 삭제,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5. 하나님의 참된 본문은 천주교 도서관, 수도원, 동굴 등에 비밀리에 숨겨지지 않았고 시대를 거치며 신실한 성도들의 손으로 필사되어 보편적으로 온 세상에 전달되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의미로 ‘킹제임스 온리’를 주장한다면 저는 그러한 의미의 ‘킹제임스 온리’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1.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영감을 받았다. ---- 아니다. 오직 영감은 1차적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원어에만 해당된다. 킹제임스 성경이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성경이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들을 정확하게 번역했기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1611년의 영어 번역본에 다시 한 번 영감, 즉 숨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 아니다.
2.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그것의 모체가 된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본문보다 우수하다. ---- 이 말은 그 자체가 난센스이다. 이것은 1611년 전에는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이 없었고, 완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인정할 수 없다.
3.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그리스어 본문의 향상된 계시이다. ---- 이 말은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로 원어를 고치고 향상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 난센스이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5
4.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있으면 원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번역 등에 필요한 원어 도구들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 ---- 이런 주장은 성경 번역/해석 등에 영한사전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이며 결국 자기만 옳다는 자가당착으로 귀결된다.
5.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만 보존되었다. ---- 아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에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우리말로도 보존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읽어야 하고 영어를 할 수 있는 해석자의 지도를 받아야만 바르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극단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18
6. 오직 킹제임스 성경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개역성경 등의 현대 역본은 사탄의 성경이다. ---- 우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으며(롬1:16) 개역/개정/NIV 등의 현대 역본에도 복음이 보존되어 있다고 믿는다.
7.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로 정죄 받거나 저주받아도 할 말이 없다. ---- 우리는 개역/개정/NIV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도 우리의 형제요, 자매인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믿는다. 다만 그들은 완전한 말씀 전달에 대한 지식이 없어 전통에 매인 채 바른 말씀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 참음으로 설득하여 성경 말씀의 완전성과 보존의 실재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대상이다.
2015-05-12 18:41:52 | 관리자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함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와 바른 이해가 없으면 성경 신자라는 우리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극단적 주장을 펼 수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 주장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엉뚱하게 믿는 것도 개인의 자유지만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거나 정죄하는 지경에 이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일로 성경 신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오해를 사는 요소이며, 결과적으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되는 일입니다.
1611년에 반포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 성경을 손에 들면 원어의 여러 뜻을 두고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뜻이 많이 달라진 원어의 의도를 잘 알기 어려운 이 시대의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보존에 대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7
다음의 예를 살펴봅시다.
아모스 4장 4절에는 십일조를 드리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법을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KJB: Come to Bethel, and transgress; at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s; and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and your tithes after three years.
개역: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 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NASB: Enter Bethel and transgress; in Gilgal multiply transgression; Bring your sacrifices every morning, your tithes every three days
킹제임스 성경은 ‘3년’이라고 하고 개역성경은 ‘3일’이라고 합니다. 물론 현대역본 지지자들은 KJB가 히브리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3일’을 ‘3년’으로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히브리 단어를 살펴보면 ‘욤’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스트롱 번호가 3117이고 구약성경에 2,300회 이상 나옵니다. 욤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거의 대부분 ‘날’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역본 지지자들은 암4:4에서도 욤은 ‘3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 지지자들은 두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어가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장의 지지자들은 비록 욤이 날을 가리키는 것이 맞지만 이런 경우는 신명기 등의 예를 볼 때 3일이 아니라 3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면서 영어가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고 우기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독보적 우수성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3일이 아니라 3년이 맞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영어가 원어보다 정확하거나 우수해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아무 근거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욤이라는 단어를 ‘년’으로 번역한 셈이 됩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펴면, 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3일이 아니라 3년이 맞는다고 주장할까요? 그 이유는 욤이라는 히브리 단어에 ‘년’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장 29절에 가보니 이 단어가 ‘년’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흠정역: 어떤 사람이 성벽을 두른 도시 안에 있는 거주하는 집을 팔았으면 그 집을 판 지 한 해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만 한 해 안에 그것을 무르려니와
KJB: And if a man sell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e may redeem it within a whole year after it is sold; within a full year may he redeem it.
