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오늘은 영감과 보존과 번역, 그리고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영감이란 무엇인가?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성경대로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의 영감을 믿을 것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문자들을 써서 단어들로 기록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말로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내어 쉬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내어 쉬셨음’을 뜻합니다.
영어 ‘inspiration’에서 중간에 있는 ‘spir’는 영을 뜻하는 ‘spirit’에서 나왔습니다. 또 앞의 ‘in’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의 영(숨)이 들어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에 숨(혹은 영)을 불어 넣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성경기록’에 그리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한 성경기록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 내심으로써 그 단어들이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4:12-13).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영감은 몇 차례 있었나?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과정이 과거에 몇 차례 있었느냐, 또 지금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감이 과거에 한 차례만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있었을까요?
즉,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아니면 사본의 단어들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떤가요? 그것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이 영감 과정이 과거에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에도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기서 잘못 나가면 럭크만주의의 킹제임스 성경 이중 영감설이 나옵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딤후3:16에 나오는 영감이 자필 원본의 단어들을 기록할 때에 사용된 영감이라는 점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히브리말(약간의 아람어)로, 신약 성경은 그리스말로 나왔습니다. 그 단어들을 인간 기록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해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분명히 처음에 원본 성경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로 단어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그 성경은 사본이든 역본이든 자필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염감)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잘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입에서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와서 인간 기록자가 완벽하게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필 원본: I am a boy.
자,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가 담긴 자필 원본이 해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정확하게 다른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본: I am a boy(필사자와 필체는 다르지만 네 단어는 정확하게 같음).
비유로 말하자면 자필 원본의 ‘I am a boy.’는 딤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자필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놓은 사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존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므로 원본과 사본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영감)이 동일하게 살아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피땀흘려가며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처음의 원본과 동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 밀러(H. 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습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줄에서 60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은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의 말씀이 아니고 필사본의 말씀이었지만 그것을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주님은 사본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있는 필사본 두루마리가 곧 원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 안에 있는 구약 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 바’(it is written)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사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원본만 옳았다면 ‘it was written’으로 과거 시제로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의 현재형은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또한 ‘모든 말씀’(every word)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이(단어가) 보존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음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번역본의 영감 문제
자, 그러면 번역본은 어떨까요? 자필 원본을 그대로 동일하게 베껴 쓴 사본의 ‘I am a bo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번역본: 나는 소년입니다(참고로 우리말은 존칭이 있으므로 ‘나는 소년이다’, ‘저는 소년입니다’도 다 맞는 번역임).
하나님의 입에서는 분명히 처음에 ‘I am a boy.’가 나왔고 인간 기록자는 그것을 원본에 기록하였으며 이 네 단어는 사본에 그대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보존된 사본에서 정확하게 ‘나는 소년입니다.’라는 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본도 최초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역본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100%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보존되어 있음). 그래서 이 역본의 단어들 역시 사람을 살리며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 성경이 완성된 뒤로 실제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다 역본이었습니다. 즉 AD 100년 이후에는 원본이나 사본의 시대가 아니라 역본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역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역본)에 하나님의 숨(염감)이 없다면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 성경의 단어들이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감은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이 기록될 때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정확하게 필사되었고 그 필사본에서 지금의 역본이 정확하게 나왔으면, 지금의 역본에도 하나님의 모든 단어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봅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보존한 사본의 원어들에서 나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이러한 사본에는 성경기록 필사본, 성경기록을 담고 있는 성구집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사본의 모든 단어를 가능하면 1 대 1 대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원어의 문장의 구조까지도 영어로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다시 딤후3:16을 보도록 합시다.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is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자들이 번역을 위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is가 없어도 말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is가 없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역자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자들은 정직하게 이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원래 원본에 없었으나 번역을 위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두 개의 is를 제외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사본)을 있는 그대로 영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한 1 대 1 대응이 되게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식적 일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번역되었기에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해서 이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수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거의 완벽한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611년 이래로 이 성경에 복을 주셔서 이 세상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교리, 신앙신조 등을 정리하며 5대양 6대주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수백 개 나라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표준 잣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럭크만주의자들 - 무조건 피터 럭크만을 따르는 자즐 - 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에서 향상된 계시’ 혹은 ‘원본보다 더 좋은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원본보다 더 좋은 역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형식적 일치를 통해 정확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존된 성경’입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 편’의 8항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세계 모든 성경 신자들은 이런 고백에 따라 영감과 보존, 그리고 정확한 번역을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하게 보존된 사본들에서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된 완벽한 영어 성경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원본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부를까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
향상된 계시’의 한 예로 행12:4를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로 끌어내려 함이더라(행12:4).
And when he had apprehended him,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quaternions of soldiers to keep him; intending after East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여기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성경같이 바른 본문에서 나온 성경들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성경 중에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이것을 ‘이스터’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므로 이 성경은 원본을 뛰어넘으며 그래서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거나 영어 성경의 단어들도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이중 영감설’을 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람이 피터 럭크맨(Peter Ruckman)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거나 이중 영감을 받으려면, 원본에 없던 무언인가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스터’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이 원어에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데 영어 성경이 그것을 번역해서 집어넣었다면 그것은 첨가이고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파스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말 파스카는 명절의 경우 크게 둘을 뜻합니다.
하나는 유월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터’(이교도들의 부활절 축제)입니다. 파스카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도 정확하게 이 두 개의 명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파스카는 이 둘 중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행12장의 때가 이미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은 지났으므로 무교절 다음에 오는 이교도들의 부활절인 ‘이스터’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나 딤후3:16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100% 보존된 바른 사본의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입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처음에 원본이 주어졌을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그대로 살아 있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 중 원어들을 담은 사본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선포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것이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한다.”(vexation of spirit)고 전도서에서 무려 10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것을 전적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바람을 잡는 것’(grasping of the wind)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 혹은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이 경우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대본이 된 원어 성경의 원어가 동일하므로 이 같은 차이가 생긴 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마무리를 하면서 12장 13절에서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바람을 붙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본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서는 안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보존해 주신 사본들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해서 하나님의 이 단어들을 이방인들의 공통 언어인 영어로 보존한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런 진술을 수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무식하다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어가 최종 권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간에 우리가 원본의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루아흐’, ‘하데스’ 등의 원어들은 다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원어들만으로는 최종적인 표준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providence)라는 돌보심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셔서 각각의 원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본의 모든 단어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번역되어야만 맞는다고 믿습니다.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를 택하셔서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원본의 원어들의 뜻을 이 세상 문학가나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합니다. 원어 사전들의 저자들 가운데는 불신자가 많으며, 심지어 쎄이어(J. H. Thayer) 같은 유니테리안 이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금의 번역본 시대에 하나님의 원어 단어들을 100% 정확하게 영어로 옮긴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1 대 1 대응이 되게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면서 정직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교리와 특징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당연히 주장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딤후3:17의 진리가 흠정역 성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우리말 번역의 문제
한편 ‘I am a boy.’를 ‘나는 소년입니다.’로 하지 않고 ‘나는 아이입니다.’로 하면 반만 맞습니다. 아이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 대 1 대응을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는 한 소년입니다.’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창1:1)라는 말씀을 ‘그 시작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는 이 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입니다.
‘In the beginning’은 관용구로서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 처음(시작) 안에서’로 번역하는 것은 영어와 우리말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머릿속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정관사, 부정관사, 하이픈, 세미콜론, 콜론, 콤마를 번역할 때 수용 언어(한국어)의 용례를 무시하고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가 아니며,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취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대로 보존한 성경, 이것이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처음에 원본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100% 그대로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결코 100%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11절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해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빌립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비록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이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행동,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100%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은 다 거짓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우리는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혹은 원본이 우월하다고 하거나 그런 주장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보거나 아는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보는 원어의 뜻만이 옳은 뜻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데서 옳은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요10:30에서 아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온전히 전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원본의 원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완전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지난 400년간 수백 개의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바른 교리를 깨달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배도의 때에 마귀가 세상 무대에 등장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뜻이나 단어가 변경된 성경의 등장이 필수 요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귀라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에 무언가 변경을 가져오는 일일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이집트에서부터 이 사악한 일을 주도하였고 주후 200년을 넘기면서 그 일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만을 번역의 대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바른 성경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성경 신자들을 많이 불러주시고 이들로 하여금 바른 교회를 세우게 하셔서 많은 혼들을 수확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3-09-14 14:05:35 | 관리자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 성경 신자들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새로운 사본들의 지속적인 발견과 본문비평이라는 학문의 발전으로 점점 더 고대의 훌륭한 본문을 회복하는 길이 열리고 있다. 성서의 본문이 변한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서의 본문이 변하기에 우리는 성서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성서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서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계시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서의 본문이 변하기에 성서가 살아 움직여 우리에게 늘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이다. 성서는 가지고 다니면서 받들어 모셔야 할 책이 아니라, 읽고, 명상하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책이다.
우리가 보기에 매우 안타까운 이 글을 쓴 교수를 세상 사람들은 위대한 신학자로 추앙한다.
이 글은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대한기독교서회, 민경식 지음)의 결론 부분인 176쪽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68781
저자인 민경식 박사에 대해 위키 백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민경식 박사는 성서학자인 대한성서공회 민영진 전 총무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신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신약성서 본문비평과 신약성서 사본학을 공부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 1월부터 《기독교사상》에 연재기사 '쉽게 풀어쓴 신약성서사본이야기'와 '성경을 말한다.'를 게재하였다.
그는 다름 아닌 대한성서공회에서 개역성경, 개역개정, 새번역 등의 편집/출간 등을 총괄하던 민영진 박사의 아들이다.
다음은 역시 같은 책의 173쪽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말 성서에 보면, 학자들이 후대의 첨가라고 여기는 부분들이 본문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가복음의 끝 구절(막16:9-21)이라든지, 요한복음의 음행하다 잡혀온 여인 이야기(요7:53-8:11)라든지, 주기도문의 송영 부분(마6:13b)이 그러하다. 이런 본문은 사본들의 증거로 ‘원문’에 포한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판명되었지만, 그래도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구절들이기에 우리가 보는 성서의 본문에 포함되어 있다. <새번역>의 경우, 겹꺾쇠괄호 안에 본문을 묶어놓아 이것이 원래의 본문이 아님을 명시하기도 한다.
마가복음 16장에 1-8절을 보도록 하자. 거기서 본문이 끝나면 말이 되겠는가?
1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품을 사 두었더라. 2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3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4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5 그들이 돌무덤에 들어가 긴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매 6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분은 일어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그분을 두었던 곳을 보라. 7 그러나 너희 길로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그분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그분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그분을 볼 것이라고 고하라, 하니라. 8 그들이 떨며 놀라서 급히 나와 돌무덤에서 도망하고 두려워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이렇게 끝나는 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인가?
주님의 영이 있는 성도라면 누구라도 9-20절이 있어야 마가복음이 끝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한번 9-20절을 읽어 보기 바란다.
9 ¶ 이제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일찍 일어나신 뒤에 전에 친히 몸속에서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시니라. 10 그녀가 가서 그분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애곡하며 슬피 울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고하였는데 11 그들은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녀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 그 뒤에 그들 중의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그분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라. 13 그들이 가서 남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하되 그들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았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 이렇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20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그런데 성경의 완전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9-20절이 원래 자필 원본에 없었다며 신성모독을 범한다.
어찌 성경이 훼손되어 학자들의 손에 의해 복구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들 가만히 있는가?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내는가?
영원히 100% 순도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
애가 타고 애가 끓는도다! 내 마음이 심히 아프고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소리를 내는도다. 오 내 혼아, 네가 나팔 소리 곧 전쟁의 경보를 들었으므로 내가 잠잠할 수 없도다(렘4:19).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를 알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샬롬
2013-08-21 18:27:22 | 관리자
요즘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 열풍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피터슨은 장로교 목사로 거의 평생을 보내다가 인생의 후반부에 <메시지>를 만들어 파급시킨 영성/신비주의자입니다.
그는 관상기도, 수행, 신비 계시 등을 추구하는 마담 귀용, 아빌라의 테레사, 노르위치의 줄리아, 이그나셔스 로욜라,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위라드 등의 카톨릭 신비주의자들에 심취하여 잘못된 것들을 기독교계에 파급시킨 위험인물입니다.
영어 <메시지>는 1993년에 신약이, 2002년에 신구약 합본이 나왔고 국내에서는 신약이 출간되고 현재 구약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메시지>를 선전하는 내용입니다.
