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에서 재창조론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에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 많은 분들이 혼란을 겪으며 궁금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주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같은 성경 신자들끼리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나중에 또 꺼내기보다는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써 봅니다.
저는 이미 재창조를 믿지 않는 것이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는 아니지만 창조과학의 많은 문헌을 보며 설명하고 전달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책임도 있고, 할 말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잘못 보았으면 저서가 아무리 많아도 두려운 마음으로 고치면 됩니다. 성경을 잘못 전달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더욱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므로 나름 깊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재창조를 믿는 분들의 생각을 바꾸고 강요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들도 더 제대로 믿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무엇을 믿든지 서로 타당한 근거들을 가지고 접근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창조든 6일 창조든 친한 분이나 존경하는 지체가 다 그것을 믿으니 자신도 친근함을 느끼고 서로 인정해주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저에게는 재창조 관련 서적 자체가 없었는데, 최근에 얻은 자료 중 게인스 존슨이라는 분이 쓴, 창세기 간극 이론의 비판을 재반박한 책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한 재창조 주장 논리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어 이분의 소책자를 위주로 썼습니다. 재창조를 믿는 또 다른 분들의 견해와 다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분은 젊은 지구 지지자들에게 독설에 가까운 비방을 하고 있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만, 내용만 가지고 몇 가지 주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라킨
클라렌스 라킨은 훌륭한 성경 해설가이며 그의 그림들은 직관적인 시각화로 많은 이들의 성경 이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성경에 100% 다가간 사람은 없습니다. 라킨이 재창조를 믿고 가르쳤다고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http://www.chartgeek.com/wp-content/uploads/2011/08/charles-larkin-1.jpg
이 링크에서 보듯이 라킨은 주의 천사를 날개가 있는 존재로 그렸습니다. 그러면 천사는 날개가 있어야 할까요? 라킨이 틀리고 성경이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날개를 지우고 알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라킨도 기뻐하리라 믿습니다.
성경의 계시는 점진적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지식이 증가한다는 다니엘서의 말씀처럼 지식이 증가하여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파악하는 지혜는 과거의 사람들이 더 깊이가 있고 통찰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명백히 관측되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일은 후대의 사람들이 더 많이 알 수 있고, 축적된 정보와 발달하는 과학이 더 많이 보여 주므로 성경의 사실성을 믿는 믿음의 근거로 삼을 것들이 많습니다.
라킨은 달이나 화성탐사, 나노기술, 원자 현미경, 베리칩 같은 것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가 부실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그가 창조과학을 자기 가르침에 반영하지 않은 것도 시기상 당연한 일입니다.
존슨은 '젊은 지구 창조론’이 탁월한 세대주의 성경 교사 라킨의 커다란 줄기에서 이탈하는 것이고, 킹제임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을 이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라킨은 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짜 이탈은 킹제임스 성경에 없는 것을 장황하게 만들어 '진리'로 칭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 진화론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그것이 성경의 단순한 사실을 알고자 하는 것뿐이지, 진화론의 연대와 맞추려는 시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진심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화석들이 과거 세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아담과 이브는 화석더미 위를 걸어 다닌 것이라고 합니다.
6일 창조 이전에 호미니드(hominid), 즉 완전한 인간은 아닌 어떤 존재가 살았다는 것입니다(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최초의 인간임은 인정함).
아무튼 그 호미니드들이 물에 의해 멸망을 받았고, 그때의 세상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화석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화석이 있는데 인간 비슷한 화석은 전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인류 화석은 모두 원숭이와 유인원이거나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호미니드나 유인원에서 진보한 중간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담 이전에 있던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화석은 당연히 없겠지만, 죽지도 못하는 존재일 테니 떠돌다가 6일 창조 이후의 세상에서 귀신처럼 사람을 거처로 하고 산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돌아가듯 멸망으로 인해 모두 회수된 것일까요? 육이 없는 영적인 존재면 천사와 비슷한 상태인데, 그들에게 땅과 식물과 다스릴 다른 동물이 필요했는지... 왜 그들 때문에 애먼 동식물과 땅이 저주를 받아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의문뿐입니다.
3. 성년현상
간극 지지자들은 재창조론이 지금의 화석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 등에 잘 부합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연대측정법은 가장 나은 방법이지만 오류가 많아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는데요...) 오래전에 묻힌 것으로 보이는 화석 등의 긴 연대가 6천년 이전을 말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해와 달과 모든 동물은 6일 동안 창조된 것이 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태양은 6천년짜리로 보이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성경의 창조는 '성년 현상' 없이 세상의 과학에 부합될 수 없습니다.
존슨은 우주도 6천년이 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수십억 광년 걸려서 다른 별에서 오는 빛은 언제 창조된 것입니까? 이것을 믿으려면 그들이 거부하는 젊은 지구론을 믿는 것과 똑같은 믿음과 근거가 필요하므로 재창조가 지구의 상태를 더 잘 설명한다는 말은 별 효력이 없습니다.
빛의 속도와 우주론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적이 있습니다만, '주께서 정하신 달과 별들을 내가 깊이 생각하오니'라는 구절(시 8:3)처럼 이미 인간이 느낄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물론 간극 지지자들도 성년현상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긴 연대를 지지하는 증거가 지구에 많으니 이것이 재창조의 증거가 된다"는 설명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존슨은 그 옛 세상에 (지금 화석으로 나타나는) 생물들이 있었을 테니 하늘에 햇빛과 구름과 밤하늘의 별이 왜 없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도 지금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세상인데, 하나님이 다 멸하시고 해와 별 등 모든 것을 다시 만드신 것이 됩니다.
4. 공룡과 인간
계속해서 존슨은 과거의 세상에서 인간과 공룡이 함께한 것이 아니라, 공룡이 멸종하고 한참 후에 아담 이전의 인간인 유인원이 번성했다는 설명을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진화론의 이야기와 같은데요, 유인원이 현존하는 하나의 동물인데, 그런 것이 과거 세상의 인간이었다면 모순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6일 창조 이전에는 동물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세상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그저 유인원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공룡은 분명히 공존했고, 함께 찍힌 발자국 화석은 유인원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의 것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룡에 대한 기록과, 그림과 조각을 남겼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많은 증거들이 있으며, 공룡은 20세기에도 여러 번 목격되고 포획되었습니다.
심지어 2012년에는 적혈구와 DNA, 피부조직까지 그대로인 공룡의 살점이 발견돼 <추적 60분>의 원조인 <60minutes>에 실험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습니다(유튜브에 다 공개됨). 아무리 길어도 100만년이면 단백질이 광물화 된다는 자신들의 과학을 무시하고 진화론자들은 6,600만년 전에 멸종한 공룡의 조직이 그대로 남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욥기 38장의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인간이고, 이들이 하나님의 원 창조 때 기뻐 찬양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옛 세상에서 공룡이 창조될 때 인간이 없었다는 주장은 무엇일까요?
