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6508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 혼의 소원과 감정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 이것은 성령님의 도움을 힘입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알리고 대화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가 혼의 생명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기도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욥21:15; 시10:4). 모든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들의 기도를 기뻐하셨다. 율법의 시작 이후로 유대인들은 성막이나 성전에서의 경배를 멈추지 않았으며 여기에는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헌물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제사장들은 개개인을 위하여 희생물과 향과 헌물과 첫 열매를 드렸으며 처음 난 자를 구속하여 오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의식을 수행하였고 한 마디로 각처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엄숙한 날 뿐만 아니라 일반 날에도 몰려와서 자기들의 서원을 실행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는 반드시 기도가 수반되었다(대상23:30; 느11:17; 눅1:10). 왕상8:22와 성전 예배를 위한 다윗의 시편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고(시55:17; 단6:10) 성경의 모든 성도들은 공적으로 사적으로 가족 별로 기도하였으며 일반 업무를 하면서도 짧게 기도하였다(느2:4). 기도의 자세는 특별하게 규정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거나(왕상8:22) 머리를 숙이거나(창24:26) 무릎을 꿇거나(눅22:41) 땅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였다(마26:39).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열렬히,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또한 기도에는 죄의 고백과 감사와 다른 사람을 위한 간구가 포함된다. 우리는 바른 이성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습관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마음으로 무신론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경배하기를 원하시므로(겔36:37; 마7:7-11; 빌4:6; 딤전2:1-3; 약1:5) 이런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죄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목적을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분의 뛰어난 섭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포함하며 또한 우리가 받을 응답도 포함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해도 이미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므로 소용이 없고 주시려고 한 것은 기도를 하지 않아도 주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기도에 그분께서 후하게 응답하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복을 받을 수 없다. “네가 부르짖는 소리에 그분께서 네게 크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소리를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사30:19). 다윗의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이 가엾은 자가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원하셨도다”(시34:6). 거짓 종교 추종자들이나 이교도들은 헛된 반복이나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은 기도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위선자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하여 반복해서 헛된 말로 기도하였다. 이에 우리 주님은 마6:5-15에서 이런 자들을 책망하면서 소위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기도 후에나 혹은 모임을 마칠 때에 마치 주문처럼 외우고 있다. 이것은 실로 주님이 기도하신 ‘주기도문’이 아니고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그런 형식으로 기도하라고 본을 보여 주신 기도의 예이다. 따라서 그 의미를 모르고 헛되이 그 기도문 자체를 반복해서 외우는 것은 이교도들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반복 참조. 엡6:18; 살전5:17; 딤전2:8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모든 곳에서 언제든지 손을 하늘로 들고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라고 가르쳤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게 하라고 말하였다(고전10:31). 한 마디로 우리 주님은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권고하신다(눅18:1; 21:36). 끝으로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신다(잠28:9).    
2009-07-18 14:59:46 | 관리자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것. 유월절은 주님이 이스라엘의 처음난 자들을 살려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출12:14). 또 요르단 강의 돌무더기는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넌 것을 기념한다(수4:7). 한편 기념은 또한 기록을 뜻하며(출17:14; 말3:16) 그래서 그리스도의 발에 기름을 부은 마리아의 행위도 기록되어 기념되고 있다(마26:13; 막14:9).      
2009-07-18 14:58:26 | 관리자
  식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 혹은 흉년 등. 성경은 팔레스타인 지방과 그 이웃 지방에 여러 차례 기근이 일어난 것을 기록한다(창12:10; 26:1; 룻1:1; 왕하6:25; 행11:27-30). 이집트에서 7년 동안 일어난 기근은 아주 특기할 만한 것으로 그 당시 요셉이 총독으로 있으면서 이를 해결했다(창41:1-57). 이 기근은 기간과 범위와 정도 면에서 다른 기근과 달랐으며 특히 이집트의 땅이 비옥하므로 거의 기근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할 수 있다. 기근은 종종 정상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떤 때에는 나일 강이 이집트에서 넘쳐흐르지 않기도 하고 유대에서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이며 또 어떤 때에는 메뚜기와 다른 해충들이 열매를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런 자연적인 기근도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 있다. 그분께서는 종종 이런 기근들을 사용해서 반역하는 자들을 궁핍에 처하게 하신다(왕하8:1-2; 겔6:11; 마24:7). 한편 가장 나쁜 기근은 영적 기근이다(암8:11).    
2009-07-18 14:57:56 | 관리자
  Standard는 지파나 군대를 모을 때 장대 위에 높이 단 깃발 같은 상징이며(민2:10; 사59:19) 우리말 성경에서는 보통 군기로 번역되었다. 이교도들은 짐승의 형상 등을 조각해서 군기를 만들어 언덕 위에 세우곤 했다. 한편 Banner는 Standard 위에 붙여서 단 깃발이며 주로 군사적 혹은 종교적 모임이나 행진을 위해 사용되었다. 또 Ensign은 ‘표시가 있는 깃발’을 뜻하며 대개 기로 번역되었다(민2:2).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깃발이 달린 4개의 큰 군기를 가지고 다녔다(민1:52; 2:2-3). 이런 깃발은 주로 군사를 모아 싸울 때 사용하였다(사5:26; 18:3; 렘4:6). 한편 성도들 위에 나부끼는 그리스도의 깃발은 사랑이다(아2:4).    