여기에도 분명히 동일한 히브리어 ‘욤’이 쓰였지만 그 단어를 ‘날’로 하면 안 되기에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현대역본들은 어떠할까요?
개역: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NIV: If a man sells a house in a walled city, he retains the right of redemption a full year after its sale. During that time he may redeem it.
NASB: Likewise, if a man sells a dwelling house in a walled city, then his redemption right remains valid until a full year from its sale; his right of redemption lasts a full year.
모든 현대 역본들도 여기만큼은 동일한 히브리어를 ‘년’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기서 자의적인 번역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히브리어 욤의 뜻 가운데 ‘년’이 있음을 알았기에 여기서 정확하게 ‘년’이라 번역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7
다시 말씀드립니다. 히브리어 욤에는 극히 드물게 사용되긴 하지만 ‘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런 용례를 알기에 이 구절들의 욤을 정확하게 ‘년’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성경이든, 히브리 문학 작품이든 본래 욤에 ‘년’이라는 의미가 전혀 없는데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욤을 ‘년’으로 번역했다면 그것은 번역자들이 실수를 범하였거나 심한 경우 독자들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성경과 히브리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욤의 용례들을 폭넓게 연구한 뒤 대개 날을 의미하는 욤을 이런 경우에는 ‘년’으로 바르게 번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할 수 있다는 점은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도 적용되는 번역의 보편적 원리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12
성경에는 용례가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음이 그런 예의 하나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이 구절의 vexation은 오직 전도서에만 10차례 나옵니다(전1:14; 17; 2:11, 17, 22, 26; 4:4, 6, 16; 6:9). 성경에 이 단어의 다른 용례가 없으므로 우리는 vexation에 상응하는 히브리어(스트롱 번호 7469, 7475)가 어떤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개역/NIV 등의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vexation of spirit’을 ‘바람을 잡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자, 이 경우에도 영어 성경 번역자들이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해서 아무도 뜻을 알 수 없는 그 히브리어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번역했을까요?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들은 원어뿐만 아니라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과 그 이전 역본들의 역자들은 어떻게 이리 번역하였을까요?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그분들은 히브리 사람들의 작품(대개는 성경 관련 작품)을 읽고 그런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맥에 의거하여 바르게 성경에 도입하였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04
다시 말해 영어 성경을 번역하는 누군가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다른 데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은 단어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 성경을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 번역된 것은 원어 자체가 그런 뜻을 품고 있고 히브리 사람들의 저작에서 그리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히브리어는 오직 ‘괴롭게 하는 것’으로 번역해야만 정확한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성경들 가운데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만 그렇게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심지어 뉴킹제임스 성경도 ‘바람을 잡는 것’으로 번역하여 불교 사상을 반영하였습니다.
중요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절대로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난센스이며 오류 없이 완전하게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혹시 주위에 누군가가 이런 주장을 펴거든 속히 그에게서 멀리 도망가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성경과 히브리어/그리스어 용례를 샅샅이 살핀 뒤 모든 원어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에 들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단어들)이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번역되어 보존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당시 번역 과정을 통해 성경과 히브리어/그리스어 용례를 폭넓게 샅샅이 살핀 뒤 모든 원어를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킹제임스 성경 위에 모든 건전하고 바른 신학이 정립되었고 이 성경으로 오대양 육대주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성경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키거나 교정할 수 있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는 것은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의 보급과 확산에 방해가 됩니다. 제아무리 동기가 좋더라도 사실을 왜곡한 비뚤어진 그릇에는 진리를 담을 수 없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을 그것이 있을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두고 정직한 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바르게 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 숭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7