1. <메시지>는 일상의 언어로 쓰인 ‘읽는 성경’입니다. <메시지>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게 해주려는 한 목회자의 열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을 받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교인들이 성경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로 "갈라디아서"를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에 걸쳐 완성된 그 번역을 읽은 교인들은, 성경이 능히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다른 도움 없이도 읽어 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거리와 시장과 식탁에서 사용하는 언어,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과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2. <메시지>는 성경 원문을 학문적으로 충실히 옮긴 성경입니다. <메시지>는 평생을 원어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학자이자 35년을 목회자로 살아온 저자 유진 피터슨의 모든 것이 녹아든 평생의 결실입니다. 그는 이미 좋은 번역본이 많이 나와 있는 직역이 아니라, 원문의 의미를 좀 더 생명력 있고 인상 깊게 전하는 데 적합한 오늘의 언어로 의역(paraphrase)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주 5일 하루 6시간을 이 번역 작업에 들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메시지>는 한 개인의 신학과 목회적 배경과 역사를 지닌 사역(私譯)이지만, 북미의 신뢰받는 신구약학 학자들의 감수를 통해 학문적으로 검증을 받았습니다.
3. <메시지>는 1천만 독자가 선택한 성경입니다. 1993년 신약 출간, 2002년 완역본이 출간된 이후, 영미권에서만 1천만 독자들이 <메시지>를 선택해서 읽고 있습니다. 기존의 성경을 돕고 보완해 주는 탁월한 "보조 성경"으로, 본문의 의미를 살아나게 하는 "성경 옆의 성경"으로, <메시지>는 의미역 성경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읽히고 인용되고 있습니다.
4. <메시지>는 당신을 위한 성경입니다.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나 오랫동안 읽어 왔기에 성경이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선 사람들, 성경을 공부하려는 사람이나 홀로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픈 사람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나 성경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 성경을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구도자나 믿지 않는 친구들…… <메시지>는 바로 당신을 위한 성경입니다. 한국에 피터슨을 소개한 사람은 고(故) 하용조 목사와 이동원 목사입니다. 특히 이동원 목사는 <메시지>의 전도사로 자처하며 다음과 같은 추천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저자에게 직접 그의 저작인 이 <메시지>의 저술 동기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유진은 순전히 ‘목회적 동기’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 읽기를 너무 어려워하고, 말은 안 하지만 성경 읽기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고 있는 죄책감에서 교인들을 해방시키고 즐겁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울 길은 없을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이 책 <메시지>입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영어 성경을 이 <메시지>로 읽어 왔습니다. 얼마나 쉽고 흥미까지 있는지요! 그러면서도 이 책은 성경 원문의 표현을 벗어나지 않는 학문적 엄밀성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에 흥미를 느끼며 성경을 독파할 다시없는 우리 시대의 대안으로, 단연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_ 이동원 목사 |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외에도 국내에서 다음과 같이 유명한 이들이 혀에 침을 발라가며 <메시지>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뜻을 가장 적절하게 잘 드러낸 최선의 번역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독자들에게 살아 있는 메시지로 들려질 수 있는 번역이다.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이때에, 이 <메시지>가 많은 독자들에게 영의 양식이 될 줄 확신하는 바이다. _ 임영수 목사 | 모새골 공동체
성경은 자구(字句)를 따져 가며 세심히 읽어야 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 존재로 대하시며 건네시는 생생한 일상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살아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신앙의 내용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데 이 책 <메시지>는 크나큰 유익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_ 박영선 목사 | 남포교회
<메시지>는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지금 이 시대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에 담아 생동감 있게 전해 줍니다. 성경의 원문에 충실한 바른 번역이 살아 있는 언어로 더욱 빛을 발하는 <메시지>는,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든 오랫동안 상고해 온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깊이 파고드는 생명력 있는 진리의 귀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와 미래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에게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크게 쓰일 것입니다. _ 오정현 목사 | 사랑의교회
나는 <메시지> 출간으로, 한반도에 사는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성경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유진 피터슨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지만 학문적인 엄밀성도 갖춰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 성경을 공부해 온 사람이나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 했다. <메시지>는 아이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고, 학자들도 물론 읽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사용하셔 서, 이 땅 한반도가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_ 오대원 목사 | 예수전도단 설립자
또한 국외에서는 배도자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을 비롯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이 메시지를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내가 아는 성경의 최근 번역본 중에 가장 역동적인 성경이다. <메시지>는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다. 성경을 많이 읽어 온 사람은 이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_ 빌리 그레이엄
<메시지>는 성경 본래의 목소리를 생생한 언어로 전해 주는 성경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_ 리처드 포스터 | 「영적 훈련과 성장」 저자
학자적 엄밀성과 생생한 표현이 잘 어우러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다양한 성경 번역본 가운데 단연 돋보이고 뛰어난 성경이다. 성경 원문의 논리적 흐름과 활력적인 정서, 함축된 의미들이 탁월하게 되살아난다. _ 제임스 I. 패커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저자
이외에도 다름과 같은 이들이 <메시지>에 흠뻑 빠져 극도의 찬양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문식 목사(산울교회),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김기석 목사(청파교회), 정현구 목사(서울영동교회),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 김중안(한국기독학생회 IVF 대표), 이윤복(죠이선교회 대표), 한철호(선교한국 파트너스 상임위원장), 정민영(국제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부대표), 권영석(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서재석(Young2080 대표), 고(故) 안수현(<그 청년 바보의사> 저자), 하덕규(CCM 아티스트), 홍순관(CCM 아티스트), 조수아(CCM 아티스트), 조준모(CCM 아티스트,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 왕대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 배정훈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 류호준 교수(백석대학교 구약학), 차준희 교수(한세대학교 구약학), 전성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고든 피(리젠트 칼리지 신약학 교수), 달라스 윌라드(<하나님의 모략> 저자), 빌 하이벨스(윌로우크릭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 프레드릭 뷰크너(<하나님을 향한 여정> 저자), 보노(록그룹 U2 리드싱어), 마이클 카드(CCM 아티스트), 에이미 그랜트(CCM 아티스트), 맥스 루케이도(<예수님처럼> 저자), 레베카 피펏(<빛으로 소금으로> 저자), 조니 에릭슨 타다(<하나님의 눈물> 저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이처럼 대단히 유명한 분들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추천하다 보니 순진한 성도들은 이것이 좋은 성경인가 보다 하고 미끼에 빠져들고 맙니다.
<메시지>는 저자인 피터슨이 말한 대로 완전 의역 성경(?)이므로 ‘성경’이라는 말 자체를 붙여서는 안 되는 책입니다.
의역했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대로 적었다는 것이므로 이런 책은 성경이 될 수 없습니다.
피터슨은 또한 이것을 가리켜 스스로 ‘소설 같은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메시지>는 소설이나 다름없는 책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소설보다 위험하고 무서운 책입니다. 순진한 양들이 이것을 소설로 생각하지 않고 성경으로 생각하고 읽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을 빙자해 성경 원문을 현대 한국 일상어로 읽어 내려는 발칙한 음모의 소산이다. 꽤 잘나가는 전문번역자들과 믿었던 성서학자들이 이 소란에 줄줄이 동원된 듯하다. 신속 과감하게 이 작전을 배후에서 조종한 출판사의 배포에 움찔했다. <메시지>에 부화뇌동할 젊은 세대들과 초신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메시지>는 NIV를 이어 뉴에이지 세대를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이 마련한 작품입니다.
성경이 주어진 목적은 다음과 같이 명백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성경은 사람의 운명을 영원토록 결정해 주는 교리의 책입니다. 이 책에 의해 사람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사느냐, 마귀와 함께 불타는 지옥에서 사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절대로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방법 등에 대해서 명확하게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그 책은 말 그대로 사람을 잡는 책이 되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메시지>는 사람을 갉아먹는 조미료 즉 MSG이고 사실은 MSG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책입니다. 먼저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 살펴봅시다.
KJB: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MSG: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귀 기울여 듣지 않는구나. 다시 말해 주겠다.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인 창조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성령'을 통한 창조,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게 이끄는 세례, 이 과정들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과연 물세례가 사람을 새로운 생명으로 이끕니까? 이것은 천주교회가 가르치는 세례 중생 교리입니다. 머리에 물을 100번, 1,000번 뿌리거나 심지어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를 받았다 해도 이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구원받으려면 영이 가난해야 합니다. 통회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그런데 MSG는 이것을 벼랑 끝에 서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KJB: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마5:3)MSG: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사람이 벼랑 끝에 서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위기에 몰리든지 그런 상황으로 인해 구원받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이 가난한 사람만을 기뻐하고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MSG는 이런 것을 흐리게 만듭니다.
KJB: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1:18).
MSG: 아버지의 심장에 계신 분, 단 하나뿐인 하나님의 모습 표현이신(this one-of-a-kind God-expression) 그분께서 하나님을 대낮처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셨다.
예수님이 한 종류의(one of a kind) ‘하나님의 표현’이라면 하나님은 여러 종류의 표현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뉴에이지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면에서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10:30에서 예수님은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MSG는 신성모독의 발언을 합니다.
KJB: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요10:30).MSG: 나와 아버지는 한마음 한 뜻이니라.
MSG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게 과연 성경입니까?
예수님이 마귀를 내쫓은 일을 두고 MSG는 마귀와 짜고 친 고스톱이라고 말합니다.
KJB: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마귀들의 통치자를 통해 마귀들을 내쫓는다, 하더라(마9:34).MSG: 바리새인들은 흥분해 중얼거렸다. "속임수다. 속임수에 불과하다. 아마 마귀와 짜고 한 일일 것이다."
또한 모든 천사들 - 정사, 권능, 치리 - 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말씀이 MSG에서는 우주와 망원경 이야기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KJB: 또 너희는 모든 정사와 권능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완벽하며(골2:10)MSG: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알고 또 그분 없이는 우주가 공허하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망원경이나 현미경이나 점성술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교리적으로 부패된 뉴에이지 책을 두고는 "<메시지>는 천상의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번역한 성육신적 성경입니다. 어느 것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겁니다." 라고 하거나 혹은 “<메시지>는 현재 성경에 다가갈 수 있는 최고의 성경이라고 판단하여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라고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시간까지 자신의 모든 말씀을 담은 성경책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우리 손 안에 들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바로 그 책입니다. 이 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샬롬
2013-06-07 10:57:29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오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제임스 왕이 동성애자이기에 킹제임스 성경은 좋지 않다고 하는 자들도 있고제임스 왕이 프리 메이슨(Free mason)이라 킹제임스 성경은 좋지 않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다 허수아비를 때려서 실체를 죽이려는 것으로서 역사의 증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허수아비를 쳐도 실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 부록에 실린 ‘제임스 왕’에 대한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만큼 동성애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정죄하는 성경은 없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170
그런데도 제임스 왕이 동성애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제임스 왕이 프리 메이슨이라는 말은 아마 그의 복장 등을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왕궁이나 의사당 빌딩, 왕의 제복 등에는 프리 메이슨 상징들이 더러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제임스 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제임스 왕이 번역한 성경이 아닙니다.그는 국가의 통치를 위해 그 성경을 번역하라고 지시했을 뿐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손 안에 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2013-05-23 14:02:41 | 관리자
영어 성경은 몇 종류나 될까요?
이것은 사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1500년 이후에 나온 영어 성경은 약 900종류가 된다고 합니다.
http://record.americanbible.org/content/bible-qa/number-english-translations-bible
웨이트 박사의 통계에 의하면 15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출간된 영어 성경전서와 신약전서는 약 428개라고 합니다.
http://truthinreality.com/2013/03/12/the-four-fold-superiority-of-the-kjv-bible/
위키 백과를 보니 19세기 이후의 현대 영어로 된 성경전서와 신약전서는 약 100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Modern_English_Bible_translations
그러므로 “영어 성경은 200개 이상이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300개 이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 옳습니다.
이중에서 현재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성경은 KJB, NIV, NASB, NKJV, ESV, RSV, NRSV, Living Bible, Amplified Bible, ASV, CEV, Message 등입니다.
이렇게 영어 성경이 많아도 KJB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같은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성경과 ‘마귀에 의해 약 7%가 변개된 성경’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개수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한 종류의 성경과 또 다른 종류의 성경이 일대일로 대립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성경 전쟁은 실제로 1881년에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0년 이후부터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이후부터 약 23년 동안 동일한 성경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가 교만히 행하지 않으면 흠정역 성경이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최후 보루로 남을 것입니다.