5. 다양한 견해
간극 지지자들의 견해는 성경의 여러 구절을 각기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스코필드 성경은 이미 재창조를 참고용으로만 두고 젊은 지구를 채택했지만 과거에는 예레미아 4장 23~26절을 창세기 1장 2절의 재창조 관련 구절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존슨은 그것이 오류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대환난 후 주님 강림과 천년왕국 직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견해들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주장됩니다. 어떤 사람은 스코필드의 재창조 견해를 다 믿고, 어떤 사람은 일부만 믿는데, 과학이 드러난 지금의 스코필드 성경은 재창조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다른 견해가 많다는 것은 그것이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하다는 증거입니다.
6. 하늘들
(벧후 3: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 3: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존슨은 지금 있는 세상이 노아의 홍수 이후가 아닌 6일 창조의 세상 전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기 나오는 '하늘들’을 두고, 노아의 홍수 때는 '하늘들’이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그때 있던 세상은 아담 이전의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이라고 했으니 6절에 있는 '그때 있던 세상'도 '그때 있던 하늘들과 땅들'로 보고 이것이 노아의 홍수 때의 파멸이 아닌 과거 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헷갈리죠?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있던 세상이라고 하면 그냥 그 말만 받아들이면 되지, 알아서 7절의 '하늘들'을 앞 구절에 대귀로 삽입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숨은 그림 찾기도 아니고, 어떻게 이 구절에 과거의 세상을 대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모든 간극 지지자들이 채택하는 근거 구절은 아니었습니다.)
7. 창조과학 비난
위키백과나 네이버 지식인 등에 가면, 아니 온라인 세상 도처에 창조과학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있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거림을 저도 무수히 당하는데, 늘 골치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가장 큰 요지는 창조과학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존 과학을 무시하고 단순히 6천년이니 6일 창조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어느덧 창조과학 진영도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긴 연대를 지지하는 양 모 교수가 학회에서 퇴출되면서 새로운 세력을 만든 것입니다. 학회 내에서조차 겉으로는 젊은 지구론 지지자들에 섞여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대 문제를 애매하게 피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아 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적이고 많은 공부를 한 분들은, 성경을 단순히 믿는 것은 조금 유치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학문이 방향은 다르지만 팩트에 있어서는 더 정확한 결과를 보여 준다고 믿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증거를 댈 수 없는 기원의 문제이며 그것은 믿음에 근거한 하나의 해석 체계이지, 팩트로는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성경 신자들은 성경을 철저히 믿는 분들이지만 화석 문제나 첨단과학을 동원한 연대에 관한 증거들이 믿기지 않을 때 성경이 재창조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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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 본 것들만으로도 재창조론은 혼란스럽습니다.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더 많은 근거가 있을 것이고, 그 이론 중에 잘못된 주장들도 있는데 그것만 봐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간극 진리'라고 부르는 점입니다. 그저 이런 견해, 이런 학설도 있다는 정도를 넘어 이것이 진리라면 우리가 그간 배우고 가르친 많은 것이 다시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미미한 근거로 창세기라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흔들려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창조과학 강의를 할 때 기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불신자가 암흑 속을 걷는 것이라면
창세기를 모르는 신자는 안개 속을 걷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사 11:3)
성경을 바로 보자는 의도이긴 하지만, 사실상 재창조론이 기독교 신앙과 창세기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논의가 단편적인 사실에 관한 논쟁보다 무엇이 진리인지 다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다음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은밀히 진리를 감춰놓는 분이 아니라 밝히 드러내는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땅의 어두운 곳에서 은밀한 가운데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의 씨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를 헛되이 찾으라, 하지 아니하였노라. 나 {주}는 의를 말하며 옳은 것들을 밝히 알리느니라. (사 45:19)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정상적으로 창세기 1장과 2장 읽기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892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2015-03-27 14:18:11 | 김재욱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76
2015-03-26 10:53:2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 ‘창조인가, 재창조인가?’라는 글을 올리며 재창조를 온 세상에 파급시킨 성경이 바로 스코필드 성경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스코필드 성경은 전 세계의 근본주의 성도들이 가장 많이 읽고 사랑한 성경이고 저 역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위키 백과에 가서 보면 알겠지만 이 성경은 1909년에 스코필드가 킹제임스 성경에 주석을 단 스터디 성경이고 근본주의와 세대주의를 파급시킨 유명한 성경입니다. 그 뒤 1917년 판이 나오면서 어셔의 성경 연대를 성경 안에 집어넣었고 이것이 보통 구 스코필드 성경(Old Scofield Reference Bible)으로 불리며 가장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cofield_Reference_Bible
이 성경을 1967년에 옥스퍼드 출판사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조금 현대화하고 몇 가지 주석을 바꾸어 New 스코필드 성경(New Scofield Reference Bible)이라는 이름으로 수정판을 출간하였는데 1917년의 구 스코필드 성경만큼 반응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옥스퍼드 출판사는 2003년에 다시 스코필드 성경 III(Scofield Reference Bible III)을 출간하면서 원래의 킹제임스 성경 본문으로 성경 본문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창세기 1장 주석은 1967년도의 뉴 스코필드 성경 내용을 거의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 1장 2절 주석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창조 과학 입장을 먼저 소개하고 뒤에 간극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에 올려놓은 2003년도 판 창세기 1장을 캡처한 사진의 주석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창조 과학 입장은 ‘Original Chaos interpretation’으로서 그 핵심은 하나님이 창조의 첫 날 지구와 우주 공간을 만드셨는데 그때에는 아직 지구와 우주에 있어야 할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반면에 간극 이론은 ‘Divine judgement interpretation’으로서 원래 구 스코필드 성경이 주장하던 바로 1절과 2절 사이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고 수백 억년의 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 스코필드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기억하는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간극 이론인데 왜 지금은 그 이론을 창조 과학에 의한 주석 뒤로 밀어 놓았을까요? 이것은 결국 간극 이론이 아니라 창조 과학이 맞는다는 것을 스코필드 성경 편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간극 이론과 창세기 6장의 천사에 관한 해석만 빼면 스코필드 성경만큼 좋은 스터디 성경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 스터디 성경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증거들이 창조 과학을 지지하는데 간극 이론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그 부분을 뺄 수는 없고 창조 과학에 따른 주석 뒤에 남겨 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겼을까요?
그 이유는 현시대의 많은 증거들이 창조 과학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에 간극 이론이 나올 때는 진화론에 대항할 무기가 크리스천들에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순순한 의도로 간극 이론을 가지고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미 창조 과학의 많은 증거들 자체가 지구의 생성 연대가 얼마 되지 않음을(Young earth) 확연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지질/화석 체계도 단 하나의 퇴적층을 보여 줍니다. 간극 이론대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멸절하였다면 현재 지구의 화석/퇴적층은 최소한 2개로 확연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간극이론이 역사의 진실이라면 창조 이전의 퇴적층과 또 다른 하나인 노아의 홍수 때의 퇴적층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질학의 증거는 단 하나의 퇴적층만을 보여 줍니다.
다음은 미국에 계시는 이황로 목사님의 편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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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결국 세 판의 스코필드 성경이 모두 판매되고 있고,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목사/성도들은 내용상 대부분 2003년도의 3판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창조가 틀림을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독립침례교회 계통 신학교들의 거의 대부분과 복음주의 크리스천대학교들은 모두 현재 ‘창조 과학’을 믿고 신학생들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학교의 교사로 지원하는 학생들은 필수과목으로 ‘창조 과학’을 이수해야 합니다. 피터 러크맨 계열과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아직도 간극 이론을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구 스코필드 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워낙 많이 팔렸습니다. 그래서 1950년 이전에는 근본주의 진영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간극 이론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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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슈로 인해서 킹제임스 성경 진영이 나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정역 성경의 창1;28 등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기에 사실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오늘도 간단히 적었습니다.