지극히 바르고 당연한 것도 그것을 주장하고 알리는 사람이 바른 논리와 상식을 가지고 주장해야 상대방에게 바르게 들립니다. 단순히 영한사전에서 뽑아낸 지식으로 영어만을 가지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만약 성경 번역/해석 등이 그리 쉽게 기계적으로 다 될 것 같으면 구글 번역기로 전체 영어 성경을 하루 만에 번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보물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행로가 과격하거나 비상식적이며 비논리적인 주장에 의해 가로 막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 맑은 정신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해야겠습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14:20).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5-12 18:28:3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 후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이메일을 보냅니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서너 개가 왔습니다. 지난주에는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한 형제님께서 몇 군데 교정할 곳이 있다고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미국인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래서 늘 흠정역 한영대역 성경을 보시다가 발견한 몇 가지 의견을 모아서 이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의견들을 보면서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보내 주신 교정 요청 의견을 일단 살펴보았습니다.우선 열정에 감사드립니다.주신 의견 중에는 반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있습니다.제 고민이 늘어갑니다.영어식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요.그래서 다 그만두고 죽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여하튼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그 형제님은 그 뒤에 자기 의견을 다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번역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서문에서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번역은, 야곱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길어 그것으로 라반의 양떼들에게 물을 주었던 것처럼(창29:10), 우물의 뚜껑을 열어 우리가 물로 나가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요4:12)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고 이사야서에 언급된 사람, 즉 봉인된 책을 넘겨받아 읽을 것을 요구받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사29:1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98
이처럼 번역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통해 글에 생명력을 넣으려면 문맥에 따라 단어들의 뜻을 잘 고려해서 합당하고 적절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영어든 한 단어가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단어 자체의 기본적인 뜻이 있지만 거기서 파생된 의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1880년경에 나온 영국 개역성경(ERV)의 실패에 대해 <Manuscript evidence>를 기록한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ERV는 본문도 문제지만 기계적으로 번역해서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글이든 말이든 살아 있으려면 문맥에 맞게 같은 단어라도 잘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번역된 글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비로소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배우다 보니 흠정역 한영대역 성경을 보시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잠시 번역의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영어로 peac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경에 429회 나오는 이 단어는 흠정역 성경에 화평, 평화, 평안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왜 모두 평화로 번역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영어로는 peace 하나로 화평, 평화, 평안 등이 다 표현되지만 우리말로는 안 되므로 각각의 문맥에 맞게 구분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그래야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듯이 합당하고 적절한 우리말 번역으로 독자들을 이해하게 하고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peac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그리스어도 10여 개나 됩니다. 이것을 영어는 peace 하나로 번역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6장에서 대언자는 거짓 대언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얼마 있다가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해야 하므로 그들에게는 실제로 평안 즉 ‘걱정이나 탈이 없음. 또는 무사히 잘 있음’이 없는데도 거짓 대언자들은 그들이 평안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경우의 peace는 당연히 불안에 대비되는 평안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거짓 대언자들]이 또한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 주고는 평안(peace)이 없는데도 이르기를, 평안하다(peace), 평안하다(peace), 하였도다(렘6:14).
이런 식으로 같은 영어 단어라도 어떤 경우에는 미묘한 차이를 살려 달리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번역이 살아납니다. 사실 예레미야도 그런 의미로 peace라는 단어를 사용했지 ‘평화 협정’을 말할 때의 ‘평화’처럼 ‘전쟁과 대비되는 peace’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영어만 가지고 번역하면 졸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eople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은 사람들도 되고 한 나라 백성도 됩니다. 특히 히브리어/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people과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인 people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들과 백성을 모두 완전하게 people로 번역하였습니다. 미국/영국 사람들은 앞뒤 문맥을 보고 people이 사람들인지 백성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구분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문맥과 더불어 English men's concordance 등을 사용해서 바르게 수행될 수 있습니다. 흠정역 성경은 이런 과정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바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권위를 무시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합당한 말이 아닙니다. 저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무결함을 믿고 그 뜻대로 바르게 번역했을 뿐입니다.
이제 다음의 몇몇 사례를 통해 번역의 미묘함을 살펴보겠습니다.
1. 신10:13 등의 good 과 goodness
12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
여기의 답이 13절입니다.
“내가 이 날 네 행복을 위해 네게 명령하는 {주}의 명령들과 그분의 법규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냐?”
우리말로만 읽으면 여기의 ‘행복’은 ‘happiness’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영어로 가서 보시면 ‘good’으로 되어 있습니다.
