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6508개
십계명은 열 가지 명령(출 20:3~17)으로, 데칼로그스(Decalogues)라고 하는데, 이 말은 10을 뜻하는 그리스말(헬라어) '데카'와 말을 뜻하는 '로고스'에서 나온 말로서 유대인들은 이것을 '열 가지 말씀'으로 부릅니다.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으로 은혜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십계명의 모든 조항은 첫 사람 아담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양심에 새겨진 도덕 법규'입니다. 넷째 명령인 안식일의 경우, 신약 성도들이 유대인들과는 달리 토요일을 강제적인 안식일로 지키지는 않지만 한 주에 하루를 거룩히 구분하고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되새긴다는 원리로 지금과 동일한 것입니다. -에스라 성경사전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십계명은 초대교회 당시의 유대인들이 구분한 열 가지로 되어 있으나 천주교에서는 다르게 변형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십계명 천주교 십계명  1. 다른 신을 두지 말라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우상을 섬기지 말라     3.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지키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5. 부모에게 순종하라 4. 부모에게 효도하라  6. 살인하지 말라 5. 사람을 죽이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6.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7. 도둑질을 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8.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천주교는 성인 숭배, 유품 숭배를 비롯해 갖가지 우상숭배의 전통들을 가지고 있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 등을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입장이라 둘째 명령을 없애고 대신 열째 명령을 둘로 나누어 아홉째와 열째 계명으로 조작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십계명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명백히 잘못된 종교입니다.  
2014-03-24 09:43:14 | 관리자
아담의 기초 위에서 거듭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느냐? 하는 문제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필라델피아교회는 지난 주에 이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이미 비슷한 설교가 있었군요. 미리 봤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2014-03-16 21:24:54 | 류인선
저도 구원파에 있다가 독립침례교에서 성경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독립침례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아는 구원파 사람들에게 만약 들으려고 하면 같이 성경공부도 권합니다. 하박국과 욥기를 공부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구원파안에서 구원받는 역사를 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먼저 올바른 교리를 알고 배운 성도가 열심히 생활을 안하면 돌들에게도 복음전하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 나쁜 적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현재 독립침례교에 생기는 문제도 이와 같고 저 자신에게 생기는 문제도 이와 같은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2014-03-11 04:01:58 | 백정훈
환난 전 휴거라는 책을 지은 Allen Beechick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제는 연세가 많이 드셨습니다.   http://www.amazon.com/The-Pre-Tribulation-Rapture-Allen-Beechick/dp/0896360407/ref=sr_1_11?ie=UTF8&qid=1394428848&sr=8-11&keywords=pretribulation+rapture   이분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알려드리니 참조하세요.   http://www.rapturesolution.com/ 다음은 kindle용 책입니다.   http://www.amazon.com/Rapture-Solution-Allen-Beechick-ebook/dp/B001T4YUZW/ref=la_B001KMCPCI_1_2?s=books&ie=UTF8&qid=1394428872&sr=1-2   참조하세요.   샬롬  
2014-03-10 14:22:5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미국에는 성경 예언에 대한 분석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예언을 이용해서 돈만 벌기도 하고 헛된 예측을 해서 성도들을 우습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 성경 해석 면에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론을 펴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예측가들을 분석한 자료가 있으니 여기서 +로 평가된 분들의 책이나 글만 읽는 것이 좋습니다.   http://www.soundchristian.com/prophecy/who/ 감사합니다.   샬롬
2014-03-10 14:10:37 | 관리자
요즘 서울 강남에 있는 사랑의 교회에 대한 나쁜 소식이 여기저기서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십일조와 헌금을 제대로 안 하면 교회 생활하기도 어려워질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는 십일조라는 뇌관이 터지면서 크게 위축될지도 모릅니다.  부디 바라기는 대형 교회 목사들이 목회의 본질을 잘 깨닫고 양들을 섬기는 자세로 목회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http://m.shinmoongo.net/a.html?uid=53124