부디 이러한 상황과 저의 마음을 너그럽고 지혜롭게 잘 헤아려 주시길 부탁합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keepbible.com/BQNA01/View/4O2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keepbible.com/Study5/View/3Zr
샬롬
패스터
2015-03-26 10:51:47 | 관리자
'킹제임스흠정역'은 '없음'이 없는 성경이자 하나님의 최종 권위의 성경임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는 분들이 이제와서 왜? '없음'이 있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없음'이 없기에 밋밋해서 내용을 추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간극이론을 지지하게 되면, 창세기 1절과 2절 사이에 원래 있어야 하는 것을 뺀 것으로 보던지 아니면 원래 없는 것에 무엇을 더하고자 하는 의도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지식이나 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가 않습니다.
성경이 더 이상의 것을 말씀하지 않으면 인간은 거기에서 멈춰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인간의 어쭙잖은 지식으로 인류의 6000년의 기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상상력을 더한다면 그것은 지식이라는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종의 선악과일 것입니다.
이론은 가설일뿐입니다. 명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가설을 세운다는 그 자체가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그 중심이 문제인듯 싶습니다. 말씀을 다룰 때는 아래의 말씀을 참고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주장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KJV흠정역] 요한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2015-03-25 21:37:18 | 김상진
저는 물론 성경대로의 창조를 단순하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리고 저뿐 아니라 많은 분이 이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고믿음의 기초로 삼기를 바랍니다.그러나 김** 형제님의 댓글처럼 재창조를 믿는 형제/자매님이라고 해도바른 성경을 알리고 바른 교리를 전파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고영적 갓난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을 일깨워야 한다는논쟁의 여지 없는 시대의 대의(大義)를 위해 동료로서 마땅히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분명한 것은 흠정역 성경이 한국말을 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널리 전파되고 확고하게 뿌리내려야만이 시대의 대의가 실현되어 갈 수 있다는 겁니다.과연 지금 소수의 성경 신자가 이렇듯 대의를 이루어가는 일에 다른 대안이 존재합니까?저는 현재로써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흠정역 성경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상황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지혜롭게 분별해 내야 합니다.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것이 어떤 가치와 신념이건 흠정역 성경을 알리는 사역이 손상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 신자이며 침례성도로서 양심의 자유를 믿음 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 양심의 자유로 인해 반드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 보고 해야 함을 잊지 말고 무엇이 진리이고 더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대의인가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5-03-25 20:45:44 | 김대용
안녕하세요?
요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독자들 가운데 창세기 1장 28절의 ‘replenish’를 ‘채우다’로 번역한 것에 대해 오역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창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심지어 어떤 분들은 대단히 우려스럽게도 책을 쓰면서 이 단어를 흠정역 성경이 잘못 번역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누구라도 사전에 어떤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 편견을 갖거나 세뇌되지 않은 상태로 성경을 평이하게 보았을 때 재창조라는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간단히 보여 드리려 합니다.
앞서 밝힌 대로 흠정역 성경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에 대한 우려와 고심이 있었지만 흠정역 성경 자체가 오역이라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재창조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창1:1과 2절 사이에 수백억 년도 될 수 있는 엄청나게 긴 기간이 들어 있어서 진화론자들의 주장과 성경의 연대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재창조를 주장하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분명히 간극(Gap)이 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자, 이제 마음을 열고 다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창1:31-2:2,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출31:17,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
4. 창1:26-27,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5. 마19:4,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at the beginning)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6. 막10:6,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는 하나님의 7일 특별 창조를 보여 줍니다. 이 특별 창조는 창세기 1장 3절부터가 아니라 1절부터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이 창세기 1장의 모든 일을 요약하고 2절은 그 뒤의 일곱째 날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창1:1의 '하늘과 땅'은 2:1의 '하늘들과 땅'과 동일합니다. 즉 창1:1의 하늘은 셋째 하늘을 제외한 우주 공간을 이야기하며 여기에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있기에 2:1은 그 우주 공간을 구체적으로 하늘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창2:1은 창1:1 이하의 창조 기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기록한 모세는 출20:11, 31:17에서 다시 한 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의 7일 창조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7일 안에 수백 억년이라는 간극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의 하루는 지금의 24시간의 하루입니다.
더욱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재창조가 불가능함을 복음서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위에 있는 막10:6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이 [재창조의 시작이 아니라] 창조의 시작부터 즉 창조가 시작되며 여섯째 날에 지어졌다고 하십니다. 마19:4도 동일합니다.
재창조 논란에 대해 고심하는 분들은 과연 재창조가 역사의 사실이라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창조의 시작을 말씀하시면서 재창조에 대해 일절 거론하시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를 솔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명백한 성경 기록을 두고도 계속해서 재창조를 주장하면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명백한 창조 진실을 두고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분으로 비쳐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창세기 2장 1절은 창세기 1장 1절 이하의 모든 창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백억 년이든 수천 년이든 혹은 심지어 단 하루라도 간극(Gap)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창세기 1, 2장을 편견을 갖거나 세뇌되지 않은 채 읽으면 누구라도 간극이 있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 1장부터 2장 2절까지를 가져다주고 이 창조가 며칠 동안에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금세 답이 나옵니다.
한편 재창조론자들은 렘4:23과 사34:11을 재창조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렘4:23은 창조나 재창조와 무관합니다.문맥을 보십시오.
이것은 유다 민족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23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 24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25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 26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27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온 땅(the whole land)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도다.
비록 23절의 땅이 영어로 earth로서 창1:2와 같지만 그 earth는 지구가 아닙니다. 27절이 그 땅을 ‘그 온 땅’(the whole land)이라고 설명하면서 유다의 온 땅이 심판을 받아 초토화될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런 데서 왜 창조. 재창조가 나옵니까? 여기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서 34장 11절 역시 창1:2에서 사용된 동일한 히브리어가 쓰였다 해도 그 구절은 결코 창조나 재창조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구절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에돔 땅이 영원히 폐허가 되어 짐승들의 거처가 될 것을 말합니다.
11 다만 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그것을 차지하며 또 올빼미와 까마귀가 그것 안에 거하리니 그분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돌들을 팽팽히 드리우실 터인즉 12 그들이 그것의 고귀한 자들을 왕국으로 부르되 거기에 아무도 없겠고 그녀의 모든 통치자들도 없으리라.
편견 없이 이 구절들을 문맥 안에서 있는 그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베드로후서 3장 5-6절을 가지고 재창조를 입증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5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베드로는 전서와 후서에서 지금 있는 세상과 옛 세상(벧후2:5)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5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벧후3:7의 지금 세상은 6절의 홍수 이후의 세상이고 벧후2:5의 옛 세상은 홍수 이전의 세상입니다.