To keep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 and his statutes, which I command thee this day for thy good
제게 이메일을 보내신 분은 아마도 이것을 오역이라고 생각하고 제게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즉 핵심은 good을 왜 선 혹은 선함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일단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구절을 ‘네 선을 위하여’ 혹은 ‘네 선함을 위하여’라고 번역하면 말이 될까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기는 good이지 goodness가 아닙니다. 즉 good 자체가 명확히 명사로 쓰였습니다.
그러면 good이라는 명사의 뜻을 사전에서 보시기 바랍니다.제 스마트폰에 뉴에이스 영한사전이 있어서 good의 뜻을 보았습니다.
good(명사): 1. 이익, 복리, 이로운 것, 2. 탁월한 점, 장점, 3. 선
즉 명사 good은 좋은 것, 복된 것, 유익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goo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베(스트롱 번호 2896)를 보니 이 말은 영어 KJB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습니다.
beautiful, best, better, bountiful, cheerful, at ease, X fair (word), (be in) favour, fine, glad, good (deed, -lier, -liest, -ly, -ness, -s), graciously, joyful, kindly, kindness, liketh (best), loving, merry, X most, pleasant, + pleaseth, pleasure, precious, prosperity(번영), ready, sweet, wealth(재물), welfare(복지), (be) well ([-favoured]).
명사형의 경우 영한사전처럼 영어 KJB의 good은 prosperity(번영), wealth(재물), welfare(복지)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10:13의 경우 ‘네 행복을 위해’, ‘네 복을 위해’, ‘네 번영을 위해’, ‘네 복지를 위해’로 번역하면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네 선을 위해’ 혹은 ‘네 선함을 위해’는 졸역(심하게 말하면 오역)입니다.
욥기 5장 27절, 시편 122편 9절의 good도 같은 경우입니다.
이것을 보라. 우리가 그것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이 사실이니 너는 그것을 듣고 네 유익을 위해(for thy good) 그것을 알라, 하니라(욥5:27).
{주}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인해 내가 네 복을(thy good) 구하리로다(시122:9).
good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선함들’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상품으로 번역됩니다.
2. full, fill 등
친구끼리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너 배고파?” “아니, 나 배불러.”
이런데 우리말 ‘배’가 나온다고 영어 belly, stomach를 생각하면 영어가 안 되지요.
“Are you hungry?", "No, I am full."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번역했더니 어떤 분이 ‘full’을 “찼어”라고 번역하지 않아 오역이라고 한다면 맞는 지적일까요?
full, fill 등은 물론 ‘차다‘가 1차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대화가 오가는 문맥에 따라 그것은 배부름을 뜻합니다. 영한사전에도 당연히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fill: ∼+목/ +목+전+명』 가득하게 하다, 채우다; ┅에 (잔뜩) 채워 넣다; ┅에 내용을 채(아무를) 배부르게 하다; 만족시키다, 흡족케 하다.
마태복음 5장 6절을 보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Blessed [are] they which do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아마도 끝의 filled를 “그들이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요”로 하지 않아 유감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나 봅니다.
그런데 여기의 문맥은 먹고 마시는 것이므로 ‘배부르다’로 해야 맞는 번역입니다.
동일한 말이 마14:20에도 있습니다.
그들이 다 먹고 배불렀으며 남아 있는 조각들을 저들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거두었는데(마14:20)And they did all eat, and were filled: and they took up of the fragments that remained twelve baskets full.
물론 여기서도 fill은 ‘배부르다’의 의미입니다.이런 경우 fil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코르타조, 스트롱 번호 5526)는 음식을 먹는 데만 사용되었습니다.
반면에 ‘채우다’로 해야만 하는 fill이 있습니다.
또 아무도 새 옷감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그것을 메운 새 조각이 낡은 옷을 당기어 그 찢어짐이 더 심하게 되느니라(막2:21).No man also seweth a piece of new cloth on an old garment: else the new piece that filled it up taketh away from the old, and the rent is made worse.
이 경우 그리스말은 ‘플레이쏘’(스트롱 번호 4130 혹은 4138)이며 뜻은 ‘빈 공간을 채우다, 메우다, 성령님으로 혹은 지혜로 채우다’ 등입니다(눅1:67; 2;40 등 다수 구절).
