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0-01-11 11:31:37 | 조두현
소천 기념 예배 1번만 한다. 일단 1번에는 동감이 가는데 그것을 예배라고 해야 할까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두고 두고 생각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2010-01-11 10:13:41 | 관리자
김 형제가 재치있게 글을 쓰는 것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사람을 살리는 글을 더 많이 써 주세요. 샬롬.
2010-01-11 10:10:41 | 관리자
재미있고도 얼른 이해가 가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율법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01-10 13:08:17 | 김재욱
듣자하니 오늘날에도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그 율법주의자들의 후예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명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는데 십계명 중에 왜 안식일만 빼느냐..예수님도 율법을 다 성취하러 오시지 않았느냐,그 법은 네 가까이에 있고 네가 능히 지킬 수 있다고 신명기에 명시돼 있는데 왜 자꾸 불가능하다는 쪽으로만 가느냐..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일부만 예를 든 건데... 성경 구절들을 잇는 논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충분히 생길 법도 합니다)
율법 조항이 "겉보기로 보기에" 얼마나 고차원적이고 좋은 법인지 그쪽으로만 접근하면 영락없이 율법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이렇습니다.제대하고 민간인 된 지가 언젠데 그렇게도 군인 행세하고 싶으면 혼자 그렇게 살면 됩니다.민간인이라도 군대식으로 살면 육신의 건강에 좋으면 좋지 나쁠 것 하나도 없습니다.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주 규칙적으로 살면서 심신 단련하고.. 생필품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치약 하나만 있으면 청소 다 하고.. ^^ 누가 부르면 관등성명 "병장 ○○○!"까지 해 주고..
그런다고 해서 국가에서 군인으로 알아 주는 건 아닌 게 문제일 뿐이죠.국가에서 현역 시절처럼 총기라도 지급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집 근처에 무슨 초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제 총까지 만들어서?? -_-)
더구나 남한테 이런 소리는 더욱 하지 말아야겠습니다.민간인 된 뒤라도 군기 빼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 민간인 신분이 유지되지, 어영부영 굴었다간 다시 군대로 끌려간다거나..민간인이라도 아주 심한 중죄를 지으면 경찰이 아닌 헌병이 와서 잡아간다거나.. 군사 재판에 회부된다거나..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죽을 병을 고쳐 준 의사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환자 시절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부과됐던 행동상의 각종 제약--이것저것 먹지 말고, 매일 무슨 약 반드시 먹고, 무슨 행동 하지 말고...--과 주의사항들을 앞으로도 모두 이행하면서 살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와는 또 반대로, 그런 것들을 이제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을... "앞으로 술 담배에 쩔어서 살아도 되고 진짜 내 마음대로 건강 따윈 내팽개치고 살아도 된다" 와 동급으로 알아듣는 것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멍청한 짓이지요.
그리스도인과 율법의 관계도 바로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바람직하냐 안 하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신분의 차이이고 위상의 차이입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니라 아예 율법을 근본적으로 초월한 법 아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덧..이 글을 쓰고 나서 느끼는 건데,율법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의'는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의'하고 아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요즘 군대가 군대냐? 애들이 다 군기가 빠졌어. 내 때는 말이야.." 이런 식.. ㅡ,.ㅡ;;[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10 09:15:37 | 김용묵
너무나 당연한 내용의 글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후,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저렇게 애곡하고 성대하게 장례식 치러 주길 원하셨겠습니까?
이 글 읽은 지는 꽤 오래 됐는데 이제야 keepbible에서 다시 접하네요. ^^
저희 교회에서는 "소천 기념 예배" 딱 하나만 있습니다.
한편 주일학교 시절엔, 목사님에게서 "크리스천에게는 졸업이 없고 수료만 있다"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마치 크리스천의 삶은 마태복음 1장처럼 '낳고'만 있지, 창세기 5장처럼 '죽으니라'가 없다.. 그런 맥락인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2010-01-10 09:01:02 | 김용묵
옳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잠시 있는 이별을 슬퍼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시신을 무덤에 넣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장례식 모범 절차가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 애곡하고, 제사상을 차리고, 꽃을 바치고 하는 일은 하늘나라에 있는 성도들이 보기에는 참 민망하고 딱한 일이 될 것이며,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2010-01-09 15:41:14 | 김문수
요즘 목회를 하면서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 장례 예배, 추모 예배 등
죽은 사람을 보내기 위한 절차성 예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들은 우리 조상들의 유교 혹은 불교 풍습을 그저 이름만 바꾼 것입니다.