이 성경 사역이 바르게 펼쳐지도록 기도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3-05-20 22:51:14 | 관리자
안녕하세요?
구원받지 못한 여러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들을 번역해서 전달하려는 단체가 있습니다.
물론 번역의 대본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혹시 다른 나라 말로 성경을 번역하는 데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purebiblepress.com/
샬롬
2012-11-26 17:46:38 | 관리자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성경을 번역해야 하는 이유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68
2012-11-14 10:12:50 | 관리자
킹 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유혹하는 말들에 주의를 해야 한다. 이사야 14장 12절에서 루시퍼가 옳기에 계명성이나 새벽별은 틀린 것이다. 누군가 둘 다 옳다고 가르친다면 다른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혹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① 계명성(새벽별)에서 '별' kowkab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이사야서 14장 12절 원문에는 없다. 12절에 ‘별’이란 단어가 들어간다면 잘못된 성경이다. 대부분의 현대 성경들은 마귀 이름을 빼고서 예수님 이름을 넣기 위해서 없는 단어를 조작해서 번역했다.
② 킹 제임스 성경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써 있다.
“구약과 신약을 포함하는 본 성경전서는 제임스 폐하의 특별 명령에 따라 원어에서 번역하였으며 또한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음”
킹 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두 가지 작업을 했다. 원어에서 번역했고,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했다. 신학교를 다니신 분들이 생각하듯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본문을 달랑 하나 놓고서 영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다.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 한다.
- 요한일서 2장 23절 : 킹 제임스 성경은 절반이 이탤릭체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이 번역되던 당시에는 23절에서 이탤릭체로 된 부분을 입증하는 그리스어 필사본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어떤 성경도 킹 제임스 성경에서 이탤릭체로 된 부분을 삭제한 채 나온 것은 없다. 왜냐하면 1611년 이후에 23절의 후반부를 입증하는 그리스어 필사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킹 제임스 성경은 당시에 어떻게 이 부분이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였기 때문이다. 23절 후반부는 틴데일 성경(1525년)에는 없었으나 비숍 성경(1568년), 그 이전 위클리프 성경(1380년)에는 있었다. 틴데일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본문에서 번역했기에 없지만 훨씬 이전 라틴어에서 번역한 위클리프 성경에는 들어 있었다. 때로는 내 손에 없다고 해서 정말 없는 것이 아니다.
③ 우리도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함으로 루시퍼도 옳고 계명성(새벽별)도 옳다는 것이 허튼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루시퍼를 없애고 예수님의 호칭인 계명성, 새벽별, morning star, day star로 바꾼 성경들
1895년RV
1901년ASV
1917년JPS
1952년RSV
1960년NASV
1966년Jerusalem Bible
1970년New English Bible
1970년 NIV
1976년Good News Bible
1985년New Jerusalem Bible
1989년NRSV
※ 루시퍼로 번역된 성경들
425년 라틴 벌게이트 Latin Vulgate
1395년 Wycliffe
1535년 Coverdale
1540년 the Great Bible
1549년 Matthew
1557년 the Geneva Bible
1568년 Bishop Bible
1569년 스페인어 성경
1592년 Clementine Vulgate - 반동종교개혁인 트렌트 공회부터 1979년까지 로마카톨릭의 표준 성경
1609년 Douay–Rheims Bible - 로마 카톨릭의 최초 영어 성경
1611년 King James Bible
1833년 Webster's Bible
1890년 Darby
1954년 칠십인역 LXX 영역(英譯) - Lucifer ἑωσφόρος
1976년 the Living Bible
1979년 Nova Vulgata - 로마 카톨릭 표준 라틴어 성경
2009년 Catholic Public Domain Version
④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루시퍼를 루시퍼로 알고 있었다. 이는 매우 보편적인 사실이었고 진실이었다. 1500년의 역사동안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성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사야 14장 12절에는 루시퍼란 마귀 이름이 있어야 함을 알았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시대 이후로 부패한 영어 성경들로 인해서 새벽별도 맞다는 주장이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부정확한 극소수의 출처에 의한 것이다. 카톨릭의 라틴어 성경도, 심지어 칠십인역도 루시퍼가 옳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사야 14장 12절의 히브리어 단어 ‘헬렐’에 대한 정확하고 유일한 번역은 ‘루시퍼’이다. 이사야가 '헬렐'이라고 하면서 지적했던 그 자를 우리는 '루시퍼'하면서 바로 동일한 그 자를 지적하게 된다. 그는 마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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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01:35:28 | 김재근
안녕하세요?
요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이 어느 것이 순수한지 알려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주로 미국의 토마스 넬슨 출판사에서 자기들의 뉴킹제임스 성경을 내면서
고의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대문자, 소문자 등을 바꾸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이에 순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구할 수 있는 호주의 사이트를 알려드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bibleprotector.com/index.htm
이곳에서의 사역은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rAhkSYs7L0U
2011년에 출간한 저희 흠정역 성경의 한영대역 성경의 영어 본문은 이 사이트의 Pure text와 동일합니다.
여기서 만든 551쪽의 안내문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450쪽 이하에 본문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샬롬
2012-10-23 16:31:40 | 관리자
스크리브너의 TR 이야기
어떤 분이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는 자랑스럽게 여기저기 다니며 자기 학교(펜사콜라 크리스천 칼리지(Pensacola Christian College, PCC)의 신학 대학원(Pensacola Theological Seminary, PTS))가 믿는 바를 알리고 있습니다. 자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믿으며 자기도 그렇게 확신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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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교 원어 교수의 주장
보존된 성경으로는 히브리어 전통 사본과 헬라어 사본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그 종류를 공식적으로는 밝히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 교과서는 벤카임 맛소라 사본(1525년판)과 TR(스크리브너 TR)이다. 스크리브너는 킹제임스 성경의 대본이 되었던 헬라어 사본, 즉 에라스무스 판과 스테파누스 판과 베자 판을 모두 검토하여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TR을 최종 정리하여 1894년에 세상에 내놓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스크리브너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사본학에 있어서 TR계열을 정리한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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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와 의도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깨는 일을 하고 다니는 이 형제는 과연 무엇을 최종 권위로 믿고 있을까요? 이분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완벽함을 믿으며 킹제임스 성경은 단지 역본이므로 여러 가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일은 드러나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은밀히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이 내세우는 그리스어 최종 권위는 자기 교수가 교과서로 삼은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스크리브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더불어 영어개역성경(RV)을 편찬하는 일에 가담한 인물입니다. 물론 저는 그분이 훌륭한 성도요 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의든 타의든 킹제임스 성경을 개정하는 일에 가담했다는 것 자체가 벌써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원어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그리스어 공인본문(TR)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에라스무스, 베자, 스테파누스, 엘지버 형제의 TR 등).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베자의 TR을 본문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자의 TR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여러 군데서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베자의 TR을 기본 본문으로 택하고 과거의 여러 역본들(시리아, 라틴 역본 등)과 교부들의 증언, 기도문 같은 증거들을 충분히 살펴보고 최종적인 번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과 베자의 TR은 다릅니다. 사실 우리는 편의상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어 TR을 번역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그러면 이분이 최종 권위로 믿고 있는 스크리브너의 TR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학교 교수의 말대로 1894년에 나온 그리스어 성경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1894년에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스크리브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역으로 베자의 TR이 영어 성경과 다른 부분을 일일이 확인하여 베자의 TR을 교정해서 킹제임스 성경과 똑 같이 일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스크리브너의 TR은 베자의 TR과 달리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100% 똑같습니다.
오호통재라!
이분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번역본이라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고 그리스어 원어 성경이 최종 권위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최종 교과서로 인정하는 그리스어 TR이 킹제임스 성경을 대본으로 해서 만들어졌다니 이 무슨 변고입니까?
그러면 어느 것이 최종 권위일까요?이분은 역본을 가리켜 최종 권위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교수가 그렇게 가르쳐서 자기도 그렇게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요. 이분들이 최종 권위로 믿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은 킹제임스 성경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성경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최종 권위일까요?
이분들은 최종 권위라는 말을 싫어하니까 그러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거기서 나온 스크리브너의 신약성경은 어느 것이 더 권위가 있을까요?”
우리는 솔직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을 그리스어 과목의 교과서로 삼은 것은 참으로 칭찬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모든 사람이 쉽게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원어, 대단히 중요합니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권위와 신뢰를 원어 성경에 두어야 합니다.지금도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번역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번역본 중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들(단어들)을 그대로 정확하게 담고 있는 성경이 곧 영어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래서 웨이트 박사님처럼 저명한 원어 학자도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은 담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서슴없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학식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믿음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최종 권위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 신자가 어떤 성경을 들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그 말 자체가 이미 그 성경이 최종 권위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어, 또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이 과거에 없었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사람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이것이 최종 권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원본의 최종 권위를 주장하는 이들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들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제 이분들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성경에 대한 성도들의 확신을 깨지 말고 스스로 원어 성경의 영역을 확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선하게 여기시는 사역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부디 학식에서 머물지 말고 그것 이상의 확신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만히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참고로 스크리브너의 TR은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Scriveners-Annotated-Greek-New-Testament/dp/1888328053/ref=sr_1_3?s=books&ie=UTF8&qid=1350973069&sr=1-3&keywords=scrivener+greek
(*) 참고로 이 글을 적은 저도 펜사콜라 크리스천 칼리지(Pensacola Christian College)의 신학 대학원(Pensacola Theological Seminary)을 다녔습니다.
위키 백과를 보면 PCC는 오직 TR만을 지지하며 학교와 교회에서 모든 수업과 예배에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을 사용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ensacola_Christian_College
2012-10-23 15:15:15 | 관리자
진리의 순교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틴데일
제임스 왕(King James)이 제정한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으며 특히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없이는 킹제임스 성경의 출간이 매우 어려웠거나 지연되었을 것이다. 이에 본 부록에서는 「폭스의 순교사화」(Foxe’s Book of Martyrs)의 틴데일 편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영어 성경의 역사와 틴데일의 일생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를 통해 성경을 보통 사람들의 손에 쥐여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는지 기억하고자 한다.
영국과 영어의 역사
영어 성경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영국 민족과 영어의 역사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후 5세기에 로마가 영국 남부에서 군대를 철수하자 브리튼족은 색슨족의 도움을 받아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침략을 막아 냈다. 색슨족은 북부지방에서 승리를 거둔 뒤 돌아갔지만 그 뒤에 영국 남부를 차지하려 했다. 이런 싸움은 거의 150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동안에 앵글로족, 색슨족, 여러 이교도 등이 고대 영국을 일곱 개의 왕국으로 나누어 통치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영국 전체에 복음의 등불이 꺼진 상태였고 6세기 후반에 켄트의 왕이었던 에델베르트(King Ethelbert, 560-616)가 회심한 뒤에야 비로소 다시 복음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 뒤 여러 왕국들은 주변의 좀 더 강한 왕국으로 합병되었고 마침내 주후 827년에 에그베르트(King Egbert, 771-839)는 이 모든 왕국을 하나로 통일하여 통치하였다.
색슨족이 다스리던 시절에는 덴마크족이 계속해서 영국을 침략했고 여러 지역을 다스렸다. 그러다가 주후 878년에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849-899)은 에딩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기독교 신앙을 전하게 되었다. 그 뒤 150년 동안 영국인들과 덴마크족 사이에는 계속해서 전쟁이 있었고 영국 교회는 캔터베리 대주교인 란프랑코(Lanfranc of Canterbury, 1010-1089)에 의해 재조직되었다.
6-7세기부터 영국에서는 앵글로‧색슨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백성에게 전해 주려는 시도가 있었고 8세기 초반에는 시편과 복음서를 번역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번역본은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후 735년에 비디(Bede, 672-735)는 복음서를 번역했으며 앨프레드 대왕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기를 원하여 스스로 시편을 번역하기도 했다. 10세기 후반에는 앨프릭 대주교(Aelfric of Abingdon)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교회에서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했고 이로써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뒤 약 400년 동안은 영어 역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주후 1066년에서 1150년까지는 색슨족의 언어와 노르만 프랑스어가 같이 쓰였다. 그러다가 1150년 이후에 이 두 개의 언어는 병합되기 시작했고 결국 고대 색슨어가 아니라 절반만 색슨어라는 의미의 ‘반-색슨’(semi-Saxon) 언어로 귀착되었고 그 뒤 1382년에 어느 정도 영어가 정형화된 상태에서 위클리프의 영어 성경이 나오게 되었다.