2014-03-10 14:00:01 | 관리자
윗글에 나오는 '가나안 성도'에 대한 기사들이 있어 참조하시라고 링크 주소를 올립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2/2013050203064.html http://www.cchannel.com/news/news_cch_view.asp?seq=0000007468&curpage=1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123804&cp=nv
2014-03-07 20:38:31 | 김대용
요즘 대형 교회 특히 사랑의 교회 관련 글들이 매체에 종종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마도 그나마 개신교계를 인원수와 물량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대형 교회들이 내부의 부패로 인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계는 급격하게 위축되며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부디 이런 일들을 통해 교회를 비즈니스로 알고 사장 행세하는 목사들이 회개하고 또 무지한 성도들이 계몽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음 글은 2014년 3월 7일 자 글이고 저자는 신성남으로 되어 있습니다(목사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음).   모든 교회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3000억 호화 예배당과 중세 삽질의 부활 건물 성장은 교회 성장이 아니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77  글쓴이: 신성남  “이 ‘돈’에 환장한 목사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가난한 목수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느냐. 이 ‘복’에 환장한 교인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를 먹던 세례 요한을 존경한다고 말하느냐. 그리고 이 ‘건물’에 환장한 교회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가정에서 모이던 초대 교회의 그 순수한 신앙을 따른다고 자랑하느냐.”   돈과 세속적 복과 그리고 교회당 건물은 이제 한국교회가 애지중지하는 애완용 우상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사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존경할 만한 목회자와 바른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위의 글은 필자의 진심입니다.   하여튼 바벨탑처럼 높은 아방궁을 하나 세워 놓고 떼로 몰려가서 ‘솔로몬의 성전’이니 뭐니 하며 수선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서, 냄새나는 잔칫상에 부끄러운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고 갖은 교언영색으로 두꺼운 얼굴에 서로 금칠하는 일부 거룩하신 목사님들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군요. 서울에 교회당이 모자라나 몇 해 전 사랑의교회는 장소가 너무 비좁아서 신축한다고 공표했습니다. 그 심정은 필자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처럼 초호화판 아방궁을 세운 것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처음엔 2,100억 원이라고 하던 건축비가 사전에 누구의 승인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려 3,000억 원으로 슬그머니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최종 건축비가 얼마가 될는지는 정말 며느리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요란한 잔치가 대충 끝이 났다면, 이제라도 취기를 좀 몰아내고 옆 동네 미자립 교회들을 한번 가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고작 몇십 평도 안 되는 셋방살이 작은 예배당마저 자리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교회들이 지금 아주 널렸습니다. 즉 현재 서울에는 교회 수에 비해 교인이 부족한 것이지, 결코 교회당 건물이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1960-70년 사이 전체 개신교 교인 수는 412%나 증가했고, 1970-85년 사이에도 103%나 증가했지만, 1985-95년 사이에는 그 증가율이 35%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5-2005년 사이에는 14만 4천 명이 줄어들어 급기야 -1.6%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동안 가톨릭 신도는 무려 220만 명이나 늘어나서 74.4%의 초고속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인 수는 줄고, 자리가 빈 교회들이 매년 늘어나고, 또한 은행 빚을 못 갚아 경매로 넘어가는 교회들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랑의교회는 초대형 신축을 용감하게 단행했습니다. 극심한 건축 반대 여론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자신들만이 바른 교회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 유명한 제자훈련은 도대체 왜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까. 수십 년 동안 훈련을 했으면 이젠 장성한 제자들을 이웃 미자립 교회들에 조직적으로 파송해야 옳지 않으냐는 말입니다. 아니면 실전 배치는 평생 미루고 허구한 날 비대한 몸집만 키우며 끝까지 훈련만 받다가 그냥 편안히 돌아가시겠다는 말인지요.     ‘아방궁’은 중국 시황제가 위수의 남쪽에 세웠던 호화롭고 거대한 궁전입니다. 후궁들의 처소였던 이 왕궁은 수많은 미희들로 가득했으나 그 진나라는 고작 15년만에 멸망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최초로 초호화 성전을 지었지만 도리어 나중에 후궁들에 둘러싸여 음란한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금으로 성전을 치장하고 그 화려함을 자랑했으나 왕과 백성들은 오히려 메마른 광야에서 천막 생활할 때보다 더욱 극심하게 타락했습니다. 