"이런 것이 과연 기독교의 장례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조만간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루어서 교회의 규칙을 세우려고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므로 장례예배가 아니라 장례식이라고 해서 한 번만 예식을 행하는 것이 죽은 자와 산 자들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러던 차에 전주 소망침례교회 목사인 김재근 형제가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내용이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답글도 주세요.
감사합니다.
죽음의 종교와 생명의 종교
기독교와 장례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독교식' 장례의식이라는 것이 참 어색합니다.
조문을 가게 되면 빈소에서 어떤 의식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신앙은 참으로 죽음의 의식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장례식의 종교의식이 실제 죽은 자를 위한다기 보다는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하는 것이기에 '거창'할 수록 보기도 좋고 '위로'도 됩니다.
정말 죽음의 의식은 '죽은 자들'이 거행해야 제격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종교들은 죽음의 의식이 거창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인간의 눈으로만 보자면, 화려하고 거창한 의식속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49재를 거행하고 나니 이제 사랑하는 가족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물을 뿌리고, 목탁을 두드리고, 경을 외우고.....
그렇지만 기독교에는 죽음의 의식이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식 장례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이죠.
우리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장례식과 대면하면 언제나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생명이신 분께서 죽음의 의식을 가르치실리는 만무합니다.
기독교식 장례식을 말하자면, 죽음 앞에 슬퍼하고, 가족을 위로하고, 시신을 장사지내는 일입니다.
시퍼렇게 살아 계신 생명이신 분을 믿고 신뢰하는 신자들은 세상이 만들고 세상이 거기서 이득을 취하고 거짓 위로를 만들고 있는 '죽음의 의식'에 압도당하거나
종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생명이신 분께서 속히 오셔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죽음'에게 죽음으로 응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9 14:37:05 | 관리자
주님의 부활 이후 행적은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분께서 수난을 받으신 뒤에 또한 자신이 살아 계심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시고
- 사도행전 1장 3절
2010-01-09 11:21:30 | 김재근
학구적이고 거룩한 궁금증이 많은 자녀를 두셨군요~^^
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다 잘 있느냐, 하시거늘 그들이 나아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그분께 경배하니 (마 28:9)
또 도마와 같이 예수님을 만져본 일이 나오지요.
단지 마리아는 주님을 동산지기로 알 정도로, 맨 처음 목격자입니다.
그런데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직 내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니까
몸에 손을 댈 수 있도록 하신 일들은 아버지께 갔다 오신 이후임을 알려 주시면 되겠지요.
그 '아버지께 올라가시는 일'을 마지막 승천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게 보면 마리아 이후 사람들이 주님의 몸에 손을 댄 사건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10-01-09 09:48:51 | 김재욱
김형제님의 글을 아이에게 대충 얘기했더니..이러네요. "그럼 도마에게는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의 대답."몰라. 답을 프린트해서 줄테니까 네가 읽어 봐." 이자매님의 글도 같이 프린트해서 줄께요. 답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해결이 되니 참 좋으네요. 아니면, 교회에 가서 바쁘신 목사님들 붙잡고 물어봐야하는데.. 그리고, 그 대답을 아이에게 충분히 전달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런 점에서 이 사이트는 아주 좋은 사이트네요.하하하.
2010-01-09 09:23:31 | 백화자
얼른 생각나는 한 가지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를 읽어 보셨는지요?
합본되기 전에는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다'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이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그분을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요 20 :15~17)
예수님은 더럽혀지지 않은 보혈을 하나님의 보좌에 가져가시기 전이었고 그래서 몸에 사람의 손을 못 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는 피(히 12:22~24)는 실제적으로 하늘에 영원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를 하늘로 옮기시기 위해 승천하셨다는 이야기인데 40일 후의 승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피를 옮기신 후에 다시 오셔서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경배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8:9).