순교자 위클리프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전혀 알지 못했고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공통으로 사용하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성경’을 본문으로 영어 번역 성경 출간을 시도했다. 그가 번역한 성경은 잘못된 원본으로 인해 완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번역한 성경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정죄를 받고 출회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1384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성경을 번역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번역한 성경은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필사해야만 했다. 보통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 열 달 정도가 걸렸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성경 한 권의 가격이 당시 도서관 사서의 일 년치 봉급 정도나 되었다. 그런데도 많은 양의 성경이 필사되자 마침내 영국 국회는 법령을 제정하여 위클리프의 성경을 보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영국의 아룬델 대주교는 교황에게 ‘저 사악한 위클리프’를 처치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뒤 1408년에 그의 지휘하에 옥스퍼드 회의가 열려 “어떤 형식으로든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서는 안 되며 아무도 그런 책을 읽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결정했고 이 결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단으로 정죄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뒤 약 100년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클리프의 성경을 보거나 소지했다는 이유로 위클리프의 성경을 목에 매단 채 화형을 당하며 순교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클리프와 롤러드파(Lollards)라 불리던 그의 동역자들의 수고로 많은 성경이 필사되어 아직까지 170권이나 남아 있음을 볼 때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경을 번역하고 필사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에 영어 성경이 평민들의 손에 들어가자 큰 위협을 느낀 교황 요한 23세는 콘스탄스 공회를 열어 위클리프의 성경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미 죽어 무덤에 안치된 위클리프의 유골을 캐내어 불사를 것을 결의했다. 그 뒤 13년이 지나서 이들은 실제로 위클리프의 무덤을 열고 그의 뼈를 캐내어 불사르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런 박해를 겪으면서도 성경을 보통 사람들의 손에 쥐여 주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손으로 일일이 필사해야만 하는 제약 때문에 원하는 대로 성경을 널리 보급할 수는 없었다.
구텐베르크와 인쇄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약 100년 전에 독일의 멘즈라는 오래된 마을에 요한 구스플레쉬(John Gooseflesh, 1397-1468)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천주교 사제들이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양피지를 만들어 어려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요한은 어린 시절부터 칼로 조각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 날, 그는 불 옆에서 자기 어머니가 끓이고 있는 자주색 염색 냄비를 지켜보며 나무에다 자기 이름을 조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글씨를 새긴 나무 조각들 가운데 하나가 염색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얼른 그것을 꺼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그 옆에 놓여 있던 양피지에 떨어졌다. 그가 나뭇조각을 집어 올리자 그 양피지에 ‘h’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멘즈의 이 소년은 자기가 살던 옛집에서 그날 일어난 일을 잊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손으로 책을 필사하던 그 당시의 방법보다 더 쉬운 방법으로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나무 조각을 깎아 그 위에 글씨를 새기고 염색용 잉크를 묻혀 여러 가지 형태로 배열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서양에서 처음으로 인쇄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는 누구나 다 아는 ‘최초의 인쇄기 발명가’로 역사 속의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이 일에도 성경을 널리 보급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참으로 묘하게도 주후 1450년에서 1455년 사이에 서양에서 처음으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은 다름 아닌 라틴어 성경책이었다.
그리스 문화의 복원
서양에서 인쇄술이 발명되던 당시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그리스도인들과 터키 사람들 사이에 큰 전쟁이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대부분의 훌륭한 학교들이 몰려 있던 그 도시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어 학자들은 유럽의 각처로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고 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으며 그때까지 읽어 오던 ‘구(舊) 라틴 벌게이트’라는 번역 성경 대신 원어인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로 인해 점차 사람들은 성경을 모든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한다면 참으로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내 원어에 대한 연구와 인쇄기의 발명 그리고 영어의 정형화 등으로 인해 이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순교자 틴데일
이 같은 변혁의 시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와 그들이 변개한 사본을 단호히 물리치고 개혁자들과 함께 순교하면서까지 영국의 평민들에게 영어 성경을 전해 주고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헌신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평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읽는 일이 훨씬 더 늦추어졌을 것이며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KJV)과 같은 걸출한 역본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21세기의 현대인들은 성경을 볼 때마다 성경을 보존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결국엔 자기 목숨까지 바친 틴데일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었던 틴데일은 주후 1494년, 영국 웨일스 지방의 글로스터셔주의 노스니블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는 어학과 다른 문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고 특히 성경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성경 연구에 몰두하였고 그 결과 마그달렌 홀에서 지내며 마그달렌 대학의 몇몇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몰래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들려주었으며 성경의 지식과 진리에 관해 교훈을 주었다. 그의 예의범절과 행동 등이 성경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참으로 덕스러운 성품의 소유자이며 흠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그 학교의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1521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겨 가서 강사로서 몇 년간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늘린 그는 그 대학을 떠나 자기 고향인 글로스터셔주로 가서 마스터 웰치(Master Welch)라는 기사(騎士)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웰치의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주인인 웰치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웰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식탁을 같이하곤 했으므로 대수도원장, 집사, 집사장, 그리고 여러 분야의 의사 및 교회의 녹을 먹는 성직자 등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이들은 틴데일과 함께 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특히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같이 학식이 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성경에 관한 여러 가지 논쟁거리와 질문 등에 대해서도 서로 견해를 나누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그 일을 수행해 온 틴데일은 이때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자기 견해를 간단명료하게 제시하곤 했다. 그들의 의견이 자기 의견과 다를 때면 그는 언제든지 성경을 펴서 그들 앞에서 명백한 성경 구절을 보여 주곤 했으며 이로써 그들의 오류를 논박하고 자기 말을 확증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얼마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논쟁을 하다가 마침내 지쳐서 마음속으로 틴데일에 대한 불평을 품기 시작했다. 일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진행되자 그 지역의 사제들은 선술집이나 다른 곳에서 함께 모여 틴데일에 대해 비난과 폭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의 말이 이단 교리임을 확증하려 했으며 또 비밀리에 그를 주교의 종교법 고문 및 주교의 관리들 중 몇몇 사람들에게 고소하였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주교의 종교법 고문이 새로 임명을 받고는 여러 사제들에게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틴데일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틴데일이 그들의 위협에 대해 미심쩍어했는지 혹은 그들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음을 그가 알고 있었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단지 그가 밝히 드러낸 바와 같이 그는 그들의 은밀한 고소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그래서 거기로 가는 길에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자기에게 힘을 주실 것을 간구했다.
틴데일이 종교법 고문 앞에 설 날이 오자 그 고문은 그를 심하게 위협하였고 마치 그를 개처럼 취급하며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아무도 고소한 적이 없는 일들에 대해서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 지역의 사제들이 거기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고소하지 않았으므로 간신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난 틴데일은 그 길로 집을 떠나서 다시 자기 주인에게 돌아갔다.
거기에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당시 주교의 고문으로 지내던 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틴데일과 잘 알고 있었으며 그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틴데일은 그에게 가서 자기 마음을 열고 성경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점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의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황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하는가? 그러나 말조심하게. 당신이 그런 의견을 가진 것이 알려지면 목숨이 달아날 걸세.”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틴데일은 우연히 어떤 신학자와 사귀게 되었는데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매우 학식이 깊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논쟁을 하다가 마침내 틴데일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대해 그의 견해를 물었다. 그러자 그 위대한 박사는 다음과 같은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였다.
“성경이란 필요 없소. 보통 사람들이 읽도록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교황뿐이오. 교황의 법 없이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법 없이 사는 게 훨씬 더 낫소.”
이 말을 들은 틴데일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충만한 채 이 같은 신성모독 발언을 참지 못하고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나는 교황과 그의 모든 법에 도전하며, 만일 하나님께서 목숨을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 몇 년 내에 쟁기를 끄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할 것이오.”
틴데일에 대한 사제들의 불평은 점점 더해 갔으며 그들은 끊임없이 틴데일을 향해 원성을 토로하고 욕했으며 그를 가리켜 이단이라 하면서 그가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로부터 많은 시달림과 괴롭힘을 당한 그는 결국 그 지역을 떠나 다른 장소를 찾아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 웰치에게 가서 그의 곁을 떠나도 좋다는 호의를 입게 되기를 간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인이시여, 제 생각으로는 이제 제가 더 이상 이 지역에 머무를 수 없으며 비록 주인께서 그들의 손에서 저를 보호하시려 해도 저를 보호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불명예를 당하시리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 점에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주인의 호의를 입게 된 틴데일은 곧바로 런던으로 오게 되었으며, 거기에서도 이전 지방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얼마 동안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는 그 당시 런던의 주교였던 턴스탈(Cuthbert Tunstall, 1474-1559)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한 턴스탈의 학식을 매우 높이 평가한 에라스무스의 추천의 말을 숙고하면서 만일 자기가 그의 일을 도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틴데일은 왕의 감사관인 길포드 경에게 자기가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소크라테스의 연설문을 가지고 가면서 그가 자기를 위해 런던의 주교인 턴스탈에게 이야기해 줄 것을 고대했다. 그런데 그는 틴데일을 위해 그 주교에게 편지를 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주교를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써서 헬비스웨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그 주교의 종에게 편지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뜻대로 세상일을 처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틴데일에게나 자신의 교회에게나 최상의 것이 되지 않음을 보시고 그가 그 주교의 눈에 큰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셨다. 그 주교는 현재 자기 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틴데일을 위해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런던의 주교에게 거절당한 틴데일은 런던의 부시장 뭄무스의 집에 가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는 틴데일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는데 그 집에서 틴데일은 매우 착실한 사제로서 밤낮으로 연구하며 지내게 되었고 주인의 호의를 입어 잘 익힌 음식만을 먹게 되었다.
이처럼 1년 정도를 런던에 머물면서 틴데일은 이 세상의 행로가 무엇인지 차츰 깨닫게 되었으며 특히 복음 선포자라 불리는 자들의 행실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그들은 교만했고 스스로 권위를 내세웠으며 특히 고위 성직자들의 겉치레는 그들의 다른 행실들과 함께 그에게 큰 불쾌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주교의 집에서 신약 성경을 번역할 수도 없고 또한 영국에서도 그 일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뭄무스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 지역에서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독일로 떠났다. 거기에서 이 선한 사람 틴데일은 자신의 조국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에 불타서 어떤 힘든 일이나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그 확실성에 대한 깨달음을 자신의 영국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자기 친구 프리스와 의논하는 가운데 그는 성경이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되어 가난하거나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명쾌히 읽게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는 성경이 보통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평이하게 주어져서 그들 스스로 본문의 뜻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진리 안에 굳게 설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일이 그렇게 진행되지 않으면 그들에게 어떤 진리를 가르친다 해도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궤변이나 자기들이 고안한 전통 등으로 이 진리를 저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성경 본문의 올바른 의미를 찾아낸 경우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본문을 조작하여 본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틴데일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 가려진 것, 바로 그것이 교회 내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토록 오랫동안 바리새인들 같은 성직자들이 가증한 행위와 우상 숭배를 행해 왔지만 보통 사람들은 성경이 없었으므로 그것들을 찾아내어 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부패한 성직자들은 전력을 다해 성경 말씀을 짓누르려고 애를 썼으며 사람들이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그들이 읽는다 해도 여러 가지 궤변으로 말씀의 올바른 의미를 흐리게 했다. 또한 이들은 자기들이 만든 각종 가증한 것들을 경멸하는 자들을 위협하고 속박했다. 게다가 그들은 본문의 의미와는 다르게 성경을 자기들의 목적에 맞추어 마구 뜯어고쳤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말한 것이 다 거짓임을 알고 있다 해도 그들의 교묘한 술책을 이길 방도가 없었다.
이런저런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선한 사람 틴데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성경을 모국어인 영어로 번역하여 고국의 단순하고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끼치려 하였다. 처음에 그는 독일의 함부르크로 갔다. 그러나 영국의 주교들과 사제들은 정탐꾼들을 고용하여 그의 일을 방해하였고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그가 성경을 인쇄하는 일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심지어 그는 신변에 큰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다.