어리석고 부패한 인생들이 하는 일이란 늘 이 모양입니다.     결국, 그 크고 화려한 건물들이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오직 여자와 사치와 향락밖에 없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 교회 담임목회자들 또한 간통과 호사와 공금 횡령으로 온 동네 망신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완공된 서초예배당을 보며 ‘일단 짓고 나면 땡이다’ 하며 혹시 기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대단한 착각입니다. 무리한 건축으로 인한 엄청난 은행 빚의 상환 등 진짜 어려움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9천 명이 모이던 제자교회가 담임목사의 부정행위가 들통난 후에는 2천 명 이하로 급감했다는 사실이 그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선 당장 교회의 회복을 갈망하는 ‘마당기도회’에 대한 치졸한 방해와 압력을 즉시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런 난관은 더욱 구체화될 것입니다.     몇 해 전 ‘거룩한 땅 밟기’ 운운하며 새 예배당 부지에 빨간 리본들을 잔뜩 깔아 놓고 서낭당처럼 신성시 하던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기존 강남예배당의 마당을 쓰레기장 취급하며 별로 거룩하지 못 한 행동을 하시는 것인지요. 이젠 그 ‘거룩한 땅’마저 토사구팽을 하시나요. 이는 너무 모순적인 처사가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리 출입문을 용접하고 높은 담을 올리며 갖은 수단 다 동원해도 결국 양들의 의로운 분노를 막기는 힘들 것입니다. 삽질로 망한 중세 교회 사전을 찾아 보니, ‘삽질’이란 말은 ‘쓸모 없는 일을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관용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교회의 예배당 대형화를 통한 건축 경쟁 행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단어는 드물 듯 합니다.     같은 소리음이라도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잘못 사용하면 듣기 싫은 소음이나 잡음이 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와 용도가 적절한 건축은 예술이지만, 실속 없는 허장성세용 건축은 삽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루터의 종교개혁은 사기성 면죄부까지 팔며 무리하게 추진한 초대형 건물 ‘성베드로성당’의 공사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공교회가 저지른 무분별한 건물 삽질의 아주 원조 격인 셈이지요. 당시 교회의 내부는 썩고 또 썩어 있었는데 오히려 외형만 키우고 겉치장에 열을 올린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루터의 그 묵직한 쇠망치가 다시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대형 교회들 현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또 못질해야 정신을 차릴까요.     어두웠던 중세 천 년 동안 그 시대 교회들이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고작 삽질 사역의 유산인 대형 건물들뿐입니다. 이스탄불의 그 거대한 성소피아성당도 이젠 관광용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한 때 융성했던 유럽의 개신교도 형편은 비슷합니다. 큰 건물들만 딸랑 남겨 놓고 지금은 거의 다 망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모텔, 식당, 상가, 그리고 술집 등 다른 용도로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 속의 수많은 교회들은 교인들의 귀한 헌금을 허비하며 이렇게 허망하게 변해 버릴 건물에 열심히 삽질하다가 쫄딱 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건물이 아무리 크고 많아도 교회가 그 본질을 상실하면 언제나 망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사가 보여 주는 냉엄한 진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수의 이름을 팔아 가난한 신도들 장바구니 돈까지 짜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은행 빚까지 돌려 막으며 대형 건축을 하는 행위가 그보다 무엇이 더 나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 한쪽에서는 계속 문을 닫고 있는데 말입니다.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의 푼돈을 걷어 허름한 초막이라도 하나 지은 적이 있으셨던가요.     과연 서초동의 그 무슨 쇼핑몰같이 생긴 사치스런 벽돌 덩어리 속에서 종의 형체로 낮게 오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정신과 가난한 목수의 마음을 진정으로 잘 전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과거 거대한 헤롯성전 안의 상인들처럼 본격적으로 좌판이라도 한번 멋있게 펼쳐 보려는 것인가요.     그러나 그처럼 크고 화려한 성전을 자랑하던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뭐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절대로 잊지 마십시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13:2).”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고상한 아방궁에서 철 따라 냉난방 틀어 놓고 품위있는 예배를 즐기는 동안, 같은 시각 다른 한편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천 길바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힘든 삶을 버티고 있는 줄 진정 알기나 하시는지요.     반면에 사도행전의 성도들은 풍족지 않은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에 먼저 힘을 쏟았습니다. 