베드로는 재창조를 주장하는 이들의 ‘창조 이전의 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을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심지어 예수님도 그런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지난 80-90년 동안 온 세상에 재창조를 가장 널리 파급시킨 성경은 스코필드 관주 성경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 성경은 대단히 좋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스코필드 성경은 창세기 1장의 재창조를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젊은 지구(Young earth)에 대해 증언하는 창조의 증거들이 넘쳐나서 이제는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인 재창조를 가지고 진화론을 대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많은 성도들이 선한 의도로 재창조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양심의 자유로 선택한 이러한 일에 대해 무어라 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창조 가설 때문에 흠정역 성경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가르침을 지속해서 여러 사람에게 퍼트리는 일만큼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재창조는 성경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문맥에 맞게 읽고 해석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이론입니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인한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 주장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성경 기록을 조합하고 줄을 세워야만 논증이 가능한 가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출한 지혜와 통찰력을 통해 다른 사람이 모르던 성경의 숨은 보화를 캐내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일이라 해도 인위적으로 또는 인간의 욕심으로 성경 해석에 있어 도가 지나친 상상력과 추리를 가미하면 오히려 단순하고도 명백한 성경의 진리가 가려지고 왜곡됩니다. 재창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성경 신자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지 무조건 새롭고 기발한 가르침과 남이 모르는 지식에 열광하며 남보다 우월하다는 지적 자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발 줄과 줄 사이 혹은 구절과 구절 사이의 빈 공간을 읽지 말고 그저 모세가 기록한 대로 창세기 1장부터 2장 2절까지를 편견 없이 단순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직한 분이라면 재창조가 불가능함을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계기가 되면 추후에 이런 증거들을 모아 창조와 진화와 관련된 책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샬롬
패스터
2015-03-25 16:07:57 | 관리자
창25:18의 ‘네가’는 오역인가요?
어떤 분이 흠정역 성경은 ‘네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라는 구절에서 ‘네가’를 첨가했으니 오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흠정역: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수르에까지 거하였는데 수르는 네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서 죽었더라.
개역: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KJV: And they dwelt from Havilah unto Shur, that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and he died 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
NKJV: They dwelt from Havilah as far as Shur, which is east of Egypt as you go toward Assyria.) He died 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
NASB: They settled from Havilah to Shur which is east of Egypt as one goes toward Assyria; he settled in defiance of all his 5relatives. (NASB는 you를 one으로 쓰고는 각주에 원래는 ‘you’라고 기술함)
NIV: His descendants settled in the area from Havilah to Shur, near the border of Egypt, as you go toward Asshur. And 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c all their brothers.
히브리어 원본에는 ‘네가’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모든 역본이 다 ‘네가’를 뜻하는 ‘thou’ 혹은 ‘you’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말대로 ‘네가’를 포함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하지 않은 개역성경 등이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삭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가 들어가면 우리말 어법상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가’를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자기보다 500년쯤에 전에 살던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수르라는 도시가 그때에도 있었고 모세 당시에도 독자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500년 전이나 지금 모세 당시 독자의 시대나 동일함을 보여 주려고 즉 생동감을 주려고 모세는 독자를 지칭하는 ‘네가’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살던 구체적인 독자(수신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글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도 일차적으로 당시 모세와 함께 살고 있던 구체적인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인 성경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네가'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독자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으면 '네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을 성경 본문에서 바로 찾을 수 없기에 오역 혹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번역이라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구절은 창10:9, 10:30, 삼상27:8 등에도 있으며 흠정역은 이것을 다 반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에서 단편적인 생각으로 우리말 어법에 맞추겠다고 임의대로 ‘네가’를 삭제한 성경이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5 15:10:00 | 관리자
주님은 과연 인신(人身) 제사 혹은 인신(人身) 제물을 원하시나요?
어떤 분이 레위기 27장 28-29절을 읽고는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자들은 인신 제물로 드려야 하는지를 묻기에 답을 드립니다.
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봉헌한 것 즉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 중에서 {주}께 전적으로 봉헌할 물건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그의 소유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리니 전적으로 봉헌한 것은 다 {주}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29 전적으로 봉헌된 자 곧 사람들 중에서 전적으로 봉헌될 자는 결코 무르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레27:28-29).
성경을 읽다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나오면 먼저 성경 전체 내용, 즉 구체적으로 성경 66권 전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이해한 상태에서 난해한 구절을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분명하게 아이든 어른이든 죽여서 희생 예물로 드리는 것을 가증한 것으로 여기십니다(신12:30-31; 시106:37-38; 렘7:31; 겔16:20-21). 그것은 고대 가나안 족속들의 마귀 숭배 종교의 예식이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바로 그런 악한 일을 하였기에 주님은 그들을 진멸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전적으로 봉헌되었다’는 히브리말은 전적으로 멸하기 위해 주님께 바쳐져서 무르거나 팔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남녀를 죽이라고 말씀하신 사례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수6:18, 21).
또한 민21:2-3의 가나안 족속 멸절, 삼상15:21의 아말렉 족속 멸절 등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사례의 대상들은 하나님의 존엄하신 법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영원토록 그분의 저주 아래 있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바로 ‘전적으로 봉헌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봉헌이라는 말이 주로 주님께 선한 의도도 무언가를 바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조금 혼동이 될 수 있고 사실 영어의 devote도 그런 뉘앙스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의 devote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그냥 전적으로 드려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한 짐승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사사기 11장의 입다의 딸의 예를 들며 입다가 자기 서원을 지키기 위해 자기 딸을 죽여 인신 제물로 드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입다의 딸은 인신 제물로 바쳐진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자를 알지 아니한 채 처녀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http://keepbible.com/Study5/View/3Zh
성경을 읽다가 어려움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성경 66권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뒤 책들을 읽고 조금 깊게 생각하면 바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0 16:37:58 | 관리자
열왕기하 8장 21, 23, 24절의 요람은 여호람이 아닌지요?
아닙니다. 그대로 요람으로 두어야 합니다.
왕하8:21은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이에 요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가서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족속과 병거의 대장들을 치니 백성이 도망하여 자기들의 장막으로 들어갔더라.
개역: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갔더라
KJV: So Joram went over to Zair, and all the chariots with him: and he rose by night, and smote the Edomites which compassed him about, and the captains of the chariots: and the people fled into their tents.
NKJV: Joram
NASB: Joram
NIV: Jehoram(각주에 원래 히브리말은 Joram임)
이런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21, 23, 24절은 분명히 히브리말로 Joram입니다.
그런데 앞뒤 문맥상 그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입니다(16절 참조). 16-24절을 읽어보면 금세 요람은 여호람이 되기도 하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16절에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이 나오므로 이로 인해 조금 혼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개역성경이나 NIV처럼 성경을 바꾸어서 Joram을 여호람이라 번역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두고 요람(Joram)과 여호람(Jehoram)이 같은 사람의 이름임을 이해하면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은 변형이 많습니다. 요람과 여호람이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개역이나 NIV처럼 독자의 이해를 위해 성경 단어를 바꾸면서까지 번역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대로 두고 요람은 여호람으로 불렸다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 신자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19 08:56: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이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다음 기사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774
샬롬
2014-12-20 10:16:54 | 관리자
하늘의 왕국(마.13:31, 마.11:12) 과 하나님의 왕국(막.4:30, 눅.16:16, 요.3:5) 그리고 하늘 왕국(딤후.4:18) 은 한영대역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과 한영성경 개역 한글판에도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2014-09-05 21:20:27 | 김창수
질문: 골리앗의 동생입니까? 골리앗의 아들입니까? 삼하21:19-22와 대상20:5-8은 서로 모순이 아닙니까? 대답: 현대 역본 역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먼저 이 구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시 곱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이 있더니 거기서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동생을 죽였는데 그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또 여전히 가드에서 싸움이 있었는데 거기에 키 큰 자 하나가 있더니 그는 손마다 손가락이 여섯 개요, 발마다 발가락이 여섯 개로 개수가 스물네 개더라. 그도 그 거인에게 태어났더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도전하므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이 네 사람은 가드에서 그 거인에게 태어난 자들로서 다윗의 손과 그의 신하들의 손에 쓰러졌더라(삼하21:19-22).