2009-07-18 14:57:01 | 관리자
  언약궤를 덮는 뚜껑(대상28:11). 언약궤 참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뚜껑을 뜻하며 이것은 곧 죄들을 덮어 주는 것 즉 용서하는 것을 포함한다(시32:1).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이를 속죄소 혹은 시은좌라 칭하였다. 이것은 구약시대 성막의 지성소 안에 있던 언약궤 위에 둔 ‘금으로 만든 자리’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곳을 의미한다(출25:17-22). 신약성경에서 이것은 그리스말로 속죄를 뜻하였다(히9:4-5). 1년에 한 차례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반드시 속죄의 피를 가지고 긍휼의 자리로 갔는데 이는 속죄가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롬3:25).    
2009-07-18 14:56:35 | 관리자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것. 이것은 비참하고 죄 많은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서 그분의 진리와 공의와 조화를 이룬다(시85:10).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한하신 분의 지혜와 사랑이 담긴 완전한 일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참되게 체험한 사람은 그분처럼 긍휼을 베풀고(눅6:36) 비참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시41:1-2)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다(마5:7; 18:33).    
2009-07-18 14:56:09 | 관리자
  모든 시대에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할 때 금식했으며 이것은 본성에 의한 자연적인 현상이다. 사실 이러한 때에는 몸이 영양분 섭취를 거부하면서 굶주림으로 인한 식욕을 유보시킨다. 성경을 보면 모세 이전에는 금식이라 할 수 있는 예가 없었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리스도처럼 40일 동안 금식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신9:9; 왕상19:8; 마4:2). 유대인들은 종종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자 할 때 또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그분의 용서를 구하고자 할 때 금식했다(삿20:26; 삼상7:6; 삼하12:16; 왕상19:8; 느9:1; 렘36:9). 또 공적인 재난이 임할 때 그들은 특별 금식을 정하고 젖 먹는 아이까지도 금식했다(욜2:16; 단10:2-3). 그들은 해가 질 때에 금식을 시작해서 다음 날 그 시간까지 금식했으며 또 매년 속죄일을 금식하는 날로 정하고 모두 금식했다. 속죄 참조. 우리 주님께서는 특별히 어떤 금식을 따로 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제자들이 금식할 것을 암시한 적이 있다(눅5:34-35). 실로 그분의 사도들과 초기 신자들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금식하는 삶이었다(고후6:5; 11:27). 우리 주님은 금식의 관습을 인정하셨고 사도들은 필요한 때에 그것을 실천했다(마6:16-18; 행13:3; 고전7:5).    
2009-07-18 14:52:30 | 관리자
  시내 광야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 동안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의 간청을 받아들여 만든 우상(출32). 후에 여로보암 1세는 왕국의 분열 후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다(왕상12:28). 송아지는 이집트, 그리스 등 고대 이교도들의 우상숭배 대상이었고 현재 인도 등 힌두교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송아지, 벧엘 참조.    
2009-07-18 14:51:54 | 관리자
  고대에 다이아몬드를 일컫던 이름. 이것은 광물 중에서 가장 단단하며 유리나 혹은 단단한 물질 위에 글을 기록할 때 쓰였고(렘17:1) 또 비유적인 표현으로 단단한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겔3:9; 슥7:12).    
2009-07-18 14:51:05 | 관리자
  고대부터 세상 곳곳에 잘 알려진 귀금속. 구약시대 사람들은 오빌(욥28:16), 바르와임(대하3:6), 세바와 라아마(겔27:22) 등에서 금을 구했으며 욥은 여러 형태의 금을 이야기했다(욥22:24; 28:15-19). 아브라함은 금이 많았고 여자들의 장식은 금으로 만들어졌다(창13:2; 24:22, 35). 언약궤는 순금으로 입혀졌으며 긍휼의 자리와 성막과 성전에 속한 많은 기구들과 솔로몬의 음료 그릇들도 금으로 만들어졌다.    
2009-07-18 14:49:34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은 알파벳의 순서대로 시작되는 이합체(離合體) 시(acrostic poems) 혹은 ‘머리글자 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시편 119편이다. 여기에는 히브리말의 각 문자로 시작되는 22개의 소절이 있으며 각 소절은 8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첫 8절은 히브리말의 첫 번째 문자인 ‘알레프’로 시작되고 다음 8절은 두 번째 문자인 ‘뻬트’로 시작된다. 한편 시25:1-22; 34:1-22는 각각 22절이 있는데 각 절은 히브리 문자로 시작된다. 또한 시111:1-10; 112:1-10은 반 절이 한 문자로 그리고 다음 반절이 그 다음 문자로 시작된다. 예레미야 애가의 1:1-22; 2:1-22; 3:1-66; 4:1-22; 5:1-22 역시 이합체 구절이다. 히브리어 참조. 요7:15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배우지 않아서 글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성경을 들어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글자 - 우리말 성경에서는 율법 자구로 번역됨 - 를 말하였다(롬2:27, 29; 7:6; 고후3:6).    
2009-07-18 14:46:13 | 관리자
  미나리과 식물. 이 식물의 씨는 향내가 나는 기름을 낸다(사28:25-27). 우리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같은 작은 것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은 것을 크게 책망하셨다(마23:23).    
2009-07-18 14:42:00 | 관리자
  유다의 평야에 있던 도시. 다윗은 이 도시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했으나 이곳 사람들은 그를 사울에게 내주려 하였다(삼상23:1-13; 느3:17).    
2009-07-18 14:39:05 | 관리자