반론이 있는 내용들이지만 이런 강해가 나오게 된 성경적 증거를 자세히 보여 줍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한 시간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밖에 성경에 없는 부분이라면 기록되지 않은 것일 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처음엔 주님을 못 알아 보았듯이
사람들이 모르는 여러 곳에서도 많은 필요한 사역들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들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요 21:25)
2010-01-08 13:21:01 | 김재욱
어제 밤 아이와 함께 요한복음 마지막 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베드로와 함께 물고기도 잡고, 물고기를 구워먹기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 가끔 설명을 해 줍니다.
길게 하면 신경질 내니까(신경질 내는 이유 - 성경읽기를 빨리 마치기를 원하는데, 엄마가 설명을 하니까 길어짐.) 짧게 하지요.
"얘, 이건 부활체에 대한 거야." 부활체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전에
"알아요." 얼른 튀어나오는 아이의 말. 설명 필요없다는 얘기이지요.ㅋㅋ.
그런데, 우리 아이가 자기의 읽을 부분을 읽고 나서는
"잠깐..엄마, 예수님은 왜 제자들 옆에 계속 붙어계시지 도대체 어디를 가시는거예요?"
저의 대답..."글쎄..만나야하는 사람들이 많을터이니.. 이곳 저곳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중요한 시기인데, 제자들 옆에만 계속 계셔야하지 않나요?"
아이는 그 때가 중요한 시기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도대체 제자들 옆에 계시면서 자꾸 가르치셔야지 어디를 다니셨는지..
저의 상상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 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 다니시지 않았을까..상상하는데..
혹, 아시는 분 , 또는 이 부분을 생각해 보신 분... 댓글 좀 부탁합니데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03: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8 13:05:07 | 백화자
당시 원자폭탄의 위력이 그 정도였으니 오늘날 핵무기의 살상 위력은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마지막 날에는 그보다 더 극심하고 무서운 재앙들이 이 땅에 쏟아지겠지요. 핵무기 몇 개만 각 대륙에 떨어진다고 해도 지구상의 생물 3분의 1이 비참한 모습으로 죽는 것은 정말 순간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은 더욱 더 고통에 시달릴 겁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마지막 흰 왕좌 심판 후에는 영원한 불 호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2010-01-08 11:30:04 | 김문수
20세기에 인간이 이뤄낸 위대한 과학 성과 중 하나는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다.학생들이 무려 고등학교나 대학 학부 수준에서 배우는 물리 교재에 chapter가 하나 추가될 정도로, 종전의 고전 역학과는 차원이 다른 지식이 추가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예전에는 미처 상상도 할 수 없던 어마어마한 동력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원자력 발전은 태양에 전혀 근간을 두지 않고 에너지를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20세기 이후에 시작된 찬란한 전기 문명은, 교류 전기의 실용화와 더불어 원자력 발전도 큰 일조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은 이내 핵무기라는 것을 만들었고, 국제 사회 정세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바꿔 놓기도 했다. 예전에는 마음에 안 들면 애들처럼 서로 주먹으로나 툭탁거리고 싸우던 것이, 이제는 총을 손에 쥔 거나 마찬가지가 됐다는 소리이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자국민이 사는 도시에 핵무기를 맞아 본 나라는, 잘 알다시피 전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맞았다. 2차 세계대전의 말기에 유럽에 독일, 이탈리아는 다 항복하고 히틀러마저 제거됐는데 아직 일본만 유일하게 개기고 있어서 저랬다. '무시무시한 폭탄'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린 일본은 왕이 직접 서면으로 연합국에 항복하고, 자기 식민지들에 대한 권리도 일체 포기한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정말 극적으로 끝나고, 우리나라도 일제로부터 해방된다.
아마 우리나라가 이렇게 당했으면 미국하고는 완전 철천지원수가 됐을 것이다. 방사선 피폭은 대물림까지 된다. 그 데미지의 레벨이 6 25 때 무슨 노근리 학살 같은 거하고 비교가 되나?