한편 쾰른에 인쇄소가 있었으므로 그는 그곳으로 가서 자기의 성경을 인쇄해 줄 인쇄공을 찾아냈다. 그는 영국의 주교들과 사제들이 이 작업이 끝난 것을 알면 자기를 체포해 갈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비밀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숨을 건지려면 빨리 도망가라는 제보가 그에게 들어왔다. 술에 취한 인쇄공으로부터 그의 신약 성경이 거의 인쇄될 단계에 있다는 것을 듣게 된 로마 카톨릭 사제가 그를 체포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간신히 원고들을 챙겨 루터가 살고 있던 보름스로 도망갔고 거기에서 처음으로 주후 1525-1526년경에 자신의 영어 신약 성경을 출간하였다. 그때 그는 두 종류의 성경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크기가 컸고 다른 하나는 작았다. 이렇게 한 이유는 영국의 성직자들이 큰 성경들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작은 것들은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성경들을 영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큰 통이나 짐짝에 옷가지나 밀가루 등과 함께 성경들을 숨겨 마치 다른 상품처럼 꾸며 영국으로 보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성경들이 영국에 들어와 판매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성직자들은 항구를 조사하여 성경을 찾아냈고 찾는 족족 불태워 버렸다. 한편 런던의 주교인 턴스탈과 모어 경(Thomas More, 1478-1535)은 너무나 화가 나서 틴데일의 영어 성경을 ‘거짓되고 실수가 많은 번역’이라고 폄하했으며 또한 그의 역본을 없앨 방법을 모색했다.
그런데 그 당시 포목상이던 패킹턴이라는 사람이 턴스탈 주교와 함께 앤트워프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틴데일을 사랑하여 그 주교에게 반대로 말을 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하던 주교는 어떻게 하면 틴데일의 신약 성경을 다 사들여 불태울 수 있을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패킹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주여! 주교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여기 있는 어떤 상인보다도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네덜란드 사람들과 틴데일에게서 성경을 사들여 여기에서 판매한 외국 사람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교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그것들을 사들이기 위해 많은 돈을 쓸 것입니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교께서 지금까지 인쇄된 것 중에서 판매되지 않은 것을 다 차지할 수 있게 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말을 들은 주교는 이제야말로 이 일을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패킹턴 선생, 부지런히 이 일을 수행하시오. 그 성경들을 구해 주시오.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다 지불하리이다. 나는 그것들을 다 모아 성 바울 십자가 광장에서 불사를 것이오.”
이 일 뒤에 패킹턴은 틴데일에게 가서 이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서로 협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런던의 주교는 틴데일의 남은 성경을 모두 입수했고 패킹턴은 주교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으며 틴데일은 큰돈을 얻게 되었다.
그 뒤에 틴데일은 동일한 신약 성경을 한 번 더 수정한 뒤 다시 인쇄해서 이전의 세 배나 되는 양을 영국으로 보냈다. 런던의 주교는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패킹턴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외부에 그토록 신약 성경이 많이 돌아다닌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자네가 그것들을 다 사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패킹턴은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저는 그 당시 구할 수 있는 성경을 다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후에 더 많은 성경을 인쇄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활자와 인쇄기를 가지고 있는 한 이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쇄기까지 다 사들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
습니다.”
이 같은 대답에 주교는 웃고 말았고 그 문제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틴데일을 도와주던 콘스탄틴은 그 당시 영국의 종교법 고문이던 모어 경에 의해 특정 이단 교리에 대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모어 경은 그에게 물었다.
“콘스탄틴! 내가 묻는 질문에 솔직히 답변하기 바란다. 그러면 네가 고소당한 다른 모든 혐의에 대해 내가 호의를 베풀 것을 약속한다. 바다 너머에 틴데일과 조이와 다른 일당이 있는데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너는 그 사람들 중 하나이니 돈의 출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청하건대 그들을 돕는 자가 누구인지 내게 말하도록 해라.”
이에 대해 콘스탄틴이 대답했다.
“내 주여,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겠나이다. 우리를 도운 사람은 런던의 주교입니다. 그가 신약 성경을 불태우기 위해 우리에게 엄청난 돈을 주었습니다. 그 돈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유일한 후원금이며 위로금입니다.”
그러자 모어 경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사실이군. 왜냐하면 주교가 그 일을 하기 전에 내가 주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했으니까.”
영어 신약 성경을 6판까지 출간한 뒤에 틴데일은 계속해서 구약 성경 번역에 착수했으며 1530년에 모세오경 번역을 마쳤다. 이와 동시에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계속 읽어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경건하고도 학문적인 서문을 작성했다.
한편 1535년에 커버데일은 틴데일의 신약 성경과 모세오경에 근거하여 자신의 번역본을 만들고 나머지는 스스로 번역하여 신구약 성경 전체를 담은 최초의 영어 성경전서를 앤트워프에서 인쇄했다. 이 성경전서가 영국에 들어갔을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온 영국 민족의 눈에 얼마나 큰 빛을 가져다주었는지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처음에 틴데일은 영국을 떠나 독일로 갔으며 거기에서 루터와 학식 있는 다른 사람들과 회의를 했다. 그 뒤 그는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다시 네덜란드로 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앤트워프에서 보냈다. 틴데일의 경건한 책들 특히 그가 번역한 영어 신약 성경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자마자 해외로 퍼져나갔으며 경건한 사람들에게 참으로 큰 유익을 주었다. 그러나 경건치 못한 사람들 곧 일반 백성들이 자기들보다 더 현명하게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진리의 빛으로 인해 자기들이 행한 어둠의 일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적지 않은 동요를 일으켰다.
그때 틴데일은 이미 구약 성경의 신명기를 번역했으므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이것을 인쇄하려는 생각을 품고 함부르크행 배를 탔다. 그러나 네덜란드 해변에서 배가 좌초하는 바람에 그는 모든 책과 저작물과 필사본과 돈과 시간을 잃게 되었고 하는 수 없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배로 함부르크에 갔는데, 거기에는 약속한 대로 커버데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는 모세오경 전체를 번역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1529년 부활절에서부터 12월까지 경건한 과부인 엠머슨 부인의 집에 머물면서 이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당시 그 도시에 땀을 많이 흘리게 하는 병이 돌자 그는 함부르크에서의 일을 급히 끝내고는 다시 앤트워프로 돌아갔다.
하나님께서 보통 사람들의 말로 된 영어 신약 성경을 널리 퍼뜨리려고 하셨을 때 틴데일은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성경을 번역하면서 서문을 통해 만일 자신의 번역에서 잘못이 발견된다면 학식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기록했다. 다시 말해 그는 지식이 있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자기의 번역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발견하면 예의를 갖추어 부드럽게 자기들의 학식을 반영하고 수정할 부분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겸손하게 제안하였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그 책이 널리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 성경 안에 수천 개의 이단 교리가 있으며 따라서 그 책은 수정할 필요가 없고 완전히 파기해야만 한다고 큰소리로 주장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평민들이 자기들의 모국어로 된 성경을 갖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으며, 어떤 이들은 성경이 평민들 모두를 이단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상의 통치자들을 이용하면서 틴데일의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왕에게 반기를 들 것이라고 모함하기도 했다.
틴데일은 창세기 앞에 있는 서문에서 몇몇 사항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자기의 번역본을 자세히 살펴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저 위대한 책인 성경을 번역할 수 있다고 상상하면서 자기가 번역한 성경을 그런 억측으로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또한 그는, 그들이 자기가 번역한 성경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고 만일 인쇄상의 실수로 거기에 ‘i’ 라는 글자가 없는 구절을 발견하면, 무식한 사람들에게 이것이야말로 큰 이단 교리라고 당당하게 말했음을 보여 주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빼앗으려는 영국 성직자들의 악랄한 계략은 너무나도 지독했다. 사실 이들의 임무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성경을 번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하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틴데일이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이 같은 시도는 세상을 어둠 속에 가두어 둔 채 헛된 미신과 거짓 교리로 자기들의 야망과 탐욕을 만족시키며 또한 자기들의 명예를 왕이나 황제보다 더 높이면서 백성들의 양심 위에 올라앉아 사람들을 다스려 보려는 그들의 교만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침내 주교들과 고위 성직자들은 왕의 동의를 얻어 냈고 서둘러서 주후 1535년경에 틴데일이 번역한 신약 성경의 확산을 금한다는 선언문을 작성하여 포고했으며 이 일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더 나아가 틴데일을 자기들의 그물로 사로잡아 그의 생명까지 빼앗으려고 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악한 계획을 실행했는지 이제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런던의 등기소에 모인 주교들과 모어 경은 앤트워프에 있었던 것들을 다 가져다 놓고 틴데일에게 속한 모든 것을 열심히 찾아내어 조사했다. 그들은 틴데일이 어디에서 누구를 접대했는지, 그의 집은 어디에 있고 그는 키가 얼마이며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떻게 휴식을 취하는지 등을 조사했다. 부지런히 캐내어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뒤에 그들은 이제 자기들의 업적을 확고하게 할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앤트워프에 있던 틴데일은 한 영국 상인의 집을 지키는 일을 하던 포인츠라는 영국 사람의 집에서 거의 1년 동안 기거했다. 한편 1535년 5월, 그곳에 필립스라는 영국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아주 잘생긴 사람으로 신사처럼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이유로 그곳에 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때 틴데일은 상인들과 함께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러 오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 기회를 통해 필립스는 그와 친숙해지게 되었고 틴데일은 곧바로 그를 크게 신뢰하게 되었으며 자기가 머무는 포인츠의 집으로 그를 데려가기도 했다. 또 그와 함께 한두 차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틴데일은 그와 깊은 친분을 맺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를 포인츠의 집에 거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한편 틴데일은 필립스에게 자신의 책들과 자신이 연구하는 것들 중 비밀에 속한 것들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틴데일은 이 배신자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인츠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필립스와 알게 되었느냐고 틴데일에게 물었다. 그러자 틴데일은 그가 정직한 사람이며 매우 학식이 있고 유익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틴데일이 그에게 그처럼 호의를 가지고 있음을 본 포인츠는 아마도 필립스가 그의 친구들 중 하나의 소개로 틴데일과 가까워졌으리라 생각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필립스는 앤트워프에서 약 삼십이 킬로미터 떨어진 브뤼셀의 법정에 갔으며, 거기에서 다시 앤트워프로 오면서 황제의 변호사인 검사장과 다른 관리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때부터 삼사일 지난 뒤 포인츠는 앤트워프에서 약 이십구 킬로미터 떨어진 읍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사업을 하게 되었다.
한편 포인츠가 없는 동안 필립스는 그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에게 틴데일이 안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 뒤 그는 다시 나가서 브뤼셀에서 자기가 데려온 장교들을 집 근처 거리와 문 근처에 배치했다. 정오쯤에 그는 다시 돌아와 틴데일에게 가서 사십 실링을 빌려 달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침에 이곳과 메클린 사이에 있는 통로를 지나다가 지갑을 잃어버렸소.”
이에 틴데일은 사십 실링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틴데일은 참으로 쉽게 사람을 믿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이에 필립스는 틴데일에게 이렇게 말했다.
“틴데일, 오늘 저녁에 내 집에서 식사를 함께 합시다.”