전도나 선교를 위한다는 허구적인 명분으로 자신들을 위한 대형 예배당 건축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정작 배우고 닮아야 할 것은 초대 교회의 검소한 사역이건만, 많은 대형 교회들은 하필이면 삽질하다 망한 중세 교회를 닮아 가는 짓만 골라서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 경향교회, 제자교회, 왕성교회, 경서교회, 광성교회, 그리고 사랑의교회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십시요.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교회가 ‘물 반, 고기 반’으로 아주 차고 넘칩니다. 이를 보면 배도적인 목사 귀족화, 신도 우민화, 건물 대형화, 복음 기복화, 그리고 교회 사유화에서 자유로운 대형 교회가 요즘 과연 몇이나 되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중세 삽질의 부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려면 ‘왕궁’으로 가야 하고, 선지자를 만나려면 ‘광야’로 가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눅7:24-26).”     예수님과 제자들은 광야로 가셨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틈만 나면 아방궁 같은 건물을 세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바른 교회라면, 신도들이 그 광야에서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들이 아니라 ‘선지자’를 만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요즘 왜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급증하고 있는지 알고나 계십니까. 어떤 교회에는 부드러운 긴 옷 입은 자들만이 설치고, 정녕 선지자는 보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줍지 않은 박사모를 쓴 자들은 넘치는데, 예수님 고난의 가시관은 잘 보여 주지 않습니다. 물질적 축복은 넘치게 노래하는데, 십자가의 도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한 반복성 건물 삽질과 기만적 가르침에 염증이 나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 개신교의 진정한 악성 안티는 일부 무신론적 논객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귀족 교회의 ‘거짓된 목사’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시지만, 이 종교 상인들은 반대로 신도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은 신축된 사랑의교회 서초예배당이야말로 성베드로성당에서 종지부를 찍었던 그 ‘중세적 원조 삽질’의 화려한 부활이 아닌가 그리 의심하고 있습니다. 건물 성장은 교회 성장이 아니다 만왕의 왕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고작 나귀 새끼를 타셨는데, 초대형 건축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은행 빚을 지고 있는 교회의 목사가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기사가 딸린 최고급차를 굴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대형 콘도를 분양받아 골프치며, 비싼 특급 호텔에 가서 운동한다면 이게 정말 종의 모습일까요. 게다가 거액의 두 자녀 유학비까지 모두 교회 돈을 가져다 채웠다고 하는데 정말 듣고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난 것입니까. 모두 순진한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께 바치라고 뜨겁게 설교하고 그 주머니를 열심히 흔들어서 나온 것 아닙니까. 신도들이 무슨 돈 내는 기계인가요. 입만 열면 ‘하나님께 바치라’며 설레발 치던 소중한 헌금을 엉뚱하게 목사가 사치를 떠는 데에 허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담임목사는 한 부목사가 나이 드신 성도들에게 모리배처럼 함부로 반말을 지껄이며 폭력적 언사를 하는 행위도 마냥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부목사는 한 여성도가 집단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도 제지하지 않았다지요. 이처럼 담임목사에게 애완견처럼 충성하는 부목사들 중 상당수가 군목 출신이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군견’도 저런 짓은 안 할 것입니다. 물론 군 사역에 성실히 수고하시는 다른 군목님들께는 너무 민망한 일입니다.     그리고 귀족 목사들 중에는 ‘의전’을 핑계로 최고급차를 굴리는 분들이 제법 많다고 하던데, 이게 종이 할 처신인가요. 하여간에 하늘 아래에 의전이 필요한 종놈이 있다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참된 경건은 눈물 연기와 잔재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진정 자숙하기를 원한다면, 만날 성도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려 하지 말고 목사들부터 손수 그 비싼 차들을 팔아서 실용적인 차로 바꾸고 남은 은행빚이나 조금이라도 더 갚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30년간 영국 교회는 무려 5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약 30% 이상의 교인 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건물 삽질에 비해 신도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 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가 건물 확장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인의 바른 성장입니다. 큰 건물들만 잔뜩 세워 놓고 무너지고 있는 유럽 개신교를 보십시요. 건물 성장은 결코 교회 성장이 아닙니다. 따라서 일부 목회자들은 목사 말 잘 듣고 헌금 잘하는 맹신도를 키워 교회 외형만 확장할 궁리를 행여라도 하지 말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바른 성도를 키우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성전 건축’이라는 기만적 명분을 빙자한 경쟁적 건축을 이제 즉시 멈추기 바랍니다. 건물이나 재력 또는 교세를 자랑하는 교회는 이미 십자가 정신을 상실한 타락한 교회일 뿐입니다.     서초동의 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결코 ‘성전’이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그 아무리 잘난 건물이라도 감히 성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만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삽질로 목회하던 목사님들은 더 이상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라는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요. 목회자로서 그런 거짓말은 면죄부 판매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바르게 성장해야 비로소 진정한 교회 성장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