잘 알다시피 원폭은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 상공에 먼저 떨어졌다. 의역 좀 하면 '귀여운 꼬마애'뻘 되는 길이 약 3미터, 무게 약 4톤쯤 되는 Little Boy 폭탄이 어지간한 여객기 고도와 비슷한 9.5km 상공에서 전투기로부터 투하되었다. 타이머를 걸었는지 뭐 어떻게 activate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폭탄은 한참을 추락하다가 약 550m 상공에서 그대로 펑 터졌다.
수류탄도 그렇고 폭발물은 약간 공중에서 터져야 사방팔방으로 가장 큰 파괴력이 나오는 법. 이 원폭도 일종의 공중 폭발을 일으켰다.
곧바로 눈을 보호하기 위해 가글을 착용한 당시의 전투기 승무원들은 정말 경악할 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을 것이다.이것은 보어, 페르미, 천재 컴퓨터 과학자인 폰 노이만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당대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일본 본토 지형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폭탄을 어디에서 투하하고 터뜨려야 가장 큰 피해가 나오는지까지 계산하여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 첫 실험 대상으로 일본이 선택된 것이다.
눈을 상하게 할 정도의 엄청난 섬광이 비쳤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마어마한 불기둥과 무시무시한 후폭풍. 하늘이 어두워지고 그저 도미노처럼 힘없이 주저앉는 건물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아마 핵실험 촬영 같은 것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zoom 무지막지하게 당겨서, 과장 좀 보태면 천체 활동 관측하듯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히로시마 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죽은 사람 시체 사진을 보니까 거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내지 관동 대지진 학살 사진 수준이었다.
물론 그 며칠 전에 미국에서는 원폭 투하를 예고하고 어서 대피하라는 경고 전단지를 살포하긴 했었다고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설마? 뭐 좀 위력이 큰 폭탄 떨어져 봤자, 늘 하던 대로 방공호로 대피하면 되겠지" 수준이었으며, 결국 원폭에 고스란히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예화는 기독교에서 복음 전할 때 자주 인용,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일본에 대해 완전 몸서리치게 증오하거나 딱히 피해 의식이 있지는 않다. 원폭 맞아서 도시 전체가 저렇게 개떡이 되고 만 것은, "꼬시다 쌤통이다 메롱"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일본이 자기네가 심은 대로 거둔 것이다.
우리한테 한 짓이 얼마인데! 특히 잊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죄악 중 하나는, 관동 대지진 때 민심이 흉흉해지니까 조선인들을 폭도로 몰아서 수천, 수만 명을 다 학살하고, 그걸 일본 경찰과 정부 당국은 일부러 묵인까지 해 준 사실이다. 독립 운동 항일 투쟁을 하던 사람도 아니고 멀쩡한 민간인을! 사태가 수습된 뒤에도 이 학살극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진 쪽은 일본에 아무도 없었다.
외모가 비슷하니까 일부러 한국인이 발음하기 힘든 일본어 단어를 발음까지 시켜서 사람을 죽였으며, 그러다 심지어 몇몇 자국인도 오인 살해 당했다고 한다. 성경에서 사사기 12장 5~6절을 읽어볼 것. 오히려 조선인을 단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야쿠자 같은 조직에서 조직원의 목숨이 위태로우니 애써 숨겨 줬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저런 죄값쯤은 좀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원폭 피해자 중에서도 조선인이 일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언급이나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싹 회피하고, 오로지 핵폭탄을 맞아 자기네가 불쌍한 피해자인 것만 부각시키면서 동정을 호소하고 있으니, 경계해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런 실수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일본 문화 특유의 뱅뱅 돌려 말하는 모호한 표현인데..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실수라고 생각하는 걸까?
'귀여운 꼬마애'를 실은 전투기를 조종한 사람은 폴 티베츠라는 베테랑 공군 조종사이다. 당시 3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대령이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데 일조한 영웅으로 미국 내에서 추앙 받았으며, 나중에 원스타 준장으로까지 진급한 후 전역했다. 그리고 천수를 누리며 굉장히 오래 살다 2007년에 작고했다.그는 2002년이던가 미디어를 통해, 당시의 원폭 투하는 그저 명령에만 따른 것일 뿐 딱히 개인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회고했다.