또 다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이 있더니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의 창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여전히 가드에서 싸움이 있었는데 거기에 키 큰 자 하나가 있더니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스물네 개로 손과 발마다 여섯 개씩 있더라. 그도 그 거인의 아들이었더라.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에게 도전하므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이들은 가드에서 그 거인에게 태어난 자들로서 다윗의 손과 그의 신하들의 손에 쓰러졌더라(대상20:5-8).
삼하21:19와 대상20:5를 보면 엘하난이 분명히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골리앗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자, 살펴보겠습니다.
(1) 삼하21:15-18을 보면 골리앗의 아들인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였으나 아비새가 그를 죽입니다. (2) 또한 십브개가 골리앗의 아들인 삽을 죽입니다.(3) 그리고 19절에는 골리앗의 동생인 라흐미를 엘하난이 죽입니다.(4) 마지막으로 20-21절에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골리앗의 다른 아들이 나옵니다. 그는 손마다 손가락이 여섯 개요, 발마다 발가락이 여섯 개로 총 개수가 스물네 개인 자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그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삼하21:22절은 이 4명이 골리앗의 아들들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삼하21:19절을 보면 엘하난이 죽인 라흐미는 골리앗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것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골리앗은 자기 어머니와의 근친상간(incest)을 통해 이들을 낳았습니다.그래서 이들은 골리앗의 아들이기도 하고 동생이기도 합니다(적어도 라흐미는 그러함).마귀의 자식들이므로 이런 일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성경의 기록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에 시내에서 돌멩이 5개를 가지고 갑니다(삼상17:40).
이것을 두고 어떤 이들은 다윗이 골리앗과 그의 아들들(동생들)을 다 죽이려고 5개를 가지고 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상상의 비약입니다. 삼상17에는 다른 거인들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늘 하던 대로 주머니에 돌멩이를 충분히 가지고 갔을 뿐입니다. 그때에는 5개를 가지고 갔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해석은 상식을 벗어난 근거 없는 해석입니다.
샬롬
2014-06-21 22:16:43 | 관리자
예수님의 탄생일(탄생 혹은 출생 시기 혹은 연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주시면서 예수님의 탄생일이나 아담의 창조 날짜, 아브라함의 출생일 등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리하게 이런 날짜들을 계산해서 정하려는 노력은 사실 불필요하며 많은 경우 상상의 허구 속으로 사람을 인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죽을 때 직접 그를 묻으셔서 아무도 그의 무덤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신34:5-6). 그의 무덤이 알려지면 무덤을 순례하며 기념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분의 탄생일을 알면 그 날을 절기로 지키려고 애쓰는 종교인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 확실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공식적으로 이날을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사실이 중요하지 정확한 날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많고 미약한 성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그래도 날짜를 알면 그 날을 좀 더 귀중하게 또 거룩하게 여길 수 있으므로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것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예수님의 탄생일을 추정하고 그렇게 믿고 기념하게 하는 종파들도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 카톨릭 교회일 것입니다. 이교도들의 문화를 수용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고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상식이 있는 성도라면 12월 25일이 진짜 성탄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교회에서는 이런 절기를 지키는 자들이 참된 성도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합니다.
주 예수님의 탄생일은 이처럼 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추정하여 지키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여러 이론을 들어보고 그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이론을 선택하고는 만족해합니다. 또 그런 날을 기념하려고 노력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도가 다 헛됨을 알고 있지만 그중에 어떤 분들은 거의 아무 근거도 없이 특정일을 정해 기념하려고 하기도 하므로 오늘은 대략적인 예수님의 출생일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라는 사람이 양력 5월 14일(혹은 20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이었다고 이야기했으므로 그 날이 탄생일이며 1995년 5월 14일이 예수님의 2,000번째 생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1967년의 ‘6일 전쟁’ 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날을 예루살렘의 날이라고 지정하여 기념하는데 바로 그 날이 예수님의 탄생일인 5월 14일이므로 얼마나 하나님의 역사가 신비하냐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현시대의 어떤 사건을 과거의 무언가와 연결시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증거는 그분의 탄생일이 5월 14일(혹은 20일)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성도들은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 - 대개는 선한 의도를 가진 분들 - 이므로 아무 생각 없이 이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5월 14일(혹은 20일)을 조촐하게라도 기념하자고 하면 따르려고도 합니다.
이 글은 성경 공부 차원에서 이런 주장이 옳지 않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지 결코 성탄일을 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구글에 가서 ‘Jesus birthday’라고 치면 여러 가지 글이 나옵니다. 이 중에는 성경적으로 상당히 신빙성이 높은 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통해 어떻게 성경을 공부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이런 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http://www.hebrew4christians.com/Articles/Christmas/christmas.html
위의 글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근거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성경 신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 추론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나온 날짜 역시 추정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적은 것은 헛된 상상 속에서 헤매는 이들이 있기에 최소한 이런 정도의 추론 과정을 거치면서 성경을 연구해야 함을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기사를 보면 예수님의 출생은 침례자 요한의 출생과 6개월 간격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의 출생 시기를 알면 예수님의 출생일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1장에서 침례자 요한에 대해 살펴봅시다. 5절에 보면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계열에 속해 있었습니다.
5 유대 왕 헤롯 시대에 아비야 계열에 사가랴라는 이름의 어떤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아론의 딸들에게 속하였고 그녀의 이름은 엘리사벳이더라.
23-24절을 보면 사가랴는 직무 수행을 마친 뒤 집에 갔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곧 수태하였습니다.
23 그가 자기 직무의 날들을 다 마친 뒤 곧 떠나서 자기 집으로 가니라. 24 그 날들이 지난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르되,
26절 이하에 보면 엘리사벳이 수태 후 여섯 달이 지난 뒤 마리아가 예수님을 수태하였습니다.
26 [수태한 이후로]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에 의해 나사렛이라 하는 갈릴리의 도시로 보내어져서 27 다윗의 집에 속한 요셉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더라.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의 탄생일은 사가랴가 직무를 마친 뒤 약 280일(유대인들의 음력으로 약 10달) 뒤이고 예수님의 탄생일은 사가랴의 직무 수행 후 약 16달 뒤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사가랴가 직무를 수행한 날만 알면 두 분의 출생일을 성경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 다윗 왕의 통치 말기에 제사장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모든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동시에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제사장을 24 계열(그룹 혹은 개역성경의 반열 혹은 반차)로 나누어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습니다(대상28:11–13). 대상24:1-19는 이렇게 구분된 24 계열의 제사장들의 명단을 보여 줍니다.