따라서 번역자는 같은 영어 단어 fill이라도 각각의 문맥에 맞게 ‘배부르다, 채우다, 메우다’ 등으로 구분해서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fill을 다 ‘채우다’로 해도 뜻은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졸역이 됩니다.
비교적 영어에 능숙해 영어 성경을 즐겨 보시는 분들이 간혹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영어는 절대 원어를 넘지 못합니다. 영어는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을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 어떤 사람이 영어로 원어를 교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거든 속히 그에게서 도망가야 합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영어만능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은 마치 성경 해석에 있어 항상 원어를 들먹이며 자기 마음대로 영해를 일삼는 신학자와 목사들 못지않게 오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영어의 역할은 성경의 단어, 시제, 단복수 등을 원어의 단어, 시제, 단복수 그대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표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절대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극히 합당한 원칙에 관련된 모든 질문에 그때그때 일일이 답하지 못하는 저의 사정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같은 영어 단어라도 원래 뜻이 다르면(이것은 문맥을 보면 알 수 있음) 구분해 주어야 바른 번역임을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인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여러 원어(배부르다, 채우다, 메우다)가 하나의 영어 단어(flll)로 쓰였고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길 때는 각각 문맥에 맞게 서로 다른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해 주십시오.
이런 것을 파악하지 못한 채 흠정역 성경에 (이런 식의) 오류가 수천 개나 된다고 주장하면 이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합당한지는 현명한 독자들이 판단할 것입니다.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하나의 영어 단어를 두 개의 우리말 단어로 번역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 역시 번역자는 그 단어의 본래의 뜻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가적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레위기 27장을 보겠습니다.
맹세로 봉헌된 자 곧 사람들 중에서 맹세로 봉헌될 자는 결코 속량하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죽일지니라(29).
None devoted, which shall be devoted of men, shall be redeemed; [but]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맹세로 봉헌된’에 해당하는 영어를 보시면 단순히 devoted라는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자가 ‘맹세로’를 자기 마음대로 집어넣었다고 항의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번역자라면 계시록 22장 18절의 저주를 잘 알고 있으므로 절대로 자기 마음대로 단어를 첨가하지 못합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계22:18),
그렇다면 왜 ‘맹세로’가 들어갔을까요? 영어 devoted와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맹세로’의 뜻을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devoted는 영어 성경에서 단 7회 사용됩니다(레27:21, 28 2회, 29 2회, 민18:14, 시11:38). 옥스퍼드 사전을 보면 devoted는 ‘Vowed; appropriated or set apart by a vow’(맹세에 의해 할당된 혹은 구분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맹세로 봉헌된’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감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한 모세의 의도가 전혀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도 ‘아주 바친 자’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참고로 21절을 보시면 devoted의 용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밭이 희년이 되어 나갈 때에는 맹세로 봉헌된 밭으로서 {주}께 거룩할 것이므로 그 밭의 소유권이 제사장의 것이 되리라.
여기서 devoted된 밭은 ‘주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맹세로 봉헌된 밭’이며 그래서 그것은 거룩한 밭 즉 거룩하게 구별된 밭입니다. 2절이 이를 설명합니다.
29절 같은 경우도 이를 강조하기 위해 맨 앞에 none이라는 강세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28절에는 every라는 강세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즉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데서 ‘맹세로’를 빼면 이 성경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 본래 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살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봉헌된 것은 얼마든지 있지만 이 경우는 특별하게 전적으로 주님을 위한 용도로만 봉헌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살리기 위해 ‘전적으로’가 들어가는데 이것은 절대 번역자가 임의대로 첨가한 것이 아니라 영어 devoted와 히브리말 케렘(스트롱 번호 2764) 즉 ‘맹세로 운명이 정해졌음’을 나타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번역입니다.
