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함.
2009-07-19 00:49:54 | 관리자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부루기아의 가루’라는 안약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계3:18) 이곳의 의료 학교는 이 안약의 제조로 유명했다.
2009-07-19 00:49:32 | 관리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1차적으로 모세 율법의 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다.
“너는 또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라.”(출31:13; 겔20:12, 19-21 참조).
그러므로 교리적으로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만 속한 것이며 이방인들(세상)과 교회(그리스도인)와는 상관이 없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이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꾸짖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유대인들의 규례인 안식일은 결코 일주일 중의 다른 날로 바뀐 적이 없으며 다른 민족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그런 날이 된 적도 없다. 안식일은 호2:11에서 예언된 것처럼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그들 자신의 땅으로 되돌아 갈 때 다시 회복될 것이다(사66:23; 겔44:24, 46:1-3).
구약시대에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즉 성전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성전으로 들어가고 전 주에 일하던 사람들은 나왔다. 그들은 새로 만든 보여 주는 빵을 진열하고 묵은 빵을 치웠으며(레24:8) 또 두 마리 어린양을 번제 헌물로 포도즙과 음식과 함께 드렸다. 다른 명절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일도 저녁부터 지켰다(민28:9-10).
율법은 안식일을 거룩히 구분하라고 명령하며(출20:8; 신5:12) 유대인들은 사랑의 행위와 기도와 찬양과 감사 등으로 그것을 거룩히 구분하고 사적/공적 예배를 통해 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율법을 묵상하는 것을 통해 그 날을 다른 날과 구분하였다. 또한 율법은 그 날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명령하였으며 그래서 그 날에는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다른 날 하던 모든 것을 옆으로 치우고 오직 종교적인 목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그 날은 다른 날과 구분된 날이므로 안식일의 정신을 따라 세상의 오락을 위해 그 날을 사용하는 것을 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교리적으로는 안식일이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레에 하루를 쉴 것을 명령하신 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십계명의 정신이 영원하며 누구에게나 적용된다고 말했다. 물론 안식일 법규에 부가적으로 추가된 규정들은 모세의 사회법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것들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과 무관하다(출31:14; 민15:32-36).
2009-07-19 00:49:04 | 관리자
유대인들은 7년마다 안식년을 지켰으며 이때에 온 땅이 경작되지 않고 안식하였다(출23:10-11; 레25:1-7).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온 세상의 창조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또 자신이 모든 것 특히 히브리 사람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주관하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안식년을 제정하셨다. 또 그분께서는 안식년에 땅에서 저절로 자란 과일이나 곡식을 가난한 자들과 종들에게 그냥 주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인정을 베풀게 하셨다. 희년 참조.
2009-07-19 00:48:15 | 관리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온 우주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창2:2-3).
그분께서는 이 날 새로운 것을 창조하시는 일을 쉬시고 안식하셨으므로 이 날에 복을 주고 그것을 거룩히 구분하며 자신을 경배하는 날로 삼으셨다. 창세기에는 안식하는 날을 제정하신 기록이 들어 있다. 결혼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 제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 경배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보이며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이러한 흔적이 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 있다. 노아는 방주에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일주일 간격으로 내보내었다(창8:1-22).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기록은 이미 그 당시에 안식일이 알려져서 준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출16:22-30).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에서는 이레(주)가 시간 구분의 단위였으며(창29:27) 세속 역사 기록 역시 이러한 관습이 시내 산에서 히브리 사람들이 안식일 준수 규정을 받기 전에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에는 몇 종류의 안식이 나온다.
히브리서는 수신 대상이 유대인 크리스천이므로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입성에 관한 안식을 다루고 있다. 히3:18, 4:1, 4:10의 ‘하나님 자신의 안식’은 구원을 상징하는 이집트 탈출(출애굽) 이후의 가나안 입성과 관련된 안식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누릴 천년왕국의 안식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안식은 구원받은 자가 누릴 안식으로 특별히 환난기에 들어간 유대인 크리스천의 경우 힘써서 들어가야 하는 안식이고(마24:13; 히4:11) 성도들의 경우 선한 행위와 수고를 통해 얻는 안식이다. 반면에 히4:2-6의 안식은 창조의 안식이며 동시에 구원받아 영혼의 자유를 얻는 안식이고 이것은 복음이 믿음과 결합될 때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얻는 안식이다(히4:2).