사흘 뒤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된 원폭은 원판보다 더 뚱뚱하고 위력도 좀더 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평지인 히로시마와는 달리 나가사키는 지형의 기복이 큰 편이어서 히로시마 만한 데미지는 나지 않았다.
핵무기까지 가미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세계 지성인들의 세계관, 인간관은 정말 큰 변화를 겪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아마 성선설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게 됐을 것이고, 이런 과학 기술로 이런 규모의 전쟁이 앞으로 더 터졌다간 진짜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경각심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국가 위의 다른 중재 조직이라도 만들어서 세계 열강이 또다시 이런 끔찍한 전쟁에 도미노처럼 휘말리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명무실하던 국제 연맹도 없애고 국제 연합이라는 조직이 새로 생겼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세상에 전쟁이 없어지지는 않고 있다. 사악한 자에겐 결코 평화가 없다고 말하는 주님의 이사야서 말씀을 기억하자.
어쩌면 6 25 전쟁이 장기화되었다면, 냉전이고 나발이고 없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채 안 지나서 한반도에서 거의 세계 대전급의 피터지는 싸움이 또 벌어졌을지도 모르며, 최악의 경우 핵무기가 또 동원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맥아더 장군을 욕하고 비판하는 진영이 이런 점을 주로 들추곤 한다. 하지만 이런 진영은 그 불행의 근본 원인 제공자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언급이 없고, 저런 식의 주장을 하는 의도가 매우 불순한지라 본인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불순하다.)
사실 6 25도 1951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38선 인근에서의 지겨운 엎치락뒷치락 소모전 위주였기 때문에, 미국도 필요 이상으로 소련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으며 어지간해서는 승산 없는 이 전쟁에서 적당히 손 떼고 싶었을 것이다. 이승만, 맥아더 같은 짝짜꿍이 맞는 꼴통(?)들만이 오로지 북진 통일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박정희 정권은 70년대 말에 우리나라도 전투기와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했다고 선언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국방 과학 연구소 연구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가 북한과 일본, 미국을 상대로 당당히 큰소리 치려면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비명에 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휘소 박사 같은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지 않았다면 한국의 역사가 또 바뀔 수 있었을까? 얘기를 더 하자면 정치성 논쟁이 되므로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다. (그런데 정작 이휘소 당사자는 오히려 유신 독재와 핵무기 개발을 강력 반대했던 걸로 유명하다. 김진명 씨의 소설에 나오는 설정은 허구이다 ^^)
아무쪼록 이 바닥으로 글을 쓰면서 또 느낀 것은, 역시 아는 것이 힘이고 냉혹한 세상에서는 힘이 최고라는 것. 어차피 강자와 약자가 둘 다 시편 20:7 말씀을 모르거나 안 믿는 상황이라면 말이다."무기를 만드는 자는 지배자가 되고 방패를 만들지 않는 자는 노예가 된다는 진리"는 돌도끼로 전쟁을 할 때부터 미사일로 전쟁을 할 때까지 인류문명이 만들어 놓은 진리이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부족해서 양국의 국력 차이가 그 정도이고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일본에 있는 동급의 저질 찌질이들하고 같이 댓글 논쟁, 사이트 DDOS 공격이나 주고받으면서 그게 애국인 줄로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일본으로부터 받아낼 건 비용 대 효율 최대로 받아내고, 말 없이, 모방을 통해 창조를 해 내고, 실력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고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 일본을 가장 수준 높게 이기는 것이다. 일본을 그런 방법으로 이기려고 애썼던 옛날 지도자의 공도 과와 더불어 객관적으로 인정과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덧.
1. 이 글의 전반적인 논조로부터 느껴졌겠지만, 본인은 원자력 발전 찬성이고, 핵무기 개발도 그렇게 반대 안 한다. 남이 만들면 우리도 해야 된다 주의에 가깝다. -_-;; 그깟 인본주의적인 반핵 반전 운동 한다고 해서 세계 평화가 유지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
2. 예전에 김문수 형제님의 글에서 무척 재미있는 견해를 본 적이 있고 본인 역시 이에 공감한다.'북녘'에 대해서 은근히 별로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것... 정말로 반공 교육의 영향인 것 100% 맞다. 통렬한 지적이다. ^^;; 본인은 비록 국민 교육 헌장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때 반공 웅변 대회, <용감한 탈출>-_- 같은 Exodus를 연상시키는 반공 도서 정도는 접했다.