7 이제 첫째로 제비 뽑힌 자는 여호야립이요, 둘째는 여다야요, 8 셋째는 하림이요, 넷째는 스오림이요, 9 다섯째는 말기야요, 여섯째는 미야민이요, 10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19 이와 같은 순서로 그들이 {주}의 집에 들어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조상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의 밑에서 자기들의 관례대로 섬겼더라.
이처럼 구분된 24 계열의 제사장들은 안식일부터 그다음 안식일까지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성소에서 섬겼고 나중에는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대하23:8).
그러나 유대인들의 삼대 절기인 유월절/무교절 기간, 오순절 기간, 그리고 초막절(장막절) 기간에는 어차피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에 가야 했으므로(신16;16) 모든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서 제사장 직무를 행했습니다. 이 삼대 절기에는 율법에 따라 모든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야 했으므로 많은 수의 제사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달은 음력으로 계산되어 월삭(초하루)에서 다음 월삭까지가 한 달이었습니다. 이 음력의 달은 각각 29일 반이었으며 그래서 한 달은 30일, 그다음 달은 29일로 교대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30일이 되는 달은 완전한 달이고 29일이 되는 달은 불완전한 달로 불렸습니다. 음력의 열두 달은 354일 6시간이므로 유대인들의 한 해는 태양력의 한 해보다 12일 적습니다. 춘분과 추분을 회복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은 3년마다 베아달 즉 ‘둘째 아달’이라는 열셋째 달을 첨가하였고 이렇게 하면 그들의 음력과 현재의 태양력이 거의 일치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음력의 달들을 쓰고 우리는 태양력의 달들을 쓰므로 서로 잘 일치하지 않지만 대개 그들의 첫째 달인 니산(아빕) 월은 지금의 3월 말에서 4월 초에 해당하며 다음은 구체적으로 유대인들의 달과 현재의 달을 비교해서 보여 줍니다.
유대인들의 열두 달
1월: 니산 혹은 아빕(현재의 3-4월, 출12:2; 13:4; 에3:7)2월: 시브 혹은 이야르(4-5월, 왕상6:1) 3월: 시반(5-6월, 에8:9) 4월: 담무스(6-7월, 겔8:14) 5월: 아브(7-8월) 6월: 엘룰(8-9월, 느6:15) 7월: 티쉬리 혹은 에다님(9-10월, 왕상8:2) 8월: 불(10-11월, 왕상6:38) 9월: 기슬래(11-12월, 슥7:1) 10월: 데벳(12-1월, 에2:16) 11월: 스밧(1-2월, 슥1:7) 12월: 아달(2-3월, 에3:7)
따라서 유대인들은 정상적인 해에는 일 년에 50.6주(반올림하여 51주)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24 계열로 구분된 제사장들은 1년에 두 번(전반기와 후반기에 각각 한 주씩) 의무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삼대 절기에는 관례에 따라 모두가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정상적인 해에 51주 직무 수행이 완료됩니다. 윤달이 있는 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의 직무 수행에 대해서는 위키 백과 등의 자료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en.m.wikipedia.org/wiki/Priestly_divisions
http://www3.telus.net/public/kstam/en/temple/details/priest_service.htm
따라서 1월부터 각 계열(반열)의 제사장들이 섬기는 순서는 아래 도표와 같았습니다(제사장의 이름은 대상24:1-19 참조 바람).
히브리 달력 1월
(니산 혹은 아빕)
2월(시브)
3월(시반)
첫째 주
1. 여호야립
4. 스오림
전체(오순절)
둘째 주
2. 여다야
5. 말기야
8. 아비야
셋째 주
전체(무교절)
6. 미야민
9. 예수아
넷째 주
3. 하림
7. 학고스
10. 스가냐
이 표에서 보듯이 아비야 계열(반열)에 속했던 사가랴는 셋째 달인 시반 월의 둘째 주에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 뒤 그달 중순경에 귀가하였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바로 그때에 침례자 요한을 수태하였습니다. 따라서 침례자 요한의 탄생일은 히브리 달력으로 ‘셋째 달 중순 + 임신 기간 열 달(음력) = 열셋째 달 중순경’이며 이것은 곧 그다음 해 첫째 달 중순경입니다. 이때는 히브리 달력에서 첫째 달인 아빕 월 또는 니산 월의 중순경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곧 유월절(14일)을 포함하는 무교절 기간의 어느 날입니다.
예수님은 침례자 요한보다 여섯 달 늦게 수태되셨으므로(눅1:24–27) 그분의 탄생일은 침례자 요한의 탄생일보다 여섯 달 늦게 되므로 히브리 달력에서는 그 해 일곱째 달 중순경이 됩니다. 히브리 달력에서 일곱째 달인 티쉬리 월 중순은 유대인들의 장막절(초막절)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일이 지금의 태양력으로는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있는 장막절쯤임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침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아비야 계열의 제사장 직무를 유대인들의 달력에서 셋째 달 둘째 주에 수행한 것에 근거하여 추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24 계열의 제사장 직무는 1년에 전반기에 한 번 후반기에 한 번 총 두 차례 돌아오므로 사가랴는 그 해의 후반기에 34번째 주에 직무를 수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즉 24 계열의 제사장들은 그해 전반부에 한 주씩 24주 동안 직무를 수행하고 또 모두 무교절과 오순절에 걸쳐 두 주 동안 직무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나서 후반부가 되면 아비야 계열은 여덟째 주에 직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후반부 직무 수행 주는 24주+2주+8주=34번째 주가 됩니다. 이 경우 침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은 위의 경우에 계산된 날짜에 24주를 더한 날에 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침례자 요한은 장막절을 지키는 시기에, 그리고 예수님은 무교절을 지키는 시기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경우 예수님의 탄생일은 3월말에서 4월 초가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요?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 반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배반당하고 처형당하신 마지막 유월절을 포함하여 네 번의 유월절이 나옵니다(세 번은 확실하고 한 번은 추정 가능함). 이 네 번은 정확히 3년을 뜻하고 첫째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예비 사역을 약 반 년 동안 하신 것으로 보이므로 그분의 사역은 서른 살이 되시던 해 장막절(지금의 태양력으로 9월 말-10월 초)에 시작되어 3년 반이 지난 유월절(3월 말-4월 초)에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 성경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수님의 출생이 장막절 즈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1. 요1:14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거하다’로 번역된 그리스말은 ‘장막을 치셨다’는 뜻이며(tabernacled) 그래서 예수님이 장막절(feat of tabernacle)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2. 유대 땅의 늦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은 상당히 추우므로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들에 둘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기록에 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밤에 밖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눅2:8). 그러므로 이런 정황으로 보아 예수님은 유월절 부근이 아니라 장막절 부근에서 출생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3. 예수님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예루살렘에서 왕국을 세우실 때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반드시 장막절을 지켜야 합니다(슥14:16-19). 이런 면에서 장막절이 그분의 출생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사실 장막절은 기쁨의 절기요(눅2:10), 이방 민족들을 위한 절기입니다(눅2:31-32).