한편 행9:31의 안식은 사울의 회심 이후에 팔레스타인의 교회들이 박해를 벗어나 잠시 누린 화평의 기간을 뜻한다.
그 전에 약 2년 동안 로마의 황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신으로 섬기라고 강요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심하게 핍박하였다. 주일 참조.
2009-07-19 00:47:49 | 관리자
안수는 구약에서 희생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을 통해 많이 나온다(레16:21).
이런 예식은 안수를 통해 사람의 죄를 무죄한 짐승에게 옮기는 것을 상징했다. 안수는 또 축복하는 것(창48:18), 임직식(신34:9) 등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아이들과(마19:13, 15) 병자들(마9:18)에게 안수하셨다. 초대 교회에는 안수가 병 고치는 것, 성령님을 받는 것(행9:17), 교회에서의 특별한 일을 위해 사람을 구분하는 것(행6:6), 선교사 파송(행13:3) 등과 상관이 있었다. 그런데 안수는 무슨 마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교회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안수했을 뿐이다. 안수는 보통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현대 교회에서 목사나 집사에게 안수한다는 것은 ‘직무에 임명하다’를 뜻하는 Ordination을 말하며 이때에 손을 얹느냐 얹지 않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부르심(소명)을 가지고 지역 교회를 통해 하나님에게 임명받는 것이 핵심이다.
2009-07-19 00:47:08 | 관리자
보는 눈. 사물을 보아서 알고 분별하는 견식.
2009-07-19 00:46:41 | 관리자
신약성경에 나오는 두 도시의 이름.
하나는 시리아의 오론테스 강 근처에 위치한 대도시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의 1, 2차 선교 여행 지도 참조(42).
이곳은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를 기념하기 위해 셀레우코스 니카토르가 세운 도시로서 명성과 영화가 대단해서 한때는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은 위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중간에 있었고 수목이 많아 아름다웠으며 그래서 동서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니카토르는 그들이 오는 것을 환영했다. 바로 이 도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었다(행11:19, 26; 13:1; 갈2:11). 이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경을 바르게 필사하여 후대에 넘겨주었고 그들의 사본은 안디옥 계열의 사본으로 불린다.
이곳은 그 어느 도시보다 지진의 피해를 많이 입었으며 특히 1822년도의 지진으로 인구의 사분의 일 이상이 죽기도 했다. 또 다른 안디옥 역시 니카토르가 세운 도시로 ‘비시디아의 안디옥’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이곳이 브루기아에 있었지만 비시디아 지방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행13:14; 14:19, 21; 딤후3:11).
2009-07-19 00:46:18 | 관리자
팔레스타인의 도시.
이곳은 해안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이사랴와 예루살렘 사이의 비옥하고 관개가 잘된 평야에 위치했다.
이곳은 헤롯 대왕이 자기 아버지 안티파트리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이며 사도 바울은 이곳을 방문했다(행23:31).
2009-07-19 00:45:39 | 관리자
I. 헤롯 안디바 참조.
II. 버가모에 있던 신실한 순교자(계2:13).
2009-07-19 00:45:09 | 관리자
유대인 그리스도인. 그는 사도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롬16:7).
2009-07-19 00:44:46 | 관리자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가지 씻는 의식이 있었으며 제사장과(출30:19-21) 다른 사람들이(레12:1-8; 13:1-59; 14:1-57; 15:1-33; 히9:10) 이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거룩함의 씻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영적 씻음과도 관련이 있다(딛3:5; 계1:5).
이 외에도 유대인들은 전통으로 다른 것을 추가하고(막7:2-4) 그리스도처럼 그런 것을 무시하면 경건치 못한 자라고 평가하였다(눅11:38). 먹기 전과 후에 손을 씻는 것은 그들이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며(마15:2) 지금도 시리아 등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종이 있는 경우 종이 주인의 손 밑에 큰 그릇을 대고 손에 물을 부었다(왕하3:11; 시60:8).