그러자 틴데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침 내가 저녁 먹으러 가는데 당신도 함께 갑시다. 그곳 사람들은 당신을 환영할 것입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틴데일은 필립스와 함께 나갔는데 포인츠의 집에 드나드는 길은 길고 입구가 좁아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나갈 수가 없었다. 틴데일은 자기 앞에 필립스를 가게 하려 했으나 필립스는 자기의 배려심을 보이기 위해 틴데일을 자기 앞에 가게 했다. 그래서 그렇게 큰 키가 아닌 틴데일이 앞에 갔으며 키가 크고 잘생긴 필립스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는 이미 문 양쪽에 장교들을 배치해 놓았고 이들은 입구에서 누가 나오는지 볼 수 있었다. 틴데일 뒤에 선 필립스는 자기 손으로 틴데일의 머리를 가리켜서 장교들이 데려가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었다. 틴데일을 감옥에 가둔 뒤에 장교들은 그처럼 단순한 틴데일을 보고 큰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고 포인츠에게 말했다. 그들은 틴데일을 황제의 변호사에게 데려갔으며 거기에서 그는 식사를 했다. 그 뒤 검사장이 포인츠의 집에 와서 틴데일의 소유물 곧 그의 책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가져갔다. 이로써 틴데일은 앤트워프에서 약 이십구 킬로미터 떨어진 브뤼셀 근처의 빌보르드 성(Castle of Vilvoorde)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 홀로 남게 된 틴데일은 변호사와 검사를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자기가 스스로 답변하겠다고 말하며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또한 자기를 고소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복음을 선포했으며 성안에서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만일 그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겠느냐는 진술을 했다. 마침내 심문이 시작되었고 많은 변론이 있었지만 아무런 변호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죽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칙령으로 아우그스부르크 집회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주후 1536년 10월 6일, 그는 빌보르드 성에서 사형 집행 장소로 끌려 나와 화형대에 손발이 묶인 채 화형을 당했다. 이들은 그를 화형시키면서 불로 인해 고통이 증가하기 시작할 때에 그의 목을 졸라매어 그가 사망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형대에서도 놀라운 열정을 가지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처형장의 틴데일
…제 물품들을 여기로 되돌려 보내 주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선 따뜻한 모자가 필요합니다. 극심한 추위로 인해 저는 머리에 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계속되는 감기로 고통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감옥에서 이 증세가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또한 따뜻한 웃옷이 필요합니다. 현재 제가 입고 있는 것은 너무 얇습니다. 또 제 각반을 기울 헝겊 조각이 필요합니다. 제 외투는 다 닳았고 셔츠 또한 그렇습니다.…또한 제가 바라는 것은 저녁에 초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기가 너무나 지루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바라는 것은, 저의 히브리어 성경과 히브리어 문법책, 그리고 히브리어 사전을 가질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저의 시간을 히브리어 성경 연구로 보내기 위함입니다.…겨울을 나기 전에 제게 어떤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 할지라도 저는 인내하며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할 것입니다. 그분의 영께서 늘 각하의 마음을 인도하시길 기도하고 바라옵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한 죄로 체포되어 1535년 겨울 빌보르드 성에 감금되었던 틴데일이 라틴어로 써서 성주 앞으로 보낸 편지로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의 친필 기록>
감옥에 있었던 약 1년 반 동안에 그가 간수와 그의 딸과 그의 다른 가족들을 회심시킨 것을 보면, 그의 가르침이 얼마나 능력이 있었고 삶이 얼마나 성실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가 번역한 신약 성경이 이단 교리들로 가득 찼다며 대적들이 심하게 트집을 잡았으므로 틴데일은 친구 프리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게 될 그날에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시기를 바라노니 나는 결코 내 양심을 거슬러 하나님 말씀의 단 한 음절도 바꾸지 않았으며,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즉 명예와 쾌락과 재산을 내게 준다 해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틴데일이 죽은 뒤 2년 만에 이 같은 그의 기도가 이루어져 1538년에 영국의 헨리 8세는 각 교구의 교회에 그레이트 성경을 비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뒤 ‘커버데일 성경’, ‘로저스 성경’, ‘매튜 성경’, ‘태버너 성경’, ‘크랜머 성경’, ‘비숍 성경’ 등의 이름으로 여러 영어 성경이 출간되었으나 사실 그 내용은 틴데일이 번역한 것과 거의 같았다. 또한 그의 번역은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에 70-80% 이상 그대로 반영되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쥐여 주려 했던 틴데일의 숭고한 정신은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으로 이어졌고 18, 19세기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일로도 이어져 우리 민족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구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디 이 작은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위클리프나 틴데일 그리고 롤러드파 사람들과 왈덴시아파 사람들 같은 선구자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 올바른 성경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2-10-23 13:19:09 | 관리자
진리에 대한 오해와 역사의 진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개정 신화
1611년에 탄생된 「흠정역 성경」의 권위를 심하게 흔들려는 비평가들의 최후 배수진 가운데 하나는 소위 개정(改正)이라는 것으로 시비를 삼아 장난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 곧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사본학적 증거와 성령님께서 이루신 명백한 증거들을 들이대며 자기들의 빈약한 주장을 뒤엎어 버리자 궁극적인 패배를 맛보지 않으려고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요새로 도피한다. 일단 이 요새 안에 들어서면 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에 대해 자신만만해하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여러분은 어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십니까? 1611년 판입니까, 1629년 판입니까? 아니면 1769년 판입니까?”
이 같은 공격에 대해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충격을 받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면 그들은 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쳐 버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들의 성안에 들어가 성문을 걸어 닫는 순간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리건(David F. Reagan) 박사라는 사람에 의해 이미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완전히 허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리건 박사는 미국 테네시주 낙스빌에 있는 트리니티 침례교회의 목사이다. 그는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 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했다. 다시 말해 리건 박사는 「흠정역 성경」 비평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를 파괴시키는 일을 훌륭히 수행해 냈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가 발견한 것을 보다 개선시키려 애써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으므로 그의 허가를 얻어 그의 소책자 전편을 여기에 소개하는 바이다.
1611년흠정역 성경의 초기 개정 신화
마귀가 처음 이브에게 ‘속임수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방법’(고후4:2)을 가르쳐 준 이래로 사람들은 줄곧 이 방법을 사용해 왔다. 가인으로부터 발람에 이르기까지, 여후디로부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이르기까지, 중세 암흑시대 신학자들로부터 오늘날의 인본주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사람들의 부패한 손이 노리는 제1의 표적물이 되어 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격은 대개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첨가, 삭제, 그리고 바꿔치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담 시대로부터 컴퓨터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전략은 변치 않고 동일하며 사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최근 들어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는 마귀의 공략 방법 중 하나는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 곧 1611년 판 「흠정역 성경」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그 공격의 내용은 「흠정역 성경」이 이미 네 차례나 개정되었으므로 다른 개정 성경들에 대한 반대론은 타당치 않으며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믿을 수 없는 꾸며 낸 이야기 즉 신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신화는 1881년에 나온 「영국개역성경」 번역자들이 이미 사용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자신들의 최신 번역판 성경을 팔려는 근본주의 학자들의 불순한 동기에 의해 부활되었다. 이 소책자는 이러한 공격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다. 본 자료의 목적은 성경 보존을 부인하는 자들을 깨우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을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데 있다.
이들의 집요한 공격에 답변할 때 늘 문제점이 하나 생긴다.
“과연 비평가들에게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대답해야만 하는가?”
만약 영어 성경의 무오류성에 대한 천박한 질문들에 일일이 답하고자 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어느 곳에서고 공정성(公正性)이 득세하기 마련이며 항상 그렇듯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이다. 잠언 26장 4-5절은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을까 염려하노라.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라.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염려하노라.”
분명한 것은 어리석은 질문에 대해 그것을 무시해야 할 때가 있고 그것에 답해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공격에 대해 답변하는 것이 당신을 상대방과 동일하게 미련한 존재로 만든다면 그런 질문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 최상의 답이 될 것이다. 가령,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다는 아무개가 이혼을 했으므로 성경은 무오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누가 해 온다면 이 경우에 여러분은 침묵이 최상의 답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사실 여부에 따라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문제나 질문이 제기될 경우 이것을 회피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성경 공격자는 자기의 기만 속에서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고 우쭐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매우 좋지 못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개정 여부를 다루는 문제가 둘째 종류의 문제라고 믿는다. 만일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이 네 차례의 중대한 개정 작업을 거친 것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영어 본문에 기초해서 진전되고 있는 성경 개정 작업에 반대하는 것은 실로 그릇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공격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을 해야 한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독자께서는 본 부록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흠정역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1. 1611년 당시의 인쇄술
만일 하나님께서 주후 1611년에 「흠정역 성경」을 통해 영어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셨다면(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어떤 것에 근거해서 이 성경이 무오류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 근거가 번역자들의 필기 자료일까? 혹은 인쇄공들에게 보낸 교정쇄일까? 만약에 그런 것들이 근거가 된다면 이러한 종이 뭉치들은 이미 소실되고 없기 때문에 우리의 권위도 근거를 잃고 만다.
어떤 분은 인쇄기에서 맨 처음 찍혀 나온 책에 권위가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책 또한 분명히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사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그 당시의 인쇄 작업 방식에 따라 인쇄되었더라면 맨 처음에 인쇄된 책은 인쇄 상태가 좋지 못했음에 틀림이 없으므로 폐기 처분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첫 번째 인쇄할 때 만들어진 책들 중에서 남은 것들뿐이며, 사실 이렇게 남아 있는 책들은 다른 모든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하는 표준으로서 종종 지목되곤 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 책들이 표준이 될까? 초판을 찍어 냈던 초기의 인쇄공들이 인쇄 실수를 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단 말인가?
이 문제를 분석하기 전에 처음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현재 손에 들고 있는 ‘보존된 영어 성경 본문’에 대한 권위는 ‘사람이 만든 그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점이다. 인쇄공들의 실수로 틀린 데나 고친 데가 있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본문이 망쳐진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앞으로도 사람들은 많은 실수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늘 틀리고 실수하기 쉬운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엄청난 능력과 사랑으로 확실하게 자신의 성경 본문을 보존하실 것이다.
자, 그러면 1611년 당시 인쇄공들의 고충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킹제임스 성경」을 처음으로 인쇄하기 161년 전인 1450년경에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기는 했지만,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을 인쇄할 때 인쇄공들이 사용하던 장비는 인쇄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 비해 거의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인쇄는 여전히 느리고 어려웠다. 모든 활자를 한 번에 한 글자씩 손으로 조판하였으니 -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한 글자씩 조판했음 - 어떤 책에서도 인쇄공에 의한 실수들은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어려움뿐만이 아니라 1611년에 「흠정역 성경」 첫 판을 인쇄했던 인쇄공들은 참조할 수 있는 이전 판조차 없었기 때문에 「흠정역 성경」 초판에는 여러 가지 인쇄상의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런 실수들은 결코 현대 성경 역본 편집자들이 자의적으로 행한 본문 교체와 같은 것이 아니며 단지 단순한 인쇄상의 실수들로서 심지어 현대화된 인쇄기의 이점을 모두 살려 만든 최근의 현대 성경 역본에서조차 이따금씩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인쇄상의 실수였던 것이다. 비록 이런 실수들이 성경을 무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후기 판에서는 이런 것들을 마땅히 정정(訂定)해야 했다.
현존하는 두 개의 「흠정역 성경」 인쇄 원본은 1611년 당시에 인쇄상의 실수 없이 성경을 인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이 두 판본들은 옥스퍼드에서 인쇄되었고 둘 다 같은 해인 1611년에 인쇄되었다. 즉 같은 해에 두 번 출판되었던 것이다. 동일한 인쇄공들이 일을 했고 동일한 인쇄기로 인쇄를 했다. 그러나 이 두 판본을 엄밀히 비교해 보면 본문들 간에 대략 100여 개의 인쇄상 차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알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 비평가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출판되어 온 지난 400여 년 동안 소위 네 번의 개정 작업이 있었다고 억지 주장을 하며 그 결과 본문상의 변화로 간주할 수 있는 약 400여 군데의 단서를 발견했다고 억측을 부린다. 분명히 학자들이 거주하는 마을에는 무엇인가가 심히 부패되어 있다! 자, 이제부터 이들이 주장하는 소위 「킹제임스 성경」 본문상의 개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검토해 보자.
2. 1611년 판 KJV가 네 차례 개정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여기서 언급하는 자료의 상당 부분은 유명한 성경학자 스크리브너(F.H.A. Scrivener)가 「권위역 영어 성경(1611), 그 이후의 재판(再版)과 현대판들」(The Authorized Edition of the English Bible(1611), Its Subsequent Reprints and Modern Representative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책은 그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매우 학자 티를 내는 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1884년에 이 책을 출판한 스크리브너가 1881년도 「영어개역성경」을 만든 위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흠정역 성경」을 최종 권위로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의 책은 「흠정역 성경」을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흠정역 성경」의 개정’이라는 것을 다루고 있는 스크리브너 책의 첫 부분에 들어 있는 상세한 기록은 참으로 놀랄 만하다.
소위 처음에 「흠정역 성경」을 두 번이나 대거 개정했다는 것은 원판이 인쇄되고 난 뒤 27년 안에 일어났다. 독자께서 아셔야 할 것은 그 당시에 영어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케임브리지에서 인쇄된 1629년 판 「흠정역 성경」이 첫째 개정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개정’(revision)이 아니라 단순히 초기 인쇄상의 실수들을 정성껏 고친 ‘교정’(correction)이었을 뿐이다. 1629년 판은 「킹제임스 성경」 원판이 번역된 지 18년 후에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맡았던 워드 박사(Dr. Samuel Ward)와 보이스 박사(Dr. John Bois) 두 사람이 그 판의 인쇄에 직접 참여했다. 원래 번역을 맡았던 이 두 사람보다 더 초기의 실수들을 잘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뒤에 다시 케임브리지에서 소위 ‘둘째 개정’이라 부르는 또 다른 판이 나왔다. 그 때까지 워드와 보이스 박사 모두 살아 있었지만 이때 그들이 그 일에 참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1881년의 「영어개역성경」 편집에 직접 참여했던 스크리브너조차 케임브리지 인쇄공들이 한 것은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이 처음으로 인쇄되었을 때 인쇄공들의 실수로 빠진 단어나 절을 원래대로 하고 명백한 인쇄상의 실수들을 교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시인하였다는 점이다.