4. 침례자 요한의 탄생일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이 행하는 유월절 의식에서 고려할 것이 있습니다. 유월절 의식에서 유대인들은 다시 올 엘리야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엘리야(말4:5–6)가 유월절에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신약성경은 침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왔다고 합니다(눅1:17). 따라서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온 침례자 요한은 유월절에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장막절에 탄생하셨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런 연구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추정 가능한 날짜를 공부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어떤 확실한 도움을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도 상식과 논리를 가지고 이런 문제를 대해야 함을 배웠을 뿐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일이나 아담의 창조 날짜 등에 아무 가치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할 수는 있으나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이런 날짜들은 확고하게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날짜를 정하는 일에 과도한 시간을 투자하거나 어떤 사람이 정한 날짜를 기념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전혀 합당치 않습니다. 이렇게 날짜를 정하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같은 사이비/이단들에게 기독교가 잘못되었다는 공격의 빌미를 줍니다.
http://cafe.naver.com/kobi9702/210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일 자체가 믿음의 행위가 아닙니다.우리는 보는 것으로 걷지 않고 믿음으로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고후5:7)
2014-05-29 10:12:47 | 관리자
참고로 수요일 처형에 대한 요약은 다음 링크에
PDF 파일로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0
2014-05-08 16:42:43 | 관리자
예수님이 죽으신 날과 부활하신 날: 밤낮으로 사흘, three days and three nights(부활 시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이 죽으신 날과 부활하신 날이 언제인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 나온 개신교회는 대개 전통에 따라 예수님이 금요일에 죽으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요나의 사건을 언급하며 그분께서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속에 있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므로 일단 그분은 금요일에 죽으실 수 없습니다.
38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의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거늘 3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40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12:38-40).
또한 예수님은 구약의 예표를 100% 그대로 성취하셔야 하므로 유월절 어린양으로 유월절인 1월 14일에 죽으셔야만 합니다.
구약 출애굽기 12장에 가서 유월절 어린양을 예비하고 죽이는 규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1월 10일에 어린양을 준비하고(출12:3) 14일이 될 때까지(출12:6) 즉 13일이 끝나는 저녁까지 흠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에 그 어린양을 죽이고 구워서 먹고 피를 문기둥과 인방에 뿌려야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1월 10일 즉 보통 종려주일이라 불리는 날(일요일)에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바로 이날 그분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자신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제시하셨습니다. 바로 이때가 다니엘의 70이레 중 69이레 즉 483년이 성취되는 때입니다(단9:25-26).
우리 주님께서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자신이 돌아보는 그 날(day of visitation)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을 저주하셨습니다(눅19:41-44). 그리고 그 사흘 동안 예수님은 유대인 지도자들과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그들을 정죄하셨습니다(마23). 하지만 그 사흘 동안 아무도 그분에게서 흠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마22:46). 그런데 유대인 학자 에더샤임 등의 증언으로는, 예수님의 출생 전에 유월절 풍습에 조그만 변화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에 어린양과 누룩 없는 빵과 쓴 채소를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였고, 무교절이 시작되는 15일 저녁에 성대한 만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14일이 예비일(Preparation day)이라 불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14일이 끝나고 15일이 시작되는 저녁까지 무교절의 큰 만찬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무교절이 시작되면 15일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15:42, 눅23:54, 요19:31 등은 모두 예수님께서 예비일에 즉 14일(유월절)에 죽으셨다고 기록합니다. 마27:62는 십자가 처형 다음날이 곧 예비일 다음날이라고 하며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즉 사복음서가 다 이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14일이 시작되는 저녁(13일이 끝나는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그 밤에 붙잡혀서 유월절인 14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에 달리신 후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1월 10일에 선택되어 사흘 동안 검사를 받고 14일에 죽으시며 성경 기록들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1월 14일(목)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려 오후 3시에 죽으시고(마27:1-2) 무덤에 들어가신 뒤 1월 17일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1절은 그 목요일 다음에 온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이루어지는 평상시의 보통 안식일이 아니라 큰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런즉 그 날[십자가 처형일]은 예비일이므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그 몸들을 십자가에 남겨 두려 하지 아니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고 그 몸들을 치워 달라고 간청하니 (이는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기 때문이라.) 즉 15일(금요일)은 큰 안식일이고 16일은 늘 지키는 평상시의 토요일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토요일 저녁부터 주의 첫날인 일요일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은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위의 그림에서 유대인들의 날은 저녁부터 시작됨에 유의할 것).
이것은 눅24:13-35에 있는, 엠마오 마을로 가던 제자들의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이시라고 믿었노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오늘은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요(눅24:21)
여기서 뒷부분은 영어로 “to day is the third day since these things were done.”입니다. 여기의 since는 ‘이후로’를 뜻하므로 그들은 이 모든 일(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진 이후로 셋째 날인 일요일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 모든 일(십자가 처형)이 일어난 뒤 금요일은 첫째 날이고, 토요일은 둘째 날이며, 일요일은 셋째 날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three days and three nights)이라는 구절에 매여 예수님은 무덤에 72시간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수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신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예수님이 토요일 오후 3시에 부활하셔야만 합니다. 그때가 바로 72시간이 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엠마오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이 있은 지 넷째 날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처럼 주님께서 목요일 3시에 돌아가셨다가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으로 이해하면 그분께서 무덤에 계신 기간은 72시간이 아니라 63시간이 됩니다(현대 달력으로 목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목요일 저녁 6시부터 금요일 저녁 6시까지 24시간(유대인들의 금요일, 큰 안식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24시간(유대인들의 토요일 안식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일요일 새벽 6시까지 12시간).
그래서 이 기간이 72시간이 아니므로 틀린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이 셋째 날 부활하신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으므로 수요일 십자가 처형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마16:21; 17:23; 20:19 등 14구절). 또한 에스더기 4장 16절과 5장 1절은 세 날(three days)이 꼭 72시간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거기의 세 날은 셋째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저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1월 14일(목) 오후 3시에 죽으셨다가 1월 17일(일) 새벽 6시에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이 경우 14일 오후 3시부터 오후 6시까지를 한 낮 즉 ‘one day’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정확히 ‘three days and three nights’ 이후에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됩니다. 따라서 무교절의 안식일 이후에 오는 초실절(day of firstfruits)은 1월 17일이 됩니다.
금요일 처형의 경우 엠마오 제자들이 주님을 만난 것은 이 모든 일이 있은 이후로 둘째 날이 되므로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맞지 않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에서 조금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이렇게 믿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 이처럼 생각을 정리하여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의견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예수님의 출생일, 출생 연도, 처형일, 부활하신 날을 정확히 기술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데이터는 하나님의 비밀인 것 같습니다. 다만 확신을 가지고 믿는 바를 잘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이 문제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4-05-08 16:39:59 | 관리자
과연 예수님은 선한 분이 아닌가?
마태복음 19:16-17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해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16 ¶ 보라, 어떤 사람이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이까? 하매 17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다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 하시니
17절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어떤 분들이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갔더니 거기에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가 있어서 가져다가 읽었다고 합니다.