2014-03-07 18:55:42 | 관리자
오늘 또 이런 글이 들어와서 소개합니다. 사랑의 교회가 소위 목사 찬양가를 만들었다가 폐기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곳곳에서 생기는데 이런 배경엔 성도들의 무지가 큰 몫을 합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바른 성경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며 진리 안에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사랑의교회 '목사님 찬가' 만들어....권사들 반대로 폐기 (국민일보 김지방기자)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175967414&qb=7IKs656R7J2YIOq1kO2ajCDrqqnsgqzri5gg7LCs6rC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xEgJU5Y7twsstzAv3lssssssso-507515&sid=UxmT7XJvLBwAABziCW4   “뜨거운 찬양, 거대한 비전, 따듯한 사랑…” 사랑의교회 ‘목사님 찬가’ 논란    [쿠키 사회]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담임 오정현 목사를 위한 ‘찬가’를 만들었던 사실이 공개됐다.   인터넷 카페 ‘사랑의교회 소통과 회복을 위한 사랑넷’에 최근 한편의 노래 악보가 올라왔다. 제목은 ‘주님께서 세우신 목사님’이었다.     ‘찬양 충만 우리 목사님 하이 프레이즈(Hi Praise) 깊은 기도로 모든 성도 하나되어 주께 영광 찬양드리네. 비전메이커(Vision Maker) 우리 목사님, 창조 은사 아이디어맨, 예배 속에 생기 불어 2007년 부흥 기대해.’   여기까지가 1절 노랫말. 후렴구는 이랬다.   ‘목사님 뜨거운 찬양, 목사님 거대한 비전, 목사님 순수한 열정, 목사님 따듯한 사랑, 주님께 감사해 주님께 감사해 주님께 감사드리세.’   모두 3절까지 있는 이 노래에는 ‘2006년 스승의 날 축복송’이라고 표시돼 있다. 이 노래는 2006년 스승의 날 때 사랑의교회 성경공부 모임을 이끄는 ‘순장’들의 모임에서 악보가 배포돼 실제 연습까지 했으나, 일부 명예권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가 항의하는 바람에 실제 교회 공식 순서에서 불리진 않았다고 한다. 이 악보를 공개한 이는 순장 모임의 임원들이 나서서 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사랑의교회 당회는 지난달 30일 오 목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스웨스트대학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했다. 최근 노스웨스트대가 ‘오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학위 수여는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식 의견을 전해온 바 있다. 오 목사는 표절 문제에 책임을 지고 지난 3월부터 6개월 간 주일 설교를 중단한 상태다.   사랑의교회 부교역자들은 “불과 90 여일 앞으로 다가온 서초예배당 입당과 교회의 질서와 화평의 회복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당회장권이 원활히 수행되어야 할 때”라며 사실상 오 목사의 조기 복귀를 바라는 청원서를 29일 당회에 제출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오는 9일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신축 공사의 공공도로 지하 점유 문제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출처:국민일보 쿠키뉴스 (2013년 7월 2일)  
2014-03-07 18:46:09 | 관리자
사실 온누리교회는 서빙고예배당만 있던 시절인 90년대 중·후반, 군대를 전역하고 꿈 많고 생각도 많던 20대 청년 시절에 제가 3년 정도를 다녔던 교회입니다. 지금 위에 인용된 기사에서 지적하는 교회 확장과 비전교회 건립(사실상의 지교회) 등이 바로 그 시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온누리교회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준의 현란한 예배문화를 자랑하며 폭발적인 양적 부흥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위 기사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이미 대형교회였던 온누리교회 서빙고예배당으로 한 주에만 백 명 내외의 새 신자들이 밀려들어 와 그 인원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일단 대방동(제 기억으로는) 쪽에 큰 땅을 사고 전교인들이 기도하며 건축에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 인허가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온누리교회와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는 분이 소유주로 있던 양재 횃불선교센터를 인수하게 된 겁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설교 영상을 접할 수 있는 고 하용조 목사님은 설교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온화한 모습과는 어찌 보면 반대로 교회에서 일을 수행하고 조력자들과 사역을 함에서는 말 그대로 불도저 같았다고 합니다. 