뒤에 자세히 기술하게 되겠지만 그 연구에 따르면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서 약 400 여 군데 교정된 것 중 72%가 원판이 인쇄된 지 27년 만인 1638년의 케임브리지 판에서 완료되었다. 그러므로 소위 ‘처음 두 차례의 개정’이라 불리는 것은 사실 초기 인쇄상의 실수들을 정화하기 위한, 두 단계로 구성된 하나의 교정 공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위 ‘마지막 두 차례의 개정’이라 불리는 것들도 철자의 표준화에 필요한 두 단계로 구성된 또 다른 하나의 교정 공정이었다. 이 두 단계 교정 공정의 판들 중 처음 것은 1762년에 시작되어 7년의 기간을 거쳐 완성이 되었고 둘째 것은 1769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인본주의 학자들이 교정판에 번호를 매길 때 한 번보다는 두 번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둘째 공정에서는 본문 교정이 거의 필요치 않았다. 소위 ‘수천 개의 변화’(changes)라 불리는 것들은 이미 확립된 정확한 본문에다 철자가 변함에 따른 형태 맞추기 작업에 불과했다. 즉 철자상의 변화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철자상의 변화는 뒤에 논의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킹제임스 성경」이 ‘네 차례의 개정’을 거쳤다는 것이 한낱 기만행위요, 머릿속에서 지어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만 기억해 두도록 하자.
그러나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많든 적든 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그런 변화들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자, 이제부터 이런 변화들의 특성이 어떠한 것인지 함께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3. 소위 ‘수천 개의 변화’라는 것에 대하여
누군가가 「킹제임스 성경」의 최초 인쇄 원본을 보여 주기 위해 여러분을 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히 여러분은 성경이 전시되어 있는 유리 상자로 가서 유리를 통해 펼쳐져 있는 성경을 들여다볼 것이다. 비록 책장을 넘겨보지 않아도 여러분은 그 성경이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과 매우 많이 다르다는 것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그 안의 단어들을 거의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는 낱말들조차도 아주 이상하게 쓰여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 이전의 관람객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1611년 원판이 인쇄된 이래로 「킹제임스 성경」도 수많은 변화를 겪었구나!”라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바란다! 여러분은 지금 단지 매우 교활한 책략에 의해 조롱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보았던 그 차이들은 실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증거를 조사해 보도록 하자.
● 인쇄상의 변화들(Printing Changes)
엄밀한 검토를 위해 변화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인쇄상의 변화들’, ‘철자상의 변화들’, ‘본문상의 변화들’. 먼저 ‘인쇄상의 변화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611년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사용했던 활자체는 고딕 활자체였다.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에 나오는 영어 단어들의 활자체는 아마도 로마체나 타임즈 로마체일 것이다. 고딕체는 때때로 그것이 독일에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독일체라고도 부른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인쇄기가 발명되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고딕체는 중세기에 손으로 작성한 필사본의 글씨체와 비슷하게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사용되었다. 로마체는 꽤 일찍 발명되기는 했지만 유럽 전역에 걸쳐 가장 유력한 인쇄체가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고딕체는 최근까지도 독일에서 계속 사용되어 왔다. 1611년 당시 영국에서는 로마체가 이미 대중화되었고 곧 고딕체를 앞지를 전망이었다. 그렇지만 원판 인쇄공들은 고딕체가 로마체보다 더 아름답고 표현 능력이 더 풍부하다고 생각했기에 고딕체를 선택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체로 바꾸어야 했고 마침내 1612년에 로마체를 사용한 첫 「킹제임스 성경」이 인쇄되어 나왔다. 그로부터 몇 년 내에 인쇄된 성경들은 모두 로마체를 사용했다. 활자체의 변화는 글씨의 형태나 크기를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성경의 본문을 고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바란다. 그렇지만 고딕체에 친숙하지 못한 현대 독자들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딕체와 로마체 비교>
형태상의 일반적인 몇몇 변화 외에도 몇 개의 특별한 글자의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딕체 s는 대문자로 사용되거나 혹은 단어의 끝에 사용될 때 마치 로마체의 s처럼 보여 문제가 별로 없다. 그러나 단어의 첫머리나 단어의 중간에서 소문자 s로 쓰일 때는 마치 f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also는 alfo가 되고, set는 fet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독일체 v와 u에서 발견된다. 고딕체 u가 로마체 v처럼 보이는 반면에 고딕체 v는 로마체 u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w를 ‘더블브이’라 하지 않고 ‘더블유’라고 부르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좀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익숙해지면 괜찮다. 따라서 1611년 판을 보면 love는 loue로, us는 vs로, 그리고 ever는 euer로 쓰여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 철자상의 변화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활자체의 변화일 뿐이다.
또 다른 예로, 고딕체 j는 i처럼 보인다. 그래서 Jesus(예수)는 Iefus(중간의 s가 f로 변했음에 유의하라)가 되고, joy는 ioy가 된다. 심지어 고딕체 d의 굵은 종선이 뒤에서 원으로 굴려지면 그리스어 델타(δ)와 비슷하게 된다. 이런 철자상의 변화들이 소위 「킹제임스 성경」이 안고 있는 ‘수천 개의 변화’라고 불리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코 본문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다. 이것들은 킹제임스 영어 성경을 공격하는 자들이 우리를 어둠 속에 가두어두려고 사용하는 연막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 철자상의 변화들(Spelling Changes)
「흠정역 성경」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종류의 변화는 정서법(orthography) 또는 철자상의 변화이다.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은 현대 영어가 15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611년경에는 현대 영어의 기본 단어들과 문법적 구조가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철자는 그 당시까지도 확립되지 않았다. 사실 1600년대의 철자는 매우 변덕스러웠다. 정확한 철자 같은 것은 아직 없었고 잘 확립된 어떤 철자 규정 같은 것도 없었다. 어떤 작가들은 종종 같은 책에서, 때로는 같은 페이지에서조차도 같은 단어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모두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1600년대가 철자 표기의 천국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1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단어들의 철자가 정해진 형태를 갖게 되었으며 따라서 18세기 후반에 1611년 「흠정역 성경」의 철자도 표준화되었던 것이다.
현재 여러분이 갖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과 1611년의 인쇄본 사이에 어떤 종류의 철자 변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철자의 차이점을 목록화할 수는 없을지라도 몇 가지 특징은 상당히 공통성을 띠고 있다. 부가적으로 들어간 e들은 종종 feare, darke 그리고 beare 같이 단어들의 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중 모음은 오늘날보다도 더 일반적이었다. 여러분은 me, be 그리고 moved 대신에 mee, bee 그리고 mooued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 자음은 더욱 흔한 것이었다. ranne, euill 그리고 ftarres는 오늘날의 철자법에 따르면 어떤 단어가 될까? 여러분이 맞출 수 있는지 시도해 보기 바란다. 그것들은 오늘날 철자법에 따르자면, ran, evil 그리고 stars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인쇄상의 그리고 철자상의 변화들이야말로 「킹제임스 성경」 안에 있는 소위 ‘수천 개의 변화’라고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어떤 식으로도 결코 본문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솔직히 현시대에 천주교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성경들에서 공공연하게 만들거나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본문 변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 본문상의 변화들(Textual Changes)「킹제임스 성경」도 개정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개정의 예로 제시하는 대부분의 변화들에 대해서는 위에서 충분히 해명을 했다. 이제부터 1611년 「흠정역 성경」의 본문과 현재 발간되고 있는 「흠정역 성경」 본문 사이에 실제로 본문 상의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물론 이 두 개의 본문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들은 결코 개정에 의한 변화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대개 초기의 인쇄 실수들을 정정한 것일 뿐이다. 이것이 사실임을 세 가지로 입증해 보일 수 있다:
(1) 변화들의 특성, (2) 성경 전체를 통한 변화들의 빈도, (3) 이런 변화들이 생긴 때.
먼저 영어 「흠정역 성경」이 처음으로 인쇄되던 때부터 생겨난 변화들의 특성을 알아보도록 하자. 1611년 판 본문으로부터의 변화들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은 이런 변화들의 특성들을 고려해 볼 때 분명히 인쇄상의 실수였다. 그것들은 절대로 성경 말씀의 해석을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본문의 변화가 아니다. 처음 인쇄를 할 때 어떤 단어들은 때때로 뒤집어졌다. 때때로 복수가 단수로 쓰이기도 하고 단수가 복수로 쓰이기도 했다. 때로는 어떤 단어 대신에 그와 비슷한 다른 단어가 대신 들어가 잘못 쓰이기도 했다. 드물게는 한 단어 혹은 심지어 한 절이 삭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략된 것들은 너무나 명백했으며 현대 번역판 성경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리적 차이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진실로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서 인쇄상의 실수들을 정정한 것과 오늘날의 많은 인본주의 학자들이 정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스크리브너는 자신의 책의 부록에서 ‘1611년 KJV 판’과 ‘후기 인쇄본들’ 간의 변형들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나는 다음의 표에 이렇게 정정된 것들의 예를 실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예들은 스크리브너의 저서의 왼쪽 페이지에 나오는 첫째 정정 사항을 연속적으로 취한 것이다. 먼저 ‘1611년 원본’의 본문이 있고, 그 다음에 ‘현재의 본문’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처음 정정된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지금 여러분은 지난 375년 동안 「킹제임스 성경」 본문에 생긴 변화들 중 5%를 보았다. 보아서 금방 판단하겠지만 이것들은 현대 역본들의 본문 변경(alterations)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사실상 인쇄상 실수들을 정정한 것이었고, 그래서 현대판 성경들의 본문 변경과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 다음 표의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그러면 심각한 교리적 차이를 지닌 것이 하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 스크리브너의 부록 전체를 살펴볼 때 그것이야말로 그가 교리의 변경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변경 사항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찾는’(Seek God)이라고 해야 할 곳에서 ‘선(善)을 찾는’(Seek good)이라고 한 1611년 판 「흠정역 성경」의 시편 69편 32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표의 10번). 그러나 이것조차도 정말로 인쇄상의 실수였음을 두 가지로 증명할 수 있다. 첫째로, good과 God의 철자가 유사하다는 점은 피곤한 식자공이 교정쇄를 잘못 읽어 본문에 틀린 단어를 찍을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둘째로 이 실수는 너무도 명백해서 원판이 인쇄된 지 6년 후인 그리고 소위 ‘첫째 개정’이라 불리는 것이 나오기도 전인 1617년에 이미 제대로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1611년 「흠정역 성경」 본문에 여러 차례의 주요한 개정 작업이 있었다는 신화가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있으나, 아직도 조금 더 설명할 것이 남아 있다. 변화들의 특성은 이런 것들이 인쇄상의 실수들이었음을 보여 주며 또한 변화의 빈도 역시 이 사실을 입증한다. 인본주의 학자들은 1611년 판에 만들어진 수천 개의 개정 사항이 마치 최근의 현대 성경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수천 개의 개정 사항과 동등한 것인 양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위 「킹제임스 성경」본문의 ‘수천 개의 개정’이라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은 활자체 또는 철자상의 변화였다. 그 밖의 것들은 분명히 지루했던 초기의 인쇄 공정에 따라 생긴 인쇄상의 실수들을 정정한 것이었다.
위에 제시한 목록의 표본은 스크리브너가 얼마나 꼼꼼하게 모든 변형들을 목록으로 만들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렇게 꼼꼼한 학자가 대단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1611년 「킹제임스 성경」과 현대 「킹제임스 성경」 간에는 단지 400여 개의 차이밖에 없음을 기억하기 바라며 또한 이런 차이점마저도 인쇄상의 실수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1611년에 인쇄된 두 개의 옥스퍼드 판 사이에도 인쇄상의 실수로 서로 100 여 개의 차이가 있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성경이 대략 1,200장으로 되어 있으므로, 1611년 판과 현재 여러분이 구할 수 있는 판과 비교하면 1장당 평균 변형은 0.33개로서 이는 3장 당 1개꼴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런 것들은 ‘chief rulers’를 ‘chief ruler’로 ‘And Parbar’를 ‘At Parbar’로 고치는 것과 같은 변화들이었다.