이 책자의 저자는 “예수님이 자기는 선하지 않다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선하다고 했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그 저자의 주장이 맞는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성경적으로 바르게 설명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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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땅에서 이슬람의 포교 활동이 매우 거세고 활발합니다.이들은 성경의 진리를 뒤엎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유치한 책자를 만들어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책자를 접할 때 이들의 포교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이들의 주장대로 선한 분이 아닐까요?먼저 성경 기록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10장 11-14절에서 그분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무려 3번이나 말씀하십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거니와‥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
그러므로 마태복음 19장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응답은 결코 자신이 선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며 선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행한 일들은 모두 다 선합니다.
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31 이에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 다시 그분을 치려 하거늘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나온 많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일들 중의 어떤 일 때문에 너희가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하시매 33 유대인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니라, 하매(요10:30-31)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의 감추어진 내면의 위선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단지 사람으로만 생각하면서도 하나님께만 속하는 호칭을 내게 붙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런 호칭을 내게 붙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너희 유대인들이 그런 마음으로 이런 호칭을 쓸 때에는 거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록 그 호칭이 내게 적합하지만, 너희는 그 호칭의 참된 의미대로 무한대의 완전함을 가진 분, 즉 신성을 가진 하나님으로서의 의미로 그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너희는 단지 내게 아첨하려고 그 호칭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너희 마음이 시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첨하려고 아무 뜻도 없이 하나님께만 속하는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자신의 선한 속성이나 신성을 부인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은밀한 속 중심을 살피시는 예수님께서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께 속한 호칭을 사용하여 아첨하려는 이 사람을 반박하고 그 위선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교훈을 주십니까?“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바로 유일하게 선한 이 즉 하나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사실 하나님만 선한(good) 분일까요?아닙니다!
성경에는 사람들 중에도 선한 자들이라고 불린 여러 명의 기록이 나옵니다.
20 이로써 네가 선한 자들의 길로 걸으며 의로운 자들의 행로들을 지키리니 21 이는 곧바른 자들이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들이 그 안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라(잠2:20-21).
눅23:50은 아리마대 요셉을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행11:24는 바나바를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시37:23; 112:5; 잠12:2; 13:22; 14:14; 미7:2; 마12:35 등은 선한 사람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하나님만을 선하다고 했을까요?그것은 하나님만이 모든 선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의 신성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슬람 소책자의 저자는 성경 문맥에 상관없이 한 구절을 따다가 사람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심지어 “하나님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시14:1).
사실 이런 수법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성경 문맥은 무시한 채 자신들이 필요한 성경의 한두 구절만을 취해서 마치 모자이크 조각을 이어 붙이듯이 자신들의 교리를 위한 체계를 만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영적으로 사악한 무리들이 쓰는 이런 고질적인 수법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해하고 문맥의 흐름에 따라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책자의 저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저질 수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의 본래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선함의 근원인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첨하는 호칭을 붙이는 자에게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 알라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즉 그 알라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하나님처럼, '삼위일체가 아니라 아버지 홀로 존재하는, 성경 기록과 상관없는, 사람이 만들어 낸 짝퉁 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 세 분이 한 하나님이신 참 하나님입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아멘 할렐루야!!
2014-04-25 17:28:56 | 관리자
악한 자의 대언도 맞나요?
어떤 분이 질문을 해서 답을 드립니다.
“요한복음 11장 49-52절에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문맥에서는 예수님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없애려는 바리새인들의 무리가 나오고 그 무리 중에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나와 다음과 같이 대언합니다.
49 …너희가 결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50 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멸망하지 않게 되는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줄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더라51 그는 스스로 이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민족을 위해 죽으실 것을 대언하되,52 그분께서 그 민족만을 위해 죽지 아니하고 널리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함께 모아 하나가 되게 하려고 죽으실 것을 대언하였더라.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의 사람들의 죄를 없애기 위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요?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잡으려 하는 바리새인의 일당인가요?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 장에서 어떤 인물인지 또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악인입니다.그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죽어 민족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고
약 60년이 지난 뒤에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이것을 가리켜 그가 대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그의 말을 후에 살펴보니 그것 자체가 대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악한 자도 사용하여 대언하실까요?
물론입니다.
민수기 24장에서 거짓 대언자 발람이 나옵니다.그는 민24:15-17에서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대언하였습니다.
15 그가 비유를 지어 이르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이 열린 자가 말하고 16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은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지식을 안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본 자, 무의식 상태에서도 자기 눈을 뜬 자가 말하였노라. 17 내가 그를 볼 터이나 지금 보지 아니하며 내가 그를 바라볼 터이나 가까이서 보지 아니하리로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며 이스라엘에게서 한 홀(笏)이 일어나서 모압의 구석구석을 치고 셋의 모든 자녀들을 멸하리로다.
그러므로 악인인 가야바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성경적으로 대언하였습니다.
아마 발람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샬롬
2014-04-24 16:32:16 | 관리자
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 ¶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그분께서 시장하시므로 13 멀리서 잎사귀 달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가셨으나 그것에 이르러 보시니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더라. 14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듣더라.
어떤 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13절을 보면 그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므로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한데 왜 주님은 이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에 잎사귀가 있으면 당연히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으므로 보는 사람을 속입니다.
사실 여기의 무화과나무는 앞뒤 문맥 상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성한 종교 의식은 가득한데 아무 열매도 없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저주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나무는 영원히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그로부터 약 40년 뒤에 저주가 임하여 AD70년에 성전과 나라를 잃고 1948년까지 떠돌아다녔습니다. 이 이스라엘에게는 앞으로 주님의 재림과 함께 왕국의 통치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자체는 영원히 저주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 기사는 위선의 잎사귀가 아니라 진정한 열매를 바라시는 주님의 열망을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7 그때에 그(침례자 요한)가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너희 속으로,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로 있다, 하고 말하기 시작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9 이제 또한 도끼가 나무들의 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느니라, 하니라. 10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1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겉옷이 두 벌 있는 자는 하나도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니라. 12 그때에 세리들도 침례를 받으려고 와서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 하니라. 14 군사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아무도 폭행하지 말고 아무도 거짓으로 고소하지 말며 너희가 받는 급료로 만족하라, 하니라.
샬롬
2014-04-24 16:17:17 | 관리자
사울과 아브엘은 사돈이 아니라 사촌입니다.
2014-04-15 11:53:41 | 관리자
사울의 할아버지는 아비엘인가요? 넬인가요?
이제 기스라는 이름의 베냐민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사대 손으로 베냐민 족속이며 능력 있고 강력한 자더라(삼상9:1).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마아스의 딸 아히노암이요, 그의 군대 대장의 이름은 아브넬인데 그는 사울의 삼촌 넬의 아들이더라.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인데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더라(삼상14:50-51).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대상8:33)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으며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더라(대상9:39).
삼상9:1과 14:50-51을 보면 넬과 기스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비엘입니다.그러므로 이 넬은 사울의 삼촌입니다. 이 넬의 아들은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입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아브넬은 사촌지간입니다.
그런데 대상8:33과 9:39를 보면 넬은 사울의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아들이나 손자 등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르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즉 사울의 할아버지 이름은 아비엘이기도 하고 넬이기도 합니다.즉 사울의 할아버지는 두 개의 이름 즉 넬과 아비엘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할아버지도 넬(혹은 아비엘)이고 삼촌도 넬입니다.
샬롬
2014-04-14 13:48:4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