오늘은 잠시 번역에 대해 몇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흠정역 성경 번역의 원칙을 잘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합당하고 적확하게 번역해 나갈 수 있는지 그 이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희는 흠정역 성경이 결코 무오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다만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18
번역을 잘못하면 반역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저희는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사이트 공지를 통해 부탁드렸듯이 앞으로 성경을 보시다가 교정 의견이 생기면 언제라도 기탄없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추후에 교정판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주신 의견들 가운데 합당한 것들은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흠정역 성경 번역에 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사이트에 올려 논쟁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양심이 연약한 지체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원해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이러한 성원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http://lifebook.co.kr/final/bibles/bible_best.asp
이에 대해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앞으로도 하나님과 모든 성경 신자들 앞에서 더욱더 겸손한 자세로 이 사역을 유지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5-11 10:11:07 | 관리자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멋지지 않습니까?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라는 표현은 과거의 어떤 한 때를 언급하는 것이지만, 위와 같이 ‘하시니라’로 표현하면 시간의 경계를 넘어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따라서 저는 ‘하시니라’가 ‘하셨느니라’보다 훨씬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사실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들에서 사용된 과거형 시제로도 충분히 확인이 됩니다. 저는 이와 같이 현재형과 과거형을 교차 사용한 훌륭한 문체가 “흠정역 성경 문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위의 기행문 (2) 다음에 인용한 송창식의 노래 ‘토함산’의 가사에서도 “해를 안고 앉았어라”,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라고 특유의 어미를 사용함으로써 송창식 특유의 문체로 토함산 가요의 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겠습니다.
(1) 흠정역 번역
(2) 과거형 준수 번역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6)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시고
(7)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더라.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느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셨으되, 빛이 있으라, 하셨으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셨더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셨으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느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었더라.
(6) ¶ [하나님]께서 이르셨으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셨고
(7)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셨고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셨으니 그대로 되었느니라.
(8)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느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었더라.
자, (2) 번처럼 고쳐 놓고 읽어 보니까 어떠십니까? (1) 번처럼 번역한 것을 읽으시고 시제가 과거로 생각이 안 되어서 불편하십니까? 앞서 마태복음 3장과 똑 같은 원리로 실제로는 과거이지만 현재형을 사용하여 창조의 장엄함을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1) 번 번역이 더 자연스럽고 수준 높은 번역이 아닙니까? 마태복음과 같은 신약 성경 기록이나 다른 구약 성경 기록에서 이처럼 시제를 섞어 쓴 것을 가지고는 문제삼지 않고 유독 창세기 1장 첫 부분에서 시제를 문제삼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과거 사실을 기술하거나 번역할 때, 과거 사실인 것이 자명한 문맥에서 모든 동사들을 과거형으로 고집함으로써 글의 질을 저하시키고 읽음성을 훼손시키기 보다는 필요한 경우에는 현재형 동사를 쓰더라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과거형 동사로 충실하게 번역하면 마치 배우는 학생이 작문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훨씬 뛰어난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수준 높은 글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성경 기록을 학생 수준의 번역으로 읽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학생 수준의 번역 성경을 그래도 원하신다면 별도로 그렇게 번역하셔서 원하시는 분들은 그것을 보셔야겠지요. 여호와의 증인들이 신세계역 성경을 만들고, 가톨릭이 가톨릭 성경을 만들듯이 교리가 달라서 받아들일 수 없는 번역이라고 한다면 말릴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의 교리에 맞는 성경으로 번역하는 수밖에요.
그러나, 성경 번역에 임하는 사람이 명확한 교리적 주관이 없이 단지 영어 실력과 한국어 실력만 있으면 성경 번역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사사기 11장에서 입다의 딸이 자신의 처녀 생활로 인해 애곡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처녀로 죽음을 애곡했다고 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면 ‘오역’ 또는 ‘흐지부지역’이 될 수 밖에 없는 사태가 생기니까요. 따라서, 교리가 달라서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히 그렇다고 하고 공연한 번역 시비를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현재의 번역이 더 이상 손댈 것이 없는 최상의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무랄 데 별로 없이 아주 잘 된 번역이며, 이보다 더 좋은 번역이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보다 더 잘 가꾸고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도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도 주셨다는 생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흠정역 성경을 받아 들이고 아끼게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한국 교회에서도 기존의 개역(개정) 성경을 버리고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서게 되었으면 합니다.
바른 성경 불모지에서 수십 년 동안 바른 말씀이 없어 목말라 하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드디어 제대로 된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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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5 23:06:30 | 최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