당시 제가 속해있던 온누리교회 청년부의 한 부서에 형이 두란노서원의 팀장이었는데 하 목사님의 일 처리 스타일은 조금의 빈틈이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불곰 같은 리더쉽이라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진을 쏙 빼놓았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추진력과 진취적인 성향이 이런 큰 덩치의 교회를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밤 10시 정도면 수면에 들어 새벽 3시에 기상하는 생활을 수십 년 해 오고 오로지 일밖에 생각 안 하는 사람, 신학생 시절부터 연예인들이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될 것을 직감하고 방송실 식당으로 출근도장을 찍으며 연예인들을 전도해서 연예인 교회를 세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파퓰러한 예배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초대형교회를 일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하다 결국 쓰러져간 사람이 바로 하 목사님입니다. 위 기사는 작심하고 온누리교회 리더쉽의 핵심 중의 하나인 확장주의를 비판한 내용으로 아마 온누리교회 교인들이나 옹호자들은 너무 편파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온누리교회가 가장 눈부시게 확장하고 양적 성장을 이룩하던 시기를 직접 목격했던 한사람으로서 분명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종교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목회에 있어 천부적 재능이 있던 한 인간의 모든 진액이 쏟아부어 졌고 수많은 교인들의 봉사와 헌신으로 일구어진 저 초대형교회는 결국 사탄의 지렛대질 한 번으로 그 모든 찬란한 수고와 사연들이 사악한 마귀의 사역을 돕는 연료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의 안타까운 면면은 이미 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조금만 손품을 팔면 인터넷을 통해 그런 부분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명백한 사실을 모함이요, 시기와 질투의 산물이요, 사실 왜곡이라고 부질없는 합리화와 자기방어만 할 것입니까? 부디 한사람이라도 더 바르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나니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닫으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닫으사 그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9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으며 지식도 없고 명철도 없으므로 이르기를, 내가 그것의 일부를 불로 태우고 또 그것의 숯 위에서 참으로 빵을 굽기도 하며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그것의 나머지로 가증한 것을 만들리요? 내가 나무줄기에 엎드리리요? 하는 자가 없나니 20 그는 재를 먹으며 속아 넘어간 마음으로 인해 옆으로 벗어났으므로 자기 혼을 건져 내지도 못하고 또 이르기를, 내 오른손에 거짓된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사44:18~20)
2014-03-07 13:14:58 | 김대용
소설에 나오는 ‘김건축 목사’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누구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짐작할 만합니다. 책 소개에서는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인지 부인하지만 결국 논픽션을 기반으로 한 소설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사실 옥성호 형제님은 불과 얼마 전에 본 소설과도 밀접하게 관련되며 철저하게 사실을 보도한 내용의 ‘왜 Why?- 한국 교회 미래를 위한 특별 보고서’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95104618 비록 일반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인물이지만 옥성호 형제님에 대한 성경 신자들의 애정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많은 목사들이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중 가장 목사로서 자격이 출중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옥성호 형제님은 아버지가 담임하던 교회와 척을 지고 외로운 별똥별처럼 활동하고 있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그의 예리한 비판정신에 편승해서 이득을 보려는 불순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소식이 가끔 들린다는 것입니다. https://www.facebook.com/newsnjoy/posts/457816984262545 앞으로도 성경 신자들의 믿음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부디 그의 사역이 쇠락해가는 한국교회에 작은 빛이라도 던져줄 수 있길 소망합니다.
2014-03-07 12:09:43 | 김대용
프렌차이즈 교회의 실상과 허상을 담은 글을 누가 보내줘서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온누리교회의 맥도널드식 운영과 캠퍼스 체제를 비판한 글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온누리옹호자들의 항의가 있어 아래 자료를 올립니다.   http://inyouwithyou.blog.me/10110010842   제가 직접 목격하였거나 들은 이야기, 언론 기사에 주로 근거합니다. 추가 정보나 세부적인 정보가 있으면 업데이트하고자 합니다.   온누리교회 잔혹사   http://inyouwithyou.blog.me/10125434606    1. 온누리교회 양재 성전 - 지역교회초토화       온누리교회가 횃불회관을 인수(?)하여 소위 양재성전을 세우자마자 인근 양재동, 서초동 인근의 수십 개 개척교회가 문을 닫았고 여러 중소형교회가 사실상 몰락하였다. 사랑의교회 한 청년은 전에 양재동에 소재한 교인 300명 정도의 견실한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온누리 양재 성전이 세워지자 6개월이 안 되어 교인 100명만 남게 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수지지역으로 교회를 이동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회자와 남은 교인들이 받은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양재 성전은 서빙고와 함께 양대 항공모함 모선 구조로 전국적인 선단망을 갖추는 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투자하였다. 