그 후 21세기가 돼서 셋째 하늘이 정말로 우주에서 북극이 향하는 그 방향의 '북쪽'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약간의 culture shock을 경험했다. 진짜다. 어렸을 때의 세뇌는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세뇌되려면 좋은 것에 세뇌돼야 한다.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 교육처럼 말이다.김 형제님의 글에 대해서 한번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갑자기 웬 트롤이 출현해서 분위기가 영 흐려지면서, 미처 반응을 못 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8 09:59:51 | 김용묵
공감합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부질 없는 표현이 생각나네요...
2010-01-07 10:19:16 | 김재욱
좋은 비유입니다. 감사합니다. ^^
2010-01-06 23:55:37 | 조두현
늘 생각하던 주제가 평생을 죽을 고생만 하다가 죽어서도 지옥가는 인생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복음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되겠습니다. 12월 마지막주 정동수 목사님의 "지옥의현실"이라는 설교가 생각이 납니다.
2010-01-06 21:15:05 | 송재근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 지옥에 엄청 많이 간다!"
지난 2003년엔..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한 나머지 세 자녀부터 먼저 떨어뜨린 뒤 자기도 투신 자살한 한 주부의 이야기가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최소한 어린애는 그나마 하늘로 갔으니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죽은 여인은 지금 어디에 있겠습니까?과연 하나님의 판결이 불공정· 가혹· 불의한 걸까요?크리스천들은 이 사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마음껏 누렸던 사람들, 떵떵거고 살면서 나쁜짓 실컷 했던 사람들, 혹은 대중들로부터 아주 좋은 평판 받고 존경 받았던 유명인사나 종교인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 간다고 말하기는 차라리 아주 쉽습니다. 그런 것을 대조하여 복음 전하는 만화 전도지 부류도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만큼이나.. 정말 안쓰럽고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다가 지옥 엄청 많이 갑니다.아니 어쩌면,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지옥 가도 싸 보이는 사람이 지옥 가는 것보다 저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후자가 표본 크기부터가 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크니까요.
특히 안타까운 게 뭔지 아세요?차라리 대놓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개독안티 부류도 아니고,"그래 나는 평생 나쁜 짓 너무 많이 했는데.. 지옥에 좀 가도 싸지""나 같은 사람은 예수 믿을 자격이 부족해" / "좀 나중에 믿을게"
같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자포자기형입니다.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는 타입.너무 죄에 쩔어서 산 나머지, 죄의 결과 때문에 괴로움과 비참한 고통은 실컷 당할 대로 다 당하고도, 죄를 죄라고 보는 감각이 무더져 버린 것입니다.
그 마음 상태야말로 그가 과거에 평생 지은 죄를 합한 것보다 더 큰 죄라는 걸 일깨워 줘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도 못 믿을 정도로 너무 착하고 겸손한 건지... 아니면 그 말 속에.. "그냥 난 그래도 일말의 죄를 즐기며 살래"가 몰래 숨어 있는지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마약 내지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전신이 마비되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뇌 조직이 녹을 때 너무 쾌감이 느껴지니까 "난 이 상태가 좋아" 이러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당신은 지금 중독 상태이고 죽어가고 있으니, 이곳에서 당장 나가서 맑은 산소 공급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리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지옥에 굉장히 많이 간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복음 전파에 소홀해서는 안 되고 자극을 받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 중 하나임을 지난번 이은희 자매님의 간증글을 읽으면서 느꼈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11: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1-06 21:05:44 | 김용묵
정 목사님은 알지만, 관리자 중 한분일수도, 아니면 여러분 중에 한분 일수도 있다 생각했죠. 그리고 중요교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관리자)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은 좀 아니다 싶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저도 좀 과한 댓글 아닌가 싶어서, 한번 더 생각하고 올린 글이고, (알고보니) 정 목사님께서 쓰신 글이었고, 친절하게 댓글을 알아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0-01-05 20:43:33 | 정원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