또한 손을 씻는 것은 무죄를 보여 주는 표시였다(신21:6; 마27:24).
2009-07-19 00:43:16 | 관리자
천이나 옷감을 짤 때 가로로 놓는 실(레13:48-59). 날실 참조.
2009-07-19 00:42:06 | 관리자
창1:11에서 처음 언급되는 이 말은 대부분의 경우 문자 그대로의 씨를 의미하였지만 종종 상징적으로도 쓰였다(단9:1; 벧전1:23; 요일3:9).
성경적 용례 면에서 볼 때 씨는 생리학적 의미에서 종종 후손이나 자손(레 18:21 등) 혹은 유일한 아이(창4:25; 삼상1:11) 등을 의미하였다. 또 어떤 때에 이것은 집합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 왕가의 씨(왕하11:1), 아브라함의 씨(대하20:7), 거룩한 씨(스9:2; 사6:13; 비교 렘2:21).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씨를 보이는 것은(스2:59; 느7:61) 그 사람의 계보를 보이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씨는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한 민족을 뜻하기도 하였다(에10:3).
이런 일반적인 의미에서 씨는 종종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였다(말2:15; 참조 사1:4; 57:4).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남자만이 씨를 가지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여자의 씨(창3:15)로 오신 예수님 즉 처녀 탄생의 신비를 지닌 분의 신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처녀 탄생: 예수님의 계보 선도 참조(63).
한편 씨와 씨들의 차이는 갈3:16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종류의 씨를 섞어서 뿌리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었다(레19:19). 귀한 씨를 뿌릴 때에는 두려움과 수고가 동반되지만 그것의 열매를 거둘 때에는 큰 기쁨이 있다(시126:5-6).
2009-07-19 00:41:43 | 관리자
매우 쓴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
욥16:13; 20:14, 25에서 이것은 쓸개즙을 뜻한다. 마27:34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쓸개를 섞은 식초를 주어 마시게 하였다고 기록된 반면 막15:23에는 그것이 몰약을 썩은 포도즙이라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마 로마 군인들이 몰약과 다른 쓴 물질을 섞어서 마신 신 포도즙일 것이다(시69:21). 쓸개라는 말은 종종 상징적으로 큰 재난, 사악한 것, 타락한 것 등을 가리킨다(렘8:14; 암6:12; 행8:23).
2009-07-19 00:41:15 | 관리자
쓰고 독이 있는 식물.
이것은 파괴시키는 것, 메스꺼운 것을 나타낸다(애3:15; 신29:18; 렘9:15). 사악한 일에 빠지면 그 결과는 쑥 같이 쓰며(잠5:4) 불공정과 학대는 쑥과 쓸개와 같다(암5:7; 6:12). 갈대아 사람들은 죽음을 쑥과 같이 쓴 것으로 표현하였다.
계8:10-11에 나오는 쑥이라는 별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강력한 통치자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떨어지면서 여러 사악한 자에게 심판을 가져왔다(단10:20-21; 참조 사14:12).
2009-07-19 00:40:49 | 관리자
버려진 땅에서 자라는 식물(욥30:7; 잠24:31; 사34:13; 호9:6; 습2:9).
이것은 포기 전체에 가시털이 나고 줄기에 세로능선이 있으며 가시에는 포름산이 있어 찔리면 쐐기한테 쏘인 것처럼 아프다.
2009-07-19 00:40:23 | 관리자
이것은 ‘먹어치운다’는 히브리말에서 파생되었으며 메뚜기가 알에서 깨어나 성충이 되기까지의 한 단계로 볼 수도 있다
(왕상8:37; 시78:46; 105:34; 사33:4; 욜1:4; 2:25).
2009-07-19 00:39:58 | 관리자
독사와 전갈은 사람을 쏜다(잠23:32; 계9:10).
사망은 이런 짐승들처럼 치명적인 것 즉 죄로 사람을 쏜다(고전15:55; 참조 호13:14).
2009-07-19 00:39:31 | 관리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말씀하신 것.
(1)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네 어머니를 보라!”(요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6) “다 이루었다.”(요19:30);
(7)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눅23:46).
2009-07-19 00:39:0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