온리교회서빙고본당에 다니던 교인들이 양재성전으로 이동하기도 하였지만 양재성전의 성장 과정은 한 마디로  지역교회에 대한 침탈의 과정이었다. 양재 성전에 신도 1만명이 증가되면 서울 지역 특히 인근에서 적어도 100개교회에서 100명씩의 교인들이 빠져나간 것이 된다. 특히 수평이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20-40청년 그룹이므로 지역교회들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서초구청 통계에 의해면 서초구 관내 10년 전 283개 교회였는데 현재 187개로 거의 30%의 교회들이 사라졌다. 그 모두가 온누리교회 때문은 아니지만 양재동 서초구청 인근의 경우 양재성전의 영향력은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수원 영통 온누리교회 지성전 건립 시도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어 온누리교회 비전교회의 허구성과 비윤리성이 드러난 대사건이었다. 지역 중소교회들이 대책위를 만들고 항의하고 하용조목사 면담을 하여 여론에 밀려 온누리교회가 한 발 물러선 사건이었다. 하지만 온누리교회는 저항이 약한 지역에 쳬계적으로 지성전 캠퍼스를 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더욱 은밀하게 더욱 치밀하게. 문어발식으로. 지역교회들의 반대와 항의가 거세자 독립교회로 추진하겠다는 듯이 제스처를 하고서는 캠퍼스를 세웠으며 결국은 독립교회를 세운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침내 온누리교회는 전국적인 캠퍼스망을 갖추고 전세계적인 비전교회 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 아래 언론기사 참고 -   3. 얼바인 온누리교회      2003년인가 2004년인가 온누리교회 부목사 한 사람이 미국 남가주 지역의 얼바인에 온누리비전교회를 세웠는데, 그야말로 교회개척이 아니라 교회 선전과 서울 온누리교회 시스템과 물량을 이식하는 것이었다. 얼바인온누리교회는 내가 살던 곳과 지근거리에 있고 나는 인근의 미국인교회에 출석하고 있어 그 진행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Church Planting이 아니라 임플란트였다. 단번에 수백 명의 교인들을 모아 온누리비전을 선전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하용조 목사가 야망에 찬 경영인이자 장사꾼이 되어간다는 평가가 그 당시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용조 목사의 초기의 순수한 진정성과 거룩한 비전은 아마 그 때부터 퇴색되고 교회가 속물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4. 보스톤 온누리교회 이웃교회 침탈       보스톤 온누리교회는 치밀하게 지역  한인교회들의 지성인들을 흡수하거나 뻬내어간 대표적인 경우이다. 보스톤온누리비전교회가 세워지자 마자 보스톤 지역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은 휘청거렸다. 일례로 캠브리지의 어느 한인교회는 백수십명의 교인들이 출석하는 알찬교회였는데 온누리교회가 세워지자 마자 단 2주만에 교인이 60명만 남게 되었다. 청년들이 다 떠나고 하바드대학출신 소그룹의 리더가 맴버들을 몰고 온누리교회로 갔다. 담임목사는 하용조 목사를 직접 만나 항의를 하였고 하용조 목사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연신 사과만 하고 위로할 따름이었다.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받은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온누리교회는 겉으로는 부정하고 있어도 핵심맴버들은 치밀하게 접촉하여 온누리신화를 만드는데 동참시키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를 쉽게 옮기는 이민교회의 문화가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온누리교회는 그러한 것을 자기 목적을 위해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부추기는 가장 대표적인 초대형교회에 해당된다.   5. 국내 캠퍼스 부천, 중국 등등        내가 목격하거나 그 교회 관련자에게 직접 들은 경우는 한국의 부천의 경 경우와 중국 어느 도시 온누리비전교회의 경우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캠퍼스의 담당목사가 담임목사가 아니요 지역비전교회가 별도의 재정권 인사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서빙고 본당에서 담당목사의 해임을 통고하면 비전교회 혹은 캠퍼스의  담당목사가 그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지고, 발령을 내리면 부목사 신분으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재정 역시 지역캠퍼스에서는 결정권이 없다. 현재 서빙고성전에서 교인투표로 담임목사로 청빙된 이재훈 목사는 서빙고의 담임이 아니라 전세계 온누리비전교회와 캠퍼스의 담임목사이자 최종결정권자이다. 왜 이러한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서빙고 성전에서 돈과 인력, 자본을 동원하여 직접 세운 교회들이기 때문이다.        즉 온누리비전교회들과 캠퍼스는 독립교회도 아니라 온누리그룹의 지사인 셈이다. 문제는 각 여러 캠퍼스나 비전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자기 교회가 서울 온누리교회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사실상 독립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사에서 전무하였던 교회구조가 온누리와 하용조목사의 욕망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건강한 방식의 교회 개척과 설립이란 옥한흠 목사가 그 부교역자에게 독립적인 개척교회를 하도록 돕거나 유진소 목사가 LA온누리교회를 세우는 방식의 독립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LA온누리교회를 유진소목사가 세웠다고 하용조목사가 그를 적대시하고 관계가 단절된 것은 미국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소문이다. 