이러한 변형들이 단순히 인쇄상의 실수들을 고친 것이라는 증거가 하나 더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그것들을 인쇄한 후 매우 빠른 시기에 모두 정정했다는 점이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 변화상의 특성과 빈도는 현대 역본들의 본문 변경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변화들이 일어난 시기 자체가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준다. 400여 개의 정정 사항 중 대다수는 원판이 인쇄되고 난 후 몇 년 내에 이루어졌다. 그 예로 위의 수정 사항 목록을 다시 한 번 보기 바란다. 20개의 정정 사항 중 1 개는 1613년에, 또 1 개는 1616년에, 또 1617년에, 8 개는 1629년에, 5 개는 1638년에, 1 개는 1743년에, 2 개는 1762년에, 1 개는 1769년에 정정되었다. 따라서 20 개의 정정 사항 중 16 개 즉 80%가 1611년의 초판 인쇄 후 27년 내에 정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이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위 ‘킹제임스 성경 개정 작업’이란 것은 결코 오랫동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스크리브너 책의 부록의 다른 페이지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킹제임스 성경」 본문 정정 사항의 72%가 1638년경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킹제임스 성경」 개정에 대한 시비는 있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지만 「킹제임스 성경」 본문 변화는 명백히 인쇄상의 실수에 대한 것뿐이다. 본문 변화의 빈도는 세 페이지당 한 번꼴로 드문드문 일어났으며 본문의 인쇄상 실수들의 75%가 처음 인쇄된 지 27년 내에 정정되었다. 이런 모든 세부 사항은 지난 400년간 「킹제임스 성경」에는 번역상의 오류를 바로잡거나 언어를 현대화시킨다는 의미의 진정한 개정 작업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개정판이 있었다면, 초기 식자 공정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준 판본이 있을 뿐이다.
1611년 「흠정역 성경」의 정확한 본문 - 단어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 에 대한 권위는 결코 현존하는 초판 원본에 있지 않다. 우리가 현재 손에 들고 있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정확한 본문에 대한 권위는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능력에 있다. 우리가 자필 원본이라는 것에 대해 입씨름하며 서로 다투게 될까 봐 자필 원본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번역본 성경의 교정쇄 원본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셨다. 우리의 권위는, 항상 그러하였듯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놓여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주님께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글의 목적은 결코 현대 역본 성경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진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킹제임스 성경」과 관련하여 근본주의 집단 내에 맴돌고 있는 그릇된 주장 즉 학자들이 부풀려 놓은 거짓 신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 주려는 것이다. 그 신화는 다름이 아니라 「뉴킹제임스 역본」 및 기타 그와 유사한 역본들이 1611년 이래로 꾸준히 이루어진 「킹제임스 성경」 개정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다른 개정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론은 곧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고 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킹제임스 성경」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 같은 본문상의 개정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하지만,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네 차례의 주요 개정 작업을 거쳐 본문을 바꾼 적이 없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2012-10-23 11:43:55 | 관리자
Floyd N. Jones 박사님의 책
WHICH VERSION IS THE BIBLE?(Floyd Jones)을 소개합니다.
http://www.amazon.com/Which-Version-Is-The-Bible/dp/0970032803/ref=sr_1_2?ie=UTF8&qid=1343446195&sr=8-2&keywords=floyd+jones
간단 명료하게 성경의 역사와 본문 비평을 보여주며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보여 줍니다.
쉽게 쓰여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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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8 12:29:36 | 관리자
Floyd N. Jones 박사님의 책
RIPPED OUT OF THE BIBLE(Floyd N. Jones)을 소개합니다.
http://www.amazon.com/Ripped-Out-Of-The-Bible/dp/097497546X/ref=sr_1_4?ie=UTF8&qid=1343446195&sr=8-4&keywords=floyd+jones
신약성경에서 빠진 구절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NIV와 비교하므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8 12:31:17 문서자료에서 복사 됨]
2012-07-28 12:25:15 | 관리자
송 형제님!
좋은 분석 감사해요.
샬롬
2012-07-13 11:15:11 | 관리자
네. 저도 궁금했는데 알려 주시면 감사하지요.^^ 참고가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여러 면에서 우리가 기대할 정도의 세밀함은 구조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잘 분별해서 봐야겠습니다. 아마 분별있는 분이라면 영화가 말하는 교훈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7-12 18:40:42 | 김재욱
아래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 제임스 영어 성경 시편 23편의 본문의 일부입니다.
1 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2 2 He maketh me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eth me beside the still
waters.
3 3 He restoreth my soul: he leadeth me in the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4 4 Yea,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thou art with me;
이 영화의 주인공역인 덴젤 워싱턴이 시편 23편을 중간 부분까지 암송하는 장면이 영화 중간에 나옵니다. 저도 이전에 잠깐 글을 썼을 때, 완전한 킹 제임스 성경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확인해 보니 일부분이 변개(부패, corrupt)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쓴 글로 인해 이 영화에 나왔던 시편 23편 부분이 완벽한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생각하게 만든 부분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자유게시판 - 제가 킹 제임스 성경을 믿는 이유)
사소한 부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2절의 maketh를 makes로, leadeth를 leads로, restoreth를 restores로 발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서 3인칭 현재 단수인 경우에는 현대 영어처럼 –(e)s를 쓰지 않고, -(e)th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th가 하나님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공격하는 것처럼 킹 제임스 성경책 자체를 모셔 놓고 숭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킹 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이며, 우리들에게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보존해 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기록된 글자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th의 발음 기호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바로 θ입니다. 수학 삼각비, 삼각함수에서 쉴 새 없이 나타나는 글자(쎄타)입니다. 그리스어에서는 하나님을 데오스(θεός)라고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글자는 그리스어의 8번째 글자이며, 히브리어의 9번째 글자 TETH에 해당합니다. 히브리 글자에 대해서는 시편 119편 65절 약간 윗 부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현대 영어 역본들이 –eth를 –es로 바꿔치기(변개)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탁월함을 여러 각도에서 논증한 게일 리플링거 교수의 ‘In Awe of thy Word’ p.455를 살펴보면, 현대 영어의 –es는 [즈]로 발음되며, 이 소리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buzz)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12:24, 27절에 나오는 바알세붑(Beelzebub)의 –ze-의 발음과도 유사합니다.(파리들의 주, 바알세불은 똥 신이라는 뜻이 있음)
“썩지 아니할(uncorruptible)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3)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corruptible)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incorruptible)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 1:23)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창세기 1장부터 암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명확하게 뉴 킹제임스 역본의 본문입니다.
아래 글은 뉴 킹제임스 역본의 창세기 1:1-2까지의 부분입니다.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우리가 믿는 킹 제임스 성경과 거의 같은 듯하지만, 상당히 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hovering이라는 단어인데,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move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hover는 (허공을) 맴돌다는 뜻으로, 사람으로 치면 자신감이 없거나 수줍은 태도로 주변을 맴돌다는 뜻이 있으며, 물 위를 떠서 달려가는 호버크래프트(hovercraft)와도 관련 있는 단어입니다.
아래 말씀은 킹 제임스 성경의 창세기 1:1-2까지입니다.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2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성령님께서는 뉴킹제임스 역본에서와 같이 그냥 물 위에서 맴도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을 움직이셔서 대언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래 말씀을 보십시오.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 1:21)
For the prophecy came not in old time by the will of man: but holy men of God spake as they were moved by the Holy Ghost.(2 Peter 1:21)
이전에 가족들과 함께 개역 한글판, 개역 개정판 중 여러 부분을 암송한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개역 개정판을 사용하기 전에는 개역 한글판으로 시편 등을 암송했습니다. 그런데, 개역 개정판으로 바뀌면서 같은 구절을 다시 암송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전에 암송했던 개역 한글판과 개역 개정판이 뒤섞이고 헷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바로잡으려면 기록된 성경 본문이 꼭 필요했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의 창세기 암송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뉴 킹제임스 역본 본문과 달리 2절 맨 앞에 and를 추가했고, 중간의 on 대신 upon으로 바꿔 암송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킹 제임스 영어 성경 본문과 뉴 킹제임스 역본의 본문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도 많이 헷갈렸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할 때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 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흠정역 성경의 4중 우수성 –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 부록)
우리 손에 들려 있는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탁월한 문학 작품일뿐만 아니라 법적인 문서입니다. 법적인 문서를 영화의 주인공처럼 암송에만 의존하여 기록한다면, 그 문서는 온전히 보존되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이 너무 어려우시다고요? and가 많이 나오는 글은 영어권에서는 미국 초등학생 수준의 글이라고 하네요.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초등학생 수준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중학생 이상의 영어를 배운 학생, 성인이라면 창세기는 잘 넘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김** 형제님~ 탁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은 형제님의 의견을 반박하려고 쓴 글이 아닌 것,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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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2 16:22:00 | 송호
영어 단어들을 찾으실 때에는 보통 사전에 의존하시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해당 단어를 찾다 보면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단어의 본 뜻이 첫 번째에 나와 있지 않고, 끝 부분의 '고어'라는 형식으로 나오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한영 대역 성경을 보시면서 반복되어 나오는 영어 성경의 단어들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 words)들을 깊이 있게 느끼시는 분들이 더 많이 늘었으면 합니다.
http://kjvbible.net/ 를 주소창에 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예를 들면, 사이트에 접속하셔서 네모 난 창 안에 grace를 넣으시면 신구약 통틀어 160번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찾고자 하는 단어가 굵은 글씨로 표시되기 때문에 구분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단어들까지 섞여 나오는 경우가 있으므로(짧은 단어일수록 그렇겠죠.) 잘 살펴보시면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일뿐만 아니라, 거대하며 탁월한 하나의 영어 사전입니다. 제가 경험한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master(선생, 지배자, 주인)와 minister(사역자, 장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가 보통 어떤 것을 완벽히 알았을 때 마스터했다고 하죠? 또, 미니멈(최소), 미니어처(축소 모형)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느 사전에도 master와 minister를 직접적으로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을 계속 읽다보니 master에서 mas(s)는 '큰 덩어리, 대중'이라는 뜻이고, minister에서 mini-는 '작다'는 뜻이 생각났습니다. master는 자기 자신이 큰 사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minister는 자기 자신이 작은 사람, 곧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장관이 높은 자리인데도 minister라고 부르나 봅니다.
영어 성경을 찾아보시면, 예수님을 Master라고 부르는 사람을 살펴볼 때, 부르는 사람들의 의도나 생각들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을 주님(Lord)이라 불러야 하겠죠?
세상의 사전들, 어원 파헤치기, 파생어 등등이 영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들에만 의존하시다가 학자들이 파놓은 함정, 즉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은 '고어'야. 현대판 쉬운 영어 성경을 써야 돼! 라는 거짓말에 속으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킹 제임스 영어 성경 자체를 검색(search)하시면서 파헤쳐 보시면 어떨까요? 기록된 말씀은 말씀께서 온전히 풀어주십니다. 아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명령하신 말씀이십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Search the scriptures;)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요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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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30 12:44:56 | 송호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교묘한 트릭입니다.^^
처음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보존하며 암송하다가(시편23장) 막판에 와서는 뉴 킹제임스 버젼으로 암송하고 기록으로 보존하게 됩니다.(창세기1장) 결국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이 변개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성경의 완전성과 권위를 의심하게 하고자 함이 이 영화의 진정한 의도라고 보여집니다.
본의 아니게 저희가 재미도 없고 흥행도 안된 이 영화를 홍보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ㅎㅎ
2012-06-30 02:32:31 | 유준호
주의 순수한 말씀들이 그래도 지금 곳곳에서 빛을발하고, 사용되어지고 있고 또 장차 유대인들인 목숨걸고 지킬 말씀이기에 아직도 그 가치는 감히 저하시킬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공부하는 열심이 진짜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킹제임스의 가치를 알게 되면, 이나라가 혹, 마지막때에 쓰임 받을 수도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약성경에서 힐기야왕이 주의 율법책을 다시 발견하고, 그 동안 말씀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돌이켜 기록된 말씀대로 다시 돌아가는 귀한 일이 있었습니다. 혹 하나님게서 우리 한국땅에 마지막대에, 지금까진 혹 개역성경이 뻗어 있었다면, 다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King James Bible) 발견함으로 말씀대로 진정한 진리를 위해 열심을 내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2-06-29 23:50:26 |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