이러한 것이 대형교회 목사의 겉과 속이 다른 이미지의 실상이자 대형교회의 화려함과 웅대함 속에 숨겨있는 허상인 것이다. 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일종의 욕망의 바벨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ACTS29비전의 실체와 온누리교회의 기형적 확장 과정은 사실상 유럽 제국주의의 동인도회사나 대기업의 지사 확장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브랜드의 힘이요 돈과 자본의 역사이다. 하지만 온누리교회는 이러한 과정을 성령의 역사라고 하고 성경적인 비전의 실현이라고 한다. 자신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는 행위이다.   6. 언론기사들 - 지성전 체제의 방식의 특징과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 해부   지난 2003년 온누리교회는 장기 계획의 하나로 2010년까지 국내외 30개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대형 프로젝트인 ‘액츠 29’에 따라 수원의 신도시 지역인 영통지구에 지성전 건립을 추진했다. 당시 수원 지역의 목회자들은 ‘온누리교회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공동 대응했다. 온누리교회의 지성전이 교세를 확장하는 전략에 불과하며 수원 지역 중소 교회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책위의 김창주 목사는 “온누리교회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지역 교회의 신자들을 뺏는 형태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라며 매섭게 비판했다.   온누리교회의 ‘액츠 29’는 지성전에 관한 기독교계의 논란을 불러왔다. 지성전을 건립하는 대형 교회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한 명의 목회자가 있다. 그리고 예배는 중앙에서 송출하는 예배 프로그램으로 대신한다. 마치 네트워크 방송을 통해 원격 예배를 하는 셈이다. 본 교회에 재정·인사·행정 등 사실상 교회 운영을 위한 모든 권한이 예속되어 있고 본 교회의 명칭을 그대로 쓰면서 단지, 위치한 지명을 머리말에 붙여 구분하고 있다. 지성전을 건립하면서 대형 교회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다른 지역에 퍼뜨렸고 신자 수를 확대해왔다. 대기업의 본사와 지역 지사와 같은 개념이다.   논란은 ‘종교 대 기업’이라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선 일각에서는 ‘프랜차이즈화’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지성전이 중앙 교회의 전도 전진 기지로 기능하면서 주위의 작은 교회를 고사시킨다는 주장은 항상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마치 지역에 진출한 대형 마트가 소규모 슈퍼마켓을 고사시키는 모양새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지역 담임 목사의 예배가 아니라 TV 모니터를 통해 중앙 교회의 목사가 진행하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시사저널 2009. 1. 7 부분 발췌   월간 ‘기독교사상’은 오는 27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심포지엄 ‘한국교회 지성전체제 무엇이 문제인가’를 통해 지성전체제를 심층 해부한다.   ◈지성전 설립에 반발하는 중소교회들〓지난 4월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담임목사 하용조)는 300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전국에 30개의 비전교회(지성전)를 설립하는 ‘액츠(ACTS) 29’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하 목사는 ‘28장으로 끝난 사도행전을 잇는다’는 의미의 ‘액츠29’에 대해, “모교회인 서빙고동 온 누리교회와 양재 온누리교회가 항공모함이라면 신자수 2000∼3000명 규모의 30개 교회를 구축함으로 세우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온누리교회는 1호점 양재 온누리교회에 이어 지난달까지 부천· 수원·대전에 2∼4호점을 잇달아 세웠다. 온누리교회 수원 입성 소식에 위기감을 느낀 수원 팔달구 영통지역 중소교회들로 구성된 대책위 총무 정재현(45·새순교회)목사는 “대기업들이 사세 확장을 위해 직영점을 차려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프랜차이즈 행태”라며 지성전 반대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태세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수원 영통지역에 1000여평의 새 지성전을 건립해 이전할 예정이던 온누리교회 측은 일단 ‘독립교회’로 형태를 전환키로 했다. 대책위는 “수원온누리교회의 경우 건립 예정지에서 불과 100m 거리에 있는 같은 교단 교회 측의 동의도 구하지 않는 등 최소한의 ‘기업윤리’마저 어겼다”며 의혹의 눈초 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지성전 무엇이 문제인가〓지성전이란 한마디로 본교회에 종속된 교회다. 독자적인 운영권을 상실한 채 본 교회 목회정책과 행정 지시를 받는다. 지성전 예배때는 카리스마를 갖춘 교회창립자인 본교회 담임목사의 설교가 위성방송 등을 통해 영상으로 방영된다. 신학자들은 대체로 지성전체제를 교회성장제일주의와 개(個)교회주의가 낳은 종교상업주의의 산물로 규정한다.한국일 장신대 교수는 “대형교회의 인지도와 브랜드, 풍부한 인력과 재정적 힘을 자본으로 삼아 대기업의 분점을 여는 방식으로 개교회를 확장시키는 지성전체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원리 를 교회성장에 결부시킨 종교적 세속주의”라며 “똑같은 교회들을 복제품 방식으로 양산하려는 시도”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는 “교회론적 시각에서 볼 때 지성전체제는 동종교배로 교회를 열등한 기관으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조기연 서울신학대 교수는 “설교자와 신자 간의 인격적 접촉과 교감, 친밀감이 배제된 지성전의 중계예배는 예배라기보다 신앙집회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문화일보 2003. 10. 22 부분발췌 
2014-03-07 10:18:5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